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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즈덤 Wisdom

앤드루 저커먼 지음 | 샘터
앤드루 저커먼 지음

샘터 / 2010년 12월 / 각권 160쪽(전4권) / 각권 15,000원

1권 위즈덤 아이디어 Wisdom Ideas




로버트 레드포드 Robert Redford

Nothing excites me more than being inspired by a new creative idea. 새로운 창조적 아이디어에서 영감을 얻는 것보다 더 나를 흥분시키는 일은 없다.



1937. 8. 18.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터모니카 출생. 뉴욕 아메리칸 연극 아카데미에서 연기를 공부하고 1959년 브로드웨이에 데뷔했다. 1960년대에 <알프레드 히치콕 프리젠츠> 등 TV 드라마에 출연하다가 1969년 폴 뉴먼과 <버치 캐시디와 선댄스 키드> 공동 주연을 맡았다. 이후 많은 히트작 영화에 출연하고 1980년 <보통 사람들>로 감독으로 전업, 아카데미 상 최우수감독상을 수상했다. 그 해 선댄스 협회를 설립, 연례 선댄스 영화제를 후원하고 있다. 2002년 아카데미 상 평생공로상을 수상했다.



독립성은 예술가로서 자신에게 끝까지 진실할 수 있게 해준다. 예술가로서의 영적 자극이 무엇이든 독립성이 있어야 지키기 쉽다. 일단 금전적 안정성을 생각하기 시작하면, 예술가로서 참된 자아가 좀먹어 들어가는 위험을 감수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돈에 대해, 안정성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면 예술가로서 맞닥뜨려야 할 위험을 감당할 수 없다. 그런 것에서 자유롭고 싶다면 그 부분은 버려둬야 한다.



나는 어쨌든 일을 그만둘 수가 없다. 새로운 창조적 아이디어에서 영감을 얻는 것보다 나를 더 흥분시키는 일은 없다. 이게 모두 예술가인 탓이다. 나는 아이디어에 흥분하고, 아이디어를 실행으로 옮기고 싶어 안달을 한다. 제어가 안 되니 계속 가게 된다. 뒤를 돌아보느라 많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다. 실패한 기억, 실패의 원인, 쓰라린 순간들은 참작한다. 그런 것들을 무시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과거의 성공에 오랜 시간을 허비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언제나 앞만 보고 나아간다. 다음은 뭐지? 내가 할 수 있는 새로운 일이 뭐가 있지?



나딘 고디머 Nadine Gordimer

Writing is a discovery. 글쓰기는 발견이다.



1923. 11. 20. 남아프리카 하우텡 주 스프링스 출생. 15세에 첫 단편 발표, 이후 14권의 장편과 18권의 단편집, 몇 권의 논픽션, 자신의 작품을 기초로 한 수많은 TV물을 저술했다. 고디머의 글들은 그가 강력하게 반대해 온 아파르트헤이트가 끼치는 해악을 중심 주제로 하고 있으며, 40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나 남아프리카에서는 다수가 출판금지 당했다. 1974년《보호론자》로 부커 상 픽션 부문을 수상했다. 1991년 노벨문학상을 받았으며, 2007년 프랑스 레종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나는 열한 살 때부터 글을 써왔다. 독학이었다. 내가 받은 정규교육은 보잘것없었다. 명예학위는 여러 개 받았지만, 내가 입학해서 받은 대학 졸업장은 없다. 도서관과 책이 나의 학교였다. 그리고 문학에 대한 관심뿐만 아니라 사물 전반에 대한 호기심과 지식욕이 나의 학교였다. 작가가 되려는 사람들한테는 그렇게 찾아온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말하지는 않는다. 즉각적이고 신속한 해결책을 찾는 젊은이들에게는 실망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한번은 미국에서 '문예창작'이라는 강의를 한 적이 있는데 당시 내 스스로 "네가 가르치는 것은 허위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다시는 그런 강의를 맡지 않았다. 작가가 된다는 것은 오페라 가수가 되는 것에 비교할 수 있다. 오페라 가수는 분명 특별한 성대를 갖고 태어난다고 나는 확신한다. 나한테는 없는, 아마 여러분한테도 없을 그런 성대 말이다. 샤워하면서 노래를 부를 수는 있지만, 그게 전부다. 내가 아무리 많은 성악 레슨을 받는다 해도 결코 오페라 가수는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어떤 자질을 갖고 태어나지 않으면 작가가 되기 어렵다. 이 자질을 몇 가지 제시해보면, 무엇보다 먼저 탐구심이 있어야 한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우연히 어떤 대화를 들었을 때, 줄을 서 있다가 어떤 사람의 몸짓이 눈에 띄었을 때, 아하 사람들은 이렇구나 하고 읽어 낼 수 있는 고도의 관찰력과 민감함이 있어야 한다. 작가는 사람들이 말을 할 때 배운다. 사람들이 다투는 걸 들으면서도 작가는 그들이 말하지 않는 것들을 채워 넣는 것을 배운다. 물론 이런 것은 인생 경험과 함께 쌓인다. 그러나 먼저 극도의 예민함이 있어야 한다. 어려서부터 귀와 눈을 항상 크게 열어 놓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작가가 될 수 있다.



빌리 코놀리 Billy Connolly

There's a huge difference between being in the dressing room and walking on to this: "Ladies and gentlemen, Billy Connolly." You go, "Whoop!" You become another guy. Something happens. Something between anger, coffee and adrenaline. All of that combined - whoop - takes you up to this other place. And it's a joy and you forget the anxiety right away as soon as your feet are walking on. Whoop! Five minutes ago you wanted to run away. 분장실에 있을 때와 "신사 숙녀 여러분, 빌리 코놀리입니다!"라는 멘트와 함께 무대로 나설 때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후웁!" 하고 큰숨을 쉬고 나면 완전히 딴사람이 된다. 뭔가가 일어난다. 분노와 커피와 아드레날린 사이의 그 무엇. 이 모든 게 다시 후웁 하고 한데 합쳐져 나를 다른 곳, 기쁨의 장으로 데려간다. 무대 위로 걸어 나가는 순간 불안은 곧바로 잊어버린다. 후웁! 더 이상은 5분 전까지만 해도 도망치고 싶었던 내가 아니다.



1942. 11. 24. 영국(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출생. 열다섯 살에 학교를 중퇴, 조선소 용접공을 하다가'더 험블범스'라는 포크-팝 2인조를 결성, 3장의 음반을 내놓았다. 1972년 첫 솔로 앨범 <빌리 코놀리 라이브!>로 단독 싱어송라이터 겸 뮤지션으로 데뷔했고, 1975년 BBC 방송의 <파킨슨 쇼>를 통해 유명 코미디언으로 발돋움했다. 2003년 제국훈장(CBE) 수훈, 영국 영화TV예술협회(BAFTA) 상 평생공로상을 수상했다.



내가 스탠드업 코미디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 코미디가 나를 선택했다. 나는 항상 그렇게 생각해왔다. 마치 천직처럼 나에게 다가왔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부터 코미디를 했다. 견습 용접공일 때는 웃기는 견습 용접공이 되려고 했고, 군대 가서는 웃기는 군인이 되려고 노력했다. 열네 살 무렵 학교에 다닐 때였다. 하루는 과학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돌아가면서 물어보셨다. 남자아이들은 모두 배 기관사가 되고 싶어 했다. 당시 글래스고에서는 기관사가 선망의 대상이었다. 어떻게든 글래스고를 떠나 배를 타고 하와이, 아프리카, 인도 같은 곳에 가보는 게 소원이었다. 내 차례가 되자 나는 "코미디언이 되고 싶어요"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모두들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도 그때를 잊지 못한다. 그러자 선생님은 "코놀리, 아까 점심시간에 네가 축구하는 걸 봤는데, 이미 네 꿈은 이루어진 것 같던데?" 하고 말씀하셨다. 교실은 다시 웃음바다가 됐다. 선생님은 아주 좋은 분이셨지만, 그 말은 나를 바보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나는 "그렇습니다!" 하고 말했다. "하느님, 해냈습니다. 드디어 해냈습니다!"



무대에 서는 두려움은 매우 복잡하다. 정확히는 두려움이 아니라 깊은 불안감이다. 내가 하는 일의 성격상, 할 수 있는 말은 얼마든지 준비돼 있다.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해도 괜찮다. 준비된 말과 할 수 있는 개인기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그러나 새로운 아이디어가 없으면 내가 불행해진다. 단 한 문장일지라도 전에 해본 적 없는 새로운 말을 하지 않은 공연은 나에게 좋은 공연이 아니다. 어떨 때는 20분 이상 아이디어가 뭉텅이로 쏟아져 나오는데, 그럴 때면 정말 하늘을 나는 것처럼 기분이 좋다. 그런 게 하나도 없는 날엔 정말 허탈하다. 나는 종종 "뭔지는 몰라도 아무튼 내가 무대에 서는 날, 그것이 떠올라주니 기분 좋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나이가 들면서는 "그것이 안 떠오르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도 한다. 전에는 단 한 번도 그것이 안 떠오를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것은 내 안에 있기 때문이다.





2권 위즈덤 라이프 Wisdom Life



쿠르트 마주어 Kurt Masur

Education can sometimes prevent you from discovering yourself. 교육은 때로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데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1927. 7. 18. 폴란드 실레지엔 주(당시 독일) 브리크 출생. 지휘자. 브레슬라우에서 피아노와 첼로를 공부하고 라이프치히 음악원으로 옮겨 피아노, 지휘, 작곡을 전공했다. 뉴욕 필하모닉,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런던 필하모닉, 이스라엘 필하모닉 등 세계 유수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지냈다. 100장 이상의 음반을 냈으며 십자공로훈장(독일, 1995), 영예의 금메달 음악 부문(미국 전국예술협회, 1996), 레종도뇌르 훈장(프랑스, 1997), 십자훈장(폴란드, 1999) 등의 훈장을 받았다.



아버지가 말했다. "타협은 하지 말되, 조심해라. 네 인생이지 남의 인생이 아니다. 네가 누구인지, 네가 믿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때 열넷, 열다섯이었던 고만고만한 남자아이들은 불안정하고 방향감각을 못 잡아 좌충우돌할 때였다. 그런데 나는 그 당시 조심에 조심을 해라, 어디에 마음이 끌리는지, 어떤 것은 거북하게 느껴지는지 알아야 한다는 등의 충고를 받았던 것이다. 지혜란 이런 식으로 다가갈 수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나쁜 것들, 좋은 일들, 본인의 실수, 창피했던 것 등의 경험들……, 이렇게 자신을 알아 나가면 꿈뿐만 아니라 비전도 가질 수 있게 된다.



앨런 아킨 Alan Arkin

Either you're growing or you're decaying; there's no middle ground. If you're standing still, you're decaying.

성장하고 있거나 썩어 가고 있거나 둘 중 하나다. 중간은 없다. 가만히 서 있으면 썩는다.



1934. 3. 26. 미국 뉴욕 출생. 대학 중퇴 후 포크그룹 '더 태리어스(The Tarriers)' 결성, 이때 공동 작사 작곡한 '바나나보트 송'이 나중에 해리 벨라폰테의 히트곡이 된다. 1957년 영화 데뷔, 브로드웨이와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연극 활동, 1963년 <엔터 래핑(Enter Laughing)>으로 토니 상을 수상했다. 영화 <러시아인들이 온다>를 처음으로 세 차례 아카데미 상 노미네이트, 2006년 <리틀 미스 선샤인>으로 아카데미 상을 수상했다. 수많은 곡을 작곡했을 뿐 아니라 공상과학소설과 아동도서의 저자이기도 하다.



20대 초반에는 세상에 대한 명쾌한 그림을 갖고 있었다. 세상을 어떻게 만들어 나가야 할지, 각자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30대 초반이 되자 세상에 대해서나, 세상을 어떻게 만들어 나가고 각자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그림이 완전히 달라졌다. 마흔다섯쯤에 또 그런 일이 일어났다. 스스로 되돌아보게 됐다. "하느님, 저는 일생에 세 번 완벽하고 명쾌한 철학을 가졌다가 세 번 모두 그것들을 버려야 했습니다. 이제 뭘 가지고 살아야 합니까"라고 묻는 시점에 이르렀다. 내가 노력하는 것 중 하나는 무엇이든 과신하려 들지 않는 것이다. 나에게 남은 신념을 유연하면서도 융통성 있게 지켜나가고 싶다. 신념 체계란 내가 진실이라고 믿고 싶은 것들에 불과하다. 진실과 반드시 관계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내 신념들을 가능한 한 많이 덜어내려고 한다. 어느 날 컴퓨터 앞에 앉아 자문해봤다. "내가 아는 것 중 절대적이고 논쟁의 여지없는 진실은 뭘까." 한 시간 반쯤 앉아 있었는데, 결론은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웬만큼 확신할 수 있는 거라곤 그것뿐이었다. 모든 것은 변할 것이고, 변화를 타고 흘러야 유연해진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하는 일로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말하는 문화 속에서 자라왔다. "당신에 대해 얘기해 주세요" 하면 우리는 즉각 자기의 직업에 대해 얘기한다. 마치 그게 우리가 누구이고 무엇인가에 대한 완벽한 정의인 것처럼 말한다. 동양의 많은 나라들에서는 그렇지 않다. "당신에 대해 얘기해 주세요. 혹시 화가이신가요?" 하고 물으면, "아니요, 그림을 그립니다만 화가는 아닙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 사람이 누구인가 하는 것과 그 사람이 하는 일을 분리해서 보는 인식이 있는 것이다. 나는 한 사람이고, 나는 '무슨 무슨 일을 할 뿐'이라는 얘기다. 나 자신은 내가 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그 무엇이라고 인식하는 것이 나에겐 큰 교훈이었다. 생계를 위해 하는 일로 나를 규정하지 않는 것을 배웠다. 내 직업은 내 존재의 이유가 아니라 내 존재의 부산물이라는 것을 말이다.



빌리 코놀리 Billy Connolly

Wisdom is in the constant questioning of where you are. And when you stop wanting to know, you're dead. You're walking, but you're dead.

지혜란 내가 있는 자리가 어딘지 끊임없이 자문해보는 것이다. 알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면 죽은 것이다. 두 발로 걸어 다닌다 해도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에게 지혜란 허리춤까지 백발을 늘어뜨리고 샅바만 걸친 채 산 정상 위에 서 있는 노인네 같은 것이 아니다. 지혜는 답이 아니다. 지혜는 질문이다. 한번은 정신과 의사를 찾아간 적이 있다.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겪었던 일들이 자꾸 되살아나 나를 괴롭혀서였다. 갈수록 심해지는 듯했다. 그때는 정신과 의사가 커다란 답안 보따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크게 실망했다. 하지만 나중에는 감사하게 생각하게 됐다. 정신과 의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커다란 질문 보따리이고, 답은 우리 안에 있는 것이다.



답은 언제나 질문 속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미 답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저 그 답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한테는 이렇게 말한다. "답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거나, 자기가 답을 알고 있다고 믿게 하려는 사람들은 피해라. 질문을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들하고 어울려라." 저마다 질문은 항상 있기 마련이다. 어떤 땐 질문이 외모에 관한 것일 수도 있다. 자랄 때 나는 못생긴 아이였다. 나 자신은 못났다고 여기지 않았지만, 토니 커티스(Toni Curtis)가 잘생긴 건 사실이라고 생각했다. 엘비스 프레슬리도 잘생겼다. 나는 그렇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용접공이었다. 용접공의 얼굴을 가졌다. 내 질문은 늘 '왜?'였다. 면도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왜?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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