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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마라, 이것도 내 인생이다

오동명 지음 | 좋은날들
울지마라, 이것도 내 인생이다

오동명 지음

좋은날들 / 2012년 3월 / 256쪽 / 12,800원



부끄러워야 부끄럽지 않을 수 있다



나를 방치하게 만드는 중심화 현상

'중심화 현상'이란 어떤 상황의 한쪽 면에만 초점을 맞추고 다른 면은 고려하지 않거나 못함으로써 비이성적, 비논리적으로 추론하고 행동하는 것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특별히 눈에 띄거나 흥미로운 자극에만 빠져드는 경향 등이 그렇습니다. 유행 좇아가기나 군중심리에 휩쓸리는 일도 중심화 현상의 하나입니다. 자기의지를 버린 중심화 현상은 '나'를 방치하게 만듭니다. 나는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하고 말입니다. 정작 내 삶을 망치는 것은 환경이 아니라 '나는 불운아다'라고 믿는 마음에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시절, 나는 소중한 젊음을 허망하게 보내고 말 뻔했습니다.

나를 포기할 즈음 손에 들게 된 카메라는 다행히 한 대학에의 못나빠진 천착은 덜어내 주었지만 형태만 바뀌었을 뿐 여느 중심화 현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답답하고 암울해하던 현실을 잠시 잊을 수 있었으니 현실도피의 도구가 되었을 뿐이었지요. 나는 현실에 만족할 수 없었던 만큼이나 더더욱 카메라에 빠져들었습니다. 대학 시절, 우연히 한 장의 흑백사진을 보았습니다. 레너드 프리드의 사진집 《Black in white》에 실린 사진으로, 1960년대 독일 베를린 장벽 앞에 서 있는 흑인 미군 병사를 찍은 것입니다. 사진만 보면 평범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베를린 장벽을 배경으로 한 기념사진일 뿐이잖아?' 이렇게 생각하며 스쳐 지나칠 찰나였습니다. 문득 사진 옆에 있는 짧은 영문 글(캡션)을 읽는 순간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부끄러웠고 창피했던 거지요.

우리, 그와 나는 둘 다 미국인이다. 우리는 말없이 조용히 만났다. 우리 둘 사이에는 그의 뒤에 있는 장벽처럼 치명적인 또 다른 벽이 놓여 있다. 우리가 만나는 세계 어느 곳에서나 우리를 가르는 벽이 있으니, 바로 나는 백인이요 그는 흑인이다.

이 사진을 찍은 레너드 프리드는 사진에는 보이지 않는 숨겨진 현실을 글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흑인 병사만을 찍었지만 사진 밖에서 흑백이 대립되는 세상을 풍자했습니다. 사진 옆의 짧은 글은 또 하나의 '현실'입니다. 숨겨진 현실의 직시였고 이의 함축입니다. 나는 이 한 장의 사진을 통해, 사진은 사실의 기록이지만 그것이 언제나 진실일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카메라를 들이대기 전에 대상에 대한 적확한 지식과, 보이는 대로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비판적인 사고를 갖추고자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그 같은 노력은 나의 부끄러운 자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일회성 부끄러움으로 끝났다면 자각으로 이어지지 못할 감상에 그치고 말았을 것입니다.

부끄러움의 자각이 삶을 바꾼다

예전에 신문사 사진기자로 있을 때에도 참 부끄러운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 부끄러움은 언론이라는 거대 집단에서 개인인 나의 한계를 절감케 하고 자괴감에 빠뜨렸습니다. 가장 가까운 현장에서 본 것과는 다른 기사들로 인해 거짓 기사의 들러리 사진을 바친 공범 꼴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많은 봉급과 '00일보 기자'라는 작은 명함 하나에 귀 딱 막고 자리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나는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하는 상황에서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면서도 그것이 왜 부끄러운지 몰랐습니다. 마찬가지로 정작, 부끄러워해야 할 때 내면의 외침을 애써 모른 척하며 주어진 현실에 안주했습니다. 이후 부끄러움이 더욱 깊어져서야 초년 시절의 다짐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마침 다니던 신문사의 사주가 개인 비리 혐의로 검찰에 출두할 때 나의 부끄러움은 극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나는 동료이자 선배이자 후배인 기자들이 "사장님, 힘내세요!" 하는 소리를 취재 마감을 위해 회사로 들어가던 차량의 라디오에서 들었습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오늘은 운이 좋았지만 내일 나도 그 자리에서 그들처럼 똑같은 소리를 지르고 있을지 모른다.'

그날 나는 '언론탄압이라고 주장만 하기에 앞서'라는 제목의 대자보 한 장의 글로 기자 생활을 마무리하며 사회 공범의 부끄러운 짓을 청산할 수 있었습니다. 부끄러워할 수 있었던 덕에 더 이상 부끄럽지 않은 삶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지요. 나이 마흔셋, 이 나이가 되어서야 나는 비로소 난생처음 자립을 시도했습니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도망가지 않는다



삶은 지금이라는 궤적의 합이다

삶의 행적은 '지금'이라는 궤적의 총합입니다. 지금이 모이고 쌓여 지나간 발자취, 행적을 만듭니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지금의 소중함을 잘 모릅니다. 결과에 들뜨고 과거에 사로잡혀 지금을 흘려보내기 일쑤입니다. 남이 이룬 성과에만 마음을 빼앗겨 성공이라는 그들의 결과물에 감탄하고 부러워합니다. 그 겉모습만을 따라 하려고 안달이 납니다. 역경을 이겨내고 실패를 극복한 몇몇 이야기에 취해 결과의 번지르르한 과일만을 발췌하여 기억에 담아둡니다.

무언가를 이루고자 마음을 먹었다면 지금에 충실해야 합니다. 좀 더 나은 삶을 바란다면 그 단면인 지금을 돌아봐야 합니다. 지금이란 단어에는 우선 내가 들어 있습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나의 역할이 들어 있고,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지를 가늠하는 나의 책임이 들어 있습니다. '지나간 지금'을 수시로 평가하는 것 또한 나의 몫입니다. 누구에게나 지금은 어렵고 힘듭니다. 하지만 꿈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면, 스스로 지금에 부딪히는 노력과 그 고달픔을 마다하지 않아야 합니다. 미래를 꿈꾸는 사람에게 쉬운 지금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내 인생의 무늬가 지닌 가치

서머싯 몸의 소설 『인간의 굴레』의 주인공 필립은 인생을 '양탄자에 수 놓인 무늬'로 이해했습니다. 그 무늬를 모방만 했는지, 남의 것을 훔쳐왔는지, 남을 시켜 만들었는지, 한편으론 보잘것없다손 치더라도 스스로 짰는지 자문했고, 이윽고 자기 스스로 짜는 것에 삶의 의미를 두게 되었습니다. 이왕이면 아름다운 무늬를 짤 수 있으면 좋겠지만, 남이 짜놓은 아름다운 무늬와 내가 손수 짠 추한 무늬는 비교부터가 불가합니다. 남의 무늬는 돈을 주고 사면 그뿐이지만, 내 것에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무엇이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그것이 추해 보인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동물은 등산을 즐기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떤 사물이든 그 사물의 완전한 상태가 있다고 봤습니다. 즉 가장 연필다운 연필, 가장 개다운 개, 가장 사람다운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가장 나다운 나도 이에 해당되겠지요. 여기에 도덕성이 보태지면 사람다움을 이룬 덕 있는 자가 됩니다. 그리고 그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운동을 하는데, 이 운동은 '엔텔레케이아entelecheia'를 이루기 위해 움직인다고 했습니다. 엔텔레케이아는 목적을 달성하여 완전한 상태에 있는 것, 즉 '완전현실태'를 의미합니다. 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식물의 부분(몸, 육체의 유지)과 동물의 부분(감각기능)에 제3의 부분으로 영혼의 부분이 있으며, 이 세 가지가 조화롭게 합쳐질 때 비로소 가장 사람다운 사람이 된다고 보았습니다. 동시에 인간은 스스로를 가장 완전한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산다고 했습니다.

나는 이것을 간단히 '지금에 충실하라'로 이해합니다. 쫓겨서 살지 않고, 크게 욕심 내지 않고, 하고 싶은 일들을 뒤로 무작정 미루지 않는 것입니다. 이루지 못한 꿈에 얽매여 하루하루 심각해지기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것, 작지만 소중한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며 지금 있는 자리에서 이 순간을 살고자 노력합니다. 이게 사람과 동물의 차이가 아닐까요? 동물은 등산을 하지 않습니다. 먹이를 구하는 일 외에 일부러 높은 산을 오르는 수고로움을 견디지 못합니다. 수고가 가져오는 즐거움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온 힘을 다해 사랑하라



엄마가 아이를 낳고 젖을 먹이는 동안 분비되는 호르몬을 옥시토신이라고 합니다. 이 호르몬은 출산 과정에서 진통을 자극하기 때문에 그리스어로 '빠른 출산'이란 뜻의 옥시토신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옥시토신은 분만 시 출산을 유도하기도 하지만 젖을 물릴 때도 분비됩니다. 이로써 아이를 위해 평생 희생하고자 하는 엄마의 마음이 더욱 커집니다. 그런데 마사지 같은 스킨십으로도 이 호르몬이 분비된다고 합니다. 옥시토신은 사랑의 호르몬인 것이지요. 이렇듯 몸은 사랑을 하면 반응하게 됩니다. 더 신기한 것은 이 호르몬이 신뢰감도 높여준다는 것입니다.

가장 뜨거운 열정은 순수에서 비롯된다

강의실에서 선생인 나는 제자들에게 사랑의 모델을 들려주곤 합니다. 『섬』의 작가인 장 그르니에와 그의 제자 알베르 카뮈가 나눈 편지이야기입니다. 가정은 불우하지만 재능과 열정을 갖춘 제자에게 선생이 먼저 편지를 씁니다. 이 편지 왕래는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는 동안에도 계속됩니다. 카뮈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죽기 사흘 전에도 변함없이 그르니에는 카뮈에게 편지를 띄웁니다.

자네에게 이 편지를 보내며 새해를 시작하네. 자네의 편지는 대단히 감동적이었네. (중략) 자네가 내게 신세 진 적이 있다면 그것은 단지 자네가 날 알게 되었던 그 시기가 자네에게는 대단히 어렸을 때였기 때문, 바로 그것밖에 없다네. 나와의 견해 차이조차 자네에 대한 깊은 우정을 막지는 못했네. 자네가 고독과 침묵 속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다니 기쁘네. 그게 가장 확실한 행복 아니겠나.

1960년 1월 1일에 쓴 이 편지를 카뮈는 받지 못했습니다. 사흘 후에 교통사고로 사망했기 때문입니다. 편지 내용, 아주 평범하지요? 이러한 편지를 30여 년간 선생과 제자가 주고받았답니다. 작가 카뮈를 더욱 생생하게 기억하게 해주는 이 편지에서 선생이 제자에게 내민 손은 우정, 달리 말하면 순수한 사랑이었습니다.

사랑에는 표현의 기술이 필요하다

나는 아들과 편지를 주고받습니다. 5대 1 비율로 내가 다섯 번 보내면 아들이 한 번이나 보낼까? 장 그르니에도 그랬습니다. 카뮈보다 먼저 편지를 써서 보냈고 그 횟수도 선생인 그르니에가 훨씬 많습니다. 나는 성년을 맞은 해에 아들에게 두 가지를 약속하자 했고 아들도 흔쾌히 동의했습니다. 그 하나가 평생토록 1년에 한 번, 1박 2일 이상 아들과 아빠가 여행 함께하기입니다. 또 하나의 약속은 역시 평생토록, 아빠에게 십일조를 내는 것입니다. 아들이 돈을 벌게 되면 그 수입의 10분의 1을 자신을 키워준 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 내놓기로 한 것이지요. 이 두 가지 약속은 꼭 지킬 거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곧 예순인데 아빠는 두 가지 연금을 받게 되네. 국민연금과 아들 연금! 하하하. 이런 부자 아빠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이처럼 자식과 부모 간의 사랑에도 표현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게 좋습니다. 퍼주기만 하는 내리사랑만이 사랑은 아닙니다. 가족 간에도 신뢰의 사랑은 더욱더 소중합니다. 이 두 가지 약속 이후, 50대 중반의 나는 내 역할에 더욱 충실해지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빠다운 아빠이고 싶은 걸 넘어 사람다운 사람이고 싶은 것이지요. 요즘은 편지를 주고받는 일이 거의 사라졌지만, 상대에게 마음을 전하는 데는 편지가 아주 그만입니다. 사랑의 감정이라면 더욱 그러하겠지요.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감사



인류의 조상은 풍요로운 때일수록 더욱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지혜를 터득하고 실천해왔습니다. 추석이나 추수감사제 등이 그렇습니다. 반면에 문명사회의 우리들은 어떤가요? 감사의 의식은 바쁜 세상에 불필요한 요식 행위쯤으로 축소되거나 마지못해 치르는 절차의 의미로 퇴색되어가고 있습니다. 원래 촌지는 고마운 마음의 나눔이었습니다. 촌지寸志는 '마음에 품은 작은 뜻'이란 의미입니다. 가르침을 주신 스승께 고마움의 작은 뜻을 담아 사례를 했던 게 그 유래입니다. 이런 촌지를 지금은 없애자고 합니다. 그 의미와 목적이 변질되었기 때문입니다. 옛날 촌지는 보통 배움이 끝날 무렵 책거리와 함께 전해지지만, 지금의 촌지는 배움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주고받습니다. 아름다운 옛 풍습을 그 쓰임의 타락으로 폐기하자고 합니다. 문화의 뒷걸음질이며 삭막해지는 세태의 반증입니다.

세상일은 마음만으로 전해지지 않는다

일본의 구석구석을 자전거로 달릴 때 느꼈던 것입니다만, 가장 자주 눈에 띄는 일본인들의 행위는 인사입니다. 어린 아이들까지도 '곤니찌와(안녕하세요)', '스미마셍(미안합니다)', '아리가또(고맙습니다)'를 입버릇처럼 입에 담습니다. 바로 이웃이면서도 중국과 한국은 그렇지 못합니다. 물론 대체로 그렇다는 말이고 민족의 국민성 또한 장단점은 분명히 있습니다. 여기서는 인사성과 그 안에 담긴 고마워하는 마음에 대해서만 다루고자 합니다. 일본인들이 인사성이 밝은 것은 교육, 특히 가정교육 때문입니다. 반면 가정에서조차 인사할 줄 모르는 우리는 고마워하는 마음을 드러내는 데 서툽니다.

지방의 국립대학에서 강의할 때, 서울의 대학과 비교해 이들이 받는 불이익을 극복할 방법을 찾아주고 싶었습니다. 나는 학생들에게 수업 내용을 바탕으로 함께 책을 써보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도움을 줬다는 이름 석 자 올리는 정도가 아니라 공저자로서 참여하게 했습니다. 나의 취지를 알고 모두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진행 중, 더욱이 내 강의가 끝나고 난 뒤에는 모두들 흐지부지했습니다. 바쁘다는 것을 모르진 않습니다. 하지만 정작 불참 이유는 학점 외에는 신경 쓰고 싶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해보지 않은 일이었으니 출판에 확신을 갖지 못한 것도 이유였을 것입니다. 결국 선생인 나 혼자 써서 책을 냈습니다. 수업 과제물을 책 내용에 포함시켰던 만큼 참여자의 원고료 지급을 알렸지만 연락을 해온 학생은 13명 중 딱 한 명이었습니다. 그 학생마저 미안해서인지 한 번 연락으로 끝냈습니다.

나는 책의 첫 판 인세로 학생들과의 일본 자전거 여행을 계획했었고, 이 역시 공동 출판이 목적이었습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직접 현장을 취재해 조선시대와 일본의 에도시대 당시를 비교하는 글을 나눠 쓰기로 했던 것입니다. 이 같은 체험을 통해 제자들에게 지방대 출신의 벽을 허물어 자긍심을 심어주고 싶었습니다만, 이 또한 나 혼자 끝내야 했습니다. 고마움을 표시할 줄 모르는 제자들의 반응이 훗날 남을 통해 들려옵니다. 미안해서 연락을 못 드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표현하지 못하는 습관은 어디에 원인이 있는 걸까요? 사회의 어른인 선생과 가정의 어른인 부모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마음으로만 하면 되지 뭐'라고 생각하는 안이함을 질책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세상일은 마음만으로 전해지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마음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한들, 생각에만 그치고 만다면 삶의 발전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마워하는 마음의 표시는 생각의 실천이기도 합니다.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할수록 성공 확률이 높다고도 말하지만, 이 또한 목적을 띤 고마움인지라 참 공허합니다. 고마운 마음이 들 때 '고맙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책에서 고마움을 배우다

고마워하는 마음에 대해 하나 발견한 게 있습니다. 책을 많이 읽으면 고마워하는 마음이 커진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고마움 중에서도 가장 고마울 때가 좋은 책을 만났을 때입니다. 이런 책을 읽으면 '고마움의 표식'도 꼭 남깁니다. 책을 다 읽은 다음에 그 소감을 나의 표정으로 그려 놓는 것입니다. 입이 귀에 닿도록 활짝 웃는 표정 그림 옆에 'very good'이 써 있다면, 이는 나중에 다시 읽어보라는 표시입니다. 이런 책을 만날 때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책은 달랑 만 원에도 접할 수 있는 최상의 강의, 최고의 선생입니다. 스위스의 철학자이자 교육자인 칼 힌티가 한 말을 빼놓고 책 예찬만 이어갈 수는 없습니다.

독서를 통해 얻는 그것의 산물인 지식을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 독서의 주안점과 독서가 가져다주는 주된 혜택은 지식이 아니라 행위이다. 좋은 행위로 옮겨지지 않는 모든 지식은 무익한 소유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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