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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있는 죽음의 조건

아이라 바이오크 지음 | 물푸레


품위 있는 죽음의 조건

아이라 바이오크 지음

물푸레 / 2011년 5월 / 372쪽 / 14,800원



프롤로그_ 죽음은 곧 희망이다


나는 이른바 ‘품위 있는 죽음’이 비록 드물더라도 분명 존재하는 것이며, 시나 종교, 문학과 같은 허구의 세계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마치 계시라도 받듯이 돌연 깨달았다. 또한 품위 있는 죽음을 특징짓는 요소를 파악함으로써 호스피스 업무의 본질과 죽음이라는 인간적 체험의 핵심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느꼈다. 그리하여 나는 환자와 가족들에게 죽음이라는 특수 상황 앞에서 ‘무엇을 느끼는지, 왜 그렇게 느끼는지’에 대해 물어 보기로 했다. 그러자 몇 가지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첫째로, 죽음에 대한 체험은 사람에 따라 크게 달랐다. 어떤 이는 자신이 그때까지 살았던 방식 그대로 죽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바뀐 뒤에 죽었다. 환자나 가족이 한결같이 말하는 긍정적인 종류의 경험은 어떤 변화의 경험이다. 그들은 이 경험이 소중하고, 심지어 ‘건강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둘째로, 품위 있는 죽음은 결코 우연이나 요행의 산물이 아니라 그 본질을 이해하고 애써 추구할 때만 얻을 수 있는 결과라는 것을 깨우쳤다.

나는 여러 해에 걸쳐서 자신의 신체가 병들어 가는, 아니 문자 그대로 붕괴해 가는 동안에도 정서적으로 평안을 유지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다. 정신력이 아무리 강한 사람조차도 결국은 죽고 마는 것이 사실이라면, 바로 그 피할 수 없는 죽음의 과정에서 특히 잘 해내야 할 ‘무엇’이 있을 것이다. 호스피스에서의 내 경험을 미루어 볼 때, 사람은 죽어 가는 동안에도 의미 깊은 과정을 성취할 수 있으며, 자신과 가족들에게 유의미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마지막 시간 나누기 - 쎄이모어 바이오크, 70대



삶과 죽음의 가르침: 나는 아버지에게 아버지의 사촌이자 주치의였던 스튜어트를 당장 만나보라고 당부한 뒤 전화를 끊었다. 이틀 후에 간장과 담낭에 대한 초음파검사와 CT촬영으로 췌장 꼭대기에 있는 혹 덩어리가 발견되었다. 바로 그 다음 날 스튜어트는 진단목적의 수술을 실시했다. 십이지장과 췌장, 담즙관의 연결부에 음식물과 소화액이 지나갈 수 있는 우회 통로를 만든 뒤, 혹에서 적당량의 조직 검사용 생체 표본을 채취하는 작업이었다. 조직 표본을 검사했으나 단순 염증만이 확인될 뿐 암세포는 발견되지 않았다. 아버지와 어머니, 여동생 몰리는 무척 기뻐했다. 하지만 나는 분명한 언급하기를 꺼리는 의사들, 특히 스튜어트에게는 심한 분노를 느꼈다. 그는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지 정확하게 알면서도 아버지에게 터놓고 말하는 것을 피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당신에게 남은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를 명확하게 알 권리가 있었다. 그런데도 스튜어트는 막연하고 희박한 희망을 마치 확실한 것처럼 말하고, 수술 이후의 치료 문제에만 집중하여 가장 중요한 질문을 빗겨갔다. 스튜어트는 “형님은 금방 전처럼 건강하게 회복되실 겁니다.”라는 말로 쉽게 상황을 정리했다. 이제 와서 다시 생각해 보니 스튜어트는 아버지의 치료에 관한 의무와 책임에서 벗어나 가까운 친척으로서의 역할을 했으면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은 채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아침 암 센터에 도착해서 진료를 기다리고 있을 때 아버지는 의자에 앉아 눈을 꼭 감고 쉬다가 잡지를 뒤적이고 있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는 앞으로 살날이 6개월이라고 말하더니, 이제 와서는 그 기간을 조금씩 줄여서 말하는구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롱브랜치 해안 보도에서 간이 점심 판매점을 운영하는 아버지 친구들과 함께 커피라도 마시는 게 어떻겠냐고 나는 제안했지만, 아버지는 단호하게 “싫다.”고 말했다. “친구들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다.” “아버지, 병에 걸리신 게 부끄러우세요?” “그렇구나. 게다가 다른 사람들이 거북스러워하지 않겠니?” 나는 아버지가 보지 못하게 눈을 깜박여 고인 눈물을 삭였다. “아버지께서는 편찮으신 것을 전혀 부끄러워하실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지금도 여전히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어머니는 저녁 무렵 아니타, 몰리와 함께 병원에 누워 있는 아버지를 방문했다. 아버지는 그즈음 다소나마 유쾌한 기분을 회복했고, 얼마간 식사를 한 뒤에는 기운을 차려 어린 손녀를 안아 주기까지 했다. 우리는 아버지가 다음날 정오쯤 퇴원하리라고 생각하면서 밤 아홉 시경에 병원을 나섰다. 한 시간쯤 후에 병원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보신 어머니는 아버지가 머지않아 세상을 떠날 거라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기운을 차리기로 했다. 그 사이에 검사용 혈액과 담즙에서 배양된 대장 박테리아가 어떤 두 종류의 항생제에 특히 예민하게 반응하여 쉽사리 박멸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으므로, 주사 대신 구강으로 항생제를 복용하기로 한 뒤에 다시 다음날 아침 우리는 아버지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니타는 실기 훈련을 받은 내과 의사의 조수였고, 나 자신이 현직 의사였어도 아버지를 간병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일은 당연히 우리가 맡아야 했다. 만약 우리가 의료 실무 경험이 부족했다면, 출장 간호사를 따로 채용하거나 아버지를 호스피스에 입원시켜야 했다. 돌이켜 보면 나는 말기 환자를 돌보는 데에 꼭 필요한 지식을 예과 시절이나 전문의 과정으로부터가 아니라, 돌아가실 무렵의 외할머니를 간병하던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배웠다. 이것은 믿기 힘든 사실이겠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며칠 후 아침, 아버지는 옆구리 통증을 호소했다. 묻지 않았는데도 아버지가 아프다고 말할 때는 극심한 통증이 있다는 것을 뜻했다. 진찰을 해 보고 간장 주위의 복부가 이상하게 물렁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진통제를 놓았더니 이내 잠이 들었지만, 잠시 후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오한과 함께 체온이 치솟아 38도를 넘어섰다. 나는 의자를 끌어당기고 침대 옆에 앉아서 아버지의 여윈 팔에 내 손을 올려놓았다. “몇 가지 심각하게 드려야 될 말씀이 있습니다. 염증이 재발했어요. 이제 항생제만으로는 염증을 가라앉힐 수 없는 게 분명합니다. 저희들은 모든 것을 아버지 뜻대로 할 것입니다. 정작 돌아가실 때가 되면 뉴저지 집에 계시기를 원하는지, 혹은 병원에 계시기를 원하는지, 아버지께서는 얼마 전에 이야기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니타와 저는 아버지를 여기 저희 집에서 마지막까지 모시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알아주세요.”

아버지는 고개를 돌려 천천히 나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몇 분인가 지난 뒤에 침대 발치 너머로 시선을 돌렸다가 두 눈을 다시 감더니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아버지, 감사해요! 아버지,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는 아버지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 순간까지도 나는 아버지의 결정이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지 몰랐다. 아니, 그런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 순간 아버지는 자신의 몸을 온전히 가족에게 의지해야만 하는 현실에 대한 저항감을 거두고, 마치 이승에서 벗어나 영원으로 가는 길 위에 놓인 이정표라도 되는 듯이 기꺼이 가족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옷을 벗기고 입히며, 용변과 목욕을 시키고, 불편을 살피는 등 그에 관한 모든 일을 하도록 온전히 가족에게 허락한 아버지의 결정은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남겨준 최후의 선물이었다.

죽음이 남겨준 최후의 선물: 나는 아버지가 병상에 누워 서서히 죽어가는 순간에도 우리에게 허락해준 순수한 사랑의 존엄성을 기억한다. 아버지는 당신의 인생에서 만난 가장 어려운 도전에 정면으로 맞섬으로써 가장 빛나는 모범을 보여 주었다. 아버지의 암이 확실하게 진단된 뒤부터, 나는 죽음에 대한 내 모든 선입견과 죽음을 앞둔 환자들의 진료에 관해 배운 모든 것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했으며, 암 또는 기타의 난치병으로 죽어 가는 환자들의 존엄성이 특히 의학적 진료의 세계에서 매우 등한시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VMS 내부에 체계적인 호스피스 프로그램을 만들고, ‘희망하다’ 그리고 ‘기다리다’라는 의미의 스페인어 에스페라르(esperar)에서 나온 ‘에스페란자’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것이 수천 명의 환자들의 죽음을 지켜보게 된 내 기나긴 여정의 시작이다.

가장 나답게 죽어가기 - 앤느마리 윌슨, 50대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한 깨우침: 앤느마리 윌슨은 성 패트릭 병원 건너편에 있는 닥터 오스본의 사무실에 붙어 있는 조그만 진찰실에서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선종대장암, 진단 결과는 예상과 일치했다. 벌써 몇 달째, 그녀는 복부 팽창과 통증, 그리고 이따금 구토로 이어지는 구역질로 시달리고 있었다. 여러 종류의 제산제를 시험해봤으나, 그 가운데 어떤 약도 듣지 않았다. 바로 일주일 전에 닥터 오스본은 그녀에게 초음파 검사를 실시한 뒤, CT스캔과 대장의 내시경검사, 그리고 ERCP검사를 위해 그녀를 병원에 입원시켰기 때문에 그녀는 자신의 복통과 그 밖의 고통이 단순한 소화불량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사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가슴속에 있는 정서적인 비밀을 동생에게 충분히 털어놓지 못했다. 앤느마리가 동생 캐시에게 그 무서운 진단 결과를 쉽사리 말할 수 없었던 또 다른 이유는 대장암으로 2년 동안이나 앓다가 마침내 처참하게 죽어간 어머니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다. 그들 자매 모두 어머니의 죽음으로 혹독한 고통을 당했기 때문에 더 이상 아무에게도 그 같은 일을 두 번씩 겪게 할 수 없다고 앤느마리는 확신했다. 그녀는 언젠가 더 이상 스스로를 돌볼 수 없게 되면 망설임 없이 병원에 입원하기로 결심한 바 있었다. 그래서 동생에게는 입원하고 나서 얘기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앤느마리는 마트에서 스카프 두 장과 미니 선인장 정원을 샀다. 물건 값을 치르고 그녀는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자동차 키를 더듬어 찾다가 그녀는 미니 정원의 테라코타 접시를 깨뜨리고 말았다. 앤느마리는 망가진 선인장을 보면서 울기 시작했다. “어째서 나야? 왜 언제나 나냐고?” 점차 암이 번지고 있었으므로 그녀는 처음 계획했던 예정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뱃속 깊이에서 끊임없이 쑤셔대는 통증은 더 이상 참고 견디기 어려웠다. 그로 인해 그녀의 취미활동은 완전히 줄었고, 체중이 감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복부가 여전히 부풀어 오르는 것을 자주 느꼈다. 두 사람이 재킷과 스웨터를 고르고 있을 때 늘 14호 크기를 입던 앤느마리에게 10호짜리 옷이 맞는 것을 보면서 살이 부쩍 빠진 게 틀림없다고 캐시가 말했다. 캐시는 언니에게 무슨 문제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상 죽어 가는 사람을 돌본다는 것은 고역이며 무한한 인내심이 요구되는 일이다. 매일같이 환자의 약을 챙겨주어야 되고 위생상의 요구도 충족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캐시는 거의 절망적으로 지난날의 과오를 바로잡고 싶어 했으므로, 사실상 그녀에게 있어서 간병은 부담이 아니라 하나의 선물이었다. 앞으로 시간이 얼마가 남았건 자신들에게 남아 있는 시간을 함께 지내려는 결심에 있어 그녀들은 망설이지 않았다.

앤느마리가 캐시네 집으로 이사할 때조차 그녀는 딸에게 자신의 병을 알리지 않았고, 신디는 그 이유를 묻지 않았다. 엄마는 딸이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추측했다. 신디가 견지하는 거리감과 거부감이 결혼식에 대한 앤느마리의 계획을 한층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딸의 결혼식에서 자신이 눈에 띄게 병약해 보이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앤느마리에게 있어서 말기 질환이 하객들에게 알려지는 것보다 더 끔찍했던 일은 자신의 몹쓸 처지 때문에 딸이 뭇사람들로부터 도덕적인 비판을 듣게 되는 상황이었다. 앤느마리의 입장에서 볼 때, 신디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데는 즐거운 행사를 축하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결혼식이 거행되는 그 날은 그녀가 엄마로서의 역할을 완수하는 기회를, 그리고 더 이상 보지 못할 친척들과 친구들을 마지막으로 만나 볼 수 있는 기회를 의미했다.

그로부터 머지않아 앤느마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잠으로 보냈다. 6월의 어느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던 앤느마리는 머리가 어지럽고 현기증이 난다는 느낌을 받았고, 욕실로 가는 동안 힘없이 쓰러지면서 싱크대에 머리를 부딪치고 의식을 잃었다. 그날 밤 앤느마리는 성 패트릭 병원에 입원했다. 그녀는 급격한 외상 출혈과 지속적으로 진행된 내장 출혈로 말미암아 빈혈 상태가 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빈혈 사건은 앤느마리의 가족을 위해서도 어느 정도 긍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녀에게 종말이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녀의 딸이 그녀에게 조금씩 다가섰던 것이다. 캐시의 말에 의하면, 그때까지도 엄마의 죽음을 믿지 않던 신디가 집에 들러 그녀에게 결혼식 사진을 전해 주고, 의사에게 갈 때는 자기 차로 가자고 제안했다고 했다.

숭고한 의식: 나는 8월 초 어느 날 아침에 앤느마리를 보았다. 그녀는 모든 시간을 침대에 누워 보냈으며 빠른 속도로 죽어 갔다. 간호사인 앤디와 신디, 캐시는 수십 장의 대형 타월과 수건, 목욕통과 따뜻한 물, 비누, 샴푸, 그리고 향수를 모아 놓고 앤느마리의 모습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을 만질 때는 그녀를 아프게 하거나 그녀가 깨어나지 않게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앤느마리의 몸은 심하게 말라 잿빛으로 보였고, 피부는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목욕 작업이 끝나자 앤느마리의 모습은 눈부시게 변했다. 그녀를 사랑하는 여인들이 슬픔의 눈물을 머금고 자신의 주변을 빙 둘러선 가운데 앤느마리는 한 번 깊게 한숨을 내쉬더니 영원히 숨을 거두었다.

숙련된 의학적 치료와 함께 환자와 가족의 개인적인 경험 내용을 깊이 고려함으로써 죽음은 보다 견딜 만한 것으로 바뀔 수 있다. 죽음의 인간적인 의의와 의미를 강조함으로써, 생명에서 죽음으로의 전이 또한 탄생의 기적과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에게 심오하고 친밀하며 귀중한 경험이 될 수 있다.

존엄성 회복하기 - 윌리스 버어크, 60세 / 줄리아 로서, 50대 / 하프 비쉐, 87세



하프 비쉐: 하프 비쉐가 호스피스로 보내진 것은 단 한 번의 진단으로 내려진 결정이 아니었다. 그는 초기 알츠하이머병의 증세에도 불구하고, 막상 여든일곱 살 나이로 병원에서 심장발작을 일으키기 전까지 아내 힐다와 함께 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를 기점으로 모든 일이 꾸준한 내리막길을 걸었다. 내가 처음 하프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당시에 그는 요양원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로 ‘운영상의 골칫거리’가 되어 있었다. 그는 늦은 밤부터 이른 아침 사이에, 특히 더 자주 감정상의 동요를 일으켰고, 독일어로 고함을 지르거나 주먹을 휘둘러 간호사와 조수들에게 위협을 가했다. 요양원에서는 마침내 나에게 하프의 약물을 조절하여 사정이 좋아지도록 도와 달라는 요청을 했다.

내가 하프를 만나던 아침에 그는 놀랄 만큼 또렷한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진료 기록에 의하면 그는 자신이 여전히 1956년 몬타나 주의 동부 평원에 있다고 생각하는 식의 즐거운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의례적인 정신과 검사를 실시하는 대신, 나는 그에게 그의 일생과 지나간 세월에 관한 질문을 했다. 그는 요양원에서 보내는 일상사에 대해 서슴없이 그리고 명료하게 얘기하고 다코우타의 추운 겨울에 대한 추억을 들려주었다. “비쉐 씨, 어르신이 보기에는 그런 얘기들이 그저 흔한 얘기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우리들 모두의 귀중한 보물이며, 기록으로 보존된다면 가족에게도 믿을 수 없이 소중한 선물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어르신뿐이지요. 어르신만 좋다면 며칠 후 다시 들러서 일을 시작하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는 유쾌하게 찬성했다.

나는 하프와 가졌던 두 번의 대화에서 그가 살던 일상생활의 질이 그의 생명을 계속 유지시킨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는 이미 소싯적의 자기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자신의 삶을 즐기고 있었다. 비교적 가까운 과거는 치매 증세의 지배에 들어갔으나, 오래 전에 있었던 일들에 대한 기억은 거의 손상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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