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용기를 얻다
이상휘 지음 | 에이지21
새벽, 용기를 얻다
이상휘 지음
에이지21 / 2011년 5월 / 208쪽 / 12,000원
1부_ 푸른 어둠이 깔린 새벽녘 출근길
알람
자명종이다. 몸이 쇳소리를 낸다
찬물로 씻었다
개운하다
가글을 하듯 젖은 머리를 턴다
밝은 색 타이를 맸다. 한결 낫다
집 앞 골목은 아직 어둠이다
가로등이 노랗게 골목을 비춘다
분명해졌다
그 밝음 속으로 걸음을 내딛는다
월요일, 무거운 커튼을 젖히듯 나섰다(2010. 10. 11.)
***
전날 친구들과 질펀하게 어울렸다. 그 덕에 숙취가 진하게 남는다. 새벽 5시. 어김없이 휴대폰의 알람이 울린다. 참 매정한 기계가 아닐 수 없다. 매일 새벽, 별별 험담을 다 쏟아 부어도 들은 체 만 체 시간만 되면 앵앵거린다. 그래도 버릴 수는 없다. 내일 새벽을 또 의지해야 하니까. 찬물을 머리에 끼얹자, 헉 하고 숨이 멎을 것 같다. 근육이 팽팽해지고 자신감이 솟는다.
옷장을 열고 넥타이를 고른다. 빈약한 넥타이 숫자지만, 오렌지색이 눈에 들어온다. 처제가 생일 선물로 사준 것이다. 조금 촌스럽다는 생각이 들어 홀대했는데, 오늘따라 왠지 눈이 간다. 조금 젊어졌나? 감색 양복에 오렌지 넥타이가 제법 패셔너블하다. 그래! 난 아직 젊다.
새벽 그리움
어둠을 깨는 밝은 인사가 들린다
우유 아줌마다. 새벽길에. 자주 마주쳐 낯이 익다
그런데 그녀에게 우유 수레가 없다
초췌한 남자의 손을 잡고 있다. 불편해 보인다
짐작이 갔다. 남편에게 새벽 운동을 시키는 모양이다
그녀는 꾸밈없이 밝아 보인다
소중한 것을 생각게 하는 새벽이다(2010. 10. 15.)
***
토요일 새벽이다. 새벽 출근에 길들여진 탓인지 어김없이 눈이 떠진다. 하루 쉬는 날이란 걸 알아챈 순간, 아~ 너무 행복해진다. 다시 이불 속으로 파고 들어간다. 순간 골목길에서 오토바이 소리가 들린다. 신문 배달 오토바이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였다. 아버지의 부스럭거림에 항상 새벽잠이 깼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아버지는 새벽 골목을 나섰다.
생선 상자 몇 개를 실은 아버지의 낡은 자전거는 페달도 밟기 전에 쇳소리를 냈다. 끙하는 소리와 함께 자전거는 스르륵 움직였다. 그리고 들리는 소리. 갈치 사이소, 동태 사이소…… 그렇게 아버지의 새벽은 시작되었다. 난 그저 아버지가 그날 생선을 많이 팔기만 바랄 뿐이었다. 오토바이 소리가 멀어졌다. 생선장수 아버지의 탁한 목소리에 잠을 깬다. 아버지의 비릿한 생선 냄새가 그리워 새벽 창문 앞에 선다.
문안 인사
전화를 했다
어머니다
목소리가 힘이 없다. 혹시 편찮으신가?
괜찬다시며 여느 때와 같이 말씀을 하신다
이미 수백 번도 더 들은 이야기다
어머니는 오늘도 미안하다고 한다
용산역 철로변 바람개비는 새벽바람에 동화처럼 돈다
새벽잠에 곤한 아들놈 얼굴이 떠오른다(2010. 10.18.)
***
새벽에 전화를 드리는 습관이 생겼다. 경제적으로 넉넉한 아들이 아니기에 전화라도 자주 드려야겠다는 생각에서다. 얄팍한 효심이다. 다섯 남매 중 외동딸이셨던 어머니는 긍정적인 분이시다. 궁핍한 살림살이였지만 노래도 잘하시고 웃음도 많으셨다. 큰형의 고등학교 입학금조차 내지 못할 가정형편이었지만, 어머니는 학교로 찾아가서 교장선생님과 담판을 했다.
결국 입학금을 항부로 하는 조건으로 큰형은 입학할 수 있었다. 그때는 가능했던 모양이다. 언젠가 어머니는 내가 대학을 다니고 있다는 걸 아시고 자랑스러워하셨다. 그리고 내게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내게 어머니는 늘 동화책이다. 코스모스 핀 들녘이다. 아련한 고향과 그리운 추억이다. 이제 나는 내 아들과 바람개비를 들고 들녘을 달리고 있다.
녹지원 풍경
어깨를 웅크린다
찬바람이 훅 하고 가슴을 친다
참 간사하다. 그렇게 더웠는데, 그새 달라졌다
변덕이 강아지 꼬리처럼 정신없다
녹지원 잔디는 아직 파랗다
그 위로 찬바람이 인정 없이 매몰차다
상춘재 숲길을 올랐다
아뿔싸, 풀숲 사이 코스모스 하나가 위태롭다
어쩔거나(2010. 10. 23.)
***
청와대 상춘재는 외국 귀빈들을 영접하는 곳이다. 상춘재 아래 녹지원은 그림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아름다운 정원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마다 얼굴을 달리한다. 살포시 유혹하는 여인네의 모습을 보는 것처럼 눈을 뗄 수가 없다. 가을의 끝자락이라지만 상춘재 주위는 아직 녹음이 푸르다. 그래서일까. 찬바람이 일 때마다 춤을 추는 푸른 잎들이 안쓰럽다. 머지않아 마른 가지들을 드러낼 그 모습들에 연민이 인다.
'순정'이라는 꽃말을 가진 코스모스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이다. 여성스럽다는 이유로 집사람에게 타박을 맞기도 한다. 코스모스 한 송이가 눈에 들어온다. 가냘프게 힘없이 흔들린다. 우두커니 서 있어본다. 다음날 궁금해져서 다시 가려다 말았다. 왠지 서글퍼질 것 같아서.
2부_ 새벽에 그리는 그림엽서 비탈길
골목길은 가팔랐다
밤새 꽁꽁 언 탓에 연탄재를 뿌려야 걷는다
아직 어두운 새벽이다
부엌문이 삐걱 소리를 낸다
황구가 잠을 깼다. 꼬리를 흔든다
새벽녘 공동 수돗가는 서둘러야 했다
철그렁~ 빈 양동이가 소리 낸다
조심조심 골목을 내려선다
어머니는 새벽을 가슴에 안고 걸었다(2010. 12. 03.)
***
겨울의 비탈길은 위험하다. 얼어붙어 발길조차 떼기 힘들다. 어릴 적 내가 살던 동네가 그랬다. 어른들은 겨울철 새벽이면 하얀 연탄재를 골목에 던졌다. 연탄재를 깨서 흩어놓아야 미끄럽지 않기 때문이다. 그 길로 물통을 지고 물을 길어 날랐다. 수도가 귀한 시절이었다. 어머니도 그러셨다. 양철로 된 물동이를 이고 얼음 비탈길을 걸으셨다. 한번은 넘어져 보름을 앓아누우신 적도 있었다. 그 시절은 물 한 통 얻는 것도 그렇게 힘이 들었다. 고구마
아버지와 나는 처음으로 오래 같이 있었다
창고 처마 끝에 뚝뚝 떨어지는 빗줄기를 보면서,
품속에서 삶은 고구마를 내미셨다
목이 막히도록 베어 먹었다
이틀을 굶은 탓이다
아버지는 담배를 피우셨다
연기가 빗줄기에 산산이 흩어졌다
그리고 어린 아들에게
미안하다고……(2010. 12. 05.)
***
아버지와 나는 그렇게 많은 이야기를 한 기억이 없다. 원래 무뚝뚝하고 잔정이 없으셨다. 나 역시 막내답게 재롱을 떤 적은 별로 없다. 가끔씩 비 내리는 날이면 삶은 고구마를 내미시던 아버지가 생각난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어판장 비린내가 밴 작업복 차림으로 아버지가 학교로 찾아오셨다. 그날도 쌀이 떨어져 아침부터 굶었다. 아마 아버지는 막내인 내가 가장 걱정이 되셨던 것 같다.
점심시간 무렵 아버지는 내 손을 잡고 교실 뒤쪽 창고로 나를 데리고 가셨다. 난 아버지의 손을 잡는 것도 싫어서 자꾸만 몸을 뒤로 뺐다. 그래도 아버지는 내 손을 꼭 잡고 창고로 가 어깨에 빗물을 털어주셨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누런 종이에 싼 삶은 고구마 두 개를 내미셨다. 배가 고팠던 난 정신없이 먹었다. 아버지는 내내 담배만 피우셨다. 아버지는 어린 내게 "굶겨서 미안하다"고 하셨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자꾸만 눈물이 난다.
새벽 빗소리
새벽녘, 신문을 들춰보다 창을 열고 비를 기다렸다
기억 속 낡은 콜타르 지붕을 때리던 빗줄기 때문이다
냉장고를 열었다
사과 반쪽이 남았다
반가움에 덥석 물었다
철없는 내가 되었다
새벽은 식상한 권태로움을 제치고 맑은 감성이 된다
빨간 우체통이 되어 나를 깨운다(2010. 12. 07.)
***
지하 셋방에 살면 빗소리가 잘 들린다. 바닥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곧바로 전달되기 때문이다. 워낙 비를 좋아한 탓에 비가 오면 창문을 열어놓곤 했다. 하루는 열어놓은 창문으로 빗물이 마구 쏟아져 들어왔다. 잠이 드는 바람에 미처 닫지 못했던 것이다. 집사람에게 엄청 야단을 맞았다. 하긴 철없이 그랬으니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그 버릇은 아직도 못 고쳤다. 집사람은 아예 포기한 듯하다. 이런 남자와 사는 여자는 피곤할 것이다. 하지만 어쩌랴. 빨간 우체통은 어릴 적 감성을 그리워하는 나만의 표현이다. 비를 기다리는 철없는 남자의 변명을 미화하려니 힘들긴 하다…….
3부_ 당신에게 건네는 새벽 이야기 피로 회복제 콩국
새벽길 고소한 냄새가 가득했다
야간 일을 끝내고 가는 길이다
정해진 것처럼 그곳에 들린다
뜨거운 콩국 한 그릇 때문이다
고소한 콩국물에 씹히는 튀김 맛은 달짝지근하다
밤새 쓰렸던 속이 흔적 없이 편해진다
고단했지만 부러울 게 없는 새벽이었다
뜨거운 콩국 때문이었다(2011. 01. 05.)
***
하역 일은 힘들다. 밤새도록 선창 밑바닥에서 작업하고 나면 몸이 천근만근이다. 눈꺼풀은 무겁고 발걸음은 늘어진다. 하역 일이 그랬다. 내 첫 직장이다. 주야로 12시간 맞교대를 했다. 꼬박 3년을 하고 정식 직원이 되었다. 그리고 본사 발령, 그룹 비서실 발령……. 숨 가쁘게 옹골차게 살았던 시기였다. 하역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새벽길에 콩국을 파는 포장마차가 있었다. 조그만 수레에서 부부가 장사를 했다. 오거리 고려마크사 앞길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콩국을 먹었다. 뜨끈한 콩국은 고소하고 달콤했다. 피로 회복제가 따로 없었다. 쓰렸던 속이 편안해지면서 긴 아침잠이 몰려왔다.
고무장화의 재림
백화점에 갔다
고무장화를 판다. 이상했다
동네 시장에 있어야 할 것들인데
가격을 물었다. 엄청 비싸다
패션 장화란다
장화는 어판장에서 고기를 씻을 때만 신었다
세월 참 많이 변했다
꼬질한 기억의 장화가 백화점 화려한 조명 아래 있다
아버지가 보시면 되게 웃으시겠다(2011. 01. 09.)
***
깜짝 놀랐다. 고무장화가 화려한 불빛을 받고 있다. 샹들리에 밑에 고고하게 진열되었다. 무척 우스웠다. 내게 고무장화는 어판장의 질척한 바닥을 다니는 기억 외엔 없다. 아버지는 일년 내내 검은색 고무장화를 신고 다니셨다. 생선을 씻어 상자에 담아 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한참을 서서 장화를 내려다봤다. 독특한 디자인을 입혀서인지 제법 가치가 있어 보인다. 얼마냐고 물었더니, 세상에! 제일 싼 것이 십만 원 단위다. 어이가 없다. "아부지요, 요새 장화는요. 호강사고 삽니다. 돈도 엄청 벌고요. 출세했심더. 이럴 줄 알았으면 장화를 괄시하지 말걸 그랬심더……."
신문
새벽, 문 밖에 소리가 났다
신문이다
기름 냄새가 그대로다
손 끝에 찬 기운이 전해진다
익숙한 기다림이다. 호흡을 가다듬는 출발이다
수많은 활자들이 박혀 있다. 소리를 낸다
지면을 쓸며 시인처럼 고뇌한다
거부하지 못할 세상이 펼쳐진다
겸손해야 할 세상이 보였다(2011. 01. 10.)
***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다. 5시 정각이다. 일 년 내내 두서너 번 빼고는 똑같다. 멈춰설 수 없는 인생처럼 일정하다. 세상의 이야기들로 가득찼다. 내가 해야 할 일들도 빼곡하다. 걱정해야 할 일도 있다. 앞에 앉혀놓고 이야기를 하듯 친절하게 세상을 말해준다. 군데군데 오만함과 넘침으로 무너지는 것들도 보인다. 이미 끝나버린 잘못을 되돌리려는 무지함도 있다. 모든 것이 고스란히 담겼다. 진한 잉크 냄새로 말을 건넨다. 오늘 내게 신문은 말했다. "넘치는 것이 모자람보다 못하다."
4부_ 내 오랜 친구, 새벽길 가로등
때론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언제나 그렇게만 있다
무심한 새벽별에 외로워질 때
늦은 가을 좁은 골목 빗줄기에서
하얀 눈 펑펑 내리는 새벽길에서도
넌 노란빛으로만 환하다
그러나 가끔 네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환하지만 말고 나와 같았으면 좋겠다
초록, 보라, 노랑(2011. 01. 25.)
***
집 앞 골목길 가로등. 불빛은 항상 그 자리에 있다. 성실하고 변함없다. 늘 어둠을 지키는 그 모습에 새벽길은 의지가 된다. 가끔씩 가로등이 생각을 할 수 있었으면 한다. 비가 오는 날, 눈이 내리는 날, 안개가 자욱한 날……. 그런 새벽마다 비추는 불빛도 달랐으면 좋겠다. 내가 기쁘고 우울할 때, 눈물이 날 때도 나와 같은 색깔이었으면 좋겠다. 감성이 흐르는 가로등 얼마나 멋진가.
마음 속 고향
들판 사이 새벽길이 정겹게 누웠다
낮은 굴뚝 위 하얀 연기 피어난다
구수한 쇠죽 냄새는 새벽부터 동네에 가득하다
오래된 감나무도 그대로다
석구네 똥개는 낯선 날 보고도 꼬리만 살랑거린다
박씨 어른은 여전히 뒷짐 진 채 마실 간다
화가는 예쁜 수채화로 그렸다
내 고향이다(2011. 02. 01.)
***
설날, 고향으로 가는 길에 집사람이 물었다. 나중에 나이 들면 어디서 살고 싶으냐고. 말 대신 종이에 그림을 그렸다. 이런 곳에 살고 싶다고 했다.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형편이 된다면 꼭 그러고 싶다. 내가 살고 싶은 곳, 가고 싶은 곳. 그곳은 우리가 생각하는 고향인 것 같다.
꿈
십오 년이 지났다
월급도 못 받을 처지였다. 대학을 가고 싶었다
아내는 선뜻 대학에 가라고 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박사를 마친 날, 아내에게 물었다
왜 공부를 하게 했냐고
아내는 말했다
"천 원이 없으나 백만 원이 없으나
어차피 없는 살림인데 꿈이라도 있어야지요"
오늘 그녀와 결혼한 지 열아홉 해가 되는 날이다
난 늘 당당하다, 그녀가 있기에
그리고 사랑하고 감사하다(2011. 02. 28.)
***
돈이 없었다.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월급은 차압되었고, 대출금 상환에 모아놓은 돈도 날아갔다. 아이들은 엄마의 손길이 절실한 나이였다. 사방을 둘러봐도 캄캄한 절벽이었다. 친척도 친구도 돈도 백그라운드도 없었다. 촌놈은 위기였다. 고향으로 내려갈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 역시도 살길이 막막했다. 별일을 다했다. 회사를 다니는 것 외에도 대충 대여섯 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래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악으로 버티는 하루하루였다. 나는 점점 지쳐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