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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와 바나나

손은혜 지음 | 에이지21
홍차와 바나나

손은혜 지음

에이지21 / 2011년 9월 / 343쪽 / 13,000원



홍차의 눈물, 눈물의 전쟁




긴장과 설렘의 이중주_ 2010년 9월 13일 새벽 2시

첫 문장을 쓰는 손끝에 긴장감이 가득하다. 드디어 시작이구나. 처음 국제부에 와서 <현장보고> 팀에 가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출장길에 오르기까지,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정말 많이도 물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제 시작인데, 벌써 아주 먼 길을 돌아온 느낌까지 든다. 첫 번째 출장지인 스리랑카에 도착했다. 축축한 공기가 온몸을 파고드는 작은 숙소 안에 혼자 누워 있다. 긴긴 여정을 돌아온 만큼, 내일부터 촬영이 시작된다는 것도 잘 실감이 나지 않는다. 고요한 숙소 안에 누워 바로 앞 해변에서부터 전해오는 파도 소리를 듣는다. 나는 어떻게 이곳까지 오게 됐을까.

출장길의 시작: 스리랑카로 오기까지의 과정은 참 길고 고단했다. 처음 <현장보고> 팀에 올 때부터, 전쟁 지역에 있는 아이들과 여성들의 삶을 돌아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지역을 돌아볼 결심을 한 뒤, 세계지도를 펼쳤다. 아시아 최장기 내전 지역, 스리랑카부터 눈에 들어 왔다. 26년간 내전이 지난해 '공식적으로는' 끝났다고 하는데, 이곳 사람들의 삶의 실상은 어떠할지 궁금했다. 그리고 이런 가난한 나라에서도 대안 공동체 운동이 성공리에 진행되고 있다고 하니, 그 운동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도 알아보고 싶었다.

방콕에서의 하루: 스리랑카는 참 멀었다. 중간 경유지인 방콕 공항에서는 10시간가량을 보내야 했다. 처음 만나본 방콕 공항. 공항에 있다보니 하도 시간이 안 가기에 발 마사지라도 받아볼까 하고 공항 마사지 가게에 들렀다. 마사지 가격이 한국 가격과 엇비슷했다. 꽤 비싸구나, 중얼거리며 가게 안으로 들어섰는데 마사지 해주는 언니의 얼굴에 고단함이 가득했다. 그녀는 마사지를 잠깐 멈추고 내 발을 잡은 채 물었다. "어느 나라에서 왔어요?" 의례적인 질문이었다. "한국에서 왔는데요. 스리랑카로 가고 있어요." 그게 우리 대화의 끝이었다. 옅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다시 마사지에 열중하는 그분을 보니, 마음 한쪽이 조금 불편해졌다. 아마 지금 내가 받고 있는 이 한 번의 마사지 가격이 저 사람의 일당과 비슷하겠지, 아니 더 비싼 건지도 모르겠다. 발 마사지 비용으로 자신의 하루일당을 지불하는 것이 그리 부담스럽지 않은, 외국에서 온 여자 아이를 만나는 저 사람의 마음은 어떨까. 앞으로 갈 출장지들이 그리 부유한 곳은 아닌데, 내가 나도 모르게 그들을 대할 때 돈을 가진 사람, 혹은 잘사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오만을 부리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스리랑카 도착: 방콕에서 스리랑카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 안에는 이제 하얀 얼굴보다 검은 얼굴이 더 많이 보였다. 비행기 안에서는 승무원들이 공손하게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하며 인사를 했다. 불교의 나라로 가는구나 싶었다. 그렇게 또다시 긴긴 비행을 하고 난 뒤, 드디어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에 도착했다. 공항에는 현지 코디네이터인 이문성 선교사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선교사님은 스리랑카에 온 지 20년이 넘었고, 가족들도 모두 함께 이곳에 살고 있다고 했다.

처음 만나는 타국, 잔뜩 긴장했던 마음이 한국사람 얼굴을 보자 스르르 풀리는 느낌이었다. 공항 안은 온통 덥고 축축한 공기로 가득했다. 늦은 밤, 스리랑카 콜롬보 거리는 텅텅 비어 있었다. 차를 타고 숙소로 이동하는 동안, 차창 바깥으로 펼쳐지는 풍경을 바라봤다. 낯설었다. 어떤 곳은 다 쓰러져가는 집으로 가득했고, 어떤 곳은 한눈에 봐도 으리으리해 보이는 집으로 가득했다. 이문성 선교사님은 이곳 부촌에는 월세를 천 달러도 넘게 내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가난한 나라라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다 가난하리라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가난은 평균적인 것일 뿐,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이곳에서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부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전쟁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이 많은 곳일수록, 그 전쟁으로 이익을 본 사람도 많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렇게 묘한 모순으로 가득한 콜롬보거리를 한참 달려 숙소에 도착했다.

내일부터는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된다. 먼저 대안 공동체인 사르보다야 공동체부터 찾아가게 될 것이다. 지금은 새벽 2시. 네 시간 후에는 일어나야 한다. 정말 많이 긴장된다. 이곳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을 있는 그대로 잘 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될 사람들을 진심으로 대할 수 있다면 더 좋겠다. 전쟁을 보고 듣고 겪었던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르보다야 공동체: 한국에서 접했던 사르보다야 공동체는 일종의 꿈의 공간이었다. 공동육아, 공동 교육이 이뤄지는 공동체로, 공동체 안에 있는 구성원들이 함께 모여 노동하고, 노동의 산물을 공평하게 나눠 갖는 구조였다. 스리랑카 하면 떠오른 전쟁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사르보다야 공동체에 대한 설명에 처음에 의아하기도 했었다. 정말 그런 공간이 스리랑카에 있다고? 그 공동체가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것이 가능하긴 한 걸까?

공동체 본부에 도착한 뒤, 곧장 사르보다야 사무총장을 만나러 공동체 사무실로 향했다. 한국에서 이메일과 전화통화로만 접촉해오던 그를 직접 만나니 기분이 사뭇 새로웠다. 그는 우리에게 이 공동체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잘 취재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사르보다야 공동체는 생각보다 훨씬 더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본부 안에서는 학교, 도서관, 식당, 자원 봉사자들을 위한 숙소 등이 마련돼 있었고, 다들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유치원부터 찾아가봤다. 인근 지역에 사는 주민들의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물론 이 유치원의 교육은 무료였다. 컴퓨터 교실에도 찾아가봤다. 진지한 표정으로 공부에 열중하고 있는 젊은이들. 이 교육도 무료라고 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공동체 속에서 행복하다고, 이런 공간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도서관 촬영을 하다가, 그곳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올해 스무 살의 엘리자베스를 만났다. 집에서는 공부를 하기가 어려워 날마다 이곳에 와서 공부를 한다는데, 인터뷰에 곧잘 응해줬다. 곧 있을 기술 자격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기에 시험 준비하는 모습을 집에서 촬영해도 되겠냐고 물어봤다. 낯모르는 외국 취재진이 집을 방문하는 것이 쑥스러운지 계속 망설이는 그녀의 손을 붙잡고 함께 거리로 나섰다.

스리랑카 소녀: 사르보다야 공동체는 생각보다 훨씬 큰 규모의 마을 공동체였다. 마을 중심부에는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전반적인 문제를 조율하는 사무실이 있다. 그 사무실을 중심으로 숙소와 식당이 있고, 마을 주민들을 위한 도서관, 강당, 교육 시설 등도 있다. 함께 저축하고 함께 투자하며 마을 공동 사업을 벌여가기 위해 지역 주민이 함께 세운 은행도 있고, 주민들이 불심을 키우기 위한(사르보다야 공동체는 기본적으로 불교 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명상 센터도 자리 잡고 있다. 이런 다양한 시설을 통해 지역 주민들은 함께 소통하고 교류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엘리자베스도 그런 주민 가운데 한 명이었다. 처음으로 방문하게 된 스리랑카인의 집, 소박하고 정갈했다. 집에는 어머니와 언니가 함께 살고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비록 넉넉하지는 않지만, 농사를 짓고, 농사 지은 물건들을 시장에 내다 팔기도 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전쟁이 계속된 나라라고 해서 잔뜩 긴장하고 왔는데, 이곳은 꼭 다른 곳 같아요, 왜 이렇게 평화롭죠?” 나의 질문에 엘리자베스의 어머니는 웃으며 말했다. 스리랑카에서는 전쟁이 계속되고 있지만 이곳은 괜찮다고, 전쟁이 나라를 황폐하게 만들었지만 공동체의 정신까지 훼손시키지는 못했다고 했다. 그녀는 사르보다야 공동체에 고마워하는 마음 그리고 이 공동체에서 앞으로도 행복하고 편안하게 살고 싶은 마음을 가감 없이 내보였다. 비록 큰 풍요로움을 누리지 못하지만, 욕심 없이 서로를 도와가며 살아가는 것에 만족하는 삶, 그런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 그것이 이 공동체를 지탱해온 가장 중요한 힘이구나. 어렴풋하게나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평화의 울타리가 된다는 것은 정말 소중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리랑카는 홍차 향기를 남긴다

늦은 아침, 간만에 자보는 늦잠이었다. 일어났더니 숙소 아저씨가 홍차를 끓이고 계셨다. 자파티와 호아, 이제 익숙한 조합이다. 짙푸른 홍차 밭이 눈에 들어왔다. 전쟁 지역을 벗어나긴 한 거구나, 저절로 실감이 났다. 다시 누와르엘리야에 와볼 일이 있을까 싶어 오전에 잠깐 짬을 내서 시내에 나가봤다. 인도식 옷들이 즐비한 누와르엘리야 시내, 어디를 가든 가득한 호아 향기. 이국적인 이곳의 분위기가 사뭇 맘에 들었다. 시내를 혼자 돌아다니니 사람들이 계속 힐끔거렸다. 기념으로 옷이라도 한 벌 더 사려다가, 보는 시선이 신경 쓰여 금세 숙소로 돌아오고 말았다.

다시 콜롬보로: 누와르엘리야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시 콜롬보로 향했다. 스리랑카에서의 취재는 비교적 성공적이었다는 생각에 출국을 앞둔 마음이 한층 가벼웠다. 누와르엘리야에서 콜롬보까지는 차로 다섯 시간가량, 꼬불꼬불한 산길을 달리고 또 달려 콜롬보로 향한다. 왔을 때 봤던 그대로 오늘도 타밀족 여인네들이 깡마른 손을 뻗어 홍차 잎을 따고 있었다. 처음 볼 때는 그저 고단해 보인다는 게 전부였는데, 이제 아니다. 이젠 그들 얼굴 너머로 전쟁도 보이고, 난민도 보이고, 불안과 배고픔으로 고통 받는 처절한 감정도 보인다. 내가 보고 들은 것들이 내 시야를 넓혀줬다. 그들이 조금이라도 덜 불행해질 수 있기를 바랐다. 그리고 이 나라에서 전쟁의 상처가 아물기 위해서는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걸까 자문하게 됐다.

나는 어디로: 마지막 저녁을 먹으며 도대체 스리랑카에서 우리가 차를 타고 달린 시간이 몇 시간인지 함께 계산해 보았다. 콜롬보 누와르엘리야 만나 트링코말리 와우니야 누와르엘리야. 스리랑카 국토를 종단하고 횡단도 했다. 모두 40여 시간을 달렸고, 대략 2천 킬로미터를 오갔다. 만감이 교차하는 저녁 식사. 촬영기자 선배도 잊기 힘든 출장길이 될 거라고 하셨다. 그건 내게도 마찬가지였다. 여러 아쉬움을 뒤로하고 마지막 저녁을 먹고 스리랑카 시내를 거닐었다. 그리고 해안가에 위치한 호텔에 자리를 잡았다.

바깥에서는 또 파도치는 소리가 들린다. 처음 이 나라에 왔던 바로 그날처럼 마지막 밤인 오늘 밤도 파도소리가 들린다. 인도양의 진주, 찬란하게 빛나는 섬이라는 뜻이라고 했지 아마. 스리랑카는 정말 모순으로 가득한 공간이다. 너무 아름다운데 너무 슬프고, 너무 향기로운데 또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 끔찍했다. 복잡한 콜롬보 시내, 이와 대비되던 누와르엘리야의 고적함, 북쪽 지역에서 만났던 수많은 전쟁의 상처들. 이렇게 극단적으로 상반된 이미지를 안겨주는 나라는 정말 처음이다. 아름다운데 슬프고, 슬픈데도 매력적인 나라. 스리랑카는 그런 곳인 것 같다. 이제 내게 스리랑카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 나라로 남을 듯하다. 차 향기 속에 아픔을 간직한 나라, 그 속에서 수많은 이야기를 감춘 나라로 기억될 테니까. 스리랑카에서 마지막 밤이 이렇게 지나간다.

꽃보다 사람



다시 아프리카로_ 2011년 11월 3일 수요일

길었던 준비: 이번 출장길을 준비하는 과정은 유독 길었다. 황열병 예방주사, 파상풍 주사부터 말라리아 약에서 다른 여러 풍토병 예방약들까지 먹어야 할 약도 많았다. 비자 준비도 만만치 않았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항상 고민이 뒤따랐다. 내가 왜 이곳에 가려 하는 걸까. 굳이 안 가도 되는데. 아무도 가라고 하는 사람도 없는데. 대학교 3학년 때, 가나로 자원 활동을 하러 갔을 때도 비슷한 심정이었던 것 같다. '왜 가려 하는 거니. 말라리아 치사율이 얼마나 높은 줄 알기나 하니. 굳이 그곳까지 가지 않아도 자원봉사 할 곳은 많단다. 우선 네 방부터 청소할 줄 아는 아이가 되렴.' 등등의 충고들. 주변에서 말리는데도 참 못 견디게 아프리카에 가보고 싶었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곳에 다녀오고 나면 뭔가가 달라 보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번 출장길을 준비할 때도 비슷한 심정이었다.

왜 민주콩고였을까: 아프리카에 있는 많은 나라 가운데 왜 하필 민주콩고였을까? 국제부 조출팀에서 단신 기사를 쓸 때마다 항상 민주콩고의 이야기는 뼈아프게 다가오곤 했었다. 수만 명의 사람들이 성폭행을 당하고 있다고 하니 참 그 사회가 어련하겠나 싶었다. 감히 상상하거나 실감하기가 쉽지 않은 내용이었다. 다른 부족의 여성들을 성폭행하고, 성폭행을 통해 태어난 아이들을 영역 확대의 표시로 여기고, 심지어 여성들을 성적으로 무자비하게 학대한다. 그런데 그 모든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 여성들은 그 땅에서 살아가고 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는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는 그 곳에 한번 가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 고통을 나누기 위해 이국땅에서 민주콩고를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보고도 싶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그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고도 싶었다. 그것이 바로 민주콩고를 택한 이유였다.

내가 배워오고 싶은 것: 세 가지 정도는 꼭 취재하고 돌아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하나,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의 마음은 뭔지 반드시 물어보고 확인해본다. 둘, 전쟁으로 피해 입은 사람들, 특히 여성이나 아이들에게 어떻게 이 아픔을 극복해가고 있는지 물어본다. 셋, 그들을 치료해주는 의사든, 평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하는 유엔군이든 사람들을 만나 자신의 자리에서 어떤 심정으로 일하고 있는지 물어본다. 가해자든 피해자든 조력자든 그 땅의 비극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생각이 무엇이든 내겐 새로운 깨달음을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민주콩고와의 만남_ 2010년 11월 4일 목요일

여러 번 갈아타기: 민주콩고까지 오는 과정은 참 길었다. 우선 인천공항에서 중국 광저우 공항으로 갔다. 중국에서 케냐행 비행기를 탔고, 케냐에서 르완다행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르완다 키갈리 공항에 마중 나온 칼렙과 함께 국경을 넘어 민주콩고로 들어왔다. 참 멀고도 먼 곳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던 여정이었다. 이틀 사이 중국, 케냐, 르완다를 한 번에 보고나니 참 여러 생각이 들었다. 비행기의 반을 태우고 있던 노란색 얼굴들이 점점 검은색으로 바뀌어갈 때의 기분도 참 묘했다.특히 케냐에서 르완다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만났던 르완다 대학교수와의 대화가 가장 인상에 남는다. 바로 옆자리에 앉은 그가 긴 여정에 꼬질꼬질해진 내게 말을 걸어왔다. 어디로 가느냐, 어디서 왔느냐, 무슨 일로 가느냐. 취재 목적과 취재 동기를 설명했다. 부족 간 내전과 그 속에서 고통 받고 있는 여성들을 만나고 싶다고 말하자 그의 눈이 반짝거렸다. 최근 내전으로 수백만 명이 숨진 르완다이니 민주콩고의 고통이 남의 일로 느껴지지는 않을 터였다. 알고 보면 르완다 내전과 민주콩고 내전도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그는 내게 진지하게 말했다. 이 나라의 아픔을 작위적으로 해석하거나 동정하려 하지 말라고. 군인들을 비난하지 말라고도 했다. 그의 충고에 의아해 있는 내게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당신도 풀숲에 2, 3년 동안 있어보시오. 군인들은 모두 젊은 남자들이고 욕구를 풀어낼 공간이 필요한 거요. 그것을 전쟁을 위한 폭력이라고 봐서는 안 됩니다. 개인의 욕구 해소도 있다는 겁니다. 아프리카인이 더 야만적이어서? 절대 아니지. 어떤 남자든 그 상황에선 그렇게 했을 겁니다. 난 그렇게 확신해요."

그의 말에 한동안 말문이 막혔다. 전쟁과 여성에 대한 성폭행은 종종 한 묶음으로 일어난다. 아니, 대부분의 전쟁 지역에서 여성들은 군인들을 위한 욕구 해소 대상으로 '제공'된다. 그 숫자와 현실의 폐해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민주콩고를 대단히 야만적이고 비정상적인 공간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는 얘기인 것이다. 그는 또 덧붙였다. 자신들은 유엔군을 믿지 않는다고, 자신들을 도와준다는 명목으로 들어온 유엔군이 얼마의 월급을 받고 있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그들이 진실로 전쟁의 종식을 원하는 것같느냐고 오히려 내게 반문했다. 선진국들이, 유엔군이, 이 땅에서 이익을 취하려는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을 막는 척하면서 부추기고 있다고, 그는 비행기 안에서 열변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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