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인의 팡세
심갑섭 지음 | 프리윌
어느 시인의 팡세
심갑섭 지음
프리윌 / 2010년 8월 / 179쪽 / 9,800원유대 격언에 '영원히 살 것처럼 배우고 내일 죽을 것처럼 살아라'라는 말이 있다.
1972년 10월 13일 금요일, 안데스 산맥에 비행기가 추락했다. 난도 파라도와 로베르토는 영하 30도의 극한 지대에서 사망한 동료의 인육을 먹으며 버티다가, 구조 요청을 위해 아무 장비도 없이 그저 몇 벌의 옷을 걸쳐 입고 해발 5천 미터의 안데스 산을 넘었다. 그리고 1백 km를 걸어서 극적으로 구조 요청에 성공함으로써, 72일간의 사투 끝에 남은 동료들을 구출할 수 있었다. 그들은 45명중 13명만 살아남았다. 그 후 난도 파라도는 이렇게 말했다.
"안데스의 첩첩 산중에서 우리는 심장의 한 박동에서 다음 박동으로 근근이 이어가면서도 삶을 사랑했다. 놀랍게도 그 순간 인생의 매초 매초가 선물임을 깨달았다. 나는 생환 이래 그 처절했던 순간들을 잊지 않고 살아가려 애썼고, 그 결과 내 인생은 더 많은 축복으로 채워졌다. 그때의 경험으로 나는 말한다. 숨을 쉬어라. 다시 숨을 쉬어라. 숨을 쉴 때마다 너는 살아있는 것이다. 살아있는 너의 존재를 사랑하라. 매 순간을 충실하게 살아가라. 단 한순간도 허비하지 말고!…"
매 순간
아침 안개의 이불을 거두기 전에
숲속에 찾아 든다
호젓한 자리에 앉아 아침에 깨어나기를 기다리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갑자기 허밍 새 한 마리 어디선가 튀어나와 눈앞에 머문다
퍼 르르르르…
공간에 정지한 잠시 그 순간
시간도 멈추고 내 호흡도 멈춘다
누가 순간은 영원하다고 했던가?
그 짧았던 영원한 순간의 멈춤은
다시 시간 속으로 숨어버린다
영원은 시간 속에 감추어진 순간이라,
삶은 죽음으로 옷을 입고 죽음은 삶으로 옷을 벗는다
법정 스님은 <산에는 꽃이 피네>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떤 사람이 불안과 슬픔에 빠져 있다면, 그는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의 시간에 아직도 매달려 있는 것이다. 또 누가 미래를 두려워하면서 잠 못 이룬다면, 그는 아직 오지도 않은 시간을 가불해서 쓰고 있는 것이다. 과거가 미래 쪽으로 한 눈을 팔면 현재의 삶이 소멸해 버린다. 보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다. 항상 현재일 뿐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다면, 여기에는 삶과 죽음의 두려움도 발붙일 수 없다. 저마다 서있는 자리에서 자기 자신답게 살라!"
오늘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의 마지막 날이고
지금부터 살아갈 날들의 첫 날이다
지나온 모든 날들에 대한 결과이고
지나간 모든 날들에 대한 원인이다
마지막과 처음이 만나는 날이요
삶의 끝인 동시에 죽음의 시작이요
죽음은 또한 다른 생의 시작이다
이 생에서 보면 영원한 침묵이고
저 생에서 보면 새로운 속삭임이다
이 생의 끝도 오늘이고 저 생의 시작도 오늘이다
한 쪽의 문이 닫히자 다른 한 쪽의 문이 열린다
'내일'이란 단어는 존재하는데 '내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제는 지나가 버렸고 내일은 결코 오지 않는다
해서 오늘은 영원한 현재인 것이다
그런데도 그저 그렇게 별 볼일 없이
오늘을 지낸다는 것이 사뭇 놀랍다
영화 <슈퍼맨>의 주인공인 크리스토퍼 리브는 1995년에 말에서 낙마해서 전신마비 장애인이 되었다. 그는 혈전증까지 겹쳐 수차례 사경을 헤맸다. 그러나 리브는 단 한 번도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목에 부착된 호흡장치가 빠져 질식할 위기에 처했을 때는 이빨을 부딪쳐 간호사에게 신호를 보냈다.
리브는 전신마비의 몸으로 <이창>이라는 TV영화에 주인공으로 출연했다. 그는 이 영화에서 심오한 표정연기를 보여줘 최고의 연기자라는 명성을 얻었다. 리브는 영화 출연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습니다. 전신마비 장애인도 아름다운 여자와 사랑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리브의 재활의지를 북돋운 사람은 그의 아내 다나였다. 다나는 잠시도 남편 곁을 떠나지 않고 헌신적으로 내조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껏 나는 남편으로부터 넘치는 사랑과 보호를 받았습니다. 이제 내가 그를 보호할 차례가 왔을 뿐입니다."
동반자
벌새 한 마리가 덩굴나무의 가지 위에 내려앉자
그 무게에 놀란 듯 휘청거린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나무와 새는 어느덧 서로에게 무척이나 편안해 보인다
내 삶 속에 그녀를 맞아 들인지도 어언 십 수 년
함께 어우러지는 일에 미숙했던 나날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녀가 없는 나의 모습은 상상할 수가 없다
마치 새가 깃들이지 않는 나무처럼 외롭기만 할 것이다
우리에겐 어느 것 하나라도 필요 없는 존재란 없다
우린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들이다
그녀를 내 인생의 동반자로 엮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웨더헤드라는 종교심리학자가 하루 24시간 중 잠자는 8시간을 뺀 나머지 16시간을 사람의 인생에 대입해 본 것인데, 사람의 수명을 70년으로 잡고 갓 태어난 아기는 아침 7시, 20세는 벌써 오전 11시 34분, 30세는 오후 1시 51분, 40세는 오후 4시 8분, 50세는 저녁 6시 25분, 60세는 밤 8시, 70세는 늦은 밤 11시, 잠자리에 드는 11시 이후는 죽음의 시간인 영원한 안식을 나타낸다고 한다.
당신의 인생은 지금 몇 시인가?…
사랑한다는 말이나 용서해 달라는 말을 할 기회가 나중에 또 우리에게 주어지리라 기대하지 말고 미루지도 말자.
행복한 만남은 올바른 상대를 찾음으로써 오는 게 아니라, 올바른 상대가 되어줌으로써 온다고 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게 해 달라고 기도할 뿐만 아니라, 결혼한 사람을 사랑하게 해달라고 겸손히 간구해야 한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결혼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의 뜻이기 때문이다.
투르게네프의 소설 <아샤>에 이런 말이 나온다. "내일이면 나도 행복해진다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행복에는 내일이란 것이 없습니다. 어제라는 것도 없습니다. 행복은 과거의 일을 기억하지도 못하거니와 미래를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행복에는 현재만이 있습니다. 그것도 오늘이 아니라 이 순간인 것입니다."
이 아침에
이 아침에
아직은 아침 이슬이 잎새에 머물러 있을 때
이 아침에
아직은 새들의 아침 인사가 재잘거릴 때
이 아침에
입맞춤으로 사랑의 잠을 깨울 때
이 아침에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기 위해 그 분이 숨 죽여 기다릴 때
이 아침에
사랑하는 그대여, 나와 함께 하나님의 동산을 걸어보세
전제용(67세) 씨는 K해운 소속 참치잡이 원양어선 '광명87호' 선장으로 1985년 11월 14일, 남지나해에서 표류중인 월남의 보트피플 97명(임산부의 아기 포함)을 구출했다. 그러나 선박 회사의 명령을 어겼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쫓겨나고 결국 가정이 깨지는 아픔을 겪게 된다. 그 후 보트피플은 부산 해운대구의 적십자 난민촌 캠프에 머물다 미국, 프랑스 등지로 흩어졌다.
미국 LA의 웨스트민스터에 위치한 '리틀 사이공'에 사는 피터 누엔(63세) 씨는 당시 보트피플 중 한 사람이었는데, 2002년 전제용 씨를 미국으로 초청해 동료 월남인들과 함께 그의 은혜에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피터 누엔 씨는 현재 전제용 씨에 대한 책 <바다처럼 마음이 넓은 사나이>를 집필중이라고 한다. 진정 아름다운 일이다.
바다처럼 마음이 넓은 사나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아는 것만도 쉬운 일이 아닌데
그 일로 인해 세상에서 버려진다는 것은
더 어려운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지 않는 것은
아름다움입니다
고운 마음을 지닌 고마운 임이여!
그대로 인해 이 세상이 따뜻하였고
그대로 인해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기에
그대로 인해 내 삶이 보람됩니다
내 부디 그대처럼 살아가기 원합니다
1986년도에 개봉된 영화 <미션(The Mission)>은 420여 년 전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식민지 전쟁으로 삶의 터전을 빼앗기게 된 남미 라플라타 앙상센 마을 원주민과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준 제수잇 수도사들이 포르투갈 군대에게 저항하다가 죽임을 당한 사건에 관한 영화이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내용은 이렇다.
영토 문제를 처리하려고 로마 교황청에서 파견 나온 고위 성직자는 원주민들에게 조상대대로 살아오던 땅을 포기하라고 협박하고, 제수잇 신부들에게는 만일 원주민에게 동조할 경우 교회에서 파문 시킬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원주민들은 땅을 지키려 싸우다가 모두 죽고, 대다수의 제수잇 신부들도 원주민들과 함께 죽임을 당한다. 이 모든 일을 주관하고 지켜 본 고위 성직자가 교황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하는 것으로 이 영화는 마지막 장면을 장식한다. 편지의 내용은 이렇다.
"친애하는 교황각하, 각하의 신부들은 모두 사망함을 알려 드립니다. 그리고 저는 생존하였지요. 그러나 진실로 죽은 자는 저이고, 산 자는 저들입니다. 왜냐하면 교황각하, 죽은 자의 영혼이 산 사람들의 기억에 살아남았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를 몇 번이고 다시 봐도 언제나 나에게 가슴이 떨리는 감동을 선사한다.
가을 나무
낙엽이 떨어진다
한 잎
또
한 잎
나무는 미동조차 없다
헤어지고 싶어서 떠나는 거라면
미련 없이 멀리 떠나련만
힘든 겨우살이를 견뎌 내자니
떠나보내는 나무의 마음을
낙엽인들 모를 리가 없기에
행여 그 슬픔에 가슴이 텅 빌세라
낙엽이
한 잎
또
한 잎
수북이 쌓인다
나무 밑동 아래로…
닉 부이치치는 세계 곳곳을 다니며 학생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호주의 전도사이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두 손과 두 발이 없는 장애인이다. 두 팔이 없어서 남을 안아줄 수 없지만 그는 자신의 장애를 받아들이고 극복함으로써,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남을 안아줄 수 있도록 격려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일어서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희망이 됩니다. 일어서려고 백번을 시도해서 실패한다고 해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는 한 당신은 실패한 것이 아닙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말처럼, 많은 사람들이 소리 없는 절망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세상에는 어둠에 삼켜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둠을 삼키는 사람들이 있다. 어둠을 삼키는 아름다운 사람들로 인해 세상은 그만큼 밝아진다.
나이가 아무리 어려도 삶의 무게에 짓눌리는 사람이 될 수 있고,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꿈을 키우는 아이가 될 수 있다.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절망을 이길 수 있는 아름다운 사람이다.
하루의 초상
어둠에 굳게 잠가두었던 빗장 문을 열면
새벽을 주어먹는 토끼의 아침인사로 하루는 시작된다
곧이어 소란스럽게 지저귀는 새들의 수다스러운 소리가 나고
아이들이 학교에 갈 시간이 다가온다
노란 스쿨버스가 재잘거리는 희망을 싣고 떠나면
동네는 다시 침묵 속으로 잠긴다
태양도 아이들을 기다리다가 지쳐 슬그머니 지루해지는 때
양지바른 시멘트 바닥 위에서 도마뱀이 한낮의 오수를 즐긴다
가끔씩 뒤뜰로 간식을 즐기러 오는 노루가족이
장미꽃을 다 먹고 난 후 주저앉아 쉬노라면
갑자기 자기 영역을 침해당한 고양이 새미가
어찌할 줄 몰라 멀리서 맴돌지만
그 애타는 심정을 모르는 척 능청스럽다
스쿨버스가 아이들을 싣고 돌아오면
왁자지껄한 함성과 함께 동네는 다시 활기가 넘친다
그리고 삶의 무게에 지친 사내가 집으로 돌아온다
지붕 밑 새들은 분주히 들락거리는데
기다림도 그리움도 반가움도 감동도 상실한 듯
일상은 단조로운 반복에 머물고 시간은 어둠 속으로 스며든다
밤은 죽음처럼 땅 밑으로 내려앉고
희미한 추억만이 어둔 공터를 서성인다
사내는 밤의 창고에서 소리 없이 꿈을 도난당하고
아이들은 부지런히 밤의 창고에 꿈을 실어나른다
마더 테레사의 전기에 보면 '문제와 선물'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함께 일하는 수녀가 어느 날 마더 테레사에게 '원장 수녀님, 오늘 우리 병원에 너무 많은 문제가 생겼어요. 이런 문제도 있고, 또 저런 문제도 있어요'라며 문제에 대한 얘기를 늘어놓았다. 그때 테레사 원장이 젊은 수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자매여, 문제라는 단어를 쓰지 말고 선물이라는 단어를 쓰면 어떨까요?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그런 일들이 일어날 리가 없습니다. 또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들이라면 다 좋은 게 아니겠습니까? 문제라고 하지 말고 선물이라고 합시다."
그때부터 캘커타의 마더 테레사가 운영하는 병원에서는 큰 문제가 생기면 '큰 선물'이락 부르고, 작은 문제가 생기면 '작은 선물'이라 부르는 전통이 생겨났다고 한다.
봄의 꽃샘바람도 문제로만 보면 불평이 나오지만, 선물로 보게 되면 감사하게 된다.
벚꽃
맨살이라는 종기처럼
마디마디 아픔으로 뒤틀다가
딱딱한 각질의 껍데기를 뚫고 얼굴을 내민다
팝콘처럼 터지는 꽃망울마다 내뿜는
속 시원한 자유의 함성
그 힘겨웠던 고통에도 불구하고
하얀 웃음을 머금는다
시샘하던 꽃샘바람마저도
이제는 꽃과 어우러져
춤을 추며 흩날린다
꽃이여!
바람이여!
춘삼월의 꽃바람이여!
화가 이중섭 선생이 어느 날 앓아 누워있는 구상 시인의 문병을 갔다.
"그렇지 않아도 자네가 보고 싶었다네. 마침 잘왔네." "미안하네, 벌써 찾아오려 했지만 빈손으로 오기도 뭐하고 해서…" "이 사람아, 그게 무슨 소린가? 자네 형편 다 아는데 빈손으로 오면 어때서?" 그러자 이중섭 선생은 들고 온 물건을 친구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자네 주려고 가지고 왔네. 이걸 가지고 오느라고 늦어진 걸세. 복숭아를 그려왔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