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그릴라 하늘호수에 서다
황의봉, 이재석 지음 | 미래의창
샹그릴라 하늘호수에 서다
황의봉, 이재석 지음
미래의창 / 2011년 5월 / 296쪽 / 13,000원
Part 1. 샹그릴라, 나를 부르다
夢_ '험난하고도 아름다운 길'을 꿈꾸다나 홀로 낭만 여행, 그 10년 꿈의 실현
윈난은 우리나라로 치면 남도와 비슷하다. 아름다운 자연과 더불어 소박한 사람들의 인정이 넘치고, 냉혹한 경제 논리에서 한 걸음 빗겨 선 곳. 권력에서는 소외됐지만 대신 예술과 낭만의 기운이 흐르는 곳!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의 남도에서 느꼈던 이런 분위기가 짙게 깔린 곳이 윈난이다. 중원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변방의 남녘 땅, 소수 민족들이 제 방식대로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곳, 경제 개발의 폭풍우 속에서 한 발짝 뒤쳐져 있는 곳, 하지만 빼어난 풍광만큼은 어느 곳에도 뒤지지 않는다.
애초에 나의 이 윈난 여행에 샹그릴라는 없었다. 윈난성의 중덴 현이 지금의 샹그릴라 현으로 개명된 것이 2001년 말이었으니 당시만 해도 샹그릴라는 그저 베이징의 한 호텔 이름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윈난의 한 시골 도시가 소설 속의 이상향인 샹그릴라로 개명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경로를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상향? 거기만 가면 정말 이 번잡한 현실을 잊고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물론 전설에나 나오는 그런 이상향이 있을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다른 곳에 없는 그 무엇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게 된 것이다.
샹그릴라Shangri-La는 1933년에 영국의 제임스 힐튼이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이라는 소설에 등장한 단어로 '이상향'을 뜻하는 의미로 지금도 널리 쓰이고 있다. 소설은 이곳을 히말라야 산맥 어딘가의 신비로운 설산과 계곡 초원이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경관, 라마교 사원을 중심으로 장수하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사람들, 인류의 지혜가 집적된 경전과 책과 음악의 보고로 그려 낸다. 이 소설은 발표되자마자 서구 세계에 그야말로 선풍적인 인기를 불러 모았다. 당시 세계 대전과 경제 위기로 암담함에 빠진 서양인들에게 샹그릴라는 희망과 위로를 가져다주기에 충분한 이상향이었다.
샹그릴라 이야기는 1972년에 또다시 영화로 만들어져 성공한다. 급기야 호텔, 리조트, 골프장, 항공사, 여행사, 심지어 미국 대통령 휴양지의 명칭으로 쓰일 정도로 유명한 단어가 됐다.(미국 메릴랜드 주의 대통령 휴양지 캠프 데이비드 루스벨트 대통령에 의해 샹그릴라로 명명되어 쓰이다가 1953년 현재의 이름으로 바뀐 것이다.) 어찌 보면 중국 정부가 21세기에 샹그릴라에 주목한 것은 때 늦은 감도 있다. 아무튼 뒤늦게 샹그릴라에 마음이 꽂히면서 나의 여행 구상은 더욱 구체화돼 갔다.
50대 두 중년 남자의 의기투합
최소한 보름은 걸릴, 그래서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엄두를 못 냈던 샹그릴라 배낭여행의 기회가 마침내 찾아왔다. 30년 넘게 다니던 신문사 울타리를 벗어나면서 가장 먼저 뇌리에 떠올린 것은 이제 윈난성을 마음 놓고 가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렇다! 윈난성 여행이 아니더라도 이 땅의 50대 안팎의 중년들에게는 무거운 짐을 잠시 내려놓고 자신을 되돌아볼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제2의 인생이니 어쩌니 하지만 막상 반평생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면 말처럼 쉽게 새로운 삶이 시작되겠는가? 우선 떠나고 볼 일이다. 익숙한 곳에서 낯선 곳으로 공간 이동부터 해야 한다. 그곳에서 지난 시절의 모든 미련을 내려놓고 원점에서부터 인생 설계를 해볼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뉴욕도, 파리도, 베이징도, 상하이도 아니다. 나는 감히 반드시 윈난이어야 하고, 리장이어야 하고, 샹그릴라여야 한다고 믿는다. 중년의 한국인들이 살아온 세상이 바로 뉴욕이고 파리고 베이징이고 상하이였기 때문이다. 거기서 부대끼고 지치고 상처받은 영혼들이 다시 그리로 가서 재충전하고 상처 씻어 내고 미래를 설계할 수는 없지 않은가? 리장과 샹그릴라의 윈난에서 우리는 분명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샹그릴라 여행은 '리따하오'라는 동조자를 만나면서 급진전됐다. 고교동창인 이 친구는 쉰이 넘은 나이에 중국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중국어를 배우러 문화원을 제 안방처럼 오가더니 요즘은 중국을 집처럼 드나든다. 리따하오라는 중국식 이름까지 만들었을 정도니 정말로 중국통이 된 친구다.윈난 여행 구상이 구체화되면서 리따하오에게 슬쩍 내비치니 아니나 다를까 대찬성이다. '샹그릴라'라는 멋진 이름의 이상향이 창조된 것인지 한 번 파고 들어가 보자는 데 의기투합한 것이다.
路_ 쿤밍에서 따리, 얼하이 호수와 대리국의 후예들11년 전 추억을 더듬으며 선 쿤밍거리
2010년 9월 하순, 이제 대망의 샹그릴라, 샹바라를 찾아 윈난으로 떠난다. 모든 준비는 끝났다. 허약해진 몸도 많이 추슬렀고 '인생 후반부를 밝혀줄 내 마음속의 해와 달을 찾아보리라' 마음도 다시 가다듬었다. 인천 공항을 심야에 이륙한 비행기는 4시간여 만에 쿤밍 공항에 도착한다. 막상 보름 일정의 스케줄을 놓고 디테일한 일정과 비용까지 따지다 보니 시간이 엄청 걸린다. 어느덧 새벽 4시가 넘어간다. 웬 따질 것들이 그리 많고 경우의 수가 그리 많은지! 결국 한잠 자고난 뒤 오전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일단 헤어졌다. 샹그릴라 여행의 첫날은 이렇게 시작됐다.
최종적으로 확정한 여행 일정은 쿤밍-따리-리장-루구호-호도협-샹그릴라-샹청을 거쳐 야딩의 삼신산을 보고 다시 리장, 쿤밍으로 와 귀국 비행기를 타게 된다. 교통편이 많지 않은 곳은 현지 여행사 신세를 지고 그 외에는 자유로이 움직이는 식으로 결정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다소 불투명했던 교통이나 숙박 등이 완전 해결된 것이다.
왕년의 대리국 '따리'에서부터 출발
샹그릴라 여행의 구체적인 일정 조율이 모두 끝났으니 이 시간부터 본격적인 여정에 나서게 될 참이다. 서운하긴 하지만 쿤밍은 생략이다. 한 차례 와본 곳이고 또 당시에 샅샅이 돌아다녔으니 처음부터 지체할 필요는 없다. 사실 쿤밍도 만만치 않은 볼거리를 자랑하는 관광 도시다. 저 유명한 스린과 지우샹 동굴이 지척이고, 시내에 있는 공원 호수만 해도 2,3일은 돌아다니며 볼만하다. 소수 민족에 관심 많은 사람이라면 윈난 민족촌도 강추 코스다. 중국 내 55개의 소수 민족 가운데 26개 민족이 윈난성에 산다. 쿤밍이야말로 소수 민족의 집결지 같은 도시다.
쿤밍을 지나쳐가는 대신 따리에서 1박을 하고 가기로 결정했다. 동행인 리따하오가 이 지역에 초행이기 때문에 그에게 따리의 상징적 장소인 얼하이 호수를 보여주고 싶었다. 또 따리야말로 왕년에 윈난 지역의 중심이었고 '대리국'과 '대리석'의 고장이 아닌가. 샹그릴라를 찾아가는 여정의 첫 방문지로 따리는 손색없는 곳이다.
지도를 펼쳐보니 쿤밍에서 서쪽 방향인 따리, 리장, 샹그릴라, 티베트로 갈수록 해발 고도가 높아진다. 윈난성뿐 아니라 중국 대륙이 전체적으로 동저서고의 지형이다. 태평양에 면한 동쪽에서부터 내륙 쪽으로 갈수록 고도가 높아지는 모습이다. 해발 고도를 보니 쿤밍 1,895미터, 따리 2,090미터, 리장 2,400미터, 샹그릴라 3,200미터로 높아진다. 고지 적응하기에는 단계적인 아주 이상적인 구조다. 이대로 서쪽으로 가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몸이 지형 지세에 맞춰지지 않을까.
쿤밍에서 따리 가는 길은 창밖 풍경이 별로다. 산도 밋밋하고 나무들은 키가 작다. 그렇다고 드넓은 들판이 펼쳐진 것도 아니다. 비산비야非山非野라고 하기에도 그렇고, 하여간 별 특징 없는 풍경만 스쳐 지나간다. 11년 전 왔을 때는 심야 버스로 이 구간을 지나간 까닭에 바깥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었다. 그때도 소변 참느라 엄청 힘들었던 추억(?)만 선명하게 남아 있다.
Part 2. 샹그릴라는 그곳에 있었다
眞_ 윈난성, 디칭주, 샹그릴라 그리고 장족마침내 샹그릴라 땅을 밟다
다시 차를 타고 샹그릴라를 향해 달린다. 리장을 출발한지 3시간쯤 지났을까. 금사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자 샹그릴라 현 경내에 접어들었다는 표지판이 보인다. 조금 더 가니 호도협 길목의 작은 마을 차오토우가 나타난다. 위룽 설산과 하바 설산의 위용은 언제 보아도 당당하다. 금사강의 힘찬 물살도 여전하다. 호도협 트레킹을 하면서 지나친 풍경들이 새롭게 다가온다. 저 깎아지른 절벽 위의 좁은 길을 두 발로 이틀이나 걸었다니 생각할수록 스스로 대견해진다.
차오토우를 지나자 본격적으로 샹그릴라 분위기가 느껴진다. 전망이 탁 트여서 멀리 설산들이 연봉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인다. 도로와 나란히 흐르는 강물도 매우 거세다. 뭉게 구름과 쪽빛 하늘이 여행자의 맘을 설레게 한다. 공기 또한 상쾌하다. 저절로 즐거워지는 드라이브 코스다. 자연 경관과 어울리지 않는 딱 한가지는 공안(경찰)의 삼엄한 분위기……. 국경절 기간의 인구 대이동에 즈음한 비상 경계 근무 때문이다.
리장과 달리 샹그릴라는 디칭 장족 자치주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나시족의 땅에서 지금 티베트 인들의 땅으로 넘어온 것이다. 그러니까 이곳은 티베트 인들이 밀집한 지역으로, 한족이 주도하는 중국 정부의 일급 경계 구역인 셈이다. 샹그릴라는 더구나 디칭 장족 자치주의 주정부 소재지이기 때문에 특히 신경 쓰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국경절 연휴로 많은 외지인들이 들어와 티베트 인들과 접촉하게 될 터이니 중국 정부가 눈에 쌍심지를 켠 심정을 알 만하다.
차는 계속 달려 산자락에서부터 중턱까지 집들이 점점이 박힌 이족고원 촌락을 거쳐 샤오중덴을 지난다. 샹그릴라로 지명이 바뀌기 전에는 '중덴'으로 불렸으니 샤오중덴은 말하자면 '작은 샹그릴라'다. 아주 작은 고을이지만 넓게 펼쳐진 초원과 멀리 보이는 산들이 샹그릴라를 닮았다고 해서 그런 짐명을 얻은 모양이다.도로 주변이 넓은 초원 지대라서 탁 트인 전망으로 가슴이 뻥 뚫린 듯 시원스럽다. 공기도 점점 차가와지면서 쾌적 지수는 더욱 높아지나. 리장의 여름철 기온이 18~23도인데 비해 샹그릴라는 평균 16~17도 안팎이라고 한다. 쿤밍에서 따리와 리장을 거쳐 샹그릴라로 갈수록 해발 고도가 높아지면서 공기가 신선하고 경치 또한 더욱 볼만해진다는 나의 예감은 계속 맞아떨어진다.
샤오중덴을 지나자 다시 넓은 초원이 나타난다. 지다무 초원이다. 어느 순간 붉은 초원이 눈앞에 펼쳐진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줄기, 가지, 꽃 모두 붉은 색이다. 난생 처음 보는 식물인데 이것이 지천으로 깔려 있어서 차를 세우고 촬영을 하기로 한다. 가까이 가서 보니 볼품없는 모양인데 멀리서 보면 온 들판을 덮고 있는 붉은 색의 향연이 볼만 하다. 무슨 꽃이냐고 물으니 '랑두화'라고 한다. '이리의 독'이라는 꽃 이름이 예사롭지 않다. 랑두화는 봄에 노란 꽃을 피웠다가 가을에는 붉게 변한다고 한다. 잘 살펴보면 줄기에 작은 가시들이 돋아나 있는데 바로 여기에 독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참 묘한 것이, 이 초원 지대에서 방목하는 야크들이 어떻게 아는지 이 랑두화 만큼은 절대로 뜯어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동물적인 감각으로 독의 냄새를 맡는 것인지,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아무튼 자연의 신비는 오묘하다. 이 랑두화를 짓이기면 하얀 진이 나오는데, 피부 가려움증에 특효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독과 약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랑두화를 잘만 연구하면 의약품이나 화장품의 원료로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마침내 샹그릴라에 왔다. 리장에서 184킬로미터, 차에서 중간 중간 내려 사진 찍으면서 오니 점심 때가 다 되어서야샹그릴라 시내에 들어선다. 널찍한 길에 비해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여느 도시처럼 화려하거나 요란한 분위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빌딩도 드문드문 눈에 띌 정도다. 새로 개발되는 도시의 부자연스러움 혹은 생경함이 살짝 묻어난다. 샹그릴라 외곽의 도시는 이상향의 자취를 느껴 보려는 나의 기대감과 달리 무미건조하게 다가온다.
샹그릴라는 윈난성 서쪽에 위치한 디칭 장족 자치주의 4개 현 가운데 하나다. 우리로 치면 중소 규모의 시에 해당한다. 전체 인구는 36만 명에 이르지만 중심지인 현 성 안의 인구는 4만 명가량이다. 장족 자치주로 장족이 30퍼센트를 차지하긴 하지만 이밖에도 이족, 나시족, 한족 등 다양한 민족들이 어울려 산다.
디칭주는 윈난성에서 가장 높은 메이리 설산(6,740미터)을 비롯해 5천~6천 미터를 넘나드는 수많은 설산과 험준한 협곡, 광활한 초원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엄청난 스케일의 자연 경관을 간직하고 있다. 또 이곳은 이른바 3강 병류 지역으로, 금사강(장강 상류를 일컫음)과 란창강(티베트에서 일컫는 이름으로, '메콩강'이라고도 함), 누강(티베트를 벗어나면 '살윈강'이라고 하며 윈난을 거쳐서 미얀마로 흐름)이 나란히 흐른다. 이 3강 유역은 황금이 풍부하게 매장돼 있고, 실제로도 오랫동안 강에서 금을 캐오고 있어 '산이 보물을 품고 강에는 금이 흐른다'는 황금 생산지이기도 하다.
자연 환경이 독특하니 기후도 특이하다. 여름엔 좀처럼 25도 이상 올라가지 않아 시원하지만 겨울엔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가서 춥다. 그런가 하면 7~8월엔 우리나라처럼 비가 많이 온다. '산 하나에 사계가 있고 십리마다 하늘이 같지 않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아열대, 온대, 고산의 한랭 기후까지 모두 분포되어 있다.
샹그릴라를 제대로 느끼려면 이 지역의 실질적인 주인공이 장족과 그들의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 장족은 중국의 55개 소수 민족 가운데 하나지만 사실상 '티베트 인'이라는 전혀 다른 민족 개념으로 보아야 옳다. 540만 명의 장족은 현재의 시장 장족 자치구와 그 동쪽의 고원 지대에서모여 살고 있다. 이번 여행의 목적지인 샹그릴라와 야딩 일대는 이른바 동 티베트 지역으로 이곳은 장족들의 땅이다.
장족은 농업과 목축, 약초 캐기 등으로 생활하는데, 이들에게 생업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종교다. 장전 불교 즉, 라마교(티베트 불교)를 빼놓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의 배경도 샹그릴라의 라마교 사원인데 척박한 환경 속에서 살아야 하는 티베트 인들에게는 현세의 물질보다 정신적인 위안이 될 윤회의 믿음에 더 관심이 쏠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샹그릴라의 원형인 샹바라 왕국의 전설도 이런 믿음에서 비롯된 이상향인 것이다.
장전 불교라는 명칭은 중국식 분류에 따른 것이다. 중국은 한전 불교, 즉 북전 불교를 대승 불교로, 남전 불교를 소승 불교로, 장전 불교를 라마교라고 부른다. 장전 불교는 대승 불교로 분류되긴 하지만, 한전 불교와는 달리 밀종을 중시하고 있고 소승 불교의 교리도 상당 부분 수용하고 있다. 장전 불교는 또 토속 신앙 요소도 많이 내포하고 있다는 게 큰 특징이다. 우리가 익히 들어온 '활불 환생'이라는 신비하고 독특한 제도를 갖고 있고 정치와 종교가 밀접히 결합돼 있다. 이런 장전 불교의 정교일치, 현세성불, 개인숭배 등의 교의들이 정통 불교와는 상반된다고 해서 불교로 분류하기에 적당치 않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爭_ '샹바라'를 아시나요?'샹바라'에서 벌어지는 의미 없는 원조 논쟁
드디어 멀리 도시의 불빛이 보인다. 산을 완전히 내려온 차는 도시로 들어가는 다리를 건너 시골 읍내 분위기의 거리를 지난다. 이곳이 바로 샹청이다. 행정 구역으로는 쓰촨성 간쯔 장족 자치주의 샹청 현이다. 8시가 넘은 시각이니 샹그릴라에서 7시간 이상을 쉬지 않고 달려온 것이다. 샹그릴라 현이나 샹청 현이나 모두 장족 자치주이니 사실 윈난성, 쓰촨성 구분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다. 여기는 티베트 인들의 땅인 것이다.
'자시 호텔'에 짐을 풀고 늦은 저녁 식사를 하러 샹청 거리로 나선다. 그런데 거리의 간판 이름이 샹바라 일색이다. 샹바라 쇼핑 센터, 샹바라 문화 광장, 샹바라 민족 호텔……. 가로변에 매달린 깃발들도, 외부 방문객을 환영한다는 대형 간판에도 온통 샹바라와 샹청으로 표기되어 있다. 정말 샹바라의 고장에 왔다는 실감이 난다. 샹바라! 샹그릴라의 원형으로 알려진 전설의 왕국이요, 불교의 정토 세계를 의미하는 바로 그것이 여기에선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