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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누주드, 열살 이혼녀

누주드 알리, 델핀 마누이 지음 | 바다출판사
나 누주드, 열살 이혼녀

누주드 알리, 델핀 마누이 지음

바다출판사 / 2009년 6월 / 204쪽 / 9,800원



법정에서 - 2008년 4월 2일




"판사님하고 얘기를 하고 싶어요!" 휘둥그래진 검은 두 눈이 내게 와서 박혔습니다. 내 앞에 있는 여자는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습니다. "뭐라고?" "판사님을 만나고 싶다고요!" 여인은 무슨 말인지 짐짓 이해를 못하는 모양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녀도 그저 나를 너무도 쉽게 무시해버리는 걸까요? "어떤 판사님을 찾고 있는데?" "아무 판사님이라도 괜찮아요. 판사님이면 돼요!" "하지만 이 법원에는 판사님들이 아주 많이 계시는데…." "판사님 계신 곳으로 데려다 주세요. 그냥 소개만 시켜 주시면 돼요!" 내가 너무나 단호한 데 놀라서 그녀의 말문이 막혔습니다. 내 작은 절규에 찔려서 혀라도 굳었다는 듯 말입니다. 정오가 지나갔습니다. 이 미로 같은 법원 안을 헤메고 다닌 지 세 시간도 더 지났습니다. 나는 판사님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나를 따라와!" 그녀는 이렇게 말하더니, 나를 바로 뒤에 따라오게 했습니다.

방문에는 펠트가 덧대어져 있었고, 바닥은 갈색 카펫으로 장식되어 있었으며,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저 안쪽으로, 사무실 저 뒤쪽으로, 날렵한 얼굴에 콧수염을 한 사람이 온갖 종류의 문제에 대해, 사람들이 총알처럼 쏟아 내는 질문 세례에 대답해 주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습니다. 그 사람이 판사였습니다! 마침내! 안전하다는 기분이 비로소 들었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리에 앉았습니다. 내 차례가 오기를 끈기 있게 기다렸습니다. 만약 신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구해 주러 오실 거야,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내가 널 위해 어떻게 해주면 좋을까?" 반쯤 잠에 빠져들어 비몽사몽하고 있을 때 들린 남자의 목소리였습니다. 그 목소리는 기이할 만큼 다정했습니다. 입을 다물고 있는 나를 보고 판사가 질문을 고쳐 말했습니다. "바라는 게 무엇이니?" 내 대답은 한 치의 주저도 없이, 거침없이 튀어 나왔습니다. "이혼이요!"

내 고향 카르지



카르지(Khardji)는 그 이름에 딱 맞는 마을입니다. 아랍어로 '바깥'이라는 의미거든요. 다르게 말하면, '세상의 다른 끝'이라는 말입니다. 대부분의 지리학자들도 지도에 보일락 말락 하게 나와 있는 그곳에는 애써 관심을 기울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카르지는 수도인 사나의 북서쪽 위, 예멘 북서부에서는 꽤 잘 알려진 도시인 하자(Hajja)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잊혀진 작은 마을에서 수도 사나까지는 신작로로 네 시간을 가고, 또 그 시간만큼 모래와 자갈길을 가야 합니다.

카르지, 내가 태어난 이 마을에서 여자는 선택하는 법을 배우지 않습니다. 최종 결정을 내리는 것은 남자들입니다. 우리 엄마인 쇼야(Shoya)는 열 여섯 살에 우리 아버지인 알리 무함마드 알아델(Ali Muhammad al Ahdel)과 결혼했습니다. 싫은데도 하는 결혼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4년이 지나서 아버지는 두 번째 아내를 받아들이기로 택함으로써 가족을 더 늘리기로 결정했습니다. 우리 엄마는 남편의 뜻에 고분고분하게 복종했습니다. 시골에서는 아주 많은 아이들이 호적에 이름을 올리지도 않고 살아갑니다. 내 이름이나 내 성이나, 공식적인 기록에는 내 존재가 어디에도 없습니다. 내가 태어나던 해로 말할 것 같으면, 글쎄요…. 짐작해 보면, 지금 열 살쯤 됐을 거라고 엄마는 말했습니다. 하지만 여덟 살이나 아홉 살일 가능성도 적지 않습니다. 알아야겠다는 내 고집과 마주하여, 아이들이 태어난 순서를 재조합하려고 애쓰고, 사시사철을 가늠하며, 어른들이 돌아가신 때와 몇몇 사촌들이 결혼한 때, 이사하던 때를 부단히 셈해 보면 그런 숫자가 때로 나오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정말이지 풀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아버지는 80마리의 양과 네 마리의 소를 쳤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와 카르지의 다른 마을 사람들 사이에 폭력이 번졌고 우리는 카르지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예멘의 수도 사나에 도착해서 알카 구역의 한 허름한 집 1층으로 이사해 들어갔습니다. 악취가 풍기는 빈민굴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의기소침해졌습니다. 말수가 줄어들었고, 식욕도 잃었습니다. 학교를 다닌 적도 없고 일자무식인 무지렁이 농부가 그렇지 않아도 산더미 같은 실업자들의 틈바구니에 섞여 붕괴되고 있는 이 도시에서 자기 식구를 먹여 살릴 기대를 어찌 할 수 있었겠습니까? 아버지 보다 앞서 기회를 찾아 이곳으로 온 마을 사람들도 힘겨운 벽에 부딪쳐 있던 터였습니다. 어떤 아저씨들은 돈 몇 푼을 구걸해 오라고 아내와 아이들을 거리로 내보내기도 했습니다. 벽을 깨야 할 필요성에 내몰린 아버지는 마침내 지역 사무소로 가서 청소부 일에 지원했고, 그것으로 집세는 가까스로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2008년 2월의 어느 오후에 집에 들어갔을 때, 아버지가 좋은 소식이 있다고 알렸습니다. "누주드, 너 이제 곧 결혼한다." 아버지가 내게 말했습니다.

판사를 만나다



아브도(Abdo) 판사는 놀라움을 차마 숨지기 못한 채 물었습니다. "그래, 왜 이혼을 하고 싶지?" 놀라움을 감출 방법을 찾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가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면서 물었습니다. 내가 판사의 두 눈에 똑바로 시선을 고정했습니다. "왜냐하면 남편이 날 때리기 때문이에요!" 마치 얼굴에 제대로 한 방 먹은 듯한 얼굴이었습니다. 그는 내가 무엇인가 심각한 문제를 가져왔고, 거짓말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그는 애써 돌리지 않고 중요한 한 가지 질문을 곧바로 했습니다. "아직 처녀성은 간직하고 있는 거니?" 나는 침을 꿀꺽 삼켰습니다. 그런 걸 입 밖으로 내어 말하기는 창피했습니다. 그런 말은 하기가 어색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여자들은 알지 못하는 남자들과는 거리를 두어야 했습니다. 게다가 이 판사님은 어쨌거나 내가 난생 처음 보는 사람인 것입니다. 하지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사실대로 말해야 합니다. "아니요…. 피가 났어요…."

판사는 쇼크를 받고 말았습니다. "내가 너를 도와주마!" 사실을 말하면, 마침내 누군가에게 털어놓았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깨에서 짐이 내려가는 기분이었습니다. 나는 어쩔 줄 모르겠다는 모습으로 수화기를 집어드는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잠시 뒤 우리가 있는 방에 들어온 다른 판사가 내 어쩔 줄 모르는 흥분에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아가야, 너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까다로운 사건이라는 거다. 그러니까 네가 이기리라고는 불행하게도 보장은 할 수 없다는 거야." 그는 무함마드 가지(Muhammad Ghazi)라고 부르는 수석 판사였습니다. 그는 민망해하는 것 같았습니다. 법관 생활을 하는 동안 나와 비슷한 케이스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두 판사 모두, 예멘에서는 여자들이 법적으로 결혼 가능한 나이인 열세 살 보다 전에, 너무나 어린 나이에 결혼하는 일이 잦다고 설명했습니다. 오래된 전통이라고 아브도 판사가 말을 보충했습니다. 이 나라에서 그렇게 이루어지는 결혼 가운데, 이혼을 했다고 알려진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어떤 어린 소녀도, 지금까지는 법원까지 발걸음을 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족의 명예가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내 상황은 예외적이고, 복잡했습니다. "변호사를 찾아봐야 할거다." 아브도 판사가 난감한 듯이 설명했습니다.

마음이 복잡해질 만한 근심이 또 생겼습니다. 시계가 2시를, 법원이 문 닫는 시간을 곧 가리킬 것입니다. 오늘은 수요일, 이슬람 주말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법원은 토요일 전까지는 다시 문을 열지 않을 것입니다. 판사들도 내 얘기를 다 듣고 난 후에 내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걱정하는 눈치였습니다. 세 번째 판사인 압델 와헤드(Abdel Wahed)가 마침내 자원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의 가족이 나를 맞아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잠시 동안이나마. 얼굴에 걸친 쇠테 안경 때문에 그는 아주 진지한 분위기를 풍겼습니다. 그의 집으로 가는 길에 나는 그에게는 감히 말을 해볼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의 자동차는 커다랗고 편안했습니다. 침묵을 깬 것은 압델 와해드 판사였습니다. "참으로 용기 있는 소녀로구나! 브라보! 걱정하지 마라. 이혼을 요구하는 건 네 권리야. 전에도 너와 같은 걱정거리를 가지고 있던 다른 아이들, 하지만 그 아이들은 불행히도 감히 말할 생각을 하지 못했단다…. 너를 보호해 주기 위해서 우리가 힘닿는 데까지 무슨 일이든 할거다. 모든 노력을 기울일 거야. 그리고 네 남편에게 돌아가는 일이 일어나도록 그냥 내버려두지 않을 거다. 절대로! 약속한다!" 내 입술이 초승달 모양으로 벌어졌습니다. 내 얼굴에 미소가 번진 것이 얼마 만이었던가요. "너는 아직 깨닫고 있지 못할 수도 있다만, 넌 아주 특별한 소녀란다!" 그가 한술 더 떠서 말했습니다. 나는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악몽의 결혼 생활 - 2008년 2월



집안 사정은 해결되지 못할 만큼 악화되고 있었습니다. 지역 사무소에서 일을 잃은 이래로, 아버지는 한참이 지나도 일을 전혀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집세는 늘 밀렸고, 집주인은 주기적으로 찾아와 우리를 내쫓겠다고 행패를 부렸습니다. 돈이 없어, 밥을 굶는 지경에 내몰리자, 오빠들은 시시한 떠돌이 장사꾼을 따라다니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침대에서 아주 늦게까지 뭉그적거리는 날이 아니면, 다른 실업자들과 마찬가지로 동네에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서, 낮동안 적으나마 벌이를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바라며 쭈그리고 앉아 있었습니다. 잡역부, 벽돌공, 그런 일을 했을 때, 남자가 받는 돈이 1,000리알(한화로 환산하면 6,600원)쯤 되었습니다.

그즈음 서른 살쯤 되는 남자가 아버지에게 다가왔습니다. "우리 두 가족이 한 가족이 되면 어떨까 하고 왔습니다" 남자가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파에즈 알리 타메르(Faez Ali Thamer)라고 했고, 차를 타고 물건을 배달하는 일을 한다고 했습니다. 그도 원래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카르지에 살았고, 새로운 아내를 찾고 있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수락을 했습니다. 언니들처럼 순서에 따라서, 결혼을 해야 할 사람은 자연스럽게 내가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왔을 때, 결정은 이미 내려진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반대를 하지 못했습니다.

결혼 준비는 너무도 빠르게 이루어졌습니다. 나는 나의 불행을 빠르게 이해했습니다. 가족의 결정으로, 결혼식을 치르기 한 달 전에 학교 가는 것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지방 관습에 따라 축제는 여자들 사이의 작은 몫으로 우리 부모님의 자그마한 집에서 열렸습니다. 잔치는 점심 무렵에 시작되어, 대충 서둘러 치러졌습니다. 하얀 웨딩드레스는 없었습니다. 결혼 전날에 닫힌 문 안쪽에서 결혼 계약서에 서명을 하는 것도 남자들끼리의 일이었습니다. 그 모든 일이 나 없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마침내 12시가 지나, 우리 아버지와 삼촌, 그리고 아버지와 남동생이 데려온 내 미래의 남편을 비롯한 남자들을 만났을 때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결합은 부족의 잘 세워진 규칙에 따라 성사되었다고 말입니다. 읽고 쓸 줄 아는 유일한 사람인 외삼촌이 공증 증서를 떼 가지고 왔습니다. 나를 데려가기 위한 지참금(예멘에서 지참금은 사회적, 그리고 경제적으로 중요한 문제이다. 액수는 두 가족 사이의 남자들이 마치 흥정을 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결혼 전에 미리 협상한다)은 15만 리알(한화로 약 100여 만원)까지 올리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고 했습니다. "너무 걱정하지마." 밤이 오는 무렵에 아버지가 엄마에게 작은 소리로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제일 중요한 단서로 결혼한 첫 해에는 누주드를 건드리지 않기로 약속을 받아 놨으니까." 소름이 온몸을 휘감았습니다.

다음날 문 밖으로 나서자 키가 작은 한 남자가 나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사륜구동 자동차 뒤에 서 있었습니다. 그는 우리 아버지처럼 기다랗고 하얀 의복을 입고 있었고, 콧수염을 기르고 있었습니다. 아무렇게나 바짝 처냈고 약간 곱슬인 머리카락, 갈색 눈과 지저분하게 면도한 얼굴, 기름때가 묻어 거뭇거뭇한 손, 그는 아름답지가 않았습니다. 그 생면부지의 사람을 따라 나는 예멘의 수도 사나에서 다시 카르지로 가게 되었습니다. 엔진이 돌아가기 시작하고, 기사가 액셀을 밟기 시작하자, 나는 터져나오는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고향 계곡으로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갈수록, 내 목구멍 저 빈곳에서는 불안의 덩어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피곤했습니다. 가슴이 아팠습니다. 배가 고프고 목이 말랐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무서웠습니다.

어떤 집 문 앞 계단에서 한 여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나를 안아 주지 않았습니다. 가벼운 키스도, 쓰다듬어 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녀는 그의 엄마였습니다. 새로운 시어머니. 그녀는 늙고 흉했습니다. 나는 예의도 차릴 겨를도 없이, 그의 자매들이 준비해 놓은 밥과 고기를 허겁지겁 먹었습니다. 배가 고파서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그의 집에 도착했을 때, 너무나 놀랍게도, 내 어린 나이에 놀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후에 안 일인데, 시골 지방에서는 어린 소녀들과 결혼하는 것이 유행이던 모양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나는 그다지 딱히 특별할 것도 없었습니다. "내일부터는 저 어린 것에게 일하는 법을 좀 가르쳐야겠다. 이제 아이 같은 어리광은 오늘로 끝이야. 여자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사는 게 무엇인지 보여 주지!" 시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식구들이 내 방을 보여주었습니다. 해질 무렵이었고, 몹시 안도가 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나는 이제 정말로 견딜 수 없다고 느껴지기 시작한 갈색의 긴 옷, 전날부터 입고 있었던 아바야(Abaya, 아라비아반도 이슬람 국가에서 여성들이 입는 검은 망토 모양의 옷. 이란에서는 차도르Chador라고 부른다)를 벗어던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내 뒤로 문이 닫히고 나자, 나는 커다란 한숨을 밀어냈고, 사나에서 가지고 온 빨간색 면바지로 조심스럽게 갈아입었습니다. 나는 정말로 누가 깨우고 싶지 않았으면 싶었습니다. 그런데 밤이 되자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내 방문이 열렸습니다. 바람이 무척 세게 부나 보다 하고 깜짝 놀라서 일어났습니다. 시간이 걸려 가까스로 눈을 뜨는데, 축축하고 털 많은 몸이 내게로 기대 오는 게 느껴졌습니다. 몸이 덜덜 떨렸습니다. 그였습니다. 말 한마디도 없이 그는 나를 더듬기 시작했습니다. "제발 부탁드려요. 저를 그냥 내버려 둬 주세요!" "넌 내 아내야! 그것도 오늘부터, 그걸 결정하는 건 나야. 우리는 같은 침대에서 잠들어야 해." 나는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서 똑바로 일어서서는 도망칠 준비를 했습니다. 어디로 말입니까? 그게 문제였습니다.

그는 하얀 의복을 벗어던졌습니다. 나는 몸을 보호하기 위해 몸을 말아 굴렸습니다. 하지만 그가 내 옷을 잡아당기기 시작했습니다. 옷을 벗으라는 요구였습니다. 그러더니 내 몸에 손을 거칠게 뻗어, 내 입술을 그의 입술에 단단히 갖다 붙였습니다. 그 느낌은 그렇게 나쁠 수가 없었습니다. 담배와 양파가 뒤섞인 맛. "가 주세요! 아버지에게 말하겠어요!" 그에게서 떨어지려고 다시 한 번 발버둥치며 내가 한탄의 소리로 말했습니다. "네 아버지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뭐든지 다 말해도 돼. 네 아버지가 결혼 계약서에 서명을 한 사람이니까. 너를 내 아내로 주겠다고 해준 건 네 아버지야." "이럴 권리가 없어요!" "누주드, 너는 내 아내야!" "사람 살려요! 사람 살려요!" 그랬더니 그가 비웃음을 날렸습니다. "다시 한 번 말하겠다. 넌 내 아내야. 이제부터 너는 내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해야 할 의무가 있어! 알아들어?"

회오리가 몰아치는 것처럼 갑자기, 대혼란 속으로 내동댕이쳐졌습니다. 내 위로 번개가 작렬했고, 나는 더 이상 저항해 볼 힘이 없어졌습니다. 번개가 내 몸을 한 바퀴 훑고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또 한번, 그러고도 여전히 또 한 번, 하늘이 내 머리 위로 무너져 내렸습니다. 전에는 단 한 번도 느껴 보지 않았던 통증. 목이 다 쉬어 버렸습니다. 아무도 내 호소에 도움을 주러 오지 않았습니다. 아팠습니다. 너무나 아팠습니다. 그리고 나는 고통과 슬픔에 마주해 완전히 혼자였습니다. "아악!" 마지막 한 숨 속에 비명을 질렀습니다. 의식을 잃었던 건 그 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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