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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거나 남자는 필요하다

남인숙 지음 | 자음과모음
어쨌거나 남자는 필요하다

남인숙 지음

자음과모음 / 2011년 12월 / 311쪽 / 12,500원



당신도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인가?



당신이 남자보다 잘났다는 사실은 비밀로 하라

금련은 방금 사장실에서 그녀가 새 편집장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나온 참이었다. 8년 전 학생 인턴 기자로 이 판에 발을 들였을 때부터 꾸어왔던 꿈을 이루게 된 순간이 바로 지금이었다. 퇴근을 한 그녀는 곧바로 남자친구 무송이 기다리고 있는 찻집으로 갔다. 연인에게 가장 먼저 좋은 소식을 전하게 된 상황에 금련은 가슴이 설렜었다. 그러나, 소식을 들은 그의 반응은 의외로 뜨뜻미지근했다. 무송은 금련과 같은 출판 그룹의 다른 계열사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다. 그는 미소 지으며 축하한다고 한 번 말했을 뿐 자꾸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리고 싶어 했다. 하지만 승리감에 도취된 그녀는 무송의 불편한 감정을 눈치채지 못했다.



저녁 먹고 헤어질 때쯤, 금련은 다시 그때의 상황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는데, "이제 그만 좀 해!" 하며 갑자기 말을 끊은 무송은 참았던 불만을 쏟아냈다. "너 오늘 저녁 내내 같은 얘기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한 거 알아? 좋은 일이고, 너 잘난 것도 알겠는데 듣는 사람 입장도 좀 생각해야 하는 거 아냐?" 그의 말에 금련은 충격을 받았다. "무송 씨 말대로 남이 잘된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듣는 건 짜증나는 일이야.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남의 일'일 때 해당되는 거 아냐? 난 우리 누구 하나라도 잘되면 무한대로 기쁜 '같은 편'이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지금 당신은 아무리 봐도 내 편이 아니잖아!" 그에게 화를 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어디부터 잘못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백번을 다시 생각해보아도 자신에게는 잘못이 없는 것 같았다. 금련의 눈에는 돌아서는 무송의 축 처진 어깨는 물론, 그가 연속 세 번 승진에서 미끄러졌다는 사실도 들어오지 않았다.



'오스카의 저주'란 여배우들이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기만 하면 이혼한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상을 받은 여배우들의 남편이 같은 직업(배우)을 가지고 있을 때 이혼하는 확률이 훨씬 높더라는 것이다. 세계 영화산업의 중심인 할리우드에서 오스카상을 손에 쥐었다는 것은 그 분야에서 정점에 올랐다는 뜻이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경력을 가지게 된 아내보다 자신이 유능하다는 것을 증명할 기회를 잃어버린 남편들이 정신적 압박을 견뎌내지 못한다는 게 정설이다. 1970년대 이전에 이미 페미니즘의 물결이 휩쓸고 지나갔고, 이젠 그 단어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하는 서구 사회에서조차 이럴진대 동양사회에서야 어떻겠는가.



남자들은 여자의 손에 길러지면서도 '너는 여자보다 강하고 유능해야 한다'고 어려서부터 주입받으며 자란다. 이건 유교 사상의 영향이 강한 우리나라에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전 세계 어느 문화권에서건 같은 현상을 보인다. 남자아이들은 좀 자라 대문을 나서면서부터 강한 남자만이 인정받는 매몰찬 세계에 내던져진다. 진보적인 현대 여성인 당신은 그런 세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남자가 여자보다 강하고 용감하기를 바라는 건 본능에 가까운 요구이며, 남자들의 자아는 그런 사회적 요구들 속에서 성장하고 굳어진다. 그런 남자들이 자신보다 잘난 여자를 보며 불편한 감정을 느낄 거라는 상상을 하지 못하는 게 더 이상한 일일 수도 있다. 그 '불편한 감정'은 자기편인 여자를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지원해주어야 한다는 당위를 압도할 만큼 엄청난 것이다. 심리학의 '거울 이론'에 따르면, 감정에 동요되지 않아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 때문에 자기감정을 스스로 처리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남자들은 연인이나 아내를 자신을 비추는 거울로 본다. 어떤 도움도 필요로 하지 않는 잘난 여자는 남자에게 있어서 자신의 못난 모습만 비추는 거울이다.



아내가 자기보다 잘났다고 생각하는 남자들 대부분이 발기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는 비뇨기과 의사들의 공통된 의견을 보면 이건 그냥 기분상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아마 같은 회사에 근무하면서 번번이 승진에서 밀린 무송에게는 달뜬 금련의 말들이 모두 '너는 못났어. 너는 무능해. 너는 쓸모없어'라는 말로 자동 번역되어 들렸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일단 남자가 자기 여자를 못된 마법의 거울로 보기 시작하면 그는 그녀가 어떤 말을 해도 자신을 무시하는 말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여자 입장에서는 대하기가 아주 까다롭고 피곤해진다. 그 억지스런 태도 뒤에 자기 여자보다 못하다는 견딜 수 없는 열패감과 좌절감이 있다는 것을 대부분의 여자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직장 생활에 도가 튼 어느 커리어우먼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남자 부하 직원들을 잘 다루려면 고분고분해질 때까지 밥을 사주면 돼. 내가 자기들을 먹여주는 존재라는 인식을 하게 되면 그때부터 나를 여자로 보지 않거든." 여자들은 자신의 유능하고 성공적인 모습을 남자가 멋지게 볼 거라고 착각하기 쉽다. 자기 자신이 남자의 유능한 모습을 보면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자들은 자신의 여자가 얼마나 멋진가에는 별 관심이 없다. 남자들은 스스로 멋진 남자라고 느끼게 만드는 여자에게 끌린다. 남자들이 유독 여자의 외모에 혹하는 것 역시 미인이란 존재가 '능력 있는 남자가 세상과의 승리에서 얻은 대가'로 상징되기 때문이다.



남자의 허세는 여자의 허영과 다르다



금련이 무송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2주 전이었다. 말도 없이 장기 출장을 가더니 그 이후로 전화와 문자가 뚝 끊겼다. 그리고 청천벽력 같은 이별 통보를 문자메시지로 받은 것이었다. 그것도 무송에게서가 아니라 통신사에서 '휴대폰 커플 요금제가 해지되었다'고.



'시간이 약'이란 말은 허튼 말장난이 아니었다. 무송과의 이별 후 이제 앞으로 자기 인생에 좋은 일이 없을 것 같았던 금련은 서서히 제 리듬을 찾아나가고 있었다. 무엇보다 일이 구원이 되어주었다. 햇병아리 편집장에게 실연의 아픔 같은 건 사치였고, 마감을 몇 번 겪다 보니 몇 개월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금련은 특집 기사를 위해 독자의 아파트 개조를 하고 있는 현장에 인테리어디자인 사무소 대표를 만나러 들렀다가 우연히 무대 과장과 둘이 식사를 하게 되었고 묘하긴 했지만 조심스럽게 만남을 시작하게 되었다.



알고 보면 여자보다 불쌍한 남자들

모처럼 업무를 핑계로 대낮에 약속을 잡은 금련과 무대는 햇살 좋은 날씨에 들뜬 채 인테리어 박람회장으로 향했다. 이럴 때는 그와 비슷한 업종이라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보니 전시장은 휴무일이었던 것이다. 헛걸음을 한 금련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이렇게 하루 시간 내려면 얼마나 힘든 줄 알아?" "화내면 얼굴에 주름 생겨요-. 이러다 우리 금련 씨 시집도 가기 전에 쭈글쭈글 할머니 된다?"



금련은 느물느물 넘어가려고만 하는 무대 때문에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라 그만 이성을 잃고 말았다. "계속 이렇게 나 무시할 거면 그만 헤어져! 자기가 인물이 좋아? 능력이 있어? 재산이 많아? 내세울 거 없으면 사람이 진중한 데라도 있어야 할 거 아냐!" 그날 금련은 자기가 아는 욕이란 욕은 무대에게 다 퍼부은 것 같았다. 무대는 학생주임에게 혼나는 복장 불량 학생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묵묵부답일 뿐이었다. 금련이 제풀에 지쳐 입을 다물자 무대는 그제야 입을 열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말했다. "지금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 좋다. 저 가수 콘서트 갈까?" 기가 막힌 금련은 그냥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남자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여자들이 어떻게 느끼는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여자가 화를 낼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잘 모른다. 그래서 당황하고 상처받을수록 모르는 척 되도 않는 우스개로 화제를 돌리려 한다. 그러나 그런 행동은 여자가 점점 남자에게 무시당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자꾸 딴청을 부리는 남자에게 더 화가 나는 여자는 자기도 모르게 공격 강도를 점점 높이게 된다. 그렇게 해서 우리 여자들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금련처럼 남자들에게 크고 작은 상처를 끊임없이 주게 되는 것이다. 그들의 연기 덕에 우리는 남자가 아무런 상처도 받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하나하나 낱낱이 기억하고 있다(그러나 막상 물어보면 절대 기억나지 않는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런 남자들에게 불쌍한 남자의 모습을 그려보라고 하면, 엉뚱하게도 아내가 없어서 혼자 라면을 끓여 끼니를 때우는 모습을 묘사하는 남자들이 많다. 여자가 없더라도 요리를 해서 밥을 챙겨 먹으면 될 것을, 굳이 구부정한 자세로 라면을 끓이면서 스스로를 불쌍하게 여긴다.



남자들은 언뜻 여자들보다 독립적으로 보이지만 사적 영역에서 몹시 무능할 때가 많다. 살면서 공연 관람이나 여행과 같은 여가 활동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 크지만, 평균적인 남자들은 여자 없이는 그런 것들로부터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그들은 삶을 풍성하게 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일들을 여자 없이 할 수 없는 것이다. 일로 얻는 성취감이 남자들이 스스로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기쁨이지만, 생업으로 성취의 기쁨을 느끼는 직업인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한마디로 마음 붙일 여자 없는 남자들은 사는 낙이 없다. 그래서 그들이 가상으로나마 성취감을 느끼게 하는 게임에 빠져드는 것이다. 혼자서도 잘 놀고, 동성 친구들을 만나면 수다 떨 입과 커피 한 잔만 있어도 신이 나는 여자들에 비해 삶의 질이 한참 떨어진다.



이렇게 남자를 불쌍하게 만들기도 하고, 또 그 때문에 여자를 불쌍하게 만들기도 하는 원흉은 언제나 남자로서의 정체성이다. 남자들은 '남자답지 못하다', '속 좁다', '쪼잔하다'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자기 파괴도 서슴지 않으며, 다른 사람이 불행해지는 것도 개의치 않는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마음의 혼란이나 고통은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 남자답지 못한 이유로 고통받는 그 마음은 자기 자신에게조차 비밀이다. 남자들에게 왜냐고 물으면 언제나 돌아오는 대답은 같다. '그냥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이란다.



이런 입장은 결혼한 커플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로 문제가 된다. 아내가 느끼는 감정을 자신의 감정으로 해석하는 남편들은 아내가 불행하면 여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종류의 고통을 받는다. 아내 하나 만족시키지 못하는 못난 남자로서 정체성에 상처를 입은 그들도 당사자인 아내만큼은 아니어도 충분히 아픈 것이다. 다만 '남자'이기 때문에 표현을 못 할 뿐이다. 그런데도 여자들에게 있어 그들은 언제나 가해자의 입장이 된다. 자신이 왜 얼마만큼 힘든지 설명할 재주가 꿈에도 없는 그들은 오늘도 '남자가 밖에서 얼마나 힘든지 알아?' 같은 상투적인 말로 여자들의 화만 돋우며 스스로를 아무도 몰래 불쌍하게 만들고 있다.



뼛속까지 남자인 남자만이 부드러울 수 있다



남자들이 좋아한다는 '착한 여자'의 진실

금련은 무대와 함께 대학 동창 설화가 주축이 되어 열리는 자선파티에 가게 되었다. 설화는 학교 다닐 때에도 봉사에 열심이더니 지금은 사회복지사가 되어 불우 아동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고 있다. 파티 장소에서는 동창들의 얼굴이 제법 보였다. 동기도, 친한 선배도 아니었던 서문경의 참석은 좀 의외였지만, 다들 대학 시절 쌓은 설화의 인덕 때문이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이날은 금련의 단짝 춘매도 남자친구를 동반해 얼굴을 내밀었다. 호스트인 설화는 정신없이 바빠서 자연스럽게 두 커플이 어울리게 되었다. 춘매네는 캠퍼스 커플이었다. 중간에 좀 헤어져 있는 동안 춘매가 남자를 세 번이나 갈아치웠지만 남자 쪽의 일편단심으로 지금은 약혼까지 한 상태다. 금련네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장수 커플인데도 둘은 한 달 된 커플처럼 다정을 떨어댔다. "넌 춘매의 어디가 그렇게 좋니?" 문득 궁금해진 금련이 남자 쪽에 물었다. 그러자 그가 망설이지 않고 하는 말, "착하잖아."



금련은 순간 자신의 귀가 잘못되었나 싶었다. 춘매에게 가장 어울리지 않는 형용사를 하나 꼽으라면 그건 '착하다'이다. 그는 쇼핑몰 사장인 춘매가 엉뚱한 물건을 사입해온 직원이나 억지 쓰는 거래처 사장을 어떻게 녹다운시키는지 한 번이라도 봤을까? '그냥 하는 말이겠지. 당사자를 앞에 놓고 가슴이 커서 좋다, 돈 잘 벌어서 좋다, 라고 말할 수는 없잖아. 착한 여자 좋다는 남자치고 정말 착한 여자 좋아하는 남자 못 봤어.'



착한 걸로 따지자면 오늘 자선파티를 연 설화를 따라갈 여자가 없었다. 언제나 남을 돕는 걸 좋아하고 궂은일에도 솔선수범 나섰다. 그런데도 학교 다니던 시절 설화 좋다는 남자를 본 적이 없었다. 내심 가증스러워하고 있는데 춘매가 음료수를 가지러 가겠다며 자리를 비웠다. 그 뒷모습을 그윽이 바라보던 그 남자친구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우리 춘매, 정말 착하지 않냐?"



술기운 탓인지 혼란 때문인지 어지럼증을 느낀 금련은 바람을 쐬러 밖에 나갔다가 담배를 피우고 있는 서문경과 마주쳤다. 금련의 말을 들은 서문경은 한차례 웃더니 말했다. "걔한테는 춘매가 착한 게 맞아. 남자들이 여자를 두고 하는 '착하다'는 말은 자기를 거절하지 않는다는 뜻이지." 쉬운 듯 하면서도 전혀 알 수 없는 남자들의 정신세계였다. '그럼 나는 무대에게 착한 여자인가, 못된 여자인가?'



남자들에게는 여자를 통해서 남성 정체성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 그 욕구는 두 가지 상반된 면으로부터 충족된다. 그 하나는 여자를 통제할 수 있다고 느낌으로써 자신감을 얻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상대의 마음을 장악하는 과정을 통해 성취감을 맛보는 것이다. 남자들은 여자가 자신을 거절하지 않고 무조건 수용해줄 때 첫 번째 욕구를 충족받는다. 이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여자가 바로 그들이 생각하는 '착한 여자'다. 다시 말해 남자들이 말하는 착한 여자란 노인과 아이에게 친절하거나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는 여자가 아니라 '내 말을 고분고분 잘 들어주는 여자'인 것이다. 그런데, 착한 여자가 되는 것도 말처럼 단순한 일만은 아니다. 두 번째 욕구, 즉 성취욕을 느낄 수 없는 너무 쉬운 여자여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지금은 고전이 되어버린 하루키의 장편소설 『노르웨이의 숲』(혹은 『상실의 시대』)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나오코가 남자들이 말하는 착한 여자의 전형이다. 나오코는 주인공 와타나베의 죽은 절친의 연인이다. 두 사람은 서로 미묘한 감정을 느끼지만 나오코는 죽은 연인의 친구인 와타나베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런데도 나오코는 어떤 상황에서도 와타나베를 거부하지는 않는다. 그가 만나자면 만나고, 적당히 애정도 주고, 그가 원할 때 어느 정도의 성적 접촉도 허용한다. 그러나 한순간도 완전한 와타나베의 여자가 되어주지는 않음으로써 자신감과 정복욕을 동시에 자극한다.



보통의 남자들은 나오코 같은 여자와 함께 있을 때 자신이 진짜 남자인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와타나베 역시 발랄하고 사랑스러운 미도리를 곁에 두고도 손에 잡히지 않는 나오코를 끊임없이 갈구하는 것이다. 시시비비를 따지자면야 확실한 의사표현을 않고 남의 마음을 볼모로 잡고 있는 나오코가 나쁜 여자고 애정 표현이 다소 과격하지만 솔직하고 따뜻한 미도리가 진짜 착한 여자지만, 현실을 사는 대다수의 남자들은 나오코 같은 여자를 착하다고 믿는다.



여자들은 자신이 도저히 남자들 취향에 맞추어 나오코처럼 굴 생각이 없고 다시 태어나도 미도리일 수밖에 없는 성격이라 생각해도 남자들 기준에서의 선악의 실체는 알아둘 필요가 있다. 다른 사람에게는 어떻든 나에게만은 잘해주는 이성에게 매력을 느낀다는 점에서 '착한 여자'는 요즘 여자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나쁜 남자'와 비슷한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건 소수의 독특한 취향에 불과하지만, 남자들이 착한 여자를 좋아하는 건 범우주적인 취향이라는 것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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