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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사랑한 파리

이중수 지음 | 샘터


그녀가 사랑한 파리

이중수 지음

샘터 / 2011년 5월 / 255쪽 / 12,800원



1부. 낭만과 예술이 흐르는 파리의 명소




파리의 중심은 루브르가 아니다 - 세계 지성의 산실, 생제르맹데프레

에디트 피아프는 알제리 태생의 권투 선수 마르셀 세르당(1916~1949)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녀는 마르셀 세르당이 비행기 사고로 죽기 1년 전, 그들의 사랑을 술회하며 '내 인생의 단 하나뿐인 진실한 사랑'이라 말할 정도로 그와 뜨거운 사랑을 나눈다. 그러나 마르셀 세르당이 죽자 고독하게 아파트에 칩거한 채 오로지 그와의 기억만을 떠올리며 두문불출했던 피아프, 그녀는 2년 후 다시 무대에 서서 사랑과 이별의 눈물로 써 내려간 <사랑의 찬가>를 노래한다. 마르셀 세르당은 왜 그토록 에디트 피아프를 사랑했는가? 나의 여가수는 자주 경고한 바 있다. 삶은 미리 준비되는 법이라고 그녀는 내 곁에서 노래했다.

파리는 다인종 다국적 다문화의 도시다. 파리는 세계인의 수도다. 그런 의미에서 파리의 진정한 중심은 지리적 중심인 루브르가 아니라 전 세계 지성의 산실이었던 생제르맹데프레다! 지금은 이름이 바뀐'샤르트르-보부아르 광장'에 이르러 차 한 잔 마실 만한 카페를 고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생제르맹 대로에 자리한 광장 덕분에 광장 주변에는 명성이 자자한 카페가 세 개가 들어섰다. 카페 '레 되마고', 카페 '드 플로르', 카페 '보나파르트'. 나는 그 가운데 카페 '레 되마고'로 들어선다. 그리고 한쪽 구석, 예전에는 헤밍웨이가 앉아 차를 마시던 자리를 들어선다. 그 자리는 지금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생제르맹데프레 교회는 10세기 때 지어졌지만, 그 흔적은 정면 부분에서만 찾아볼 수 있을 뿐 거의 새로 증축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하늘을 향해 쭉 뻗어 올라간 종탑은 바라보는 이로 하여금 전혀 중압감을 주지 않으면서도 결코 단순하지 않은 고딕 초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교회 뒷부분에 눈에 띄게 육중한 몸체를 떠받치고 있는 버팀돌들은 노트르담 성당에서 더욱 확고해진다.

카페 되마고에서 파리 국립 현대미술학교(보자르) 쪽으로 발길을 옮기면 나타나는 카페 보나파르트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명소였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카페 바로 앞에'긴 의자'란 뜻으로'다방'이란 서점이 자리하고 있었다. 센 강 좌안의 현실이 그렇듯, 지금은 문학, 사상, 예술과는 상관없이 옷가게들이 들어차 있다. 서점이 있던 자리에도 예외 없이 크리스티앙 디오르 옷가게가 들어서 있다.

생제르맹 대로는 파리의 역사와 문화가 시작된 센 강 좌안을 가로지르는 길이다. 이 길 좌우측에는 소르본 대학을 비롯하여 콜레주 드 프랑스, 노트르담 성당, 팡테옹, 룩셈부르크 공원, 상원의사당, 생미셸 광장, 퐁네프, 학술원, 파리국립미술학교인 보자르, 오르세 미술관, 하원 의사당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니까 이 길의 중간에 생제르맹데프레 광장이 있는 셈이다. 파리 시민들이 이 작은 광장 주변을 파리의 중심으로 여기는 것도 당연하다.



버림받은 화가들의 전시장 - 센 강의 오르세 미술관

오르세 미술관은 원래 기차역이었다. 오를레앙을 향해 출발하던 기차의 시발역이었던 오르세가 19세기 인상주의 미술관으로 거듭난 때는 문화주의자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 시절이었다. 오르세 미술관이 유명한 것은 버림받은 화가들의 작품들만 걸려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다름 아닌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 활동했던 인상주의 화가들이다. 인상주의 화가의 효시로 알려진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를 필두로 인상주의의 완성자 모네의 <수련>을 거쳐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반 고흐의 <해바라기>, 근대 회화의 아버지 세잔이 말년에 주로 그린 <생트빅투아르 산>에서, 포근한 잠의 꿈을 파스텔의 눈부신 색채와 따뜻한 질감으로 절묘하게 소묘한 절름발이 화가 툴루즈 로트렉의 <침대>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당시에 주목받지 못한 화가들의 작품들이다.

인상주의는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일어난 가장 주목할 만한 예술사조였지만, 처음으로 그 용어가 사용된 계기는 모네의 <해 뜨는 인상>을 본 루이 르루아(미술 비평가)가 신문에 기고하면서, 모네의 작품명에서 비롯된 '인상Impression'이란 용어를 전통에 반한 새로운 유파를 한데 싸잡아 비꼬아 부르는 용어로 채택하면서부터다. 1874년 봄, 모네, 피사로, 시슬레, 드가, 르누아르 등 일군의 화가들은 기존의 프랑스 미술 아카데미가 주관하는 살롱전에 대항할 목적으로 자신들의 작품만으로 단체전을 구성하여 파리의 사진작가 나다르Nadar의 아틀리에에서 개최한다. 이를 본 루이 르루아가 '인상'이란 말을 경멸의 뜻을 담아 '어설프고 유치한 일군의 작품들'을 가리키는 용어로 왜곡시키고 변질시킨 것이다.

그렇다면 인상주의란 무엇인가? 이제 회화는 역사와 신화의 주제만을 그릴 것을 강요하는 전통 아카데미 회화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도전하게 되었다. 화가의 개성적인 시선을 통해 바라본 세계가 중요한 시대가 비로소 열린 것이다. 그것은 또 하나의 혁명이었다. 비교하자면, 루브르에 걸린 그림들은 가까이서 찬찬히 들여다볼 때 더 묘미가 있고, 오르세에 걸린 그림들은 멀리서 바라볼 때 더욱 실감이 난다. 그래서 오르세의 그림을 '달력 그림'이라 하는지도 모르겠다. 코크리코('닭볏'이란 뜻)가 흐드러지게 핀 언덕을 양산을 든 여인이 내려오는 모네의 그림을 보면 이런 특징이 더욱 확연해진다. 만일 이 그림을 가까이서 본다면 거친 붓놀림밖에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멀리서 바라보면 그 붉은 점들은 프로방스 들판에 흐드러지게 핀 아름다운 수탉벼슬꽃임을 알게 될 것이다.

도시는 아름다워야만 한다. 살 만한 이유가 충분해야 한다. 단지 일거리를 찾아 몰려드는 도시여서는 안 된다. 예스러움과 현대적인 멋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곳, 바로 그곳이 도시여야만 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가장 여성스럽고 가장 아름다우며 가장 조화로운 도시가 파리다. 남녀를 구분 짓는 관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나 옛사람들이 남자와 여자로 성을 나누어 말을 사용했을 때의 의미는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라틴어를 어원으로 한 단어들 가운데 해는 남자고 달은 여자다. 가장 절묘한 성의 구분이다. 그러나 남자도 못 되고 여자도 못 되는 '더 타운'의 국제도시들을 생각하면, 복잡하고 번거로우며 사납고 징그러울 뿐만 아니라 흉측하기까지 하다.

예술가들이 사랑한 언덕길과 광장 - 몽마르트르 언덕과 물랭루즈

파리의 유일한 언덕은 '순교자 언덕'이란 뜻을 지닌 몽마르트르다. 예루살렘의 골고다 언덕(해골산)이나 로마의 스페인 광장을 본뜬 것이지만, 실제 이곳에서 파리 최초의 주교였던 드니 성인Saint Denis이 로마군에 의해 순교를 당했다. 아직 기독교가 공인되기 이전인 기원후 272년경의 일이다. 그러나 몽마르트르가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는 까닭은 이곳이 '화가들의 성지聖地'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화가인 빈센트 반 고흐도 동생 테오를 찾아 이곳으로 흘러들었고, 툴루즈 로트렉 역시 이곳에서 활동했다. 스페인 태생의 정열적인 화가 피카소는 바로 이곳에서 입체파(큐비즘)의 선구적 작품인 <아비뇽의 처녀들>을 완성했다. 이탈리아의 천재 화가 모딜리아니는 죽는 날까지도 바게트를 사기 위해 몽마르트르 꼭대기에 위치한 테르트르 광장에 자신의 작품을 내다 팔아야만 했다. 모네, 시슬레, 디아즈, 세잔 역시 한때 이 언덕에 둥지를 틀었다.

몽마르트르는 원래 파리에 속하지 않은 근교 지역이었다. 15세기 초까지만 해도 파리에서 제일 오래된 교회인 성베드로 성당 주위로 수도원과 50여 채의 집들이 전부였던 이곳은 이후에 포도밭과 작물의 재배지로 이어지다가 근대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140m 언덕의 최정상에 자리한 성베드로 성당과 그 앞의 테르트르 광장은 예전에는 허허벌판이었던 것이 차츰 카페 레스토랑들이 들어서면서 오늘날 '거리 화가의 성지'로 거듭났다. 다른 한쪽에 우뚝 세워진 대성당 사크레쾨르(우리말로는 예수성심 성당)는 보불전쟁의 산물로 1919년 완공되었다. 시테 섬에 위치한 노트르담 대성당과 함께 전대사 성당으로 유명하다. 사크레쾨르 대성당의 돔 전망대는 파리를 관망하기에는 최적의 장소다.

테르트르 광장, 1366년부터 광장이었던 이 조그만 공터는 전 세계 시민들이 즐겨 찾는 예술의 명소로 탈바꿈했다. 이유인즉슨 지금도 거리 화가들이 바로 이 광장에서 풍경화와 초상화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화가의 성지'로 불리는 테르트르 광장은 '산 말랭이'를 뜻하는 말로서 이곳이 몽마르트르에서 제일 높은 곳임을 실감케 한다. 주위의 카페 레스토랑은 처음엔 우후죽순으로 들어섰지만,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여행의 여유로움을 만끽하며 유리창 너머로 화가의 광장을 내다보기에는 이보다 더 좋은 곳이 없다.

언덕 아래쪽으로 계속 내려오면 물랭루즈가 나온다. 물랭은 '풍차'란 뜻이고 루즈는 말 그대로 '빨갛다'란 뜻이니 우리말로 하면 '빨간 풍차'쯤으로 번역될 법한데, 그냥 프랑스말로 물랭루즈 그 자체로 통하는 이 말은 프렌치캉캉이 공연되는 극장식 레스토랑을 가리킨다. 지금도 매일 두 차례의 공연이 펼쳐지는 식당을 겸한 극장에서 종합 뮤지컬이라 할 수 있는 공연을 보고나면 브라보를 외칠 수밖에 없는 감동이 몰려온다. 감동은 이미 샴페인의 적당한 취기로 부풀어 오른 상태다. 파리의 밤, 그 아름다운 이면을 목격할 수 있는 곳, 이곳이 바로 물랭루즈다!

빅토르 위고의 영혼이 머무는 곳 - 팡테옹과 카르티에라탱

팡테옹은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 언덕에 자리 잡은 파르테논이 로마의 판테온을 거쳐 프랑스화한 것이다. 만신전의 형태지만, 지붕이 파르테논 신전처럼 각지지 않고 둥그런 돔 형태를 띤 것은 로마의 판테온을 모델로 했기 때문이다. 파리의 라틴구라 불리는 카르티에라탱의 중심지는 아무래도 팡테옹이다. 1757년, 건축가 자크 제르맹 수풀로가 지은 돔 형식의 교회. 주위로는 생트주느비에브 성당을 비롯하여 시립도서관, 파리 1대학 팡테옹 소르본이 있다. 또한 건너편 파리 5구청을 지나자마자 바로 보이는 호텔 건물은 초현실주의자들의 성소였던 '호텔 데 그랑좀므(Hotel des Grands Hommes)’. 1919년 봄 팡테옹 광장 17번지에 위치한 이 호텔에서 앞으로 초현실주의를 이끌 앙드레 부르통과 필립 수포에 의해 자동 기술이 창안되었다.

팡테옹은 원래 교회였다. 그러나 프랑스대혁명 이후로 교회화와 세속화를 반복하다가 지금은 결국 프랑스에 지대한 업적을 남긴 역사적인 인물들의 영묘로 사용하고 있다. 팡테옹에 묻힌 인물은 모두 73명으로 각 분야에서 프랑스를 빛낸 다양한 인물들이 잠들어 있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사상가 장 자크 루소, 볼테르, 장 조레, 장 물랭 등을 비롯하여 문호 빅토르 위고와 에밀 졸라, 앙드레 말로, 알렉산드로 뒤마 등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으며, 프랑스에 최초의 노벨상을 안긴 폴란드 태생의 퀴리 여사도 남편과 함께 이 영묘에 묻혀있다. 내부의 돔 천정 아래에는 '푸코의 추'가 매달려 있는데, 이는 지구가 정확한 궤도를 따라 자전하고 있음을 입증하기 위해 설치한 것이다. 5톤에 달하는 진자는 돔 천장부터 바닥에 이르는 줄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천천히 좌우로 움직인다. 보는 이로 하여금 신비로움에 감탄케 하는 푸코의 추는 경험과학이 가져다준 선물이다.

2부. 천 년의 역사가 빚어낸 도시 파리



가장 아름다운 천 년의 시가지 - 시테 섬과 개선문, 아름다운 주상복합건물

파리는 12세기 필립 오귀스트 왕 때부터 본격적으로 다듬어지기 시작했으나, 파리의 탄생은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 파리 사람들은 센 강 한복판에 자리한 시테 섬에 모여 살았다. 물가에 사람이 사는 이치와도 같다. 이들을 파르비스Parvis라 불렀고 이 용어가 결국 도시이름이 되었다. 로마제국의 변방이었던 프랑스 제2의 도시 리용보다도 규모가 훨씬 작았던 파리는 로마제국 시절에는 루테티아Lutetia라 불렀다. 그러다가 기원전 3세기경 로마인이자 파리 총독이었던 줄리아노가 루테티아를 파리라 부른 것이다. 현재 시테 섬에는 고딕의 정수인 노트르담 대성당을 비롯하여 종합병원 오텔 디우, 법원, 파리 경찰청 본부, 꽃시장, 주상복합건물 등이 들어섰지만 중세까지만 해도 노트르담 성당을 제외하면 서민들이 모여 사는 거주 지역에 불과했다.

시테 섬에서 카르티에라탱(소르본 대학 주변 생미셀 지구까지를 '라틴구'라 부른다)으로, 다시 다리를 건너 센 강 우안에 자리 잡은 루브르로 확장을 거듭한 파리는 이후 더욱 근대적인 모습으로 바뀐다. 루브르에서 베르사유로 프랑스 왕실이 옮겨간 뒤에도 파리는 계속 다듬어진다. 그러다가 오늘과 같은 모습으로 정비되는 때는 루이 나폴레옹이라 불리는 나폴레옹 3세가 집권하던 시기다. 나폴레옹은 또한 자신의 승전을 기념하기 위한 개선문을 샹젤리제에 세웠다. 수면보다 30m가량 높은 언덕에 세워진 개선문은 오스트리아 빈을 정복하고 난 뒤인 1806년에 착공하여 1836년에 완공하였다. 높이는 50m, 폭은 45m로 맨 꼭대기에는 전망대가, 전망대 바로 밑에는 기념관이 들어서 있고 샹젤리제를 향한 문 오른쪽에는 황제 나폴레옹을 새겨 놓았으며, 문 왼쪽에는 일명 <무명용사들을 위한 출발>이란 부제가 붙은 조각이 자리하고 있다.

파리 시가지 정비를 주문했던 황제의 명에 따라 당시 파리 도지사였던 오스만은 유능한 인재들을 모아 오늘의 파리 모습을 완성했다. 그는 엔지니어 벨그랑에게 길 크기만 한 하수도를 건설하라 지시했고, 이 덕분에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 때 지하철이 개통될 수 있었다. 전기가 보편화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전기 배선만을 따로 모아 설치할 수 있는 공동구도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도시, 깨끗한 도시를 건설하고자 했던 오스만의 공적으로 파리 시에는 지금도 공장 굴뚝이 존재하지 않는다. 제조업자들은 이때 모두 파리 근교로 쫓겨났다. 이 조례는 오늘날에도 엄격히 적용되고 있는데, 이른바 '황제의 법'이라 불리는 나폴레옹 법전은 이렇듯 실용적이면서 아름다운 도시를 위한 기초가 되었다.

파리의 모든 길은 루브르에서 시작된다 - 루브르 박물관의 그림과 역사

길은 루브르로부터 시작한다. 루브르 정면으로 샹젤리제가 있고, 오른쪽으론 오페라 길이, 왼편으로는 센 강을 건너 생제르맹데프레로 향하는 길이 뻗어 있다. 길의 중심에 루브르가 있는 셈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카트린 드 메디치를 피렌체에서 데려온 프랑수아 1세는 이 루브르를 싫어했다. 그러나 며느리였던 왕비는 결국 퐁텐블로 궁전에서 루브르 궁전으로 이사한다. 그러나 그녀도 덩치만 큰 루브르가 춥고 싫증났던지 이탈리아에서 데려온 건축가들과 조각가들 그리고 화가들을 앞세워 루브르 앞에 이탈리아 풍의 튈르리 궁을 지었다. 파리코뮌 때 봉건 왕조의 상징으로 불타 없어진 이 화려한 궁은 이후에 지어질 베르사유 궁전보다 훨씬 더 아름다웠다고 전해진다.

루브르를 명실공히 오늘과 같은 풍부한 문화유산으로 가득 채운 장본인은 역시 황제 나폴레옹이다. 프랑스대혁명 이후 1793년 박물관으로 출발한 루브르지만, 오늘날 우리가 회랑에서 마주하는 서양 문화유산은 나폴레옹이 수집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리볼리 가의 왼쪽 날개 벽감에 조각된 조각상들 상당수가 나폴레옹을 도와 유럽을 정복한 이들이라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그들은 약탈이 아니라 '수집'이라 생각했다. 황제 나폴레옹은 파리에 모든 유럽 도시들의 특징이 혼재해 있기를 의도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한 뒤, 루브르 약탈 소장품의 3분의 2를 제 국가에 되돌려 줌으로써 막을 내렸다. 그런데도 오늘날 루브르는 40여 만점의 소장품을 자랑하는 세계 최대의 박물관이다. 건물 자체가 문화유산임은 말할 것도 없다.

문명에 대한 이해는 예술을 통해 극대화된다. 문화에 대한 관심은 그럼으로써 증폭된다. 물론 비문명을 야만이라는 이름으로 재단할 필요는 없다. 인류는 문명의 길을 걸어왔다. 그 이해가 바로 문화다. 문명이라는 관점에서는 오해될 여지가 많지만 문화라는 관점에서는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도시 전체가 박물관인 파리를 문명으로 바라보아야 하는가? 문화의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하는가? 나는 후자의 입장이다. 우리 인류는 문화 파괴를 유전적 형질로 타고났기에 우리가 이룩한 문명과 문화를 순식간에 잃어버리고 말았다. 역사박물관이란 대개 이렇듯 인류 문명의 허망성쇠를 압축하여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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