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새로운 길을 만들다
전은경, 김민희, 임나경 지음 | 나무생각
청춘, 새로운 길을 만들다
전은경, 김민희, 임나경 공저
나무생각 / 2011년 11월 / 240쪽 / 13,000원
#1 열정_ 청춘, 인생을 불태우다얼굴에 선을 긋고 세계로 비상하다! 수제 안경 전문가 황순찬
사진 한 장으로 수상의 영광을 안은 작품 '하나': 세계적인 디자인 대회에 작품이 아닌 사진만을 달랑 보냈다고 하면 대부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을 게 뻔하다. 대회의 특성상 제출한 작품은 반환되지 않으니 어렵게 공들여 만든 작품을 잃고 싶지 않았단다. 안경을 상품이 아닌 작품으로 디자인했기에 상을 받지 못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은 확고했다. 수상의 영광을 안은 작품명은 '하나'. 대학원 장신구 수업 때 남자 액세서리로 만든 첫 작품이었다. 여러 액세서리 중 무엇을 만들까 고민하다가 스스로를 위한 장신구를 만들기로 결심했고, 분신처럼 쓰고 다니는 안경을 새롭게 디자인하기로 했다. 가볍고 부식이 되지 않는 85cm 티타늄 한 가닥을 이용하여 섬세한 라인이 돋보이는 안경을 만들었고, 한 가닥으로 만들었다고 하여 '하나'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작품의 소재로 티타늄을 고른 것은 안경의 특성상 손이 많이 닿는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티타늄이 시간의 흐름과 잦은 접촉에도 변형이 없는 성질을 가졌기 때문이다. 결국 젊은 금속공예가의 선택은 성공적이었고 '하나'는 교수들에게 인정받는 작품이 되었다.
"같은 디자인이어도 안경의 컬러가 조금씩 다른데, 이는 다른 온도의 열처리를 통해 나온 티타늄 고유색입니다. 이렇게 수제로 작업을 하다 보니 같은 디자인이라 하더라도 똑같은 모양을 낼 수 없고, 착용하는 사람에 맞춰 제작되기에 모방이 불가능한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제품이 탄생하게 되죠. 단점이라면, 다리가 접히지 않아 보관하는 데 다소 어려움이 있어요."
그렇다고 착용 시에도 불편할 것이라는 선입견은 버리자. 제작 이후 스스로 1년간 쓰고 다녔는데, 프레임이 코 가운데 정확히 맞기 때문에 안경 쓴 것을 잊은 채 잠자리에 들 정도로 착용감은 우수하다.
대학원 시절 얻은 아이디어 이후 '금속공예를 접목한 안경'에 대한 공부는 계속되었고, 대학원 졸업 논문도 '안경 프레임'을 소재로 썼을 정도로 심도 깊게 연구해 나갔다. 그러다가 대학원 졸업 전 해인 2008년, 신사동 도산공원 부근에 국내 최초 수제 안경 스튜디오를 열었다. 안경테를 연구하고 스튜디오를 열면서 안경으로 받을 수 있는 상을 찾았지만, 작품을 인정받을 만한 권위 있고 독자적인 안경 디자인 대회는 찾기 힘들었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레드닷'의 '안경부문'에 출품하였는데, 수상의 영광을 안은 것이다.
세련된 외관과 현대화된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스튜디오의 이름은 '얼굴에 선을 긋다'이다. 안경의 기계적인 분위기를 '그림을 그린다'는 표현으로 대체하여 부드러우면서 감각적인 브랜드명으로 완성시켰다. 사람들은 스튜디오 앞을 지나다가 안경원인지 갤러리인지 궁금해 "도대체 뭘 하는 곳이냐?"며 들어오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스튜디오에는 사람 얼굴 형상을 한 10개 남짓한 철재에 걸린 안경들이 전부다. 수제 제품에는 '고가'라는 단점이 있어 1년에 팔리는 건 20~30개 안팎이다. 그나마 상황이 좋아진 것으로 얼마까지만 해도 이에 훨씬 못 미치는 판매율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앞으로의 가능성을 믿고 수공예 안경의 독자성과 가치를 내다본 아버지의 지지가 없었다면 스튜디오 운영이 불가능했을 정도다. 그의 안경에 대한 자신감과 열정도 한몫했다. 안경이라는 디자인 자체가 사람에게 가장 근접해 있고, 첫인상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장식품이기에 그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쓰임새, 모양에 따라 다른 세상에 하나뿐인 안경들: '레드닷' 수상 덕분에 유명해진 '하나' 이외에 그가 디자인한 제품들은 또 어떤 것들이 있을까. 오랜 시간 금속공예와 결합된 안경 디자인을 연구한 덕분인지 제품은 생각보다 다양했다. 하나, 그리, 가갸, 도도, 어리마리, 멀어지다, 나는 해지우다, 옛, 뾰두라지…… 안경 제목들이 모두들 예사롭지 않다. 알고 보니 모두 한국식 이름으로, 만들 때의 느낌이나 쓰임새, 혹은 모양에 따라 붙인 것들이다. 가장 안경스러운 안경 '가갸'는 한글의 모음에서 따왔으며, '그리'는 친구들과 MT 가서 마카로 얼굴에 낙서했던 아이디어에서 얻은 제품으로 펜으로 그린 듯 자연스러운 테의 굵기가 재미있다. 남다른 개성을 추구하는 남학생들에게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어리마리'는 잠이 푹 들지 않은, 정신이 흐릿한 모양을 가리키는 형용사. 그런가 하면 디자인할 당시의 감성이 담긴 '멀어지다'는 인터뷰 시 그가 쓴 안경이었다. 도도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도도'나 코걸이가 독특하여 고전적인 느낌이 나는 '옛' 등도 있다. 그 중에서도 작가가 제일 좋아하는 이름은 '나는 해지우다'로 '나는'은 '날다'라는 의미이며, '해지우다'는 선글라스를 가리키는 것으로, 비행기 조종사들이 사용하는 보잉 선글라스를 뜻한다.
"수제 제품이다 보니 이름이 정해진 몇 개의 모델 이외에도, 의뢰에 따라 디자인 작업을 해드리기도 하죠. 그렇게 해서 나온 게 바로 '뾰두라지'입니다. 이 안경은 메이크업 아티스트 조성아 씨가 특별히 주문을 의뢰해서 제작된 것으로 콘셉트에서 완성까지 3개월이 걸렸답니다."
뾰두라지는 복고, 가벼움,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 이렇게 세 가지 조건을 가지고 몇 번의 수정 끝에 만들어진 제품이다. 안경 윗면을 장식한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은 손으로 일일이 붙여서 만들어 개성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그의 수제 안경들은 대부분 고객과의 협의를 통해 디자인을 정하고 제작에 들어가는데,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 디자인이 정해지면 도면을 그리고 모델링해서 사용하는 사람에 맞춰 몇 차례의 수정 기간을 거치기에 통상적으로 1~2주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수공예 안경은 순도 99.9%의 티타늄 판재와 와이어로 제작되며, 티타늄은 가볍고 변형이 없어 환영받는 대신 가공의 어려움을 몇 단계 거쳐야 한다. 이렇게 오랜 수정 끝에 완성된 제품에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안경을 나타내는 로고와 상품명이 왼쪽 안경다리에 새겨진다. 그리고 반대쪽 안경다리에는 영문으로 'Drawing on Face'라는 문구를 새겨 넣는다.
마지막 단계로 제휴를 맺은 안경원에 가서 시력에 따라 렌즈를 맞추면 드디어 수제 안경 하나가 완성되는 것. 제작 초기 단계부터 완성까지 수공예 안경으로서만의 가치를 느끼게 해주는 과정들이다. 사람 얼굴에 따라 달라지는 안경 디자인을 연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긴 습관은 사람들의 두상 구조를 관찰하는 거다. 관찰하기 가장 좋은 장소는 버스와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 안. 사람들의 모습 하나 하나를 관찰하며 두상이나 얼굴 형태에 따라 어울리는 안경테를 연구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유행하는 디자인까지 파악할 수 있으니 가장 좋은 연구실이 된다고 한다.
세계적인 안경 브랜드를 향한 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렴하게 대량 생산되는 중국산 안경이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를 휩쓸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저렴함을 내세우며 공장에서 똑같이 찍어낸 제품 대신 자신만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일명 명품 브랜드를 선호하는 시대로 변화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황순찬 작가의 수제 안경은 외국에서 반응이 꽤 좋다. 이미 유럽에서도 호평을 받은 상태이며, 2009년 10월에 열린 '일본 IOFT 안경 박람회' 참가에 이어 2010년 뉴욕컬렉션에서 국내 디자이너 정구호의 '헥사바이구호(HEXA by Kuho)' 모델들이 착용하면서 관심이 높아졌다. 이를 계기로 다양한 패션 브랜드들로부터 함께하자는 러브콜을 받기도 했다. 산업디자인 분야를 선도하는 선진국들을 볼 때, 수제품에 작가의 예술성과 창의성이 더해져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꽃피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점에서 그의 안경은 상품이라는 한정적 시각에서 벗어나 작품과 수제라는 예술적 시각을 가지고 있기에 세계적인 브랜드로 부상할 조건들을 갖추었다. 그런 상품적 가치를 미리 알아본 그는 몇 년 전 '얼굴에 선을 긋다' 상표등록을 마치고 차근차근 계획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2 행복_ 청춘, 인생의 주인공이 되다 규칙도 두려움도 없이, 라이프스타일 전문 기자 이여영
촛불 필화 사건의 주인공: '세상 모든 사람의 방식과 유행을 전한다'는 이여영의 블로그에서 눈에 띈 콘텐츠는 라이프스타일 리포트와 맛집, 와인 막걸리 정보였다.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해 보면 흔한 게 생활 문화와 맛집 정보인 것 같지만, 막상 찾으려면 제대로 된 정보를 만나기가 어렵다. 요즘엔 전문 기자 뺨치는 블로거도 많기 하지만, 이여영은 정보를 다루는 솜씨가 일반 '블로그 활동'과는 좀 다르다 싶었던 것, 블로그용으로 '사진발'과 세팅에 공들이기보다는 백화점에서 사온 갖가지 음식을 신문지 위에 턱 올려놓고 먹는 털털함도 마음에 들었다. 한여름에 와인과 피자를 싸들고 집 앞 공원으로 피크닉을 갈 만큼 여유롭게 즐길 줄도 알고, 막걸리 카테고리를 따로 만든 것을 보니 막걸리도 무척 좋아하는구나 싶었다.
갈수록 블로그 주인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촛불 정국 당시 인터넷을 달군 화제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몰랐는데, 이제 서른을 넘긴 이여영은 《헤럴드미디어》, 《중앙일보》기자 출신이었다. 《중앙일보》 시절 라이프스타일과 트렌드 전문 기자로 활동하면서 인터넷의 변화무쌍한 관심사와 잡지의 다채로운 기획을 전통적인 신문에 접목시키려 했으며 〈J-스타일〉 지면은 그 실험의 결정판이었다. 그러나 2008년 8월 촛불 집회를 둘러싼 소속 언론사의 보도 방향을 두고 '중앙일보가 기록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라는 항의성 글을 올렸고, 그로 인해 회사를 떠나야만 했다. 아니, 잘렸다고 해야 할 것 같다. '20년 후 어느 날 잠에서 깨 머리를 부여잡고 지독하게 후회할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한 일이었고 어느 정도 각오를 하고 있었지만, 분명 직장생활에 열중하고 있던 20대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웠을 시련의 시간이었다. 5년여의 직장생활과 이별해야 했지만, 그로 인해 더욱 성장한 이여영은 프리랜스 기자로 당당하게 독립해 각종 매체에 글을 쓰고 있으며 KBS 〈책 읽는 밤〉의 패널, 자신의 이름을 내건 KBS 인터넷 프로그램 〈이여영의 아지트〉진행자로서 열심히 활동해 왔다.
이여영이 처음부터 정치적 선동이나 투쟁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잘 먹고 잘 사는 법에 더 관심이 많았으며,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직장 문화에 실망하면서도 그곳에서 성공하려고 애쓰던 20대 직장인이었다. 그러나 그 사건을 겪으며 잘 먹고, 잘 마시고, 잘 놀고, 잘 일하기 위해서는 사회와 정치에 눈감아서는 안 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 후 이여영 자신이 학교를 졸업하고 한 명의 책임감 있는 사회인으로 성장하기까지 사회생활 초반부에 치렀던 혹독한 수업에 관한 내용을 담은 『규칙도, 두려움도 없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규칙도, 두려움도 없이 나아갈 것: 20대는 실수하고 배우는 시기임에도 사회는 그런 모든 시행착오를 너그럽게 받아들여주지 않는다. 혼자 알기 아까운 사회생활의 처신술을 담은 이 책은 '20대 여자와 사회생활의 모든 것!'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20대 여성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반드시 유념해야 할 것들을 다뤘다. 그래서 그녀는 마치 여동생에게 얘기해 주듯 회사 갈 때는 어떤 구두와 옷을 입어야 하는지, 회사에서 중요한 일은 꼭 문서로 남기고 자신 없는 일은 말로 때우는 것이 좋으며, 사표를 낼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회식에서 사장님에게 잘 보이고 싶으면 오른쪽 대각선 쪽에 앉으라는 등 세세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주요 독자인 20대 여성의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물론 이여영도 처음부터 사회생활을 여우같이 잘했을 리 만무하다. 그녀의 사회생활 입문 역시 여느 20대처럼 녹록지 않았다. 서울대를 나왔고, 슈퍼모델 출신이라는 '부러운' 배경 이면에는 수백 장의 자기 소개서를 쓰고 백 번이 넘는 면접 탈락을 겪은 끝에 간신히 기자가 된 사연이 있었다. 학교에서 절대 가르쳐준 적 없는 사회생활 생존전략을 스스로 익히며 헤쳐나가야 했던 직장생활은 험난하기 짝이 없었다. 옷차림만으로 자신이 가진 능력과 열정을 평가절하당하거나, 선배로부터 황당한 모욕을 받고도 참고 웃어야 했고, 실력이나 노력보다는 그저 여자들의 소집단 취급을 당했던 어이없는 상황도 겪어야 했다. 그것도 지성인 집단이라 불리는 언론사에서 말이다. 그래서 더 분개할 수밖에 없었다. 이여영이 겪은 일들은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들이라면 한 번쯤 경험했을 만한, 절대 공감 가는 얘기들이다. 이여영은 이런 상황을 겪는 20대 여성이 더 이상 없기를 바랐다. 그래서 규칙도, 두려움도 없이, 바로 거기서 시작되길 바라는 마음을 고스란히 책에 담아냈다.
미래형 언론의 영역으로: 프리랜스 기자들이 정치 경제 문화 전 분야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외국과 달리 국내에서는 특정 언론사에 소속되지 않은 프리랜스 기자가 전문 기자로 인정받으며 자리잡기가 쉽지 않다. 명함 한 장이 많은 것을 말해 주는 영향력 있는 신문사 기자였다가 혼자서 동분서주해야 하는 지금,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기성 언론사에서 쫓겨나고서도 저널리스트로서의 꿈을 접은 적이 없었단다. 아니 오히려 더욱 강렬해져 언론의 영역을 좀 더 넓게 생각하기로 했다. 몸집이 크고 구태에 젖은 현재의 언론이 차지하는 영역이 아닌, 미래형 언론의 영역으로, 그래서 뉴스의 취사 선택과 취재 기술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꾼 기자가 되겠다는 야무진 꿈을 꾸게 되었다. 그 시작으로 온라인 기반의 라이프스타일 전문 팀 블로그 '이여영의 아지트'를 개설했다. KBS 온라인에서 진행하다 최근 막을 내린 프로그램의 이름을 그대로 살린 것으로 '비밀스러운 공간'이라는 뜻도 있지만, 아름답고 지적인 트렌드라는 함축적인 의미를 담아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를 소개하는 공간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많은 사람들이 포털 사이트를 통해 신문을 보는 세상이고, 트위터를 비롯한 소셜 미디어와 파워 블로거의 영향력이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기존 언론과의 구별 짓기 자체가 의미 없는 날도 곧 오겠죠."
2009년 말 『규칙도, 두려움도 없이』를 출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가졌던 인터뷰 이후, 불과 몇 달 사이에 이여영은 일을 또 저질렀다. 지난 2010년 자신이 늘 놀고 먹던 홍대 부근에 막걸리 전문점 '월향'을 차린 것. "막걸리를 정말로 좋아해요. 자주 드세요. 변비도 싹 사라진다니까요." 먹고 마시는 일을 즐긴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으나 막걸리를 좋아하는 줄은 몰랐다. 월향은 자본도 설미도 없이 열정 하나로만 시작한 곳으로, 같은 이름의 유기농 현미 막걸리를 빚는 이상철을 돕기 위해 팔을 걷고 나선 결과다. 이제는 막걸리 좋아하는 사람치고 월향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다. 게다가 이여영은 월향을 운영하는 일이 '힘들지만 보람 있다'가 아니라, 너무 재미있고 즐겁단다.
얼마 전에는 30명의 인터뷰를 엮은 『일등이 아니어도 괜찮아』를 냈다. 신문사에서 해고된 후 삶에 지쳤다고 느낄 즈음 《미디어 오늘》의 '이여영의 사람 찾기'를 통해 만났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다른 사람들에게 '재연 배우'로 불리고 생업을 위해 학원 강사까지 하지만 정작 자신은 행복하다는 배우 이중성, 고졸 출신에 배경도 빽도 없지만 당당히 유럽에서도 인정받는 패션 디자이너 최범석, 시리즈마다 높은 시청률을 올리는 〈막돼먹은 영애씨〉의 PD 박준화 등 30여 명을 만났고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위안과 희망을 얻었다고 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규칙도, 두려움도 없이' 씩씩하게 살아갈 이여영이 어떤 비난이나 공격에 굴하지 않도록 맷집도 더 세지길 바란다. 기존 규칙에 얽매이거나 상처받지도 말고, 게임의 룰을 스스로 만들어가면서, 사람 모으는 것 좋아하고, 막걸리 좋아하고, 일 벌이기 좋아하는 그녀라면 잘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