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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절반에서 행복의 길을 묻다

황상규 지음 | 평단문화사
인생의 절반에서 행복의 길을 묻다

황상규 지음

평단문화사 / 2012년 7월 / 312쪽 / 13,000원





제1부 행복으로 가는 길



많이 가진다고 해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생존과 자기 발전이라는 정신과 육체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부단히 움직인다. 편안히 쉴 때조차 욕망은 좀처럼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정지 상태에서는 어떤 욕구도 만족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지 상태를 잘 견디지 못하고 몹시 괴로워한다. 실업의 상태가 인간에게 불행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산다는 것은 활동이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활동에는 반드시 질서가 있어야 한다. 질서가 없다면 욕망에 의한 활동이 과해져 불행해질 뿐만 아니라 타인까지 불행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를 먹으면 하나를 더 먹고 싶고, 하나를 가지면 하나를 더 가지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망이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욕망은 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 버려 우리는 점점 행복을 먼 곳에서 찾으려 한다.

과하면 화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커져 가는 욕망에 몸을 맡기는 한 우리는 자신이 해야 할 도리를 저버리고 다른 사람의 행복을 침범하게 된다. 인간의 도리나 의무가 무너지면 질서가 사라져 모두 제멋대로 행동해 결국 사람이 사람을 두려워하는 사회가 된다. 순수해야 할 아이들조차 친구의 돈을 뺏고 괴롭히며 죽음으로 몰고 가는 현실은 우리 사회가 의무와 도리가 무너지고 정신적으로 황폐해졌음을 말해 준다.

안타까운 현실 앞에서 어떤 사람은 우리 모두 수도승처럼 금욕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금욕은 생물학적 원칙에 벗어나는 행위이다. 좋은 음식을 지나치게 많이 먹어도 탈이 나지만 너무 먹지 않아도 건강에 좋지 않다. 석가모니가 금욕적인 생활을 포기한 것도 몸소 행한 금욕적인 생활이 건강을 악화시켰기 때문이다. 건강을 위해서는 자신의 몸에 맞게 적당하게 음식을 섭취해야 한다. 그래서 몽테뉴는 "무절제는 쾌락의 독이 되지만, 절제는 쾌락을 증대시켜 주는 약이 된다"라고 하였다.

우리는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절제하고 근신하여야 한다. 인간의 활동을 만족하게 하려면 절제가 반드시 필요한데, 이 절제가 바로 옛 성현들이 강조한 '중용'이다. 진정한 행복을 원한다면 무엇보다 '중용'을 소중히 생각해야 한다. 공자 이래 성현들은 중용을 '지나친 것과 부족한 것을 절충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그래야 나 자신도 편안한 삶을 살 수 있고, '너'와 '내'가 공존할 수 있으며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다. 물론 죽기 아니면 살기인 전쟁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중용의 덕이 통할 리 없다. 하지만 이런 극단적인 상황을 제외하고는 늘 중용을 지켜야 행복의 문을 열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중용의 덕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인격이 높아야 한다. 인격이 없는 재능은 자칫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 주는 것과 같다. 인격이 모자란 사람들은 권세라는 날개를 이용하여 사람들의 고혈을 짜낸다. 그래서 인격은 지위보다 높아야 한다. 인격이 지위보다 훌륭하여 권세를 남용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자기 자신이라는 작은 울타리를 박차고 나와, '너'와 '내'가 만나고 '인간'과 '자연'이 만나는 중간 지점인 '중용'에 도달할 수 있다. 중용에 도달할 때 비로소 지위도 더욱 빛나게 된다. 지혜로운 삶의 전도사 그라시안은 비록 세상이 의롭지 않다고 해도 모두를 위해서는 "숭고한 품성을 가진 사람이 되라"고 외친다.

칸트의 '목적의 왕국'을 건설하자

세상이 비록 이해관계로 얽혀 있다 해도 너무 이익에 민감해서는 안 된다. 이익에 민감한 사람들은 이익을 얻는다고 생각되면 앞으로 나아가지만, 손해를 입을지도 모른다고 느끼면 뒤로 물러나려 하고, 함께 공을 세웠으면서도 홀로 공적을 챙기려 한다. 그래서 이익만을 지나치게 좇다 보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게 된다. 타인 존중의 원칙에 따라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가 있다. 그래서 칸트는 "나 자신의 인격과 다른 사람의 인격에 대해 인간성을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고, 결코 수단으로 대하지 않도록 행동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는 인간의 관계가 성립하는 나라를 '목적의 왕국'이라고 불렀다.

덕이 없는 지식은 조잡하고 사악하다. 지식이 덕을 갖출 때 비로소 그 지식은 참다운 의미를 가진다. 미국이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했을 때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많은 과학자는 우아함을 상실한 과학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깨달았다. 청나라를 부흥하게 한 강희제는 불행한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인재를 발탁할 때면 능력보다 도덕성을 더 중요시하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착한 사람이 못살고 악한 사람이 잘사는 경우가 허다하다. 역사가인 사마천은 "역사를 돌아보면 양심을 지킨 백이숙제는 굶어 죽었지만, 도둑질을 천직으로 한 도척이 천수를 누리고 살았다"며 통탄하였다. 이런 부조리가 비일비재하여 사람들은 즐길 수 있는 일에는 너나없이 달려들고, 이익이 되지 않으면 자신이 해야 할 일도 피하려고 한다. 겉으로는 정의를 찬양하면서도 자신의 안녕을 위해 정의를 저버리고 부조리한 일을 저지르면서 그럴듯한 말로 자신의 행동을 교묘히 정당화한다.

그렇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정의로운 사람은 불합리한 권력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 때문에 부조리와 타협하지 않는다. 거시적인 안목으로 모두를 위하는 결정을 한다. 그래서 진정한 자유란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기 싫지만 의무이자 도리인 것을 자신의 의지로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르헨티나의 영부인인 에바 페론은 화려한 연예인 생활을 접으면서 춥고 가난한 국민을 향해 다음과 같이 외쳤다. "나는 다른 사람의 꿈이 실현되는 것을 지켜보기 위해 내 꿈을 접었습니다. 내 영혼을 내 민족을 위해 기꺼이 바칠 것입니다." 또한 올곧은 사람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의 행복을 위해 양심에 따라 행동한다. 칸트는 올곧은 사람이 되기 위해 항상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생각할수록 더욱 경외심에 가득 차 바라보게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내 머리 위에서 반짝이는 별과 내 안에 있는 도덕률이다."

그럼 칸트가 말한 '목적의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최대한 경쟁을 피하고 상생의 길을 가도록 해야 한다. 상생의 길로 가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배려해야 한다. 욕망은 생존을 위한 조건이지만 그렇다고 이기적이어서는 안 된다. 이기심은 인간의 사회성을 무시하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원흉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기심을 버리도록 노력해야 한다. 덕은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생긴다. 공자는 "어진 자는 자신이 서고 싶으면 남을 세우고, 자기가 이루고 싶으면 남을 이루게 한다"라고 말하며,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 베풀지 말라"고 가르쳤다.



제2부 지혜를 얻는 길



행복의 길로 향하는 나침반을 가졌는가

지혜는 모든 행동의 전제 조건이다. 공자는 "사랑하기를 좋아하면서 배우기를 싫어하면 우매해지고, 영리하되 배우기를 싫어하면 방탕해지고, 신의를 좋아하면서 배우기를 싫어하면 남을 해치게 되며, 정직을 좋아하면서 배우기를 싫어하면 각박해지고, 용기를 좋아하면서 배우기를 싫어하면 난폭해지며, 강직함을 좋아하면서 배우기를 싫어하면 경거망동하기 쉽다"라고 말하면서 인생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 위해 "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더라도 여한이 없다"고 말하였다. 인간은 아는 만큼 행하기 때문에, 공자의 주장처럼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아는 데 힘써야 한다. 지혜롭지 않으면 무모하게 모든 것을 투자하여 한순간에 가진 것을 날리기도 하고, 탐욕스럽게 온갖 향락을 좇다 몰락하기도 한다. 문제는 지혜롭지 않다면 이러한 결과를 초래하면서도 자신의 무모함과 탐욕이 원인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평상시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를 쌓아 중용의 덕이 무엇인지를 근원적으로 파헤쳐야 한다. 깊은 곳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참다운 눈을 가져야 한다.

지혜가 없다면 선택해야 할 것을 버리고 선택하지 말아야 할 것을 선택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그래서 그라시안은 "지혜가 없는 인간은 어둠의 세계에 사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이런 어둠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세상을 올바로 볼 수 있는 통찰력과 분별력을 길러야 한다. 통찰력을 통해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고, 분별력을 통해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를 파악해야 한다. 통찰력은 번잡하고 복잡한 상황에서 지금 이 순간 가장 중요한 임무가 무엇인지를 파악하여 과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게 한다.

분별력 또한 아주 중요한 힘이다. 자신의 분수를 알고 그에 맞게 처신해야 한다. 상대에게 너무 지나친 사랑을 쏟는 것 역시 분별력이 없는 행동이라 할 수 있다. 요즘 일어나고 있는 아이들의 폭력이나 왕따 현상도 어찌 보면 부모의 지나친 사랑 때문에 발생한 것인지도 모른다. 한비자도 사랑이 지나치면 법이 바로 서지 않는다고 경고하였다. "무릇 인자함이란 사람의 고통을 보고 참지 못하는 마음을 말한다. 자혜는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는 마음을 뜻한다. 남의 고통을 보고 정에 이끌려 참지 못하면 허물이 있어도 벌하지 못하며,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면 공을 세우지 않아도 상을 주게 된다. 이렇듯 허물이 있어도 벌을 주지 않고 공적이 없는데도 상을 주면, 나라가 망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채근담》에도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냉철한 눈으로 사람의 행위를 관찰하고, 냉철한 귀로 사람의 말을 들으며, 냉철한 마음으로 사리를 생각하라."



제3부 자신을 만들어 가는 길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을 믿어라

자신감은 확신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굳건한 믿음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다는 신념이자 의지의 표현이다. 그래서 그라시안은 "그대의 마음을 믿어라. 특히 그대의 마음이 확실하다면 그때는 마음에 귀를 기울이는 것에 망설이지 마라. 확실한 마음은 종종 무엇이 중요한지를 말해 준다. 그것은 그대 내면에서 들리는 예언의 소리다"라고 외쳤다.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자신감이 있어야 역경에 굴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실행할 수 있다. 돈과 명예는 잃어버려도 언젠가 되찾을 수 있지만 자신감을 잃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결국 모든 것을 잃고 만다. 자신감이야말로 어떤 일을 성취하는 데 가장 소중한 자산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자신감이 없어 지레 겁먹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도 망설이다가 결국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남의 뒤꽁무니만 따라다니는 신세가 된다. 그리고 열등감에 사로잡혀 신세타령이나 하고 남을 시기하고 질투한다. 이런 암울한 처지에서 벗어나는 길은 일단 자신을 믿고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굳건한 신념을 가지는 것이다. 무기력한 영국을 구한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수상은 "이 나라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나 이외에 아무도 없다"라는 굳건한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이처럼 자신감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일도 가능하게 한다. 그렇다고 오만해져서는 안 된다. 오만은 자기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다는 신념에서 비롯되는 마음으로, 자신감이 지나쳐 자신의 한계를 넘는 일마저 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이다. 뭐든 과하면 좋지 않듯이 자신감 또한 지나치면 패망의 결과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파국으로 치닫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감이 도를 넘지 않도록 신중하고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현명함을 가질 필요가 있다.

또한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자신감을 가지고 인생을 자기 주도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나는 홀로 결정한다"라고 하면서 스스로 자화상을 그려 나가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자기 주도적인 삶은 사르트르의 주장처럼 주어진 의무감이나 다른 사람의 지시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자기 주도적인 삶은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말처럼 쉽지 않다. 부담스러운 의무감과 다른 사람의 지시를 무시하고 독립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불안감을 조성하고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며 살아가는 것이 편안할 수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것은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는 것이다. 자신감과 소신은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여 세찬 파도가 휘몰아치는 세상에서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서게 한다.



제4부 자신의 품위를 지키는 길



자랑하지 않고 매력을 드러내는 현명한 방법

인간은 본래 '자기'와 관련된 것에는 관심을 기울이지만, 그렇지 않은 것에는 무관심하거나 적대적 감정을 가진다. 특히 다른 사람이 자랑을 늘어놓으면 듣는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적대심을 품기 마련이다. 자기자랑이 결국에는 상대방의 무능을 들추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못난 사람일수록 뛰어난 사람을 보면 열등감에 사로잡힌다. 반대로 스스로 좋은 점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상대방 역시 그 자신의 나쁜 점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참으로 어떤 탁월한 점이나 뛰어난 면을 가진 자라면 스스로 만족하고, 그것을 남에게 자랑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자신을 지나치게 드러내면 오히려 매력이 반감되어 버린다. 그래서 누군가와 너무 허물없이 지내는 것은 인간관계에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 붙임성이 있는 것은 인간관계를 원만히 하게 하지만, 너무 터놓고 지내다 보면 보이고 싶지 않은 자신의 추한 모습까지 보이게 되어 자신의 품위를 손상할 수도 있다. 자신의 품위를 높이려고 잘난 척하며 나서지 말아야 한다. 결과가 잘못되는 경우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고 만다.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너무 튀는 행동도 삼가야 한다. 물론 각자의 성격과 소질을 살리는 것은 중요하다. 개성은 창조력을 발휘하여 새로운 세상을 여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기도 하지만 세상의 보이지 않는 틀을 넘어서기 때문에 외면당할 수도 있다. 어떤 사회든 간에 규범이 파괴되는 것은 원치 않으며 사람들도 낯선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조직이 거대할수록 규칙을 깨는 행위는 환영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개성을 내세워 사회의 규칙을 깨는 행동을 삼가야 한다.

또한 행복감을 지나치게 드러내지 마라. 행복을 과시함으로써 오히려 불행을 부를 수 있다. 인간의 마음 한구석에는 다른 사람의 불행을 기뻐하는 악함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자는 역설적으로 "자신이 재능을 과시하지 않기에 오히려 다른 사람이 존경한다"라고 하였다. 자신을 자랑하는 것은 타인 존중의 원칙을 침해하므로, 자신을 자랑하기보다는 자신을 낮추어 겸손해야 한다. 이것이 오히려 자기 존중의 원칙에 충실한 태도이다. 겸손은 언뜻 보기에는 자기 존중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을 낮추면 오히려 타인이 그 이상으로 나를 존중해 주기 때문에 겸손이야말로 자기 존중을 위한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슬람교의 성자로 추앙받는 마호메트가 "나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다. 보통 사람과 똑같이 먹고 잔다"라고 한 말을 되새겨 보라.



제5부 다른 사람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드는 길



칭찬은 아끼지 말고 충고는 삼가야 한다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는 말처럼, 인간은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기도 한다. 그것은 인간이 그만큼 남에게 인정받기를 바란다는 증거다. 실용주의 철학자 월리엄 제임스도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받기를 갈망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칭찬은 아끼지 말고 충고나 비판은 아껴야 한다. 인격이 높은 사람은 상대의 좋은 점에 주목하지만, 인격이 없는 사람은 상대의 좋은 점을 외면하고 애써 나쁜 점을 보려고 한다. 불행은 밝은 곳보다 어두운 곳에 집착할 때 찾아온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장점을 키워 주고 싶다면 비판은 삼가고 칭찬하고 격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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