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토닉 러브
조무남 지음 | 럭스미디어
플라토닉 러브
조무남 지음
럭스미디어 / 2010년 9월 / 240쪽 / 15,000원제1편 사랑의 주연,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 그는 누구인가
라파엘로Raffaello의 작품 〈아테네학당〉에는 인류의 지성사에서 여명기를 찬란하게 수놓은 철학자, 수학자, 천문학자, 정치가, 예술가들이 등장한다. 이 작품은 교황청 ‘서명의 방Stanza della Segnatura’에 있는 벽화로, 교황 율리우스 Ⅱ세가 화가 라파엘로에게 부탁하여 그린 것이다. 라파엘로가 이 그림을 그리고 있을 당시(1509~1510), 바로 옆 시스티나 성당에서는 미켈란젤로가 천정에 그 유명한 〈천지창조〉를 그리고 있었다. 라파엘로는 〈아테네학당〉에 자신을 포함하여 54명의 인물들을 올렸다. 이들이 모두가 같은 시대에 살았던 인물들은 아니다. 이들 가운데에는 피타고라스도 있고, 라파엘로도 있으니, 이들의 시대 간격만 하더라도 무려 15세기나 된다.
〈아테네학당〉의 가운데 자리를 조금 비켜 서 있지만, 소크라테스는 지혜의 사랑에 헌신한 사람, 곧 필로소피아의 주역이었다. 그는 인류 역사에 기록된 진정한 스승 가운데 한 사람이었고, 그 가운데에서 가장 우뚝한 존재였다. 이 책의 시각도 독자들과 함께 〈아테네학당〉에서 가장 남루한 옷을 걸치고, 무엇인가에 관해 심각하게 토론을 벌이고 있는 소크라테스에게 맞추고자 한다.
역사 속의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는 결코 전설에 등장하는 인물이 아니다. 그는 인류의 생생한 역사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그는 알로페케Alopece에 호적을 둔 아테네의 시민이었다. 그는 조각가인 아버지 소프로니쿠스Soophroniscus와 산파인 어머니 파에나레테Phaenarete의 아들로 기원전 469년에 태어났다고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그는 49세경에 크산티페Xanthippe와 결혼했다. 우리에게 악처로 소문난 그의 부인으로, 소문과 같이 소크라테스에게 거추장스런 여인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괜찮게 사는 가문의 출신이었다.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실 당시 그에게는 세 명의 아들이 있었다. 람프로클레스Lamprocles, 소프로니쿠스Sophroniscus, 그리고 메넥세누스Menexenus였다. 소크라테스에게는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그리고 가정적으로도 크게 부족한 것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그의 아버지는 정계에 종사한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었고, 그 자신도 가르치는 일에 종사한 일이 있어, 엘리트 사회에 출입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한다. 소크라테스는 그의 나이 30세가 넘어 여가(‘여가’를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스콜레Schole’는 영어에서 ‘학교’를 뜻하는 ‘스쿨School’의 어원이다)를 누리는 사람들과 접촉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때부터 그는 소피스트들을 만나게도 되었다. 하지만 그는 소피스트들이 주장했던 교육목적과 방법을 마땅치 않게 생각했다. 결국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들과의 이런 차이 때문에 후일 법정에 기소되는 불행을 겪기도 했다.
소크라테스 당시 소피스트 가운데 가장 명성을 크게 떨친 사람은 프로타고라스Protagoras였다.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고 했다. 그는 소크라테스와는 정반대로 주관적 지식의 존재와 그 가치를 옹호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필연적으로 논리적인 사고 위에서 참된 지식과 그 가치를 찾으려고 한 사람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사고의 논리를 벗어나 정서적 주관적 관심을 따르는 소피스트들의 진리관은 사고의 혼란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그 결과로 대화Logos의 흐름을 거스른다고 했다. 지식의 특성에 관한 소크라테스의 이와 같은 진리관은 그의 생애를 좌우하는 운명의 여신이 되어, 그가 아테네 필로파포스Philopappos 언덕에 있는 감옥에서 독배를 마시는 기원전 399년까지 끊이지 않고 그의 생애를 이끌었다.
역사와 신화 사이의 존재: 소크라테스의 탄생은 역사적 사실이지만, 그가 역사에 출현하는 과정은 가히 신화적이었다. 그가 우리에게 신화 속의 인물로 비쳐지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그가 스스로 남긴 글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는 많은 말을 했지만, 글을 쓰지는 않았다. 또 다른 하나는 우리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그의 신적인 이미지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는 우리에게 맨발과 남루한 옷차림으로 항상 아고라에서 열띤 토론을 벌이는 강한 이미지를 남겼다. 독배를 마시기에 앞서 펼친 생生과 사死를 뛰어넘는 변명Apology도 그렇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이, 스승의 언행을 그다운 필치로 엮어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이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는 사실이다. 플라톤의 〈변명〉은 죽음 앞에 선 소크라테스가 자신에게 독배를 건넨 정의롭지 못한 배심원들을 꾸짖는 광경을 보여준다. 그것은 또한 소크라테스가 이 세상의 모든 박학한 무지자들에게 정의와 진리, 삶과 죽음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마지막으로 가르치는 기회를 허용한다. 이것도 엄연한 역사인데, 한 토막의 신화나 전설처럼 들려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역사를 신화처럼 꾸미는 플라톤의 글재주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소크라테스는 왜 아고라로 갔는가
아고라는 어떤 곳인가 ‘높은 도시’라는 뜻을 가진 아크로폴리스는 아테네의 한가운데에 있는 언덕이다. 그런데 높이가 해발 156미터밖에 안 되니 우리말로 마을 뒷동산인 셈이다. 고대 아테네인들은 저녁에 이 동산에 올라 바람을 쐬고, 거기에서 위대한 아테네제국의 건설을 설계했다. 그곳은 고대 아테네인들의 성역이었다. 아크로폴리스는 세계문화유산 1호 파르테논Parthenon 신전을 떠받치고 있다. 지금 보수하는 과정에 있지만, 건축미의 황금분할은 세계사를 통틀어 그와 같은 아름다운 건축은 없다고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기원전 5세기 페르시아군의 공격으로 파르테논 신전은 그 원형을 잃었다.
파르테논 신전의 아름다움도 그렇지만 이 신전의 여주인 아테나Athena는 미를 상징하는 여신이다. 그녀의 체형도 황금비율을 따랐다고 한다. 도시국가 ‘아테네’라는 이름은 고대 그리스어로 ‘아테나이Athenai’다. 이 이름은 이 도시의 수호신 아테나의 이름에서 왔다. 아테네의 수호신 ‘아테나’를 로마에서는 ‘미네르바Minerva’라 부른다. 아테나는 제우스의 머리에서 탄생했으며, 법과 질서 유지를 위해서 싸우는 전쟁의 신이고, 문화와 과학의 수호신이며, 실천적 이성을 상징하는 지혜의 여신이다. 올빼미는 아테나 신을 상징한다.
아크로폴리스에서 북쪽을 내려다보면 거기에 텅 빈 넓은 유적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시장’이라는 뜻을 가진 ‘아고라’다. 그러나 그곳은 장사꾼만 모이는 곳이 아니었다. 정치도 이루어지는 곳이었고, 재판도 열리는 곳이었으며, 종교적 행사도 자주 눈에 띄는 곳이었다. 아고라는 고대 아테네의 ‘시민광장’이었다. 이 시민광장에서 시민법정이 열렸고, 소크라테스도 이 법정에서 재판을 받았다.
혼돈 속의 아고라: 소크라테스가 아고라에 나간 것은 가히 역설적이었다. 말과 생각이 따라야 할 이성적 질서를 찾는 사람이, 하필이면 왜곡된 말과 생각이 소용돌이치는 아고라로 향했을까. 여기저기 가릴 것 없이, 시장이란 모두 언어의 질서를 찾아보기 힘든 곳이 아닌가. 오죽하면 영국의 철학자 베이컨Bacon이 시장을 가리켜 ‘인간의 언어를 교란시키는 우상이 날뛰는 곳’이라 했겠는가. 베이컨의 ‘시장의 우상’은 언어의 유희가 난무하는 곳을 일컫는다. 아테네의 시장도 예외 없이 그런 혼란의 극치를 보인 곳이었음에 틀림없다.
사실 언어의 혼란과 사고의 무질서에 대한 탓을 아테네의 시장 ‘아고라’에만 돌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탓의 원인은 오히려 정치가들에게 있었다. 정치적 소용돌이가 언어와 사고의 무질서를 초래했다는 뜻이다. 아테네의 정변은 고질적이었다. 정변을 겪는 동안 국민들은 서로 밀고하고 보복을 일삼았다.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사람들은 그럴듯하게 말을 꾸며야 했고, 타인을 설득하여 자신을 보호해야 했다. 이런 현상은 수사학의 득세를 자극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오용하는 일로까지 이어졌다. 언어와 행동의 불일치, 지식과 행위의 괴리가 극대화된 시기였다. 말은 그럴듯하고 행동은 추했다. ‘혼돈 속의 아고라’는 그 어느 곳보다도 이와 같은 언어와 사고의 혼란을 상징하는 곳이었다.
아고라의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는 아고라에 모인 사람들과 토론을 벌이면서 그들이 사용하는 용어의 의미를 묻고 또 물었다. 개념들이 불명료했고 대화의 논리가 뒤죽박죽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성이 이끄는 사고의 질서를 따라 개념의 혼란과 사고의 논리적 혼돈을 헤쳐 나갔다. 소크라테스는 ‘사랑’과 ‘용기’와 ‘아름다움’과 ‘선함’과 ‘지혜’ 등의 의미를 다듬어 나갔다. 이런 단어들은 ‘아름답고 선한 것’에 속하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아름답고 선한 것’을 외치는 정치인이나 재판관이나 웅변술에 능한 소피스트들은 ‘아름답고 선한 것’에 속하는 단어들을 정의하지 않고, 개념적 혼란을 덮어둔 채, 개인의 이익을 좇아 앞뒤가 모순되는 말들을 외쳐댔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당연히 사회적 무질서와 이에 따른 무고한 자들의 희생이었다.
아고라에서 이루어진 소크라테스의 행적을 제자 플라톤은 그의 모든 대화편에 실었다. 아닌 게 아니라 플라톤의 주요 대화편들은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의 질문들로 가득 차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 용기란 무엇인가, 사랑이란 무엇인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선이란 무엇인가, 덕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앎이란 무엇인가는 모두 〈국가〉,〈라케스〉,〈향연〉,〈테아이테토스〉, 〈메논〉 등이 플라톤이 쓴 대화편들의 주제들이다. 이런 질문들을 주제로 하는 대화편들이다. 물론, 이 질문들은 소크라테스의 입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그 질문들을 던진 소크라테스는 그러한 개념들을 정리하려고 했고, 그 과정에서 개인의 욕심이나 편견을 넘어 논리가 이끄는 길을 따랐다.
아고라의 소크라테스는 더 이상 석수장이의 아들이 아니었다. 그는 아폴론의 사자使者로서 아폴론의 속성을 구현하기 위하여 혼돈의 아고라에 나갔고, 거기에서 혼돈을 헤치고 이성의 길을 따라가는 고독한 수행자가 되었다. 하지만 아테네인들은 그런 소크라테스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걸은 그 길은 그들에게 전혀 새롭고 이상한 길이었을 테니 말이다.
제2편 사랑의 향연
사랑이란 무엇인가
에로스는 어떤 속성을 가진 신인가: 고대 그리스에서 ‘심포지엄Symposium’은 술잔치를 뜻했다. 그것은 밤을 새워가며 포도주를 마시고 담론을 벌이는 일을 일컫는 말이었다. 우리가 오늘날 개최하는 학술대회의 한 형식으로서 ‘심포지엄’은 여기서 온 말이다. ‘심포지엄’은 우리말로 ‘잔치’를 뜻하며, 보다 그럴듯하게 표현하면 ‘향연饗宴’이다. 플라톤의 〈향연〉은 아가톤Agathon이 베푼 잔치에서 일어난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그 잔치는 아가톤이 비극 경연에서 우승한 것을 자축하는 것이었다. 기원전 416년의 일이었다.
에로스가 아름다움 자체라기보다 아름다움을‘사랑하는 존재’라는 해석은 그의 탄생 신화에서도 찾을 수 있다. 〈향연〉에서 플라톤은 에로스의 탄생 신화를 그럴듯하게 꾸며냈다. 그는 무녀 디오티마Diotima가 소크라테스에게 이 탄생 신화를 들려주는 방식을 취하여 써내려갔다. 디오티마는 소크라테스에게 제우스의 아름다운 딸 아프로디테의 탄생을 축하하던 날 밤, 풍요의 신 포로스Poros와 빈곤의 신 페니아Penia 사이에서 에로스가 탄생했다고 했다. 그래서 그 사이에서 탄생한 에로스는 아버지만큼 지혜롭지도 아름답지도 선하지도 못한 존재일 뿐만 아니라, 그렇다고 어머니처럼 전적으로 무지하지도 추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존재라는 것이었다. 에로스는 그들의 중간자中間子로 태어났다는 뜻이다.
사랑은 중간자의 논리다: 중간자의 논리로서 ‘사랑’은 ‘지혜’나 ‘아름다움’이나 ‘선함’과는 다른 특성을 지닌다. ‘사랑’은 무엇인가가 완벽하게 채워져 정체된 상태로 있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향해 ‘되어가고 채워가고자 하는 영적인 힘’을 의미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말하자면 아름다움, 지혜로움, 선함과 같은 범주에 드는 말이 아니라, 아름답게 되려 하고, 지혜롭게 되려 하며, 선하게 되려는 실천적 행위를 뜻하는 말이다. 중간자의 논리를 따르는 사랑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가능성을 열어주는 개념으로서 움직이고, 행동하며, 무엇인가를 지향하는 성향을 가진 ‘영적 에너지’를 일컫는 말이 되는 셈이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아름다움의 본질: 에로스가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신’이라면, 아프로디테는 ‘아름다움의 신’이다. 그런데 아프로디테가 가지고 있는 그 아름다움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인류가 아프로디테와 같은 신을 만들고 그 신에게 부여한 아름다움은 한 송이 장미꽃의 아름다움처럼 특수한 아름다움이 아니다. 그것은 ‘아름다움 그 자체’에 해당된다. ‘아름다움 그 자체’는 한 송이 장미꽃처럼 특정한 색깔이나, 특이한 모양이나, 일정한 크기나 독특한 향기를 가지지 않는다. 그것은 또한 피어남과 시들음 같은 것도 가지지 않는다. 아름다움 그 자체는 새로 생겨나거나 없어지지도 않는 속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성질은 ‘아름다움’만이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플라톤은 ‘좋음’도, ‘훌륭함’도, ‘지혜로움’도, ‘참됨’도, 그리고 ‘정의’도 이와 같다고 했다. 그는 물질이나 사물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이와 같이 독특한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을 ‘이데아Idea’ 또는 ‘형상Form’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좋음’과 ‘지혜로움’이 참으로 존재한다고 믿으면, 플라톤의 이데아도 참으로 존재한다고 믿어야 한다. 이데아는 흔히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듯이 ‘쓸데없는 것’이나 ‘공허한 것’을 나타내는 말과는 거리가 멀다. ‘이데아의 세계’는 플라톤 철학의 중심개념이지만, 플라톤은 분명히 이 이데아의 세계에 관한 생각을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로부터 얻어왔을 것이다.
플라토닉 러브의 미학
사랑의 계단: 디오티마는 〈향연〉에서 소크라테스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말을 전한다. 아름다움에 대한 사랑은 우선 땅 위에 있는 하나하나의 아름다운 것들로부터, 저 가장 높은 아름다움으로 더욱더 높이 올라가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것은 마치 사다리의 계단을 하나씩 하나씩 밟고 올라가듯, 하나의 아름다운 것으로부터 두 아름다운 것으로, 두 아름다운 것으로부터 더 많은 아름다운 것으로, 그 다음에는 더 많은 아름다운 것으로부터 모든 아름다운 것으로, 그리고 모든 아름다운 것으로부터 아름다운 제도로, 모든 아름다운 제도로부터 아름다운 여러 가지 학문으로, 여러 가지 아름다운 학문으로부터 저 아름다움 그 자체로 올라가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아름다움을 향한 끝없는 등정登頂이다.
사랑의 논리, 디알렉티케: 소크라테스의 말법을 우리는 ‘대화법’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대화법은 그가 아고라에서 사랑의 행보를 벌이는 동안, 자연스럽게 틀을 갖추게 된 것으로 보인다. 생각의 질서를 따르는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은 일종의 논리학이었다. 논리학이 그때까지 틀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논리학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사실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을 정리한 다음, 그것에 논리학의 원형인 ‘디알렉티케Dialektike’, 우리말로 ‘변증법辨證法’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은 플라톤이었으니 말이다. 디알렉티케는 플라톤이 뒤에 체계화한 것이지만, 일찍이 그 체계 속에 들어가 ‘제대로 된’ 논리의 길을 따른 사람은 분명히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였다.
그리스어 ‘디알렉티케Dialektike’의 사전적 의미는 결코 복잡하지 않다. 그것은 단순히 서로 ‘말을 주고받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보여준 디알렉티케는 단순히 말을 주고받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어떤 신념이 받아들일 만한 것인가 아닌가, 거기에 사용된 용어는 의미가 명료하게 갖추어져 있는가 없는가, 신념 체계의 논리적 정합성整合性이 유지되어 있는가 없는가를 논하는 매우 섬세하고 복잡한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택한 디알렉티케의 길은 이성이 가리켜 주는 논리를 따르는 것이었고, 그것을 통하여 언어의 혼란과 사고의 혼돈을 헤쳐 나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