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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보다 열정이다

김원기 지음 | 한스미디어
스펙보다 열정이다

김원기 지음

한스미디어 / 2012년 6월 / 248쪽 / 14,000원





1장 내일을 향해 일어서다



수학 점수 7점 맞던 아이 겨우 고등학교에 가다

"이제 게임 그만하고 책 좀 봐라! 너 때문에 엄만 걱정되고 속상해서 죽겠다. 왜 이렇게 종일 게임만 하고 사는 거냐! 응?" 내가 중학생 때,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어머니에게 들었던 말이다. 당시 나는 한창 유행이던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에 푹 빠져 있었다. 나는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아침 8시까지 게임을 하다 학교에 가서는 온종일 친구들과 게임 얘기를 하며 보냈다. 방과 후에는 집으로 달려와 저녁밥도 굶고 새벽 1시까지 게임을 하다 잠이 들었다. 당시 '바람의 나라' 게임 유저는 1만 명이 넘었는데, 그중에서 난 랭킹 1위를 달리고 있었다. 공부는커녕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면서 게임에 빠져 있는 나를 부모님은 얼마나 마음 졸이며 바라보셨을지…… 그때는 잘 알지 못했다.

내 성적이 어느 정도였는지 기억나는 일화가 하나 있다. 2학년 1학기 중간고사가 끝나고 첫 수학 시간. 수학선생님께서 시흥중학교 역사상 절대로 깨지지 않는 신의 점수가 이번 중간고사 때 나왔다고 우리들 앞에서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수학선생님의 눈빛은 줄곧 나를 향하고 있었다. "2학년 1반 8번 김원기, 축하한다! 수학 점수 7점 맞았다. 7점! 혹시나 해서 과거 자료를 찾아보니 시흥중학교 역사상 수학 점수 100점 만점에 10점 아래로 받은 사람은 너밖에 없더구나. 오늘 죽을 각오는 되어 있겠지? 이리 나와!" 그날뿐만 아니라 시험 점수 때문에 고등학교 내내 엉덩이가 벌개지도록 매를 맞는 일이 잦았다. 하지만 그 후로도 내 수학점수는 졸업 때까지 잘해도 20점을 넘지 못했다.

고등학교 입시가 다가왔을 때, 담임선생님이신 조현혜 선생님은 그 누구보다도 나를 많이 걱정해주셨다. 당시 내 성적으로는 들어갈 수 있는 고등학교가 사실상 없었다. 고교 입시를 거의 포기하고 있을 때 담임선생님과 나는 안산에 있는 '실업계고등학교'에 원서를 넣어보기로 결정을 하였다. "원기야, 네 성적으로는 이 학교도 아슬아슬해. 알고는 있는 거지? 떨어져도 실망하면 안 된다. 선생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네가 합격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거야 선생님 믿지? 우리 희망을 갖자! 파이팅!" 공부도 못하고 게임 때문에 학교 선생님들에게 많이 혼났던 나였지만, 담임선생님만은 언제나 나를 믿어주시고 따듯하게 챙겨주셨다.

합격자 발표 당일, 선생님은 학교에 안 계셨다. 이유는 합격이 불확실했던 나를 어떻게든 합격시켜 보려고 그 학교에서 계속 상황을 지켜보고 계셨기 때문이었다. 나 때문에 업무도 보지 못하고 밖에서 고생하시는 선생님에게 진심으로 죄송했다. 선생님을 향한 죄송한 마음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한참을 기다린 끝에 5시가 넘어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원기야, 합격이다! 축하해!" 돌이켜보면 그 동안 많은 분들이 내게 큰 힘이 되어주셨다. 앞이 막막하고 길이 보이지 않을 때마다 손을 내밀어준 고마운 분들이 나에게는 참으로 많았다. 그중에서 조현혜 선생님은 내 인생의 첫 번째 은사셨다.

살기 위해 그리고 내 미래의 가족을 위해

어느덧 나는 고3이 되었다. 1학년 때부터 시작된 내 방황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더 심해지고 있었다. 매년 나 스스로가 '여기서 빠져 나와야 해! 이대로는 안 되겠어!'라는 생각을 수백 번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쉽게 유혹에 빠져들었다. 아버지는 이런 나를 혼내시기보다는 항상 따듯하게 대해주셨고 나를 설득시키려고 애쓰셨다. 어느 날 내 방에 들어와 나를 한 번 안아주고는 나가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유난히 힘이 없어 보였다.

이틀 후 아침, 학교를 가기 위해 집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한 무리의 사람들이 초인종을 연달아 누르고 대문을 두들겼다. 나는 순간 우리 집이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어머니가 각오를 하신 듯 대문을 열어 주었다. 그러자 사람들이 들이닥치더니 집안 여기저기에 '빨간 딱지'를 붙이기 시작했다. "김태형 씨? 법원에서 압류 영장을 가지고 왔습니다. 오늘부로 이 집에 있는 모든 물건을 압류 경고합니다. 일주일 안에 법원에서 제시한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물건을 압류할 겁니다. 감사합니다." 10분도 안 되어서 집안에 있는 모든 물건에 빨간 압류 딱지가 붙었다.

"미안해, 여보…… 미안하다, 원기야……." 지금까지 나는 단 한 번도 아버지의 그런 약한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 회사가 부도가 났다는 어머니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우리 집의 상황이 어떤지 알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은 결국 45평의 큰 집에서 나와 10평 옥탑방으로 옮겼다. 주어진 상황을 감당하기 힘드셨던 아버지는 매일 술로 시간을 보내셨다. 쌀이 떨어지자 어머니는 전자제품 제조 공장에 취직하셨다. 어머니는 매일 새벽 출근해 온종일 일하시다가 밤늦게 들어오셨지만 힘든 내색 하나 안 하시고 자식들에게만큼은 환하게 웃으시며 밥은 잘 챙겨 먹었냐고 물으셨다.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내 동생 역시 갑자기 어려워진 환경 때문에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한 축구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눈앞에 벌어진 이 모든 상황을 제대로 지켜보았다. 그리고 내 평생의 사명을 절절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만약 세상을 살아가면서 명예, 능력, 돈, 역량이 없으면 내 자신이 고통스러운 것은 둘째치고 내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사랑하는 미래의 와이프와 자식들이 나보다 더 고통스럽겠구나. 정말 지금 이 순간부터 죽도록 노력해야겠다. 살기 위해, 그리고 내 미래의 가족들을 위해서……." 이 사명을 머리에 새긴 고3 여름방학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나는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이것을 떠올렸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죽도록 최선을 다하는 내 열정은 이렇게 하루아침에 길바닥에 나앉아야 했던 이 시기부터 타오르기 시작했다.

바닥에서 올라가기 위한 몸부림

나는 조금이라도 집에 도움이 되기 위해 매일 저녁 6시부터 새벽 1시까지 고기뷔페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신 주항로 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예전과는 다르게 열심히 살려고 하는 나를 지켜보셨던 선생님이 내게 손을 내밀어주셨던 것이다. "집이 어려우니까 일을 해서 도움이 되는 것도 좋지만 사람은 공부할 시기가 있는 거야. 이 시기를 놓치면 나중에 공부하기가 정말 힘들어. 그러니까 선생님이랑 같이 공부하자, 원기야. 이제부터 새벽 6시까지 과사무실로 와라. 일단 네가 좋아하는 컴퓨터부터 시작해보자."

고3이 되어서야 인생 처음으로 공부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5개월간의 노력 끝에 컴퓨터 자격증을 7개나 취득할 수 있었고, 선생님의 추천으로 '컴퓨터 꿈나무 장학생'에 선정되기도 했다. 3학년 2학기, 담임선생님께서는 이제 학교 과목도 공부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하시고는 학과 공부를 가르쳐주셨다. 나는 너무나 고마워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2학기 중간고사에서 전교 3등을 차지했다.

선생님의 도움으로 대불대학교에 진학하다

3학년 2학기 중반, 수시 2학기 모집이 시작되자 많은 대학에서 우리 학교에 홍보를 하러 왔다. 그때 대불대학교를 홍보하시는 교수님께서 컴퓨터 자격증이 많이 있으면 '사범대 컴퓨터교육과'에 입학할 수 있다고 하셨다. 순간, 나도 모르게 귀가 번쩍했다. 나는 대불대학교 사이트에서 좀 더 자세히 알아보았다. 내 1학년, 2학년 학교 성적이 불안하기는 했지만 다른 부분들은 학교에서 원하는 조건에 안정적으로 다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아직 우리 집은 경제적으로 나아진 것이 전혀 없었고 동생은 고등학교까지 그만두고 힘들게 일을 하는 이 상황에서 내가 대학을 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가고 싶어 했던 사범대 컴퓨터교육과를 갈 수 있다는 희망이 보이자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주항로 선생님을 찾아가 내 고민을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합격되면 그때 가서 생각해도 늦지 않으니까 일단 원서를 내보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래서 나는 선생님의 말씀대로 대불대학교에 원서를 넣었고 결과는 놀랍게도 합격이었다.

그렇지만 너무 기뻐서 소리라도 지를 것 같았던 처음 생각과는 달리, 이내 걱정이 밀려왔다. 등록금과 입학금 그리고 기숙사 비용 모두 합쳐 500만 원이 넘었다. 이 금액은 우리 가족이 살고 있던 옥탑방 집의 보증금 액수와 비슷했다. 나는 대학교를 가야 할지 취업을 할지를 놓고 고민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 상황에서 내가 대학을 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고민 끝에 나는 취업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렇게 결정하자 속은 후련했지만 마음 한쪽에는 상처로 남을 듯했다.

마음을 정한 후 정확히 이틀이 지나서였다. 담임선생님께서 나를 과사무실로 부르셨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자리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선생님과 함께 계셨다. 왠지 모르게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오더니 이내 참을 수 없을 만큼 눈물이 쏟아졌다. 나의 합격 소식을 알고 계셨던 선생님은 대학교 등록 마감일이 다 될 때까지 내가 아무 말이 없자 안 되겠다 싶어 부모님을 학교로 모셔 상의를 했던 것이다. 그때 주항로 선생님은 내게 생각지도 못한 말씀을 하셨다. "선생님도 어려운 환경 때문에 실업계를 졸업하고 바로 직장을 다니다 뒤늦게 대학교에 들어갔단다. 그래서 아마 네 어려움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할 수 있단다. 원기야, 선생님이 네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니 부담 갖지 말고 받도록 해. 그리고 대학교에 들어가면 열심히 공부해서 선생님보다 훌륭한 선생님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사랑한다, 원기야." 선생님께서 500만 원이 넘는 내 학비를 대신 내주기로 하신 것이다! 나는 선생님께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수없이 되풀이했다.

2004년 2월 28일 토요일 수원역, 나는 대불대학교 기숙사로 가기 위해 목포행 기차에 올랐다. 기차를 타고 가는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평생의 사명감을 가졌던 그때 그 시간이 떠올랐다. 내가 아버지가 된다면, 내 아내와 자식들에게만큼은 절대로 경제적으로 힘들게 하지 않겠다. 그리고 평안과 행복이 넘치는 '아름다운 가정'을 만들겠다고 다시 한 번 새롭게 다짐했다. "나에게 주어진 이 모든 상황들…… 많이 힘들고 어렵겠지만, 반드시 이겨내고 말 거야. 반드시……."



2장 공부로 더 높은 세상을 두드리다



불가능할 것 같던 SKY에 붙다

대학교에 입학한 나는 매일 고시공부를 하는 것처럼 1분 1초를 아끼면서 공부에만 전념했고 방학 때는 학교식당에서 일했다. 그런데 대불대학교에서는 학생 수가 적어 과에서 1등을 해도 전액 장학금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학교 식당에서도 업체 사정상 더 이상 일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앞으로 학비와 생활비 때문에 고민하던 나는 담당교수님께 내 고민을 말씀드렸다. 그때 교수님께서 뜻밖의 말씀을 해주셨다. "원기야, 너 편입에 도전해볼 생각은 없니? 너를 2년 가까이 지켜보면서 네가 정말 이렇게 잘할 줄은 몰랐다. 사실은 기초 실력이 없어 힘들어하던 네가 얼마 못 가서 포기할 줄 알았다. 그런데 어디서 그런 열정이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너는 너 자신을 혁신했고 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넌 더 큰 꿈을 가지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성공을 위해 뼈를 깎는 노력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은 정말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이런 정신, 이런 모습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리더가 돼서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많은 고민 끝에 소위 명문대학교에 편입을 하기로 결정을 했다. 그리고 내 꿈 또한 변화를 주기로 했다. 아무나 꿀 수 없는 꿈, 세상을 변화시키는 '글로벌 리더'가 되겠다는 큰 꿈을 품었다. 2학년 2학기를 마치고 나는 학교에 휴학계를 내고 곧바로 편입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2007년 12월, 나는 총 5개의 명문대학인 고려대, 연세대, 성균관대, 중앙대, 서울시립대에 원서를 넣었다. 그리고 제일 먼저 고려대에 1차 합격했다. 하지만 1차 합격자 중에서 최종 합격자는 3명만 뽑았기 때문에 방심을 하면 2차 면접에서 떨어질 가능성이 컸다. 나는 차분하게 면접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이후 나머지 4개의 대학에서도 1차 합격 통보를 받았다.

새해 1월 18일, 고려대학교에서 면접시험을 치르고 나서 어찌나 후회가 됐는지 모른다. 100% 떨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많이 실망스러웠지만 열흘 후에 있을 연세대 면접에서는 정말 잘해야겠다는 각오로 고려대에서 면접실패의 원인을 하나씩 분석하고, 면접을 준비했다. 1월 28일, 연세대학교 면접시험이 있는 날, 나와 같이 면접시험을 본 두 명은 한양대학교와 중앙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학생이었다. 나는 내가 왠지 불리한 것 같아 긴장이 되어 다시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교수님께서 면접을 마무리하려고 할 때 즈음, 나는 100% 떨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여기서 이렇게 끝나면 엄청 후회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교수님에게 손을 들어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다고 말씀드렸다.

"교수님! 저는 학벌을 따기 위해 이 자리에 온 것이 절대 아닙니다. 여기 앉아계시는 훌륭한 교수님들에게 교육을 받고, 연세대에 다니고 있는 엘리트 학생들과 진검승부를 해서 더욱 강해지려고 이 학교에 편입을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옆에 계신 분들에 비해서 제가 많이 부족하고 배워야 할 것들이 너무너무 많지만, 저에게 연세대학교에서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면 정말로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해서 공부하겠습니다. 꼭 기회를 주십시오. 교수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을까? 이렇게라도 말을 하니 어느 정도 스스로 위안이 되었다. 나는 이번에도 100%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모든 학교에서의 면접이 끝나고 1주 후, 중앙대와 고려대에서 첫 번째로 최종 합격자를 발표했는데, 모두 불합격이었다. 많이 아쉽고 마음이 아팠다. 3일 후, 연세대학교에서 아침 9시부터 최종합격자를 발표하였다. 나는 떨어졌다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후 1시 30분쯤에야 확인을 했다. 그러나 합격자 발표 확인버튼을 클릭한 나는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4번이나 다시 확인했지만 합격이 분명했다.

6년이 지난 지금, 이때 상황을 돌이켜보면 내가 왜 합격을 했는지 아직까지도 정확하게 알지는 못한다. 어쩌면 교수님들께서 간절함을 담은 내 마지막 발언 때문에 마음이 흔들리시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내가 독자 여러분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실패가 눈앞에 보인다고 할지라도 완전히 실패하기 전까지는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열정과 간절함을 다해 최선을 다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후회를 조금이라도 덜 수 있다. 그리고 혹시 아는가? 나처럼 기적이 일어날지.



3장 스펙보다 열정이다



더 높은 수준으로 나를 혁신하다

연세대에 편입한 후 2과목만 들으며 처음 치른 중간고사는 다행스럽게도 중위권 이상의 성적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학업은 여전히 벅차고 힘들었다. 매일 18시간씩 공부해도 복습량은 계속 늘어났고, 과제도 여전히 밀리고 있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이런 상황은 내게 당연한 것이었다. 연세대 학생들의 대부분은 초등학교 때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고 들어온 학생들이었지만 나는 겨우 고3 때부터 공부를 시작했기 때문에 지금 버겁고 힘든 것이 당연했다. 이 학교에서 살아남으려면 다시 내게 큰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제일 첫 번째로, 나 스스로 지금 현재 연세대 재학생들과 수준 차이가 많이 난다는 것을 인정하려고 노력했다. 그러자 조금씩 나에게 주어진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 결과 나는 학업에 더욱 열정적으로 임하고,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악착같이 노력을 할 수 있었다.

두 번째로, 그동안 나는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많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혼자서 해결을 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연세대학교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매일매일 쏟아지는 엄청난 복습 내용과 과제, 8차 시험 등 1분 1초라도 아껴 공부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힘으로 풀기 힘든 문제가 있으면 같은 과 학생들에게 직접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기 시작했다. 이때 너무나 놀랐던 것이 대부분의 학생들이 자신이 공부하는 것처럼 열정적으로 내게 가르쳐주는 것이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역시 글로벌 마인드를 가진 친구들은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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