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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바람에서 길을 찾다

한성호 지음 | 멘토프레스
몽골바람에서 길을 찾다

한성호 지음

멘토프레스 / 2009년 5월 / 255쪽 / 14,000원



1부 '푸르공'을 타고 몽골바람을 가르다 - 흡스골 가는 길



공중에 뜬 신의 호수, '흡스골'을 향하여


몽골이란 나라의 최대 도시인 울란바타르에 살고 있는 나는 새벽의 어둠에 잠긴 아파트에서 연기처럼 흘러나와 몽골의 광활한 벌판을 향해,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풍경들을 찾아 길을 떠난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 해발 1,800미터의 높은 대지에 스며 있다는 광활한 몽골인들의 바다를 만나러 간다. 사실은 호수이나 몽골인들에겐 신의 바다인 흡스골까지는 1,004킬로미터를 가야 한다.

울란바타르에서 흡스골로 가는 길은 초원지대를 지나 울퉁불퉁한 현무암들로 뒤덮인 화산지대와 항가이 산을 넘어서 가는 대장정의 길인데, 그 길은 문명의 번잡한 욕심들과 분주한 일상에서 벗어나 야생의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오래 길을 달리면서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푸르공은 가는 길 내내 덜컹거리며 숨을 헐떡였는데, 러시아제 승합차인 이 오래된 자동차는, 오래된 수명만큼이나 강하고 끈질긴 지구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몽골의 벌판에서 이 푸르공만큼 궁합이 잘 맞는 차도 드물다. 나는 처음 이 차의 이름을 들었을 때 몽골의 아름다운 공허와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푸른 공허, 푸르공. 몽골의 광활한 초원으로 들어서면 문명의 상징인 차들마저도 초원의 질서를 따라야 한다. 모두가 울퉁불퉁 흔들리며 먼지바람을 뚫고 방향을 종잡을 수 없는 길을 묵묵히 달려야 한다.

'푸른 공허' 푸르공을 타고 야생의 자연에 들어서다

울란바타르에서 450여 킬로를 달려 타미르 강이 흐르는 쳉헤르 솜에 도착하였는데, 울란바타르를 벗어나 중앙몽골로 내려오는 길에선 나무를 보기가 힘들었다. 만약 이 허허벌판 몽골의 스텝 지대에 나무가 많았다면 아마도 유목민들은 유목으로 살아가지 않았을 터이다. 나무들이 많이 자란다는 건 일조량과 강수량이 풍부하다는 뜻이고 빛과 물이 풍부한 지역에서 어렵게 유목을 하며 살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대신에 몽골에 오래 머물러 끊임없이 파도처럼 밀려오고 밀려가는 건 대륙의 바람이다. 참고로 몽골 대륙은 건조하고 습도가 낮으며 계절의 한서차가 큰 전형적인 대륙성 기후 지대에 속한다. 멀고 먼 해양에서 불어오는 바람들은 대개 광활한 대륙을 건너오는 동안 다 말라비틀어져 버린다. 그래서 몽골로 날아오는 바람들은 대개 차고 건조하고, 물기 없는 바람이 모래를 들고 일어서면 그건 곧바로 황사가 되고, 이번엔 그 황사를 실은 바람이 또 까마득한 대륙을 넘어 한반도까지 밀려온다.

항가이 산맥에서 흘러나오는 타미르 강은 차가운 소리를 내며 흐르고 있는데, 푸석푸석한 물줄기로 간신히 흐르는 몽골의 여느 강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울창하게 자란 수목들이 타미르 강의 깊은 물줄기를 따라 남서쪽으로 펼쳐져 있고 두루미들이 차가운 강물에 발목을 담그고 어두워지는 수심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한편 쳉헤르 솜은 항가이 산맥에서 흘러나온 두 개의 강줄기가 만나는 두물머리에 위치한 작은 마을인데, 강 주변엔 겨울을 나기 위해 모여든 게르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먼 길을 달려온 운전기사와 나는 이곳에서 하룻밤을 나고 내일 아침 길을 떠나기로 하고, 밤이면 마을로 내려오는 늑대들을 우려해 근처에 있는 게르(유목민들의 이동 가옥)에 찾아가 허락을 받은 뒤 그 옆에 텐트를 쳤다. 게르의 젊은 안주인은 유목민답게 이방인의 방문에도 전혀 당황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가도가도 끝없는 광야일 뿐 인적이 드문 몽골에서는 늘 길을 떠나는 일이 고되고 힘들다는 걸 알기 때문에 언제든지 손님이 찾아오면 극진히 대접하고 그들의 길에 무사와 안녕을 빌어준다. 그리고 그들 또한 길을 떠날 때 다른 게르로부터 따뜻한 대접을 받으며 낯선 길의 위안을 얻는다. 게르로 들어간 안주인은 따뜻한 수태차를 끓여와 손수 건네주었다. 가을 밤바람이 차서 움츠러든 몸에 흘러드는 수태차는 뜨겁고 혼곤했다. 나는 잠들기 위해 침낭 속에 몸을 파묻었다. 바닥은 얼음장 같았다.

내 어린 시절 추억의 연탄길을 더듬다 - 푸르공은 지금 '죽어버린 화산' 호르고를 오르는 중중앙몽골을 지나 북쪽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항가이 산맥이 버티고 있다. 항가이 산맥의 평균 해발은 보통 3,000미터가 넘고 평탄한 고원 분지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산맥이 중앙몽골로 흘러가는 기슭에는, 다시 말하자면 항가이 산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몇천 년 전 화산활동으로 생겨난 기괴한 현무암들이 널려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현무암 지대는 체체를렉이란 도시에서 자르갈린트 솜으로 가는 길에서 볼 수 있는데, 그곳엔 8,000년이란 세월이 지나는 동안 말라붙어 버린 거대한 분화구가 있다. 호르고 사화산이다. 타미르 강변을 벗어나 거칠고 거친 모래 파도를 넘어온 푸르공은 지금 사화산을 향해 달리고 있다. 푸르공은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끝내 산을 올라갔다. 운전기사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오른쪽은 절벽 아래로 속절없이 황량해서 눈부신 협곡이 흐르고 있었다.

화산지대는 이런 것인가. 느닷없이 녹색 나무들이 나타나고 검은 석탄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길이 울퉁불퉁 흐르며 그러다가 산등성이에 간신히 자라난 숲 속을 뛰어가는 노루떼가 보이기도 했다. 호르고 사화산을 올라가는 길엔 제주도의 돌하루방처럼 생긴 바위들도 볼 수 있다. 수천 년간 바람에 깎이는 동안 얼굴이 사라져 버린 바위들. 그래서 사실 돌하루방을 닮았다기보다는 돌하루방의 서글픈 그림자를 닮았다. 이목구비가 지워져 버린 바위들의 얼굴들. 바람이 그곳에서 숭숭 구멍을 뚫으며 놀고 있다. 산을 올라갈수록 길은 여전히 시커먼 연탄을 깔아놓은 것처럼 검고 푸석하다. 어린 시절 난 달동네로 올라가는 골목길에서 연탄을 가지고 놀았다. 연탄으로 눈사람도 만들었고 연탄을 깨면서 쌈박질도 했다. 지금 푸르공은 그때 검은 연탄들로 만들어진 시커먼 연탄길을 오르고 있다.

말의 구슬픈 영혼 - 어워 꼭대기에 있는 말머리와 마두금

산 정상은 생각보다 높았다. 차량으로 오를 수 없는 길을 뚜벅뚜벅 걸어올라 가면서 나는 조금 가슴이 설레기도 했다. 바로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8,000년 전 땅속 깊은 곳에서 솟아나온 용암이 흘러내렸던 길이다. 거대한 분화구 둘레에 굳어버린 용암은 기이한 모양을 하고 있는데, 그 높이가 무려 2, 30미터에 달한다. 한편 호르고 화산을 내려가는 길 한쪽에 제법 큰 어워(원초적 신앙이 깃들어 있는 돌탑)가 쌓여 있었는데, 그 꼭대기엔 나무 기둥이 박혀 있고 그 위에 말머리 하나가 걸려 있었다. 유목민들은 자신이 가장 아끼는 말이 죽으면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와 그곳에 말의 머리를 달아준다. 그리고 제사를 올려 말의 구슬픈 영혼을 위로하는데, 그들에게 말은 가족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말은 유목민들에게 자신의 등허리를 빌려주고, 고기와 우유를 주기도 하며, 외로운 초원생활의 친구가 되어주기도 한다. 몽골 유목민들은 죽은 말의 꼬리털을 모아 두 개의 현을 잣는다. 그리고 나무를 정성스레 깎아 말의 머리와 울림통을 만든다. 이것이 그 유명한 머링후르, 즉 마두금(馬頭琴)이란 악기이다. 아무튼 말은 유목민들에게 축생이 아닌 것이다.

몽골 대륙의 바다 '흡스골'로 가려면 - "이 밤 몽골의 지붕 항가이 산맥을 넘어야 한다!"푸르공은 숨을 헐떡이며 산을 넘고 있었다. 지금까지 수차례 항가이 산맥을 넘었지만 밤에 항가이 산맥을 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다음날 적어도 오후까지 흡스골에 도착하기 위해선 오늘 밤을 넘겨서는 안 되었다. 운전기사는 잔뜩 긴장한 채 바닥만을 보고 달렸다. 일생을 몽골의 산과 들을 달려온 그도 밤에 항가이 산을 넘는 것은 어렵고 무서운 일인 듯했다. 기이하게도 산을 내려오자 길이 없어졌다. 운전기사는 머리를 긁적이며 당황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더 앞으로 나아가는 건 불가능했다.

천막을 치기 위해 짐을 꺼내고 있는데 갑자기 운전기사가 다급한 목소리로 어서 차에 타라고 외쳤다. 헤드라이트 불빛을 밝히자 검은 윤곽의 물체들이 눈에 들어왔다. 헤드라이트를 보고도 짖지 않는 걸로 보아 늑대로 보였다. 늑대는 아주 위험한 동물로 알려져 있지만 생존에 위협을 주지 않는 이상 녀석들이 먼저 사람을 헤치는 일은 드물다. 늑대는 사람이 사람을 무서워하는 것보다 더 사람을 무서워한다. 동물 중에 유일하게 같은 종을 대량 학살하는 존재인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위험하다는 사실을 정작 사람들은 인식하지 못한다. 나는 늑대들을 자세히 보고 싶었지만 녀석들은 기계 동물 푸르공의 괴기한 울음소리와 번쩍이는 눈빛에 놀랐는지 줄행랑을 치고 말았다.

길 없는 길을 찾아내며 푸르공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한 십분 정도 달리니 저편 어둠 속에서 가물거리는 캠프의 불빛이 보였다. 10월 말이 지났음에도 아직 철수하지 않은 캠프가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여름철 몽골 대륙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캠프 리조트는 몽골인들의 집 게르를 이용해 만든 여행자 숙소인데,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5월 말에서 8월 말까지 캠프를 치고 가을이 오면 철수를 한다.

바이칼로 이어지는 물의 탯줄 '흡스골 호수'를 굽어본 하루

캠프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커피를 한 잔 마신 후 바로 출발을 했다. 머나먼 길을 달려 푸르공은 드디어 흡스골 호수에 닿았다. 나는 호수 가까운 곳에 여장을 풀었다. 흡스골 호수는 푸른 물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그만큼 물이 푸르고 그 물 속에는 엄청나게 많은 물고기들이 산다. 호수는 너무나 커서 제주도가 통째로 잠길 정도의 면적을 지니고 있다. 아흔여섯 개의 강이 굽이굽이 흘러 들어와 해발 1,600미터의 고원에 거대한 우물을 만든 것이다. 이 깊은 우물은 다시 에길골이라는 강을 통해 북쪽 러시아 바이칼 호수로 흘러 들어간다.

몽골 사람들은 흡스골 호수를 신의 바다라고 부른다. 바다가 없는 몽골 대륙에서 흡스골은 가장 신성한 바다이자 자연의 모든 생명이 잉태되는 원시의 바다이다. 호수는 11월에 결빙을 시작하고 이듬해 6월에 얼음이 풀린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호수로 나가 찬 수면에 얼굴을 묻고 세수를 했다.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울창한 타이가 숲은 태고적 원시의 순결함으로 또다시 태어나는 아침을 맞고 있었다. 나는 작은 오두막 숙소에서 커피와 빵으로 간단한 아침을 때우고, 호수의 서쪽으로 낮게 구릉지어 가는 언덕을 구경하러 길을 떠났다. 산언덕에는 가을 단풍이 물들어 산 아래 초지로 내려오고 있었고, 산이 내려오고 들판이 끝나는 곳에 넓은 습지가 형성되어 있었다. 새들의 날갯짓과 울음소리에 젖는 물가의 오후는 아름다웠다. 몽골인들의 신성한 바다 흡스골로 흘러드는 작은 냇가에서 나는 경건하고 아름다운 동물들의 생태계를 바라보며 그렇게 종일 앉아 있다 오두막 숙소로 돌아왔다.

2부 '자아 찾기'를 위한 첫 자전거 여행 - 고비 사막을 건너다



적막한 초원 속에서 바퀴가 가르쳐 주는 경건한 슬픔과 아름다움

지난 2년간 나는 두 번에 걸쳐 자전거를 끌고 울란바타르를 벗어났다. 한번은 고비였고, 한번은 항가이 산맥이었다. 이렇게 눈이 내릴 때면 나는 베란다에서 깊은 겨울잠에 든 자전거를 본다. 가만히 자전거 핸들에 손을 올려놓고 있으면 주마등처럼 고비와 항가이 산맥이 스쳐 지나간다. 그 모든 것들이 꿈결처럼 내 곁에 있다. 어느새, 나의 기억은 2007년 9월 중순 고비 사막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페달을 밟은 지 5시간도 되지 않아 무릎이 다시 퉁퉁 부어올랐다. 예전에 다쳤던 무릎이 재발한 것이다. 울란바타르를 출발한 지 3일이 넘어가고 있었지만, 자전거는 이제 겨우 50킬로미터를 지나고 있었다. 밤새 텐트 안에서 떨고 난 나는 오늘은 어떻게든지 게르를 만나야 했다. 며칠째 음식은 고사하고 물도 마음대로 마시지 못했다. 가도가도 끝없는 지평선을 바라보고 있으면 장애물 하나 없는 기이한 미로 속에 갇힌 듯 현기증이 느껴지곤 했다. 혹 길 위에서 차를 만나 얻어 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요행을 바랐으나, 달리고 또 달려도 차들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지쳐가고 있었다.

울란바타르에서 고비 사막까지는 600킬로미터 - 자전거 여행길에 오르던, 어느 새벽에 대한 회상어둠이 내리기 직전, 눈앞에 마을이 나타났다. 검은 모래바람이 뒤덮고 있는 마을은 마치 공포영화 속에 버려진 마을처럼 음울했다. 텅 빈집을 몇 채 지나고 나자 창가에 어른거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허름한 식당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술잔을 기울이던 남자 두 명이 나에게 맥주를 권했다. 시원한 맥주를 고맙게 받아 마신 내게 그들은 울란바타르로 간다면 태워주겠다는 말까지 했다. 울란바타르! 순간 그렇게 힘겹게 떠나온 그 도시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유혹이 밀려오는 걸 꾹 참았다.

마음속 세계 지도를 찾아 훌쩍 한국을 떠난 지 벌써 10년이란 세월이 지났고, 울란바타르라는 이국의 도시에서 7년을 살아오는 동안 나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3년을 떠돌다 정착한 몽골은 처음에 내게 큰 위안을 주었고 울란바타르에서 만난 아내와의 신혼생활은 나를 희망에 부풀게 했다. 그러나 사랑만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이 세상엔 너무나 많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최선을 다했으나 최선을 다하는 일이 곧 이해하는 일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우린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어떻게 사랑을 받아야 하는지를 몰랐다. 힘겨운 나날은 시간이 갈수록 더해갔고 가슴속에선 더욱더 알 수 없는 바람이 요동쳤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공항으로 달려갔다. 한국으로 건너가 자전거를 사오기 위해서였다.

나는 비행기에 오르면서도, 한국에 내리면서도, 자전거를 구입하면서도 온통 자전거를 끌고 사막으로 달려가는 생각만 했다. 그것만이 오직 내 숨통을 트여줄 수 있는 길이라 믿었다. 그러나 나는 자전거를 몽골에 갖다놓고도 출발을 하지 못했다. 울란바타르에서 고비 사막의 달란자가드까지는 무려 600킬로미터가 넘는 여정이다. 가다가 길을 잃을 수도 있고 굶어 죽거나 목말라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결국 수많은 망설임 끝에 어느 날 새벽 자전거를 끌고 집을 나섰고, 여기까지 온 것이다.

고원 한가운데서 길을 잃다 - "어둠이 내리기 전, 게르를 찾아야 한다"

다음 날 다시 출발했다. 나는 점점 고비의 가운데로 들어서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지평선은 점점 풀들이 말라가는 스텝 사막의 황폐함을 드러냈다. 다른 날과 달리 길 상태가 좋아 자전거에 달린 속도계가 계속해서 올라갔다. 자전거에 올라타고 처음으로 속도감을 맛본 나는 한껏 고무되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지평선 한가운데 생뚱맞게 서 있는 이정표를 만나면서 정신을 차렸다. 바람에 몸통이 돌아간 이정표에는 두 갈래의 길이 적혀 있었는데, 아무리 방향이 바뀐 이정표라 하더라도 도저히 감이 잡히질 않았다. GPS에 나온 만달고비(몽골 중부에 있는 도시)의 방향은 어느 길에도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결국 나는 길을 잘못 들었고, 천신만고 끝에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기 직전, 게르를 발견했다.

마유주 끓는 소리를 들으며 어린 시절로 귀향하는 유목민들

게르로 다가가자 젊은 유목민이 나와서는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게르에 들어서자 게르 안에는 갓난아기부터 할아버지까지 온 가족이 모여 있었다. 그 중 큰아들로 보이는 남자가 내게 자리를 권했다. 가장으로 보이는 어른이 음식을 내게 건네주었다.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음식을 먹어치우자 이번엔 대접 한 가득 마유주를 내왔다. 마유주는 몽골어로 아이락이라고 부르는데, 사실 이름에 술 주(酒) 자가 들어가지만 몽골 사람들은 마유주를 술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마유주는 말 그대로 말의 젖을 오래 발효시켜 만든 음료다. 그들은 말의 젖을 가죽부대에 담아 오래 젓고 저으며 긴긴 여름 낮을 보내곤 하는데, 말의 우유를 오래 저으면 보글보글 기포가 올라오는 소리가 나고, 먼 길을 떠나온 유목민들이나 초원을 떠나 사는 도시민들은 그 소리를 기억하며 고향을 떠올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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