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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로 굴러! 우로 굴러!

김명환 지음 | 시그널북스
좌로 굴러! 우로 굴러!

김명환 지음

시그널북스 / 2012년 5월 / 224쪽 / 13,000원



chapter 01



스물두 살의 정글: 월남에 참전했을 때, 나는 스물두 살의 젊은 초급장교였다. 우리는 매일처럼 이어지는 수색과 매복으로 조금도 긴장의 끈을 늦추지 못하고 있었다. 언제나 낯선 편지처럼 전해지는 작전명령 전언 통신문, 그리고 소총과 탄약, 무전기와 식량과 기타의 지참물들을 수령하고, 서로의 안전을 눈빛으로 빌며 밀림으로 떠나는 일상의 생활을 반복하고 있었다. 밀림은 늘 두려운 존재였다. 입수한 정보를 바탕으로 정확하게 목표지점으로 가서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군인의 본분이라지만, 두려움 혹은 공포에 대한 압박감에서 해방될 수 있는 용기까지는 나라에서 보급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우리가 만들어 스스로에게 제공하고 공급해야 할 그 무엇이었다. 밀림에 도전하는 사람이 그때의 나뿐이겠는가. 대학에 입학했거나 졸업을 앞둔, 그리고 취업을 희망하는 젊은이들이 밀림의 초입에 서 있지 않은가. 이제 마음에 군기를 불어넣어야 한다. 느슨한 정신 상태로는 곤란하다. 우리의 목표는 밀림에서 살아 돌아오는 것이었다. 미국의 짐 스톡데일 장군도 입장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는 베트남전에서 포로가 되어 1965년부터 8년 동안 하노이 포로수용소에서 병사들과 함께 수감생활을 했다. 그는 수용소에서 가장 먼저 죽는 사람은 비관론자가 아니라, 근거 없는 낙관주의자들이었다고 말했다. 그들은 아무런 근거도 없이 크리스마스 때에는 풀려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자기 자신에게 희망을 불어넣으며 일종의 최면을 걸었다. 그러나 그것은 막연한 기대였을 뿐이다. 크리스마스가 되어도 풀려나지 못하면 그들은 크게 실망하고, 그 다음에는 추수감사절의 석방을 기대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낙관주의자들의 기대는 반복되었고, 끝내 극단적인 절망에 빠져 죽음에 이르렀다.

하지만 스톡데일 장군은 달랐다. 풀려난다는 희망을 가슴에 품되 빠른 시간 안에 석방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다. 무모하고 근거 없는 희망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희망에 맞게 생각하고 행동했던 것이다. 스톡데일 장군과 같은 생각을 하고 행동한 사람들은 수용소 생활을 잘 견뎌낼 수밖에 없다. 젊었던 그 시절의 나와 현실이라는 밀림 속에 도전하는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근거 없는 낙관이 아니라, 그처럼 현실을 냉혹하게 직시하는 합리적인 낙관이다.

인생의 밀림은 푸르고 깊다. 도처에 위험 요소가 내재되어 있지만, 동시에 기회의 땅이기도 하다. 무궁무진한 자원의 보고이자 원시의 생명, 태초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또한 바로 그것이 젊음이다. 밀림에서 보낸 나의 젊은 날의 초상은 지금은 조금씩 빛이 바래어가지만, 거기서 보낸 시간의 귀중함은 세월이 지날수록 보석처럼, 아침이슬처럼 반짝이고 있다. 아마 그 밀림의 의미를 망각하는 날이 바로 나의 죽음의 날이 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그런 확신은 나로 하여금 조금도 망설이지 않는 삶을 살게 하고 새로운 희망을 품게 한다. 그대들 역시 그대만의 밀림, 그 미지의 땅을 정복하고 극복하여 확 트인 바다로 힘껏 뛰어가기를. 그리고 밀림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스스로에게 일단 기합을 넣을 것! "희망을 품고 있는 자, 좌로 굴러! 우로 굴러!"

맞다, 태생부터 불공평하다: 솔직히 고백하자. 인생은, 그리고 삶은 애초에 불공평했다. 삶은 교과서처럼 정석이 절대 아니었다. 약간의 환경 탓을 가지고 모든 걸 매도하지 말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그 차이는 갈수록 확대가 된다. 처음 쏜 총알이 목표로 한 탄도를 벗어나면 최종의 탄착점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아는 사람은 안다. 나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내가 얼마나 선택을 받고 행복한 삶을 살았는지 말이다. 크게 유복한 집안은 아니었지만 먹을 것, 입을 것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남자로서 온실 속의 화초가 아닌, 들판의 야생초처럼 살아가겠다는 결심으로 해병대를 선택하게 되었고,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월남의 전쟁터까지 지원하여 참전했다. 그리고 돌아와 다시 대한민국의 군인으로서 젊음을 불태웠다. 축복받은 삶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병대 사령관을 마치고 일반사회 속에서 생활하며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진행해 오면서 그런 불합리가 조금씩 보였다. 이것은 사회에 대한 불만이 아니라, 사회가 가진 근원적인 문제였다. 그리고 나라가 해줄 수 없는 사각지대에 놓인, 손을 뻗칠 수 없는 형편에 처해 버린, 그런 문제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자 차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렇다, 사회는 이미 불공평했고 지금도 그렇다. 이대로 방치하다가는 그 골이 깊어져 모두가 난감한 경우가 생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평할 필요가 없다. 인정할 것은 순순히 인정하고 대안을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자가발전의 힘이 생긴다. 그 내재적 에너지를 함축하여 똑바로 미래를 내다보고 힘차게 뛰어야 한다. 인간 개개인은 불공평하게 태어난다. 스티브 잡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성인이 돼서야 자신이 입양된 사실을 알았다. 그가 나고 자란 서부는 미국에서도 소외지역이었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역할이 바뀌었다. 스티브 잡스의 창의력과 혁신도 따지고 보면 불공평한 태생이 영양분이었던 것이다.

비관하고 한탄만 하기에는 젊음의 시간이 너무나 짧다. 그리고 비관과 한탄의 시간만큼 젊음의 시간도 축소가 된다. 그토록 무용한 의미에 시간을 낭비할 것인가? 나의 시간표대로 걸어가는 것이 가장 정직하고 솔직한 정답에 가깝다. 그것이 가장 합리적이고 나답게 사는 길이다. 스티브 잡스는 스탠포드대학 졸업식 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만족하는 유일한 길은 위대한 일이라고 믿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위대한 일을 하는 유일한 방법은 여러분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런 일을 찾지 못했다면, 계속 찾아라.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때론 외로움이 힘을 발휘한다: 외로움과 싸워서 이기는 방법이 있을까? 세계 세라믹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일본의 교세라 그룹의 창업주 이나모리 가즈오는 사람들의 괄시와 스스로의 외로움에 정면으로 도전하여 일가를 이룬 인물이다. 그는 중학교 시험에서 두 번이나 떨어졌고, 대학입시에서도 실패를 맛보았다. 가까스로 지방대를 졸업한 뒤 취업을 한 곳도 법정관리에 들어간 회사였다. 이나모리는 도산 직전의 회사에서 세라믹을 접하고, 그것에 승부를 걸기로 마음을 먹었다. 연구실에 취사도구를 갖춰놓고 눈을 뜨면 출근, 눈을 감으면 퇴근인 세월을 보냈다. 회사의 연구실에 처박혀 외로움과 싸워야 했다. 마침내 텔레비전 브라운관의 전자총에 사용되는 절연용 세라믹 부품의 개발에 성공한 그는 위기에서 회사를 구했고, 교세라 그룹을 창업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는 말한다. "지금 바로 이 순간을 필사적으로 살아야 한다. 오늘을 완전히 살면 내일이 보인다."

조카의 소개로 명동에서 만난 아내는 첫눈에 반할 만큼 나에게는 예쁜 사람이었다. 그녀와의 진지한 만남이 거듭되면서 마음을 굳힌 나는 미8군 미식축구장 잔디밭, 그 푸르고 드넓은 곳에서 프러포즈를 했다. 그러나 돌아온 반응은 미지근했다. 흔쾌히 수락하는 것도 아니고, 간곡히 거절하는 것도 아니었다. 애가 탔다. 아내도 내가 마음에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아버지가 나를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에, 마냥 눈치를 보면서 고민만 하고 있었다. 그런 속앓이의 시간이 계속되었다. 나는 광주보병학교 고등군사반 교육을 거쳐 다시 백령도로 명령을 받으면서 그녀와 더욱 거리가 멀어지게 되었다. 그 시절에는 휴대폰도 없었다. 마을에 내려갈 일이 있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체국에 들러 시외전화를 통해 그녀와의 연락을 시도했다. 20~30분 기다려야 연결되는 시외전화를 신청하고 우체국 앞에서 망연히 바다를 바라보는 씁쓸한 한 사나이의 뒷모습은 과연 어땠을까?

그렇게 우리는 4년의 시간을 보냈다. 그 오랜 시간의 인내와 정성은 그녀의 아버지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는 데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동안 나는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외로웠지만 단지 사랑했으므로, 그리고 나를 믿고 그녀를 믿었으므로.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그렇게 아파야만 성숙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내면의 피가 철철 흐르는 자신과의 혹독한 전쟁을 치러내야만 비로소 청춘의 진정한 고민을 획득할 수가 있다. 나는 그 인내의 시간을 공부와 체력단련, 혹은 사색과 독서로 보냈다. 수도자의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혹독하게 외로움과 싸웠다. 그리고 이길 수 있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그 우체국이 언제나 그립다. 그곳은 내가 마음으로 다시 태어난 곳이다.

chapter 02



정보의 안테나를 높이 세워라: 전문가의 일은 전문가에게 맡기라는 무책임한 말은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한다. 최소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최소한의 법칙과 역학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세상에서 살 수 있는 자격이 있으며, 나의 행동 또한 예측할 수가 있다. 언제나 촉각을 곤두세우고 관심의 안테나를 높이 뻗어 지식의 바다를 유영하라. 배우고 익힌 것을 오래 숙성시켜 잘 지내다가 때가 되면 많은 이에게 나누어줄 수 있는 열린 마음의 홍길동이 되는 것도 즐거운 일일 것이다. 상상이 너무 지나치면 현실성이 떨어지지만, 이런 상상은 잠시도 나로 하여금 멈추어 서 있게 하지 않는다. 항상 자신으로 하여금 긴장하게 하고 앞과 뒤를 살피게 한다.

사람이 희망이고 체온이 에너지다: 영국의 전설적인 탐험가인 어니스트 섀클턴은 20세기를 대표하는 탐험가 중 한 명이다. 섀클턴은 1914년 인듀어런스호를 타고 남극탐사를 하던 중 빙하에 갇혀, 대원 27명과 634일 동안이나 사투를 벌이면서 전원 무사귀환의 기적을 이루어낸 인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3년여에 걸친 남극탐사 때 섀클턴은 남극점을 160킬로미터 남겨두고 기상악화 때문에 부득이하게 베이스캠프로 철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캠프로 돌아오는 과정은 추위와 굶주림과의 처절한 사투였다. 누구 하나 지치지 않고 배고프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섀클턴은 간식으로 허기를 달래기 위해 배낭을 뒤적이다가 문득 뒤를 돌아다보았다. 많은 대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잠시 생각에 잠긴 섀클턴은 비교적 젊은 대원인 프랭크 와일드에게 자신의 비스킷을 건넸다. "나는 아직 버틸 만하네." 와일드 역시 그 비스킷을 먹지 않았고, 그는 그날의 일기에 이렇게 썼다. "선장님이 건네준 이 비스킷은 그 어떤 돈을 준다고 해도 남에게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비스킷 속에 담긴 그의 희생정신과 사랑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한 조각 비스킷의 가치, 그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사람에 대한 신뢰의 증표였다. 그것이 "섀클턴의 리더십"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가족의 해체가 가속화되고 있다. 대개가 경제적인 문제 때문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돈의 위력을 절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니다. "그럼 당신은 무엇 때문에 그 험한 인생을 거침없이 살아왔는가. 경제적인 문제를 뛰어넘어 도달한 당신 지고의 가치는 무엇인가." 누군가가 이렇게 묻는다면,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고, 그것이 나는 가족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필요한 만큼의 돈만 추구하고 나머지는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정신적인 혁명이 필요하다. 물론 어려운 일이지만, 마음을 바꾸고 가치를 바꾸고 목표를 바꾸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첫 출발을 하는 젊은 청춘들에게는 너무 가혹하고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출발부터 돈을 목적으로 인생을 설계한다면 그것 또한 비인간적이다. 나의 이런 주장을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라고 치부한다면, 나는 아마도 영원한 아마추어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관계, 특히 가족관계에 있어 굳이 프로페셔널이 될 필요가 있을까. 순수할수록 실수가 많고 그 실수를 통해 조금씩 성장하고 공부하는 것이 사람이다. 그렇게 차근차근 세상의 계단을 밟아나가는 것이 진정한 인간의 길이 아닐까. 극한상황에서 섀클턴의 비스킷이나 부모님이 마련해 주신, 혹은 내가 피땀 흘려 번 돈으로 마련한 한 끼의 식사는 그 가치의 등가성에 있어서는 동일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만 과정의 차이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문제다. 모두를 가족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말한다면, 세상은 정말 아름다울 것이다. 같이 밥을 먹을 만큼 가까운 사람을 많이 만드는 것이 사람의 세상살이다.

chapter 03



주먹 쥐고 일어섯!: 해병대 사령관으로 취임을 하여 기자간담회를 할 때의 일이다. 한 기자가 나의 평소 철학에 대해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지체하지 않고 주먹을 불끈 쥐며 대답할 준비를 했다. 질문을 한 기자가 약간 당황한 표정을 짓는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역시 해병대군, 고작 한다는 게 주먹질 자랑이야?' 그런 표정이었다. 나는 주먹을 풀고 입가에 미소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손가락 하나는 꺾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손가락을 모아 주먹을 쥐면 그 힘은 가공할 만한 위력을 지니게 됩니다. 손가락 하나하나가 국민 개개인이고 우리 군인들이라고 합시다. 그들 각자의 특징과 장점을 모두 결집하여 주먹으로 만들어낸다면, 거기에서 국민적 에너지가 몇 배로 팽창되어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단순한 원리를 설명하고자 단지 주먹을 쥐었을 뿐인데, 질문하신 기자께서 조금 놀라신 모양입니다." 기자실이 한바탕 웃음으로 잠시 소란스러웠다. 분위기는 금방 화기애애해졌다.

나는 장병들에게 정신훈화를 할 때 "주먹 철학"을 강조해왔다. 군이라는 조직에서 사령관이라는 손가락, 그를 보필하는 분야별 참모라는 손가락, 각 지역을 책임지고 있는 예하지휘관이라는 손가락, 그리고 병영생활 전반의 어머니 역할을 하는 부사관이라는 손가락, 또한 조직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병사(해병대에서는 해병대원)라는 손가락, 이 다섯 손가락이 화합과 단결로 하나가 될 때, 더욱 강한 주먹이 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서로가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존재임을 알고 상호 존중하고, 사랑으로 화합 단결하자는 의미도 포함된 것이었다. 기업이라고 예외일 것인가.

문제는 단합이다.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에너지를 결합시킬 것인가? 인간은 가능성의 대명사다. 젊은이들은 물론 모든 사람들이 이런 사실을 자명하게 깨닫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희망이 있고 발전이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걱정만 하는 것보다 무엇이라도 행동으로 옮기는 게 더 낫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바로 적기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신념을 믿고 일어서라. 주먹을 불끈 쥐고서.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 오늘의 쓰디쓴 경험, 좌절과 패배는 또 다른 에너지로 승화가 될 수 있다. 우리에게는 그런 믿음이 필요하다. 지금 당장 말이다. 포기는 죽음이다. 죽음과 포기를 생각하는 그 순간의 에너지를 바탕으로 희망을, 용기를 내 삶의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 나를 자극하여 나로 하여금 내부의 혁명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1883년, 설계사 존 뢰블링과 장래가 촉망되는 그의 아들 워싱턴 뢰블링은 맨해튼과 브루클린을 잇는 거대한 대교설계에 의욕적으로 착수했다. 전례가 없는 일이었기에 사람들은 반신반의했다. 그만큼 어려운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건축 전문가들은 일찌감치 포기하라며 두 사람을 설득했다. 그러나 뢰블링 부자는 대교를 건설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공사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장에서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그 사고로 아버지 존 뢰블링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고, 아들 워싱턴은 심각한 혼수상태에 빠졌다. 몇 주일이 지나서야 의식은 회복했지만, 움직이고 말하는 능력을 상실했다. 그래서 모두를 끝났다고 포기하려고 했다. 하지만 워싱턴은 포기하지 않았다.

병상에 누워있기를 여러 날, 그는 비로소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그의 몸에서 유일하게 자의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손가락 하나가 그 답이었다. 그는 그 손가락으로 아내의 팔을 두드려 신호를 보내 자신의 설계도를 대교 건설팀의 설계사들에게 전달하게 했다. 이후 13년 동안 워싱턴 뢰블링은 오로지 손가락 하나로 지시사항을 전달하며 작업을 진행해 나갔다. 그의 아내 에밀리가 공사현장 감독을 맡아 그의 수족 노릇은 물론 비서 역할까지 완벽하게 진행했다. 그런 각고의 노력 끝에 마침내 브루클린 대교가 완성되었다. 브루클린 대교 개통식이 있던 날, 침대에 누워 TV로 중계를 시청하던 워싱턴은 뉴욕 쪽에서 출발한 체스터 아더 대통령이 브루클린 쪽에 서 있는 아내를 만나 악수를 청하는 장면에서 뜨거운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맨해튼과 브루클린을 잇는 총길이 27킬로미터, 높이 1,796미터의 브루클린 대교는 '19세기 건축공학의 진정한 기적'이라 불리고 있다. 이 기적을 만들어 낸 것은 바로 워싱턴 뢰블링의 포기하지 않는 정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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