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고마워
고혜정 지음 | 공감
여보 고마워
고혜정 지음
공감 / 2012년 2월 / 248쪽 / 13,800원
결혼은 현실
"저기요, 죄송한데요. 저 애인 있는데…… 미안합니다." "그럼, 이 자리에는 왜 나오셨습니까?" "선배 언니가 하도 나가라고…… 가서 그냥 맛있는 거나 먹고 때우고 오라고 해서. 정말 죄송해요." "……." "그럼 전 이만." "잠깐 앉아보십시오." "……." "저 나쁜 사람 아닙니다. 사람이 백화점에 가서 옷을 사도 한 벌만 입어보고 결정하지는 않잖습니까. 그런데 하물며 결혼이라는 인륜지대사를 앞두고 어떻게 한 남자만 사귀어 보고 결정할 수 있습니까? 나도 나쁜 사람 아니니 사귀어보고 결정은 나중에 하십시오."
에고고, 그때 그 꾐에 넘어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남편과 나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선배 언니의 부탁으로 애인이 있던 나는 재미 삼아 소개팅 자리에 나갔다가 전 애인과는 헤어지고 이 남자와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다. 그때 쇼 프로그램의 작가를 하고 있던 나는 늘 말 많은 남자가 싫었다. 방송 일을 하며 만나는 사람들은 어찌나 다들 말들이 많던지 말 많고 잘난 척하는 것 같은 남자가 제일 싫던 나에게 말없이 그저 묵직하던 이 남자는 참 멋져 보였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그저 피식 웃거나, 살짝 고개를 끄덕끄덕 하고 말았으며 내가 무슨 얘기를 해도 'Yes' 아니면 'No' 간단한 대답뿐이었다. 대답도 명료했고, 어떤 일이 생겨도 절대 변명 없이 그저 미안하다, 잘못했다, 다시는 안 그러겠다, 그 정도로 끝내는 정말 말 없고 듬직한 남자였다.
그런 점에 반해 결혼을 결심하게 된 나, 그리고 그 곰 같은 남자와 함께 시작된 결혼 생활. 아이고, 맙소사! 내가 못살아, 못살아. 진짜 속 터져서 못살아. 무슨 남자가 표현할 줄도 모르고, 무슨 말을 해도 꿀 먹은 벙어리니 도대체 대화가 돼야 말이지. 상의하려고 얘기를 꺼내면 "당신이 알아서 해."가 끝이고 한참을 얘기하고 의견을 물으면 피식 웃고 마는 게 다고. 무슨 말 좀 하라고 하면 할 말이 없다는데, 진짜 답답하고 속 터지는 심정을 누가 알리요. 연애 때는 제일 장점이었고 제일 매력이었던 부분인데 결혼하고 나니 말수 없는 게 남편의 가장 큰 단점이 되어 나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결국 이 사람이랑 같이 살아야 되나 말아야 되나까지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니까.
그 대표적인 예로 시댁과 트러블이 있을 때 남편의 태도가 늘 나를 서운하게 했다. 사람마다 다 사는 얘기는 비슷하고,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문제없어 보여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다 문제가 있다고들 한다. 결혼 11년째인 우리 집도 남들이 보기에는 행복해 보이고 아무 문제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나는 결혼 후에도 계속 일을 했기 때문에 시부모님이 우리 두 아이들을 키워주셨다. 남들은 시부모님이 애 다 키워주고, 얼마나 편하고 좋으냐고 말들 하지만, 애 맡겨놓고 일하는 엄마들에게 물어보라. 그게 그렇게 좋기만 한 일인지. 여하튼 나도 시부모님께 애를 맡겨놓고 일을 했던 여자이기에 크고 작은 일들이 많았고 서로에게 섭섭한 일, 불편한 일도 많았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시댁과 별로 사이가 좋지 않은 며느리다. 서로 노력도 많이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잘 나가다가 꼭 한 번씩 집안이 시끄러워지는 날이 생기고, 그러고 나면 나는 울며불며 안 살겠다고 난리를 친다. 내가 그러는 이유 중에 제일 큰 것은 남편의 태도다. 다행히도 시어른들과 트러블이 있을 때마다 늘 그 현장에 있었기에 남편은 정확한 판단을 할 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어른들이 무슨 말씀을 하시면 남편은 그저 묵묵히 듣고만 있다. 나는 어른들의 말씀에 내 입장을 얘기한다. 아닌 건 아니다, 또 할 수 없는 건 할 수 없다, 하기 싫은 건 하기 싫다. 이렇게 내 의사 표현을 하고 나면 꼭 시어른들의 말씀은 내가 건방지다고 하고, 결국은 '네가 돈 번다고 유세 떠는 거냐?'라는 소리로 귀결된다.
지금까지 여러 번 시어른들과 말다툼이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남편은 가만있었다. 아무리 큰 소리가 오가도, 집안이 난리가 나도 남편은 앉은자리에 붙박이가 되어 고개만 푹 숙이고 있다. 그런 남편을 볼 때면 나는 섭섭하다. 자신의 부모 편도, 아내 편도 못 드는 난처한 입장이라는 걸 충분히 이해는 하지만, 최소한 상황이 극한까지는 가지 않게 남편이 좀 말려줬으면 좋으련만 남편은 그저 귀머거리처럼 앉아만 있다. 시어른들이 내게 "근본 없는 집안에서 자라서……."라고 말씀하실 때가 나는 제일 분하다. 내가 고아도 아니고 왜 자꾸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너무 분하고 약이 올라서 울고 소리 지르게 되지만, 남편은 그저 묵묵부답으로 가만히 있다.
그런 태도에 나는 남편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남편에게 정이 떨어진다. 시부모님께 대들면서 내 편을 들어달라는 게 아니라 최소한 그 상황 수습, 그러니까 하다못해 "제발 이러지 마세요." 또는 "그만하세요." 정도는, 아니, 그것도 힘들다면 차라리 나에게 막 화를 내서 쫓아내는 식으로 그 자리를 피할 수 있게 해줄 수 있지 않은가……. 그렇게 시어른들과 한바탕하고 나면 나는 매일매일 울면서 이혼하자고, 같이 살기 싫다고 남편에게 시위를 해댄다. 그때마다 남편의 반응은? '말 없음'으로 일관. 내가 말 좀 해보라고 소리를 지르면 "미안해. 너 볼 면목이 없다." 이게 다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고, 부부 싸움도 얘기를 해야 싸움이 되지, 혼자 울고 떠들다가 마는 꼴이라니.
그렇게 집안이 한번 뒤집어지고 나면 몇 달은 서로 왕래가 없다가 그래도 부모 자식 간인지라 잘못을 빌고 다시 왕래를 하고, 이러기를 여러 번이다. 공부하는 남편 대신 내 나름대로 생활 전선에서 열심히 일하며 사는데, 시어른들이 그걸 알아주기보다는 잘난 며느리 돈 번다고 유세 떠느냐는 말에는 정말 분해서 참을 수가 없다. "여자가 잘나니 남자가 놀고먹는다", "여자가 기가 세서 남편이 기를 못 편다."인데, 반대로 우리 친정집 식구들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딸은 일하고 있고, 사위는 몇 년째 공부하고 있는데 얼마나 속상하시겠는가. 그 잘난 아들이 저렇게 공부한다고 있는 모습에 시어른들도 짜증이 나서 그러실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사실 우리 부부는 아무 문제없이 각자 자기 능력껏 자기가 하고 싶은 일하며 만족하고 사는데 왜 정작 주위 사람들이 이렇게 난리인지 모르겠다.
다 좋다. 누가 뭐라 하든 틀에 박힌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우리 가족은 별문제 없이 살고 있으니 그것으로 됐다고 생각하기로 하자. 그런데 갈수록 남편에 대한 서운함과 배신감은 견딜 수가 없다. 돈안 벌어오는 것이 서운한 게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시어른들과의 전쟁터에서 나를 그냥 내버려두는 모습이 너무 싫다. 누구 편도 못 들고 고개 숙이고 있는 남편이 너무 싫고, 동정이 돼서 더 미워 죽겠다. 그런데 왜 지금까지 같이 사냐고? 아휴, 물어보나 마나지. 세상에 이혼하고 싶다고 바로바로 이혼해버리면 이 세상에 1년 이상 같이 살 부부가 어디 있겠는가? 남편은 그 외에는 장점도 많은 사람이다. 일단 애들에게 자상하고, 나에게도 참 잘한다. 집안일도 잘 도와주고, 우리 친정 식구들과도 잘 지내주니 고맙다. 내가 인정에 끌려 여러 가지 사고를 쳐놔도 남편이 이성적으로 잘 처리해준다. 말이 없는 대신 생각이 깊고, 뭐든 행동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별달리 큰 불만은 없다. 하지만 그래도 속 터지는 건 터지는 거다.
그래도 세월이 무섭긴 무섭나 보다. 아니면 나의 잔소리의 힘인가. 아이를 낳아 기르고, 10년 이상 살다 보니 이제는 말이 좀 많아졌다. 말주변이 없어 가끔 폭탄을 터뜨려 썰렁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이제는 제법 말도 많이 하고, 자신의 의사 표현도 한다. 한술 더 떠 개그맨 뺨치는 개그를 치기도 해서 우리 가족을 웃게 만든다. 개그콘서트와 웃찾사를 일부러 찾아보며 애들과 소통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남편이 고맙다. 그러나 그렇게 변한 남편도 시어른들과 나의 트러블에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남편을 이해하는 모습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리고…… 남편에게는 정말 미안하다. 어쨌든 남편에게는 소중한 부모인데 가장 가까운 아내가 자신의 부모와 불협화음을 내는 것은 남편에게도 참 힘든 일일 것이다. 그래서 늘 미안하다. 그러기에 나도 더 노력하려고 하지만 쉽지가 않다. 왜 이렇게 며느리와 시댁은 가까워지기가 힘든 걸까?
답장
내가 웃는다고? 내가 "괜찮아, 괜찮아." 하며 웃는다고? 믿었어? 그게 내 진심이라고 생각했어? 차라리 화내고 짜증내고 울라고? 그러면 뭐가 달라지는데? 미안, 내가 웃는 건, 나 자신에게…… 처량하고 불쌍해 보이는 내 자신에게 웃어주고, 괜찮다고 말하며 세뇌시키고 있었던 거야. 처음 자기가 공부하고 싶다고 했을 때 그 기막힘이라니. 사업부도 내놓고, 빚만 잔뜩 남겨놓은 상태에서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하면 난 어떻게 해야 되는 거였어? 우리 애들은 어떡해?
당신이 공부를 시작한 지도 벌써 6년째네. 처음에는 그렇게 막막하고, 눈물만 나더니 이젠 나도 많이 단련이 되었나봐. 이젠 걱정도 안 되고, 기대도 안 되고 그냥 모든 것을 하늘에 맡기기로 했어. 그냥 작은 것에 감사하며 살기로 하고 그렇게 살다 보니 정말 매사가 감사하고 이렇게 사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네. 천만다행으로 내가 경제적인 능력이 좀 있다 보니 더 마음이 너그러워진 걸까? 자기는 자기 좋아하는 공부하고 나는 나 좋아하는 글 쓰면서 애들 건강하게 잘 크고, 집 안에서 웃음소리가 넘치니 무엇을 더 바래. 당신의 출세, 그리고 나의 끝없는 명예욕. 그런 건 이제 다 욕심이라는 생각이 들고, 때가 되면 하느님이 다 주실 거라는 생각이 드네. 그저 나는 지금 이대로도 만족스럽고 행복해.
가끔 친구들이 남편 자랑을 하면서 당신 시험 얘기하면 자존심이 상하더라. 주변 사람들이 날 걱정해주는 듯 "변리사 시험 쉽지 않다던데 그만 포기하고 딴 거 하라고 해."라고 하면 괜히 화나더라. 우리 애들이 "왜 우리 아빠는 회사 안 가고 공부만 하냐."고 하면 속상하더라. 사람들이 "저 집은 남자는 놀고 여자가 돈 번다."고 하면 괜히 서러워서 눈물이 나더라. 매년 이번에는 되겠지 하는 기대로 견뎠어. 그러다가 시험 발표가 나고 자기가 안 된 걸 알게 되면 정말 땅이 푹 꺼지는 것 같고, 눈앞에 올챙이 같은 것이 왔다 갔다 하면서 머리는 띵하고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겠더라. 그럴 때마다 난 그냥 누구에게라고 할 것도 없이 입 속으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계속 중얼거려. 혼자, 미친 여자처럼.
우리 가족 건강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에게 능력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남편, 건강하고 자신감 잃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아들, 태권도 잘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딸, 키가 쑥쑥 자라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저녁에 찬밥 남기지 않고 다 먹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반신욕 할 소금이 잔뜩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괜히 그냥 생각나는 대로, 눈에 띄는 대로, 주워 붙여대며 감사하다고 막 중얼거리지. 혼자 한참을 그러노라면 나중에는 내가 한없이 처량한 생각이 들어서 눈물이 날 것 같거든. 그럴 때 나는 또 얼른 "저에게 이런 감성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중얼거리며 눈물을 흘린다. 자기 알잖아? 나 울보인 거. 걸핏하면 울고, TV 보면서도 잘 울고. 그런데 자기 시험 결과 나올 때만은 울 수가 없어. 내가 울면 자기는 어떡해. 나 아니면 아무도 자기 편이 안 되어주는 거 내가 잘 아는데. 그 나이에 사업 말아먹고 공부한다고 가족들도 혀를 차고, 친구들도 멀리하고, 그 좋던 인간관계는 어느 순간 정리되고, 오로지 나한테만 투정 부리고, 얘기하고, 나한테만 마음을 여는 걸 아는데. 내가 자기 시험 떨어졌다고 울고불고하면 자기가 얼마나 상심하겠어.
자기에게 다시 기회를 줘서 고맙다고? 사실 그게 잘한 걸까? 어쩌면 내 욕심인지도 모르겠어. 자기를 꼭 변리사 만들고 말겠다는 나의 허영 같은 거. 다행히 자기는 공부하는 걸 좋아하고, 다시 시작해보라는 말에 눈물까지 흘리며 고마워했지만, 어쩌면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고 나를 위해서인지 모르겠고, 내가 포기를 못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나 보고 웃고 있고, 낙천적이고 긍정적이라서 좋다고 하지만, 솔직히 나 정말 힘들어. 울고 싶을 때도 많고, 혼자 우는 때도 많아. 그런데 자기 앞에서는 안 울래. 그리고 당당하게 견딜래. 대신 자기 합격해서 돈 많이 벌고, 능력 있는 변리사 되면 평생 내가 뒷바라지했다는 빌미로, 내가 흘린 눈물이 한강이라고 공치사해대며 자기 꽉 쥐고 살래. 각오해.
내가 늘 웃고, "괜찮아, 괜찮아."라고 말한다고? 바보. 원래 그 웃음 뒤에 숨겨진 눈물의 강이 더 깊은 거야. 괜찮다고 말하는 그 가슴속의 슬픔이 더 넘치는 거라고. 지금은 참을게. 하지만 두고 보자. 내가 다 받을 거야. 이자까지 합쳐서. 자기야, 이번에는 꼭 합격해야 돼. 나, 너무 힘들어.
그 후 이야기
2006년 여름, 나는 열심히 『여보, 고마워』 원고를 썼다. 글이 잘 안 써져 예민해질 때마다 옆에 있는 남편에게 "뭐 잘해준 게 있어야 '여보, 고마워.'란 말이 술술 나오지. 내가 진짜 '여보, 이혼해.' 라는 글이라면 시리즈로 앉은자리에서 열두 편도 쓰겠다."라며 투정을 부리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내가 다 당신 글의 소재고, 이런 내가 있으니 당신이 또 그런 글도 쓸 수 있는 거야. 고마운 줄 알아." 하며 너스레를 떨던 남편. 참 좋은 사람이었고, 늘 나를 잘 이해해주는 사람이었기에 농담도 서로 잘하고, 즐겁게 잘 지냈다. 그렇게 그해 여름은 『여보, 고마워』 원고를 쓰느라 다 보냈다. 그리고 8월에 탈고를 하고 철없던 우리 부부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히히덕거리며 아이들 데리고 여행도 가고 맛집도 찾아다니며 놀았다.
그러던 9월, 건강검진을 하며 알게 된 남편의 위암. 청천병력 같았다. 그러나 놀라움도 잠시, 암이라는 병은 하루가 급하다는 말에 서둘러 수술 스케줄을 잡고 준비를 해나갔다. 9월 21일, 남편이 씩씩한 척 주먹을 들어 보이며 수술실로 들어갔고, 나도 아무렇지 않은 척, "한숨 자고 나면 다 끝나 있을 거야. 파이팅!"했다. 그러고는 수술실로 들어가는 남편의 침대를 보며 울며 돌아서는데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선생님, 지금 막 『여보, 고마워』 책 나왔어요. 책 보내드리려고 하는데 어디로 보낼까요?"
아무것도 모르고 전화해온 편집장의 목소리를 듣고 나는 목 놓아 울었다. 우리 남편이 지금 막 수술실에 들어갔다고. 우리 남편이 위암이라고. 나는 아직까지 한 번도 우리 남편에게 고맙다는 말도 못했는데 저 사람 못 깨어나면 어떡하냐고, 수술실에서 못 나오면 어떡하냐고. 두서도 없이, 마구 주절대며 울었다.
늦은 오후, 남편은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나에게 면회가 허락되었다. 내가 들어가니 우리 남편이 나를 알아보고는 내 손을 잡고 말했다. "우리 애기가 다시 한 번 날 살렸네. 여보, 고마워. 난 내 밥값도 못하고 만날 이렇게 당신 신세만 져서 어떡하냐?" 그때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자기야, 자기 수술하는 동안 책 나왔다. 이거, 바로 이 책! 있잖아, 이게 내 마음이야, 내 마음 알지?"
2008년 1월, 위암 수술 후 한 달에 한 번씩 정기검진을 받던 남편. 늘 병원에서는 건강하다고 완치나 다름없다고 말했었다. 그런데 한 달 전, 정기검진에서 이상하다며 재검을 하자고 했고 재검 결과 재발이었다. 온몸에 볍씨를 뿌려놓은 것처럼 암이 퍼져 있어서 도저히 손을 쓸 수 없는 상태라고.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약을 써도 독약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어떤 약도, 방법도 없다고. 어떻게 이런 일이? 분명 다 나았다고 했는데 한두 달 사이에 어떻게 이럴 수가? 믿기지 않았다. 의사들은 방법이 없다며 손을 놓아버렸고, 우리는 어이없어 하며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를 찾았지만 원인은 불분명하고 결과는 확실했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죽음을 기다릴 수는 없었기에 병원을 나와 좋다는 민간요법과 요양원을 찾아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