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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시간은 갈수록 내 편이다

하이힐과 고무장갑 지음 | 아름다운사람들
마흔, 시간은 갈수록 내 편이다

하이힐과 고무장갑 지음

아름다운사람들 / 2012년 3월 / 332쪽 / 13,800원





첫 번째 이야기 - 마흔, 엎드려 울었다



부럽거나 혹은 부끄럽거나_ 안토니아

마흔이 도둑고양이처럼 조용히 그리고 갑작스럽게, 내 앞에 다가왔다. 전문성과 성숙함, 단단한 배포로 무장한 채 흔들림 없는 자기 길을 갈 거라고 믿었던 마흔이란 나이. 하지만 나의 마흔은 달랐다. 스무 살의 어설프고 나약하고 이기적인 모습에선 별로 달라지지 않았고, 젊은 날의 당당함과 무모한 도전 정신은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린 어처구니없는 초라함. 내 나이 마흔에 만나리라 결코 예상하지 못했던 자괴감과 마주치고 말았다. 이런 착잡한 시기에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콧대 높던 시절의 옛 친구를 마주치게 된다면, 그 낭패스러움을 어찌 감당할까.

어차피 돈이나 잘나가는 남편을 목표로 삼은 적이 없으니, 그걸로 누구에게 자랑할 게 없다는 것은 그래도 괜찮은 편이다. 하지만 마흔 즈음에 이르렀을 때, 내가 택한 분야에서 인정받는 프로가 되고 싶었던 꿈, 그리고 후배들에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좋은 선배가 되겠다는 꿈 앞에선 부끄러워 빨개진 얼굴을 감출 자신이 없다. 마흔이 가까워질수록 치명적인 자존심이 걸린 두 가지 인생의 목표 앞에서, 보잘것없는 내 모습이 서글퍼 망연자실해지는 시간이 잦아졌다.

직장 생활을 시작한 스물네 살 이후, 어느 한 때도 느슨해진 적 없이 배우고 익히고, 실패를 딛고 다시 도전하면서 열심히 살아온 줄 알았는데, 나는 아직도 내 일에 서투르고 모르는 것투성이다. 새로운 과제 앞에서는 번번이 막막하고 두려움부터 생긴다. 경쟁의 법칙이 무한 속도를 내며 바뀌어 가니 안간힘을 쓰며 따라가고 있지만, 모르는 것을 티 내지 않고 은근슬쩍 따라가기엔 새로운 것을 익히는 속도가 이미 예전 같지 않다. ‘장(長)’ 자리 하나씩 차지하고 앉아 잔소리만 늘어놓으며 인건비만 축낸다고 흉보았던 노친네들의 모습에서 과연 내가 얼마나 다를 수 있을지 점점 자신이 없어진다.

일에서만 의욕을 잃은 것이 아니다. 조직은 자주 “넌 별것도 아닌 일에 너무 예민하고, 너무 심각하고, 지나치게 발끈한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내 눈엔 불합리며 변화의 대상인 사건과 사람들이 오히려 나를 점점 ‘고집스러운 여자’로 몰아세웠다. 게다가 상사에게는 입에 혀같이 구는 달콤한 부하가 되어야 하고, 부하에게는 서번트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샌드위치 신세가 처량하다는 느낌마저 들곤 한다. 이젠 더 이상 실무자가 아닌 관리자로서의 직장 생활만이 남아 있으니, 조직을 리드하는 그들의 문화에 불협화음을 내서도, 조직을 떠받드는 실무자들의 마음을 얻지 못해도 살아남을 수가 없다.

‘어쩌면, 이건 내게 주어진 소명이 아니었던 거야. 내가 잘 할 수 있고, 내 인생을 걸 만한 일은 다른 데 있는지도 몰라.’ 직장 생활이 점점 버겁게 느껴지더니, 16년이나 이 일을 해 오고선 이제 와서 이 길은 내 천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어쩌면 비겁하게 도망치려 하는 건지도 모른다. 이제 와서 잘 하지 못할 것 같으니까 핑계를 대는 건지도. 핑계를 댄들 마음이 편해지지도 않는다. 지금 자리에서 내가 빛나는 주연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도 아픈 일이지만, 나이 마흔에 여태 걸어온 길이 내 길이 아니었다는 때늦은 깨달음도 곤혹스럽긴 마찬가지니까.

나이 마흔. 어떤 분야에서건 이미 주연의 자리를 내놓아야 하는 나이다. 1980년대 90년대를 주름잡던 이승철과 이선희가 이제 멘토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영웅들의 탄생을 돕고 그들의 숨은 재능을 이끌어내듯, 마흔 이후부터는 후배를 양성하는 지도자의 길과 새로운 주연을 빛내는 조연의 역할을 담담히 인정해야 한다. 화려한 젊은 날을 보낸 그들조차도 이제 누군가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고 후반전의 역할을 받아들이자면 회한이 깊을진대, 화려하게 꽃 한 번 피운 적 없이 져야 하는 내 신세는 어디다 그 부끄럽고도 서글픈 마음을 풀어놓아야 할지 모르겠다. 열심히 살았다고 믿었기에 보잘것없는 내 모습이 더욱 가슴 아픈, 오늘도 마흔의 하루가 지나간다.

반짝반짝 두근두근 내 인생_ 줄리아

푹 꺼진 볼살과 칙칙한 피부, 얼굴의 반을 뒤덮은 다크서클 때문에 거울을 보면서 흠칫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쇼호스트에게 낚이는 줄 알면서도 수분 공급을 해 준다느니 얼굴에 광채가 나 도자기 피부가 된다는 화장품 소개에 감탄에 감탄을 하며 홈쇼핑 채널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그러다 다음번 판매가 언제 될지 알 수 없다는 소리에 그만 정신을 놔 버리고, 전화기를 들어 어느새 카드 번호를 꾹꾹 누르고 있다. 그럼 뭐하나. 아무리 처바르고 정성을 들여도 연예인 피부, 아니 100미터 미인 근처에도 어림없다. 역시나 문제는 화장품이 아닌 것을. 피부만 까칠해진 것이 아니라 성질도 까칠해졌다. 거슬리게 하는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겠다.

멋 부리기도 점점 버겁다. 7센티미터 이상의 하이힐 세상에서 두 발과 허리를 고문했더니 그만 허리가 망가져 눈물 쏙 빼는 치료를 받았다. 그 후 하이힐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되어 신발장 속에서 장식용이 됐다. 아! 꽃도 한 번 제대로 못 펴보고 이대로 시들어 가는구나. 멋 부리기야 그렇다 쳐도 마흔이 되니 당최 재미있는 것도, 맛있는 것도, 해보고 싶은 것도 없다.

자유, 활력, 긍정, 열정, 즐거움, 지금이 내 삶의 키워드였다. 나는 고무줄 뛰듯 통통거렸고, 호기심도 많았고, 사람이든 환경이든 새로운 것은 무엇이든 반가웠다. 화장을 전혀 하지 않아도 멋을 내지 않아도 예쁜 20대에 나는, 절세미인은 아니었지만 돋보였다. 그때는 예뻐서 돋보였던 것이 아니라, 항상 통통거리던 생기발랄함과 목젖이 보이도록 까르르르 웃어 넘어가는 유쾌함이, 항상 솔선수범 앞장섰던 적극성이, 여기저기 기웃거렸던 호기심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나를 반짝반짝 빛나게 했다. 마흔이 됐다고 내 기질이 불쑥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그만 세월과 나이를 탓하면서 반짝반짝 빛났던 나의 위대함을 세월에 고스란히 묻어 버렸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아름다울 수 있고 더 아름다워질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해 몸과 마음의 변화에 당황스럽기만 했다. 가끔 좋은 시절 다 지났다고 투덜대지만 나는 여전히 반짝반짝 빛나고, 두근두근 설레는 삶을 살고 싶다.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단지 잠자고 있는 내 기질을 다시 꺼내 보여 주면 되는 것이고, 자신감이란 놈을 무너지지 않게 꽉 잡아 두면 되는 것이다.



두 번째 이야기 - 이제, 나에게로 돌아갈 시간



살아온 날들이 살아갈 날들에게_ 달나무

40세 이후는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그 이전의 얼굴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적인 얼굴이고, 그 이후부터가 비로소 자신이 살아온 인생의 얼굴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 말을 되새기다 보면 나는 문득 두려워진다. 과연 나는 어떤 얼굴로 늙을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 내 엄마는 마흔 중반이었다. 나는 월급을 받으면 엄마에게 꼭 해 드리고 싶었던 것이 바로 화장품을 사 드리는 일이었다. 엄마는 화장을 하지도 않았지만, 해도 서툴렀다. 자신의 물건을 사는 것에 인색한 엄마를 위해 적어도 내가 돈을 버는 동안에는 엄마 화장대에 화장품은 떨어지지 않도록 하겠다고 결심했다. 아마 결혼하고 3, 4년 정도 친정 나들이가 종종 있을 때까지는 지켰던 것 같다. 하지만 내 아이를 낳고 내 살림이 손에 익자 친정 나들이도 뜸해졌다. 얼마 전 친정에 들렀을 때 엄마의 화장대에는 유통기한이 지난 것 같은 다 떨어져 가는 화장품이 엎어져 있었고, 엄마의 얼굴은 화장품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피곤함이 길게 새겨져 있었다.

이제 나는 마흔이 되었고, 동갑의 평범한 남자와 평범하게 결혼을 해서 아홉 살과 여섯 살 두 딸의 엄마로 살고 있다. 수다스럽고 변덕이 심한 두 딸아이의 앞에 엄마로서 앉아 있다 보면, 의식하지 않아도 저절로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엄마는 마흔 살의 나이에 이미 스무 살짜리 딸이 있었다. 엄마는 먹고살기 위해 바빴고, 우리를 먹이고 재우고 키우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생을 소진했다. 아이를 낳고 내가 엄마가 되자, 나는 순간순간 엄마를 떠올리며 그때 엄마는 이랬겠구나, 저랬겠구나 이해가 되었다. 그때마다 가슴 저리기도 하고 뜨거운 연민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화석처럼 굳어 가는 엄마의 늙은 얼굴을 떠올리면 고개가 저어졌다. 그런데 몇 년 전 무심코 쇼핑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무방비 상태의 내 모습을 남편의 카메라 속에서 발견했을 때, 나는 너무나 놀랐다. 내 사진에는 엄마의 피곤한 얼굴과 바라보는 것들에 대한 무감동함이 고스란히 겹쳐 있었다.

누구나 다 마흔이라는 나이가 가슴 절절하게 다가오고, 반드시 선명한 의미를 갖는 것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또 그 누군가에게는 마흔이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을 모조리 뒤흔들 정도로 큰 울림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나에게는 왜 마흔이 특별한가. 나는 왜 마흔에 얽매여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떠오르는 것이, 바로 내게는 ‘엄마의 얼굴’이었던 것이다.

최근 우연히 이남희의 『사십세』와 고종석의 『사십세』라는 소설을 동시에 읽었는데, 두 소설에는 공통점이 많다. 우선 마흔이라는 나이가 공통점이고, 두 번째는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부모와 자식 간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런데 어쩌자고 두 작가는 주인공을 특정 나이 마흔이 된 시점에서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되돌아보게 만들었을까? 마흔이라는 나이의 특성이 바로 그런 것일지 모른다. 전환점, 새로운 도약, 인생 2막, 많은 말들이 있지만 가족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부모와 나, 나와 내 자식들을 연결하는 ‘가교로서의 나’, 그것이 중년의 역할인 것이다.

‘그렇지만 난 두렵다. 내가 곧 사십 세가 되기 때문이다. 그 나이에 아버지가 나를 낳았고, 내가 아는 아버지는 사십 이후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사십세』, 고종석

솔바람처럼 가볍게 마흔을 지날 수 있다면 행운이다. 허나 ‘마흔앓이’를 끔찍이도 겪는 사람들은 아마도 나처럼 지나온 세월에 대한 빚을 가슴속에 주홍글씨처럼 새기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마흔은 내 앞과 뒤에 마주보게 붙은 두 개의 거울일지 모른다. 앞에 놓인 거울을 통해서 내 쓸쓸한 뒷모습을 보게 되고, 뒷모습을 통해서 내 얼굴을 확인하게 한다. 고통스럽지만 내 등에 붙은 엄마의 얼굴을 떼어 내고 커 가는 아이의 얼굴 속에서 내 얼굴을 확인해야 할 때, 그때가 바로 마흔이라는 나이 아닐까.

나에게로 돌아가는 시간_ 안토니아

아침 8시부터 시작된 정신없는 일과가 끝나고 어스름 퇴근할 시간이 되면, 워킹맘은 ‘이제부터 야근 시작’이란 비장한 각오로 바쁜 걸음을 총총 옮긴다. 현관문에 들어서자마자 총알같이 따따따다 달려온 아이들이 주렁주렁 양쪽 팔다리에 매달린다. 아이들은 내게 옷 갈아입고, 씻고, 밥 먹을 시간조차 주지 않고 졸졸 쫓아다니며 제 필요를 들어달라고 떼를 쓰곤 한다. 종일 남의 손에 애를 맡기는 워킹맘 특유의 죄책감은 피곤함에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도 아이들의 요구를 외면하기 힘든 법이다.

별의별 이유를 만들어 내며 안 자려고 용을 쓰는 아이들을 겨우 재우고 나면 10시. 꿀같이 달콤한 나만의 시간이 시작된다. 밤 10시부터 12시, 나에게 돌아가는 시간! 서른다섯 후반부터 생긴 허무, 불안, 갈증들이, 오로지 직장 생활과 아이들 돌보기에만 소진한 채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을 전혀 갖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자각에서 시작된 ‘두 시간의 자유’. 우여곡절 끝에 이젠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나는 이 금쪽같은 두 시간에 ‘그것을 하는 것만으로 마냥 즐거운 일’들로 채워 놓고, 종일 소진해 버린 에너지를 재충전한다. 그 시간에 뭘 하느냐를 묻는다면, 그리 특별할 것도 없다. 기질적으로 혼자 앉아서 뭔가를 끄적거리고 있는 것을 좋아하는 나의 에너지 충전 방법은, 그저 맘에 꽂히는 책을 읽고, 옮겨 적고, 떠오르는 단상들을 글로 적는 것이 고작이다. 그러나 이 단순한 일들이 한 걸음 한 걸음 쌓여 가면서, 내 인생도 조금씩 어제보다 나아지고 있음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처음 두 시간을 시작할 땐, 무너진 자신감을 회복하고 허무와 부정의 감정을 벗어던지는 것이 절실했다. 그래서 관련 책들을 읽는 한편 100일을 목표로 ‘긍정 일기’를 써 보았다. 아쉽게도 처음에는 60일이 조금 지났을 때 중단되었다. 회사에서의 갑작스런 조직과 역할 변화에 적응하느라 잠시 동안 두 시간의 ‘리추얼(Ritual)’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 뒤 비록 6개월이란 긴 시간이 걸렸지만, 나는 다시 리추얼의 시간을 되살려 냈다. 그리고 6개월 만에 다시 시작할 때는 쉽게 그만두지 않기 위한 장치를 고안하기로 했다. 두 번째에는 ‘글쓰기 강좌’와 함께 시작되었다. 6주간의 강의 기간 동안 일주일에 한 권의 필독서를 읽고, 리뷰와 에세이를 써내는 과정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야근, 회식이나 저녁 약속, 집안의 대소사, 독서와 글쓰기 숙제가 겹치기라도 하면 거의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무엇보다 칭얼거리면서 놀아달라는 애들을 밀쳐낼 때 드는 불편한 마음도 감당하기 쉽지 않았다. 심적 부담이 어찌나 컸는지 6주간의 과정이 끝나자 일종의 해방감마저 들었다. 어이없게도 내가 만든 그 장치 덕분에 나는 또 다시 2시간의 성소를 도망치듯 떠났다.

그러던 어느 날 TV로 인순이의 ‘거위의 꿈’을 무심코 듣게 된 순간, 갑자기 울음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눈물이 흐르는 게 아니라 목에서 꺽꺽 소리가 나며 어깨까지 들썩여지는 통곡이었다. ‘나 정말 이대로 살다 죽을 텐가?’ 한동안 멈추지 않는 눈물을 닦아내며, 긴 호흡의 숨 고르기를 몇 번이고 해야 했다. 한동안 접속하지 않았던 글쓰기 카페를 다시 방문한 것이 그쯤이다. 때마침 ‘공저 프로젝트’ 공지 글이 눈에 띄었다. ‘도전해야 한다’와 ‘지금 이게 가능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번갈아 점령했다. 며칠 후, 불현듯 강의를 듣던 6주간의 에너지가 떠올랐다. 그때의 숙제 글들도 다시 열어 보았다. 시도하지 않았으면 남아 있지 않았을 나의 생각들이 또렷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그 다음까지 가 보자고 나를 재촉하는 것 같았다. 그렇게 나의 두 시간이 다시 시작되었다.

처음 시작한 그때부터 이제 2년여의 시간이 흘러갔다. 요즘은 그 두 시간에 인문, 철학 공부를 하고 있다. 예전부터 논어가 마음을 끌더니만, 마흔에 읽는 논어는 아예 복음이다. 처한 상황이 저마다 다른 그날그날에 따라 이전엔 생각지도 못했던 깨달음이 다가올 때면, 벅찬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자연스레 글쓰기로 이어진다. 논어를 끝내면 내친 김에 맹자, 장자, 노자까지 다 읽어 볼 생각이다. 여전히 급작스럽게 바쁜 업무가 생기거나, 불가피한 회식, 저녁 약속들이 생긴다. 함께 놀고, 자기들을 돌봐 달라는 아이들의 끊임없는 욕구도 변함없다. 달라진 점은 내가 그 치열하고 빈틈없는 일상을 쪼개고 쪼개면서 결코 나의 두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쓴다는 점이다.



세 번째 이야기 - 그래, 내 인생이다



의미 있는 실험_ 하라

몇 달째 미용실에 가지 않고 있다. 새로이 머리한 사람들을 보면 ‘나도 좀 어떻게 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지만, 실행에 옮기지 않고 버티는 이유는 머리 손질에 드는 돈을 아끼기 위해서이다. 요즘 나는 돈을 최대한 적게 벌어도 살 수 있는 실험을 하려고 준비 중이다. 직접 운영하던 약국을 정리한 이후 월급쟁이 근무 약사로 일하면서 내게 수입이라는 것이 일당 혹은 주당, 그리고 혹은 월급이라도 일한 시간에 시간당 얼마를 곱한 것이 전부였다. 이렇게 일하다 보니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 일하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일한 시간이 돈이라는 계산 앞에 나는 얼마를 벌어야 할지, 그래서 얼마의 시간 동안 일해야 하는지 결정해야 했다. 그런데 과연 얼마를 벌어야 먹고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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