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프리미어리거 영웅전
홍재민, 조한복 지음 | 브레인스토어
한국인 프리미어리거 영웅전
홍재민, 조한복 지음
브레인스토어 / 2012년 2월 / 328쪽 / 14,800원
제1장 프리미어리그와 만나다 (2005/2006 시즌)
2005년 여름 영국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박지성을 영입했다고 난리가 났다. 이유는 맨유가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한국 선수를 영입하는 엉뚱한 짓을 벌였기 때문이다. 맨유에 리그 우승을 빼앗아간 라이벌 첼시는 잉글랜드 최고 유망주 숀 라이트 필립스와 유럽 최고 수비형 미드필더 마이클 에시앙을 고가 매입했는데, 맨유는 이름도 낯선 한국인 선수를 영입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만큼 박지성 영입에 대한 영국 현지의 반응은 생뚱맞고 차가왔다.
영국 축구계는 예로부터 자존심이 워낙 세고 자기밖에 모르는 습성을 지녔다.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등 유럽 굴지의 리그라고 해도 영국 팬들은 별로 관심이 없다. 빅 리그에도 관심이 없는데 하물며 박지성이 뛰었던 네덜란드 리그에 대해서는 알리가 없다. 이런 현지 분위기는 박지성 입장에서 보면 양날의 칼과 같다. 유리한 점은 언론과 팬들 모두 박지성에 대해 무지했던 만큼 편견도 없다는 의미이다. 앞으로 잘만 하면 좋은 이미지를 쌓을 수 있다. 반대로 모르기 때문에 다른 유명 선수에 비해 잘해도 칭찬받기 쉽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박지성 그리고 한국 축구와 프리미어리그와의 첫 만남은 기대와 희망보다는 이렇게 낯설었다. 이미 네덜란드에서 유럽 문화를 체험한 박지성이라도 잉글랜드라는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종류의 노력이 필요했다.
2005/2006 영국 프리미어리그 시즌이 개막하고 또 하나의 낭보가 날아들었다. 런던의 인기 클럽 토트넘이 '초롱이' 이영표를 영입한 것이다. 유럽 무대를 휘젓는 빅 클럽은 아니지만 토트넘은 대단한 인기 구단이다. 3만6천 명을 수용하는 토트넘의 홈구장 화이트 하트 레인은 열혈 팬들 덕분에 용광로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뜨거운 현장 분위기가 연출되는 곳이다. 토트넘의 마틴 욜 감독은 이영표를 시즌 중에 영입하자마자 유럽 챔피언 리버풀과의 맞대결에 선발로 출전시키며 굳은 신뢰를 보냈다. 이날 이영표의 플레이는 팀에 들어온 지 열흘밖에 안 된 선수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자연스러웠다. 공격에 가담한 뒤에는 리버풀 수비수를 장기인 헛다리 짚기로 완벽하게 제친 후 깔끔한 크로스를 배달하는 장면도 연출했다. 숨 막혔던 데뷔전을 성공적으로 마친 이영표는 이후 토트넘 부동의 왼쪽 풀백 자리를 꿰차고 승승장구를 이어갔다.
박지성도 입단 초부터 출전 기회를 쏠쏠하게 얻었다. 개막전 선발 출전이라는 행운도 있었고 경기에서 골대를 맞히며 가능성도 보였다. 하지만 두 달여가 되도록 골 소식이 없자 "거봐, 동양인 선수가 뻔하지 뭐"라는 불신이 슬슬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2005년 10월 1일 풀럼과 맨유의 경기가 열렸다. 맨유의 원정경기였다. 경기 시작 2분 만에 풀럼이 선제골을 터뜨리며 기세를 올렸다. 맨유의 플레이가 잘 안 풀리던 중에 전반 17분 중원에서 볼을 잡은 박지성이 갑자기 아크 정면으로 쭉쭉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페널티박스 안까지 파고든 박지성은 수비수의 다리에 걸려 넘어졌고 뒤따라오던 주심은 주저 없이 페널티킥 지점을 손으로 가리켰다. 판 니스텔로이가 페널티킥을 성공시켜 승부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1분 뒤 또 대형사고 발생. 땅볼로 날아온 패스를 박지성이 논스톱 인사이드 패스로 무인지경의 루니에게 연결시켰다. 패스 한 방으로 단독 찬스를 만들어준 것이다. 골을 터뜨린 것은 루니였지만 카메라는 박지성을 크게 비추었다. 경기는 계속 이어져 반격에 나선 풀럼이 전반 28분 동점골을 터트려 스코어는 다시 2-2가 되었다. 그런데 전반 45분 오른쪽 측면에서 오프사이드 트랩을 완벽하게 무너뜨린 박지성에게 단독 찬스가 만들어졌다. 골키퍼가 각도를 좁히기 위해 튀어나오자 박지성은 중앙으로 쇄도한 판 니스텔로이에게 패스를 해주는 이타적인 플레이로 3번째 골을 또 다시 만들었다. 이날의 공헌은 박지성이 프리미어리그에 자리 잡는 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풀럼전의 여세를 몰아 박지성은 12월 20일 버밍엄 원정경기에서 영국 진출 5개월 만에 데뷔골을 터뜨렸다. 후반전 1-0으로 앞선 상황에서 폴 스콜스가 올려준 볼을 박지성이 머리를 이용해 뒤로 떨궜고 동료 공격수 사하의 발에 맞고 약간 앞으로 튕겨 나온 볼을 박지성이 다시 잡아 그대로 강력한 왼발 슛으로 골문을 갈랐다. 골이 터지자 웨인 루니가 가장 먼저 달려와 축하를 해 주었다. 데뷔 골 이후 열린 경기에서 박지성의 플레이는 확연히 달라졌다. 무엇보다 드리블, 슈팅, 패스에서 자신감이 느껴졌다. 맨유 퍼거슨 감독이 주위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박지성을 선택한 이유가 드러난 것이다.
제2장 유럽은 만만치 않다 (2006/2007 시즌)
2005/2006년 시즌 런던에서 65km 떨어진 소도시 레딩에 있는 레딩FC가 구단 창단 135년 만에 프리미어리그로 승격했다. 촌 동네 클럽이 제대로 한번 출세한 셈이다. 레딩FC는 프리미어리그에 대비하기 위해 경험 많은 공격수를 영입하기로 했는데, 그게 바로 '설바우두' 설기현이다. 2004년 영국 울버햄튼에 입단한 이래 설기현은 두 시즌에 걸쳐 챔피언스 리그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으로 성장해 있었다. 잘나가는 선수였기 때문에 레딩 FC는 몸값으로 150만 파운드나 지불했다. 설기현은 한국 팬들 사이에서는 과소평가되는 선수이다. 그러나 그는 대한민국 최초의 정통 유러피언 풋볼러이다. 프로 데뷔서부터 2010년 K리그에 복귀할 때까지 설기현은 철저하게 유럽 프로축구선수로 활동했다. 레딩 입단 당시에도 그는 이미 영국 내에서도 알 만한 팬들은 다 아는 유명 선수였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동양인 선수가 아니라 이미 영국 프로축구에서 실력을 검증받은 실력파라는 뜻이다.
2006/2007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태극전사의 바이오리듬은 절묘하게 어긋났다. 이제 막 프리미어리그에 데뷔한 설기현의 곡선이 가파르게 솟구쳐 올라 한국 팬들을 기쁘게 만들었지만, 원조 영웅 박지성의 곡선이 시즌 초반부터 곤두박질쳤다. 부상 악몽의 시작이었다. 9월 초 토트넘과의 경기에서 왼쪽 발목 인대가 파열되어 수술을 받았고 3개월 동안 경기에 나서지 못한 것이다. 2006년 월드컵 기간 동안 대표팀과 소속팀을 오가며 했던 강행군이 문제였다.
박지성의 수술 직후 2006년 9월 23일 레딩과 맨유의 경기가 열렸다. 개막전부터 레딩의 신데렐라로 떠오른 설기현은 오른쪽 윙어로 선발 출전했다. 승격 돌풍을 이어가던 레딩은 전반전을 무득점으로 마치더니 후반 3분 행운의 페널티킥 선제골을 얻어냈다. 설기현의 패스를 받은 레딩의 주장 그래엄 머티가 올린 크로스가 맨유 게리 네빌의 팔에 맞은 것이다. 그러나 이 골로 인해 맨유 선수들이 깨어났다. 매섭게 공격을 몰아친 끝에 후반 28분 호날두가 레딩 진영 왼쪽을 돌파하면서 골을 얻어낸 것이다. 자칫 잃어버릴 수도 있었던 승점을 호날두의 한 방으로 확보하는 순간이었다. 설기현은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경기 내내 활기찬 모습을 선사해 경기 종료 5분 전 교체될 때 홈 팬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이날의 임무를 완수했다. 한편 발목 부상 후 복귀한 박지성은 훨훨 날았다. 2007년 2월 찰튼전에서 골을 터뜨렸고, 3월 볼턴과의 홈 경기에서 두 골을 터뜨리며 잉글랜드 진출 후 첫 멀티 골을 폭발시켰다. 2주 뒤인 블랙번전에서는 시즌 5호 골을 신고했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하였다. 4월 들어 박지성은 다시 경기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4월 28일 맨유 홈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왔다. "박지성의 무릎 연골이 파손된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박지성은 현재 최고의 스페셜리스트로부터 진료를 받고 있습니다."
제3장 프리미어리그의 중심이 되다 (2007/2008 시즌)
이동국이 프리미어리그에 발을 디딘 것은 2007년 1월이다. 이동국은 K리그에서 프리미어리그로 직행한 역사상 첫 번째 한국 선수이다. 이동국을 영입한 미들즈브러는 영국 동해안 중간 지점에 위치한 인구 13만의 소도시에 자리 잡고 있다. 이적 초기만 해도 이동국의 인기는 상당히 좋았다. 미들즈브러 시민들은 1966년 월드컵에서 북한 대표 팀의 맹활약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이동국의 체격조건에 어울리지 않는 유연함에 흠뻑 매료되었다.
이동국의 데뷔전은 2007년 2월 24일 레딩과의 홈 경기에서 이루어졌다. 이동국은 2-1로 앞서던 후반 40분 그라운드를 밟았다. 홈 관중은 모두 일어나 한국인 선수의 첫 등장에 기립박수를 보냈다. 경기 종료 직전 왼쪽 측면에서 스튜어트 다우닝의 크로스가 이동국을 향해 정확히 날아갔다. 이동국은 그대로 왼발 논스톱 발리 슛으로 정확히 맞혀 골대 오른쪽 구석을 노렸지만 골대를 맞고 튀어나왔다. 이 장면을 보면서 뭔가 불안감이 느껴졌다. 축구선수, 그것도 이동국 같은 공격수들은 자기에게 찾아온 득점 기회를 놓치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꿈에 그리던 프리미어리그 데뷔전에서 완벽하게 맞힌 슈팅이 골대에 막혀버리면 허탈감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이동국의 불운은 계속되었다. 4월 21일 맨유와의 원정경기에서는 타이밍상 골키퍼와 완벽하게 맞설 수 있는 상황에서 뒤따라온 존 오셰이의 깊숙한 태클에 걸려 넘어지고 만 것이다. 페널티킥이 선언되어야 할 상황이었으나 주심은 오히려 맨유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후 경기를 거듭하면서 이동국이 득점 기회를 자꾸 놓치자 어느 때부터인가 동료들이 이동국에게 패스를 내주지 않았다. 패스를 받지 못하는 스트라이커처럼 불쌍한 상황은 없다. 동료들로부터 차가운 대접을 받게 되자 이동국의 플레이는 눈에 띄게 위축되었다. 결국 이동국은 시즌 종료와 함께 계약을 해지하고 한국으로 쓸쓸히 돌아왔다. 실력이 부족했다면 모를까 가진 실력의 반도 발휘하지 못하고 떠나야 했기에 아쉬움은 컸다.
2007년 8월 31일 설기현의 이적 뉴스가 나왔다. 2007/2008 시즌 개막 3주 만에 레딩을 떠나 풀럼으로 이적한 것이다. 이적 배경은 풀럼의 지휘봉을 잡은 로리 산체스 신임 감독의 구애였다. 설기현도 바라던 이적이었다. 아무래도 레딩보다 풀럼 쪽이 프리미어리그 클럽다운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결정적인 것은 풀럼의 훈련구장이 영국 내 최대 한인 커뮤니티가 자리 잡은 뉴 몰든의 옆 동네라는 점이다. 자기를 믿어주는 감독, 가족에게 안정감을 찾게 해주는 한인 커뮤니티, 계속되는 프리미어리그에서의 도전, 설기현의 풀럼 입단은 최상의 선택이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두 시즌을 보내는 동안 이영표는 성실하고 안정감 있는 플레이로 현지 팬들에게 꾸준한 평가를 받았다. 사실 이영표는 토트넘에서 별일 없이 지내다가 독일로 떠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어쩌면 박지성보다 더 심한 경쟁 속에서 치열하게 뛰었다. 이영표가 토트넘에서 활약하던 시기에 팀내 경쟁과 혼란은 여느 빅클럽 못지 않았다. 이영표가 프리미어리그에 데뷔한 2005/2006 시즌 토튼넘의 주전 레프트백은 이영표였다. 그러나 2006년 여름이 지나면서 심한 경쟁이 벌어졌다. 새로 영입된 아수 에코토가 시즌 전반기까지 이영표를 밀어내고 선발 기용된 것이다. 그러나 에코토가 계속 수비 불안을 드러내자 욜 감독은 다시 이영표 카드로 회귀했다. 꾸준하고 안정감 있는 이영표가 승리한 것이다.
2007년 여름 또 한 번 풀백 포지션이 들썩였다. '제2의 라이언 긱스'라는 가레스 베일이 영입된 것이다. 베일의 영입은 곧 이영표의 퇴출로 인식되었고, 시즌 초반 성적부진으로 욜 감독도 경질되었다. 하지만 신임 감독 후안데 라모스는 의외로 이영표를 중용했다. 포지션 경쟁자들도 하나씩 문제점을 드러냈다. 에코토는 프리미어리그의 템포에 적응하지 못했고, 베일은 수비 실력이 형편없었다. 12월 2일 베일은 버밍엄과의 경기에서 발목 인대가 찢어지는 큰 부상까지 당하고 만다. 팀 내 가장 경쟁이 치열했던 레프트백 자리에 이영표 홀로 남겨진 것이다. 운이 좋았다? 전혀 그렇지 않다. 이영표는 2007년 11월 29일부터 2008년 1월 12일까지 45일 동안 무려 13경기를 풀타임 소화했다. 살인 일정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묵묵히 수행한 것이다. 이영표는 팀 내 역학 구도가 어떻게 돌아가든, 감독이 누구든지 상관없이 항상 100% 컨디션을 유지했던 진정한 프로페셔널이었다.
2006/2007년 시즌 박지성은 무릎 연골 수술에 따른 재활로 인해 2007년 12월 겨우 실전 복귀했다. 열심히 재활하고 돌아왔지만 박지성은 1군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벤치를 지키는 경우가 많았다. 맨유에서 새로 영입한 선수들이 너무 잘했기 때문이다. 당시 맨유는 승승장구하면서 프리미어리그 선두를 지켰고, UEFA 챔피언스 리그 8강에도 올랐다. 8강 상대는 이탈리아의 강호 AS 로마였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박지성은 로마에서 열린 1차전에서 선발 출전하였다. 퍼거슨 감독의 의외의 카드였던 박지성은 후반 21분 끈질긴 플레이로 웨인 루니의 두번째 골을 도와 맨유 승리의 일등 공신이 되었다.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을 진정한 빅 매치 플레이어로 환골탈태시킨 최초의 경기가 바로 이날 경기였다. 새로 영입된 신입생들이 비싼 몸값을 증명이라도 하듯 화려한 기량을 뽐내면서, 자칫 "내 자리가 없어질 수도 있구나."라는 불안감이 엄습하는 상황, 그러나 예상 외로 찾아온 로마 원정 선발이라는 천금 같은 기회를 박지성은 완벽하게 잡아냈다.
제4장 한 걸음 쉬어가다 (2008/2009 시즌)
2008년 여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3년간 프리미어리그를 누리던 맏형 이영표는 독일 도르트문트로 이적했다. 미들즈브러 이동국은 K리그 성남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컴퓨터 패서 김두현은 잉글랜드 중부 명문 웨스트 브로미치 앨비언의 일원으로 새로 둥지를 틀었다. 설기현은 이적시장 막판 헐 시티의 영입제안을 뿌리치고 가족을 위해 풀럼에 잔류했다. 박지성은 여전히 유럽 챔피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일원으로 시즌을 맞았다. 맨유의 시즌 출발은 좋지 않았다. 시즌 초반 6경기에서 맨유는 1승 3무 2패의 초라한 성적을 거두었다. 반면 우승 경쟁자 첼시는 시즌 초반부터 대폭발했다. 9월 21일 두 팀이 만나기 전까지 첼시는 4승 1무를 거두고 있었다. 박지성의 새 시즌 출발도 삐걱거렸다. 무릎 통증 재발로 고전하다 9월 17일에야 비야레알과의 홈 경기에 선발로 출전하였지만 아직 몸이 올라오지 않은 듯 일찌감치 교체되어 벤치로 내려왔다.
그런 가운데 9월 21일 첼시 원정을 맞았고 박지성으로서는 반드시 뭔가를 보여줘야 할 판이었다.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을 왼쪽에 오언 하그리브스를 오른쪽에 배치하고, 대런 플레처와 폴 스콜스를 중앙 미드필드에 세웠다. 누가 봐도 공격보다 안전운행용 포메이션이다. 유럽 챔피언을 만들어낸 노장의 노림수는 그대로 적중했다. 이전 경기에서 상대를 매섭게 몰아치던 첼시의 좌우 날개 공격은 박지성과 하그리브스에 막혀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그리고 전반 18분 일이 터졌다. 에브라의 크로스를 베르바토프가 깔아 찼는데, 첼시의 수문장이 볼을 쳐내자 이를 문전 쇄도하던 박지성이 가볍게 밀어 넣어 선취점을 올린 것이다. 후반 30분 박지성이 교체되어 나오자 맨유 팬들은 모두 일어서 기립박수를 보냈다. "박지성, 네가 우리 팀의 선수라는 것이 자랑스럽다."라는 뜻이 담긴 진심이었고, 박지성도 원정 서포터스를 향해 두 손을 높이 들어 박수로 화답했다.
맨유는 2008년과 2009년 연달아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 진출했다. 남들은 창단 이래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영광의 무대를 2년 연속 발을 디딘 것이다. 전문가마다 의견이 다르지만 2006~2011년 기간은 맨유 역사상 최전성기라 할 수 있다. 이 기간 동안 맨유는 프리미어리그를 네 번 제패했고,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 세 번 올랐다. 그리고 그 안에는 한국인 선수 박지성이 있었다. 박지성 개인의 노력과 능력도 있지만 이렇게 창단 이래 최전성기를 구가하는 바로 그때 주축으로 활약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점에서 박지성은 천운을 타고난 영웅이라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