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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선생님이 된 CEO

토머스 M. 블로크 지음 | 비전과리더십
수학 선생님이 된 CEO

토머스 M. 블로크 지음

비전과리더십 / 2010년 3월 / 304쪽 / 14,000원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




단순하게 살라: "단순하게, 단순하게 살라."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의 선언이다. "왜 우리는 이렇게 서두르며 인생을 낭비해야 하는가? 우리는 시장기를 느끼기도 전에 굶어죽기로 작정하고 있다. 사람들은 제 때의 한 바늘이 나중에 아홉 바늘의 수고를 덜어준다고 여겨 내일 아홉 바늘의 수고를 덜기 위해 오늘 천 바늘을 꿰맨다." 이 외침은 한 세기 반이 지난 지금도 천둥의 울림으로 메아리친다. 특히 지루하거나 보람 없는 일에 코가 꿰어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귀를 아프게 할퀴어댄다. 그럼에도 소로 자신은 매우 열심히 일했다는 사실이 간과될 때가 있다.

최근에 나는 경력전환 전문 컨설팅회사 드림잡코칭Dream Job Coaching의 설립자 조엘 가핑클Joel Garfinkle을 통해 배운 것이 있다. 그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이상적인 직업을 찾도록 도왔다. 사람은 흔히 40세나 45세 정도가 되면 내가 누구이고 내가 인생에서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되돌아보기 시작한다는 것이 가핑클의 지적이다. 그는 진정한 소명을 발견하려면 자신과 과거 경험을 되짚어보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라고 제안한다.

소명은 인생에 의미를 부여해 준다: 『옥스퍼드 사전』은 '소명'이란 낱말에 대해 두 가지 정의를 제시한다. 하나는 단순한'직업'으로서의 개념이고, 다른 하나는 '마음에서 느껴지는 천직 의식'으로서의 개념이다. 내 경우에는 두 번째 정의가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소명은 내부로부터 나와야 한다. 아무도 내게 교사가 되라고 권하지 않았고 또 교사가 될지 모른다고 암시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 정의는 한 가지 점에서 부족한 점이 있는 것 같다. 어떤 면에서 소명은 얼마간 자기 자신을 초월한 것이어야 한다. 소명은 인생에 의미를 부여해 준다. 분명 가르치는 일은 상당 부분 내가 즐기며 할 수 있다고 생각한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그 차원을 넘어선 어떤 일이었다. 특히 아이들, 불우한 환경의 도심지 아이들을 돕는 일이었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소명은 취미이자 본업이 될 수 있다. 교사로 일하면서 2년간 월급을 받은 후 앞으로는 더 이상 보수를 받지 않고 일하기로 했다. 그러나 교직이 내 본업이었던 그 2년 동안에도 가르치는 일은 내 취미이기도 했다.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는 이 둘을 하나로 결합시키는 문제를 말하고 있다. - 내 인생의 목표는

두 눈이 하나의 사물을 바라보듯

본업과 취미를 결합시키는 것. -



가핑클에 따르면 꿈의 직업은 ① 내가 나 자신이 되게 하고 ② 나 자신의 가치관과 조화되며 ③ 나의 생활방식에 통합되며 ④ 나의 특별한 재능을 활용하고 ⑤ 나의 기운을 북돋우며 ⑥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고 ⑦ 내가 진정으로 관심을 기울이는 어떤 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주며 ⑧ 재미있고 나를 행복하게 하며 ⑨ 남들이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며 ⑩ 충족감을 준다. 무엇이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남은 인생 동안 당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아마 당신은 그 일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부터 내가 두려움을 극복하고 소명을 이루기 위해 몸으로 직접 부딪친 체험들을 들려주고자 한다.

2% 부족했던 나의 삶



가문의 역사와 열망이 녹아 있는 회사: 나는 세무 대행사이자 금융서비스 회사인 H&R 블록에서 18년 동안 일했고 그중 5년은 사장으로 근무했다. 나는 한쪽 벽 전체를 시사풍자만화 모음들로 도배해 놓은 널찍한 사무실에서 전 세계 수만 명의 직원들을 감독했다. 나의 아버지 헨리 블로크Henry Bloch와 삼촌 리처드가 1955년에 회사를 설립할 당시 소매형 세무 대행사가 없었다. H&R 블록은 초기에 시장을 창조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고 지금도 그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회사를 소개한 글에도 표현되어 있듯이 "이 세상에서 확실한 것은 오직 두 가지. 즉, 죽음과 세금뿐이며 H&R 블록은 그중 하나를 틀어쥐고 있다."

CEO직은 분명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내가 어떤 결정을 내리면 회사가 내 뒤에서 거대한 원양 정기선처럼 방향을 바꾸며 반응할 때 가장 큰 만족감을 느꼈다. 특히 그 방향전환이 좋은 결정으로 드러났을 때 만족감은 더욱 컸다. 그러나 나는 일을 사무실 안에 묶어둘 수 없었다. 일거리는 집에까지 따라왔고 나는 그것들을 떼어내지 못했다.

나는 무엇으로 만족감을 느끼는가?: 나는 변화를 모색했다. 자기계발에 관한 책을 두 권 읽고 규칙적으로 운동도 했다. 하지만 다 소용없었다. 고집스레 본래 나 자신의 모습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점점 내가 살고 있는 삶에 포위되어 간다고 느꼈다. 삶에서 충족감을 얻으려면 뭔가 다른 일을 해야 했다. 하지만 뭘 한단 말인가? 내 생각은 점차 가르치는 일로 기울어졌다. 전에 잠깐 두 차례 교사 경험을 해본 것이 전부였지만 나는 가르치는 일에서 예상치 못한 만족을 느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가르치고 싶다 해도 어디서 가르쳐야 할까? 어디서 최대의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내 생각은 도시 중심부의 빈민가 쪽을 향했다.

인종차별이 살아 있는 도시, 캔자스시티: 도심지의 많은 아이들은 왜 학교를 중산층으로 올라서는 티켓으로 이용하지 못하는 걸까? 1960년대의 인종차별 폐지조치로부터 오늘날의 낙제학생방지법No Child Left Behind에 이르는 수십 년간의 국가적인 차원의 적극적인 노력에도 이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데 더 나아진 것이 별로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학군의 결함 때문인가? 교사나 부모 탓일까? 아니면 아이들 자신의 문제인가? 아이들의 삶이 제대로 꽃피우기도 전에 그들을 시들어가게 하는 낮은 기대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이것이 진정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일까?

1984년 연방정부의 전면적인 인종차별 폐지 판결은 이러한 노력에 동력을 제공했다. 법원은 미주리 주에 흑인학교의 열악한 상태에 대한 책임을 물었다. 1985년과 1995년 사이에 미주리 주는 의무적으로 캔자스시티 학군에 15억 달러가 넘는 돈을 투입했다. 최신 컴퓨터와 시청각 장비로 무장한 비까번쩍한 새 학교가 세워졌고, 올림픽 시설 크기의 수영장이 들어선 곳도 있었다. 기본적으로 모든 학생은 자리만 있으면 원하는 학교에 입학을 요청할 수 있었고 만약 버스가 다니지 않으면 학군에서 학생의 택시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사람들은 이런 좋은 환경의 새 학교들이 백인 부모들의 교외 이주 행렬을 막고 다수의 백인 아이들을 그들이 다니는 사립학교에서 다시 끌어올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보다 더 실망스러운 점은 학업성취도가 정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전국 최대의 도시 학교 연합인 명문도시 학교회의Council of the Great City Schools가 실시한 이 학군에 대한 2006년 연구는 캔자스시티 학생들의 성적이 "주 전체 학생들보다 훨씬 낮았고 그들의 학업성취도는 최근까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고 결론을 지었다. 여기에서 언급한 가장 긍정적인 내용은 처음에 이 연구를 의뢰한 캔자스시티 교육위원회의 용기를 칭찬한 것이었다.

'예'와 '아니오'의 시소를 탄 후: 나도 도심지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 외에 변화를 유인할 수 있는 더 나은 방법을 생각하기란 어려웠다. 그러나 이 점은 분명히 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이 일을 단지 아이들만을 위해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나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했다. 나는 내가 실제로 캔자스시티 학생들의 삶을 바꿀 수 있을지 또는 학교의 질을 높이는 데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다. 하지만 시도는 해야 한다고 느꼈다. 내 마음은 하루에도 몇 차례 '예'와 '아니오' 사이에서 시소를 탔다. 그러나 결국 '예스' 쪽으로 결론이 났다. 나는 교단에 서기 위해 회사를 떠날 작정이었다.

값비싼 대가를 치루고 선택한 일: 송별만찬회 전날 밤에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 모든 것을 남겨두고 떠난다니 바보가 아닌가? 나는 좋은 교사가 될까 아니면 실패자가 될까? 심지어 빈민가 아이들과 관계를 맺기나 할 수 있을까? 몇 개월 전 한 친구가 내게 던진 무뚝뚝한 충고를 잊을 수가 없었다. "여행이나 하며 인생을 즐기게." 그가 말했다. "빈민촌에서 가르쳐봤자 돌아오는 건 짜증과 실망뿐이야." 수년 뒤 아버지는 조찬기도회에서 내 선택에 대해 말씀하셨다. "저는 톰이 윤리적인 결정을 했다고 믿습니다. 그는 자신이 될 수 있으리라 상상한 최선의 인물이 되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을 맺었다. "우리 모두 실패할 것이 가장 두려워지는 자리에 섭시다. 어떤 대가를 치르든 최선의 삶을 위해 떨쳐 일어납시다. 모두 일어서서 서로를 강하게 만듭시다." 내 열망을 이보다 더 감동적으로 표현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난 수학 선생님이 되고 싶다



고등학교를 견학하다: 내 목표는 최대한 매끄럽게 직업 이동을 감행하는 것이었다. 사임에 대한 공식발표가 있은 후 실제로 퇴사하기까지의 4개월간 나는 뭇사람들이 물어올 질문 - "어디서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에 답하기 위한 숙제를 시작했다. 처음에 이 숙제는 마음을 심란하게 했다. 내가 스스로에게 부과한 최초의 과제는 도심지의 공립고등학교 견학 일정을 계획하는 것이었다.

나는 차를 몰고 환경이 그다지 좋지 않은 지역에 있는 학교로 갔다. 교무실로 가서 교감 선생님을 소개받고 그가 나를 대수학 수업이 있는 교실로 안내해주었다. 선생님은 오버헤드 프로젝터를 이용하여 학생들에게 일련의 문제를 풀어보였고 각각의 문제가 어떻게 풀리는지를 단조로운 음성으로 설명했다. 그는 분명 자신이 가르치는 내용을 알고 있었지만 생기가 없었다. 장기간 강단 생활에 지칠 대로 지친 듯 열의가 없어 보였다. 그와 학생들 사이의 유일한 상호작용은 학생 중 한 명이 질문을 했을 때 일어났다. 다른 학생들은 관심 있는 척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한 학생은 거의 수업시간 내내 책상 위에 머리를 처박고 있었다. 나도 똑같이 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교감 선생님이 교실로 나를 데리러 오면서 견학은 마무리되었다. 내가 물었다. "이해 안 가는 것이 있는데요. 만약 학생이 제대로 등교를 못해서 일정 수준의 학력을 입증하지 못해도 다음 학년에 올라갑니까?"교감 선생님은 약간 짜증 섞인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 학생들에게는 졸업식 날 졸업장을 받기 위해 무대 위를 걷는 것이 아마 그들 인생에서 아주 특별한 순간일 겁니다. 우리와 달리 이 아이들은 기대할 것이 많지 않아요. 그 누구도 이들에게서 졸업장을 박탈해선 안됩니다." 나는 그에게 시간을 내준 것에 감사를 표하고 차로 걸어가면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가 지금 뭘 하려는 건가?"

수년 뒤 나는 뉴욕 주 요크타운 하이츠에서 이주민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인 엘리자베스 바울러가 자신이 교직을 선택한 이유에 관해 쓴 글을 읽었다. 나는 그녀의 단순한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제가 교사가 된 것은 낙오자를 돕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내가 찾아갔던 고등학교의 그 학생들은 낙오자들이었다. 그러나 내가 만난 수학 선생님이나 교감 선생님이 실제로 그들을 돕고 있는 것인지는 전혀 확실치 않아 보였다.

H&R 블록을 떠난 후의 내 계획은 파트타임으로 각각 교사와 학생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이었다. 독립 연구 프로그램은 이 계획을 수행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교내에서 정규수업을 듣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규 학습과제는 마쳐야 했다. 주에서 규정한 각각의 학습과제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나는 일주일에 한두 번 교수님들과 일대일로 만나 미리 정해진 일정에 따라 완성된 과제를 제출했다. 어디서 가르칠 것인가에 대한 결정도 록허스트에서 강의를 듣기로 한 결정만큼이나 쉬웠다.

"선생님, 부자예요?"



세 남자가 학교 가는 날: "오늘이 우리 집 세 남자가 모두 학교에 가는 첫 날이야."두 아들과 아침식사를 하던 중에 아내가 한 말이었다. 내가 대답했다. "그래, 나도 알아. 하지만 당신은 내가 학생이 아니라 선생님이라는 걸 잊고 있어." 그날 아침 SFX(세인트 프란시스 사비에르) 학교로 차를 몰고 가면서 나는 몇 개월간의 계획 끝에 드디어 이날이 현실화되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내가 겪었던 심적 방황과 더욱 중요하게는 나 때문에 H&R 블록이 겪어야 했던 모든 혼란을 고려할 때 나는 이 새로운 출발이 반드시 성공을 거두어야 한다는 부담을 느꼈다.

첫 수업의 종이 울리다 종이 울렸다. 드디어 첫 수업이다. "선생님, 부자예요?" 그전까지 내게 그런 질문을 한 사람은 없었다. 나는 몇 가지 이유로 그 물음에 답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능란하게 사적인 질문을 받아넘기려 해도 그들은 계속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선생님, 백만장자예요?" "회사는 왜 그만두셨어요?" "H&R 블록의 주인이세요?" 마키스가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저 선생님이 되려고 그 모든 걸 포기하셨어요? 왜 그러셨어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알고 있었다. 드디어 내가 대답했다. "너희들 H&R 블록과 선생님에 대해 좋은 질문을 많이 하는데 전부 대답해 줄께. 하지만 오늘은 아니야. 난 너희들에 대해 알고 싶어." 그리고 그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

위대한 교사는 영감을 준다: 나는 최소한 이론상으로는 모든 학생들을 늘 학습에 몰입하게 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 생각하며 교직을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러나 여러 사건을 통해 곧 그런 잘못된 생각에서 깨어나게 되었다. "이거 재미없어요." 수업 중에 자레가 불쑥 내뱉었다. 그 말이 내 가슴을 찔렀다. 그 애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교육자인 윌리엄 아더William Arthur가 한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이었는지 이해하게 된 것도 바로 그때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평범한 교사는 말만 하고, 좋은 교사는 설명하며, 뛰어난 교사는 실제로 보여주며demonstrate, 위대한 교사는 영감을 준다inspire." 나는 영감을 주고 있지 못했다. 그리고 이 당시에 내가 실제로 보여주는 교육을 하는지도 확신하지 못했다.

학생들은 내게 세금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단순히 규칙이나 규정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납세신고서를 작성해보는 것이란 사실을 보여주었다. 가정학교home-schooling 운동의 리더인 존 홀트John Holt는 이렇게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이 가령 '첼로 연주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말은 우리 마음에 두 가지의 다른 과정 - ① 첼로 연주법을 배우는 것, ② 첼로를 연주하는 것 - 이 존재한다는 이상한 생각을 심어준다. 우리는 어떤 것을 실제로 해봄으로써 그것을 제대로 배우게 된다. 다른 방법은 없다."

인성교육이 첫 단계다



부정행위의 도사들: 나는 이미 7학년과 8학년 학생들은 거의 욕을 입에 달고 다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거짓말도 마찬가지였다. 로스앤젤레스에 본부를 둔 비영리조직 조지프슨윤리협회Josephson Institute of Ethics가 중 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국적인 조사에 따르면 거짓말이 예외가 아니라 일반적인 현상이 되어버린 현실을 보여준다. 이 조사는 62%의 학생들이 지난 1년 안에 뭔가 중요한 일에 대해 선생님에게 거짓을 고했다고 보고했다. 시험 중 부정행위는 거짓말만큼이나 흔하다. 듀크대학의 센터 포 아카데믹 인테그러티에서 나온 또 다른 연구는 대학에서의 부정행위 발생 실태를 조사했다. 그 결과 대부분의 대학 캠퍼스에서 학생들의 70%가 모종의 부정행위를 시도했음이 드러났다.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록 나는 학교에서 단지 핵심과목을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반드시 핵심가치도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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