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러브
고영희 지음 | 글로세움
블랙 러브
고영희 지음
글로세움 / 2010년 07월 / 413쪽 / 13,800원
PART 1 아름다운 마음으로 시작한 일은 수많은 기적을 만든다나는 희망의 포로입니다
처음 투투 대주교를 만난 건 성탄 미사에서였다. 그날 세인트 조지 성당은 늦게 온 사람들이 성당 밖에서 미사를 볼 정도로 붐볐다. 나도 늦게 간 까닭에 뒤쪽에 서 있었는데 투투 대주교께서 다른 분들과 함께 들어오셨다. 그런데 성당 안을 둘러보시며 눈인사를 하시던 대주교께서 갑자기 내 딸 써니와 내 앞으로 걸어오시는 게 아닌가. 소심한 나는 심장이 '두근두근, 콩닥콩닥.' 우리 앞에 오신 대주교께서 써니의 머리 위에 손을 얹으시더니 축성을 해주셨다. '동양인이라고는 우리밖에 없어 눈에 띄어서일까?' 여하튼 너무 감동을 받아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미사는 저녁 11시부터 시작되었지만 워낙 많은 사람들이 참석해 8명이 넘는 신부님께서 영성체를 했는데도 새벽 2시가 다 되어서야 끝났다. 긴 시간이었지만 엄숙함 속에 스며있는 성스러움과 투투 대주교의 위트 있는 말씀으로 인해 시간 가는 줄 모를 만큼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날 투투 대주교께서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뜨거운 사랑의 씨앗을 심어주셨다.
"사랑한다면 가만히 보고 있지 말고 움직이고, 말해주고, 무엇인가를 해주라." "나눔을 생활화하라." 그 말씀을 듣고 '행복은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행복해지는 걸 보는 일이기도 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은 내가 아프리카에 와서 늦은 나이에 깨달은 것 중 하나이다. 나만 빛나고 내가 사는 곳만 빛난다고 우리 동네와 세상이 아름다워지는 건 아니다. 우리 마음속에 가득한 이기주의와 개인주의…. 세상이 자기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착각 속에서 사는 사람, 내 아이가 최고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주위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사람, 내 가족밖에 모르는 사람을 보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와 이웃 그리고 나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의 삶이 빛나고 아름다워져야 그게 진정한 아름다움이고 행복이 아닐까.
데스먼 투투 대주교는 1931년에 태어나 학교 선생님으로 일하다가 1960년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1975년 흑인으로는 처음으로 세인트 메리 대성당 주교가 되었고, 그 이후 레소토 주교, 케이프타운 대주교 그리고 남아프리카 대주교가 되었다. 1980년 반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 활동을 하면서 국제적 명성을 얻었고, 1984년에 노벨 평화상을 2007년에 간디 평화상을 받았다. 그는 반 아파르트헤이트 투쟁의 전설이며 진실과 화해 위원회의 창립자이자 평화운동의 선두주자로서 전 세계에 용서와 화해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분이다. 그는 '용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용서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는 것이다." "용서는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다." "용서는 '과거는 잊어버려라'고 말하는 사람들처럼 갈라진 틈을 종이로 덮는 것이 아니라 학대를 받은 사람들과 과오를 저지른 사람들이 어떤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투투 대주교는 충동적이고 물불을 가리지 않는 성격으로도 유명하다. 어느 날 한 장례식에 참석해 연설을 하기로 한 그는 장례식에 참석한 군중들이 정치적인 이유로 한 흑인 경찰관을 무서운 기세로 공격하는 걸 보았다. 그때 투투 대주교는 돌을 맞고 있는 경찰관의 몸 위로 자신의 몸을 날렸다. 잠시 후 군중들의 성난 기세가 조금 진정되자 투투 대주교는 피투성이가 된 몸을 이끌고 연단으로 돌아왔다. 그 모습을 본 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숙이며 자신들의 행동을 뉘우쳤다고 한다. 투투 대주교가 항상 사람들에게 강조하는 말이 있다. "신이 한 말을 행동으로 보일 수 있는 사람이 되어라. 즉 언행이 일치하는 사람이 되어라."
진정한 리더는 청산유수와 같은 말들을 늘어놓지 않는다. 꼭 필요한 때에 불꽃같은 용기를 내어 행동으로 보여줄 뿐이다. 투투 대주교는 인권과 관련된 연설을 많이 하러 다니신다. 그의 연설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는데, 그 특징 중 하나가 연설 후 기도를 하고 곧바로 춤으로 마무리를 한다는 것이다. 두 발로 무대를 탁탁 치기도 하고, 두 손으로 하늘을 찌르기도 하며 말이다. 얼마 전 신문에 그런 모습이 커다랗게 실리기도 했다. 상상해 보라! 예전 한 영화에서 춤추는 수녀는 보았지만 '춤추는 대주교'라니…. 하지만 그의 춤은 흑인들이 어떤 의식에서 강렬하게 추는 춤을 통해 자신들의 뜻을 하늘에 간절히 전하려는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해 마음이 뭉클해지기도 하다. 투투 대주교께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를 부탁드렸다. "나는 희망의 포로예요. 긍정이나 낙관은 상황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거나 힘든 일들이 생기면 쉽게 부정하거나 비관하게 되지만 희망은 그렇지 않아요. 희망은 어떤 불리한 상황에서도 잘되리라는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 아파르트헤이트 때 언젠가 그 어두운 시간들이 끝날 것이라고 믿었지만, 세상 사람들은 모두 우리가 그 희망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었죠. 하지만 우리는 굳은 믿음을 버리지 않았어요. 희망은 결코 현실에 좌우되지 않아요. 희망이란 선이 악을 이긴다는 걸 의미해요. 희망이란 가난과 역경을 견뎌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우리의 아이들이 지난날 어려움 속에서도 비관하지 않고 굳게 믿었던 희망을 가슴에 품고 그들의 뿌리를 이 땅에 튼튼하게 내릴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해요." 나도 그의 마음에 내 마음을 더했다. "그 희망에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물을 주기를…."
꿈을 꾸는 모든 건 눈부시게 아름답다
따스한 햇살이 스미는 곳, 나무 밑, 그늘이 둥지를 틀고 있는 쉴 곳이 있는 곳. 그리고… 특별한 약속을 하지 않아도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곳. 가끔 카메라 하나 달랑 메고 시간의 흐름에 나를 맡긴 채 천천히 느린 호흡으로 산책을 하는 곳이 있다. 컴퍼니 가든. 1652년 케이프 식민지의 창시자인 동인도 회사의 얀 반 리벡은 신선한 채소와 물을 보급해 줄 보급기지 건설을 목적으로 이곳에 도착했을 때 컴퍼니가든에 최초의 농원을 만들었다. 그때 심어진 아름드리나무들이 만들어 주는 그늘로 인해 이곳엔 '사람들의 쉼'이 늘 머물러 있다. 또 이곳엔 남아공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인 세인트 조지 성당을 시작으로 아파르트헤이트 법안이 통과되고 폐지되었던 국회, 유대교 교회인 시나고그, 내셔널 갤러리, 1852년에 생긴 박물관이 있다. 이 박물관엔 2만 년 전의 코이 족과 산 족들의 유물과 300만 년 전의 화석과 20미터나 되는 고래의 뼈가 전시되어 있다.
발길을 따라 조금씩 걸어가니 오래된 바람이 이는 듯하고 그때 그들이 일구던 흙들이 내 발걸음을 따라 일어났다. 이내 다시 땅 위로 돌아가는 것 같다. 이곳에 대해 모르고 오면 그냥 휴식을 위한 공원인데 알고 나면 나무 하나하나에도 지난 이야기들이 숨쉬고 있다. 이곳을 방문한 수많은 관광객들은 작은 청솔모와의 만남에도 가던 걸음을 멈추고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이미 이런 광경에 익숙해진 청솔모는 포토라인에 서서 가볍게 이런저런 포즈를 취하며 혹시나 사람들 손에 땅콩이 있는지 살핀다. 사랑의 밀어를 속삭이는 연인, 손녀딸을 돌보는 할아버지, 아이들과 산책나온 엄마, 엎드려 자는 사람, 책을 읽는 사람, 초록 잔디 위에 뿌려지는 적당한 햇살 그늘, 적당한 바람 그리고 적당함이 주는 평온과 평화. '평온'이라는 것은 가장 사소한 것들을 가장 편안한 상태로 마음 열어두고 만나는 일인 것 같다. 그때 어디선가 기타 소리와 함께 제이슨 므라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무척 좋아하는 가수인데 이건 분명 라이브 연주와 노래? 두리번거리다 벤치에 앉아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한 청년을 발견했다. 어쩜 제이슨 므라즈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은 그라고 해도 믿을 만큼 정말 목소리가 똑같았다. '음,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노래를 하나 보네.' 기타 케이스에 붙여 놓은 메모를 보고 어떤 목표를 향한 강한 의지가 보여 그 마음이 기특했다. 노래도 잘했지만 그런 마음을 사람들이 느꼈기 때문인지 종이돈이 기타 케이스에 쌓여갔다. 잠깐 노래를 멈추고 쉴 때 말을 붙였는데, 그는 이 나라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뜻밖의 이야기를 듣고 말았다. "내 이름은 샘이에요. 영국에서 치료 차 이곳에 왔어요." "나는 샐리예요. 여기 살고 있어요. 반가워요." 치료하기 위해 왔다는 말에 사실 케이프타운은 기후가 좋아 요양하기 위해 많이 오는 곳이고, 또 프라이버시 문제라 더 이상 묻지 않고 있었는데, 그의 입에서 '드러그'라는 말이 나왔다. 나는 잘못 들은 줄 알고 다시 한 번 말해달라고 했더니 마약중독치료를 위해 왔다는 거였다. 사실 조금 당황은 했지만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걸 왜 말한 걸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그다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잠깐의 침묵이 참 길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가 또다시 묻지도 않았는데 말을 이어갔다.
샘은 10살 때부터 아버지에게 기타를 배우기 시작해 장난감을 가지고 놀거나 친구들과 뛰노는 것보다 기타를 치고 노래하는 걸 더 좋아했다고 한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 음악 하는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그 사실을 부모님이 알게 되어 마약중독 클리닉을 영국에서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래도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 더 깨끗하게 중독클리닉을 받고 마음도 건강해지고 싶어서 이곳에 오게 되었다고…. 그동안 치료도 받고, 여행도 하며 아프리카 친구들과 많이 사귀었는데, 이곳에서의 석 달이 자신의 지난 3년 동안 병들었던 시간들을 치유하는 시간이 되어서 너무 기뻤다고, 또 자기는 영국으로 돌아가 음악학교에 입학해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고, 노래를 통해 이곳의 친구들을 위해 이곳의 아픔과 아름다움을 많은 이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그가 왜 말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처음 보는 내게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는 지난 과거의 시간을 털어냈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약속을 했다. 그리고 자신이 아닌 누군가에게 그 꿈을 보여주며 꼭 이룰 거라는 약속을 하며 더 굳게 자신의 흔들리지 않을 믿음에 자물쇠를 채우는 거였다. "당신 이야기 내 책에 써도 될까요?" "물론." 21살의 청년은 며칠 후 영국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왠지 몇 년 후 샘을 공연장에서 다시 꼭 볼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너무 확고한 그의 목소리에서 꼭 자신이 만든 노래를 가지고 이곳에 와서 공연을 하겠다는 약속을 느꼈으니까. 꿈을 꾸는 건 눈부시게 아름답다.
PART 2 사랑은 점점 날 욕심쟁이로 만든다엄마 저게 뭐야?
그날도 오징어를 잡기 위해서 해질 무렵 피쉬후크로 향했다. 내가 사는 곳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곳이었는데, 갑오징어를 한 번 잡아보았을 뿐 갈 때마다 빈손으로 돌아왔지만 "오늘은… 오늘은 기필코…"라고 외치면서 거의 매일 출퇴근하다시피 했다. '내가 낚시에 심취하게 될 줄 누가 알았으랴~.' 하지만 평생 낚시의 '낚'자도 모르고 살다가 막상 한번 해보니 그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것이 아니었다. 그때부터 낚시뿐 아니라 홍합, 전복, 문어, 조개, 바닷가재, 소라 등 무조건 잡는 재미와 싱싱함을 맛보는 즐거움에 빠져버렸다. 이곳은 피쉬후크 흑인들과 칼라드, 모슬렘들이 많이 살고 있다. 해변도 아름답고 해수면이 얕아 꼬마 아이들이 놀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다만, 흑인이나 칼라드가 많이 출입하는 곳은 깨진 유리병 조각들이 많아서 맨발로 다닐 때 조심해야 하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해변이 길고 모래가 밀가루처럼 곱고 파도도 서핑을 하기에 적당해 많은 서핑 마니아들이 모인다. 우리 일행은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서 열심히 달렸다. 그런데 가다 보니 몇 대의 차들이 서 있고 사람들이 비디오와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 나라에서는 그런 장면이 연출되면 무조건 가던 길을 멈추고 유심히 지켜봐야 한다. 뭔가가(?) 있는 게 틀림없기 때문이다. 여하튼 무작정 차를 세우고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 곳을 쳐다보았다. 무언가 집채만한 검은 물체가 오르락내리락하며 연신 물을 뿜어대고 있었다. 바로 고래였다. 그것도 커다란 엄마 고래 한 마리와 아기 고래 몇 마리가 바다기슭까지 와서 오르락내리락 등을 올렸다 내렸다, 꼬리를 보였다 감추었다. 실제 상황이었다. 나는 마음의 준비도 없이 처음으로 엄청난 크기의 녀석과 마주하는 행운의 순간을 맞았다. 물론 나의 심장박동은 엄청난 속도로 달음질하고 있었다. 그때 느낀 감동이란…. 내 품안에 있던 써니도 신기한지 눈도 깜빡이지 않고 쳐다보다가 물었다. "엄마, 저게 뭐야?" "응, 고래란다." "고래? 와! 고래야! 고래야~." 써니는 고래를 외치며 너무 신기해했다.
어른인 내가 봐도 그 감동을 이루 표현 못하겠는데 커다란 생명체와 첫 대면한 써니가 받은 감동과 느낌은 더 크지 않았을까. 난 순간 이곳에 온 것을 감사 또 감사했다. 그림책이나 어느 유명한 사진작가가 찍은 멋진 고래 사진이 아닌 실제로 고래를 보며 "써니 저게 고래야"라고 말해줄 수 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다. 또 그걸 본 써니가 평생 고래를 떠올릴 때마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에서 힘차게 물을 뿜어대던 고래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뿌듯하고 행복했다. 그 순간 아이들이 스스로 가슴 열어 자연을 느끼고, 보고, 만지고, 받아들이는 길을 만들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따스한 햇살과 바람을 눈감고 느껴볼 수 있는 여유, 길가에 피어난 들꽃, 풀 한포기, 돌 하나의 소중함을 가슴으로 느끼고, 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고 느끼며 자신의 꿈을 그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말이다. 따스한 햇살, 바람, 물, 시간 모든 흐름은 자연스러울 때 가장 아름답다. 사람의 '성장' 또한 자연스러울 때 가장 아름답다.
사랑은 분필로 쓰세요
넌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 아이들이 바닥에 분필로 그림을 그려 세상에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날이 있다. 2003년 미국에서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아이들이 바닥에 분필로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그리는 캠페인으로 시작되었다. 이 프로젝트는 2005년 7월, Dr 마틴 루터 킹에 의해 전 세계로 퍼져 나가 곳곳에 재단이 설립되었다. 현재 미국 많은 도시와 남아공 케이프타운, 유럽에서 이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이 작업을 위해서는 우선 사람들이 밟고 지나다니는 바닥을 빗자루로 깨끗하게 쓸고 물청소를 하는 작업부터 시작한다. 따스한 햇살에 물기가 마르고 나면 아이들은 그 위에 색색 고운 빛깔들로 마음을 그린다. 사랑은… 싫은 것, 맘에 안 드는 것들을 꼬집어 말하고, 큰소리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는 게 아니라 더럽혀진 곳을 닦아주고 매만져 주는 일, 그리고 그 위에 아름다운 빛깔들로 그림을 그려주는 일이다. 반복된 그 일들로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변화할 수 있도록…. 아이들의 손길이 닿은 곳곳마다 사랑의 바이러스가 퍼져 나가길. 모두의 가슴에 시기와 질투와 미움과 증오가 그 사랑으로 닦아지고 사랑으로 채워지길…. 아이들의 손길이 닿아 갖가지 고운 빛깔로 칠해진 세상은 아름답다.
PART 3 모든 삶은 자연스러울 때 가장 아름답다오늘도 많이 많이 웃으세요
아프리카에 와서 살면서 변한 게 하나 있다면 지나가는 사람과 눈만 마주쳐도 웃는다는 것이다. 동방예의지국에서 조선시대 여자로 30년을 살아온 데다 성격마저 내성적인 내게 잘 알지 못하는 사람과 대화를 한다는 건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하물며 남녀가 유별한 뿌리 깊은 유교사상이 알게 모르게 몸에 배어 있어 모르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을 때 웃는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마 지하철에서 눈이 마주친 남자에게 활짝 웃으며 웃음을 건넨다면 100퍼센트 그 남자는 정말 많은 종류의 오해를 하든지 아니면 내가 머리에 꽃을 꽂은 정신 나간 여자쯤으로 생각을 할 것이다. 여하튼 처음에 이곳에 와서 내가 들었던 말 중 하나는 너희 나라 사람들은 잘 웃지 않고 얼굴표정이 무뚝뚝하다는 거였다. "음, 그렇지 않아. 정은 많은데 부끄러움이 많아서 그래." 이곳에선 웃음이 생활의 일부다. 모르는 사람이라도 눈이 마주치면 자연스럽게 웃는다. 남녀노소 누구나…. 출근길에 신호등에 걸려서 멈추어 있을 때 옆 차의 운전자와 눈이 마주치면 자연스럽게 웃는다. 그건 "굿모닝~ 오늘 하루 행복하게 보내세요!"란 메시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