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을 읽을 권리
한윤정 지음 | 어바웃어북
명작을 읽을 권리
한윤정 지음
어바웃어북 / 2011년 8월 / 323쪽 / 16,000원
Chapter 1 명작, 또 다른 명작을 낳다
지극히 평범했던 어느 해에 관한 추억_ from 1984 to 1Q84
소련 스탈린주의에 대한 비판을 담은 정치 우화인 『동물농장』으로 명성을 얻은 조지 오웰은 죽기 1년 전 마지막 작품이자 대표작이 된 『1984』를 발표한다. 이 작품은 곧 20세기의 대표작 반열에 올랐고, 수많은 후배 예술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됐다.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 <시계 태엽 오렌지>와 워쇼스키 형제의 영화 <매트릭스>는 『1984』가 가진 전체주의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차용했다. 백남준의 1984년작 비디오아트 <굿모닝 미스터 오웰> 역시 오웰의 세계를 패러디한 것이며, 무라카미 하루키는 가장 직접적이고도 창조적 오마주인 소설 『1Q84』(2009년)를 내놓았다.
당신을 지켜보는 자의 시선: 『1984』의 묵시록적인 분위기는 지독하게 황폐하고도 정교한 배경 설정에서 나온다. 1984년의 가상국가 오세아니아는 영사(영국사회당)의 우두머리인 빅 브라더와 그 하수인들의 지배를 받고 있다. 정부조직은 정작 하는 일과는 정반대의 명칭을 가진 진리부, 평화부, 애정부, 풍부부로 구성돼 있다. 지배자들은 허황된 수치로 경제성과를 자랑하면서도 인민들을 굶주리게 하고, 세계를 삼분하고 있는 유라시아 및 동아시아와 끊임없이 전쟁을 벌임으로써 평화를 유지한다. 과거의 역사와 미래의 청사진은 현재에 맞춰 계속 변경되며, 반체제 인사는 고문을 통해 새로운 인간으로 개조된다.
주인공인 서른아홉의 남자 윈스턴 스미스는 진리부의 서기로서 역사 기록을 고쳐 쓰는 일을 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당의 현행 노선과 일치시키기 위해 과거의 신문기사를 수정하고 사진을 조작하는 게 그의 일로서, 벽에 달린 금속관을 통해 일거리를 전달받은 뒤 왜곡과 변경의 증거를 폐기한다. 극도의 빈곤과 규율 속에서 채워지지 않는 식욕과 성욕에서 나오는 조바심만이 당에 대한 충성을 유지시키기 때문에, 빅 브라더와 당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인간성을 극도로 말살한다.
그런데 윈스턴은 자신이 하는 일에 비판의식을 가질 뿐 아니라 줄리아라는 젊은 여성과 사랑에 빠진다. 당이 진실과 과거를 독점하는 데 대해 회의를 느낀 윈스턴은 과거에 빅 브라더와 혁명 동지였다가 이념적 차이로 결별한 뒤 형제단이라는 반체제 저항조직을 움직이는 골드스타인이라는 (조작된) 인물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 그는 형제단의 일원으로 보이는 오브라이언이 건네준 골드스타인의 『과두정치적 집단주의의 이론과 실제』란 책을 읽다가 당에 적발된다. 당의 첩자였던 오브라이언은 윈스턴을 고문실로 보낸다.
20세기의 독자들이 이 작품에서 가장 충격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텔레스크린이라는 전일적인 미디어 네트워크의 감시가 이뤄지는 사회체제, 그리고 개인이 아무리 발버둥쳐도 결코 그 체제의 바깥으로 빠져나갈 수 없다는 절망적인 사실이었다. 빅 브라더 일당은 자신들의 잔인성을 드러내는 문제점을 예방하기 위해, 피의자의 기억을 완전히 바꿔놓고 그가 새 인간으로서 살거나 혹은 죽도록 만든다. 체제 유지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죽음과 희생의 신화마저 제거하는 것이다.
악을 처단하는 건 무조건 '절대선'인가, 아니면 더 강력한 '또 다른 악'인가: 『1984』에 대한 오마주는 세기가 바뀐 뒤 무라카미 하루키에게서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났다. 하루키는 1995년 도쿄 지하철에서 발생한 옴진리교 신도의 사린가스 살포사건에 큰 관심을 갖게 됐다. 1984년은 옴진리교의 교주인 아사하라 쇼코가 '옴성산회'를 결성한 해이다. 소설 『1Q84』는 세계 속의 또 다른 세계인 사이비 종교집단의 본질을 고발한다. 여주인공 아오마메는 사이비 종교의 광신도인 부모와 결별하고 혼자 살아간다. 스포츠마사지 강사로 일하는 그녀는 막대한 재산을 가진 노부인을 알게 된다. 가정폭력 때문에 외동딸을 잃은 노부인은 안전가옥을 운영하면서 아오마메에게 폭력 남성을 죽이는 킬러 임무를 맡긴다. 어느 날 노부인의 집에 '선구'라는 종교집단의 리더에게 성폭행 당한 소녀가 들어오고, 노부인은 아오마메에게 리더를 살해하라고 지시한다.
한편, 아오마메의 초등학교 동창인 덴고는 후카에리란 소녀가 쓴 '공기번데기'란 소설을 윤문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사이비 종교집단의 실체를 리틀 피플이란 존재가 숙주의 몸에 드나드는 환상적인 이미지로 표현한 이 작품이 문학상을 받고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덴고는 신변의 위협을 받게 된다.
이 소설은 광신과 폭력이 난무하는 종교집단의 속성을 다루는 동시에, 소울메이트인 아오마메와 덴고가 서로를 찾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1984년의 현실과 나란히 존재하는 이곳을 아오마메는 '1Q84'라고 명명한다. 작가는 등장인물인 에비스노 선생의 입을 빌려 『1984』와 『1Q84』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자네도 잘 알겠지만, 조지 오웰은 소설 『1984』에서 빅 브라더라는 독재자를 등장시켰어. 그리고 빅 브라더라는 용어는 그 이후 일종의 사회적 아이콘이 되었네. 만일 지금 우리 사회에 빅 브라더가 출현한다면 우리는 그 인물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하겠지. '조심해라. 저자는 빅 브라더다!'라고. 다시 말해 실제 이 세계에는 더 이상 빅 브라더가 나설 자리는 없네. 그 대신 이 리틀 피플이라는 것이 등장했어."
죽은 산양의 몸에서, 사이비종교의 교주에게 성폭행 당한 소녀의 몸에서 쏟아져 나오는 리틀 피플은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이며 "선한 것인지 악한 것인지, 실체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 수 없는 것이다. 하루키는 인간사회의 악의 근원이 오웰이 지적했던 바 독재자가 구축한 체제로부터 그 체제를 유지하는 평범하고 의식 없는 인간들로 이행됐음을 선포했다.
지금 우리가 속한 사회도 빅 브라더가 구축한 사회와 크게 다를 바 없다면, 그리고 우리의 존재가 그 체제를 유지하는 데 급급한 지극히 평범하고 의식 없는 인간이라면, 이미 우리 안에도 악의 근원이 뿌리내려진 건 아닐까? 오웰의 지적대로라면, 하루키의 선포대로라면.
Chapter 2 명작, 텍스트와 이미지로 태어나다
수도자와 소년의 아름다운 인연_ 오세암 / 마르셀리노의 기적 /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무소유'로 한 시대를 풍미한 법정 스님은 열반하면서 "내 머리맡에 남아 있는 책을 나에게 신문을 배달한 사람에게 전하여 주면 고맙겠다"는 유언을 남겼다. 스님의 제자들이 찾아낸 그 소년은 스님이 서울 봉은사에 머물 당시 종무소에 배달된 신문을 스님의 처소까지 가져다 드리고 어깨도 주무르면서 스님의 귀여움을 받았다고 한다.
금욕과 수도생활을 하는 종교인에게 어린아이의 천진난만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을 준다. 세상의 때가 묻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마음을 지닌 아이들은 종교인이 추구하는 이상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나 종교인의 처소는 소년이 어른으로 자라기에는 너무 심심하고 부족한 게 많은 곳인지도 모른다. 순백의 영혼이 천상의 부름을 받거나 타락한다. 그래서 이들이 등장하는 작품 속 이야기의 끝은 늘 애틋하고 가슴 저린다.
하늘의 모습을 한 어린아이: 동화작가 정채봉이 쓴 동화 『오세암』은 원래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작가가 설악산 백담사의 부속 암자인 오세암에 얽힌 전설을 듣고 이를 동화로 고쳐 쓴 것이다.
스님은 눈발이 날리는 포구에서 거지 남매를 만났다. 이들이 얼어 죽을까 봐 걱정이 된 스님은 부모 잃은 조카들이라고 하기로 하고 아이들을 절로 데려간다. 감이는 부엌일을 거들면서 그럭저럭 밥값을 하는 반면에 길손이는 장난이 심해 젊은 스님들의 미움을 받는다. 그러자 스님은 마등령 중턱의 관음암으로 공부를 하러 떠나면서 길손이에게 함께 가자고 한다. 스님으로부터 공부를 하면 마음의 눈을 뜰 수 있다는 말을 들은 길손은 "바람도 보고 하늘 뒤란도 보고 싶다"면서 따라나선다.
암자에 도착한 길손은 심심한 나머지 여기저기를 뒤지다가 문둥병 걸린 스님이 머물렀다는 방문을 연다. 거기에는 머리에 관을 쓰고 연꽃 잎 위에 선 관세음보살의 그림이 걸려 있다. 엄마를 만나는 게 소원인 길손은 관세음보살을 엄마라고 부르면서 음식을 바치고 재롱도 떤다. 그러던 어느 날 스님은 한겨울이 닥치기 전에 양식을 구하려고 장터에 가면서 길손에게 "무섭거나 어려운 일이 생기면 관세음보살님을 찾으라"고 말한다.
돌아오던 길에 폭설을 만난 스님은 조난을 당하고 쌓인 눈 때문에 길이 막힌 나머지 50일이 지나서야 감이와 함께 암자에 도착한다. 길손이 죽은 줄로만 알았던 스님은 법당문을 열고 걸어 나오는 아이와 마주친다. 놀란 스님에게 길손은 "엄마가 오셨어요. 배가 고프다 하면 젖을 주고 나랑 함께 놀아 주셨어요"라고 말한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뒷산 관음봉에서 내려온 하얀 옷을 입은 여인은 "이 어린아이는 곧 하늘의 모습이다. 티끌 하나만큼도 더 얹히지 않았고 덜하지도 않았다. 오직 변하지 않는 그대로 나를 불렀으며 나뉘지 않은 마음으로 나를 찾았다. 이 아이는 부처님이 되었다"고 말한 뒤 파랑새가 되어 날아간다. 그리고 길손은 엄마 품에 안긴 듯 편안한 얼굴로 죽어 있었다.
『오세암』은 관음영험설화를 바탕으로 하는데, 서양에서도 비슷한 전설이 내려온다. 스페인의 한 수도원에서 일어난 마르셀리노의 기적은 오세암의 전설과 놀라우리만큼 유사하다. 이 이야기는 스페인 영화 <마르셀리노의 기적>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아이를 향한 신의 축복은 왜 슬플까: 어느 날, 수도원 앞에 갓난아이가 버려진다. 수사들은 성인 마르셀리노의 이름으로 세례를 준 뒤 아이의 부모를 찾아보고 마을에서 맡아 키울 집도 물색하지만 형편이 닿지 않자 직접 키우게 된다. 마르셀리노는 5살 무렵까지 바깥세상과 격리된 채 수도원 안에서 수사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자란다. 그러다가 들에서 예쁜 아줌마를 만나고 그녀에게 마누엘이란 아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 누구에게나 엄마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날 이후 마르셀리노는 마누엘을 친구로 삼아 대화를 나누고, 본적도 없는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키워나간다. 수사들이 정성껏 보살피지만 아이의 외로움은 깊어간다.
더욱 외로워진 마르셀리노는 수사들이 절대 가지 말라던 다락방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머리에 가시관을 쓰고 손에 못이 박힌 채 고통스럽게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예수를 만난다. 마르셀리노는 충격과 두려움을 느끼지만 곧 예수가 배가 고파 보인다고 생각한다. 꼬마는 수사들 몰래 빵과 포도주를 가져다가 예수께 드리고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며 머리의 가시관을 벗겨낸다. 이런 그를 기특하게 여긴 예수는 '빵과 포도주의 마르셀리노'란 이름으로 축복을 내린다. 그러나 엄마를 향한 마르셀리노의 그리움을 커져만 간다.
어느 날 마르셀리노의 행동을 수상하게 여긴 수사들은 다락방으로 가는 아이의 뒤를 밟았다가 믿기 힘든 장면을 목격한다.
예수: 마르셀리노야, 가까이 오렴. 네가 착한 일을 했으니 선물을 주고 싶구나.
마르셀리노: 엄마가 보고 싶어요. 예수님의 엄마도요.
예수: 그러려면 깊은 잠을 자야 한단다.
마르셀리노: 지금은 잠이 안 와요.
예수: 내 품에 안기면 잠들 수 있단다.
마르셀리노: 좋아요.
예수는 아이를 너무 사랑해 일찌감치 천국으로 데려간 것이다. 이 영화에서 손등에 못 자국이 선명한 예수가 손을 내밀어 마르셀리노가 건네는 빵을 받는 장면이나 아이를 안아준 뒤 십자가로 올라가는 장면은 신비롭기만 하다.
운명은 계절처럼 반복된다: 소년과 스님이 등장하는 또 다른 영화로는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있다. 이 작품은 사계절의 순환에 따라 고집멸도라는 불교의 근본 원리를 풀어낸다. '고'는 생로병사의 괴로움, '집'은 '고'의 원인이 되는 번뇌의 모임, '멸'은 번뇌를 없애는 깨달음의 경계, '도'는 그 깨달음의 경계에 도달한 수행을 가리키는 말로 세속의 괴로움을 극복하고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집약한 것이다.
스님과 둘이 사는 아이는 늘 심심하다. 배를 타고 절 바깥으로 나가는 스님을 따라서 나물을 캐러 간 아이는 물고기와 개구리와 뱀의 허리에 돌을 매달아 놓는다. 아이의 장난을 지켜본 스님은 "물고기와 개구리와 뱀 중 어느 하나라도 죽었으면 너는 평생 동안 그 돌을 마음에 지니고 살 것이다"라고 꾸짖는다. 아이는 부리나케 달려가지만 동물들은 이미 죽었다.
소년이 된 그의 앞에 어느 날 소녀가 나타난다. 소녀의 어머니는 이름 모를 병을 앓는 소녀를 스님에게 맡기고 돌아간다. 소년과 소녀는 사랑에 빠진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스님이 소녀를 쫓아내자 소년은 소녀를 찾아 떠난다. 그러나 사랑은 어느새 시들고 청년이 된 소년은 간음한 아내를 죽이고 암자로 도피한다. 사랑이 집착으로 변한 것이다. 추적해 온 형사들에게 체포되기 전에 그는 스님의 지시에 따라 암자 바닥에 반야심경을 새기면서 마음을 다스린다.
추운 겨울 형기를 마친 청년이 다시 암자로 돌아온다. 그는 노승의 시신을 거두어 다비장을 치르고 불당을 정리한다. 젊은 날의 죄를 씻어내려는 듯 그의 용맹정진은 끝이 없다. 어느 날 밤에 보자기로 얼굴을 가린 여자가 아이를 버리러 온다. 그 여자는 소년을 암자에 버린 어머니이자 그의 첫사랑 소녀, 간음했다가 그의 손에 죽은 아내이기도 하다. 밤새 고통으로 흐느끼다가 새벽에 길을 나서던 여자는 얼음이 꺼지면서 물에 빠져 죽는다. 어김없이 돌아온 봄날, 아이는 이제 암자의 주인이 된 스님이 어린 시절에 한 것과 똑같이 물고기와 개구리와 뱀의 허리에 돌을 매다는 장난을 친다.
영화 속의 아이와 스님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다. 스님은 아이에게서 자신의 과거를 보며, 아이의 미래는 스님을 닮아가는 과정이다.
Chapter 3 명작, 이념과 가치관에 고뇌하다
우리는 지금과 다른 세상을 꿈꾼다_ 은어낚시통신 / 제49호 품목의 경매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결국 생물학적 본능: 윤대녕의 단편 『은어낚시통신』(1994)은 나비의 날갯짓처럼 경쾌한 흐름 속에 적지 않은 변화의 조짐을 담은 작품이다. 신선하면서 시적인 문체로 '은어낚시모임'이라는 소외된 자들의 비밀조직을 그린 이 소설은 현실과 꿈을 넘나드는 듯한 환상성, 모든 체제의 억압을 거슬러 생명의 근원에 도달하고자 하는 생태학적 상상력을 선보여 놓은 평판을 받았다. 모천회귀의 본능을 가진 '은어'의 존재를 통해 사람을 움직이는 힘의 원천이 이성이나 의지가 아니라 생물학적인 본능에 있음을 보여주는 이 작품에서 인간이 지고의 존재라고 생각해온 인본주의적 가치관은 '인간은 벌레다'라는 가치관으로 변화한다. 여기에는 생태주의, 포스트휴머니즘 같은 새로운 가치들이 들어 있다.
『은어낚시통신』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서른 살의 '나'는 삶에 지쳐 있는 프리랜서 사진작가다. 예술사진으로 별다른 빛을 보지 못한 후 광고사진을 몇 년 하다가 그것도 지겨운 생각이 들던 차에 평소 안면이 있던 신문사 사람의 제안으로 전국의 낚시터를 안내하는 '길 따라 물 따라'라는 연재기사를 쓰면서 풍경사진으로 진로를 바꾸는 중이다. 어느 날 저녁 나는 아파트 우편함에서 발신자가 '은어낚시통신'이라고 찍한 편지를 발견한다.
"지난 여름 귀하께서 신문에 게재하신 은어낚시 기사가 우리들 중 한 사람으로 하여금 귀하를 우리 모임에 참석시키자는 제안을 하도록 했습니다. 귀하께서는 수년 전 한 여자와 만나고 또 헤어진 기억이 있으실 겁니다. 만일에 그 사람을 기억하시게 되고 더불어 만나고 싶으시다면 아래에 적힌 날짜와 시간에 지정된 장소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저희는 암호를 교환하는 방식으로 만나고 있는 익명의 지하집단입니다. 은어는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문장紋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