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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 정치적이다

박재희 지음 | 바다출판사
그 여자, 정치적이다

박재희 지음

바다출판사 / 2012년 6월 / 254쪽 / 13,800원





Part1 드러커보다 마키아벨리가 돼라



정치는 술수가 아니라 필수 역량이다

성공은 신화가 아니라 미신이다: 25년 전 나는 지금 대통령이 된 재벌그룹 회장의 비서였다. 그 시절 직장인이라면 모두 선망해 마지않던 사람의 비서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대한민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사람이자 샐러리맨 중에 제일 출세했다는 사람을 하필 첫 번째 상사로 만났다. 대한민국 월급쟁이 성공 신화의 첫 주인공을 하필이면 가장 순수하고 꿈 많던 시절에 최측근으로 만난 것은 행운이었을까? 말단 비서로 출발한 나는 영업기획, 총무인사, 물류, 홍보PR, 마케팅을 두루 경험했다.

능력이 고만고만하면 성실하고 부지런하기라도 해야 할 테지만 태생은 한량인데다 늦되기까지 했다. 눈치가 없어 업무에도 실수가 많았고 직장 생활을 오래할 타입이 아니라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기본기도 없으면서 무작정 큰일을 하고 싶다는 욕심은 있어서 스스로를 좌절시켰다. 확신 없고 의욕도 없이 그저 막막하고 불안한 시절은 길기만 했다. 그 당시 속칭 잘나가는 사람이 되기 위한 조건인 유학파도 아니었다. 여러 모로 능력도 자질도 부족했다. 과연 내가 직장 생활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의심하며 지내야 했던 시절이 길었다.

능력과 인맥 위에 놓인 사다리: 내가 그럴듯한 이력과 타이틀을 가지게 되자 사람들은 직장 생활의 노하우, 때로는 낯간지럽게도 성공의 비결 같은 것을 묻기 시작했다. 물론 내게 그런 노하우나 비결 따위는 없다. 어느 조직에나 사다리를 성큼성큼 오르는 사람들이 있지만, 나는 그들처럼 출세와 성공만을 거듭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부족한 밑천과 능력에 비하여 과분한 자리에 올랐으니 운이 좋았던 것은 분명하다. 성공한 사람들을 만나 보면 능력의 차이나 더 훌륭한 프로필 같은 특징으로는 그들의 승리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많은 성공한 사람들의 인맥과 네트워크도 성공 사다리의 비밀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한마디로는 도저히 표현하기 힘들지만 이기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사다리에 오르는 사람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 분명한 특징. 경쟁에서 뒤처지고 사라지는 이유는 각양각색이지만 성공 사다리를 오르는 사람들의 특징은 매우 명백하다. 감히 말하건대 그들은 모두가 제대로 정치적이다.

누구에게나 다른 사람들이 정치적이다: 정치력. 그것의 실체는 무엇일까? '정치적이다'라는 표현은 알고 보면 참 재미나다. 아첨이나 중상모략처럼 눈에 보이는 술수를 부리는 사람을 점잖게 에둘러 흉볼 때 쓰는 말인데, 실제로는 복잡한 상황을 조종하고 결국 원하는 것을 얻어 내는 승리자에게 주로 쓴다. 누구랄 것 없이 자기가 얼마나 실력이 뛰어난지 보여 주지 못해 안달이면서도 그놈의 정치력만은 '네가 가진 것', '내게는 없는 능력'이다. 게다가 그 미묘한 능력은 누가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달리 불린다. 네가 가진 것은 '정치적'인 것이고 내가 가진 것은 '탁월한 감각'이다. 정치든 감각이든 콕 집어 설명하기 힘든 그것의 본질은 이기는 힘, 경쟁력이다.

나는 지난 25년간 고만고만한 실력으로 별다른 재주도 없으면서 비교적 잘 살았다. 탁월한 능력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 중에 하필이면 내가 기회를 얻고, 웬일인지 내 편이 되어 준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그 반대의 상황은 또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 "운이 나빴어."라고 혼자 다독였지만 모두 그저 운이었다고 하기에는 이유 없는 행운도 불운도 없었다는 것을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알았다. 행운과 불운을 만들어 낸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사다리를 성큼성큼 오르게도 하고 갑자기 거꾸러트리기도 한다. 그것은 '소셜 센서빌리티', 즉 우리가 '정치적'이라 부르는 것이다.

드러커보다 마키아벨리가 통한다

생존 게임을 하는 생명체: 우리나라 회사들의 기본 틀은 피라미드다. 아직은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팀장-임원으로 짜인 구조로 소속과 명령체계가 확실한 편이다. 반면 외국회사에서는 이런 조직체계를 그리기란 거의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한 사람이 동시에 두 개 이상의 부문에 속하는 것이 기본이고, 그 외에도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직무팀에 유동적으로 속한다. 계층과 명령체계가 종횡으로 얽혀서 복잡한 그물처럼 보이는 매트릭스가 기본 형태이다. 하지만 명백한 위계가 드러나지 않는 시스템일 뿐 한국회사들에 비해 생각처럼 더 민주적이거나 자유롭지는 않다. 오히려 개인이나 조직의 역학구조를 알아내기 위해 조금 더 예민한 센서빌리티를 동원해야 할 필요가 있을 뿐이다. 위계보다는 직능과 기능에 의한 질서가 더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서 수평적인 문화의 외국회사가 더 민주적이고 자유로울 것이라고 짐작한다면 그것은 아주 커다란 오해다.

휴대폰이나 오디오를 구입하더라도 사용 매뉴얼을 읽어야 더 스마트한 사용자가 될 수 있다. 내가 속한 조직도 마찬가지다. 회사의 각 부문이 무슨 일을 하고 어떻게 연결되어 움직이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게임에 뛰어들기 전에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다. 기계는 일정한 규칙과 작동법에 맞춰 움직이지만 회사라는 생명체가 생존 게임을 하는 방식은 항상 바뀐다. 끊임없이 세포를 만들어 내고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세포는 없애며, 그물코 연결 방식도 그때그때 달라진다. 이것이 회사에서 하는 일에 사실상 정답이 없는 이유다. 생명체에게 생존은 절대목표다. 기업생명체에도 생존이라는 목표를 제외한 다른 목표는 얼마든지 상황에 따라 조정되거나 변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생존을 목표로 하는 생명체에서 그대 역시 생존 게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공자도 울고 갈 마키아벨리 충성: <공자>가 말한 충(忠)의 뜻은 가운데 중(中)과 마음 심(心)의 두 글자가 합쳐졌으니 마음의 중심을 잡고 흔들리지 않는 것이란다. 마음의 중심을 잡고 흔들리지 않아 도덕적으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고 그 판단을 행동으로 옮기라는 뜻이다. 공자의 충(忠)은 순종이 아니라 엄정한 도덕적 결단과 실행을 의미한다.

동양은 충효가 대표 사상이고 서양은 합리가 기본 정서라는 인식 때문에 한국회사는 직원에게 충성심을 강요하고 외국회사는 계약 조건이나 합리성을 강조한다고 생각한다. 이거야말로 정반대라고 할 정도로 큰 오해 중 하나다. 외국회사에서는 직원들이 자신에 대한 통제권을 가진 개인이나 조직에 충성심을 보이는 것을 아주 자연스러운 미덕으로 인식한다. 자기 역할과 업무 수행을 위한 충직성은 말할 것도 없고 개인적이고 사소한 친절과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상사나 조직에 어떻게 하면 관심과 애정을 보일 수 있는지 공개적으로 경쟁하는 정도다.

상사를 위해 운동경기, 연주회, 유명인사의 사인 등을 구하는 일은 사실 평범한 수준이다. 상사를 기쁘게 하려고 공동으로 기획하고 깜짝 이벤트를 준비하는 일은 꽤나 흔하다. 그들에게는 우리처럼 누군가에게 충성하려면 반드시 그 대상이 군자와 같이 훌륭한 사람이어야 한다거나 뭔가 공명정대해야 한다는 등의 엄숙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충성은 '임금이나 국가에 대하여 진정으로 우러나오는 정성'이다. 다국적 회사에서 '충성'이란 이 개념에 근거하되 매우 실용적인 해석이다. 자신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면 진정으로 정성이 우러나와야 정상이고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에 처음에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지만 지금은 내게도 당연하게 느껴진다. 충성을 다하기 위해 누가 누가 잘하나 경쟁하는 꼴이다. 서로 은폐하거나 손가락질하지 않고 칭찬하며 경쟁한다.

마키아벨리는 '인간이란 자기를 지켜 주지 않거나 바로잡을 힘이 없는 자에게는 충성을 바칠 수 없는 존재다.'라고 말했다. 다른 말로 하면 자기를 지킬 수 있거나 망칠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에게 충성을 바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고 옳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공자님께서 말씀하신 충성의 기준인 '도덕적으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의 판단'이 애초에 개입되지 않는다. 힘은 그 자체로 충성심의 무조건적 기준이다. 이런 마키아벨리식 충성심 앞에서는 공자도 울고 갈 판이다.

함께 밥 먹기보다 더 정치적인 것은 없다

아침, 점심, 저녁 끼니의 정치성: 일반적으로 회의 이후 식사라는 형식이 자연스러운 국내 기업과 달리 외국회사 특히 미국회사는 식사를 겸한 회의가 일반적이다. 이런 식사회의를 통해 상당 부분 정치적인 이해관계를 읽어 낼 수 있다. 내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적어도 이처럼 식사를 빙자한 자리만큼 정치적인 모임도 드물다. 일반적으로는 식사에 투입되는 시간과 정치적인 목적은 반비례한다.

점심시간이 되면 단체로 우르르 몰려 나가 함께 식사하는 풍경은 사실 다국적 기업에서는 보기 드문 장면이다.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은 얘기할 거리가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가령 회사 동료 두 사람이 함께 점심을 먹고 나오는 모습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뭐 드셨어요?"라고 음식에 의미를 두고 묻는 데 비해 외국 동료들은 "둘이 점심 먹었구나?"라고 확인한다. 이때 생략된 말은 "둘이 무슨 일을 함께하는군."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점심에 혼자 밥 먹는 것을 쑥스러워하는 반면 외국회사는 주로 혼자 샌드위치나 과일을 먹으며 자기 자리에서 개인적인 시간으로 쓰는 사람이 열에 아홉은 된다.

조찬회의는 정치적으로 오묘하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일대일로 만나서 전투에 돌입하기 전에 쌍방 합의나 전술 점검을 하는 가장 정치적인 의미가 큰 식사이다. 일반적으로 상하관계에서 구두 보고를 해야 할 때 역시 점심이나 저녁보다는 아침 시간을 이용한다. '긴급하게 확실히 해 두어야 할 사안'에 할애하는 시간이다. 아침 식사를 누구와 하는가는 회사에서 내부권력 관계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라면 늘 살피는 문제이다. 이 사실을 나는 정치백치로 사는 아주 오랫동안 잘 알지 못했다.

아침 파트너는 행운 오프너: 사람들의 관심사 중 하나는 아침을 누가 누구와 함께 하는가이다. "스티브가 박 과장한테 아침 같이 먹자고 했다더라.", "이 부장이랑 조찬을 하기로 했어."라는 말은 '둘이 작전 짜는 사이'라는 은유나 공감대를 기초로 하는 말이다. 특별한 약속 없는 다수의 사람들이 한 테이블에서 아침을 먹으며 두리번두리번 주변에 관심을 두는 것은 딱 한 가지, 누가 누구와 밥을 먹나를 보는 것이다. 분명 함께 밥을 먹는 일보다 더 정치적인 일은 없다.



Part2 소셜 센서빌리티, 그녀의 정치력 7P



올림픽 정신으로 연출하라 Performance

겸손은 고수들의 자세일 때만 미덕이 된다. 겸손이 당신의 미덕이 되려면 당신이 이미 모든 사람의 주목을 받는 존재여야 한다는 대전제가 있다. 끊임없이 몸과 마음을 쏟아 일해도 회사가 당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른다면 그때 가져야 할 자세는 겸손이 아니다. 이순신 장군도 아니면서 "나의 수고를 회사에 알리지 말라."는 태도는 버리길 바란다. 시대착오일 뿐 아니라 촌스럽다.

감동을 부르는 진지함: 진지하지 않으면 감동은 없다. 진지함을 견디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이 취하는 외부적인 태도는 "나는 경쟁에 이기고 지는 것에 관심 없어."다. "그냥 즐기면 되지"라면서 쿨한 입장을 취한다. 이 태도는 사실 비겁하다. 경쟁을 싫어하거나 진지한 것이 싫은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보이는 것이 싫은 것이기 때문에. 어쩌면 진지하게 노력하지 않아도 잘 한다는 자부심이 숨어 있었을지 모른다. 자기 재능과 실력에 대한 자부심과 더 나아가 오만함은 아닐까.

사람들은 최고들이 몰입하는 진지한 모습에서 감동한다. 열심히 연습했다고 실토하고, 숨을 못 쉴 만큼 긴장했음을 인정하는 자세야말로 감동코드가 어디서 작동하는지를 계산한 정치적으로 영리한 태도다. 진지함이 얼마나 감동적인지 알면서도 우리는 종종 경쟁에 임하면서 원래 뛰어난 사람으로 여겨지고 쉽게 이기고 싶다는 유혹에 빠진다. 경쟁에 쿨하면 마음의 평화는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의 평화가 경쟁의 목표가 아님을 기억한다면 차라리 '죽을 만큼 노력하는' 사람으로 보여라. 이것이 때론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제1조건이 된다. 정치적으로 영리한 사람들은 멋지게 보이는 대신 원하는 것을 얻는 데 집중한다. 여유 부리기는 경쟁의 기본정신이 아니다. 그리고 멋지지도 않다.

로마식으로 동맹하라 Partnership

파트너, 사랑하지 않아도 동거한다: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동료가 있었다. 나보다 3년쯤 늦게 입사한 A 차장이었다. 동종 업계의 경쟁사에서 근무하던 사람으로, 뛰어난 영업력으로 두각을 나타냈기 때문에 회사에서는 오랫동안 공들여 스카우트한 케이스였다. 그는 자기가 스카우트 당했다는 사실을 과시하고 자랑하고 싶어 안달이었다. 나와는 업무 영역이 달랐지만 긴밀하게 협조해야 하는 처지여서 처음에는 들어주는 척했다. "안 오려 했는데 연봉을 거의 두 배로 주겠다고 해서 거절할 수가 없더라고. 재희 씨도 여기서 3년쯤 되었으니 이제 어디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지? 요즘은 한 회사에 너무 오래 있으면 능력 없다는 뜻이야." 나이는 나보다 네 살이 많았지만 경력 연차도 같고 회사에서 직급도 같았는데 기본적으로 반말이었다. 게다가 꼬박꼬박 이름을 불렀다.

하루에도 몇 번씩 불쾌한 걸 참으며 이렇게 마음을 다잡았다. 일만 서로 잘 맞추면 된다고 자기최면도 걸어 봤지만 어느 날 더 이상 못 참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끝마다 진지하지 않게 대꾸하는 그 앞에서 몇 달간 쌓아 둔 감정이 폭발하면서 자제력을 잃은 것이다. 얼마나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는지 모른다. 그날 이후 그는 내게 박 차장님이라고 부르며 존대를 했지만 우리는 서로 마주치기가 싫어서 같은 사무실에서도 상대방 전화에 음성메시지를 남겨 얘기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동료 사이가 그 지경이니 업무 협조가 될 리 없었다. 둘이 삐걱거리다가 결국 공동으로 커다란 실수를 저지르게 되었다. 딱히 누가 잘못했다고 하기는 애매했지만 결과적으로 최종 실수는 내가 한 것이었다. 회사에 손해를 끼쳤으니 그만두겠다는 내게 A 차장은 말했다. "그럼 나도 그만둬야죠. 같은 편끼리 그런 무책임한 소리가 어디 있습니까?" 같은 편! 그의 말을 들으며 나는 A 차장과 내가 어떤 사이여야 하는지를 처음으로 깨달았다. 수습이 안 되면 공동책임을 지고 떠나자는 약속을 한 후 A 차장과 나는 꼬박 한 달을 함께 1년치 자료를 뒤지고 뛰어다녔다. 사람이 좋든 싫든 A 차장은 이미 내게는 최고의 업무 파트너였던 것이다. A 차장과 나에게는 공동의 목표가 있었고 일할 때만은 정말 죽이 잘 맞았다. 파트너는 그런 것이다. 공동으로 공과를 맡는 사람. 좋아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파트너를 꼭 좋아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날로 A 차장에 대한 내 불편함은 사라졌다.

파트너란 나랑 친한 사람,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파트너란 동일한 목표를 위해 서로 연합해야 할 상대이다. 당신은 잘 통하는 동료와 상사, 부하직원들을 둘 수도 있지만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든 말든 중요한 것은 서로가 파트너라는 사실이다. 파트너십 없이는 서로에게 손해를 안겨 줄 수밖에 없다. 그것이 우리가 파트너십을 가져야 하는 아주 현실적인 이유다. '누구만 없으면 좋겠어!' 너무 흔한 푸념이다. 누가 없어지지 않아서 회사를 그만둔다면 그것도 당신의 선택이니 말릴 수는 없다. 그런데 알아야 할 것이 하나 있으니 다른 회사에도 또 다른 미운 그 누가 있다는 점이다. 정치적으로 현명한 이들은 사랑하지 않아도 행복하고 평화롭게 동거한다.

존재하고 싶은 바를 결정하라 Perception

미리 만든 명함의 마법: 선입견만큼 조직 내 승진인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도 드물다. 회사에서 성과지표에 의한 인사고과만으로는 승진할 사람을 결정하기 힘든 경우가 일반적이다. 극명한 상하위 소수를 제외하면 실력이 비슷하고 연차도 차이가 없고 됨됨이마저 대동소이할 때가 대부분이다. 그럴 때 회사는 어떻게 할까? 날카롭고 세밀한 재평가로 선택할 거라고 추측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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