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세상을 만든 수학
이광연 지음 | 문학동네
멋진 세상을 만든 수학
이광연 지음
문학동네 / 2011년 6월 / 304쪽 / 14,000원
시간의 시작시간의 신 크로노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신화는 카오스(Chaos, 혼돈)에서 시작했다. 그리스 신화는 카오스 속에서 생명의 씨앗이자 신들의 어머니인 땅의 신 가이아가 스스로 탄생하며 시작한다. 이것은 지구의 탄생을 신화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넓은 대지에서 만물이 태어나듯 스스로 생명을 얻은 가이아는 하늘의 신 우라노스와 바다의 신 폰토스를 낳는다. 이는 하늘과 땅이 갈라지고, 땅에서 바다가 생겼다는 것이다.
하늘의 신 우라노스와 결혼한 가이아는 큰 몸집을 가진 티탄들을 낳았다. 처음에는 잘생긴 육 형제와 예쁜 육 자매를 낳았는데, 나중에는 외눈박이 거인인 키클로페스 삼 형제와 머리가 50개이고 팔다리가 각각 100개인 괴물 헤카톤케이르 삼 형제를 낳았다. 이들은 대자연의 엄청난 힘을 상징하는데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태풍이나 폭우, 벼락, 지진 그리고 화산 폭발 같은 것이다. 키클로페스 삼 형제의 이름은 브론테스(천둥), 스테로프스(번개) 그리고 아르게스(벼락)로, 후에 이 삼형제가 힘을 합하여 제우스를 상징하는 무기인 불벼락을 만들게 된다.
가이아는 이후에도 여러 이유로 괴물들을 더 낳았다. 가이아가 이런 괴물들을 낳자 화가 난 우라노스는 가이아의 몸속에 이 괴물 자식들을 가둬버렸다. 가이아의 몸속은 곧 땅속을 말하며, 이들이 땅속에서 몸부림칠 때마다 가이아가 괴로움에 몸을 웅크리자 돌과 바위로 이루어진 웅장하고 험준한 산맥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이들의 소동을 더 이상 견딜 수 없던 가이아는 몸속을 흐르는 무쇠의 맥에서 무쇠 덩어리를 하나 꺼내어 큰 낫을 만들었다. 그러고는 자식들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는 너희의 동생들을 보기 싫다고 땅속에 가두었다. 그런데 대지의 여신인 내가 그런 자식을 낳은 것은 모두 아버지 책임이다. 하지만 하늘의 신이 죽으면 하늘이 없어지기 때문에 우라노스를 죽일 수는 없다. 그래서 너희 아버지가 더 이상 자식을 낳지 못하게 하고 싶다. 누가 하겠느냐?" 이 말을 들은 티탄들은 우라노스를 두려워하여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그때 가장 힘이 세며 시간을 관장하던 막내 크로노스가 나섰다. "제가 하겠습니다. 그 낫을 저에게 주십시오."
비록 크로노스가 시간을 관장한다고 하지만 아버지인 우라노스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었으므로 시간은 지금처럼 순차적으로 흐르지 않았다. 아무튼 밤이 되자 하늘의 신 우라노스가 자기 몸으로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몸을 덮었다. 이때 크로노스는 그 커다란 낫으로 우라노스의 성기를 베어버렸다. 하늘과 땅의 아들인 크로노스가 아버지의 남근을 제거한 것이다. 이로써 하늘과 땅은 영영 분리되었고, 바다에 떨어진 우라노스의 성기에서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탄생했다.
크로노스가 아버지를 해친 일은, 앞으로 권력의 이동에 폭력이 수반될 것임을 상징하며, 비록 어머니가 요청하였지만 자식이 아버지에게 해를 가했다는 원죄의식이 생겨났다. 우라노스가 세상을 다스릴 때는 시간이 멈춰 있었기 때문에 인간은 이 시기 동안 노동과 근심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고 풍요롭게 살 수 있었다. 이때를 '황금시대'라고 한다. 반면 아버지를 몰아내고 크로노스가 세상을 다스리자 시간이 흐르기 시작했다. 계절이 변하자 집과 옷이 필요했고 들판에서 거두기만 하면 되었던 곡식도 인간이 씨를 뿌리고 쟁기를 끌어야 했다. 이때를 '백은시대'라고 한다.
하늘과 땅의 아들 크로노스는 우라노스의 뒤를 이어 권력을 움켜쥐자 아버지처럼 폭군이 되었다. 그는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 뱃속에 갇혀 있던 형제들을 풀어주기는커녕 더 깊은 감옥인 타르타로스에 가두었다. 우라노스를 몰아냈지만 변한 것이 없자 화가 난 가이아는 이렇게 말했다. "네 자식들 중 하나가 네가 아비에게 저지른 짓을 그대로 따를 것이다."
결국 크로노스는 가이아의 말대로 자신의 아들인 제우스에게 쫓겨나 외딴 섬에서 시간을 관장하며 지냈다. 제우스는 세상을 다스리기 위하여 프로메테우스에게 인간을 만들도록 명했다. 제우스가 세상을 지배하면서부터 백은시대는 막을 내리고 청동시대가 시작되었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결국 시간은 인류 탄생 이전부터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의 시작최초의 수와 진법
조약돌이나 매듭으로 수를 표현했던 인류에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매듭이나 조약돌과 같은 것이 없을 때는 수를 표현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인류는 수에 각각 적당한 이름을 붙였는데, 인류가 수의 개념을 인식하는 과정은 언어에도 남아 있다. 그리스어를 포함하여 여러 언어에는 하나, 둘, 둘보다 많다고 하는 세 가지 구별법이 남아 있고, 대부분의 언어에는 하나를 나타내는 단수와 여럿을 나타내는 복수, 두 가지 구별법이 있다. 고대 인류는 분명히 맨 처음에는 둘까지만 세었고 그보다 많은 개수는 어느 경우나 '많다'고만 했다. 예를 들어 퀸즐랜드 원주민은 지금도 one, two, two and one, two twos 등으로 수를 세고 파푸아 원주민은 1을 우라펀(Urapun), 2를 오코사(Okosa)라고 하며 3은 오코사 우라펀, 4는 오코사 오코사, 5는 오코사 오코사 우라펀, 6은 오코사 오코사 오코사와 같이 센다.
수의 개념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같은 개수이지만 서로 같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는 증거도 있다. 그것은 서로 다른 물건의 같은 개수를 부르는 이름이 다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영어에도 '한 쌍'을 나타내는 말로 team(말), span(노새), yoke(소), pair(신발)와 같이 여러 표현이 있다. 또 영어 'to chalk one up'은 '기록하다'라는 뜻으로 옛날 술집 주인이 손님이 마시는 술잔의 수를 석판 위에 분필로 표시한 데서 유래했다.
우리나라도 이런 비슷한 형태가 언어에 남아 있다. 1부터 10까지 수를 세는 우리나라 고유의 수사는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이다. 우리 민족이 언제부터 이와 같은 수사를 썼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하나는 태양과 같은 말인 해의 옛말 '?ㅣ[日]', 둘은 달[月]의 옛말인 ' ', 셋은 '설[年]'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또 다섯과 열은 옛날 우리 선조들이 손가락 셈을 했다는 흔적이기도 하다. 다섯은 손가락을 하나씩 꼽으면서 셈을 하다보면 다섯 번째에는 손가락이 모두 닫히기 때문에 '닫힌다'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한편 열은 닫힌 손가락을 하나씩 펴가다 마침내 10이 되면 모두 열리기 때문에 '열린다'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수를 세는 방법은 다양한데,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목에 동물의 어금니를 달고 다니는 것도 바로 사냥한 동물의 수와 같이 특정한 수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아프리카의 마사이 족은 지금도 미혼 여성이 자신의 나이를 알리기 위해 나이와 같은 개수만큼 놋쇠 목걸이를 하고 다닌다고 한다.
어쨌든 일대일 대응은 아주 옛날부터 수를 세는 기초 개념으로 인식했고, 지금도 사용한다. 일대일 대응의 원리로 시작한 수는 기호를 사용하며 매우 다양하게 발전했다. 이를테면 시간의 계산과 1년을 12달로 나누는 12진법, 각도와 시간에서 1시간을 60분으로, 또 1분을 60초로 나누는 60진법, 독일 농부의 농사 달력에 썼던 5진법, 현재 컴퓨터에 사용하고 동양의 음양사상과 관련이 깊은 2진법, 그리고 우리가 오늘날 사용하는 10진법 등이 있다. 10진법은 단순히 생물학적인 이유, 즉 우리 손가락이 모두 열 개인 데서 비롯했다. 만약 손가락의 개수가 일곱 개 또는 아홉 개였다면 아마도 7진법이나 9진법을 썼을 것이다.
고대 바빌로니아에서 썼던 60진법은 17세기만 해도 유럽에서 흔하게 사용했다. 그런데 그들은 왜 간편하고 자연스러운 10진법을 두고 까다롭고 부자연스러운 60진법을 사용했을까? 확실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많은 사람이 다음과 같이 추측한다. 10이라는 수는 60에 비해 융통성이 떨어진다. 10에는 약수가 2와 5, 두 개가 있지만 60에는 2, 3, 4, 5, 6, 10, 12, 15, 20, 30 등 모두 열 개가 있다. 실생활에서는 어떤 수를 2, 3, 4, 5 등으로 나눌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를테면 4는 10으로 나눌 수 없으나 60을 나눌 수는 있으므로 10진법보다 60진법이 소수의 복잡한 계산을 하지 않아도 된다. 실제로 0과 1사이를 10등분하여 0.1, 0.2, 0.3, …, 0.9, 1과 같이 나눌 수 있고, 다시 0과 0.1 사이를 10등분하면 0.01, 0.02, …, 0.09, 0.1이 된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분수로 표현된 수를 소수로 고칠 수 있지만 불행하게도 이런 식의 분해는 간단한 분수인 조차도 정확한 소수로 나타낼 수 없다. 그 이유는 10을 3으로 나누면 0.333…과 같이 3이 끝없이 계속되어 정확하게 쓸 수 없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60진법은 소수로 나타낼 수 있는 분수의 가짓수가 10진법보다 많기 때문에 10보다 60이 융통성이 더 있다는 것이다.
피라미드와 삼각형세금을 거두려면 삼각형의 넓이를 구하라
직각삼각형과 단위분수로 작은 수를 계산했던 고대 이집트 사람들에게 수학은 제사장과 같은 특별한 신분의 사람들만이 다를 수 있는 학문이었다. 농부들은 신의 뜻을 전하는 제사장을 신과 거의 동일시했기 때문에 그들을 잘 섬기려고 했다. 매년 추수 때가 되면 제사장들은 농부들에게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제사를 지낸 대가로 세금을 거두어들였다. 그리고 일정하게 세금을 거두기 위해 곡식이나 포도주 또는 기름과 같이 일정한 부피나 무게가 나가는 물건들을 측량할 때 기준이 되는 항아리를 사용했다. 세금은 농장의 크기에 따라 정해졌기 때문에 규모가 크면 세금을 많이 냈고, 작으면 적게 냈다. 이렇게 농장의 규모에 따라 적절한 세금을 거두기 위해 제사장들은 그 농장의 넓이를 계산해야 했다.
넓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계기는 아마도 신전의 바닥을 포장하기 위해 깔았던 정사각형 모양의 타일 때문이었을 것이다. 가로와 세로로 각각 여섯 개의 타일을 붙이려면 모두 36개의 타일이 필요하고, 또 가로로 열 개, 세로로 네 개의 타일을 붙이려면 모두 40개의 타일이 필요했다. 이와 같은 생각으로 직사각형이나 정사각형의 넓이는 가로의 길이와 세로의 길이를 알면 간단히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모든 땅이 정사각형이나 직사각형 모양은 아니다. 제사장들에게 권한을 부여받은 세금징수원들은 농토의 모양이 직사각형이 아닌 사각형이거나 경계가 들쑥날쑥해 넓이를 쉽게 구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알고 있던 방법은 구하려는 영역을 작은 타일과 같은 정사각형으로 나누는 것인데, 그렇게 나눌 수 없는 경우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그런 땅은 삼각형으로 나눌 수 있다. 실제로 모든 다각형은 삼각형으로 나눌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은 만일 삼각형의 넓이를 구할 수 있다면 어떠한 땅의 넓이도 쉽게 측량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다행히 그들은 운이 좋게도 삼각형의 넓이는 정사각형이나 직사각형의 넓이를 반으로 나누어 구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와 같은 간단한 실마리 덕분에 삼각형의 넓이는 밑변의 길이에 높이를 곱해 2로 나누면 된다는 것도 알았다.
땅을 측량하는 사람들은 삼각형의 넓이를 활용했기 때문에 측량하려는 땅의 넓이를 비교적 쉽게 알 수 있었다. 이집트의 농장은 긴 나일 강 줄기를 따라서 분포했는데, 이곳만 비옥한 땅이었고 농장을 제외한 곳은 사막이었다. 매년 여름이면 홍수가 나서 강물은 둑을 넘었고 농사를 짓던 땅들이 모두 잠겼다. 이때 강의 상류에서 떠내려온 흙이 강 주위의 땅을 모두 덮었기 때문에 땅을 소유한 농부들은 자신의 땅이 정확하게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였는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러나 매년 일어나는 이런 홍수는 농부들에게 번거롭지만 아주 고마운 일이었다. 홍수가 난 후에는 상류에서 떠내려온 기름진 흙 덕분에 농사가 더 잘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땅의 경계를 정확히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제사장들은 매년 땅을 다시 측량해 주인에게 그들의 땅이 어디까지인지 알려주어야 했다. 사실 제사장들은 단순히 달력 제작자나 건축가만은 아니었고 세계 최초의 전문측량기사였다.
이후 고대 이집트 사람들의 주된 측량법은 주로 삼각형 분할법이었다. 그래서 제사장들에게 특별한 임무를 부여받은 전문측량가들은 삼각형의 성질을 잘 알아야 했을 것이다. 사실 우리가 아는 삼각형에 관한 사실은 대부분 이들에게서 시작되었다. 오늘날 삼각형을 활용한 땅의 측량법에서 비롯한 수학의 한 분야를 기하학(geometry)이라고 한다. 이 말은 땅(geo)과 측량(metry)을 뜻하는 두 가지 그리스어를 합친 말이다. 당시 측량가들은 삼각형 분할법으로 원의 넓이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원을 삼각형으로 정확하게 나눌 수 있는 방법은 알아내지 못했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말뚝을 고정하고 줄을 팽팽하게 묶은 후에 원을 그렸고, 줄의 길이를 조절해 큰 원이나 작은 원을 쉽게 그렸다. 그러면서 서서히 원의 넓이는 원의 반지름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원과 주판바퀴와 태양 그리고 숫자 0
지금부터 약 6,000년 전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이 처음으로 바퀴라는 대단한 물건을 발명했다. 처음에 이것은 딱딱한 나무판을 다듬어 가운데에 구멍을 뚫어 회전축을 끼운 단순한 모양이었으나 점차 세 조각의 판자를 금속 띠로 연결해 사용했다. 그후 바퀴의 쓸모가 많아지자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 사람들은 그것으로 일상에서 사용하는 짐마차나 전쟁에서 사용하는 전차를 만들었고, 기원전 2000년경에는 판으로 된 바퀴를 개량해 오늘날과 같이 가벼운 살을 가진 바퀴(spoked wheel)을 만들었다.
바퀴의 기원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있는데, 그중에서 가장 설득력이 있는 내용은 굴림대의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바퀴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굴림대는 무거운 짐을 옮길 때 그 밑에 넣고 굴리는 통나무로, 짐을 이동할 때 같이 옮겨야 하는 불편함과 무겁다는 단점이 있다. 이를 개량하려고 막대 같은 굴대(차축)의 양쪽 끝에 원판을 붙이는 착상을 해 바퀴를 만든 것으로 여겨진다. 그후 바퀴의 무게를 줄이기 위한 노력 끝에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이 살을 가진 바퀴를 발명했고, 기원전 1600년경에 이집트에 전파된 후 유럽 전역에 퍼졌다고 한다. 기원전 1300년경 중국에도 살이 있는 바퀴가 달린 전차에 관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바퀴를 훨씬 전부터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도 아주 오래전부터 바퀴를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유물이 발굴되었다.
바퀴의 사용은 공간 중심의 인류문명을 시간 중심으로 바꾸어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이런 변화는 서구 근대화를 촉진하는 결과를 낳았다. 합리화, 도시화, 산업화, 공장화, 자본화, 분업화, 기계화 등으로 다양하게 설명되는 서구 근대화는 400년이란 짧은 시간에 인류문명의 패러다임을 공간 중심에서 시간 중심으로 바꾸었다. 특히 경제와 군사 분야는 가속화의 과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모든 인류가 바퀴를 사용했던 것은 아니다. 바퀴의 발명과 사용은 제한된 지역과 문명에서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아메리카 인디언과 잉카인들은 유럽인들이 전파해주기 전까지 바퀴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인디언은 주로 말을 이용했고 잉카 문명은 고지대에 있었기 때문에 바퀴는 오히려 더 성가신 물건이었다. 하지만 바퀴를 사용하지 않은 이들도 저마다 훌륭한 문명을 창조했다. 또 이집트의 사막지대에서도 바퀴는 낙타보다 효율적이지 못했다. 에스키모가 사는 북극지방에서도 바퀴보다 썰매가 더 실용적이었고, 아마존과 같은 늪지대에서는 바퀴 달린 수레보다 배 같은 것이 더 유용했다.
결국 바퀴를 발명했다고 해서 더 뛰어난 문명은 아니며 인류문명의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문명이 발전하면서 바퀴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그리고 바퀴와 수레는 권위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권위의 상징인 바퀴는 태양을 뜻했는데, 인류에게 태양숭배는 가장 오래되고 광범위한 형태의 토테미즘으로 고대문명을 주도했던 모든 민족에게서 발견된다. 그리고 태양과 바퀴는 모두 원형이다. 그래서 인류는 원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원이 태양을 상징할 때 남성적인 힘을 뜻한다. 하지만 영혼이나 마을 또는 대지를 둘러싼 바다를 상징할 때는 어머니와 같은 여성적인 부드러움을 뜻하기도 한다. 중심이 있는 원은 완전한 주기, 둥근 고리의 완전함, 존재하는 모든 가능성을 해결한다는 것을 뜻한다. 특히 중심이 찍혀 있는 원은 태양을 상징한다. 이런 맥락에서 중심에 축이 있는 바퀴는 태양과 같다. 특히 태양과 바퀴 그리고 숫자 0은 인간의 사유와 삶에 의미 있는 영향을 끼친 세 개의 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