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 인생
한태윤 지음 | 한장사
오디션 인생
한태윤 지음
한장사 / 2010년 12월 / 214쪽 / 13,000원
내가. 나로. 사는 것.나만의 보석상자를 찾아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이 노래의 가사는 나를 두고 하는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텔레비전을 바보상자라 말하지만, 나에게는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상자였다. 예쁜 미스코리아 언니들, 날아다니는 슈퍼맨, 동물들이 뛰어다니는 초록빛 땅…….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마법상자. 그 안에서 나도 미스코리아 언니가 되고, 슈퍼맨과 함께 악당을 물리친다. 끝없이 상상하면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다. 장면 하나하나를 펼치다가 잠이 들고, 다음날이 되면 그 후속편들을 머릿속에 상상하며 또 잠이 든다.
나는 어려서부터 남들 앞에 서는 것을 좋아했다. 손을 번쩍 들고, 일단 나가고 본다. 사실 말을 잘하는 편은 아니었는데, 특별히 보여 줄 수 있는 장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뭘 믿고 그렇게 나가는 걸 좋아했는지 잘 알 수가 없다. 어릴 적 말 그대로, 나를 보여 주는 진짜 '보석상자'가 된 텔레비전에서 이제는 내 얼굴이 보인다. 내. 얼.굴.이 보인다.
나는 왜 연기자가 되고 싶었을까? 정말, 나는 왜 연기자가 되고 싶었을까? 팀을 나누고, 게임 순서를 종이에 쓰고, 앞에 서서 할 말들을 연필로 꾹꾹 쓴다. 새로운 반에서, 새로운 친구들 앞에서 게임을 진행해야 한다. '무슨 게임을 하면 좋을까?' 머리를 빠르게, 눈을 굴리며 곰곰이 생각하다가 모두가 즐거워 할 모습에 나 혼자 씨익- 미소를 지어 본다. 지금도 초등학교 때의 사진을 볼 때마다 책상 앞에 앉아 고민하던 어린 내가 떠오른다. 그냥 대충 넘어가도 될 텐데, 눈치껏 생각해도 될 텐데 '대충'이라는 말이 싫었던 건 '한태윤'이라는 이름을 걸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어릴 적부터 나는 조금은 유별난 아이였던 것 같다. 나를 사랑스럽게 표현하고 싶은 것, 누구보다 예쁘게 보이고 싶은 것, 어린 여자아이들이라면 누구나 가졌을 마음이다. 그런데 나는 거기에 한 가지 마음이 더 있었다. 무엇이든 앞에 나가 하고 싶은 것. 나는 어릴 때 오락부장뿐 아니라 부반장, 응원단, 심지어 초등학교 교가까지 부르는 등 할 수 있는 건 다 해 봤다. 어린 시절이면 누구나 한 번쯤 해 봤을 법한 직함들은 어린 시절의 내가 보여 줄 수 있는 작은 열정이 아니었을까.
앞에 나선다는 게 어린 그 나이에도 사실 쉬운 건 아니다. 약간의 부끄러움과 나를 향한 시선을 의식했다면 금세 목을 뒤로 쭉 빼고 거북이처럼 등껍질 속으로 파고들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나를 향한 그 시선들을 즐겼던가 보다. 한번은 중학교 1학년 때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여학생들이 좋아했던 남자 체육 선생님이 우리 반에 수업을 하러 오셨다. 그런데 어쩌다 선생님이 학생에게 손바닥을 맞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거다! 어쩌다가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지금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짝. 짝. 짝. 내가 반 대표로 나가 선생님 손바닥을 때렸다. 친구들이 나에게 시킨 것인지 내가 자원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어떤 경우였더라도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응했을 것이다.
공들여 생각해 보지 않아도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기 원한다. 우리는 모두 세상을 살면서 나 자신을 바라봐 달라는 소리 없는 아우성을 외친다. 때로는 가족에게, 때로는 친구에게, 때로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누구나 관심받고, 사랑받고, 칭찬을 받으며 살고 싶은 것이다. 어떻게 보면 '나'라는 아이는 어릴 때부터 이 소리 없는 아우성을 외치며 살아왔다. 왜냐고? 그것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 나는 그것을 따라 이 길을 걸었다. 그 생각을 따라 이 길을 걸었다.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 우리가 기나긴 인생을 사는 데 있어서 제일 중요한 일인 것 같다. 어떤 사람은 그것을 남들보다 조금 빨리 찾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오랜 시간이 걸려 찾기도 한다. 심지어 노인기에 접어들어 비로소 그것을 찾게 된 이들도 있다. 나는 전자의 부류에 속하는 것 같다. 조금 일찍 혹은 조금 늦지만 결국 원하는 것을 찾는 일! 그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런데 하고 싶은 일을 어떻게 찾냐고? 음- 자신이 제일 잘 하는 일, 즐거운 일을 찾아보자. 콩닥콩닥, 가슴이 뛰고 실낱같은 열정이 생기려 하면 그것이 바로 신호다! 마치 어릴 적 앞에 나가는 것을 꿈꾸던 아이가 보석상자 안에서 그 꿈을 찾은 이야기처럼. 아, 언젠가 한번은 총무부장을 뽑는 자리가 있었다. 후보로 나온 나는 친구들 앞에서 그랬다. "제가 돈 관리는 진짜 잘합니다, 여러분!"
문을 여는 걸 무서워하지 마
가만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친절한 세상에 살아갈 수 있었던 건, 순전히 부모님의 덕이다. 부모님의 눈을 통해 보는 세상은 언제나 다정했다. 나의 손이 되어 주고 발이 되어 주는 부모님이 계시기에 마음만은 늘 풍요로웠던 것 같다. 그런 내가 문을 열고 집 밖으로 힘차게 나온 순간 깨달았다. 세상은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니.다. 중학교 3학년 때였을 거다. 연기학원을 처음으로 가게 된 때가 말이다. '나도 저 화면 앞에 서고 싶은데!'라며 발을 동동거리다 그런 욕구가 목청을 넘어오려던 순간, 꿀꺽꿀꺽 침을 삼켜도, 물을 마셔도 욕구가 잠재워지지 않았던 그 순간, 나는 결심했다. "그래! 나도 저곳에 가리라!"
그.런.데. 아, 이를 어쩌란 말인가. 꿈만 가지고 있었지 사실 하나도 아는 게 없었던 순진하다 못해 바보 같았던 나는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도 알 수가 없었다. 문을 열면 꿈이 있는데, 그럼 곧 잡힐 것 같은데 그 문을 여는 방법을 잘 알 수가 없었다. 학교에서 딴 생각에 잠긴 나에게 짝꿍이 무슨 일이냐며 묻는다. 뭐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답답함을 털어 놓는다. 짝꿍이 자기도 관심 있었다며 "연기학원에 가자!"라고 시원스레 답을 내놓는다. 아!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이래서 난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른다며 용기와 의욕에 가득 찼던 나와 내 친구는 손을 꼭 붙잡고 당당히 학원 문을 두드렸다. 그래! 뭐든 일단 해 보는거야. 후훗~ ^^
"무식이 용감!"이라는 말처럼 아무것도 모른 채 오디션에 임하고 몇몇 연예인들의 사례처럼 나는 붙고, 친구는 떨어졌다. 또 하나의 문제는 현실적인 문제, 그러니까 학원 등록이었다. 부모님, 특히 아버지께 허락을 받을 생각을 하니 쉽게 입이 떨어지지도 않았고 연기를 한다는 것에 대해 좋아하실까 하는 걱정도 앞섰다. 어렵게 아버지에게 입을 뗀 후 학원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시던 아버지께서는 의외로 흔쾌히 허락을 해 주셨다. 갑자기 내가 왜 이러나 이상할 정도로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누구에게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기억에 콕 박혀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다. 나에게는 아버지께서 연기생활의 처음을 허락해 주신 것이 그렇다. 지금도 기쁨의 눈물을 흘렸던 그때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기분이 둥둥- 친구가 떨어졌다는 미안함은 마음 저쪽에 미루고 연기학원 이름이 새겨진 커다란 간판에 마음 설레던 날. 그렇게 내 인생의 첫 번째 막이 해피엔드로 장식되는 듯했다. 그.런.데. 세상 물정 몰랐던 나의 철없음을 탓해야 하는 건지, 어린 나와 아이들을 속여 돈을 쉽게 벌려고 했던 어른들을 탓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시사 고발 프로그램에서나 봤던 '사기'의 주인공이 되었다. 학원 원장은 유명한 감독님이나 제작자와 식사자리를 제공하겠다, 청소년 드라마에 출연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둥 귀가 번쩍 뜨일 만큼 매력적인 조건을 내세우며 학원생 부모님들에게 돈을 요구했다.
이왕 시작한 거, 자식에게 도움이 된다는 데 마다할 부모님이 어디 있으랴. 그 사실을 뒤늦게 알고 아버지한테 말씀드렸더니 안 그래도 회사로 찾아왔다고 하셨다. 다행히 꼼꼼하신 아버지 덕분에 큰 사기를 면할 수는 있었지만, 16살의 나이에 나쁜 세상을 경험하게 된 나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원장이 도피하던 날 아무것도 모르고 학원비를 건네는 나에게서 스스럼없이 봉투를 받아들었던 그 원장의 눈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나의 소중한 꿈이 한순간에 푹- 소리를 내며 꺼지는 풍선처럼 작아진 기분. 무엇보다 날 믿어 주신 부모님의 사랑에 흙탕물을 튀긴 기분. 문을 열기는 열었는데, 꿈이 잡힐 것 같기도 했는데 다시 문이 서서히 닫히는 그런 기분. "안 돼! 안 돼!" 속상해서 한참을 마음 아파하다가 이렇게 주저앉아 있으면 나쁜 사람들에게 지는 것만 같아 툭.툭. 털고, 다시 다른 학원을 찾아갔다.
사기당한 일도 있어 내심 걱정을 했지만 아버지께서는 별말없이 다정다감하게 학원비를 내주셨다. 표현은 잘 안 하시지만, 알아서 잘 하리라 믿고 늘 맡겨 주시는 가족에게 나는 가장 큰 힘을 얻는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를 주는 아버지의 말씀. "태윤아, 열심히 해 봐라." 나에게 긴 설교보다, 다신 그러지 말라는 훈계보다 어깨를 툭툭 치시며 무뚝뚝하게 던진 그 한마디가 다른 무엇보다 용기를 복돋아 주었다. 이런 게 가족의 힘이 아닐까?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연기학원을 다니며 진짜 '나'를 찾으려 할 때 교복선발대회에서 나를 눈여겨 본 기획사에서 연락이 왔다! 언젠가 어느 영화에서 하나님은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한쪽 문을 여신다고 말한 주인공의 말이 불현듯 스치며 지나갔다. 그렇게 처음으로 나는 엔터테인먼트라는 곳을 접하게 되었다. 다른 연예인들처럼 소속사를 갖게 되자, 새로운 기회들이 찾아왔다. 잡지촬영도 하고, 영화나 베스트극장 같은 단막극에서 단역도 맡으면서 이런저런 경험을 쌓기 시작했다.
'경험'은 많은 것을 알게 해 주었다. 좁은 나에게서 벗어나 다른 사람을 볼 수 있는 여유도 갖게 했다. 사람들의 치열함과 부딪치면서 생동감 있는 현장을 보면서 점점 더 확연한 그림이 마음속에 그려졌고, 고생하는 만큼 겸손하게 하자는 마음도 갖게 되었다. 선배 연기자들의 대사를 속으로 따라하면서 연습이 아닌 실제 현장에서의 배움을 얻었다. 그리고 드디어, 내 인생에서 결코 잊지 못할 기회가 찾아왔다.
2000년 7월 31일. 나는 "우짱난짱의 우리나리" 오디션을 보게 되었다. 일본의 니혼TV에서 방영하던 장수 프로그램으로 우리나라의 "무한도전"처럼 다양한 도전을 하는 형식의 버라이어티 방송이었다. 프로그램의 명성에 걸맞게 첫 오디션부터가 첫 방송의 시작이었다. 우짱, 난짱과 짝을 이루어 다양한 미션을 해 나갈 수 있는 한국 여성 2명을 찾고 있다는 소식에 당시 내로라하는 대형 기획사의 신인들이 대거 참여했고, 그만큼 경쟁도 정말 치열했다. 그때 참가한 사람들 중에는 현재 유명해진 연기자들도 있다.
일단 한국에서 1차로 6명 정도를 뽑아 일본에 간 다음 그곳에서 2박 3일 동안 최종 오디션을 보는 것이었는데, 사실 특별한 파급효과를 기대하고 지원한 것은 아니었다. 원하던 방송 일을 할 수 있게 되는 것과 덤으로 일본어도 배울 수 있다는 생각에 참가를 했던 건데, 막상 1차 오디션에 합격을 하자 그때부터 강한 욕심이 생겼다. 다음날 여권 사진을 찍으면서 이 여권이 계속 쓰이길 기도했다. 더 많은 사람들과의 경쟁에서도 살아남았는데, 6명 중에서 못 살아남겠어? 한태윤! 자신감을 가져! 2000년 8월 12일. 나는 일본에서의 2차 오디션을 위해 나리타 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꿈을. 좇아.꿈과 함께 걷다
'꿈', 그리고 '오디션'. '꿈'과 '오디션'은 내게 있어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존재이다. 사람들이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보는 것처럼 나 역시 수없이 오디션을 본다. 그러므로 나에게는 '꿈'에 한걸음 다가서게 해 주는 것이 바로 '오디션'이다. 두근두근 쿵쾅쿵쾅 설렘의 시간. 살아 있는 심장을 느끼게 해 주는 시간. 흑백의 꿈에 색을 입혀 숨쉬게 하고 나의 온 힘을 다해 후회 없이 사랑하고 싶게 만든다. 그 시간을 통해 나는 다.시. 태.어.나.는. 기분이다.
일본에서의 오디션 후 나는 어떻게 될까? 이런저런 생각과 결과를 기다리며 일본 오디션 첫날을 떠올리며 침착하려 애썼다. 그때는 자기소개를 자신감 있게 하고 딱히 보여 줄 장기가 없어서 고민 끝에 랩을 했다. "다시 생각해 봐- 이 세상에서 행복의 가치는 어떤 것이 최고야-" 한 5초 정도 했나? 왜 했는지도 모를 만큼 생각하면 창피할 정도로 하고 나서 민망해서 웃었던 상황을 떠올리며 웃으려 했다. 톡톡 튀는 말투나 이미지, 그러한 것들이 그들에게 맞기를 기도하면서 수년 전 그날처럼 나는 내 이름이 불리길 기대하고 또 기대했다. 두 눈을 꼭 감고, 손을 꼭 쥐고, '오- 하나님!' 눈을 감고 상상한다. 그토록 원하던 꿈에 한 발 다가선 나를.
"유니 한!" 일본에서의 최종 합격자를 발표하는 순간, 내 이름이 똑똑히 들렸다. '유니 한'은 내 일본식 이름이다. 그토록 원하는 합격이었음에도 막상 이름이 호명되니까 믿어지지 않아서 자꾸만 내 이름을 불러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디션 관계자가 서울에 계신 부모님께 합격 소식을 알려드렸다. 크게 내색을 하지 않으셨지만 그동안 내 뒷바라지를 하시면서 누구보다 딸의 성공을 바라셨을 부모님께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게 되어 정말 행복했다. "뛸 듯이 기쁘다"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겠지! 누가 나에게 뭐래도 헤실헤실 웃음만 나오고 당장이라도 행복에 겨운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던 건 오디션이 덤으로 준 선물이었나 보다.
"우짱난짱의 우리나리" 오디션에 합격했을 당시 나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한창 수능을 준비하며 학업에 열중하고 있어야 하는 그때 나는 한국도 아닌 일본 프로그램의 오디션에 합격을 했다. 원래는 일본에서 살면서 촬영을 하는 조건이었는데, 그 사실을 알게 되신 부모님께서는 반대를 하셨다. 그러나 다시 못 올 기회를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던 나는, 부모님께 통사정을 하며 조르고 졸랐고, 촬영이 있을 때만 일본에 가는 조건으로 겨우 승낙을 받아 학업과 일본 활동을 병행하게 되었다.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하는 이방인들의 말 속에서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일들 성공하기. 이것이 앞으로 내가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였다. 그 당시 난 일본어를 단 한마디도 못 알아들었는데, 학교에서 제2외국어로 배웠던 것이 전부였다. 게다가 학교에서 배운 거랑 실제 회화는 천지 차이였다. 늘 의사소통에 답답했고, 빨리 일본어를 배워서 방송에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항상 메모지를 갖고 다니면서 통역사에게 묻고 또 물었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솔직하게 행동했으면 될 텐데 왠지 그러고 싶지 않은 오기가 생겨서 앞에서는 아는 척도 했지만 뒤돌아서서는 열심히 기록해 두었다가 사전을 찾아보았다. 어렸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만큼 열정이 뜨거웠기 때문인지 매주 일본과 한국을 오가는 빡빡한 스케줄에도 힘든 줄을 몰랐다.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힘든 것도 무색하게 할 만큼 좋았다. 항상 다음날 해야 할 일들이 있었기에 그저 순간순간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도쿄와 서울, 서울과 도쿄
나의 일본 활동에 대해 듣는 사람들마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비행기 안에서의 기분을 묻곤 한다. 모두들 "힘들었겠다. 외로웠지?" 하며 약속이나 한 듯 비슷비슷한 질문을 내놓는다. 그제야 생각해 보면 힘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외로웠던 것 같기도 하다. 사실 처음에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과 생소한 공간,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앞서서 내 마음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늘 내일의 미션에 집중했고, 오늘을 피곤하게 마무리했다. 하루에 주어진 일과를 살아가는 것에 꽉 차 있었으므로 생각보다는 잠을 택했고, 그래서 생각에 빠질 틈이 적었다.
촬영이 없는 날이면 신주쿠에 자주 갔는데, 그곳의 게임센터에는 예쁜 인형들이 많았다. 처음에는 그저 재미삼아 하기 시작한 인형 뽑기가 잦은 반복으로 감을 잡게 된 순간부터 기계 속의 인형이 내 손안에 있게 된 날들이 많아졌다. 그때 뽑은 인형들이 아직도 내 방 한가득 자리 잡고 있다. 엄마는 볼 때마다 공간만 차지하는 인형 좀 내다 버리라 하신다. 어쩌면 인형을 뽑으며 마음속 깊이 자리했던 외로움도 어려움도 훌훌 날렸는지도 모르겠다. 인형 하나를 뽑을 때마다 마음을 담고, 생각을 담고, 그래서 더 애틋한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