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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기행

정은숙 지음 | 한국방송출판
막걸리기행

정은숙 지음

한국방송출판 / 2010년 3월 / 352쪽 / 13,500원



막걸리란?




'청주와 탁주' 한국의 전통적인 발효주(곡주)는 대부분 주재료인 곡물과 누룩, 그리고 물로 빚는다. 우선 곡물을 쪄서 만든 고두밥을 잘 식힌 후, 잘게 부순 누룩이나 물에 불린 누룩 그리고 물과 함께 섞어 술독에 넣는다. 술독을 25도 전후의 온도에 놓아두면 4~5일 정도, 늦으면 7~10일 정도 지나면 발효가 거의 끝난다. 이렇게 발효된 술을 어떻게 채주하느냐에 따라 '청주(淸酒)'와 '탁주(濁酒)'로 나누어진다. 발효된 술덧(고두밥에 누룩과 물을 넣어 발효시킨 거르기 전의 상태)에 용수(원통형 모양의 술 거르는 용구)를 넣은 뒤 고이는 맑은 술이 청주며 약주(藥酒)라고도 한다. 한편 맑은 술, 즉 청주를 떠내지 않고 그대로 거른 술을 탁주라 하며 청주를 뜬 후 술지게미를 체에 받쳐 손으로 주물러 거칠게 거른 술도 탁주라 한다. 일반적으로 청주에 비해 빛깔이 흐리고 탁해서 탁주라 하였다.

막 거른 술, 막걸리 '막걸리'는 '막(마구) 거른 술'이라는 뜻이다. 술 빛깔이 탁하다하여 '탁배기', 술 빛깔이 하얘서 '백주', 농사 때 마시는 술이라 하여'농주'라 하였으며 지역에 따라 젓내기술(논산), 탁배기(제주), 탁주배기(부산), 탁쭈(경북), 왕대포, 흐린 술 등으로 불려 왔다. 탁주류의 대표적인 막걸리는 쌀을 누룩으로 발효시킨 후, 술의 양을 늘리거나 도수를 낮게 하기 위해 찬물을 넣어가며 거른 술을 말한다.

두 가지의 동동주 늘 정체성으로 논쟁의 대상이 되는 술 '동동주'가 있다. 고문헌을 보면 동동주라는 말은 없다. 대신 '부아주(浮蛾酒)','부의주(浮蟻酒)'로 언급하고 있다. 밥풀이 떠올라 있는 모습이 흡사 나방이나 개미가 떠 있는 것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분쇄된 누룩을 물에 불린 후 짜낸 누룩물에 찹쌀 고두밥을 섞어 3일 정도 술독에 넣어 두면 고두밥이 위로 떠오른다. 그 상태의 술을 '부아주' 또는 '부의주'라 하여 여름철에 즉석주로 마셨다. 즉, 국(누룩 등)에 의해 전분이 분해되면서 가벼워진 고두밥이 술덧 위로 떠오르는데 이 상태로 마시는 술이 '부아주' 혹은 '부의주'이며 요즘 말로 '동동주'인 것이다.

'생막걸리와 살균 막걸리' 현재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대부분의 양조장 막걸리는 쌀이나 소맥분(밀가루)을 발효시킨 12~18도 정도의 원주에 물과 감미료, 구연산 등을 넣어 6~8도로 제성한 것으로, 크게 '생막걸리'와 '살균 막걸리'로 나눌 수 있다. 생막걸리란 미생물(유산균, 효모균)이 살아 있는 막걸리를 말한다. 미생물이 살아 있고 도수가 낮은 생막걸리는 넘치거나 변질하기가 쉬워 장기간 보존하기가 어렵다. 실온(약 10도)에서 5~10일, 냉장이라면 한 달 정도가 상미 기간이다. 미생물의 활동을 정지시킨 것이 살균 막걸리다. 1992년에 '인천탁주'에서 처음 팩으로 포장한 고온 단시간 살균 막걸리'농주'가 출시되었으며, 그 후 1993년 '국순당'의 '바이오 탁', 1996년 '서울탁주'의 '월매' 등 살균 캔막걸리가 출시되면서 막걸리 업계에 살균 막걸리라는 새로운 바람이 불게 되었다.

막걸리의 성분과 효능 과거에는 숙취의 대명사로 불리던 막걸리가 최근 건강과 미용에 좋다고 알려져 각광을 받고 있다. 막걸리는 도수가 6~7도 정도로 맥주(4.5도)보다는 약간 높지만 포도주(12도)나 소주(25도)보다는 낮기 때문에 몸에 부담이 적어서 요즘에는 여성들도 많이 찾는다. 막걸리의 성분을 보면 80%가 물이고, 남은 20% 중에서 10%는 식이섬유, 알코올 6~7%, 단백질 1~2% 그리고 탄수화물 지방, 비타민 B C 와 유산균, 효모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막걸리 한 병에 들어있는 유산균은 100억~800억 개에 이른다. 이는 일반 요구르트 제품 100병에 맞먹는 양으로 장에서 염증이나 암을 일으키는 유해 세균을 파괴하고 면역력을 강화시켜 준다. 효모 성분에는 소화 흡수를 돕는 효소가 다량 함유되어 소화 장애를 개선할 수 있으며 식욕을 높일 수 있다.

과음하지 않는다면 어떤 술보다 건강에 이롭다. 최근 건강주의 이미지가 강한 건 이 때문이다. 저도주이기도 한 막걸리 역시 알코올 성분이 있기에 숙취에 효과가 있는 양질의 단백질과 비타민, 무기질이 풍부한 안주가 좋으며 되도록 막걸리의 순한 맛을 음미할 수 있도록 자극적이지 않은 것이 좋다. 궁합이 잘 맞는 안주로는 파전 김치전 등의 전류, 빈대떡, 도토리묵, 홍어삼합, 두부김치, 돼지편육, 묵은 김치, 생선구이 등을 들 수 있다.

제1장 전라도와 충청남도를 가다



논산


남자들만의 추억거리 논산 대한남아로 태어난 '덕'에 아니면 그 '업보'로 인해 이 땅의 사나이들은 병역의무를 짊어진다. 그리하여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은 부모와 자식, 사랑하는 연인, 깨벅쟁이(전라도 사투리로 발가벗고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을 말함) 친구 등 어떤 관계든 군에 들어가는 이와 이별을 나눈다. "우리의 젊음을 위하여, 건배." "건강한 군 생활을 위하여." "…를 위하여."

남자들이 입대해서 군대에 배치되기 전에 기초 군사 훈련을 받는 가장 대표적인 곳이 바로 논산의 육군훈련소다. 과거 한촌이었던 연무읍은 훈련소가 생기면서 빵 등 부식을 군납하는 업체, 식당, 여관, 이발소 등이 빠르게 들어섰다. 부근에는 군에서 나오는 짬밥(군인들이 먹다 남은 음식 찌꺼기)을 받아 돼지를 키우는 이들도 많았다. "옛날 대폿집, 그게 지금도 남아 있깐유, 다 없어졌슈!" 훈련소의 옛 추억과 함께해 온 대폿집을 찾는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연무읍내에서 대폿집 찾는 것을 그만 두고 택시 기사가 알려 준 훈련소 앞 금곡 2리에 있는 대폿집을 찾아 나섰다.

훈련소 앞의 대폿집 마을의 작은 골목길로 들어섰다. 조용하다 못해 적막하기까지 한 시장 골목, 그 흔한 개 짖는 소리조차 없다.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시장 모퉁이에 있는 '부안집'도 마찬가지였다. 문 유리창에 노란 글씨로 큼지막하게 '왕대포'라 쓰여 있으니 대폿집이 틀림없다. 참으로 반갑다 '왕대포'. 시골 대폿집에서는 어떤 안주를 주문할까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때그때 적당하게 술상을 차리는 것이 대폿집의 매력이다. 그날 밥반찬이 그대로 안주가 되기도 한다. 주인 할머니가 내온 막걸리는 '양촌순수생막걸리'. 병 라벨에는 풍요로운 가을 들녘에서 풍악을 울리는 농악대의 모습이 만화풍으로 그려져 있는데, 깃발에 쓰여 있는 '농주천하지대본(農酒天下之大本)'이라는 글자가 익살스럽다.

양촌순수생막걸리는 80여 년이 넘은 세월을 이어 온 '양촌양조장'에서 쌀 30%, 소맥분 70%의 비율로 빚은 알코올 도수 7도의 막걸리다. 아저씨 한 분이 "논산에서는 양촌막걸리지. 이동막걸리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지만, 여기 사람들은 그거 안 마셔. 한잔합시다!"라며 술을 권한다. 이동막걸리는 유명세에 늘 사람들의 비교대상이 된다. '양촌양조장'에서는 탄산의 청량감을 선호하는 요즘의 경향을 반영해 효모균을 활성화시켜 자연적인 청량감을 주는데 힘을 쓰고 있다. 자연 탄산의 상쾌함은 숙성 기간이 길지 않은 생막걸리 맛의 매력이다.

농한기에 시골의 대폿집에서 술 한 잔을 하고 있다 보면 약주를 좋아하는 동네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어이, 사진 모델 해주면 막걸리 한잔 받아 주는 겨?"우스갯소리를 건네며 빈 잔을 내미는 고씨 아저씨. 어린아이처럼 익살스럽게 웃는 아저씨의 농에 맞장구를 치며 내민 빈 잔에 막걸리를 힘차게 따라 부었다.

전주

전주의 막걸리 타운 비빔밥의 고장으로 알려진 '전주'는 풍요로운 식문화를 갖고 있는 전통 도시다. 최근 전주를 상징하는 키워드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것은 바로 '전주막걸리'다. 전주의 식문화를 알리는 대명사로 인기 상승 중인 '전주막걸리'. 전주막걸리는 다른 막걸리와 무엇이 다른 걸까. 막걸리 그 자체보다는 막걸리를 제공하는 방식에 그 특징이 있다. 주전자 가득 부은 막걸리의 가격은 1만 2천 원~1만 5천 원. 주전자 하나를 시키면 전라도 한정식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12~20여 가지의 안주가 공짜로 따라 나온다. 주전자를 추가하면 할수록 새로운 안주가 계속해서 나온다. 마치 누가 이기는지 해보자는 듯하다.

'막걸리 타운'에서 가장 잘 알려진 곳은 삼천동 골목이다. 소문 듣고 찾아 온 타지인들의 모습이 예전보다 많이 눈에 띄는 걸 보니 전주막걸리가 확실히 뜨긴 떴나 보다. 전주시에서도 '막프로젝트'라 하여 외지인을 유인할 수 있는 매력 요인으로 '전주막걸리'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대부분의 막걸리집들이 전주의 대표적인 막걸리 제조업체인 '전주주조공사'와 '대성주조공사'(현재, 대성주조는 전주주조에 인수되어 '전주삼화주조'로 사명이 변경됨)의 막걸리를 내고 있기 때문에 막걸리 맛은 거의 동일하다.

"술은 맑은 술로 할까요?"막걸리밖에 없는 것이 아니었던가? 지역에 따라 막걸리를 '흐린 술'이라고는 하나, '맑은 술'이라니 도대체 어떤 술이란 말인가? 막걸리 병을 냉장고에 4일 정도 보관해 두면 침전물이 아래로 내려 앉아 위로는 투명한 술이 고인다. 이렇게 침전시켜 놓아 맑은 술만 따라 마실 수 있게 한 술이 이곳의 '맑은 술'이다. 예전부터 이렇게 가라앉혀 윗 술만 마시는 사람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대놓고 선택하라는 것은 찾는 이가 많다는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특히 전라도 지역이 이런 '맑은 술'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맑은 술 막걸리', 굳이 말하자면 막걸리 청주인 셈이다.

살짝 데친 굴, 새콤달콤하게 무친 도라지, 탱글탱글 삶아낸 꼬막, 두부김치, 돼지편육, 삶은 소라, 그리고 조기매운탕, 찐 밤, 삶은 옥수수, 귤 등은 주전자 하나에 따라 나온 안주들이다. 주전자가 주방을 들락날락 할수록 귀한 특별 안주가 대기한다. 끝까지 젓가락을 놓을 수 없으니, 마음 비우기가 참으로 힘들다. "안주 가짓수도 그렇지만 재료 하나하나 허투루 쓰지 않는다요. 조기매운탕에 들어간 고사리도 한국산이지라." 야무진 인상의 주인아주머니의 자부심이 엿보인다. 안주가 좋으면 술이 따르는 법인데, 이는 전주막걸리를 두고 한 말이 아닐까? 사람들의 인정도 예전 같지 않게 야박해져 가는 요즘에 훈훈한 막걸리 인정을 맛볼 수 있으니 길 멀다 하지말고 찾아 올 일이다.



제2장. 충청북도와 안동을 가다



안동


막걸리와 왕소금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과 대강양조장이 있는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의 경계선에 있는 고갯길이 바로 죽령(해발 689m)이다. 회곡양조장은 안동 시내에서 차로 20분 걸리는 풍산읍 회곡리에 있다. 술은 때와 장소, 같이 마시는 사람, 분위기 등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지기 마련인데, 그날 양조장 탁자 위에 놓인 왕소금을 입안에 녹이면서 마셨던 막걸리의 맛을 잊을 수 없다. 솔티 독(Salty dog), 마가리타(Margarita) 등 소금을 가미한 칵테일을 즐겨 왔지만, 왕소금 하나만 있어도 막걸리를 이렇게 맛나게 마실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변변한 안주거리가 없던 옛날, 더운 여름에는 막걸리 한 사발과 두서너 알의 소금으로 지친 몸에 영양과 염분을 보충했으리라. 그 후 맛좋은 소금만 보면 막걸리 생각이 났다. 멕시코의 술 데킬라만큼 막걸리에도 소금의 맛과 이야기가 있다. 이렇게 안동을 다시 찾은 것도 그때 그 맛을 잊지 못해서다.

진천

근대 문화유산이 되다 "누나, 진천에 오래된 양조장이 있는데 그곳 막걸리가 끝내줘. 마시면 다른 막걸리는 못 마실걸. 한번 와 봐!" 진천에 직장을 둔 후배에게 전화를 받고 충청북도 중부에 위치한 진천으로 향했다. 80여 년 전에 지어진 술도가는 자연 원리만을 이용한 과학적인 설계 시공으로 술을 빚는 데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건축학 전공으로 전직 건축 설계사였던 이규행 사장도 곳곳에 숨어 있는 지혜에 혀를 찰 정도라고 한다. 2003년에 이곳은 근대 양조장으로서 보존 가치를 인정받아 '근대문화유산(등록문화재 제58호)'으로 지정되었다.

제3장. 부산과 경상도를 가다



부산


'사십계단'을 오르며 땅거미가 내리는 저녁 무렵 술집을 찾는 주당들의 눈은 더 빛나기 시작한다. 주당의 눈으로 해 떨어지는 부산의 거리를 걷고 있다. 초량시장에서 시작하여 상해거리(중국거리), 텍사스 뒷골목, 영주시장, 동광동의 골목길은 인천, 원산과 함께 국내 첫 개항지, 일제 강점기의 근대도시, 한국 전쟁의 피난지로서 그 흔적이 지금도 곳곳에 배어 있는 부산의 향수와 애환이 깃든 거리들이다. 길목 어딘가 희미한 전봇대 전등 아래 예스런 대폿집이 있지 않을까 싶어 부산에 올 때마다 자주 걷는 길이다. 우선 '사십계단' 쪽으로 향했다. '사십계단'을 오르면 동광동 인쇄골목길이 나온다. 어둠이 깔린 한적한 길가, 유독 눈에 띄는 붉은 등불은 빈대떡 집에서 밝힌 초롱이다.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 빈대떡이라는 이름이'가난한 사람의 떡(빈자貧者의 떡)이라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을 정도로 빈대떡은 민초들과 함께해 온 음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피난 시절 시장통이며 골목에 많았던 장사 중에 하나가 빈대떡 장사였다. 이북에서 즐겨 먹던 빈대떡은 막걸리와 오랫동안 단짝을 이룬 음식이다. 빈대떡은 역시 녹두를 맷돌에 갈아야 제맛이다. 주인아주머니가 곱게 갈은 녹두에 돼지고기, 숙주, 고사리, 파 등을 넣고 노릇노릇하게 지진 빈대떡을 내왔다. 서울 피맛골의 빈대떡집으로 유명했던 '열차집' 처럼 돼지기름을 두른 뒤 돼지고기 몇 점을 넣고 지져 낸 옛날식 빈대떡과는 다르다. 요즘은 사람들이 돼지기름 냄새를 좋아하지 않는다며 식용유를 쓰는 곳이 많은데, 이래저래 들어 간 재료들을 보면 빈대떡은 더 이상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부쳐 먹는 '貧者의 떡'은 아닌 듯하다. 서울에 '장수막걸리'가 있다면 부산에는 '생탁'이 있다. 현대적인 설비와 지하 300m의 암반수로 빚은 '생탁'. 맑은 우윳빛을 띤 생탁은 연한 단맛과 함께 산미(酸味) 그리고 탄산수처럼 톡 쏘는 맛이 강해 기름진 빈대떡과도 잘 어울린다. 무를 채 썰어 고춧가루 양념에 새콤하게 무친 무생채 또한 입안을 산뜻하게 해서 빈대떡의 느끼한 맛을 가시게 해준다. 어둠이 더해가는 '사십계단'의 저녁, 50년 전 그때 그 시절 빈대떡 한 접시에 막걸리 한 잔으로 갈증과 허기와 서러움을 달랬을 아버지들의 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산성막걸리의 일기일회 동래 금정산의 능선 안쪽 아늑한 분지에 자리 잡은 '산성마을'. 부산 하늘 아래에서 이렇게 호젓한 산성 마을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나그네로서 큰 행운이다. 내가 직접 마셔본 막걸리 중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막걸리가 이곳 '산성막걸리'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가지 못한다고 하더니 틀린 말이 아니다. 동래에 오니 그 맛이 머릿속에 떠올라 좀처럼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주세법에 따라 몰래 빚어야만 했던 누룩과 막걸리. 늘 불안에 싸여 있던 산성마을에 쨍하고 해 뜰 날이 찾아 왔으니, 그 때가 1979년이다. 산성막걸리 맛에 감복한 박정희 대통령의 특별 지시에 따라 '민속주 1호'로 지정된 것이다. 대통령이 서거하기 3개월 전이었다.

이곳에서는 어느 식당을 가든 '산성막걸리'를 마실 수 있다. 마을 어귀의 지붕이 낮은 조그마한 식당에 들어갔다. 기대가 컸던 까닭일까? 옹기그릇에 담겨 나온 막걸리 맛이 기대에 못 미친다. 보존 상태에 문제가 있었던 것인지 산미가 너무 강하고 은은하게 맴도는 향과 단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단맛과 신맛, 매운맛이 적절히 조화된 감칠맛에 전통누룩에서 오는 구수한 향이 오감을 일깨워 주던 산성막걸리의 맛이 어디로 갔단 말인가? 내 입맛의 간사함도 있으리라! 그러나 냉정히 말하면 좋은 막걸리의 맛은 '일기일회(一期一會)'라 하겠다. 살아있는 술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르는 술답게 막걸리는 환경 변화에 민감한 술이기 때문이다. 막걸리와 함께 이곳의 명물인 흑염소 불고기가 나왔다. 불고기 양념을 한 염소 불고기는 석쇠에 구워 잡냄새가 없고, 연탄불의 맛이 스며들어 고소하고 부드럽다. 이곳에서 흑염소 불고기와 막걸리 한 잔은 통과의례와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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