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자연탐구가 우리 아이의 세상 알아가기

도나타 엘셴브로이히 지음 | 에코리브르
자연탐구가 우리 아이의 세상 알아가기

도나타 엘셴브로이히 지음

에코리브르 / 2012년 5월 / 352쪽 / 16,000원





눈살 찌푸리기, 성공의 미소 짓기: 유아들의 자연 탐구



유아의 관심

지식 기반 사회에서 배우고자 하는 자세는 기본 덕목이다. 이것을 다른 단어로 표현하면 바로 관심이다. 오늘날 이 주의력에 대해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경우는 다름 아닌 문제가 생길 때, 즉 주의력 결핍 장애를 보이는 경우이다. 주의력 결핍 장애 증상을 '조기 인식'하면 의학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 주의력 결핍 장애는 오늘날 아주 어린 유아에게서도 발견된다. 과도하게 자극을 받은 아이들, 예를 들어 너무 조기에 걷기를 강요당한 아이들, 누워서 자기 손발을 가지고 놀 기회를 갖지 못한 아이들에게서 아주 흔히 이러한 증상이 발견된다고 한다.

주의력 결핍 장애는 엄마가 출산 후 1년 이내에 우울증에 시달려 아이에게 온전히 관심을 보일 수 없는 경우에도 나타난다. 이러한 산모 우울증은 보통 출산 후 잠깐 나타나는 산후우울증보다 훨씬 심각하며,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많은 산모가 이로 인해 고통받고 있다. 우울증에 걸린 산모는 자신의 모순된 상황으로 인해 글자 그대로 뛰쳐나가기 직전의 심리상태를 보인다. 생후 몇 개월 된 아이들의 경우 엄마가 상체는 자기 쪽으로 향하고 있어도 하체가 이미 몸을 돌린 상태라면 두려움을 느낀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런 아이들에게서는 코티솔(cortisol, 급성 스트레스에 반응해 분비되는 물질로, 스트레스에 대항하는 신체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역할을 한다-옮긴이) 수치가 더 높게 나타난다. 코티솔은 도주 중이거나 자신을 방어할 때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혈액 속에 장시간 농축되면 기억중추인 해마에 해를 입힌다. 그러므로 유아의 건강에 유해한 성장 조건뿐 아니라 두뇌, 주의력, 기억력을 저하시키는 조건도 존재한다는 것을 일반 대중에게 더욱 알릴 필요가 있다. 하지만 부모들에게 주의력 결핍이란 것이 하나의 장애라기보다는 그 자체의 개념으로 이해시키는 것이 더 의미 있지 않을까?

유아 연구에서는 '조용한 배움의 상태'가 주의력을 높이는 데 특히 생산적이라고 밝히고 있다. 젖 먹이기, 기저귀 갈기, 부모와의 접촉 등 외부 자극을 주지 않는 시간이 유아가 스스로 탐구하고 학습하는 데 가장 적합하다는 인식이 다시 한 번 새롭게 자리 잡고 있다.



멈춰 서기에서 감탄하기와 관찰하기까지



유아기의 자연 관찰과 자연과학의 유아기

자연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은 전혀 자연스러운 행위가 아니다. 늘 "한 방향으로 그저 바라보기"(마르틴 바겐샤인)만 하는 서양에서 2,000년 넘게 발전해온 특별한 시선이다. 유아도 자신만의 시선을 만들어낸다. 유아기에는 인간이 자연을 관찰해온 역사가 반복된다. 사람들은 종종 아이의 행동 안에서 서양 자연과학 역사의 한 단계 또는 다른 단계를 재발견한다.

유아는 세부사항에 푹 빠진 채, 이 세부사항에서 출발하여 세상의 수수께끼를 이해하고 싶어 하는 점에서 근대 초기의 자연탐구가들과 닮아 있다. 초창기 식물학자들에게는 자연의 연결고리에 아직 빈 곳이 많았다. 나비의 날개에 환상적으로 대칭적인 수를 놓은 것은 대체 누구일까? 이 숲 속에, 전 세계에 얼마나 많은 나비가 있는지 아는 사람이 있을까? 식물과 동물에 귀를 기울이는 아이도 있다. 이렇게 하면 우주의 언어를 배울 수 있기라도 하듯이 말이다.

유아가 자연을 관찰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과거 역사의 수많은 길목에서 자연과학들이 그랬던 것처럼, 아름다운 것에 감탄하고 놀라워하며, 그 안에서 전체의 철학적 의미를 찾고자 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학교에서 자연과학을 여러 과목으로 나눠 배우면서 냉철한 시각을 갖게 된 어른들도 아이들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꼭 닫혀 있는 자신의 분류체계를 다시 열어, 사물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

자연 탐구란 진정 법칙성으로의 입문 그 이상이어서는 안 되는 것일까? 결과를 강조하고 응용을 중심으로 하는 사고는 서양 자연과학에서 수많은 업적을 이루게 해주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이러한 성공적인 사고방식 안에도 제한과 '비현실화', 감소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준다. 아이들은 동시에 다양한 차원에서, 심미적이고 정서적으로 자연을 마주하려고 한다. 발끝으로 눈을 이리저리 밀어내는 세 살 난 아이는 단순히 눈과 진창에 대한 '지식'을 찾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무언가를 단순히 눈과 진창에 대한 '지식'을 찾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무언가를 찾는 그 움직임 자체를 즐기는지도 모른다. 아이는 핀셋으로 집어 눈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신체의 균형감각을 유지해주는 발을 이용해 조사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그날 아침에는 아빠에게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말해주면서 자기 행동을 '언어화', 즉 객관화시키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이는 왜 하늘의 구름이 땅으로 떨어지지 않는지 묻는다. 그리고 어른이 설명해주려고 애쓰는 것을 잠자코 듣는다. 그러고는 다시 구름을 보며 닮은 모양 찾기 놀이를 하려 한다. 이때 아이는 구름 모양을 아주 자세히 검토하고 가장 걸맞다고 생각하는 모양의 구름을 골라낸다.



일상의 물리와 화학: "그건 외울 필요가 없어요, 해봤으니까요."



아이들은 강렬한 감정을 찾는다: 탐구에 필요한 강렬한 감정

레바흐 가리타스 유치원의 젊은 두 선생님은 '제1회 자를란트 지역 유치원 교사들을 위한 국제 여름 아카데미: 자연탐구가인 아이들'(2003년 7월)에 참가했었다. 이제부터 선생님들의 경험을 들어보자.

"우리의 출발점은 물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물 만난 고기나 마찬가지죠! 이 더운 여름이라 더욱 그렇고요. 네 살 난 세브칸은 세탁실에서 물비누로 비눗방울을 만들자는 생각을 했어요. 이 아이는 아무런 도구도 쓰지 않고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을 문질러서 맨손으로 비눗방울을 만들어냈죠."

비눗방울이 자연과학과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우리는 장기적 계획을 세웠습니다. 더 걸쭉한 새로운 비누를 사용하면 손가락 사이에서 비눗방울이 어떻게 변할까? 이 비누로는 더 고운 거품이 생기고, 저 비누로는 성긴 거품이 생기죠. 작은 변화를 관찰하는 것은 매우 흥미진진합니다. 이를 통해 특정한 사고방식을 기르게 되죠. 우리가 실험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습관이 되죠. 바로 이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그것이 자연과학에서 의미하는 바는 뭔가요? 기초부터 차근차근 쌓아올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멋진 효과를 내는 실험을 보여주는 것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아요. 이런 실험은 효과를 빼면 남는 것이 없으니까요. 아이들은 대신에 자기 자신의 길을 가는 법을 배웁니다.

물놀이에서 자연과학의 수준으로 넘어가는 과도기는 언제인가요? 아이들 얼굴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얼굴에 아이들의 의문점이 드러나죠. 아이들은 '문질러-문질러-문질러'라고 단어에 멜로디를 넣어 노래를 부르기도 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지식이 머릿속에 자리 잡습니다. 아이들은 새로운 것을 관찰하면 그에 알맞은 새로운 단어를 찾습니다. 멜라니는 비눗방울에 색깔을 넣을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불꽃놀이 같아.' '아니야, 무지개 같아.' '그럼 무지개 불꽃이네!' 아이가 감탄하면 그 뒤에는 언제나 질문과 가설이 생겨납니다.

아이들이 혼자 탐구활동을 하게 놔둬도 되나요? 아이들이 포기하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 저희가 개입을 합니다. 질문을 끌어내려고 노력하기도 하죠. 그리고 아이들에게 실험을 하기 오래전부터 다음 단계가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아이들이 그게 뭐냐고 물어보면 저는 당연히 저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말라고 대답하죠. 대체로 하나의 문제에서 또 다른 문제가 생겨납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또 새로운 것을 시험해보고 싶어 하죠. 아이들 스스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자연탐구가 어린이'라는 새로운 관점이 유치원 밖을 보는 세계관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저는 어렸을 때 이미 화학 상자를 가지고 있었고, 언제나 자연과학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지금에서야 오래전 알고 있던 것들이 기억나기 시작했습니다. 기저귀에 든 흡수결정입자, 저도 어렸을 때 직접 인형을 가지고 이것을 실험해본 적이 있더군요. 최근에는 유치원을 벗어나도 아이들을 더 자세히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사소한 일에서도 아이들이 행동에 옮기기 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주의를 기울이죠. 청소할 때 같은 경우가 그런 예라고 할 수 있겠네요.



자연은 질문하는 언어로 대답한다



아이들은 더 이상 초보자가 아니에요

다음은 경험 많은 숲 속 유치원 교사들과의 대화다.



아이들이 숲 속 유치원에서 '자연과학으로 입문'하면서 얻는 것은 뭔가요? 우선 놀라움을 일깨워주려고 노력합니다. 물을 가지고 이야기해보죠. 물웅덩이의 물을 터줍니다. 물이 밖으로 흘러나오도록 만들어요. 그러면서 웅덩이의 크기를 늘리는 것입니다. 곧 둑이 생기겠죠. 그 전에는 달팽이를 보았습니다. 파울라가 '여기 봐요, 선생님! 달팽이가 거꾸로 앉아 있어요.' 하고 소리칩니다. 우리는 달팽이가 나뭇가지에 매달려 땅으로 떨어지지 않는 것을 보고 감탄했습니다. 그 나뭇가지는 한쪽은 젖어 있고, 다른 한쪽은 말라 있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 나무껍질의 구조가 다른 것일까?

바람을 살펴보죠. 우리 유치원 아이들은 더 이상 초보자가 아니에요. 바람이 불면 벌써 곧장 위를 쳐다보죠. 나무의 수관이 어느 쪽으로 휘어지는지 보기 위해서입니다. 이때 옆의 나뭇가지들은 아직 흔들리지 않고 서 있죠. 나무가 아직 바람에 흔들리지 않은 것입니다. 분명 여태까지 여러 번 봤지만, 계속해서 새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을 보며 느끼는 놀라움, 이것이 바로 관심을 더 깊고, 더 오래 지속시키는 전제 조건입니다. 멈춰 서고, 받아들이고, 느끼는 것이죠!

자연과의 이런 만남에서 생겨나는 질문도 있나요? 원인을 찾는 물음이요. 교사가 아이들에게 자극을 줘야 하죠. 요즘 아이들과 함께 연구하는 주제는 태양입니다. 어제 밤에 비가 아주 심하게 왔잖아요. 그런데 모든 것이 축축하게 젖어 있지만, 그 밖에 물을 볼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죠. 물은 다 어디로 갔을까? 여기에는 웅덩이가 있는데 왜 저쪽에는 웅덩이가 없을까? 여기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중입니다. 저나 아이들이나 이런 것들을 경험하는 방식에는 많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같은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질문을 하고는 그 답을 찾게 합니다. 뭔가 흥미로운 것을 찾게 되면 우리는 그 주변에 편하게 자리 잡고 함께 관찰합니다. 이렇게 함께 보내는 시간을 아이들은 이제 아주 자연스럽게 여깁니다.

놀라움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죠. 아이들도 평가할 줄 알잖아요. '저것은 꽤 훌륭한데' 하고 말이죠. 숲 속 세계는 내가 여기 있도록 허락해주고 있는 것이고, 저는 그것에 감사하죠. 제가 숲의 손님인 겁니다. 아이들이 그저께 공벌레 한 마리를 발견했죠. 그런데 이 벌레가 죽은 척을 하더라고요. 또 두꺼비 분비물은 왜가리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죠. 분비물을 내뿜으면 왜가리가 두꺼비를 물더라도 다시 뱉거든요. 그러면 살아남을 수 있는 거죠. 아이들은 이런 동물의 똑똑함을 알게 되고 보게 되며 자극을 받습니다. 아이들이 동물을 싫어하거나 무서워하는 경우요? 네, 가끔 거미를 보고는 아직도 그러기도 해요. 하지만 선생님이 동물들은 그냥 네 옆을 지나가려는 거라고 말해주죠. 여기에 사는 거라고요. 사실은 '우리'가 이 숲의 침입자라고 말이에요.

바람, 물, 날씨, 이런 것들은 우리가 숲에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거기에 자연현상이 있는 것이고, 우리 아이들은 곧장 그런 현상을 만날 수 있죠. 교사는 아이들이 사물을 더 깊이 파고들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요즘은 태양과 빛줄기가 우리의 주제입니다. 빛줄기가 어떻게 거울에서 그 방향을 바꾸는지를 연구하고 있죠. 실험을 통해 빛은 항상 일직선이라는 것을 알아내고, 아주 따뜻하다는 것을 느껴봅니다. 그리고 태양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를 생각해보죠. 아이들은 차츰 모든 것을 확실하게 인식하게 됩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요? '얘들아, 조금 큰 돌을 물에다 던져 봐. 작은 돌을 던졌을 때랑 무엇이 다르니?' 시험해보고 싶은 아이들의 마음에 저도 금방 전염이 됩니다. 저는 아이들이 관찰한 것을 말로 옮기도록 도와줍니다. 이런 과정이 경험을 넓혀주고, 더 정확하게 관찰하도록 만들죠. 아이들이 관심을 보이면 저 또한 더욱 관심을 갖게 되고, 이것이 바로 상호작용인 것입니다. 아이들은 더 이상 초보자가 아닙니다. 아이들 앞에서 교사는 더 많이 아는 선생님도 아니고, 생물학자도 아닙니다. 제가 학교에 다니기 전에 배웠던 것들을 떠올릴 뿐이죠. 그런 것이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아요. 그러면 이 지식을 아이들과 나눌 수 있게 된 것에 즐겁답니다.



세상을 더 낫게: 발명과 기술의 꿈



레오나르도 다빈치, 경험의 학생

다빈치는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역의 한 마을인 빈치에서 바람과 수공업을 가까이하며 자랐다. 그는 자기 자신을 '레오나르도 빈치, 경험의 학생'이라고 일컬었다. 그는 책은 한 권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한다. 대신에 그는 평생을 아이처럼 어떤 이론에도 구애받지 않고 정확하게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했다. 아이들이 그렇듯 그에게는 수학도, 운반도 모든 것이 느리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런 일상의 노고가 기계에 대한 그의 상상력의 원천이었다.

마치 아이처럼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피렌체에서 가장 높은 언덕인 몬테 체체리를 걸어 내려오지 않고 공중에 붕 떠서 날아 내려오고 싶었다. 한 마리 새처럼 세상을 다른 관점에서 보고 싶어 했다. 새의 날개를 연구하기 시작했을 때 다빈치의 나이는 이미 50세가 넘었다. 그러나 천재적인 과학자였던 그는 계속해서 정확히, 다시 한 번 정확히 아이의 시선으로 들여다보기를 멈추지 않았다. 다빈치가 더 정확히 들여다보는 방법은 스케치였다. 그의 기계장치 스케치는 1,000장이 넘게 남아 있다.

본떠서 만들어보고 재구성하면서 관찰 대상에 대한 지식은 쌓여간다. 수압에 관한 그의 어마어마한 지식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는 둑뿐만 아니라 수문, 운하, 펌프, 우물을 건설했다. 와인 분수가 달린 와인 우물까지 설계했다. 지도도 제작했는데, 그가 하늘에서 보고 그린 그림들은 단순한 '지도' 이상이었다.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본 주변 경치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매듭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소용돌이, 미로도 마찬가지였다.

1456년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네 살 되던 해 대형 태풍이 발생해 피스토이아에서 엠폴리까지 초토화되는 대재앙이 일어났다. 그 이후 소용돌이와 회오리(공기, 물, 머리카락)는 평생 그를 사로잡은 모티프가 되었다. "무(無)는 중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다빈치는 우연을 높이 평가했으며, 의식적으로 우연을 찾아다녔다. 직관을 체계적으로 발휘하기도 했는데, 그가 즐기던 도박에서뿐 아니라 시각적 어지러움을 발생시켜 이를 활용하기도 했다. 그가 사용한 방법은 스스로 최면에 빠져 광란적으로, 마치 어느 정도 미친 것처럼 '머리가 어지러운 상태'에서 '예언', 추측, 환각을 끌어내고 여기서 나온 말을 계속해서 크게 암송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고도 이동하게 된다. 함께 있지 않은 사람과도 이야기하게 된다. 말하지 않는 사람의 말도 듣게 될 것이다……." 그의 예언과 예상은 역학과 자연 관찰에 기반을 둔 것이다.

이러한 '기계의 꿈'에는 아이들도 가끔 사로잡힌다. 서로 이야기하다가 인간의 능력이나 로봇의 초자연적 능력에 대해 더 잘 묘사하려다 보면 어느새 황홀한 꿈에 빠지는 것이다. 아이들이 일단 이런 단계에 돌입하면, 부모들은 그저 아이들의 상상을 독려해주는 수밖에 없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