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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드리 아줌마, 유럽 하늘을 날다

민선옥, 황용희 지음 | 멘토프레스
민드리 아줌마, 유럽 하늘을 날다

민선옥, 황용희 지음

멘토프레스 / 2010년 10월 / 454쪽 / 15,500원




1장 첫 번째 나들이, 서유럽 하늘을 날다



베니스의 상인 의 무대, 베네치아로 향하다 - 바람둥이 카사노바를 울린 '탄식의 다리', 나폴레옹이 칭송한 '산 마르코 광장'

2007년 5월 23일 아침이다. 이제 시차도 극복하고 이곳 환경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된다. 꿈같은 인스브루크를 뒤로 하고 우린 떠난다. 어디로 갈까. 이번에는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다. "승객 여러분, 물의 도시 베네치아에 가실 분은 즉시 승선해주시기 바랍니다." 셰익스피어 희극 베니스의 상인 에 나오는 무대에 오늘은 나, 민선옥이 선다. 내가 주인공이라니 믿기지 않는다. 아드리아 해를 가로지르는 배를 타고 도착한 베네치아는 그야말로 물 천지였다. 온통 수로 지역, 이탈리아 사람들은 잦은 전란을 피해 1500년 전부터 이곳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베네치아는 물에 잘 썩지 않는 백향목과 벽돌, 모래로 쌓아올린 수중도시다. 곤돌라를 타고 일삼아 한 바퀴 돌았다. 베네치아에는 모두 118개의 섬이 있는데 그중 인공 섬이 112개, 자연 섬이 6개다. 석호 위에 흩어져 있는 그 많은 섬들을 400개의 다리로 연결해놓았다. 면적은 여의도의 6배 정도, 인구는 26만쯤 된단다. 얕은 곳은 수심이 1.5미터라니 물에 빠져 죽을 염려는 없을 것 같다.

관광에 나선 우리는 시내 중심가로 들어가 카사노바도 울고 갔다는 '탄식의 다리'를 구경한 다음 수상버스(바포레스 vaporetto)를 타고 무라노섬에 있는 유리공장에 도착했다. 동방과의 교역이 활발하던 베네치아는 일찍이 우리공예 기술을 도입하여 14세기경에는 독창적인 베네치안 글라스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섬세한 디자인과 화려한 색상으로 세계적인 유리공예 산지로 자리를 잡았다. 불에 달군 새빨간 유리 덩어리를 대롱에 매달고 뺨에 패이도록 숨을 깊이 불어 넣어 갖가지 모양을 만들어 내는 마에스트로의 기술에 찬탄을 금할 수 없다.

· 백향목(Cedrus libani Loudon) 레바논 고산지대에 자생하는 희귀 수목. 재질이 단단하고 그윽한 향내로 벌레가 생기지 않아 왕궁이나 성전 등을 짓는 데 사용한다.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날 때 가져온 3가지 나무(백향목, 포도나무, 올리브) 중 하나라고 하며 성경에 70회나 등장해 왕의 권위와 영광, 번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나무로 알려져 있다. 가장 오래된 것은 6000년. 보통은 300년 이상 살며 솔방울이 달리는 데 40년이 걸리는 아주 천천히 자라는 나무.

· 석호(Lagoon) 바다 일부가 떨어져나가 생긴 호수를 말하며 바다와는 산호초와 모래둑으로 격리되어 있다. 해수가 스며들기 때문에 물이 오랜 세월 일정한 방향의 바람과 파도, 조류 또는 강물의 흐름에 밀린 모래나 자갈이 만 어귀 같은 곳에 쌓이고 쌓여 모래둑과 갯벌을 이룸으로써 생긴 지질현상.

· 카사노바도 울고 갔다는 탄식의 다리(Ponte dei Sospiri) 산 마르코 성당 맞은편 두칼레 궁에서 재판을 받고 나오던 죄수들이 이 다리를 건너면서 세상과 완전히 단절되는 절망에 한숨을 내쉬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원조 바람둥이 카사노바가 여자문제로 잡혀 들어갔다가 탈출에 성공하여 더 유명해졌다.

자그마치 800년 동안 섬에 갇혀 지내며 '불의 미학' 하나에 인생 모두를 건 장인匠人들의 집념이 새삼 경이롭게 느껴진다. 세세만년, 흙으로 생명의 혼을 빚어낸 우리 민족의 강하고 질긴 정신을 보는 듯하다.

섬의 중심부에 자리 잡은 글라스 박물관Musro Vetraio di Murano은 베네치안 글라스의 과거와 현재를 살필 수 있는 곳이다. 박물관에서 형형색색의 공예품과 정교한 세공과정을 지켜본 다음 산 마르코 광장으로 이동했다. 이탈리아 아랍 바잔틴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건축물이 잘 보존된 산 마르코 광장은 옛 베네치아 공화국의 중심지다. 나폴레옹은 이곳을 보고 '유럽에서 가장 우아한 응접실'이라 칭송했다. 바닥은 물고기 지느러미 모양을 하고 있는데 1723년 건축가 티랄리Tiralirk가 설계했다. 동쪽 방향에 산 마르코 바실리카가 우뚝 솟아 있다. 대리석과 둥그런 모자이크 장식이 유난히 아름다운 성장으로 베네치아의 수호성인守護聖人 산 마르코의 유해가 안치된 것이다. 산 마르코San Marco는 마가복음 의 성 마가St. Mark를 이탈리아식으로 부른 명칭이다.

잠시 건물을 바라보자니 참 잘생겼다는 생각이 든다. 어쩜 저토록 곱게 지을 수 있을까. 사제의 집전으로 신과 인간이 소통하는 장소가 예배당이다. 그곳을 교인들은 성스러운 장소로 여기지만 보통사람 눈에는 위대한 예술품으로 비친다. 서기 829년에 터를 닦은 대성당은 비잔틴 건축양식의 대표적인 건물로 가톨릭 건축사에 길이 남을 걸작이다. 신을 믿지 않아도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엄숙미의 극치를 보인다. 광정에서 선착장에 면한 부분을 피아제타(Piazzetta, 소광장)라 하는데, 이곳에는 비잔틴 시대 멀리 콘스탄티노플(지금의 터키 이스탄불)에서 가져온 흰대리석 원주圓柱가 두 개 있다. 높다란 원주 위에는 베네치아의 수호신인 날개 달린 사자상과 성 테오도르상이 있다. 이 광장은 해마다 두 번씩 침수되는데 주민들은 고통스럽겠지만 여행객에게는 구경거리다. 또한 이곳에는 바이런, 괴테, 바그너가 드나들었다는 플로리안 카페가 있다.

남편은 이탈리아에 관한 엽서, 그중에서도 베네치아 풍광이 담긴 엽서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베네치아는 나폴레옹이 이탈리아 원정 때 다녀간 것을 비롯해서 동방견문록 을 쓴 마르코 폴로와 작곡가 비발디의 고향이고, 그 밖에도 유럽의 명사들이 활동했던 곳으로 예부터 이름을 떨쳤던 곳이지."

인상적인 것은 비둘기 떼가 광장 바닥을 뒤덮고 있었는데 개체수가 너무 많아 사람들을 성가시게 할 정도였다. 구경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왔다. 휴식을 취할 겸 라운지에 올랐더니 밤하늘에 별빛이 쏟아진다. 바닥에는 잔물결이 일렁인다. 알록달록한 네온 불빛이 물길 따라 길게 춤을 춘다. 어느새 부드러운 바람 불어와 두 뺨에 다정히 안긴다. 갯내음 물씬 풍기는 지중해의 밤, 나는 카푸치노 한 잔 손에 들고 베네치아 야경 속으로 빠져들었다.





2장 두 번째 나들이, 북유럽 하늘을 날다.



노르웨이 피오르 심장 '프롬' - 20년간 노돌자들의 피와 땀의 결정체 '프롬 산악철도'에서의 단상 "내 발밑을 내려다봐라!"

다시 차를 달려 4시간 50분결 프롬Fl m에 도착했다. 해발 2미터에 불과한 프롬 역 바로 앞에 커다란 배가 떠 있다. 관광객을 태우고 예까지 온 유람선이다. 프롬은 '노르웨이 피오르의 심장'이라 불릴 정도로 경치가 아름답다. 가파른 산과 폭포, 깊은 골짜기에 둘러싸인 계곡마을로 현재 500명 가량의 주민이 살고 있다. 그런데 19세기부터 관광지로 알려져 지금은 매년 약 45만 명의 여행객이 이곳을 방문한다.

프롬의 또 다른 매력은 유명한 송네 피오르가 시작되는 곳이라는 점이다. 다른 지역에서 산악열차를 타기 위해 오기도 하지만, 이곳에서 세계최장 피오르를 향한 뱃고동이 힘차게 울리기 때문이다.

드디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차여행'이라는 프롬 산악열차에 올라탔다. 역을 출발한 초록색 기차는 해발 866미터에 있는 뮈르달Myrdal로 오르기 시작한다. 깎아지른 협곡 사이로 난 철길 20킬로미터 거리를 약1시간에 걸쳐 운행하며, 경사각이 55도에 이르러 웬만한 사람은 현기증을 느끼게 된다. 프롬에서 뮈르달까지 20개의 터널이 있는데 그중 18개는 사람 손으로 팠다고 한다. 터널 천장이 매끈하지 않고 울퉁불퉁한데 그것이 곡괭이와 정 자국이란다. 이렇게 험준한 산길을 뚫는 난공사를 하며 시공 초기에는 한 달에 고작 1미터 나가는 정도였다는 설명이다. 이 철길은 1923년에 착공하여 20년에 걸친 자연과의 사투 끝에 공사를 마무리했고, 노동자들의 엄청난 인내와 고통 속에 이루어진 값진 성과물로 후대에 전했다.

그들이 흘린 땀방울 덕택에 명승지를 쉽게 둘러보고 있는 나그네 귓전에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양사상의 본질이라 할 불교의 선문어록에 참선과 관련해서 이런 말이 있지요. 각하조고脚下照顧, 즉 '자기 발 밑을 내려다보라'는 뜻으로 이를테면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에 아무 이상이 없는지 살피라는 말씀이랍니다." 가끔 어려운 문자로 '아줌마'를 난처하게 할 때가 있지만 지금 이 순간, 그 사람 말이 의미 있게 다가온다. 여기 가파른 철길처럼 우리네 삶도 오르막과 내리막이 수없이 반복되고 있다.

삶의 긴 여정에서 볼 때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 부와 빈, 이익과 명성은 한갓 뜬 구름에 불과하지 않은가. 따지고 보면 만사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살아가며 만나게 될 많은 인연과 악연 또한 피할 수 없는 인생의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깊은 상념에 잠겨 있는 때에도 철마는 가뿐 숨 몰아쉬며 힘겹게 산길을 오르고 있다. 기계든 무엇이든 누군가의 수고 없이 존재할 수 있는 게 세상에 있을까. 결국 사람은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생명체. 어쩌면 우리는 가파른 산길을 여럿이 함께 오르라는 천명天命을 받고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스스로에게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선하게 살았는지, 독하게 살았는지, 누구를 딛고 올라왔는지, 처음과 끝이 한결같은지, 불행의 원인을 모두 남에게 돌렸던 것은 아닌지……."

고개 들어 밖을 내다보니 기차가 더욱 힘을 내고 있다. 칙칙폭폭, 칙칙폭폭……. 전동차라서 칙칙 어쩌고 하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설악산 토왕성 폭暴을 꼭 닮은 료안데 폭포Rjoande fossen의 길고 가녀린 물줄기를 시작으로 크고 작은 폭포를 지나 본격적인 사악구간은 200미터 지점의 달스보튼 역을 지나면서 시작된다. 객차 통유리 너머로 전개되는 계곡경치가 너무 아름답다. 이런 풍경 못 보고 지구 떠나면 억울해서 눈 감을 수 없을 것 같다. 오르는 도중 산꼭대기에서 93미터짜리 거대한 폭포가 쏟아져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낸다. 마치 터진 둑에서 물이 한꺼번에 쏟아져나오듯 맹렬한 기세다. 그곳에 열차가 5분가량 정차하므로 모두 내려 쇼스폭포Kjos fossen를 감상했다. 물줄기의 위력과 규모가 엄청나 북유럽 신화에서 차용한 영화 <반지의 제왕>과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에서 느꼈던 감동이 전율로 다가오는 듯하다.

관광객을 위한 이벤트도 있다. 장중한 음악과 함께 폭포 중간, 물기둥이 꺾이는 돌출지점 바위에 숲의 요정 트롤 아가씨가 춤을 춘다. 어느 순간 사라졌다 금방 다른 쪽에 나타나는데 요정의 재롱에 모두들 즐거워한다. 정상인 뛰르달 역에 올라 사위를 굽어보니 여기가 천상낙원인 듯 온갖 사물이 발아래 엎드려 있다. 이곳에서 기차를 갈아타고 야일로Geilo로 향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1400미터 고원의 황량함과 높은 산 정상에 쌓인 만년설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린다. 눈을 돌리면 수정처럼 맑은 호수가 조용히 떠 있다. 북유럽은 어쩌면 영원히 물 걱정이 없을 것 같다. 가는 곳마다 얼음산이요 만년설이니 물이 마를 것 같지 않아 보인다. 노르웨이만 하더라도 크고 작은 호수가 전국에 약16만 개가 있으니 가히 호수의 천국이라 할 만하다.

지리산 세석평전을 연상케하는 야일로 고원에는 자작나무 숲속에 수많은 별장이 숨어 있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스키를 가장 즐기는데 제철이 되면 이런 별장에 머물며 몇날 며칠이고 스키와 스노보드를 탄다고 한다 뮈르달에서 1시간 넘게 산악열차를 타고 야일로에 도착하여 백악관처럼 생긴 멋진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대충 씻고 식당으로 내려갔다.

레스토랑에서는 생음악이 연주되는 가운데 만찬이 시작되고 있었다. 칠면조 훈제요리에 연어구이, 바닷가재와 각종 해산물이 입맛을 돋운다. 일행 중 오늘 생일이 맞은 사람이 있어 그분 남편이 모두에게 와인을 한 잔씩 돌렸다. 점잖은 노신사는 먼 나라 여행 와서 맞은 아내 생일이 각별한가 보다. 우리가 잔을 부딪치며 축하해주자 몹시 기뻐했다. 노란색, 보라색, 빨간색, 온갖 꽃들이 자신을 봐달라며 고혹적인 색상으로 경쟁한다.

북유럽은 꽃들에게 너무 가혹한 땅이다. 일곱 달이나 계속되는 춥고 긴 겨울. 오전 10시 해가 떠서 오후 2시 반이 되면 어두워지는 캄캄한 흑야黑夜, 영하 30도를 넘나드는 강추위. 이처럼 엄혹한 조건을 이겨내고 살아남아 빛고운 꽃을 피우니 북극의 풀잎은 모두 인동초忍冬草나 다름없다. 산책로를 10분가량 걸었을 뿐인데 팔에 소름이 돋는다. 기온이 영상 5도에 머물러 매우 춥다.

3장 세번째 나들이, 동유럽을 하늘을 날다



인생을 생각하는 장소 '오쉬비엥침(아우슈비츠)' - 죽음의 공장, 오쉬비엥침에서 비로소 깨닫는 자유카이저 빌헬름 교회 부근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차를 탔다. 여기서 약 400킬로미터를 가야 한단다. 유럽에선 차를 탔다 하면 300~400킬로미터는 예사다. 한 번에 천 리 길을 달리다 보면 주변 경치를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지만 지루할 때가 많다. 그러나 정해진 시간에 여러 목적지를 가야 하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오후 3시 45분, 차가 폴란드 국경을 넘고 있다.

올레스니카Ole nica 가는 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밀과 보리밭이 지평선에 닿아 있다. 이 사람들 주식인 빵과 맥주의 원료가 되는 밀 보리는 우리의 벼농사와 같을 것이다. 작은 바람에도 일렁이는 보리밭은 엄청나게 크다. 어릴 적 청보리 밭에서 아직 덜 팬 이삭을 훑어 불에 구운 뒤 손바닥으로 비벼 먹으며 허기를 달래던 추억이 새롭다. 물결치는 밀밭 보리밭을 지나 언덕을 예쁜 자태를 드러낸다. 마약성분을 없앤 꽃양귀비(개양귀비)는 화훼용으로 쓰기도 하지만, 말린 씨를 요리해 빵에 넣어 먹을 수 있어 유럽지역에서 재배가 허용된다고 한다. 길섶에 몽글몽글 무리지어 있는 나무가 많아 물었더니 기생妓生 나무란다. 마치 까치집을 지어놓은 듯한데 이것은 다른 나무의 영양분을 받아먹으며 산다고 한다. 사람이나 수목이나 남에게 의지해 얻어먹으려는 습성은 고약한 심보가 아닐 수 없다. 너른 평원에 펼쳐지는 대초원과 부드럽게 춤추는 보리와 밀, 샛노란 유채꽃, 보랏빛 라벤더, 연정 가득 품은 꽃양귀비. 이들을 차창 너머로 바라보자니 가슴속에 자유와 평화가 충만해진다.

저녁 8시 10분, 올레스니카 시내로 들어가는데 이곳 풍경이 우리나라 70년대를 연상시킨다. 소박하고 수수한 마을, 별스런 꾸밈도 없고 부산하지도 않다. 오래된 성당과 쇼팽 음악원이 있다는 유서 깊은 올레스니카는 적막하리만큼 조용히 어둠에 잠겨 있었다. 깔끔한 페라Perla 호텔에 짐을 풀고 저녁을 먹었다. 채소 샐러드와 으깬 감자, 닭고기 튀김, 부드러운 빵과 파스타로 차려진 맛있는 식단이다. 든든하게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잠깐 눈을 붙인 것 같은데 벌써 아침이다. 2009년 6월 6일, 숙면으로 가뿐해진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왔다. 마침 일행이 모여 있어 함께 산책을 했다. 독일과 가까워서 그런지 집들이 그쪽과 비슷하게 생겼다. 오래됐지만 잘 정돈된 목조주택, 담장 위의 넝쿨, 한 집도 빠지지 않고 내놓은 화분. 조금 걷자 음악원이 보이고 성당도 눈에 띈다. 문을 밀고 살며시 들어가니 아침 미사 시간이다. 퇴직한 교장선생님 그리고 몇몇 사람들과 조용히 기도를 드렸다.

오늘은 오쉬비엥침Oswiecim 사는 날이다. 독일어로 '아우슈비츠'라 부르는 유대인 수용소가 있는 곳이다. 올레스니카 시내를 돌아나오는데 우리가 탄 버스 앞으로 티코 한 대가 쪼르르 달린다. 귀엽기도 하지. 여기서 너를 만날 줄 몰랐다. 눈을 돌리자 이번에는 아반떼가 힘차게 질주한다. 일본이나 독일, 이탈리아에 비하면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동유럽은 한국 자동차가 많이 진출해 있다. 대부분 현지 공장에서 생산된 것이지만, 가격대비 성능이 뛰어나 인기 만점이라 한다. 이런 추세라면 머지않아 세계 유명 차들과 겨뤄볼 만하다. 시내를 벗어나자 넓은 초원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군데군데 자작나무와 육송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풀밭에는 이름 모를 들꽃이 만발하고 보라색 라벤더가 활짝 피어 나그네를 반긴다. 폴란드Poland(그 나라 말로 뽈스까Polska)는 "넓은 대지"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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