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산이 좋아 山에 사네

박원식 지음 | 창해
산이 좋아 山에 사네

박원식 지음

창해 / 2009년 5월 / 416쪽 / 18,000원





회귀 - 자연으로 돌아간다



무주 산골에 사는 농부 김광화 - 나는 자연이다

경치 좋은 산골에 살며 한 그루 나무처럼 조용히 사는 일은 얼마나 평화로운가. 아침엔 하루치의 노동을 하고 낮에는 책을 읽는다. 밤이면 두릿두릿 돋아나는 별들과 교신하면서 영속하는 가치들을 생각한다. 이런 삶, 그 무엇보다 이상적이지 않을까. 하지만 산으로 들어간 사람들 중에 상당수가 다시 도시로 돌아온다. 믿을 만한 경험자들의 통신에 따르면 열 중 일곱은 실패한다. 이게 왜 이렇게 되나. 우선 산중의 외떨어진 삶에서 유래하는 고독을 견디지 못한다. 게다가 마땅한 생산이 없으면 오늘이 궁색하고 내일이 불안하다. 하찮은 번뇌와 천박한 욕망을 도시에 벗어 두고 왔으나 내가 지금 끌어안고 있는 전공이 바로 가난이라는 과목임을 알게 되는 순간 마음은 떨리기 시작한다. 영혼은 일쑤 구슬피 우는 소리를 낸다. 인생이 영화와 다른 게 바로 이런 대목에서다. 산골살이의 시련은 장난이 아니다.

그러나, 이 남자를 보라. 그는 가난이 두렵지 않다. 별로 가진 것도, 크게 생산하는 것도 없지만 끄떡없이 잘 먹고 잘 산다. 전북 무주군 안성면의 후미진 산골짝에서 처자 셋과 더불어 살아가는 농부 김광화(52세). 그의 관심은 돈을 만들기 위한 생산이나 욕심을 채워 주는 소비에 있지 않다. 자급자족을 지향할 뿐이다. 자급자족이라니? 물질 숭배를 축으로 무한경쟁을 벌이는 이 기발한 자본주의 세상에서 그는 왜 수렵시대의 생존 방식을 도모하는가? 왜 자급자족을 생활의 모토로 정했나?

자급자족 생활은 재미가 있습니다. 소비하는 만족보다 생산하는 기쁨이 제겐 훨씬 더 큽니다. 내 손으로 직접 농사를 지어 먹는 밥이 더 맛있습니다. 자연이 주는 음식물들은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게 합니다. 자급자족은 단순히 직접 생산하고 덜 소비한다는 차원만은 아닙니다. 모든 부정적인 대상을 두지 않는 긍정의 가치관이죠. 지구 위에 도래하고 있는 식량 위기의 대안일 수도 있습니다.

김광화에겐 2천 평 정도의 논밭이 있다. 여기에다 다양한 작물들을 재배하는데 전적으로 유기농법을 구사한다. 이 산골에 들어온 지만 10년. 이젠 농사에 어지간히 이골이 났다. 그의 농법은 참말 진부하다. 지독하게 진부하기에 차라리 전위적으로 느껴진다. 그는 농기계를 거의 쓰지 않는다. 비닐을 써서 수월한 농사를 지으려는 요령을 피우지도 않는다. 심지어 가을철 벼 베기 때에도 낫으로 일일이 벼를 벤다. 수동식 탈곡기로 나락을 턴다. 이게 참 미련한 짓 같고 팍팍한 중노동이겠으나 김광화는 그게 좋다. 적성에 맞다.

기계를 쓰지 않고 굳이 손으로 모든 일을 해내는 것은 석유 문명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어서입니다. 게다가 제겐 돈 버는 재주가 아주 결여돼 있죠. 그럼 무엇을 잘해야 하는가. 돈 안 쓰는 일을 잘해야 되겠더군요. 자연에서 얻는 것들은 돈이 들어가질 않으니 가급적 자연에서 얻어야만 합니다. 농사도 최대한 돈 안 들이고 전 과정을 마칠 때 기쁨이 커집니다.

집안의 농사를 김광화 혼자 감당하는 건 아니다. 아내 장영란(50세)씨는 물론 두 아이들도 함께 생산에 나선다. 그의 얘기에 따르면 매일 두 시간 정도의 가족 노동이면 무난하다고 한다. 농법의 실험도 다양하게 시도해 왔다. 특히 벼농사의 경우 별의별 족보 있는 농법들을 다 시도해 봤다. 이젠 누구나 인정하는 유능한 농부다. 그럼 이렇게 해서 일가의 자급자족이 가능한가?

네 식구가 차질 없이 먹고 살아갑니다. 만족할 만한 수준이죠. 그런데 자급자족을 말할 때, 100퍼센트 자급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본인이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자족은 얼마든지 가능하죠. 자급은 못한다 하더라도 자족은 하며 지냅니다.

농사로 부족한 건 산에서 얻는다

김광화는 스스로 돈 버는 재주가 없다고 말하지만 어떻게 보자면 돈버는 일을 극구 자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질적 풍요를 추구하는 삶이 가진 비루한 속성을 아예 학습하지 않겠다는 투다. 그에겐 어디 먼 곳을 돌아다니고 싶은 욕구가 없다. 문밖에 나가는 일을 그리 즐거워하지 않는다. 그러니 갖고 싶은 것도, 없고 싶은 것도 별로 없다. 조용하고 태연하다. 농사로 부족한 것은 산에서 구한다. 산. 그가 보기에 산은 풍요한 먹을거리의 창고이자 얼마든지 재화를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의 보고다.

돈을 벌려고 할 경우 자연 속에 그 소재는 얼마든지 많습니다. 무한에 가까운 자원이 널려 있거든요. 예를 들자면 봄철의 고사리 채집 같은 것입니다. 우리 네 식구는 고사리를 꺾어 찬을 만들어 먹고 남은 것은 말려서 팝니다만, 작년엔 아이들이 꽤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그렇다고 산을 샅샅이 누벼 더 많은 고사리를 꺾으려 하진 않습니다. 그건 자연의 선물이니 자제하며 감사한 마음을 품어야 하기 때문이죠. 쓰고 싶은 만큼의 돈, 꼭 필요한 만큼만 취하면 그만 아니겠어요?

그렇다면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 하고 묻자 “몸과 마음, 영성과 깨달음 같은 가치에 생활의 중심을 두고 있다”는 답이 돌아온다. 한마디로 그는 수행자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이쯤에서 조용하지만 어딘가 깡이 박힌 듯한 이 남자의 과거가 궁금해진다. 산에 들어오기 전에 그는 어디서 무엇을 했나. 경북 상주의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란 김광화는 대학을 서울로 가면서부터 이후 20년쯤 도시인으로 살았다. 대학 재학시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다가 강제 징집을 당하기도 했던 그는 1996년 어렵사리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마치 ‘이민 가는 심정으로’ 지리산으로 들어왔다. 지리산 자락 산청에서 ‘간디공동체’에 참여해 ‘간디학교’를 설립했고, 1998년에 이곳 무주의 산골로 이주했다. 아내 장영란 역시 서울 토박이였으나 김광화와 결혼하면서 노동 운동을 같이했고 ‘간디공동체’를 함께 꾸려 왔다.

건강이 질병의 반대 개념은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몸이 몸다워지면, 몸으로 마음과 영성이 드러나면, 바로 그게 건강이라 할 수 있죠. 도시 생활에서는 저의 몸과 마음이 많이 망가졌었습니다. 무절제한 생활 탓이죠. 거의 비관적일 정도로 피폐했는데, 비로소 몸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죠. 산에 살면서는 감기 한 번 안 걸리고 지냅니다.

김광화 일가가 살아가는 거처는 조촐하고 소박하다. 꾸밈과 치레가 없다. 마당에 수북이 자란 풀들을 그대로 방치한 데에서 풀 한 포기조차 자연의 형제로 여기는 특유의 이데아를 엿볼 수 있다. 땡볕이 뜨거워 살갗이 빵처럼 구워지는 성하盛夏. 창문 열어젖힌 방에 들어앉아 인터뷰를 하는 중에 등골로 땀이 줄줄 흐르지만 선풍기 같은 기계를 내오지 않으니 기계문명에 대한 불신이나 저항의 강도를 짐작할 만하다. 삶에는 의외로 많은 묘수가 있다. 저마다 제가 좋아 찾아들 수 있는 골목길이 있다. 김광화는 ‘자급자족’이라는 어쩌면 위험하고도 짜릿한 생존의 초강수 전략을 구사한다는 점에서 아웃사이더다. 즐겁고도 기묘한 국외자.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 우리네 개인의 삶이 아무리 내밀하거나 독자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거기엔 우주가 들어있다. 김광화는 자신의 우주를 구현하는 일련의 뚜렷한 관점과 지향점을 가지고 있는데 이로써 그는 아마도 무진장 야무진 남자다. 비록 알아주는 사람이 많지 않을지라도 아랑곳없다. 그는 발언하고 발설한다. 산중 삶의 야생적 지평을 세상에다 대고 나름의 홍보를 한다. 몇 해 전에 아내와 공동 저자로 참여해 발간한 책 『아이들은 자연이다』는 그가 세상에 가담하고 참견하는 한 가지 방식의 성과물.

인간은 자연의 일부

아이들은 자연이라는 생각. 여기에는 자연주의자로서의 꿈과 사상, 희망과 비전이 들어 있다. 아이들은 자연이므로 그는 아이들을 자연으로 길렀다. 길렀다지만 사실은 “그냥 냅뒀다”라는 표현이 적실할 게다. 마치 숲속의 쥐똥나무 한 그루가 스스로 햇볕과 물을 취해 제 몸을 양육하듯이 아이 둘이 스스로 커 나가도록 협찬했다. 그의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다 일찌감치 그만두거나 아예 학교 문턱도 밟지 않았다. 왜? 심플한 이유가 있다. 학교에 가기 싫어했기 때문이다. 학교 가기 싫어한다고 학교를 때려치운다? 이 사람, 제 자식을 정말 사랑하는 아비 맞아? 남들은 땡감 씹은 듯 떫은 기분을 느끼며 이렇게 의아해할 수 있을 게다. 그러나 아이들은 쑥쑥 봄날의 죽순처럼 시원하게 잘 자라고 있다는 게 김광화의 논평이다. 이른바 ‘홈스쿨링’으로 부모들이 교사 노릇을 하는 것이지만, 진정 위대한 교사는 자연이라는 것.

모든 생명은 잘 살려고 하는 본성이 있습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죠. 배움은 아이들에게 본성입니다. 호기심과 배우려는 열정이 많습니다. 다행히 산골에는 자연이라는 학교가 있어요. 아이들은 이 자연에서 무한히 많은 것을 배우며 튼실하게 자랍니다. 사회성을 우려하는 분들이 있지만 그 사회성이라는 게 자기 중심으로부터 뻗어 나가는 관계의 확장을 의미한다면, 자연 속에서 자라는 우리 아이들은 이미 충분한 힘을 비축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이제 자신의 몸을 스스로 돌보고, 스스로 공부하며, 스스로 필요한 걸 만들고, 가족과 이웃을 돌볼 줄 아는 전인적 인격체로 자라나고 있습니다.

(중략)



산은 그 자체로 평화롭습니다. 인간들이 해를 가하지 않는 한 완전무결합니다. 우리는 무슨 자격으로 산을 망치는 걸까요. 산은 사람에게 삶이 곧 수행임을 깨우쳐 줍니다. 수행이라는 말이 거창하다면 치유라고나 할까? 뭔가를 많이 생산하고 많이 소비하는 패턴에서 벗어나 내면의 가능성을 확장시키고, 그렇게 해서 마음을 치유해 나갈 수 있는 곳이 산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산수 간의 절경이란 대체로 인간의 발길이 끊어지는 경계에서 펼쳐지는 풍치이다. 사람의 일도 이와 다르지 않아서 그 누구도 즐겨가지 않는 길을 용감하게 걸어가는 이의 삶에서는 어떤 절정의 기미가 엿보인다. 일견 딱딱하고 유머가 결여된 사람으로 보이는 김광화의 산중 삶이 흥미로운 건 이 때문이다. 마당가 자두나무에 숭얼숭얼 매달린 자두가 탐스럽다.





자유 - 자연에서 노닌다



평창 흥정계곡겡 사는 이대우 - 누가 뭐래도 내 맘대로 몰두한다



10년 전엔 밤이 무서워 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 벽촌이었다. 유령들의 집회소처럼 어둠만이 삼엄했을 게다. 물소리는 벼락같아서 귓방망이 얻어맞은 것처럼 얼얼했다. 오지란 그런 곳이다. 무인지경에 적막강산. 누가 통째 잡아먹어도 모를 험지였다.

그러나 변했다. 뻑적지근한 농원을 중심으로 인근 일대에 펜션이라는 게 우후죽순으로 들어서면서 풍경이 돌변했다.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흥정계곡. 서울내기로 긴긴 세월 서울서 살다가 자연으로 귀의한 남자 이대우(67세)의 집이 이곳에 있다. 그의 집으로 가는 길이 어지럽다. 태기산 혹은 흥복산에서 흘러내린 연봉들이 사방에서 너울너울 싱싱한 춤을 추지만 원색을 칠한 식당이니 펜션이니 영업집들의 패션이 요란하다. 탕탕 흘러 마땅할 계류도 기가 막히거나 숨통이 답답하다는 듯 나른하게 흐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토박이들이 괭이를 을러메고 산밭으로 가던 두렁길들. 그것들도 이젠 ‘공구리’를 친 찻길로 변했다. 물방개처럼 부산하게 나대는 차량들로 면소 사거리 뺨치게 소란하다. 이래서야 산골 생활의 참한 맛을 어이 누리나? 그러나 이대우는 무슨 상관이냐는 투다.

처음엔 여기가 깡촌 중에 깡촌이었어요. 반딧불이도 살았고요, 열목어도 많았어요. 지금은 다 사라졌죠. 이 시대에 어딘들 오지가 남아 있기나 하겠습니까? 저기 허브농원이 번창하면서 겨울철에도 사람들이 줄기차게 찾아오는데, 모든 게 10년 전과는 상전벽해처럼 달라졌어요. 그래도 재미있게 삽니다. 친구들은 어디 유배 간 것 정도로 여기지만, 그래도 조금은 남들보다 재미있게 살고 있죠.

유배라? 그럴 만도 했겠다. 멀쩡하게 서울살이를 잘하던 그가 갑자기 산으로 들어갔으니. 젊을 적의 그는 언론사 기자였다. 몇몇 괜찮은 회사에 근무하기도 했다. 이름난 컴퓨터 회사에서 중역으로 9년간 일하기도 했는데, 어느 날 그냥 “때려치웠다.” 그리고 여기 흥정계곡으로 들어와 버렸다. 왜 그랬나.

월급쟁이가 적성에 안 맞았습니다. 툭하면 때려치웠거든요. 시골에 가서 살자, 하는 건 오래된 꿈이었어요. 뭐가 좋아서 그랬냐? 서울에서 할 게 없더라고요. 개나 끌고 다니며 산골에서 그냥 누가 뭐래도 내 멋대로 살고 싶었습니다. 보시다시피 이 골짜기가 요란해지면서 산골 생활이라는 게 좀 우스워졌지만 그래도 많이 만족합니다. 서울에서는 뭐든 멋대로 하기가 힘들었어요. 제재가 많거든요. 산골에선 구속이 없습니다. 편합니다.

내 멋대로 살고 싶었다. 이게 요점이다. 도시의 모든 인연을 싹둑 끊고 산으로 들어가 혼자가 되는 일. 누가 보더라도 이건 모험이거나 도전이다. 유배객으로 보는 시선은 그래도 훈훈하다. 숫제 낙오자나 도망자로 볼 가망성이 많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대우는 도시를 일종의 감옥으로 본 것 같다. 호젓한 삶, 간섭도 속박도 받지 않는 자유로운 삶. 이걸 도시에서 구한다는 건 맨땅에 헤딩하는 것과 같은 도로(徒勞)에 불과하다는 관점이었으리라. 그런 그에게 서울은 시급히 탈피해야 할 수렁이었다. 관계와 욕망의 지배를 받지 않는 해방구는 어디인가. 궁리가 많았을 게다. 산림은거를 통해 자유를 구하는 일은 그에게 상당히 화급한 문제였던 것 같다. 12년 전, 쉰다섯이라는 꽤나 늦은 나이에 서둘러 산에 든 것을 보면 그걸 알 수가 있다.산중 생활은 늦어도 40대에 시작해야 한다고 봅니다. 체력이나 순발력을 요구하는 일들이 많기 때문이죠. 무엇보다 부부가 함께 합의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제아무리 남편이 산에 살고 싶다 하더라도 부인이 반대하면 소용없지 않겠어요? 제 아내는 다행스럽게도 흔쾌히 동의하고 나섰습니다. 덕분에 별 무리 없이 산으로 들어올 수 있었죠.

미친 듯한 몰두

도시를 청산하고 산골로 이주함은 어쩌면 다시 태어나는 새 삶을 의미한다. 결심도 많고 계산도 섬세하고 희망도 큰 법이다. 자연위사라, 흔히들 자연을 선생님으로 믿고 섬기며 겸손하게 살 작정을 야무지게 하게 마련이다. 정색을 하고 들어앉아 도를 닦는 나날을 지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대우에게 뭔가 아주 특별하거나 근사한 포부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내 멋대로 살고 싶다! 그저 그뿐이었다. 하지만 만만치 않은 게 인생이라는 게임. 내 멋대로 산다는 게 쉬운가? 그럴싸한 물리적 공간이 주어졌다고 내 멋대로 사는 내공마저 덩달아 부여되는 건 아니다. 이대우 씨도 처음엔 그저 독서로 소일한 것 같다. 모던한 목조 주택 통유리창으로 들이치는 아침 햇살을 어깨에 받으며 향기로운 커피를 마시고, 낮에는 바하의 음악을 듣고, 밤이 오면 총총히 빛나는 별들과 교신하며 삶의 무한한 광휘 같은 걸 떠올렸으리라. 평생의 동맹자인 아내 서경옥(66세) 씨는 곁에서 자수를 놓거나 남편의 얘기를 조용히 귀 기울였을 게다. 이 정도만도 이게 어딘가. 이른바 ‘전원 생활’의 우아한 격조가 넘친다.

그렇지만 이대우의 욕망 구조는 살짝 다르다. 전원 생활이라니, 그건 사치스러운 표현이라는 생각이다. 산골 생활은 아무리 폼을 잡아 봐야 여하튼 뭔가 야생의 에너지가 요구되는 탓이다. 우리네 삶의 뿌리가 시골에 있은 즉, 시골살이를 여분의 낭만쯤으로 오해하지 말자는 사유도 읽힌다. 삶 자체가 여흥이나 판타지 같은 것일 수 없다는 인식도 엿보인다. 하지만 그는 궁색한 경제에 직면해 있지는 않다는 점에서 행운아이거나 실력자다. 원래 그에겐 서울에 평수 너른 아파트가 있었다. 이걸 처분해 좀 작은 아파트를 장만했고 나머지 자금을 산골살이에 투입했다.

그저 그럭저럭 큰 불편 없이 생활합니다. 산골에서 뭔가 생계를 꾸려 나갈 일을 찾는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한마디로 건달처럼 생활하는 수밖에 없어요. 덜 쓰면서 간소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죠. 그리고 실상 크게 돈 들게 없는 게 산골이에요. 도시보다 대략 3분이 1 정도의 생활비가 들어갈 뿐이죠. 우리 부부는 한 달에 칠팔십 만 원 정도를 씁니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