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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지 못한 어글리

콘스턴스 브리스코 지음 | 오픈하우스
사랑받지 못한 어글리

콘스턴스 브리스코 지음

오픈하우스 / 2010년 1월 / 435쪽 / 12,800원



나의 가족




이제 내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내 이름은 '콘스턴스'다. 이 이름이 내 출생증명서에 적혀 있는 이름이다. 나는 내 이름이 콘스턴스라는 사실을 열여덟 살에 처음 알았다. 그 전까지는 내 이름이 '클레어'인 줄 알았다. 어머니는 나를 '클리어(Clear)'라고 불렀다. 내 속이 빤히 보여 나를 또렷이(clear) 꿰뚫어 볼 수 있다고 그렇게 붙인 것이다. 언니들은 클리어를 클레어라고 바꿔 불렀고, 지금도 나를 클레어라고 부른다.

나의 어머니 카르멘은 십대 후반이었던 1950년대 초에 자메이카에서 영국으로 왔다. 독실한 카톨릭 가정에서 자란 어머니는 아버지를 자메이카에서 처음 알게 되었고, 세월이 흘러 런던 근교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아버지는 어머니보다 열 살 많았다. 어머니가 열여덟 살에 임신하자 두 사람은 결혼했고, 곧 첫 아들을 낳았다. 원스턴이란 세례명을 받았는데, 넉 달 만에 죽고 말았다.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넷째 아이로, 영국에서 태어나 자랐고 교육을 받았다. 물론 나는 흑인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끊임없이 다툰 이유는 돈 문제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에 축구도박에서 두 번이나 크게 이겨 부자가 되었다. 아버지는 그 돈으로 런던 남부 캠버웰 지역의 집 십여 채를 구입했다. 우리 가족은 아버지 소유의 집들 중 한 곳에서 다른 한 곳으로 늘 이사 다녔다. 아버지는 그 집들을 세놓고 임대료 수입으로 살았다. 큰돈이 생긴 이후로 따로 일을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화려한 차를 사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둘째 언니인 패치가 태어난 뒤 어머니를 떠났다. 가끔씩 생각난 듯 집으로 돌아왔지만, 아버지가 밤에 우리 집에서 잠을 자거나 아침밥을 함께 먹은 기억은 없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서 돈을 받아내려고 기를 썼다. 자기 이름으로 집을 사달라고 아버지를 들볶았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지만, 가족 부양비 명목으로 몇 채의 임대료는 어머니가 받도록 해주었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결코 어머니의 성에 차지 않았다. 두 사람이 헤어진 이후에도 초창기에는, 아버지가 아이들을 보러 왔을 때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잠자리를 함께하자고 했다. 그런 다음 아버지가 잠이 들면 어머니는 아버지 지갑에서 돈다발을 빼냈다. 어머니가 나를 임신한 것도 아마 그런 와중이었을 것이다.

어머니는 다른 자매들과 나를 분명히 차별했다. 언니들은 나처럼 욕설을 듣지 않았다. 나를 대하는 어머니의 매정함 때문에 나는 신경이 몹시 예민해졌다. 그래선지 자의식을 갖게 된 이후 줄곧 밤에 오줌을 쌌다. 어머니는 그 때문에 화를 많이 냈다. 내가 얻어맞은 것도 대부분 야뇨증 탓이었다. 내가 다섯 살이 되었을 무렵, 처음으로 야뇨증 경보기가 설치되었다. 자다가 오줌을 싸면 경보기가 큰 소리로 울렸는데, 그러면 오줌을 싸지 않고 참게 된다는 원리였다. 하지만 야뇨증은 점점 더 심해졌다. 경보기가 울리면 어머니는 내 방으로 달려와 나를 침대에서 끌어냈다. 젖은 옷과 시트를 모두 벗겨내고 내 등짝을 후려갈기는 때도 있었다. 어머니가 가고 나면 나는 알몸으로 벌벌 떨었다.

내가 느낀 굴욕감은 끝이 없었다. 야뇨증은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어머니의 폭력 탓에 너무 신경이 곤두서서 어떤 때는 어머니의 모습만 보여도 오줌을 싸버리곤 했다. 어머니는 자기 눈앞에서 내가 오줌을 싸는 것을 반항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밤에 오줌 싸는 것이 무서워 잠을 자지 않으려 애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그러다 지쳐서 결국 잠에 떨어지고, 잠이 들면 야뇨증 경보기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렇게 같은 일이 계속 되풀이되었다.

쌍둥이 동생



아버지와 어머니가 확실하게 별거를 한 것은 아니었으나 아버지가 우리를 보러 오면 언제나 어머니가 손톱을 세우고 기다리고 있었다. 문제의 그날, 아버지는 참다 참다 폭발한 것 같았다. 아버지는 손바닥으로 어머니를 때렸고, 어머니도 곧바로 맞받아쳤다. 아버지는 욕설을 퍼부으며 어머니의 등에 주먹을 날렸다. 어머니는 침대 위로 쓰러졌지만, 반격하기 위해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아버지가 다시 어머니를 힘껏 밀쳤고 떠밀린 어머니는 상반신만 침대에 걸쳐진 상태로 벌러덩 넘어졌다. 그때 어머니의 손에 철사 옷걸이가 닿았다. 아버지는 밖으로 나가려고 어리석게도 등을 보였고, 어머니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아버지에게 달려들었다. 순간 옷걸이가 아버지의 턱 바로 아랫부분을 뚫고 들어가 반대쪽으로 삐죽 나왔다.

아버지는 옷걸이에 찔려 피가 콸콸 솟구치는 곳에 커다란 수건을 대고 황급히 집을 떠났다. 그 일이 있은 뒤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아버지를 보지 못했다. 대개 몇 주면 아버지가 다시 집을 찾곤 했지만, 이번에는 훨씬 길었다. 아버지가 다시 우리를 찾아왔을 때 어머니는 아버지를 무시하려 했다. 하지만 우리가 너무 기뻐했기 때문에 어머니는 조용히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얼마간 차분한 태도를 보였다. 어머니가 크리스틴을 임신한 것은 아마 그 무렵이었을 것이다.

1962년 11월, 어머니는 아기를 낳으러 병원으로 갔는데, 그 직전에 우리와 함께 있어줄 세입자를 들였다. 벰 할아버지였다. 나는 할아버지를 좋아했다. 친절하고 다정한 분이었다. 며칠 뒤 우리가 병원에 갔을 때 어머니는 까만 아기와 갈색 아기 두 명을 모두 침대 곁에 눕혀두고 있었다. 아버지는 까만 아기의 수수께끼를 파헤치려고 하면서 그 아기는 분명 자기 아이가 아니므로 함께 집에 데리고 갈 수 없다고 끈질기게 버텼다. 어머니가 완강히 거절하자 아버지는 호출 버튼을 눌러 간호사를 불렀다. 아버지는 간호사에게 어머니가 아기를 몇 명 낳았냐고 물었다. 간호사는 한 명이라고 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언쟁을 벌이는 동안 옆 침대에서 커튼 뒤로 몸을 숨기고 있던 여자가 나왔다. 그녀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그 아기는 자기 아기라고 했다. 어머니는 그녀가 아기를 원하지 않아서 자기한테 주었다고 말했다. 당시 그녀는 군인인 남편과 행복하게 살고 있었는데 남편이 집을 떠나 있는 사이 다른 남자와 짧게 관계를 맺었고, 남편은 임신 사실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아버지는 두 사람이 공모해 자기를 속이려 했다는 사실에 펄펄 뛰며 화를 냈다.

며칠 뒤 어머니는 두 아기를 데리고 집으로 왔다. 이렇게 해서 그 '쌍둥이'는 우리 가족의 구성원이 되었다. 그때 나는 다섯 살이었고, 우리 집 아이는 모두 합해 일곱 명이 되었다. 폴린과 패치, 나, 그리고 남동생 칼과 마틴, 그리고 쌍둥이 크리스틴과 데니즈. 얼마 후 사회복지국 사람들과 데니즈의 엄마가 우리 집을 방문했고, 어머니가 데니즈를 입양하겠다고 하자 데니즈의 엄마는 데니즈 앞으로 나오는 자녀수당을 받을 권리를 어머니에게 넘기겠다고 했다. 그 이후 데니즈가 열다섯 살이 될 때까지 나는 한 번도 그 여자를 본 적이 없다.

새 아버지



1963년 우리는 버넷 스트리트 6번지로 이사했다. 그 집은 어머니 소유였다. 그 집은 아버지의 집이 아니었으므로 이제 아버지는 마음 내킬 때 불쑥 찾아올 수 없게 되었다. 아버지가 주는 돈 이외에는 다른 수입이 없는 어머니가 어떻게 자기 이름으로 집을 살 수 있었는지는 수수께끼이다. 이스트먼이 처음 그 집에 모습을 나타냈을 때 나는 그에게서 별다른 느낌을 받지 않았다. 그는 어깨가 넓고 다리가 두꺼운, 덩치 크고 못생긴 사람이었다. 사실 그는 본래 어머니의 사촌인 이나 아주머니의 남자친구였다. 처음에 어머니가 그들 사이에 낀 것은 우연이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스트먼은 아주머니가 아니라 어머니를 찾아오게 되었다. 이스트먼은 항상 우리가 잠자리에 들 때 왔다. 아버지를 철사로 찌르고 욕설을 퍼붓던 어머니가 그 남자 앞에서는 멍청이처럼 구는 것이 참으로 이상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려는데 갑자기 내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방안으로 들어온 그는 내게 어머니는 나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가끔씩 신경이 날카로워질 뿐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스트먼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다가 갑자기 지겨워져 바닥에 있는 인형을 집으려 팔을 뻗었는데, 그만 균형을 잃고 이불이 벗겨져 내려가면서 내 엉덩이가 반쯤 드러났다. 내가 다시 이불을 끌어다 덮으려하자 이스트먼이 갑자기 내 성기를 움켜쥐면서 말했다. "조그맣고 예쁜데." 나는 침대 커버로 몸을 가리고 담요를 턱 밑에 단단히 끼워 넣었다. 나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그를 노려보고만 있었다. "엄마한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입을 뻥끗하면 얻어맞기만 할 걸."그는 방을 나갔고, 나는 안전하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담요를 둘둘 말고 잠이 들었다.

내가 일곱 살 반이 되었을 때, 어머니는 욕하고 때리는 것으로는 내 야뇨증을 고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새로운 방법을 시도했다. 어느 토요일, 저녁식사를 기다리며 모두가 식탁에 둘러앉아 있을 때였다. 어머니는 내 접시를 치워버리더니 나를 빼놓고 음식을 덜어주기 시작했다. 나는 그 자리에 없는 것처럼 무시당했다. 왜 내게는 밥을 주지 않는지 물었더니 어머니는 내가 밥을 먹으면 오줌을 싸게 된다고 말했다. 식탁에 앉아 있던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나는 또 얻어맞을까 겁이 나서 어머니에게 반항하지 못했다.

어글리



"이리 와서 내 앞에 서 봐라. 네 얼굴 좀 자세히 보자." 나는 차렷 자세로 어머니 앞에 섰다. 이스트먼과 폴린, 패치, 칼이 함께 있었다. 나는 방금 학교에서 찍은 사진을 어머니한테 보여준 참이었다. 사진을 사고 싶으면 딸려온 갈색 봉투에 돈을 넣어 보내고, 원하지 않으면 사흘 안에 사진을 돌려보내면 되었다. 어머니는 비닐 커버에서 사진을 꺼내어 내 얼굴 오른쪽에 갖다 댔다. "폴린, 이리 와서 잘 봐라. 뭐가 보이니?" 폴린이 다가와서 어머니 바로 뒤에 섰다. "클레어가 보여요, 엄마." "잘 보라니까. 다시 봐." 어머니는 이제 사진을 내 왼쪽 얼굴 옆에 가져다 댔다. "클레어예요, 엄마." "이런, 내 눈에 보이는 걸 너는 못 보는구나. 이스트먼, 이리 와서 잘 보고 뭐가 보이는지 말해 봐요." 이스트먼이 다가왔다. "하! 정말 못생겼군." 그가 말했다.

나는 어머니가 움직이지 말라고 하여 차렷 자세 그대로 가만히 서 있었다. 어머니는 사진을 쳐다보던 눈길을 내게 돌렸다. "어쩌면 이렇게 못생길 수가 있지? 못생겨도 너무 못생겼어. 이 코 좀 봐! 내 코가 이렇게 생겼다면 칼로 잘라버렸을 거다." 그러자 이트스먼이 말을 받았다. "카르멘, 이 타이어 같은 입술은 또 어떻고? 내 입술이 너처럼 크고 두꺼웠다면 나는 사진 같은 건 아예 찍을 생각도 못했을 거다. 얼굴에 이 가득한 점들은 뭐냐?" 어머니는 웃음을 터뜨리며 사진을 식탁 위에 던졌다. "솔직히 말해봐라, 클레어. 내가 이 따위 사진을 돈을 내고 사야 하는 거니?" 주방이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정말로 즐거운 날이었다. 얻어맞거나 욕설을 듣지 않고 웃음으로 끝났으니까.

다음날 저녁 일찍, 나는 주방으로 내려갔다. 내가 저녁을 준비할 차례였다. 닭을 손질해야 했다. 어머니가 주방으로 들어올 때까지는 모든 일이 순조로웠다. 어머니는 내 어깨 너머로 넘겨보면서 "닭을 잘 봐라. 저게 제대로 된 거니?" 하고 물었다. 나는 "네" 대답하면서 뭔가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주의 깊게 닭을 살펴보았지만 뭐가 잘못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잘 보란 말이다." 어머니는 내 머리를 잡고 닭 쪽으로 돌렸다. "말해 봐라, 뭐가 보이는지."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요?" "뭐라고?" 나는 다시 닭을 찬찬히 살폈다. 그제야 그게 내 눈에 띄었다. 등 쪽에 흰 깃털이 세 가닥 삐쭉 나와 있었고 배 부분에도 다섯 가닥의 깃털이 보였다. 이럴 수가, 왜 아까는 이게 안 보였던 거지? 나는 맨손으로 깃털을 뽑기 시작했다. "왜 이걸 못 봤는지 모르겠어요."

"못 봤단 말이지! 네 눈엔 이게 안 보였단 말이지!" 어머니는 내 귀를 움켜쥐고 식탁으로 끌고 가 의자에 앉혔다. 식탁보 위에 날카로운 칼이 놓여 있었다. "이 칼은 보이지?" 어머니는 칼을 손에 들었다. "두 번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확실히 해야겠구나." 눈물이 내 뺨을 타고 떨어졌다. 바로 그때, 어머니가 칼끝을 내 손목에 갖다 대었다. "또 닭털을 제대로 뽑지 않을 건지 말해봐라." "안 그럴게요." 어머니는 칼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내 손목에서는 피가 배어나왔다. "확실히 잊지 않고 기억할 거지?" "네, 절대 잊지 않을 거예요." 어머니는 칼을 쥔 손을 내 팔꿈치 쪽으로 움직였다. 칼날을 따라 핏방울이 솟아올랐고, 일직선으로 베인 상처에서 흘러내린 피가 비닐 식탁보 여기저기에 떨어졌다. 어머니는 넌더리를 내며 "내 식탁보에 온통 피를 묻혔구나. 닭을 만지기 전에 식탁보부터 씻어 놔" 하고는 벌떡 일어나서 가버렸다. 그날 밤에도 나는 어김없이 오줌을 쌌다.

보복



열두 살이 되었을 무렵, 이스트먼과 나의 관계는 최악이었다. 한번은 싸움을 벌이다가 그가 나의 멱살을 잡았을 때 나는 그의 배에다 주먹을 먹였고, 커다란 발등을 내 발로 찍었다. 내가 도망치자 이스트먼은 나를 잡으러 달려왔다. 내 방까지 따라온 그는 허리에서 혁대를 풀어 내 얼굴을 두 번 때린 다음 주먹질을 했다. 그 혁대에는 커다란 청동 버클이 달려 있었다. 옆에 있던 어머니는 얼굴만은 피하라고 했다. 어느 날은 내가 이스트먼에게 "바보 멍청이"라고 했다가 담뱃불로 내 손등을 지지는 일까지 당했지만, 어머니는 이스트먼을 편들었다. 야뇨증은 통제불능 상태가 되었고, 어머니는 정기적으로 젖은 잠옷을 거둬가서 비닐봉지에 넣고 습기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단단히 묶어두었다. 그러다 생각나면 그것을 다시 꺼내어 내 침대에 깔았다. 나는 이제 밤에 창문을 열어둔 채 자게 되었다.

어느 날, 이스트먼과 나는 유난히 격렬하게 맞붙었다. 일층 창문 옆에서 엎치락뒤치락 싸우고 있었는데, 이스트먼이 내 턱을 잡고 머리를 창문에 들이박자 내 머리는 유리를 뚫고 나갔다. 어머니는 순간 얼어붙었다. 그러더니 비명을 질렀다. "이런 일이! 이스트먼, 뭐하는 거야? 얼굴을 그렇게 해놓으면 경찰서 감방에 잡혀간다고 했지?" 이스트먼은 곧바로 주먹을 내리고 멈칫거리며 내게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나는 멍한 상태로 머리카락에서 유리조각을 털어냈다. 손에서 핏방울이 솟아올랐다.

나는 코트를 입고 집을 나서서 아버지를 찾으러 갔다. 두 눈이 무섭게 부어오르고 피가 얼굴로 흘러내렸다. 깨진 유리조각이 머리카락에 붙어 반짝거렸다. 아버지는 내 모습을 보더니 지하실로 가서 도끼를 들고 나와 차에 실었다. 나는 아버지가 개입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날 밤은 아버지와 함께 보내고 다음 날인 월요일, 나는 아버지에게 켐버웰 그린 치안판사법원 앞에 내려달라고 했다. 나는 법원 건물로 들어갔다. 벨을 누르자 어떤 여자가 나타났다. "무슨 일로 왔니?" "의붓아버지가 계속 나를 학대해요. 그 사람을 상대로 소송을 할 수 있는지 알고 싶어요." 나는 필요한 양식을 작성하고 법원을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

드디어 이스트먼에게 법원에 출두하라는 통지서가 도착했다. 이스트먼이 글을 읽을 줄 몰라 어머니가 대신 그에게 내용을 읽어주다가 기겁을 했다. 법원에 갈 날짜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는 어머니도 이스트먼도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그날이 되자 나는 교복을 입고 법원으로 행했다. 나는 치안판사에게 손등의 화상을 보여주었고, 그가 나를 때리고 내 머리를 유리창에 박았던 날에 일어난 일들에 대해 얘기했다. 이스트먼은 그것은 사고라고 말했다. "이스트먼 씨, 내가 취할 조치를 말씀드리죠. 당신은 앞으로 12개월 동안 근신해야 합니다. 그 기간 동안 다시 브리스코 양에게 손대면 감옥에 가게 될 겁니다. 내 얘기를 분명하게 알아들었습니까?" "예, 판사님." 야호! 앞으로 12개월 동안은 얻어맞지 않아도 된다! 나를 건드리면 철창신세가 된다는 생각으로 이스트먼은 잔뜩 겁을 집어먹었다. 그러나 이스트먼과 달리 어머니는 이스트먼을 대신해 내게 보복하면서 그 사태를 책임지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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