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라에서 별을 헤고 프라하에서 왕의 길을 걷다
연공흠, 연아름 지음 | 이지출판
사하라에서 별을 헤고 프라하에서 왕의 길을 걷다
연공흠, 연아름 지음
이지출판 / 2011년 5월 / 352쪽 / 15,000원
01 사막에서 별을 헤다 - 이집트아빠, 우리도 이집트 여행 가요!
사랑하는 딸 아름이가 이집트 여행을 가자고 졸라댄 것은 오래 전부터다. 친구가 이집트를 한 달 동안 여행하고 깜둥이가 되어 돌아와서는 사막의 모래가 솜사탕처럼 보송보송하고 밤하늘의 별이 보석처럼 반짝이더라며 들려주는 아프리카 여행담에 푹 빠져가지고 우리도 이집트 구경을 가 보자고 틈만 나면 성화였다. 세계사 시간에 배운 고대문명의 발상지 이집트. 5천 년 전에 거대한 왕국을 세우고 피라미드를 건축한 신비의 나라를 가 보고 싶은 마음이야 늘 한구석에 있었다.
하지만 여행비가 만만치 않은 데다 갔다 온 사람들마다 늘어놓는 이집트인의 속임수에 대한 공포 때문에 선뜻 나서지 못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공부거리가 산더미 같은 아름이를 데리고 여행을 떠나기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에 가지 뭐' 하고 미루다 보니 일 년이 훌쩍 지나버렸고 한두 달 전에 이집트를 다녀온 친구들이, 아찔했던 경우도 있었지만 문화 유적이 그리스나 로마 문명보다 훨씬 찬란하다며 꼭 한 번 가봐야 할 곳이라고 바람을 넣어 가족여행을 결심했다.
나일 강 따라 삼천 리
이집트의 여정은 왕국의 수도 멤피스에 인접한 카이로, 중왕국과 신왕국의 수도로 번영을 누렸던 테베를 끼고 있는 룩소르, 그리고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인 아부심벨과 이시스(필라에) 신전을 주변에 품고 있는 아스완 등 세 곳에 집중되어 있다. 홍해의 휴양지 후르가다에서 다이빙을 즐기는 것도 이집트 여행의 참맛이라지만, 그곳은 이번 여행 일정에 넣지 않았다.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는 나일 강 하구 지중해 연안에 있고, 룩소르는 카이로에서 나일 강을 따라 상류 쪽으로 730km 올라간 곳에 있다. 아스완은 룩소르에서 다시 220km를 올라가야 하며, 아부심벨을 가려면 아스완에서 또 280km를 더 가야 한다. 기차를 이용할 경우 카이로에서 룩소르까지 9시간, 룩소르에서 아스완까지 3시간, 아스완에서 이집트의 최남단 수단 접경 지역의 아부심벨까지는 자동차로 다시 서너 시간이 더 걸린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이집트에서 룩소르나 아스완으로 이동할 때 비행기를 타거나 외국인 전용 야간 침대열차를 이용한다. 그동안 여행자들은 대개 현지 에이전트를 통해 침대열차표를 구입했는데, 2010년부터 이집트 국영 철도회사에서 침대열차 승차권을 대형 여행사에 위탁 판매하는 시스템으로 바꾸어 도무지 표를 구할 길이 없었다. 표를 몽땅 사들인 현지 대형 여행사가 자기네 여행사를 이용하는 관광객에게만 웃돈을 받고 표를 제공하고 있어 우리 같은 개별 여행객 몫은 없었던 것이다.
침대열차는 1인당 미화 60달러(한화 72,000원)에 저녁과 다음날 아침식사가 나오고 좌석열차는 127이집트파운드(25,400원)에 식사는 제공되지 않았다. 우등고속버스처럼 좌석이 통로 오른쪽 하나, 왼쪽에 두 개가 있는 형태여서 넓고 안락하였다. 카이로를 출발한 열차는 한 번도 쉬지 않고 9시간을 달려 룩소르에 도착했고, 몇 무리의 승객이 타고 내린 후 다시 출발하여 논스톱으로 3시간을 달려 아스완에 닿았다. 나일 강을 끼고 가다 보니 차창 밖으로 사탕수수밭이며 야자수가 우거진 초록 들판이 이어졌다.
완성하지 못한 오벨리스크
아스완에서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고대 이집트 채석장이다. 이곳에서 돌을 캐어 카르낙 신전도 짓고 오벨리스크도 만들었다는데, 착암기나 기중기가 없던 시절에 오로지 사람의 힘만으로 몇 개월 몇 년에 걸쳐 돌을 자르고 다듬었다고 한다. 채석장에는 당시 자르다 만 거대한 돌덩이가 하나 있었다. 이집트의 오벨리스크는 오로지 한 덩어리 돌로 만들었는데 이 오벨리스크가 미완성인 채 누워 있는 까닭은 아마도 가운데 쩍 금이 갔기 때문이리라.
프라이드 치킨을 먹고 싶은 스핑크스
룩소르에서 야간 침대열차를 타고 다시 카이로로 왔다. 이집트 하면 떠오르는 피라미드는 바로 카이로 교외의 기자에 있다. 지금부터 4,500여 년 전 까마득한 옛날에 2.5톤이나 되는 돌을 230만 개나 쌓아 만든 불가사의한 건축물, 멀리서 피라미드가 얼핏 보일 때부터 나의 가슴은 콩닥콩닥 뛰었다. 기자에는 쿠프, 카프레, 멘카우레, 세 왕의 거대한 피라미드와 크기가 작은 왕비, 공주의 피라미드 몇 개가 단지를 이루고 있다. 시기적으로 가장 앞선 쿠프 왕의 피라미드가 146m(현재는 137m만 남아 있다), 그의 아들인 카프레 왕의 것이 136m, 카프레 왕의 아들인 멘카우레 왕의 것이 65.5m(현재는 62m)다. 건축 당시에는 겉면 화강암이 유리면처럼 매끄러웠다는데 후손들이 떼어가기도 하고 4,500년 풍상에 닳고 닳아서 울퉁불퉁한데다 꼭짓점도 많게는 9m까지 허물어졌다.
피라미드 내부를 보고 온 사람들로부터 입장료가 아까웠다는 말을 들었지만, 언제 다시 올까 싶기도 하고 아름이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 카프레 왕의 피라미드 내부를 관람하였다. 좁은 통로에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찌를 뿐 정말로 아무것도 없었다. 가장 안쪽으로 들어가니 꼭 무덤 같아 여기가 왕의 미라가 있었던 곳이구나 했는데, 미라가 발견되지는 않았고 왕의 무덤이라는 결정적인 단서는 아직까지 없다고 해서 어리둥절하였다. 거의 모든 사람들의 피라미드를 왕의 무덤이라고 믿고 있고 많은 학자들의 주장 역시 그러하지만, 왕의 무덤이 아닌 다른 목적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다.
어쨌거나 한 변의 길이가 230m, 밑변 둘레가 921m나 되는 쿠프 왕 피라미드의 가로 세로 오차가 거의 없으며 수천 톤이나 되는 무거운 돌덩이가 위를 짓누르는데도 이를 분산시켜 넓은 현실을 안전하게 확보한 기술에는 현대 토목기술자나 건축가들이 놀라고 있다. 카프레 왕의 피라미드 바로 앞에 장제전이 있고 장제전 정면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 스핑크스가 있는데, 오랜 세월 풍상에 마모되어 시멘트 덩어리 같은 몸통의 뒷모습에서 위엄은 찾아볼 수 없었다. 길을 따라 내려가 정면에서 스핑크스를 바라보니 코가 떨어져 나가고 얼굴 전체가 심하게 마모되어 있었다. 코는 11세기에서 15세기에 이르는 동안 아랍 순례자들이 망치로 부수었고 떨어져 나간 턱수염의 일부는 런던 대영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아름이의 여행노트>
세계사 시간에 배운 아스완 댐을 직접 보았다. 댐에는 물이 가득 고여 있는데 주변의 땅은 바짝 말라 있어 바람이 살짝 불어도 먼지가 폴폴 일었다. 이 호수의 방대한 물은 비가 많이 내리는 에티오피아의 청나일 강과 우간다, 케냐, 탄자니아의 백나일 강에서 흘러온 물을 가두어 놓은 것이고, 정작 이곳은 비가 내리지 않는 지역이다. 이 호수 물을 끌어다 메마른 땅에 농사를 지을 수는 없을까? 그렇게 하면 거기에 콩도 심고 밀도 심고 포도나무도 가꿀 수 있을 텐데…. 부지런한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이집트 사막을 옥토로 바꾸어 놓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02 대영제국의 흔적을 더듬다 - 영국미국 역사, 여기서 발원하다
1620년 9월 6일 메이플라워 호가 출항했다는 메이플라워 스텝스에 섰다. 청교도를 태운 이민선 두 척은 당초 사우스햄턴에서 출항했다. 그런데 이름만 보면 매우 빠를 것 같은 스피드웰(speedwell) 호가 너무 낡은 데다 배에 구멍이 나서 항해를 할 수 없게 되자 한 달 후 메이플라워 한척만 외롭게 이곳에서 다시 출발하게 된 것이다. 종교의 자유와 신대륙 개척이라는 꿈을 안고 배에 오른 102명의 청교도들은 대서양의 거친 파도와 배고픔을 이겨내며 두 달간 향해한 끝에 북아메리카 동북부의 케이프 콧에 상륙하여 황무지를 일구고 물고기를 잡으며 정착에 성공하였다. 거기서 발원한 미국은 400년이 채 되지 않은 지금 인구도 영국의 4배가 넘고 부에 있어서는 견줄 수 없을 만큼 초강대국이 되었다.
1588년 영국의 드레이크 제독은 스페인의 무적함대와 싸우기 위해 이곳 플리머스를 출발했다. 그리고 130척의 스페인 무적함대를 영국 도버와 마주보고 있는 프랑스 칼레에서 삼국지의 적벽대전과 흡사한 화공으로 박살을 냈다. 그때 격침시킨 스페인 군함이 51척인데 영국 군함은 단 한 척의 손실도 없었다고 하니, 이순신 장군이 전선 13척으로 왜선 133척을 격파한 9년 후(1597년)의 명량해전과 견줄 만하다. 이후 제해권을 완전히 장악한 영국은 세계 영토의 4분의 1을 통치하며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의 번영을 누리게 된 것이다.
<아름이의 여행노트>
영국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신대륙으로 건너가서 미국이라는 나라를 건설하였다는 것은 영어 시간이나 세계사 시간에 배웠다. 바로 그 메이플라워 호가 출발한 플리머스 항에 온 것이 가슴 뿌듯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영국은 섬나라이고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여서 두 나라의 지리적 조건이 비슷한데 우리 조상들이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가 미국에 나라를 세웠다면 아메리카 대륙에도 한국인의 후손이 살고 있을 것이고 당연히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한국어가 세계어가 되었을 텐데. 메이플라워 호가 떠난 것이 조선 선조 때 이순신 장군이 활약하던 시절이니 우리나라의 배 만드는 기술도 뛰어나지 않았을까. 아빠에게 이 이야기를 하였더니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 하신다.
천년 영국 왕실의 거처 윈저 성
윈저는 런던 교외, 템스 강을 서쪽으로 거슬러 올라간 곳에 있는 지역 이름이다. 이곳에 있는 윈저 성은 잉글랜드 첫 번째 왕인 윌리엄 1세가 지어 현재까지 1천 년 동안 역대 영국 왕실의 거처로 사용되고 있어, 유럽의 성중에서 가장 오랜 기간 왕이 사용하고 있는 곳이다. 영국 역사 중 유일하게 왕정이 중단된 17세기 크롬웰의 공화정 시절에는 군사기지로 사용하였고 당시 국왕이던 찰스 1세를 가둔 곳이기도 하다. 사실 성(castle)이라 부르고 있으나 엘리자베스 여왕의 공식 주거지이고 주말이면 여왕이 종종 이곳에서 국정을 살핀다고 하니 실제로는 궁(palace)으로 부르는 게 옳지 않을까 싶은데, 단순한 국왕의 거처가 아니고 요새이므로 굳이 성이라고 쓰는 것 같다.
면적은 약 52.600㎡(16,000평)로 왕실의 성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15세기 말에는 16세기 초에 지었다는 성 조지 예배당은 규모는 크지 않지만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처럼 왕들의 무덤이 있다. 유명한 헨리 8세와 그의 세 번째 부인으로 유일하게 아들을 출산하고 바로 사망한 제인 시모어의 무덤이 있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아버지 조지 6세와 어머니 엘리자베스(여왕 어머니의 이름도 엘리자베스다), 2002년에 여왕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동생 마가렛 공주의 무덤도 이곳에 있다. 가끔 왕실의 결혼식이 열리기도 하는데 여왕의 막내아들인 에드워드가 이곳에서 소피와 결혼식을 올렸고, 찰스 왕세자가 두 번째 부인 카밀라와 결혼식을 올린 곳 또한 이곳이다. 윈저 성에서 나와 템스 강을 건너 이튼스쿨(현지에서는 Eton College라고 함)을 찾았더니 방학 중이어서 개방을 하지 않아 밖에서 건물만 잠깐 둘러본 후 코츠월드로 향하였다.
셰익스피어의 고향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은 영국의 행정단위 중 최소 단위인 행정교구(civil parish)에 해당하는 작은 도시다. 그러나 이 도시에서 셰익스피어가 태어나 자랐고, 은퇴해서 말년을 보내다 뼈를 묻은 곳이어서 영국은 물론 해외에서 온 많은 관광객들이 거리에 가득하다. 셰익스피어 생각는 물론이고 그와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곳은 모두 관광지이며, 작은 도시 전체가 17세기 튜더왕조 시대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시내 중심에 있는 셰익스피어 생가는 낡은 목조 이층 건물이다. 400여 년 전에 지어졌기 때문에 발을 옮길 때마다 소리가 나는 이 집 이층에는 대작가가 태어난 침대와 낡은 책상이 있다. 생전에 그가 즐겨보던 책과 일상용품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고, 부엌과 식당과 세간들도 그때 모습대로 꾸며 놓았다. 생가 정원에서는 배우들이 셰익스피어 연극을 공연하여 분위기를 돋워 주었다.
속삭여도 들린다. 세인트폴 대성당
웨스트민스터 사원이나 트라팔가 광장, 버킹엄 궁전은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거리에 모여 있었으나 세인트폴 대성당은 동쪽으로 한참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지하철 중앙선(Central Line)을 타니 금방 도착하였다. 영국 오기 전에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이 영국에서 가장 큰 교회인 줄 알았고 오래전 처음 영국에 왔을 때도 세인트폴 대성당은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세인트폴 대성당은 웨스트민스터 사원가는 견줄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였다.
크리스토퍼 렌의 설계로 1675년 짓기 시작해 35년 만에 완성한 이 성당은 돔의 높이가 111m로 1962년까지는 런던에서 제일 높은 건축물이었다. 지금도 바티칸 산 피에트로 대성당, 이탈리아 피렌체 대성당과 함께 세계 3대 성당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도시를 대표하는 성당 이름이 대개 노트르담(성모 마리아를 뜻함)이고 다른 나라의 경우 성 베드로(세인트 피터, 산 피에트로, 장크트 페터)의 이름을 딴 것이 많은데, 이 성당은 바울(폴)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이 성가대석으로 중간이 가로막혀 있는 것과는 달리 세이트폴 성당은 홀이 훨씬 크면서도 중간에 시야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없었다. 왕실 결혼식은 대부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열리는데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의 결혼식은 1981년 바로 이 성당에서 거행되었다. 나도 다이애나가 꼬리가 엄청나게 긴 드레스를 입고 입장하던 당시 결혼식 광경을 TV로 본 기억이 나 성당에서 안내를 하는 성직자에게 물어보았더니, 찰스는 여기 서 있었고 다이애나는 저쪽에서 걸어왔다며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트리팔가 해전에서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를 격파한 넬슨 제독,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에게 대승을 거둬 그의 통치를 종식시킨 웰링턴 장군,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고 회고록을 써서 노벨문학상까지 받은 윈스턴 처칠 경의 장례식이 열린 곳이 또한 이곳이다. 넬슨 제독과 웰링턴 장군의 무덤은 바로 이 성당 지하에 있는데 두 영웅의 관은 영국에서 본 무덤 중 가장 크고 화려하였다. 역대 최고 권력을 누렸던 국왕의 무덤보다 이들의 관이 더 장엄하였으니,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선열에 대한 영국인의 존경과 사랑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 같다.
<아름이의 여행노트>
세인트폴 대성당은 웨스트민스터 성당보다 크고 아름다웠다. 이곳에는 '속삭이는 복도'라는 신비한 벽이 있다. 계단을 이용해서 한참 올라가면 성당의 돔에 다다르는데 이 돔 안쪽에 따라 동그렇게 사람이 다닐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이 통로의 벽에 대고 말을 하면 그 소리가 반대편 사람에게 또렷하게 들린다. 내가 아빠와 정반대편에 서서 서로 속삭여 보았는데 벽을 타고 온 소리가 옆에서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이 성당을 설계한 크리스토퍼 렌은 천재 건축가요 기하학자로 옥스퍼드 대학교 교수였다고 한다. 파동의 반사 성질을 이용해서 계획적으로 만들었다는데 내 짧은 지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신기한 벽이었다.
03 천지창조의 비경에 빠지다 - 아일랜드바이킹족이 건설한 항구도시
첫 번째 목적지인 코크로 가는 길은 여러 개가 있지만 동쪽 해안을 따라 달리는 NII 국도를 이용했다. 2시간을 달려 아클로 근처 휴게소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다시 또 2시간을 달려 항구도시 워터퍼드(Waterford)에 도착했다. 워터퍼드는 5만 여 명이 거주하는 아일랜드에서 다섯 번째 큰 도시로 10세기 초반 이 지역을 침입한 바이킹족이 베로우 강과 슈어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건설하였다. 좋은 지리적 조건 때문에 항구도시로 번성하였으며 '워터퍼드 크리스털' 생산지로 유명하다.
때는 12월 21일. 부두 옆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워터퍼드 시내로 들어가니 여기저기 오색 전구가 반짝거리고 캐럴이 울려 퍼지는 것이 성탄절 분위기에 흠뻑 젖어 있었다. 특별히 물건을 사지는 않았지만 시내 중심지와 백화점을 돌아다니며 아일랜드의 정취를 느껴보고 크리스마스 기분도 맛보았다. 구세군 자선냄비는 없었지만 산타 모자를 쓴 자선단체가 백화점 로비에서 합창공연을 하며 불우이웃돕기 모금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