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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시스테마, 꿈을 연주하다

체피 보르사치니 지음 | 푸른숲
엘 시스테마, 꿈을 연주하다

체피 보르사치니 지음

푸른숲 / 2010년 8월 / 276쪽 / 14,500원




1장. 오케스트라의 나라



20세기 후반 베네수엘라에서 엘 시스테마(오케스트라 시스템인 엘 시스테마를 운영하는 조직의 공식 명칭은 ‘베네수엘라 국립 청년 및 유소년 오케스트라 시스템 육성 재단’이다)보다 더 인상적이고 잘 통합되어 있으며 미래지향적인 사회문화적 프로젝트는 없었다. 모든 아메리카 대륙을 통 털어도 지난 30년간 이처럼 선명한 문화적 폭발을 이뤄낸 음악 교육 모델은 없었다. 이 프로젝트는 음악을 통해 수십만 명의 어린이, 청소년, 부모, 가족 공동체의 마음을 얻었다.



아마존 정글에서부터 가장 현대적인 도시에 이르기까지, 북동부의 누에바 에스파르타 해변에서부터 국토의 최남단의 아미소나스 주에 이르기까지 베네수엘라처럼 전국에 백 개 이상의 오케스트라를 갖은 나라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2010년 현재, 베네수엘라에는 취학 전 아동, 어린이, 청소년 레벨 등으로 나뉜 5백 개 가량의 오케스트라와 음악 그룹이 활동 중이다. 지금까지 이 조직을 거쳐 간 베네수엘라 사람은 약 30만 명, 그들 중 다수는 다섯 살에서 스무 살 사이이며 60%가 빈곤층 출신이다. 이 숫자가 보여주는 결과는 오로지 하나의 원칙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 원칙은 음악으로부터, 악기 연주를 통해, 갈채로부터, 세계 여행과 음악가라는 직업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얻으려면 취학 전 아이들부터 어린이, 청소년, 성인에 이르기까지 사회 계층이나 인종에 상관없이 누구든지 지속적이고 일상적으로 음악을 연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엘 시스테마, 그 위대한 아이디어의 탄생

위대한 아이디어가 마음속에 들끓다 보면, 그 아이디어는 많은 다른 아이디어를 끌어들인다. 이것이 하나의 아이디어가 구체적 현실로 윤곽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태동하는 시절을 지켜보았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한자리에 모아보았다. 각자 다른 음조와 크기로 말하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개인으로서, 또 하나의 사회로서 조화를 이루었다. 물론 베네수엘라 음악의 역사적 현장에는 다른 목소리들도 있었고, 다른 책임을 지거나 다른 방향을 향해 걸어간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들은 음악의 아름다움과 에너지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모두 하나였다.



이 위대한 문화적 과업을 탄생시킨 ‘아버지’, 즉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가 만든 엘 시스테마, 정확히 말한다면 후안 호세 란다에타 국립 청소년 오케스트라(엘 시스테마는 이 오케스트라가 창립되고 4년 뒤인 1979년에 정식으로 설립되었다)는 8명의 멤버와 함께 탄생했다. 초기 멤버들의 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들은 연습을 위해 이곳저곳으로 떠돌아다녀야 했다. 처음에는 프러도스 델 에스테에 있는 릴리아나 모레노의 집 차고를 빌렸다. 그 뒤 캄포 알레그레에 있는 후안 호세 란다에타 음악 학교에서도 연습을 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아브레우 박사는 멤버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너희는 베네수엘라 어린이, 청소년 오케스트라의 창단 멤버들이다. 너희는 위대한 과업의 개척자들이야.”



8명의 창단 멤버들은 음악 학교에 다니고 있거나 음악을 공부했지만 연주할 곳이 없어 음악을 포기했던 학생들이었다. 당시 베네수엘라에 오케스트라라곤 베네수엘라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술리아 심포니 오케스트라 두 개뿐이었다. 클래식 음악이 부유층의 고상한 취미 정도로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8명의 창단 멤버가 한자리에 처음 모인 날을 멤버들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을 한다. “그 자리에 온 사람들 중 누구도 아브레우가 시작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진 못했어요. 우리 8명은 마에스트로 아브레우의 설명을 함께 들었는데 요점은 연주하는 것, 함께하는 것 두 가지였어요. 아주 단순하지만 진심에서 우러난 계획이었어요.”



엘 시스테마는 멤버들의 일상과 감성 구석구석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들은 타인과의 조화로운 관계를 맺으며 즐거운 흥분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엘 시스테마 안에서 배웠다. 그들이 한자리에 모였을 때의 분위기는 두 단어로 요약된다. 우정과 재미. 동지애의 모델을 찾는다면 바로 이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새로운 음악가가 합류하면 아브레우 박사는 그 사람을 모두 앞에 소개했고 멤버들은 큰 박수로 신입 음악가를 환영했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생활하면서 함께 나누는 것, 규율과 질서에 대한 존중, 책임과 의무, 헌신과 같은 인간적인 가치를 배울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국내· 외로 공연 여행을 다니는 과정에서 사회가 조금씩 변화하고, 그들 자신도 성장해 가는 걸 느끼며 ‘주는 사람이 결국 받게 되어 있다’는 깨달음도 얻었다.



이런 낙관주의를 품고 연주 여행을 떠났던 아이들이 엘 시스테마 안에서 음악가로, 교육자로, 행정가로 성장해 이제 그 시절의 자기만큼이나 작지만 반짝이는 아이들을 키워내고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엘 시스테마의 일부로 살아온 자기 인생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다시 태어나도 같은 길을 걷겠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들은 꿈의 힘을 믿는다. 오케스트라의 지휘를 맡았던 이고르 란스Igor Lanz의 말처럼. “처음에 사람들은 우리가 자루 속에서 시끌벅적 떠드는 고양이 떼 같은 모양새가 될 거라고들 했다. 그러나 오늘 그 ‘고양이 떼 자루’는 놀랄 만한 앙상블이 되었다. 보르헤스가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에서 들려준 이야기가 생각난다. 많은 개인적인 꿈들은 누군가가 이미 꾸었던 꿈에 수렴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많은 사람들이 같은 꿈을 꾼다면, 결국 그 꿈은 실현된다는 것이다.”



꿈을 현실로 만든 사람

엘 시스테마의 산파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는 1975년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오케스트라의 전신인 후안 호세 란다에타 국립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설립했다. 이후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된 이 오케스트라는 애국주의적이며 독창적인 프로젝트의 심장과도 같은 존재다. 이브레우 박사는 이어 그의 삶에서 가장 빛나는 도전을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엘 시스테마를 만드는 일이었다. 그는 지휘봉을 들고 클래식과 현대음악의 가장 중요한 레퍼토리를 직접 감독했을 뿐 아니라 이 거대한 사회적, 음악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아브레우 박사는 음악의 길을 걸으며 동시에 계획과 경제학(Planning & Economy) 교수로 중요한 커리어를 개척했다. 그는 카톨리카 안드레스 베요 대학을 졸업했고,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석유 경제학을 전공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제학자라는 또 다른 임무에도 그는 기획조정부의 계획 관리자, 국가경제원 상담 고문과 같은 중요한 직책을 맡았다. 또한 1988년에서 1994년까지는 문화부 장관과 국가문화원장을 맡았다. 그는 음악과 행정이라는 두 길을 동시에 걸으며 예술적, 사회적 감수성과 애국적, 라틴아메리카적 자각을 자기 안에 깊이 새겨 넣었다. 엘 시스테마라는 거대한 성취를 이루었을 뿐 아니라 수많은 베네수엘라 청소년, 젊은이들과 함께 자신의 목표를 확장시키려 끝없이 싸워온 그가 바로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다.



2장. 음악으로 미래를 선물하다



엘 시스테마 재단은 프로그램 운영을 위해 필요한 자금 조달은 물론 지방의 행정조직, 베네수엘라 정부와 외국 정부, 개인 회사 등과의 사이에서 필요한 합의, 교환, 계약을 도맡아 하고 있다. 그러나 엘 시스테마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베네수엘라의 사회 현실에 맞는 방식으로 전국에 새로운 음악 교육 모델을 보급하고, 각 지역의 문화적 특성을 더욱 공고히 하는 것이다. 또한 교육과 예술을 통해 어린이와 청소년 그리고 그 가족들의 개성 형성에 인간적으로 기여하고, 가난이나 장애, 약물 중독 등의 문제에 직면한 사람들의 미적, 직업적 능력을 개발하여 사회 통합을 달성하는 것이다.



엘 시스테마는 거대한 네트워크다. 이 네트워크는 음악 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센터들, 가령 악기 제작 아카데미 센터, 불우한 어린이를 위한 지원 센터, 엘 시스테마의 필요에 따라 미래에 설립될 다른 센터들뿐 아니라 어린이, 청소년, 취학 전 어린이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관련 있는 모든 센터 그리고 이들을 통해 생겨난 음악 단체, 합창단 그룹, 교수나 교사들의 모임 등을 망라한다. 이 문화적 네트워크의 특징은 바로 개성이다. 전국의 센터들이 동일한 문화적, 행정적 계획에 의해 관리되고 기능하지만 각각은 그 자체의 역동성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오케스트라는 나의 학교

엘 시스테마에 들어온 아이에게는 다음과 같은 음악 여정이 펼쳐진다. 우선 두 살부터 네 살까지의 유아들을 대상으로 하는 오케스트라에 들어간다. 그 다음으로 다섯 살에서 여섯 살까지의 취학 전 어린이로 구성된 오케스트라, 일곱 살에서 열다섯 살까지의 아이들이 모인 어린이 오케스트라, 열다섯 살에서 스물두 살까지의 아이들이 속한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거쳐 마침내 스물두 살 이후에는 음악적 궤도의 정점인 프로페셔널 레벨에 이른다. 이 단계에서는 각 지역의 심포니 오케스트라 중 한 곳에 들어가거나 남들보다 과정을 특출 나게 잘 밟아온 경우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오케스트라에 입단하게 된다.



아이들은 이렇게 다양한 레벨을 통과하면서 다양한 포지션을 선택할 수 있다. 누클레오(Nucleo)라고 불리는 각 지역의 센터들은 음악 교육과 활동이 이루어지는 기본 단위로 엘 시스테마의 세포나 마찬가지다. 가장 영향력이 크고 독창적인 교육기관은 몬탈반 어린이 아카데믹 센터다. 이곳은 카라카스에 있으며 8년간 성공적으로 운영되어 왔고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오케스트라의 멤버였던 수잔 시만Susan Siman이 이끌고 있다. 120명의 아이들로 시작한 이 센터는 현재 8백 명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교사는 모두 70명이고, 학생들은 24개월 된 아이들부터 엘 파라이소에 있는 시몬 볼리바르 음악원이나 음악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15, 16세 청소년들까지 다양하다.



이 센터의 교육 프로그램은 8단계로 구성한다. 가장 초보적인 수준은 입문 단계로 두세 살 난 아기들에게 노래와 리듬을 익히는 게임, 밴드 음악, 손으로 뭔가를 만들거나 춤추는 법을 가르친다. 집중력과 독립심을 키우고 지시를 이해하며 용변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입문 단계를 지나면 악기와 만나는 단계로 옮겨진다. 아이들이 일고여덟 살 무렵에 악기를 선택해 일정에 따라 연주를 하고, 엄격한 오케스트라 훈련을 견딜 수 있도록 미리 준비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 무렵의 아이들은 몬탈반에 설립된 오케스트라들, 즉 코레위 오케스트라, 모차르트 오케스트라, 베토벤 오케스트라 또는 이제 막 움트기 시작했지만 음악 하는 학생들이 가장 선망하는 국립 어린이 오케스트라 중 한 곳의 멤버가 된다.



서너 달마다 한 번씩 엘 시스테마에서는 전체 조직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어린이 오케스트라에 참가할 학생들을 뽑기 위한 콘서트를 연다. 콘서트가 열리기 전 몬탈반 센터의 전문가 그룹이 고른 레퍼토리가 엘 시스테마의 모든 센터에 보내져 아이들이 서로 경쟁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이 과정은 음악적 재능이 있는 아이들을 선발하는 가장 중요한 필터 중 하나로 전체 조직의 아이들이 서로 자극을 주고받으며 실력을 키울 수 있는 역동적인 흐름을 만든다.



1975년 엘 파라이소에 설립된 시몬 볼리바르 음악원은 전통적인 음악원과는 다른 취지로 설립됐다.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오케스트라의 바순 연주자이자 원장인 레오나르도 데안Leonardo Dean에 따르면 이곳은 엘 시스테마의 멤버들과 13만 명 이상의 음악인을 길러낸 아카데믹한 교육기관이자 음악 학위를 따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몰려드는 수도권 음악 교육 시스템의 중추다. 해마다 열두 살부터 열여덟 살 사이의 학생 600여 명이 이곳에서 공부한다. 그들 중 다수는 오케스트라에서 수년간 경험을 쌓은 연주자들이지만 교육부가 인정하는 학위를 받기 위해 이곳에 온다. 80여 명의 교사들 대부분이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오케스트라 A의 멤버들인데, 음악 이론, 악기, 대위법과 화성, 음악사, 미학, 체임버 뮤직, 오케스트라 실전과 보조 피아노 등을 가르치고 있다.



엘 시스테마의 교육 시스템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대학 수준의 음악 교육이 빠져서는 안 될 것이다. 전 지역에서 지휘봉을 휘두를 새로운 세대에게는 대학 수준의 교육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엘 시스테마가 1995년 음악 교육 전문대학인 IUDEM을 설립한 이유다. IUDEM은 시몬 볼리바르 대학의 협조로 학사부터 석사, 박사 학위를 수여하며 현재 엘 시스테마 출신인 엘리스 살라망카Elis Salamanca 교수가 이끌고 있다. 이 대학은 엘 시스테마 출신으로 음악원에서 교육받은 이들 가운데 악기 연주, 음악 교육, 작곡, 음악학,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지휘 등에 관한 학위를 받으려는 음악인들을 위해 교육부의 인가를 받아 운영하고 있다.



배우고 가르치며 함께 성장하는 공동체

전국의 어린이, 청소년 오케스트라 소속 음악인들은 엘 시스테마가 제공하는 세미나, 거장과의 수업, 집중 코스와 장학금, 국제 콩쿠르 도전 기회 등을 바탕으로 실력을 향상시키고 있다. 엘 시스테마는 음악인들에게 지속적인 피드백과 음악 행사에 대한 정보, 음악계의 주요 인물들과의 만남을 제공할 뿐 아니라 그들이 직접 조직하는 사람이 되어 프로그램, 이벤트, 학습 센터의 리더 역할을 하고, 이를 통해 엘 시스테마의 지속성을 실현하는 새로운 세대가 되도록 자극한다.



라틴아메리카에서 베네수엘라는 이미 교육의 중심이 되었다. 멕시코, 콜롬비아, 브라질, 우루과이, 에콰도르, 페루, 칠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그 밖의 여러 나라들에서 많은 사람들이 엘 시스테마가 조직하는 세미나에 참석하고 이들과 함께 일하기 위해 베네수엘라를 찾는다.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엘 시스테마에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그들은 배우면서 동시에 가르치며 함께 성장해나가는 공동체였고, 그 안에서 삶과 음악은 멋진 하모니를 이루며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그들이 회상하는 과거는 엘 시스테마의 과거였고, 그들이 전망하는 미래는 또한 엘 시스테마의 미래이자 베네수엘라 음악의 미래였다.



2001년부터 엘 시스테마는 여러 악기들의 연주 수준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렸고, 다양한 전문가들의 지원을 이끌어내고 있다. 베를린 필과 체결한 교육 장학 제도 덕택에 그동안 일곱 번의 고급 레벨 세미나가 열렸다. 두 번은 관현악기, 세 번은 금관악기, 한 번은 모든 악기를 망라한 세미나였으며 나머지 한 번은 ‘말러 교향곡을 제2번’을 연주하기 위한 준비 단계로 베를린 필의 지휘자 ‘사이먼 래틀 경’과의 공연을 위한 것이었다. 이 연속적인 세미나들은 베를린 필의 연주자이자 교수인 15명 이상의 음악가들이 와서 진행했으며 20명 이상의 베네수엘라 교수들도 참여했다. 세미나는 언제나 연주를 완벽하게 가다듬고, 세세한 부분까지 빈틈없이 익히며, 연주에 관한 한 달인의 자세를 갖춘다는 것을 목표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학생들은 자신들의 음악을 순식간에 성장하게 해준 자극적인 경험에 경탄했다.



한 가족, 한 마을, 한 사회를 변화시키는 음악의 힘

엘 시스테마는 베네수엘라에 예술적, 문화적 혜택을 제공했을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는 공헌을 했다. 이 혁명적인 프로그램은 아브레우 박사가 처음부터 분명히 했던 인간적, 교육적 본질 덕분에 한 나라를 내부적으로 통합시킬 수 있는 모델, 음악을 변화의 기본 도구로 삼는 사회적 모델을 만들어냈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아브레우 박사는 더 나은 미래를 추구하는 국가를 위해 예술은 미적 가치를 넘어서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예술은 시민들의 훈련과 조직, 통합, 발전의 동력이 되어야 했다. 그래서 엘 시스테마의 디자인에는 두 가지 근본적인 원칙과 목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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