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입니다
정철 지음 | 바다출판사
노무현입니다
정철 지음
바다출판사 / 2012년 5월 / 248쪽 / 15,000원
사람이 있었다
2007. 06. 16 진해 공관_ 해군 진해 공관과 계룡대 휴양시설은 군부대 안에 있어 외부에 노출되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계룡대보다는 진해의 공관을 더 찾았다.
사람이 있었다.
작고
볼품없는
사람이 있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그가
봉우리에
오르고
싶다고
했다.
봉우리에 올라
야 호!
소리치고 싶다고 했다.
야 호 !
소리가 얼마나 넓게 퍼지는지
또
그 메아리는
얼마나 큰 소리로
되돌아오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왜
아무도 봉우리에
오르려 하지 않는지
야 호 !
소리치면
정말 하늘이 무너지기라도 하는지
그게 궁금해서
견딜 수 없다고 했다.
사람들은 말렸다.
그 작고
볼품없는 몰골로는
봉우리에 오르기 어렵다고 했다.
다시 내려올 것을
뭐하러 힘들게 올라가느냐고 했다.
이고 지고 가야 할 게 너무 많아
중턱에도 오르지 못하고
주저앉을 거라고 했다.
그는 말을
듣지 않았다.
아니,
그의 귀엔
사람들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봉우리가 어서 오라고,
어서 올라와서
더 큰 세상과 만나라고
연신 손짓을 하고 있었으니까.
사람들은 말리는 일을 포기했다.
그를
포기했다.
절반은
그를 무시했고
절반은 그에게 무관심했다.
혼자.
그는 봉우리를 향해
혼자
뚜 벅 뚜 벅
걷기 시작했다.
가방 하나 들지 않고
배낭 하나 매지 않고
그렇게 가볍게 길을 나섰다.
이고 지고 가야 할 것들
다 내려놓고 단어 하나만
손에 꽉 쥐고
봉우리를 향했다.
2005. 10. 15 외도_ 2박 3일로 진해 공관에 머물던 중 외도에서 술 한 잔 하고 상기된 얼굴로 손녀를 안고 내려오는 모습이다. 영락없는 촌사람이다.
그가
챙겨 들고 간 단어,
그것은
‘사람’이었다.
사람.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단어.
그것은
땀을 닦아 주는 수건이었고
길을 알려주는 나침반이었고
외로움을 치료해 주는 약이었다.
음악이었고
책이었고
응원의 편지였다.
그는
이 따뜻한 단어 하나만 꽉 붙들고 가면
충분하다고 했다.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길을 나섰다.
그렇게
자신 있게 길을 나섰다.
하지만
그의 뒷모습은 조금 외로워 보였다.
노랑나비 한 마리가
팔랑거리며 그를 따라 날았다.
세상을 향해 소리치다
벌써 겨울이었다.
이른 봄에 시작한 그의 여정은
한겨울에 끝났다.
봉우리.
사람들이 말렸던 봉우리.
결코 오를 수 없을 거라던
그 봉우리에 오른 것이다.
마침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우뚝 선 것이다.
노랑나비 한 마리가 주위를 부지런히 날아다니며
정상에 선 그를 축하했다.
봉우리에 오르기까지
겪었던 수많은 사연들이
봉우리 아래에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도 사연들을 내려다보았다.
사연들은 우리와의 시간을 잊지 말라 했고
그는 꼭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초심.
처음처럼.
한결같은 마음가짐.
2007. 11. 21_ 마지막 해외 순방을 기념하여 기내에서 그동안 순방한 나라에 초를 올려 장식한 케이크를 만들었다. 그런데 케이크를 만든 사람이 유럽인이라 유럽이 중앙에 배치되고 우리나라가 구석에 있다. 이런 케이크 모양에 수행원들은 당황했다.
그는
봉우리에 오를 때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외쳤다.
야호!
그의 외침은
맞은편 산을 가볍게 때리고
되돌아왔다.
야호!
야호!
야호!
메아리는 끊일 듯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2006. 11. 29 누리사업 성과보고회_ 목포대학교에서 열린 행사에 노사모 회원들에게 “감사합니다.” 하고 크게 외치는 모습이다.
그래 멋지게 잘 해냈어.
하지만 봉우리가 끝이 아니야.
이제부터 진짜 시작인 거야.
메아리는 그에게 축하와 숙제를
동시에 들러주었다.
다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두 손을 입가에 모으고
이번엔 이렇게 외쳤다.
사 람 !
두 번째 메아리.
되돌아온 소리는
조금 달랐다.
사람!
사는!
세상!
사람 사는 세상.
그랬다. 이것이었다.
그가 외치고 싶었던 것은
사람 사는 세상이었다.
이 한마디를 외치기 위해
사람이라는 단어 하나 꽉 움켜쥐고
봉우리에 오른 것이다.
원칙과 상식이 바로 선 세상.
원칙과 상식이 기득권을 허무는 세상.
이런 세상이 그가 전염시키고자 했던 세상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울었다.
울면서 합창을 했다.
뜨겁게 울면서 뜨겁게 기뻐했다.
그날, 마을은 온통 노란색으로 뒤덮였다.
벽을 만나다
한 차례의 메아리가
세상에 울려 퍼진 후
세상이 한바탕
노란색으로 물든 후
사람들은 더 이상
메아리를 들을 수 없었다.
벽이 가로막은 것이다.
벽이 메아리를 차단한 것이다.
벽.
사람의 반대말.
그것은 돈이었고 물질이었다.
권력이었고
신분이었고
차디찬 시멘트였다.
봉우리에 오를 때 만났던 기득권이었다.
벽은 높고 단단했고 두꺼웠다.
한 줌의 메아리도 통과시키지 않을 만큼
정교했고 치밀했다.
벽은 그들이 오랫동안 쌓아 온 질서를
흔드는 주범으로 그를 지목하고
그에게 온갖 비난을 쏟아 부었다.
시끄럽다.
신중하지 못하다.
겁이 없다.
편을 나눈다.
불안하다
격이 떨어진다.
봉우리에 우뚝 선 건방진 모습을 인정할 수 없다.
그들의 조직적인 비난은
그에게서 희망을 발견했던 사람들까지 흔들었다.
그에게 희망돼지를 보냈던 사람들마저
하나둘 돌아서기 시작했다.
오른쪽에서도 왼쪽에서도
저마다의 목소리로 그를 조롱하고 압박했다.
그는 점점 고립되어 갔고
그가 선 봉우리는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위태로웠다.
늘 그의 곁에 머물던 노랑나비 한 마리도
어지럽게 주위를 날다 멀리 한 점이 되어 버렸다.
피하지 않았다.
그는 벽을 보고도 피하지 않고 걸었고
벽에 부딪히면 일어나 다시 걸었다.
내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면
언젠가는 세상이 알아줄 거라는 믿음이었다.
믿음.
사람의 성분 중
가장 묵직한 성분.
그것이
그를 앞만 보고 뚜벅뚜벅 걷게 했다.
사람에 대한 믿음은 어떤 종교보다
더 크고 힘이 셌다.
그는 웅변했다.
벽은 반칙이라고 웅변했다.
반칙해서 이기는 건
이기는 게 아니라고 했다.
원칙과 상식이 손을 맞잡으면
벽을 허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호소했다.
마을이 달라도 싸우지 말자고 호소했다.
앞마을에서 콩이면 뒷마을에서도
콩이어야 한다고 했다.
지역이 조금 다르다고 서로를 헐뜯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부탁했다.
권위를 훌훌 털어 버리자고 부탁했다.
남의 주장을 누르지 말고 대화와 타협으로
소통하자고 했다.
그래야 사람을 껴안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명령했다.
팔짱을 풀고 한 걸음 앞으로 나오라고 명령했다.
누군가 대신 해줄 거라는 소극은 갖다 버리라고 했다.
깨어 있는 시민이 참여하여 조직된 힘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외쳤다.
평화를 양보해서는 안 된다고 외쳤다.
함부로 전쟁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지 말라고 외쳤다.
평화가 곧 경제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외쳤다.
이 모든 웅변과 호소의 부탁과 명령을
또박또박 소신 있게 외칠 수 있었던 힘은
역시 믿음이었다.
하지만
그의 믿음은 그렇게 컸지만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의 가슴이 사람들의 가슴에
완전하게 닿기 전에
봉우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어떤 이는 시간을 아쉬워했다.
그가 너무 빨리 봉우리에 올랐다고 했다.
10년만 늦게 올랐으면 참 좋았을 거라고 했다.
어떤 이는 자신을 나무랐다.
그를 봉우리에 올려놓고 모른 척했던
자신을 미워했다.
그를 다 받아들이지 않은 자신의 가슴을
주먹으로 쳤다.
그가 봉우리에서 내려오는 날.
세상은 여전히
사람 사는 세상과는 거리가 있었다.
2007. 01. 09_ 개헌 관련 특별담화를 발표하기 전 아침회의 모습이다. 이날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 4년 연임제, 대통령 임기와 국회의원 임기를 일치시키자는 요지의 ‘원포인트’ 개헌을 제안했다.
쓰러지다
충격이었다.
아픔이었다.
슬픔이었다.
그리고 충격과 아픔과 슬픔은
분노의 행렬로 이어졌다.
그가 쓰러진 마을은 국화로 뒤덮였고
국화 꽃잎 위로 눈물 같은 빗물이
뚝뚝 떨어졌다.
국화를 든 손 위로 빗물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의 영정 앞엔 술잔이 떠다녔고
향로에선 담배연기가 향처럼 피어올랐다.
누군가는 믿을 수 없다며 고개를 가로저었고
누군가는 피를 토하며 복수를 얘기했다.
그리고
모두가 울었다.
너는 왜 울고 있느냐.
나는 해 뜨기 전에 그를 세 번 부인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질까 두려워 울고 있습니다.
너는 왜 울고 있느냐.
나는 겉엔 노란 옷을 입고, 속엔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 창피해서
울고 있습니다.
너는 언제까지 울려 하느냐.
나는 내가 그에게 내뱉은
그 많은 욕들이 한 글자도 빠짐없이
내 귓구멍 속으로 다시 들어올 때까지
울겠습니다.
슬퍼하지 말라고 했지만
모두가 울었다.
미안해하지 말라고 했지만
모두가 미안해했다.
운명이라고 했지만
모두가 운명이 아니라고 고개 저었다.
죽음인가.
죽임인가
답은 그를 추모한 500만의 눈 속에 있었다.
1000만 개의 눈동자 속에 있었다.
눈물을 밀어내는 순간 언뜻 보였던 그 눈빛이
5월 그 새벽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증언해 주고 있었다.
한동안 그를 떠났던 노랑나비.
그 노랑나비가 다시 그를 찾아왔지만
비에 젖어 날지 못하고
마을 입구에서 파닥거리고 있었다.
다시 살아나다
그는 죽었는가?
죽지 않았다.
죽었지만 죽지 않았다.
영원히 사는 길을 갔으니
죽지 않았다.
짧게 지고 길게 이길 것인가.
짧게 이기고 길게 질 것인가.
몸을 던져
그 대답을 들려줬기에
죽지 않았다.
죽지 않았으니 과거형을
쓰지 말자.
나는 노무현을 사랑했다,
라고 하지 말자.
나는 노무현을 사랑한다,
라고 하자.
그리고
사람.
봉우리를 향할 때도
봉우리에서 내려올 때도
그가 손에 꽉 쥐고 있던 단어.
죽지 않았으니 그가 쥐고 있던
사람이라는 단어도 여전히 따뜻할 것이다.
그 단어가 껴안고 있던 일곱 가지 성분
역시 따스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