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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쑥 너의 기억이

이정하 지음 | 책이있는마을
불쑥 너의 기억이

이정하 지음

책이있는마을 / 2011년 1월 / 312쪽 / 13,800원



나를 사랑하기


이 땅 위에서 당신은 당신 한 사람밖에 없다. 당신과 똑같은 사람은 다시 이 땅에 태어나지 않는다. 죽으면 당신이 가진 모든 것도 함께 사라진다. 그런데도 당신은 자기 자신을 모르고 있다. 속에서 잠자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할 줄도 모른다.

당신은 지금 대체 누구를 찾고 있는가. 정작 찾아야 할 사람은 자기 자신이면서, 찾아서 등 두드려 주어야 할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면서, 도대체 누구를 찾기 위해 보이지도 않는 곳을 헤매고 있는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자신만이 자신일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일이다. 만약 다른 사람과 같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아마도 그 사람과 비슷한 사람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과 똑같아질 수는 없다. 언제나 그 사람보다 못한 두 번째 인간밖에 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당신은 최고의 당신이 될 수 있다.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최고의 당신이.

당신 자신이 되는 일은 가장 쉽고, 가장 실질적이며, 가장 보람찬 일이다. 자신이 먼저 스스로의 진가를 깨닫게 되면 다른 사람들도 그것을 알아주게 된다. 자신이 스스로를 알아주지 않는데 누가 당신을 알아주겠는가. 모든 것은 당신에게서 출발한다는 사실,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당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가엾은 인물이다.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것보다 먼저 당신 자신을 위해 살아야 한다. 당신 자신은 불행한데 다른 누구를 위해 산다는 것은 참다운 희생이 아니다. 진정 자기 본위로 당신의 행복이 다른 사람에게 전파될 수 있도록 자신이 행복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어라. 그것이 결국은 당신 자신을 위하는 것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행복이란 큰 바다와 같다.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다 함께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당신부터 먼저 행복해야 한다.

간혹, 나 또한 위안을 받고 싶은 때가 있다. 내게 주어져 있는 책임, 온갖 짐을 훌훌 벗어던지고 자유롭게 날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알겠다. 그것들은 죽는 그 순간까지 내가 부여안고 가야 하는 것임을. 나이가 들수록 그 짐이 점점 더 무겁다는 것을.

눈물이 날 때가 있다. 길을 가다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때가 있다. 카페의 유리창 너머 보이는 의자, 그리고 비어있는 공중전화 부스. 하다못해 극장의 입간판을 보다가도 갑자기 울컥하며 목이 메는 때가 있는 것이다. 가슴은 차가운데 눈물은 왜이리 뜨거운지.

그대 이름 두 글자만 떠올려도 금세 그렁그렁 눈물이 고여 오는 건 아마도 우리 사랑이 순탄치 않았던 탓이겠지. 나는 대체 언제까지 당신에게 매여 있어야 하는 것인지. 이젠 잊었겠지 했는데도 시시각각 더욱 눈물로 다가오는 걸 보니 내가 당신을 사랑하긴 했었나 보다. 뜨겁게 사랑하긴 했었나 보다.

잊지 못한다는 것

이별은 한 번이었는데 그리움은 왜 이리 숱한 것인지. 잊지 못한다는 것은 잊을 수 없을 때까지의 병이다. 그 병엔 약도 없다. 오로지 가슴이 문드러지는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은 죽을 때까지 가지고 가기도 한다. 알약 한 알로 나을 수 있는 병이라면, 주사 한 대로 나을 수있는 병이라면 세상은 아마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잊어야 한다는 것, 냉정하게 말하면 그것은 그 사람과 내가 다시 만날 가능성이 없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그 사람이 다시 나를 사랑할 가능성이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혹시나, 하고 기다려서 될 일이 아니다. 그 명백한 결론을 나는 왜 인정하려 들지 않을까.

행복이라는 것

아침에 길을 나서는데 햇볕이 참 맑고 따스했다.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았는데 하늘이 너무나 파랬고, 거기 부서질 듯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하늘을 올려다본 것이 참 오래간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무얼 한다고 하늘 한 번 쳐다보지 못했을까. 모든 잡념과 상념이 이 맑고 깨끗한 햇살에 다 녹아 없어지는 것 같다. 그랬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행복하다, 라는 느낌이 가슴 저 밑에서 살며시 피어올랐다. 잠시 멈춰 서서 햇볕을 쬐는 이 사소한 일에도 말이다. 문득 <디 아워스(The Hours)>란 영화에 나오는 대사가 생각났다.

어느 날 아침이었지. 새벽에 깨어났는데 그냥 무엇이든 가능할 것 같은 그런 예감이 들었어. 알지 그 느낌? 그때 나는 생각했었지……. '그래 이건 행복의 시작이야. 행복은 여기서 시작되는 거야.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은 행복이 내게 오겠지.' 하지만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어. 그건 행복의 시작이 아니었어. 바로 그 순간이 행복 그 자체였던 거야.

주인공 클라리사가 딸에게 했던 대사였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뜨끔했었다. '행복'이란 단어를 말로 설명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행복하다'는 그 감미롭고 따사로운 느낌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우리가 땀 흘리며 이루려는 최종 목적지는 '행복'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우리는 점점 행복의 느낌을 잃어가고 있다. 행복을 향해 달려가기만 했었지 지금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은 늘 잊고 살았던 것이다.

욕심과 교만, 시기심 같은 찌꺼기들이 어쩌면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틈을 막아놓은 것은 아닐까. 사소한 일상 하나에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데 우리는 너무 멀리 보고만 있는 것이다.

행복이란 언제나 조그만 데서부터 비롯된다. 문제는 그것을 느끼고자, 누리고자 얼마나 마음의 문을 열어놓았느냐다. 따스한 햇살이 우리를 감싸고 향긋한 꽃내음이 우리의 코를 간지럽혀도 무덤덤한 사람들. 서쪽 하늘에 노을이 아름답게 걸려 있어도 스쳐지나가는 사람들. 조금만 눈을 돌리고 잠시만 관심을 가져도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이 도처에 깔려 있는데도 우리는 무심코 지나치기 일쑤다. 쉬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까닭이다.어렸을 적 '보물찾기'를 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거창하고 어마어마한 곳에 숨겨져 있으리라 생각했던 보물은 사실 근처 바위 틈새나 나무 구멍 같은 평범한 곳에 숨겨져 있다는 것을. 깊숙한 곳에만 자꾸 신경을 쓰다 보면 정작 눈앞에 있는 보물은 볼 수 없다는 것을. 기실 우리네 삶도 그러하지 않을까. '세상'이라는 밑그림 속에 숨어 있는 무수한 보물들. 먼 곳을 기웃거리지 말고 자기 주변부터 살펴보자. 소중하고 훌륭한 보물은 언제나 가장 가까이에 있는 법이다.

기다린다는 것

우리는 일생의 많은 부분을 기다림 속에서 보낸다. 기다림 속에 하루가 가고 또 한 해가 저무는 것이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면서 당신이 기다리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혹시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기다리는 것은 아닌가?

'기다리는 자는, 아직도 기다림이 남아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이 말은 다분히 과장된 역설일까? 어떤 사람은 이 말을 듣고 정색을 할지도 모른다. 기다린다는 것의 초조함과 안타까움을 진정 알고서 하는 소리냐고, 그 힘겨움을 경험해 보았다면 과연 그런 소리를 할 수 있겠느냐고.

그렇다. 기다린다는 것의 그 아픈 마음을 누가 모르겠는가. 하지만 이제 자기 몰입에서 벗어나 당신의 주위를 한번 살펴보는 여유를 가져 보라. 우리 주변에는 그 기다림조차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예컨대 기다릴 대상이 아예 없거나, 아니면 그 대상이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린 경우도 많다는 이야기이다. 그런 사람들에 비한다면 기다릴 대상이 아예 없거나, 아니면 그 대상이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버린 경우도 많다는 이야기이다. 그런 사람들에 비한다면 기다릴 수 있는 대상이 있는 당신은 진정 행복한 사람이다.

살다 보면

살다 보면, 떠나보내지 말아야 할 것을 떠나보낼 때가 있다. 사랑하면서도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말해야 할 때가 있다. 허기져 죽는데도 입에 물 한 방울 들어가지 않는 때가 있다. 살다 보면, 살다 보면 살아 있는데도 죽어 있는 때가 있다.

목소리를 낮추세요

소리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거리에 나서 보라. 여기 저기 온갖 소리로 혼이 다 빠질 지경이다. 그것들은 또 얼마나 볼륨을 높여 놓았는지. 그러니 자연 내 목소리도 커지지 않을 수가 없다. 남을 헐뜯고 비방하고 화를 내는 일엔 유독 더하다. 어쩌면 우리는 외롭기 때문에 자꾸만 목소리를 높이는지도 모른다. 혼자 고립되지 않으려는 몸부림.

아아, 그랬다. 누군가에게 내 말을, 내 가슴 깊이 묻어둔 말을 털어놓고 싶었지만 나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함께 커피를 마시고, 함께 영화를 보고, 함께 술을 마시고 웃고 떠들어도 막상 집으로 돌아올 땐 공허한 느낌이 드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그저 건성으로 지껄이는 일상적인 대화들, 마음 깊숙이에 있는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고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들. 그러고 보니 진실로 상대방의 눈을 쳐다보며 이야기한 때가 언제였던가. 있기는 있었던가.

지금보다 조금만 더 목소리를 낮춰보자. 소곤소곤. 때로 낮은 목소리의 이야기가 더 설득력이 있음을. 서로의 앞에 놓여 있는 높은 벽을 허무는 것은 결코 큰 목소리가 아니다. 소곤소곤. 그러면 외로움의 높이도 자연 낮아질 것이다.

나무와 잎새

떨어지는 잎새에게 손 한 번 흔들어주지 않았다. 나무는 아는 게다, 새로운 삶과 악수하자면 미련없이 떨궈내야 하는 것도 있다는 것을.

빈터

넘쳐흐른다는 표현을 써도 괜찮을 만큼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모든 것이 풍요롭다. 풍요롭다는 것이 나쁘기야 하겠느냐만 그로 인해 잃는 것이 많다면 오히려 쓸쓸하지 않을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물질이 풍요로워지면 정신은 그만큼 비좁아진다. 우리 마음에 온갖 물건이 가득 쌓여 있는데 정신이 들어설 틈이 어디 있는가.

공책을 다 쓰고 나면 다 썼다는 기쁨보다 그 공책으로 비행기를 접는 일이 더 좋았던 시절이 있었다. 일부러 여백이 남은 종이만을 골라 정성스럽게 접은 종이비행기가 푸른 하늘로 떠갈 때 그것은 환희이고도 남았다. 그때 내가 날려 보낸 것은 종이비행기만은 아니었다. 내 간절한 염원을 담고 종이비행기는 유리알 같은 창공을 휘저으며 날아다녔을 것이다. 그때의 종이비행기는 지금 내 삶의 어디쯤에서 날고 있을까. 푸른 꿈이 아직 내게 남아 있긴 한 것일까. 물질에 대한 탐욕으로 혼탁해진 이 시대의 어느 구석진 곳에 버려져 있는 것은 아닌지…….

가득 찬 것보다는 어딘가 좀 비어 있는 구석이 있으면 왠지 마음이 편해지는 걸 느낀다.



구름은 하늘을 다 차지하려 하지 않고, 나무 또한 때가 되면 가리고 있던 잎을 털어 하늘을 여유롭게 해주지 않는가. 자기의 할 일을 다 한 뒤 미련 없이 제 한몸 떨구는 나뭇잎이 있기에 나무는 나무로서의 본분을 다 할 수 있다. 구름은 제 가진 것은 고집하지 않고 흘러가기에 언제까지나 우리의 눈에 아름답게 비칠 수 있다. 조금 덜 채우더라도 우리 가슴 어딘가에 그런 빈터를 가질 수는 없을까.

가지면 가질수록 더 많은 것을 가지려 애쓰는 나. 차지하면 차지할수록 더 많은 것을 차지하려 안간힘을 쓰는 나. 저 여유로운 자연을 접할 때마다 부끄럽다.

거울

오늘도 나는 연극을 했다, 진짜 배우도 아니면서. 거짓 웃음, 거짓말, 거짓 행동을 스스럼없이 꾸며 내며 다른 사람의 대본을 마치 내 대본인 양 외우고 다녔다. 내가 맡은 역할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거울을 본다. 참 많이 변했다는 건 대번에 느껴지지만 어떻게 변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가슴 안쪽은 더더군다나. 분칠을 벗겨내고 여기저기 남아 있는 분자국을 지워낸다고는 했지만 아직도 내 얼굴 어딘가에는 깜박 잊고 지우지 못한 분장의 찌꺼기가 남아 있을 것이다. 그 자국 그대로 나는 잠이 들 것이고, 눈을 뜨자마자 또 정신없이 집을 나설 것이다. 따지고 보면 관객도 없는 텅 빈 무대에서 무엇을 잡자고 이리도 허우적거리나…….

마음까지 비춰주는 거울이 없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퍽이나 다행스런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나 거울 앞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모습을 비춰볼 수 있지 않은가. 그러나 만일 당신 앞에 당신의 마음까지 비춰주는 거울이 있다면 그때에도 그렇게 자신만만할 수 있을까.

바다

한번쯤 일상에서 벗어나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사람들로 가득찬 출근길의 전철 안에서나 끊임없이 이어지는 수많은 만남들 속에서 불현듯 솟아나는 떠나고 싶은 욕망. 그런 순간이면 나는 바다를 떠올렸다. 은빛 파도가 살아 퍼덕이는 시원의 바다. 바다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잿빛 아스팔트 위를 헤매지 않는다. 화려한 불빛이나 향락에 빠져 있지도 않는다.

바다는 모든 생명의 고향이다. 바다를 생각할 적마다 막연히 향수를 느끼게 되는 것도, 어쩌면 그런 이유 때문인지 모르겠다. 오랜 시간, 인간의 능력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먼 옛날, 그때 이미 우리의 몸이 바다를 떠나왔다고 해도, 우리의 가슴속에는 아직도 바다가 묵묵히 살아 출렁인다.

바다는 그 자체가 포용이다. 바다는 우리를 평온히 받아준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바다는 넉넉한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바다로 여행을 갔을 때엔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창문을 활짝 열어두라. 한껏 열려진 창문을 통해 울컥울컥 밀려드는 갯내음을 가슴 가득 안을 수 있게 말이다. 운이 좋다면, 수면을 스칠 듯이 날갯짓을 하고 있는 갈매기들의 청량한 울음소리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밤하늘에 은가루를 뿌려놓은 것처럼 별들은 총총하고, 달빛에 뒤척이는 파도가 여러분을 반길지도 모를 일이다.

바다에 가거든 맨발로 걸어보라. 발바닥 밑의 모래알들이 잊고 지내온 어린 날의 천진했던 미소를 되찾아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삶의 터전을 향해 다시 돌어설 때엔 바다의 넉넉함을 잊지 말라고 부드럽게 속삭이듯 당신의 발목을 감아올 것이다. 가장 큰 위대함이란 낮고 비어 있는 데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아는가? 사람들은 누구나가 높은 위치에 서기 위하여 일하고, 싸우고, 달려간다. 그러나 바다를 보라.

바다는 가장 낮은 곳에 있으면서 거부할 줄 모른다. 종종 거센 폭풍과 사나운 해일로 노여워하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차분히 가라앉는다. 현명한 사람은 주위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포용할 줄 아는 사람이다. 바다와 같이 낮은 곳에 서 있으려는 사람들. 그 겸허한 마음이야마로 위대한 모습인 것이다.

우리는 여지껏 바다를 잊고 지냈다. 우리의 눈은 늘 주위에 널려 있는 것만 바라보기에 급급했다. 학교, 직장, 일, 공부, 숨 쉴 틈 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늘 바삐 뛰어야 했다.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는 노력이긴 했어도 그동안 우리 마음속의 바다는 점차 메말라가고 있었다.그러나 바다는 우리를 잊지 않았다. 우리가 갈 수 있는 자리를 항상 비워두고 있었다. 이제, 그동안 잊고 지내온 바다를 향해 마음의 여행이라도 떠나 보자. 황량한 도시의 그물에서 벗어나 욕심과 아집이 없는 바다의 넉넉한 모습을 닮고 싶다.

책을 좋아하는 마음

무엇이든 넘쳐나는 세상이다. 많은 장식품으로 현란하게 방을 꾸민 사람들. 온갖 물건들이 쌓이고 쌓여 우리가 머물 공간은 정작 비좁기만 하다. 그럴수록 우리 영혼의 방은 텅 비어 있게 마련이다.

19세기 후반, 평생을 극심한 가난 속에서 보낸 영국의 소설가 조지깃싱은 어느 날 고서점에서 꼭 읽고 싶은 한 권의 시집을 발견했다. 가격은 6펜스, 비교적 헐값이었으나 그는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돈은 그가 지니고 있던 전부였으므로. 그 책을 사고 나면 그는 꼼짝없이 며칠을 굶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그 책을 사버리고 만다. 며칠을 굶을지언정 마음에 드는 책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훗날 그때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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