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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스님들의 못 말리는 수행이야기

천진, 현현 지음 | 불광출판사
지리산 스님들의 못 말리는 수행이야기

천진 쓰고 현현 엮다

2009년 6월 3일 / 255쪽 / 12,000원



제1장 한 평짜리 방의 행복



한 평짜리 방의 행복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지리산 자락의 작은 마을이다. 우리 마을에는 9가구가 사는데, 그중 4집이 스님들이 공부하는 곳이다. 2002년 봄, 현현 스님과 내가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이곳을 찾았을 때, 이 골짜기에서 홀로 수행하고 계셨던 정봉 스님께서는 힘든 결정이셨지만 두 출가 수행자의 간절한 마음을 저버리지 않으셨다. 우리는 그 날 이후, 스님을 선지식으로 모시고, 맥전골의 새 식구로 살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한솥밥은 먹어도 한 지붕에서 살지는 않는다. 한 두 평 남짓한 각각의 수행공간에서, 부처님 가르침대로 수행을 하면서, 함께 그러나 또 홀로 살고 있다. 항상 모든 존재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을 간직하면서…….

약이 된 독버섯

몇 년 전, 우리에게 엄청난 일이 있었다. 그 날은 비가 온 뒤인지라 도량청소를 했는데, 무심코 마당을 지나다가 버섯을 발견했다. 우리 도량에는 늘 그때그때 필요한 약초가 적당하게 났었기에 독버섯이라고는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우리는 그 버섯을 볶아 남은 밥에 비벼먹었다. 그런데 밥 먹은 지 몇 분이 지나자, 현현 스님이 다리에 힘이 풀린다면서 구토를 하기 시작했고, 나 역시 구토가 나왔다. 정봉 스님께서는 웃으시면서, 녹차를 한잔 타서 우리에게 마시라고 건네주셨다. 그러나 녹차를 마셨는데도 상황이 호전되지 않고, 온몸이 굳어지고 호흡에 장애가 오는 등 증상이 더 악화되어 갔다.

부랴부랴 스님께서는 차에 우리를 태워 토굴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읍내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까지 가는 동안 정말로 몸이 내 몸 같지가 않았다. 몸은 굳어가면서 감각이 없어졌고 목까지 뻣뻣해지면서 숨쉬기가 점점 더 곤란해졌다. 그 때까지도 정봉 스님께서는 별다른 증상이 없으셨는데, 우리를 쳐다보시며 간절하게 말씀하셨다. "지금이 공부하기 제일 좋은 때다. 철저히 깨어서 지켜봐라.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겪어야 한다."

병원에 도착하자 그 때부터 정봉 스님께도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실 스님께서는 토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우리보다 독성이 더 깊게 퍼졌으나 우리들 걱정 때문에 당신 몸은 잊으신 채 읍내까지 운전을 하고 오신 것이다. 그러나 그날은 선거 공휴일이라 병원도 응급실만 운영하고 있는 상황인데다 응급실에 와서 우리가 들은 말은 더더욱 기대를 저버리게 했다. "독버섯에는 해독약이 없습니다. 아마 독이 몸에 퍼지면 간이 제일 먼저 손상이 되고 그러면 눈이 점점 안 보이실 겁니다. 군내 의료원에 가면 혹 해독제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의사와 간호사는 세 명 중에 제일 증상이 심해 보이는 나에게 링거주사를 놓고 위세척까지 했지만, 별반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읍에서 30분을 더 가야 하는 큰 병원까지 구급차를 타고 가기로 했다. 구급차는 요란스럽게 사이렌 소리를 내며 전속력으로 의료원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그 의사 말대로 간에 충격이 크게 왔는지 시야가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구급차 안에서 우리는 서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버섯을 땄던 나는 죄책감이 너무나 컸고, 두 스님에게 죄송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그 때, 달리는 구급차 안에서 우리들 중 어느 누구도 스스로의 죽음에 대해서는 걱정하는 사람이 없었다. 다들 마음 가득 서로에 대한 연민으로 상대방을 위로하고 토닥여 주고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흐르면서 우리들은 너무나 또렷이 깨어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해졌다. 몸의 감각이 사라지면서 몸의 존재를 잊었고, 죽음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생각되었다. 두려움이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군내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이곳 역시 해독제가 없었고 별다른 대책 또한 없어 보였다. 독버섯 때문에 죽다니 어이가 없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출가하지 않았던가. 그때 문득 그저 남은 정신으로라도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응급실에 들어가지 않고 병원 앞의 벤치에 기대앉았다. 잠시 정신을 가다듬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우리가 믿음이 좀 더 견고했더라면, 이렇게 일들을 벌이지 않았을 텐데……. 그냥 우리 토굴에서 공부를 하면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을 텐데…….'

결국 우리는 가까스로 지나가던 택시를 잡아타고, 차를 세워두었던 읍내 병원으로 향했다. 죽더라도 토굴에 가서 죽음을 맞이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몸은 이미 조절기능을 잃었고 눈앞의 사물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마음은 참 홀가분했다. 날은 이미 저물어 어둑해졌고, 스님께서 다시 운전을 해서 화개사의 토굴로 간다는 것은 말 그대로 불가능에 가까웠으나, 우리에게는 알 수 없는 믿음이 있었다. 결국 스님께서는 초인적인 힘으로 우리를 태우고, 몇 번을 헤매시다가 캄캄한 밤이 다 되어서야 토굴로 돌아왔다.

법당에 와서 앉으니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눈물을 흘리기는 처음이었다. 눈물이 앞을 가리는데, 가슴 깊숙이 참회가 일어났다. 스님께서는 내 손을 꼭 잡으며 말씀하셨다. "버섯을 함께 먹은 것은, 우리가 같이 겪어야 할 공업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밤은 잠을 자서는 안 된다. 큰 믿음을 가지고 이 법당 방에서 다 같이 참회기도 정진을 하자." 스님께서는 밤새도록 불법을 설해 주셨고, 우리는 법문을 들으면서 깨어 있었다. 날이 밝아오자 죽음이 우리를 비켜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참으로 긴 하루였다. 버섯을 먹은 저녁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몇 겁이 흐른 듯했다.

훗날 스님께서는 이때의 일을 언급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곤 한다. "우리가 그 때 구급차를 타고 가면서,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고 상대방에 대해서 걱정했던 공덕으로 우리가 살아난 것이다. 위급한 상황에서도 자신은 돌보지 않고, 오로지 상대방을 위해 자비심을 발현하는 것을 보고, 나는 너희들이 죽지 않겠구나 생각했단다."

나는 이 일을 계기로 자비심이 목숨보다 더 위대하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웃음을 배웠다

스님의 어린 시절, 동네 어르신들께 늘 들으셨던 말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니는 뭐가 그리 좋아서 맨날 웃노?"라는 말이었다. 7년이 넘게 스님 밑에서 공부하면서, 스님께서 웃음을 잃으신 적이 있었던가 싶다. 돌아보면 스님께서 몸이 많이 안 좋으실 때도 항상 웃으시기에 눈치 채지 못한 일도 많았다.

지난번에 조그마한 공사를 하다가, 포크레인 기사가 스님 발을 포크레인 삽으로 내리치는 일이 생겼다. 옆에서 일을 돕던 우리는 너무나 놀라서 허둥지둥 스님께 다가갔는데, 정작 스님께선 발을 이리저리 보시더니 오히려 놀란 우리들을 위로하셨다. 병원에서 돌아오신 그 날 저녁, 낮 동안의 일을 정리하고 법당 방에 모인 우리들에게 스님께서 질문을 던지셨다. "반야심경에 보면, 오온이 모두 공한 것을 알아서 모든 고통을 제도했다고 하는데, 공성空性을 깨달은 사람의 몸에 고통이 있겠나, 없겠나?" 우리들이 각자 답을 하니, 스님께서는 한 가지 이야기를 해 주셨다. 예전에 스님께서 동굴에서 수행하실 때의 이야기였다.

어느 날 스님께서 동굴 앞의 감나무 잎을 조금 따려고 감나무에 발을 디디셨다가, 비온 뒤 물기에 젖은 나무에 미끄러져 곧바로 몇 십 미터 높이의 낭떠러지로 떨어진 일이 있으셨다. 절벽에서 떨어진 충격으로 스님께서는 갈비뼈가 부러져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떨어진 채로 꼼짝도 못하고 그대로 누워서 몇 날 며칠을 계셨다고 한다.

"만일 그 때 옆에 사람들이 있고, 내가 병원에 실려 갈 수 있는 그런 상황이었다면, 오히려 더욱 고통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도 도와줄 사람도 없고, 정말 어찌해 볼 도리가 없어서, 혼자서 그렇게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정말로 마음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더라. 그리고 며칠을 밤낮으로 누워 있으니 상처가 저절로 아물어서, 기어서 동굴로 돌아왔다." 그러시면서, 당신 방 창문에 붙은 글귀를 손으로 가리키신다. <과연 기댈 곳이 있는가? 있다면 죽어라!>

"정말, 아무 데도 기댈 곳이 없다면, 고통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공성空性이다. 진정으로 공성을 깨친 사람은, 오직 중생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연민심뿐이어서, 그들의 고통만을 생각하는 삶을 살게 된다."

정말 그랬다. 당신께서는 단 한번도, 당신 몸이 아프다고 다른 사람에게 걱정을 끼치는 일이 없으셨다. 이래저래 일을 하시다가 손이 베이고 머리에 상처가 나서 피가 철철 흘러도, 그냥 가만히 지혈만 하시고는, "야, 내 업보가 하나 또 날아갔다. 억수로 속이 시원하다"고 하시며 웃곤 하셨다.

<보살의 37 수행법>에는 이런 계송이 나온다.



삶이 빈곤하여 언제나 사람들이 무시하고,

중병과 마장에 휩싸이더라도,

또다시 중생의 고통을 내가 받아,

좌절하지 않는 것이 보살의 수행입니다.



나 또한, 위대하신 불보살님들과 현존하시는 스승님들의 크나크신 마음을 닮아, 모든 중생들의 의지처가 되고,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이 길을 당당하게 가고 싶다.

제2장 세상 사는 이야기



맑은 기운을 받고 싶으세요?


요즘 한창 기수련이니, 요가행법이니 하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자주 하는 말들이 있다. 아마 한 번쯤 들어 봤을 것이다. "자~! 후 하고 내 안에 있는 탁한 기운 내 보내시고, 또 깊게 숨을 들이쉬면서 우주의 맑은 기운을 들이 마십니다." 그러나 여기서 조심! 우리가 조금 더 깨어있는 의식으로 이러한 말들을 살펴보면, 나의 탁한 기운을 내 보내고, 좋고 맑은 기운을 받아들이는 그 마음이 굉장히 이기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티벳 밀교 수행에는 다음과 같은 관상법이 있다. "숨을 들이 쉴 때마다 세상의 모든 고통과 괴로움이 검은 연기로 내 안으로 들어오고, 숨을 내 쉴 때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자비스럽고 평온한 에너지가 흰빛으로 나간다." 스님께서도 언제나 이렇게 말씀하셨다. "항상 좋은 것만 취하려 하고 나쁜 것은 피하려고 하면 할수록 자기 자신 안의 무한한 능력이 사장된다. 수행자는 항상 어떠한 것이든지 황금으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대긍정의 마음을 가진 수행자에게는 좋은 기운, 나쁜 기운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받아들이는 모든 것은 반야의 용광로 속에서 녹아내려 자비와 지혜의 원료가 될 뿐이다. 생각해 보라. 아무리 무시무시한 악마의 형상일지라도, 아무리 쭈그러져 못생긴 고물덩어리일지라도, 뜨거운 용광로에 녹으면 겉모양은 사라지고 동일한 재료가 될 뿐이다. 그러면 그 동일한 재료는 다시 만드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부처님이 되기도 하고, 예수님이 되기도 하고, 귀여운 아기 천사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문제는 늘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다. 즉 받아들이는 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항상 좋은 쪽으로 변형시킬 수 있는 우리 내면의 힘에 달려 있는 것이다.

상대방이 화를 내면 당신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행동할 것인가? 화를 화로 되돌려주지 말고 연민심과 자비심으로 바꾸어서 돌려주어야 할 것이다. 늘 맑은 기운만 받아들이고 탁한 기운은 내 보내려는 사고는, 다른 사람에게서 자비와 사랑의 에너지는 착취하면서 자신은 세상에 도움이 안 되는 생각들만 쏟아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자신에게 무한한 자비와 사랑, 그리고 반야의 지혜가 본래 갖추어져 있다는 믿음이 사실상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힘이 된다.

숨을 쉴 때마다, 어떤 사람은 세상을 해롭게 하고, 반대로 어떤 사람은 세상을 이롭게 함과 동시에 자신의 자비와 지혜를 점차적으로 확장시켜 나간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아직도 맑은 기운을 받고 싶은가, 아니면 맑은 기운을 내 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은가.

행복을 여는 비밀의 열쇠

이곳에 수행하러 오는 분들에게, 가끔씩 스님께서는 이런 질문을 던지신다.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적이 언제인지 한번 말해 봐요." 이 질문을 받은 많은 분들은,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어렸을 때인 것 같아요"라고들 대답하곤 한다. 가끔 스님께서 사람들에게 왜 저 질문을 하실까 하고 궁금해지기도 한다. 사람들이 더듬더듬 과거를 되짚어가서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는 것이 과연 우리의 수행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그러나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은 스님께서 해 주신 말씀 속에 있었다.

사람들이 더듬더듬 가장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려 대답을 하면, 스님께서는 웃으시면서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바로 그 때의 행복을 놓치지 말고 잘~ 간직해 봐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문득, 짧은 순간이나마 행복을 느낄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릴 때, 목욕탕 따뜻한 물에 몸을 녹일 때, 좋은 사람과 마주 보고 있을 때, 집안일 끝내고 커피 한잔을 마실 때, 거울 보고 화장할 때, 점심 먹고 담배 한 개비 태울 때, 낚시터에서 물끄러미 물을 바라볼 때, 좋은 경치를 구경할 때.... 갖가지의 순간, 우리들은 문득 행복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행복을 느끼는 순간, 이 행복감이 도대체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기에, 그 행복했던 순간을 반복하면 다시금 그 행복감이 밀려올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게 된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은 자꾸자꾸 만나야 되고, 몸이 지치면 목욕탕에 가야만 되고, 커피나 담배에 중독이 되기도 하고, 낚시나 취미생활에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왠지 스스로 '난 참 행복해'라고 말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된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의 행복은 어떻게 찾아오는 것인지, 반짝이는 눈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스님의 말씀처럼 '행복했던 그 순간을 잘 간직하기' 위해, 우선 잘 살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문득 문득 행복을 느낄 때, 그 행복감이 외부의 어떤 것 때문에 오는 것이라고 착각을 한다. 어떤 사람, 어떤 장소, 어떤 음식 때문에 행복해지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 행복은 절대로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밖으로만 향하던 우리의 마음이 잠시 쉬어질 때, 우리의 본성과 계합하면서 문득 행복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까르마빠, 나를 생각하세요』라는 책에는, 다음과 같은 까르마빠의 법문이 실려 있다.



"행복과 즐거움을 주는 일은 세상에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들 마음에 행복과 평화를 키워 가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것을 키워 갈 수 있을까요? 보통 우리 마음은 마음을 흔드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마음이 이런 식으로 흔들려 한 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흐트러져 있으면, 내적으로 안정될 수 없습니다. 이럴 때 마음의 행복은 사라집니다. 이 망상들을 마음의 본질에 녹임으로써 행복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보통 우리들은 이 몸과 자신을 동일시하기에, 목욕을 하거나 화장을 하거나 할 때, 우리의 마음이 저 멀리 달아나지 않고 내 몸 가까이 즉 자기 자신과 가까이 있기에 문득 행복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리저리 늘 헤매던 우리의 마음이, 어떤 사람이나 장소에 대한 만족감으로 그 마음이 잠시 쉬어지게 되었을 때 문득 행복감을 느끼게 된다.

결국, 분열되고 흩어진 마음이 하나로 모아지는 그 순간이 바로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다. 만일 우리가 이러한 행복의 비밀을 알지 못하고, 외부의 사람이나 어떤 조건들에 의해 행복해진다고 착각한다면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놓치게 된다. 우리에게 문득 행복함을 주던 바깥 경계가 더 이상 그 행복함을 주지 못하게 될 때, '이 사람이 아니었나 보다' 하고 다른 사람을 찾아 나서고, '이 물건이 아니었나 보다' 하며 다른 제품으로 바꿔보고, '이 곳이 아니었나 보다' 하고 또 다른 곳을 찾게 된다. 무지개를 잡으려는 사람이 아무리 들판을 내달려도, 무지개는 또 다시 저 너머에 있게 되듯이, 바깥에 행복이 있다고 착각하는 사람에게 행복이란 늘 저 너머에 있는 무지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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