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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맑음

사단법인 지라니문화사업단 지음 | 북스코프
내일은 맑음

사단법인 지라니문화사업단 지음

북스코프 / 2008년 12월 / 223쪽 / 12,000원



제1부 Prelude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그 겨울의 특별한 공연 : 해마다 연말연시면 정통 클래식에서 헤비메탈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명성을 자랑하는 해외 뮤지션들의 내한 공연이 줄을 잇는다. 그런데 화려한 스타급 뮤지션들의 공연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합창단의 공연이 하나 있었다. 이름도 생소한 '지라니어린이합창단(Jirani Children's Choir)'. 2007년 11월 26일 서울에 도착한 합창단은 한 달 반 동안 한국에 머물면서 국회 공연을 비롯해 10개 도시에서 25회 공연을 펼쳤고, 관객들은 검은 피부의 소년 소녀들이 만들어낸 선율에 마음을 빼앗겼다. 출국을 며칠 앞둔 2008년 1월 9일, 합창단은 한국 관객들에게 앙코르 공연을 준비했다. 공연이 시작되자 무대 중앙으로 솟아오르는 이동식 장치에 몸을 실은 30여 명의 아이들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저마다 자그마한 손에 조심스레 촛불을 들고 레몬색 유니폼을 맞춰 입은 아이들이 흡사 어느 성능 좋은 앰프를 통해 흘러나오는 소리인가 싶을 만큼 풍부하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목소리로 맥기의 <임마누엘>을 부르고 있었다.

아프리카 케냐, 그곳에서도 슬럼가 출신 아이들이라고 했다. 게다가 공식 창단한 지 겨우 1년밖에 안 된 합창단이라고 했다. 대를 물린 가난에 당장 먹을 것이 없어서 배를 곯고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학교에 갈 수 없는 아이들. 아픈 부모를 대신해 어린 동생들을 돌보는 아이들. 집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어둠 속에서 밤을 견디는 아이들……. 어쩌면 이 아이들에게 '음악'은 먼 나라 이야기였는지도 모른다. 마을을 둘러싼 쓰레기 처리장에서 나오는 매캐한 연기와 먼지를 호흡하며 살던 아이들이 '도레미파솔라시도' 계이름 익히기부터 시작한 숱한 연습 끝에 부르는 노래라고 했다. 90분 공연 중 절반의 순서가 지나고 이어진 합창단 소개 영상을 바라보던 관객석 여기저기에서 탄성이 새어 나왔다. 완벽한 발성, 흔들리지 않는 음정, 청아한 음색으로 한국민요 <도라지 타령>에서부터 아프리카 민요 <잠보>까지, 때로는 흥겨운 율동을 섞어가며 더없이 멋진 무대를 보여준 아이들에게 이런 사연이 숨어 있었다니……! 갓 1년을 넘긴 합창단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노래 솜씨와 무대 매너가 이들을 특별하게 만들었다면, 저마다 품고 있을 마음 아픈 사연은 이들을 더욱 사랑스럽게 만들었다.

화려한 무대장치도 없고, 더구나 클래식 공연에서는 어느새 익숙한 관례가 되어버린 세계적 오케스트라나 성악가와의 협연 같은 이벤트도 없는 공연이었다. 대문을 나서면 놀이터 대신 쓰레기장이 있고,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서라면 그 쓰레기장을 뒤져 먹을 것을 찾아내는 일이 그저 자연스런 일상의 한 부분이었던 아이들. 악보도 볼 줄 몰라 오리처럼 꽥꽥 소리만 질러대던 아이들이 노래 한 마디를 배울 때 희망 한 자락을 배우면서, 그렇게 수없이 연습을 거듭한 끝에 만들어낸 소박하지만 보는 이들의 가슴을 벅차게 만드는 뜨거운 공연이었다.

2005년 12월 6일의 부르심 : 2003년 11월 30일. 울산 감리교회에서의 오랜 사역을 뒤로하고 안식년을 시작하는 임태종 목사의 마음은 메마르다 못해 먼지조차 일지 않는 그런 땅 같았다. 강단에 서는 순간이 더없이 행복했던 16년이었는데, 하루아침에 그 마음이 바뀌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가 이런 심정일까 싶을 정도로, 강단에 서기가 괴롭고 힘들었다. 도무지 까닭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 그런 상태로는 더 이상의 사역이 불가능했다. 모든 사역을 뒤로하고 접어든 안식년이었지만, 제대로 된 '안식'보다는 작은 방황의 연속이었다. 메마를 대로 메마른 마음이 점점 더 곤궁해질 무렵, 하나님은 임태종 목사 앞에 또 하나의 선택지를 던져주셨다. 바로 굿네이버스의 선교 전문 기관으로 자리매김한 굿미션네트워크 사역이었다. 여전히 혼란스럽고 내키지 않는 일이었지만, 하나님은 여러 가지 상황을 통해 그를 계속 몰아가셨고, 많은 기도와 진지한 고민을 떠 안은 채 임태종 목사는 결국 첫발을 내디뎌보기로 마음을 정한다.

2005년 12월, 안식년 이후 짧은 방황 끝에 시작된 굿미션네트워크의 첫 사역지는 케냐 수도 나이로비 외곽의 슬럼가에 있는 고로고초 마을이었다. 마을을 둘러싼 쓰레기장 때문에 마을 이름도 스와힐리어로 '쓰레기'를 뜻하는 '고로고초'였다. 바로 그곳에 굿네이버스의 '지라니교육센터'가 있었다. '지라니'는 스와힐리어로 '좋은 이웃'이라는 뜻이다. 12월 6일 일행들과 함께 지라니 교육센터를 방문하러 가는 길에 교육센터 옆 쓰레기장을 지나는 순간 맥없이 쓰레기장에 주저앉아 있는 한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아이는 초점을 잃은 눈으로 멍하니 앉아 쓰레기를 뒤지다가 무엇이든 손에 잡히는 대로 입으로 가져갔다. 부모의 품에 안겨 사랑을 듬뿍 받아도 모자랄 나이에 쓰레기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쓰레기에 한데 섞여 앉아 있어야 하다니! 순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충격과 고통이 임태종 목사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그 충격과 아픔을 넘어 무언가 하지 않고 있으면 직무유기라는 압박감이 그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메마른 마음으로 잠시나마 방황을 이어가던 임태종 목사에게 찾아온 격한 아픔은 '열정'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하나님이 마음을 회복시켜주지 않으신다면 일할 수 없다던 그의 기도에 하나님은 그렇게 응답하고 계셨다.

'무모한' 꿈을 '가능한' 꿈으로 : 아프리카 5개국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뒤에도, 첫 방문지인 고로고초 마을에서 마주쳤던 아이의 멍한 눈망울은 임태종 목사의 마음에 묵직한 통증으로 남은 채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임태종 목사는 점점 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합창단을 만들자. 사람들 눈에 불쌍하게 '보이는' 아프리카 아이들이 '제발 도와주세요'라며 학예회 수준으로 동정심에 호소하는 그런 합창단이 아니라, 세계적인 합창단과 겨루어도 손색이 없는 실력을 갖춘 합창단으로 무럭무럭 커가게 하자. 마음속에 한번 싹 트기 시작한 꿈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강해졌다.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그런데 그때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모두들 하나같이 고개를 흔들며 허황된 생각이라고 입을 모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타난 것이다. '재미있는 음악회', '맛있는 클래식'을 표방하며 독특한 콘서트를 선보여 '음악 요리사'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아미치 솔리스트 앙상블의 김재창 단장과 울산에서 씨티종합건설을 운영하는 최찬웅 회장이 바로 그들이었다.

최찬웅 회장은 임태종 목사의 비전을 듣고 아무런 조건 없이 1억 3천만 원을 쾌척했다. 후원 약속이 이뤄지자 합창단 전체의 색깔과 행보가 달려있는 지휘자를 찾아 나설 차례였다. 그러다가 문득 아미치솔리스트앙상블의 김재창 대표가 떠올랐다. 아미치솔리스트앙상블은 이미 굿미션네트워크와 몇 번의 자선 공연을 함께한 터였다. 국제 성악 콩쿠르에서 수차례 우승했던 실력으로 보나 아미치를 이끄는 리더십으로 보나 적임자 같았다. 임태종 단장은 서둘러 김재창 대표를 만나 합창단에 대한 구상을 털어놓았다. 그는 합창단 비전에 동의하고 그것이 분명 '좋은 꿈'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선뜻 결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고 대답했다. 그야말로 무에서 유를 시작해야 하는, 맨땅에서부터 모든 걸 새로 시작해야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김재창 대표는 이상하게 계속 고민이 되었다. 일언지하에 거절하기에는 무언가 아쉬운 망설임이 남았다. 한 달 정도 시간을 달라고 한 뒤 기도와 고민을 이어나갔다. 많은 기도와 생각 끝에 그는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가장 열악하게 사는 아이들이 가장 화려한 무대에 선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반전인가. 그 반전의 무대를 멋지게 만들어보고 싶은 강한 열망이 생겼다. 아미치솔리스트앙상블 김재창 '대표'가 '지라니어린이합창단 음악감독'이자 '제1대 상임지휘자'가 되는 순간이었다.

제2부 Ensemble 노래를 부르자 꿈이 자라기 시작했다



첫 번째 충격, 첫 번째 절망 : 2006년 8월 7일 월요일 아침 8시 30분. 임태종 목사와 김재창 지휘자는 케냐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케냐의 여름은 의외로 선선했다. 두 사람은 공항까지 마중을 나온 굿네이버스 케냐 지부 직원의 차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동쪽 하늘을 벗어나 조금씩 더 높이 떠오르는 아침해가 왠지 모를 설렘을 안겨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고요한 새벽녘 나이로비 공항의 차분한 첫인상과 왠지 모르게 무슨 일이든 잘될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만들던 아침나절 특유의 설렘은 거기까지가 전부였다.

아침 10시 무렵, 일행은 지라니교육센터로 향했다. 하지만 이야기로만 전해 듣고 예상하던 것과 달리, 직접 마주한 학교의 실상은 정말 참담했다. 잠실 종합운동장보다 더 넓은 땅에 쓰레기들이 산을 이루고 독수리를 닮은 검은 새들이 무리 지어 그 위를 배회하면서 썩은 고기나 음식 쓰레기를 찾고 있었다. 간혹 먹이를 찾는 소나 돼지들도 보였고, 그런 짐승들 사이에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모두들 쓰레기를 뒤지며 무언가를 줍고 있었다. 아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쓰레기 침출수에 발을 담그고 있었고, 군데군데 쓰레기를 태우는 연기와 함께 역겨운 냄새가 진동해서 목이 따가울 정도였다. 그리고 그 곁에 자리 잡은 허름하고 더러운 낮은 지붕의 양철 건물이 '지라니교육센터'였다. 그 안에서 수십 명의 아이들이 도란도란 모여 앉아 까만 눈동자를 빛내며 무언가를 읽고 쓰며 배우고 있었다.

나이로비 시내를 벗어나 변두리 지역으로 들어서면서부터 표정이 어두워지기 시작한 김재창 지휘자는 고로고초 쓰레기장 앞에서 얼굴이 완전히 굳어버렸다. 더구나 음악이란 아름다운 곳에서 나오는 것이라 믿는 그의 평소 지론대로라면, 이런 곳에서는 아무것도 만들어낼 수 없었다. 잘못된 결정이었다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다. 어떻게든 한시라도 빨리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없이 합창단을 맡겠다고 덜컥 나선 것도 아니었지만, 실제 공기를 호흡하며 피부로 접한 '진짜 현실'은 가혹했다. 그러나 이제 겨우 문지방을 넘으려는 순간인데 '포기'라는 단어를 꺼내기에는 아직 너무 이른 때였다. 김재창 지휘자는 이 풍경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찾아 발견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잘된 일인지도 몰랐다. 첫날, 첫 만남에서 상상도 못했던 충격이 훑고 지나갔으니, 앞으로 그 어떤 충격도 이보다 더 크게 느껴지지는 않을 것 같았다. 각오를 더 단단히 다지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아픔 없이 이루어지는 변화란 없다. 김재창 지휘자의 의견에 따라 우선 연습 장소 물색에 집중하기로 했다. 피아노 구입은 그 다음으로 미루고, 당장 다음 날로 예정된 교사 오디션은 교회 시설을 빌려 진행하기로 했다. 예상치 못한 수고와 헌신을 요구하는 순간들이 분명 찾아올 것이고, 어렵고 힘든 일에 뛰어든 것 역시 새삼 분명했지만, 합창단에 대한 사명감을 잃지 말자고, 서로 비전을 공유하면서 난관을 헤쳐 나가자고 두 사람은 다시 다짐을 나누었다.

악보를 읽을 줄 모르는 음악 선생님 : 교사 선발 오디션은 상태 좋은 피아노가 있는 나이로비 한인교회 본당을 빌려 진행하기로 했다. 1차 합격자는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한 사람 세 명과 고졸에 음악 비전공자이지만 노래 실력이 탁월했던 여성 한 명, 이렇게 모두 네 명이었다. 실망도 많았지만 한편으로 안도하기도 했던 1차 오디션 이후, 조금이나마 기대를 품었던 게 잘못이었을까? 2차 오디션은 다시금 충격이었다. 케냐 제일의 국립 종합대학인 나이로비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악보를 전혀 읽지 못했다. 노래를 듣고 가르치지만 악보를 보고 하는 게 아니었다. '귀로 들은 대로' 가르치고 반주도 한다는 것이다! 순간적으로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웠다. 악보를 보고 가르칠 선생님이 없다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교사 선발에 새로운 변수가 나타난 것이다.

2차 오디션은 그러게 아무런 성과 없이 막을 내리고, 우리는 의논 끝에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현지 선교사들에게도 악보 읽는 법부터 가르칠 수 있는 사람으로 특별히 물색해달라고 부탁을 해놓고, 케냐 타 대학과 나이로비 대학 음악과를 찾아가서 교수들에게 추천을 받기로 했다. 물론 실제로 일을 진행하면서 예상치 못한 많은 문제에 부딪히리라 각오는 했었지만, '악보를 읽을 줄 모르는 음악 선생님'이라니! 모두들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멍한 표정이었다. 앞으로는 또 어떤 변수와 새로운 상황이 우리를 맞이할지 가늠할 수 없었다.

열 평짜리 양철지붕 연습실과 50년 된 피아노 : 8월 12일 토요일부터는 연습실 마련과 피아노 구입, 교사 오디션, 단원 선발 등 합창단 꾸리기의 핵심 과제들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8월 말까지 연일 분주한 날들이 이어졌다. 며칠간 고민한 끝에 최종으로 올네이션스 교회에서 교육관처럼 쓰던 장소를 빌려서 우리 연습실로 삼기로 했다. 양철로 뚜덕뚜덕 지은 건물은 열 평 남짓한 크기였는데, 출입문도 뒤쪽에 나 있고 공기가 통할 창문이 없어서 답답하긴 했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을 푸근하게 하는 데가 있었다. 중간 크기의 방은 메인 연습실로, 작은 방 중 하나는 사무실로, 나머지 하나는 파트 연습실로 각각 꾸며서 쓰면 될 것 같았다.

바로 그날부터 '막일'이 시작되었다. 사나흘을 꼬박 연습실 준비에 매달리니 어느 정도 그럴듯해졌다. 연습실 준비를 마무리 한 뒤에는 피아노를 구입하러 시내로 나섰는데, 전혀 예상을 못한 바는 아니었지만 상황은 정말 참담했다. 이름만 피아노 가게이지 거의 고물이나 다름없는 물건을 팔고 있었다. 좀 낫다 싶은 게 있으면 어찌나 비싸던지 우리나라에서 새 피아노를 살 만한 가격이었다. 그나마 쓸 만한 것으로 고르고 골라, 일본산 중고 '가와이(KAWAI)' 피아노를 우리 돈 약 200여 만 원을 주고 샀다. 비록 50년이나 된 중고였지만, 피아노까지 들여놓고 나니 연습실이 제법 음악 하는 장소 같다. 하루하루 다르게 변해가는 연습실 모습에 마을 사람들도 놀라는 표정이다. 하지만 앞으로 시작할 합창단 사역은 결과가 금방 눈에 띄지도 않고 그렇게 빨리 변하지도 않을 것이다. 성과라는 게 주관적일 수 있어서 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무엇보다도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얘들아 모여라! 선생님도 어서요! : 교사 선발이 아직 미결로 남아있긴 했지만, 연습실과 피아노를 마련하면서 합창단의 진짜 주인공인 단원들을 맞이할 준비는 어느 정도 마무리된 셈이었다. 오디션을 위해 정말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런데 부모님들과의 만남에서는 의외로 진땀을 빼곤 했다. 오랜 세월 서양의 식민지였던 과거 역사의 그늘 탓인지, 외지인, 특히 '선교'나 '봉사'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을 찾은 외국인들에 대해 보이지 않는 불신을 품고 있거나 노골적으로 불편함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호의'에 마음을 열었다가 뜻하지 않게 마음을 다치는 일들이 반복되어왔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스태프들에게도 시사한 바가 많았다. 그러나 잠깐 동안 마음을 얻는 일보다 두고두고 함께 갈 수 있는 '좋은 이웃'이라는 믿음을 쌓아나가는 게 합창단 사역의 진정한 목표였다.

2006년 8월 17일 목요일에 지라니학교 학생들 약 100여 명을 대상으로 첫 번째 오디션이 있었다. 모기 소리만 한 목소리, 합창단원이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실력들이었지만, 그렇다고 그냥 포기할 수는 없었다. 우선은 노래 실력이 아닌 목소리의 울림이 있는 아이들 중심으로 뽑아 하나씩 가르쳐나가는 쪽으로 생각을 바꾸었다. 이날 선발된 학생들은 모두 25명이었고, 다음 날은 18일 고로고초 내 다른 지역 학교 학생들 중심으로 2차 오디션을 열어 23명을 추가 선발했다. 이렇게 꾸려진 50여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1차 악보집으로 단원 선발 열흘 만인 8월 28일 월요일, 드디어 음악교실 첫 수업이 시작되었다. 같은 날 오후, 단도라 지역 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추가 오디션을 실시해 35명을 더 선발했다. 이제 문제는 선생님이었다. 상임 지휘자와 한국인 스태프들이 있긴 하지만, 아이들을 효과적으로 다루고 지도하기 위해서는 현지인 교사의 도움이 필수였는데, 6차 오디션까지 진행되도록 적임자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역시 7은 행운의 숫자였을까. 7번째 오디션에 응시한 모세(Moses O. Onmino)를 보자 모두들 '느낌'이 왔다. 이로써 83명의 단원과 한국인 상임지휘자, 그리고 현지 선생님으로 합창단의 모습이 비로소 갖춰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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