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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먼저 세상에 손 내밀기

유재화 지음 | 책이있는마을


내가 먼저 세상에 손 내밀기

유재화 지음

책이있는마을 / 2011년 7월 / 240쪽 / 12,000원



제1장 울림



고무줄 반찬


우리를 망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눈이다.

만약 내 자신을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이 장님이라면 나는 구태여 고래등 같은 집도 번쩍이는 가구도 바랄 필요가 없을 것이다. - 벤저민 프랭클린 Benjamin Franklin

성실하고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좋고 친구도 많은 소년이 있었다. 중학생인 소년은 점심시간이면 친구들과 둘러앉아 도시락을 까먹었다. 가끔 소년이 싸온 도시락 반찬에서는 이물질이 나왔다. 대부분 별것 아니었으므로 친구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날, 소년이 점심 반찬으로 싸온 미역줄기 볶음에서 경악할 만한 이물질이 나왔다. "엑, 이게 뭐야!"

그것은 노란 고무줄이었다. 고무줄을 씹은 친구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소년을 쳐다봤다. "너희 집에서는 고무줄도 볶아 먹어?" "아, 미안. 실수로 섞였나 봐." 소년은 친구가 뱉어낸 고무줄을 휴지로 감싸서 쓰레기통에 버린 뒤 별일 아니라는 듯 태연히 식사를 했다. '저걸 어떻게 먹어. 참 나, 비위도 좋다.' 친구들은 소년의 천연덕스러움에 기가 막혔지만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다.

어느 날, 소년이 결석을 했다. 걱정이 된 담임은 소년의 친구를 데리고 생활기록부에 적힌 주소로 찾아갔다. 집은 철거가 진행되고 있는 재개발 지역으로 가파른 언덕을 한참 타고 올라가야 하는 외진 데 있었다. 소년은 마당에 쭈그리고 앉아 배추 시래기를 씻고 있었다.

"경호야!" 예상치 못한 선생님의 방문에 놀란 소년이 벌떡 일어났다. "어떻게 여기까지……." 그때 방문이 열리면서 누군가 고개를 내밀었다. "경호야, 누가 왔니?" 소년의 어머니였다. 감은 눈 위로 움푹 꺼진 눈두덩이가 선명하게 보였다. 언뜻 봐도, 앞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제야 친구는 경호의 도시락에서 이물질이 발견되었던 그간의 사정을 이해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어머니가 매일 아침 자식을 위해 정성껏 도시락을 챙겨주었던 것이다.

암흑 그리고 희망

정녕 마지막인 것만 같은 순간에 새로운 희망이 움튼다. 삶이란 그런 것이다.

태양이 어김없이 솟듯 참고 견디면 보상은 반드시 있다. - 앤드류 매튜스 Andrew Matthews

아일랜드의 어느 작은 어촌에 어부인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두 아들과 막내딸이 살았다. 아버지는 시간이 날 때면 두 아들을 데리고 바다로 나가곤 했다. 어느 화창한 봄날, 아버지와 두 아들은 막내딸의 생일상에 올릴 물고기를 잡기 위해 낚싯대를 들고 바다로 나갔다. 아내가 부자를 배웅하며 막내딸을 위한 특별 주문을 했다. "오늘은 제니를 위해서 특별히 맛 좋은 물고기 좀 부탁해요."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즐겁게 점심 도시락을 까먹은 뒤 낮잠을 한숨 자며 나른한 시간을 보낸 부자는 오후가 되자 물고기가 잘 잡히는 지점으로 배를 타고 멀리 나갔다. 아버지와 두 아들은 목적지에 배를 세우고 낙조가 물들 때까지 낚시를 했다. 충분한 양의 물고기를 잡은 세 사람이 그만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준비를 서두르는데, 느닷없이 음산한 바람이 불어오더니 먹구름이 몰려들었다. 사방이 어두워지고 곧이어 굵은 빗방울이 쏟아졌다. 폭풍이 몰려온 것이다.

순식간에 배가 풍랑에 휩쓸려 정신없이 흔들렸다. 아버지와 두 아들은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모두 지칠 때쯤 큰아들이 외쳤다. "아버지, 불빛이 보여요! 부두가 가까워졌나 봐요!" 저멀리 어둠 속에서 환한 빛이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세 사람은 힘을 모아 풍랑을 뚫고 불빛을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죽음의 바다를 건너 육지에 되돌아왔다.

어머니와 막내딸이 부두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두 사람은 기적처럼 살아 돌아온 부자가 반갑지 않은지 시무룩한 표정이었다. "우리가 폭풍을 헤치고 살아서 돌아왔는데 반갑지 않소?" 아내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집에 불이 났어요. 제니의 생일 축하 파티를 하려고 집 안 여기저기에 초를 켜두었는데 그만……!"

아버지와 두 아들은 기가 막힌 표정을 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세상에! 우리가 바로 그 불빛을 보고 살아 돌아왔단 말이오! 아무도 다치지 않았으니 얼마나 다행이오? 집은 튼튼하게 다시 지으면 되니 걱정하지 마오." 어둠 속에 있었기에 빛을 볼 수 있었다. 절망이 깊을수록 희망의 빛은 눈부시다.

마음을 담은 봉투

아름다운 얼굴이 추천장이라면 아름다운 마음은 신용장이다.

- 에드워드 조지 불워 리튼 Edward George Bulwer Lytton



세계 경제 한파는 지방의 작은 설비 업체에도 여지없이 들이닥쳤다. 밴형 화물차에 장착하는 냉동, 냉장 장치를 설비하는 작은 공장을 운영하는 조 사장은 지난해부터 서서히 줄어드는 매출 때문에 초조해하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직원들 월급 주기도 힘들겠어.' 그의 걱정을 알아차린 아내가 슬쩍 운을 뗐다. "사정이 그렇게 어려우면 무슨 수를 내야죠. 인원 감축을 하든지."

조 사장 역시 그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다만,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가장들을 선뜻 내보낼 수가 없어서 고민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속을 시커멓게 태우면서 두어 달을 흘려보냈다. 그새 일거리마저 줄어들어 한 달에 반은 손을 놓고 지냈다. 은행 빚 갚는 날은 매달 꼬박꼬박 다가오는데 수금이 되지 않고 자꾸 미뤄지자 상황은 점차 최악으로 치달았다.

더는 안 되겠다고 판단한 조 사장은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내일 퇴근 전에 다 같이 회의 좀 하자고. 다들 잠깐만 시간 내." 다음 날, 할 일이 없어 기계를 닦고 있던 직원들은 회의 시간이 되자 근심스런 표정을 하고 하나둘 모여들었다. 조 사장은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담배 연기만 뿜어댔다. 한참 만에 입을 떼려는데 그 순간, 직원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김 반장이 앞으로 나섰다.

"저기, 사장님!"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조 사장이 깜짝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그가 사장에게 돈 봉투를 건네며 말했다. "매출 줄어든 거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3개월 전부터 월급의 30퍼센트를 따로 모았습니다. 얼마 되지는 않지만 급한 대로 쓰십시오, 앞으로 사정이 나아질 때까지 계속 자진 삭감하겠습니다."

조 사장은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야. 도로 가져가게. 사정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네." "어려울 때 서로 돕는 게 모두가 사는 길이요." 미리 약속한 듯 직원들은 봉투를 돌려받지 않고 자리를 떴다. 홀로 남은 조 사장은 천군만마를 얻은 듯 든든한 기분이 되어 뜨거운 눈물을 삼켰다.

제2장 사랑



지극한 사랑


사랑이란 자기 이외의 또 한 사람의 행복이 자신의 행복에서

절대 없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 로버트 하인라인 Robert A. Heinlein

소년은 길가의 무너진 담벼락에 기댄 채 미라처럼 앉아 있었다. 며칠째 제대로 된 음식은 구경도 못했다. 운 좋게 먹을 것이 생겨도 그것은 제 몫이 아니었다. 소년은 '어떻게 음식을 구할 수 있을까' 하는 가망 없는 희망을 품고 간신히 생명을 지탱했다. 그때 어디선가 낡은 지프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차에서 카메라를 멘 사람들이 내렸다. 그들은 주변을 살피며 여기저기 카메라를 들이대고 서성였다. 그들은 그 나라의 비극적인 상황을 서방 세계에 알리기 위해 취재에 나선 외국의 기자들이었다. 15년이 넘게 계속된 내전으로 황폐해진 그 나라는 전쟁의 참화 외에도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살아남은 이들마저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도착한 마을에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소년을 발견하자 놀라서 달려왔다. 소년은 앙상하게 여윈데다가 온몸에 벌레 물린 자국이 있고, 영양실조에 걸려 배만 비정상적으로 부푼 상태였다. 또 머리카락은 빨갛게 변해버렸고 피부는 노인처럼 시들시들했다. 그들은 맥없이 앉아 있는 소년에게 과일 한 덩어리를 내밀었다. "얘야, 이거 먹을래?…… 괜찮으니까 받아."

소년은 그저 망연히 그들을 바라보았다. 실은 손을 뻗어서 과일을 받을 기력조차 없었다. 그들 또한 그것을 눈치챘는지 과일을 먹기 좋게 잘라서 건네주었다. 겨우 과일을 손에 쥔 소년은 가벼운 눈인사를 하고 어딘가로 휘청거리며 걸어갔다. 일행은 위태로워 보이는 소년의 뒤를 따라갔다. 그가 도착한 곳은 무너진 건물의 폐허였다. 그 안에는 소년보다 더 어려 보이는 작은 아이가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그 아이는 소년의 동생이었다. 소년은 과일을 한입 베어 물고 천천히 씹더니 곧 다시 뱉어내 그것을 동생의 입에 넣어주었다. 그리고 손으로 동생의 턱을 잡고 움직여서 음식을 씹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잘 씹어 삼켜야 해. 이걸 먹어야 살 수 있어. 알겠지?"

소년은 음식이 생길 때마다 죽어가는 동생을 살리기 위해 보름간 그 일을 해온 것이다. 그렇게 지극히 돌봐준 형 덕에 동생은 얼마 후 기력을 회복했다. 과일을 씹고도 자기 목구멍으로 아무것도 넘기지 않은 형의 지극한 사랑이 동생을 살린 것이다. 그러나 형은 끝내 영양실조로 굶어죽고 말았다.

살아만 있어줘요

그대를 사랑하오. 처음 그대로의 그대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대와 함께 있을 때의 나 자신 때문이오. - 로이 크로프트 Roy Croft



금실 좋은 부부가 있었다. 어찌나 서로를 끔찍이 아끼고 사랑하는지 온 마을에 소문이 자자했다. 한결같이 정답게 지내는 모습을 부러워하며 본받고 싶어 하는 이가 한둘이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의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 매주 정기적으로 병원을 오가며 검사와 치료를 받고 꼬박꼬박 약을 챙겨 먹어야 했다. 몸이 예전과 같지 않아서인지 할아버지는 날이 갈수록 성질을 부렸다. 마냥 다정하던 사람이 틈나는 대로 할머니를 구박하기 시작한 것이다. "밥 다 먹은 지가 언제인데, 약 안 가져와?"

할아버지는 사소한 것에도 언성을 높였다. 대뜸 물을 가져오라고 하고선, 물이 차갑다 싶으면 이가 시려서 어떻게 먹겠느냐며 타박하고, 따뜻한 물을 가져오면 혀를 데겠다며 냅다 집어던졌다. 할머니는 '몸이 아프니까 신경이 날카로워졌구나'라고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치 딴사람처럼 변해버린 할아버지가 낯설고 야속해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어느 날, 마을 사람들이 병문안을 왔다. "뭐하고 있는 거야? 당장 안 나와! 손님 오셨는데 대접 안 하고 뭐하냐고!" 사람들이 죄다 지켜보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호통쳤다. "지금 내가요. 아이고, 야단 좀 그만하세요. 정신이 쏙 빠지겠네." "뭐? 이게 어디서 말대답이야? 빨리 내려놓고 얼른 꺼져!" "손님들 다 계신데, 정말 너무하네요." 결국 할머니가 눈물을 쏟아내며 방을 나갔다. 지켜보던 손님이 조심스레 물었다. "어르신, 할머니를 왜 그리 못살게 구세요? 다정하시던 분이."

한참 말이 없던 할아버지는 어느새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 채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며 힘겹게 대답했다. "저, 저리도 마음이 여린 사람이……나 죽고 나면 혼자 어떻게 살아갈지……." 일부러 아내에게 모질게 대하는 할아버지의 심정은 더욱더 타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뒤, 결국 할아버지는 세상을 뜨고 말았다. 홀로 무덤가 한편에 자리를 잡고 앉은 할머니는 남편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쳐 눈물을 훔치며 혼잣말을 했다. "얼마든지 호통쳐도 좋으니 내 곁에 살아만 있어주길 기도했어요."

제3장 기적



희망과 좌절의 12년


'자신감이 생기면 시작하겠다'라고 하는 사람은 영원히 시작하지 못한다.

불안한 채로 시작하여 끝냈을 때 생기는 것이 자신감이기 때문이다. - 기시 히데미츠



평균 기온이 21~27도인 무더운 나라에서 한낮의 뙤약볕 아래 날렵한 몸매의 선수들이 썰매와 씨름하고 있었다. 그들이 훈련하고 있는 것은 바로 봅슬레이였다. 한 육상선수가 올림픽 출전 자격을 잃은 것에 억울해하다가 우연히 미국인 봅슬레이 코치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하나둘 다른 선수들도 모여들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출전을 위한 육상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앞서 달리던 선수의 발에 걸려 넘어져 탈락한 이들과 무동력 자동차 챔피언 등이었다. 그렇게 자메이카에 봅슬레이 팀이 형성되었다.

모든 사람이 그들을 비웃었다. "눈 구경도 못해본 것들이!", "아하하! 자메이카에서 봅슬레이를 한다고?" 정부에서도 아무런 지원을 하지 않았다. 그저 황당한 도전이라며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도전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더운 나라에서는 썰매 타면 안 된다는 법이 있나요?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반드시 해낼 겁니다!" 그들은 최선을 다해 훈련에 매달렸다. 자메이카의 더운 날씨와 열악한 조건 속에서, 썰매를 다루고 경기 방식을 익히며 낯선 세계에 대한 도전이 무엇인지 그 의미에 새로이 눈뜨기 시작했다.

드디어 1988년, 캘거리 동계올림픽에 그들이 등장했다. 갑자기 나타난 검은 얼굴의 선수들을 바라보며 다른 나라의 선수나 관중들은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굴하지 않고 마음을 굳게 다졌다. 그곳까지 가서 물러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열심히 한다면 새로운 기록을 세우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마침내 경기가 시작되었다. 빠르게 달리던 봅슬레이가 순간, 뒤집어졌다. 드라이버의 조종 미숙으로 인한 사고였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오랜 시간 흘린 땀과 눈물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용기 있는 도전에 사람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이후에도 그들의 도전은 계속되었다. 희망과 좌절의 12년이 흐른 2000년, 모나코 몬테카를로에서 열린 세계 봅슬레이 챔피언십에서 자메이카 팀은 마침내 당당히 금메달을 따내고 정상에 올랐다. 삶은 도전의 연속이다. 미래는 도전하는 자에게 약속된 삶이 아닐까.

필요한 존재되기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고, 성실로써 이루어져 가는 것이라야 한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그저 보내는 것이 아니고 하루하루를 자기 자신이 가진

그 무엇으로 채워가야 한다. - 존 러스킨 John Ruskin



한 청년이 있었다. 너무도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중학교도 미처 마치지 못했다. 마땅한 일을 찾지 못하고 여기저기 전전하던 중 그는 우연한 기회에 청원경찰 시험을 보고 합격하게 되었다. 그날 이후 그의 인생은 새롭게 피어났다. 모 은행에 취직해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그는 지나치게 경직된 탓에 무서워 보인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문제를 고치기 위해 하루에 수천 번씩 미소 짓는 연습을 했다. 또, 금융 상품에 대해서 공부했다. 은행 업무를 보러 온 고객들의 대기 시간이 상당하다는 걸 알고, 그 틈을 이용해 보다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게끔 예금 상품 등을 알기 쉽게 소개했다. 그러는 사이 그는 그 은행에서 가장 친절하고 자상한 청원경찰이자 훌륭한 금융 상담원이 되어 있었다.

전문 은행원이 아닌 그에게 예금에 대한 상담을 받길 원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그는 자신을 믿고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보답하고자 더욱 친절하고 성실히 업무에 임했다. 고객들과 상담한 내용을 꼼꼼히 기록하고, 그들의 생일과 대소사까지 챙기며 무의탁 노인의 경우에는 예금을 대신 관리해주기도 했다. 신뢰가 두터워질수록 아예 그를 믿고 그 은행에 돈을 맡기는 고객이 생겨났다. "내가 죽더라도 예금은 꼭 그 청원경찰에게 맡겨야 한다." 이 같은 유언을 남기는 것은 물론 인감도장을 맡기는 이도 있었다. 여러모로 그의 친절 봉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급기야 용역 직원에 불과한 그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긴 고객들이 은행에 청원해 정식 직원으로 채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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