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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

위지안 지음 | 예담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

위지안 지음

예담 / 2011년 12월 / 312쪽 / 12,900원



첫 번째 이야기_ 삶의 끝에 서서



우리 삶에 정해진 법칙이란 없다는 것

그때는 모든 게 최고였다. 유학을 다녀와 박사 학위를 땄고, 세계 100대 명문대 안에 꼽히는 푸단대학교의 교수로 첫발을 내딛었다.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다. 아들을 낳았고, 제안했던 '에너지 숲' 관련 프로젝트들이 줄줄이 승인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힘들여 쌓은 성공들이, 어이없게도 하루아침에 날아가고 말았다.

2009년 10월의 어느 날 밤, 나는 운명이 바뀌는 소리를 들었다. 그 학기에는 전공 수업 두 과목을 맡고 있었다. 그날은 수업을 마치고 연구실을 나서자마자 곧장 자전거에 올랐다. 다음 날부터 정신 없이 바빠질 예정이었으므로 그날 하루쯤은 편히 쉬어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날은 금방 저물었고 마음은 괜스레 바빠졌다. 집에 가는 길에 마트에 들러 장을 봐야 했다. 승합차 한 대가 스쳐 지나가자 차가운 바람이 일어났다. 오싹 추워졌다. 이따금 자동차를 타고 편안하게 출퇴근하고 싶은 유혹도 들었지만, 화석연료가 우리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기에 자전거에 대한 고집을 꺾지 않았다.

페달을 밟으며 마트 근처에 이르렀을 때 핸들을 트는 순간, 삐끗 하는 느낌과 함께 허리에 끔찍한 통증이 느껴졌다. 마치 부러진 뼈가 신경을 찌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핸들을 홱 틀다가 허리가 접질렸나?' 설마…… 내 자전거 실력은 수준급이었다. '그래, 근육이 약간 뭉친 정도일 거야.' 나는 통증이 가시기를 기다렸다가, 자전거를 끌고 걸어가 마트에서 장을 본 뒤 집으로 돌아왔다. 비극은 다음 날부터 시작되었다. 허리가 끊어질 것처럼 아파서 침대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몸을 약간만 움직여도 비명이 저절로 나올 만큼 아팠다. '이건 아니야, 뭔가 이상해.'

네 발로 뛰어도 모자랄 만큼 바쁜 시기였다. 강의 두 개는 물론 프로젝트 중간보고에, 집필하던 책 원고 정리에 하루 20시간을 쏟아부어도 부족할 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허리 통증으로 꼼짝 못하게 되자 눈앞이 캄캄했다. 남편 맥도널드(결혼 후 몇 년 지나자, 머리가 맥도널드 햄버거의 M 마크처럼 벗겨지기 시작하는 바람에 내가 지어준 애칭)는 나를 휠체어에 싣고 이 병원에서 저 병원으로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그때까지만 해도 '빨리 치료받고 다시 학교에 나가야지' 하는 생각뿐이었다. 가는 병원마다 '허리 근육 손상'이라고 진단을 내렸다. 파스와 찜질, 저주파, 물리치료가 이어졌지만 통증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침도 맞았고 유명한 마사지 전문가의 근육 스트레칭 치료도 받아보았다.

그런데 그런 시술 행위가 나의 죽음을 재촉하는 짓이었다는 걸 그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혈액순환을 돕는 약을 먹고 근육을 풀어주는 그 모든 진료 행위로 인해, 내 몸속의 암세포는 전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구석구석까지 전이되고 있었던 것이다. 통증은 점점 심해지기만 했다. 조금만 움직여도 예리한 송곳으로 근육을 찌르고 무딘 칼로 깎는 듯한 통증이 엄습해왔다. 며칠 전까지 팔팔하게 수업을 하던 내가 눈 깜짝할 사이에 불구의 몸이 돼버렸다. 혼자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스스로 밥을 먹을 수도 없었다. 그저 죽음만 기다리는 사람처럼 누워 있을 뿐이었다.

정밀 진단을 받기 위해 큰 병원을 찾기로 결정했을 때에는, 누군가의 입김만 살짝 닿아도 뼈마디를 찌르는 것처럼 고통스러웠고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결국 구급요원들이 내 주변을 충격 흡수용 에어쿠션으로 둘둘 감싼 뒤에야 구급차에 실었다. 나는 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그사이 나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는 말로도 모자랄 만큼 지옥 같은 고통에 시달렸다.

며칠 뒤 PET-CT(양전자 컴퓨터 단층 촬영) 결과가 나왔다. 담당 의사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컴퓨터 화면을 띄우다가 점점 낯빛이 어두워지더니 무선 마우스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맥도널드의 얼굴도 파랗게 질렸다. 나는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내 간신히 말했다. "나도 보게 해줘." 화면을 보자, 눈앞이 아득해졌다. "이게 내 뼈에요? 왜 이렇게 까매요?" 온통 까맸다. 그 옆에는 견갑골, 척추, 늑골, 치골 등 뼈 이름마다 모두 '다발성 병소'라고 적혀 있었다. 의사가 화면을 여러 번 바꾸자, 보고서가 나타났다. 그 마지막 줄에는 이런 식의 결론이 나와 있었다. '골수종양 의심. 원인 불명의 고형암 전이도 배제할 수 없음.'

골수종양이란 게 뼈암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죽음 근처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이상하게도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하늘이 빙글빙글 돌거나 눈앞이 하얗게 변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모순된 두 개의 생각이 서로 다투는 바람에 혼란스럽기만 했다. 하나는 '죽을 만큼 아팠던 원인을 알게 됐으니 다행'이라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혹시 검사 결과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이었다.

맥도널드는 골수종양 치료에 가장 많이 성공한 병원이 루이진 병원이라는 얘기를 전해 듣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P 선생님, 제 아내 위지안이 골수종양에 걸린 것 같습니다. 그래서 루이진 병원에 가려고 하는데 혹시 그 병원에 아는 의사 없으세요?" 잠시 후 그는 다짜고짜 구급차를 불러 나를 싣고는 곧장 루이진 병원으로 향했다. 루이진 병원 응급실에서 정밀 검사를 받은 결과, 이미 온몸의 신경이 암세포에 잠식된 상태였고, 극심한 통증으로 경련마저 나타나고 있었다. 검사를 위해 피를 뽑을 때마다 바늘 끝이 피부에 닿기만 해도 근육이 강하게 수축했다. 혼잡한 응급실 구석에 누워 통증이 잠시나마 가라앉기를 기다리는 동안, 벽에 걸린 달력이 눈에 들어왔다. 2009년의 마지막 주였다. 내 몸이 암세포에 완전히 함락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때, 나는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서른 살에 세계 100위 안에 드는 대학의 교수가 되었고, 역시 대학교수인 미남 배우자에 건강하고 똑똑한 아이까지 있는 성공 인생. 그런 인생을 누릴 만한 충분한 자격이 내게 있다고 믿었다. 남들 이상으로 노력했고 목표에 이르기 위해 온갖 고생을 마다하지 않았으니까. 성공의 법칙이란 그런 것이고 세상은 그런 법칙들에 의해 움직인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내 인생은 불의의 일격을 받고 어이없이 무너져 내렸다. 굳건하게 믿었던 법칙 같은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이제 나는 내 운명이 송두리째 바뀌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만 했다. 앞날이 창창한 대학 여교수에서 앞날이 얼마 남지 않은 초라한 말기 암 환자 신세로. 어디선가 읽었던 '병은 존재의 증거'라는 구절을 생각해냈다. '사람은 갑작스럽게 큰 고통에 직면했을 때, 비로소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떠올리게 된다는 것을.' 그렇게 느닷없이 팽개쳐진 운명이, 그날 이후 나의 삶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바라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믿음은 순도 100퍼센트라는 것

검사 결과가 나오던 날, 우리 부모님은 물론 시어머니까지 면회 시간에 맞춰 병원에 오셨다. 시어머니가 남편을 보자마자 물었다. "그래, 결과가 나왔니?" 맥도널드가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 "암이래요. 유방암." 잠깐 동안 침묵, 어느 누구도 섣불리 입을 열 수 없는 애매한 시간이 흘렀다. 내가 별것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그냥 유방암이라니까요, 더도 덜도 아닌 유방암!" "뭐? 그냥 유방암? 하하하." 아빠가 내 말투에 마치 무거운 짐이라도 벗어던진 것처럼 크게 웃었다. 엄마와 시어머니도 어이가 없다는 듯 따라 웃기 시작했다. "참 다행이다. 폐암이나 뼈암도 아닌 유방암이라니." 어른들은 비록 말기 암일지라도 유방암이니까 큰 걱정은 없다고 결론을 내린 듯했다. 하지만 맥도널드는 표정이 어두웠다.

그로부터 며칠 뒤, 맥도널드가 자리를 비운 사이 그의 메모를 보게 되었다. 주치의에게 설명을 듣고 받아 적은 것 같았다. '5년 생존율 20퍼센트, Her2+' 오랫동안 망연자실해 있었다. 그때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저 100명 중 20명이 5년을 살 수 있다는 뜻으로만 생각했다. 20퍼센트 확률로 5년을 더 살 수 있다니, 심장이 멈추는 듯했다. 그러나 그 정도의 확률조차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알게 된 것은 그 후의 일이었다.

5년 생존 가능성이 20퍼센트 미만이라면, 그것은 내 목숨을 유지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미였다. 최대한이라고 해봐야 서른다섯이라니. 한창 좋을 나이, 남들 같으면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키우며 한창 행복을 누릴 시기. 그런데 왜 나는 그런 행복을 누리면 안 되는 것일까. 억울하고 분해서 미칠 것 같았다. 아직은 해본 것보다 못 해본 것들이 훨씬 많은데. 해보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은데. 그러나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만 했다. 진정으로 '지금의 나'에 집중해야만 했다. 문득 어떤 영감 같은 것이 스쳐 지나갔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보는 건 어떨까. '맞아. 유쾌하게. 마지막 그날까지 내 삶을 즐기는 거야. 남들이 뭐라고 하든.'

그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 주변의 말기 유방암 환자들이 한 명, 또 한 명씩 저세상으로 떠났다. 가족들은 그제야 유방암으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똑똑히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식구들이 보여준 반응은 다른 이들의 경외심을 충분히 불러일으킬 만한 것이었다. 그들은 다음 차례가 나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내가 어느 날 이 세상을 떠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뇌에서 멀리 추방해버린 사람들 같았다. 특히 엄마는 다른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당신 딸 위지안은 그렇게 허무하게 죽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어느 날, 맥도널드가 이런 말을 했다. "그냥 우리는 서로 믿으니까. 지안, 당신이 이겨낼 거라는 사실을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의심하지 않아. 게다가 우리보다 더 많이 변한 건 바로 당신이야. 가족들과 즐겁게 지내려는 당신의 의지가 우리들 모두에게 전해지고 있는 것 아닐까. 우리는 믿음이라는 끈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잖아." 맞는 말이었다. 믿음이란 오로지 순도 100퍼센트일 뿐이다. 조금 덜 믿거나 아주 조금만 의심해도 사라지는 게 믿음이기에 그저 '믿느냐, 안 믿느냐'뿐인 것이다. 처음에는 수시로 찾아오는 고통을 나 혼자 감당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우리는 삶의 최후의 순간까지 혼자 싸우는 게 아니었다. 고개만 돌려보아도 바로 옆에, 그리고 뒤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나와 사람들 사이에는 강고한 믿음이라는 끈이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혼자가 아닌 것이다.

사랑은 확인할 필요가 없다는 것

노르웨이 유학 중에는 끔찍할 정도로 그가 보고 싶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가 궁금했고, 그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었다. 한밤중에 그의 전화를 받을 때면 눈물부터 흐르기 시작해서 제대로 대화를 나눌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다시 돌아와 함께 지내기 시작하자 일주일도 채 안 되어 예전과 같은 관계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냥 익숙하고 편한 상태로 함께 살아가는 정도랄까. 약간은 심심하고 또 약간은 지루한 듯 상대방이 하는 일을 존중해가며 평범하게 살아갔다. 그런데 내가 몸져눕게 되면서 한 편의 드라마가 시작되었다. 맥도널드는 평소의 훈훈한 사랑이 위기를 맞이하면 어떻게 180도 변화하는지를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늘 내 침대 곁에서 책을 보다가 불편한 게 있으면 해결해주었다. 밥을 떠먹여주고 몸을 닦아주며 온갖 시중을 들어주었다.

수치스럽게도 내게는 엉덩이를 스스로 닦을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남편이 그것까지 해주어야만 했다. 맥도널드는 수시로 내게 "가슴이 너무 두근거리지는 않아? 지금 호흡은 잘 되는 거지?"라고 물었다. 나는 너무나 지쳐서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다 잠이 들었다. 날이 밝아올 무렵 다시 잠에서 깼다. 눈만 돌려 옆을 보니 보호자용 침대에 누워 있어야 할 맥도널드가 보이지 않았다. 눈을 조금 더 돌리자, 그의 머리가 보였다. 그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었다. 나는 기도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벌써 깬 거야?" 내가 물었다. "응, 조금 잤는데 금방 깼네." 남편이 대답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한숨도 못 잔 것 같았다. "뭐라고 기도했어?" 나의 물음에 맥도널드는 머리를 긁적이더니 말했다. "하늘에 빌었어. 지안, 당신을 살려달라고. 당신이 살아서 내가 앞으로 50년 동안 매일매일 당신 엉덩이를 닦아줄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어."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랑받고 있음'을 확인하고 싶다면, 그것은 상대가 아닌, 자기 스스로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지금 문득 든다. "정말 사랑이라면 그걸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일상에서 즐겁게 마음으로 전해지게 되는 것이니까."

두 번째 이야기_ 삶의 끝에서 다시 만난 것들



남들보다 즐거워할 자격이 있다는 것

나의 인생은 이륙 준비를 모두 마친 우주선이 카운트다운 직전에 폭발하듯 무너져버렸다. 해외 유학은 물론 힘겨운 박사 학위까지 마치고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한 지 1년, 신청한 프로젝트가 모두 통과되어 날개를 활짝 펼치려는 순간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 것이다. 하루하루가 마치 어둠 속 500미터 상공에 가로놓인 외줄을 타는 듯했다. 한 발만 잘못 내디뎌도 낭떠러지로 떨어져 흔적도 남지 않을 것만 같았다. 더 이상 내게는 기회가 없을 것이란 절망이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나를 압박했다. 절망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익사라도 할 듯이 숨이 막혔다.

생과 사를 넘나드는 운명의 파도에 온몸을 내맡긴 채 지금까지 견뎌왔다. 남편을 비롯한 가족들을 미리부터 슬프게 하고 싶지 않아서 내 감정의 빗장을 걸어 잠갔다.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농담과 익살을 잊지 않으려고 기민하게 반응했다. 하지만 나는 마지막이 슬며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남편이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이따금 드러내는 안타까운 눈. 내가 어찌 그 눈에 담긴 슬픔을 읽어내지 못하겠는가. 그렇다. 의식을 하건 안 하건, 누구나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영혼과 마주해야 한다.

물론 죽음이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다. 고비를 몇 차례나 넘기며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왔지만 여전히 두렵기만 하다. 죽음이 두렵다는 것은 이 세상에 미련이 많다는 의미인 것 같다. 그러니까 지금 나의 상태는 삶에 대한 미련과 죽음의 공포 사이에서 외줄 타기를 하는 듯한 모양새이다. 예전에는 없던 관점 같은 것이 생겨났다. 뭐랄까, 삶과 죽음을 동시에 관조할 수 있는 '제3의 관점'이라고 할까. 암이 인간에게 미치는 긍정적 요소가 있다면, 바로 이런 부분이 아닐까 싶다. 말기 암 환자로 살아가는 사람만 깨닫는 삶의 진실이 있는 것이다.

말기 암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얼굴에서 삶의 긴장이 풀린다는 점이다. 물론 당사자의 마음은 삶과 죽음 사이에서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겠지만, 적어도 겉모습은 묘하게도 참선하는 도인처럼 초연해 보인다. '귓가에 천둥이 쳐도 얼굴은 평안한 호수 같은' 표정을 늘 부러워했는데, 이제 나도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이것 역시 암이 가져다준 선물의 하나다. 암은 내 인생의 분수령이었다. 건강한 사람의 눈에는 내 인생이 이미 끝나 무의미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아직 진행 중인 내 인생을 관조하듯 바라보며, 작은 일에서조차 의미를 찾는 평온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통증을 제외하면, 숨 쉴 수 있는 이 순간이 즐겁고 고맙다. 언제 죽음의 방문을 받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렇게 즐거워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기만 하다. 이제는 내가 불운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저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기 위해 마음을 다하고 있다. 내 인생에는 그저 '살아 있음'이라는 목표만 남았다. 이렇게 명확하고 단순한 목표가 또 어디 있을까? 예전에 나를 움직였던 동력들은 모두 성공과 집착에 따른 것들이었다. 병이 아니었다면 여전히 그런 가치들을 좇아 부산하게 움직였을 것이다. 하지만 고맙게도(!) 암으로 인해 그런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되었다. 그러자 모든 것이 단순해졌다. 그리고 너무도 쉽게 삶이 즐거워졌다. 나는 내 몫의 하루하루를 그저 열심히 살면 그만이다. 돈? 명예? 권력? 그런 것들은 다 갖기도 어렵고, 설령 모두 가졌다 해도 죽을 때 가져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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