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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힘을 합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

김미경 지음 | 명진출판
가족이 힘을 합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

김미경 지음

명진출판 / 2009년 3월 / 260쪽 / 12,000원



프롤로그_ 내 소중한 사람들이 넘어지지 않도록 그 손을 꼭 잡아주는 '가족성공학'


저는 고달픈 삶의 기로에 설 때마다 머릿속에 한 사람을 떠올리곤 합니다. 바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우리 엄마, 홍순희 여사입니다. 칠순이 넘은 친정엄마의 깊게 패인 주름 속에서 우리 가족의 위기 극복 히스토리를 발견하곤 합니다. 좋은 때도 많았지만 돌이켜보면 우리 부모님은 가족들을 건사하기 위해, 가족이 깨지거나 흩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가족의 소망과 꿈을 이뤄내기 위해 수많은 위기를 넘고, 험난한 세월을 견뎌왔습니다. 부모님은 도대체 어떻게 그 시절을 살아왔을까요. 이제 와서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땐 이랬지" "이땐 내가 그렇게 살았어"라며 뼈아픈 위기극복의 이야기를 대하소설로 엮어 들려줍니다. 그리고 그 대하소설은 저에겐 최고의 성공학 교과서가 됩니다. 그렇게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놓은 부모님의 인생은 고스란히 저의 뿌리가 되고 제 성공의 근본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저의 '가족성공학'입니다. '가족성공학'은 현실이 어려워도 가족의 꿈을 잃지 않고 지켜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지혜입니다. '가족성공학'은 가족과 가족의 삶을 통해 우리가 서로 배우고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그 깨달음은 아무리 현실이 어렵다 해도 우리의 꿈이 부서지지 않도록 단단하게 잘 지켜줄 것입니다.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의 꿈이 이뤄지는 그날까지 '가족성공학'의 이름으로 "파이팅"을 외쳐봅시다.

Part 1 우리 가족의 꿈을 지키자



가정도 기업처럼 주기적으로 위기를 맞는다


내 고향은 충북 증평이다. 증평에서 태어나 자랐다. 증평은 1970년대만 하더라도 농사짓는 집이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주변에 가발 공장, 빵 공장, 인형공장 등이 있어 몇 집 건너 한두 집은 공장에 다니는 사람들이 있었다. 좀 떨어진 곳에는 직물 공장과 신발 공장도 있었다. 돈 좀 있던 집안에서는 양조장이나 제재소를 했다. 그런데 30여 년이 지난 요즘에 고향에 가면 그런 공장을 찾아볼 수가 없다. 몇 차례 닥친 위기에 제대로 버텨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증평에서뿐만이 아니다. 거대 대기업이나 중간 이상의 기업을 제외하고는 우리나라에서 30년 이상 버티는 기업을 보기 힘들었다.

자부심을 뛰어넘는 인내심

우리 엄마는 증평에서 양장점을 했다. 이름하여 리리양장점. 엄마의 양장점도 지난 50년간 기업 못지않은 극심한 변화를 겪었다. 증평의 첫 양장점이니만큼 처음에는 손님도 꽤 많았고 벌이도 괜찮았다. 그러다 위기가 왔다. '논노'라는 대기업에서 만든 기성복 제품이 나온 것이다. 양장점에서 옷 맞춰 입던 사람들이 죄다 '논노'로 가서 옷을 사 입었다. 디자인도 양장점보다 신선하고, 맞추고 기다리지 않고 사서 바로 입을 수 있으니 단골들까지 '논노'로 빠져나가 버렸다. 엄마는 자신의 만든 옷에 대한 자부심이 센 사람이었다. 그러나 자부심만 세면 뭘 하나. 옷 맞추러 오는 손님이 없는데. 엄마는 어떻게든 살아남아야겠다는 결단을 내리고 양장점을 반으로 뚝 잘라 양품점을 시작했다. 맞춤복에 대한 자신의 프라이드를 굽히고 기성복 옷을 갖다 팔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의 자부심을 접고 과감하게 '적과의 동침'을 해버린 것이었다. 엄마는 그때의 위기를 그렇게 버텼다.

엄마에게 배운 위기 돌파력

엄마는 그렇게 위기를 넘기고 자신만의 경쟁력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엄마 양장점에는 기성복이 판을 치는 시대에도 손님이 늘 있었다. 그래서 아주 오래 버틸 수 있었다. 게다가 엄마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패션에도 결코 뒤지지 않았다. 여성잡지며 TV에 연예인들이 입고 나오는 옷들을 나름 분석해 상품에 반영했다. "아유, 요즘 이게 유행이유"라고 엄마가 한마디하면 손님들은 바로 넘어갔다. 삶의 터전은 그대로였지만 그 안에서 아이템과 콘텐츠는 계속 바꿔나가면서 위기도 건너고 호기도 창출했던 것이다. 나는 어려움이 닥치거나 딱 손 놓고 싶을 때 엄마가 '논노'와 싸워 이겨냈던 그때를 떠올린다. 엄마가 위기를 버텨가는 과정을 보면서 어려움이 왔을 때 어떻게 버텨내야 하는지를 배웠던 것이다. 가정이란 그런 곳이다. 부모는 위기가 왔을 때 버텨 이겨내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부모가 위기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고 자란 자녀와 이겨내는 모습을 보고 자란 자녀는 인생을 대하는 방식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다.

위기를 버텨낼 때마다 '믿음과 동지애'가 생기다

가정을 꾸리고 가족을 만든다는 것은 기업을 창업하는 것과 같다. 창업 이후 기업이 순차적으로 위기를 맞이하듯이 가정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한평생 굴곡 없이 순탄하게 살아지길 바라지만 희망사항일 뿐 현실은 절대 그렇지 않다. 우리 인생이라는 게 애초부터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가족 모두 감당하기 벅찰 만큼 아주 큰 위기가 오기도 한다. 중간에 가정의 문을 닫고 손 털고 도망가고 싶은 순간도 여러 번 온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가정의 창업주들은 부도내고 손 털 생각은 말아야 한다. 가정의 문을 닫을 생각은 말아야 한다. 대신 평생을 지켜온 맞춤복의 프라이드 다 버리고 기성복 갖다 팔면서 버텨낸 우리 엄마 양장점처럼 어떻게든 버텨낼 수 있는 현명함이 있어야 한다. 엄마 양장점은 그렇게 버틴 만큼 경쟁력이 생겼고 결국 다시 좋은 날을 맞게 되었다. 가족도 위기의 파도를 한 번씩 넘을 때마다 '믿음과 동지애'라는 경쟁력이 생긴다. 그래서 한 번 넘게 되면 두 번 넘을 수 있고, 두 번 넘게 되면 세 번을 넘을 수 있게 된다. 부도내고 손 턴다고 좋은 날 오지 않는다. 지금 모든 가정의 창업주들은 어렵다고 부도내고 손 털고 도망가려 하지말고 어떻게든 버텨낼 방법을 찾아야 한다. '가족성공학'이 모든 가정의 창업주들에게 그 지혜를 줄 수 있다.

가족이란 서로 손 잡아줄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관계



우리는 왜 서로를 긁는 걸까?


최근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많은 집에서 부부싸움이 늘었다고 한다. 예전 같으면 그냥 넘어갈 일도 다들 걸고넘어지는 것이다.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마음이 불편한 거다. 이를테면 남편이 아내에게 자꾸 가계부를 보자고 한다. 물론 "자, 그래 여기 있어" 하고 선뜻 보여주면 부부싸움할 일이 없다. 그런데 가계부 보여주는 게 주부로서는 학교 다닐 때 성적표나 검사받는 일기장 같은 느낌이 들 수 있다. 그래서 남편에게라도 선뜻 보여주기 싫은 것이다. 그럼 왜 우리는 서로를 이렇게 긁는 걸까? 이런 싸움을 백날 한다고 특별히 현실이 달라지는 것은 없다. 서로 긁는다고 우리 집 경제가 좋아진다면 뭐 매일이라도 해도 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서로 긁는다는 것은 엄청난 감정의 소모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쪼잔함 속에 숨은 진실을 보자

우리가 서로를 긁는 것은 지금 서로의 실제 마음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는 가수가 노래까지 불러주는데도 자원봉사자로만 봤던 소녀처럼 지금 우리는 상대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있다. 남편이 가계부를 보여 달라고 하고, 카드명세서를 들고 화를 내는 것은 남편의 '위기체감지수'가 그 어느 때보다 높고 또 그 체감지수를 가족과 공유하고 싶기 때문이다. 아내가 전보다 더 짜증을 잘 내는 이유는 아내의 마음이 남편보다 더 불안하기 때문이다. 요즘 같은 경우 '위기체감지수'는 남편이 아내보다 더 높지만 '불안체감지수'는 아내가 남편보다 더 높다. 이런 때 처방은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우선 상대에게 이전보다 말을 좀 예쁘게 하도록 의도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툭툭 던지듯이 하는 말은 삼가야 한다. 가족이란, 넘어지기 전에 손잡아줄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관계여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 내게 소중한 사람일수록 무심하게 반응해서, 이미 바닥에 넘어진 후에야 그가 오래전부터 비틀거렸음을 알게 된다. 우리는 이제 달라져야 한다. 가깝고 소중한 사람일수록 서로의 손끝을 놓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서로 손잡아줄 타이밍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불황'일 뿐 '불행'이 아니다

요즘 신문을 보면 '100년만의 전 세계적 불황'이라는 둥 'IMF는 지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얘기들이 1면을 장식하고 있다. 경제학자들도 'IMF가 V자 곡선을 찍고 올라갔다면 이번에는 U자 곡선'이라는 둥, 어떤 이는 'L자 곡선'이라는 둥 저마다 의견이 분분하다. 아예 '세계 대공황'을 얘기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이렇게 사람들을 두려움을 넘어 정신적 공황상태로 몰아가고 있는 언론을 보고 있노라면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무시무시한 기사들을 읽고 있으면 지금 혹독한 위기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좌절할지 걱정스럽다.

불황을 땅으로 딛고 서라

불황은 경제적인 고통일 뿐이다. 예를 들면 100만 원 수입이 70만 원으로 떨어지는 것이나 30만 원이었던 하루 매출이 10만 원으로 줄어드는 것, 혹은 취업을 못한다든지, 55세가 정년 퇴임인데 45세에 명예퇴직을 하는 것들이다. 이처럼 기존에 향유하던 모든 경제적인 기반이 축소되거나 내려앉는 상황을 우리는 '불황'이라 일컫는다. 불황은 녹록치 않다. 호황은 즐겨주면 그만이지만 불황은 고도의 기술로 다뤄야 한다. 불황은 결코 '욱하는' 마음으로 대해서는 안 된다. 정제된 감정과 노련한 기술로 가족이 힘을 합쳐 넘어야 간신히 넘을 수 있는 게 불황이다. 지레 겁먹고 '불황'을 '불행'으로 보는 순간, 넘어야 할 언덕은 거대한 산맥이 된다.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것의 정체

경제적 불황이 심각해 온 가족이 길바닥으로 나앉은 극단적인 상황도 있지만 우리가 겪은 불황은 일반적으로 그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필요 이상으로 겁먹고 있다. 온 사회가 집단적으로 불안과 두려움을 '지원육성'하면서 경제적 불황이 마음속까지 번져가고 있는 것이다. 기왕에 닥친 불황이라면 오히려 얕잡아 볼 필요도 있다. '할 수 없어', '어떻게 해'라고 겁먹는 순간 못하게 되는 불가능의 길에 한 발을 내딛는 것이다. 불황은 현실에 불과한 어떤 상황일 뿐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 순간부터 '할 수 있다'는 가능의 길에 들어설 수 있다. 불황을 확대 재생산시키지 말자

부모님들은 자식이 학교 들어가면 "이제 고생 시작"이라고 말했고, 결혼하면 "이제 진짜 고생 시작"이라고 말한다. 인생에는 행복보다 불행이 더 많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아는 까닭이다. 교통사고를 당해 장애인이 되거나, 남편이 일찍 죽거나, 사기를 당하는 등의 불행은 언제든 닥칠 수 있는 것들이다. 불행이 생길 때마다 사람들이 인생을 포기했더라면 지구 인구의 절반은 진작 죽었을 것이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인 이유는 행복에 겨워 술 마시고 노래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경제위기를 불황으로 볼 것이냐, 불행으로 볼 것이냐에 따라 인생이 갈린다. 불행으로 보는 청년들은 지금 취업 못하면 영원히 못할 거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불행의 씨앗은 점점 자라 '우리 집에 돈만 있었어도 조그만 사업이라도 하는 건데…'라는 생각까지 번진다. 아버지를 불행의 원인으로 보는 것이다. 사실 그에게 온 것은 일시적 불황일 뿐인데 불행으로 인생의 첫 단추를 끼우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불행을 삶 자체로 받아들여 희망을 꽃 피우고 의미 있게 살아간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불황 비슷한 것만 던져져도 불행으로 확대·재생산시켜 스스로 나자빠지기도 한다. 인생의 모든 것에는 올라가고 내려가는 업·다운이 있다. 중요한 것은 업할 때나 다운할 때나 변함없는 마음의 리듬을 갖는 일이다. 평생 동안 전 세계의 오지를 내 집 안방처럼 돌아다닌 구호활동가 한비야 씨는 이런 말을 했다. "낯설고 거친 길 한가운데서 길을 잃어버렸대도 물어보면 그만이다. 물어볼 사람이 없으면 헤매면 그만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목적지를 잃지 않는 것이다."

위기 때만 오는 기회가 따로 있다, 첫 번째 이야기

"위기는 기회다." 이 말은 IMF이후 지난 10년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던 말이다. 대통령부터 기업을 이끄는 CEO, 한 집안의 가장들까지 똑같이 외쳐왔다. 그러나 나는 솔직히 의심스럽다. 이분들은 정말 마음속 깊이 '위기 속에 기회가 있다'고 생각할까. 나는 돈이 있는 사람들이야 이런 경제 위기 속에서 기회를 잡을 수 있겠지만 대다수 서민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기회라고 본다. 경제 위기에서 서민들에게 오는 것은 올라가는 대출이자, 쪼들리는 생활비, 흔들리는 경제기반뿐이다. 때문에 위기가 기회라는 말을 들으면 오히려 화가 난다.

위기와 시련이 주는 선물은 따로 있다

한 기업체 교육 파트에 계신 정 부장님과 오랜만에 통화를 하게 되었다. 건축 관련 기업이라서 지난 금융위기로 큰 타격을 받은 기업 중 한 곳이었다. 한동안 교육과 컨설팅을 활발하게 진행했었는데, 좀처럼 연락이 되지 않아 걱정이 많던 차였다. "원장님, 저희 회사가 요즘 많이 힘듭니다. 잡쉐어링 명목으로 전 직원이 사나흘만 출근하고 있습니다. 이러다 잘리는 게 아닐까 걱정도 되고, 평일에 쉬자니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한동안 방황했습니다. 그런데 등산을 시작한 요즘은 지낼만 하답니다." 사정을 듣고 나서 그래도 무사히 지내시는 것 같아 걱정을 덮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려운 시기가 잘 나갈 때는 만날 수 없는 어떤 기회를 준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생각의 함량이 인생의 함량을 바꾼다

사람이 성찰이나 통찰, 관찰, 고찰 같은 것 그러니까 한자로 察(찰)자 붙은 거 할 때 꼭 있어야 하는 것은 '시간'이다. 즉각 인스턴트가 안 통하는 유일한 분야다. 그런데 그동안 다들 하루에 10분밖에 생각할 시간을 안냈다. 그러니까 생각의 함량이 높아지질 않는다. 매일 똑같은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게 된다. 하루에 4시간씩 산행을 하다보면 그 시간에 뭐하겠는가? 생각밖에 할 게 없다. 4시간이면 240분, 240분짜리 함량을 가진 해답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정 부장님도 산에 다니면서 많은 변화를 하게 되었다. 10분짜리 생각 패턴으로 인생을 살아오던 것을 240분짜리 생각 패턴으로 인생을 바꾸었기 때문이다. 240분 동안 성찰 끝에 고민을 털고 내려간다. 산에서 내려가면 바로 실행에 옮긴다. 이런 패턴으로 사는 방식을 싹 바꿔 버렸다. 혁명이 따로 없었다. 이런 게 바로 혁명이었다. 정 부장님은 유명한 큰스님들이 하시는 말씀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나 자신부터 변해야 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고 했다. 정 부장님은 이번 위기 속에서 앞으로의 10년을 준비할 기회도 찾았다. 이번 경제위기가 아니었다면 그는 결코 변하지 못했을 것이다. 평소에 해오던 대로 10분 생각 패턴으로 나머지 인생을 살아갔을 것이고, 모든 문제에 대해 10분짜리 함량의 해답밖에 찾지 못했을 것이다.

Part 2 우리 집이 '희망 제작소'여야 한다



희망 제작소 VS 실망 제작소


'엄친아'의 존재는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그러나 요즘처럼 종횡무진 세상을 떠돌아다니진 않았다. 그동안 엄친아들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모양이다. 옛날에는 두 동네쯤 건너서 하나씩 있었다면 요즘엔 동네마다 두세 명쯤 있는 것 같다. 물론 '엄친아'란 말이 나와 좋은 점도 있다. 너무 잘나서 기분 나쁜 사람을 만났을 때 이제는 기죽을 필요가 없어졌다. 그냥 '쿨'하게 한마디 던지면 된다. "어느 동네 엄친아야? 목동 엄친아야? 화곡동 엄친아야?" 사실 따져보면 별 의미 없는 말이지만 이 말이 갖는 '치유의 힘'은 대단하다. 한 번 이렇게 말하고 나면 그때부터 그 사람한테 기가 죽거나 크게 부러울 일이 없어지는 것이다. 내 말 믿기지 않으면 다들 한 번 실험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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