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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패션과 문화를 말하다

정인희 지음 | 푸른솔
이탈리아, 패션과 문화를 말하다

정인희 지음

푸른솔 / 2008년 11월 / 268쪽 / 15,000원

여름



두오모와의 만남


밀라노는 두오모를 중심에 두고 시가지를 형성하고 있다. 두오모란 이탈리아에서는 각 도시의 대성당을 일컫는 이름으로 사용된다. 2006년 여름, 밀라노의 두오모는 보수 공사 중이라 정면 아래 절반의 모습은 볼 수 없다. 두오모 앞 광장은 마치 광장이란 무엇이고 광장이라는 것이 어떤 기능을 해야 하는 것인지를 알려 주는 교과서 같다. 두오모 앞은 사시사철 저녁 늦은 시간까지 관광객들로 넘쳐 난다. 하루 종일 문을 닫지 않는 서점과 음반점이 있는 곳이고, 트렌디하고 클래식한 옷들이 가득한 곳이고, 입에서 살살 녹는 것 같은 카푸치노를 만드는 바르(bar)가 있는 곳이다. 여기서는 때때로 공연이 열리기도 하고,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노래할 수 있다. 주요 축구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광화문 광장처럼 젊은이들이 모여들어 소란스러워지는 곳이다.

밀라노의 명품 거리

유리로 지붕을 덮은 긴 회랑을 뜻하는 갈레리아(갤러리). 사방으로 길이 뚫려 있는 십자로 모양의 이 쇼핑 아케이드는 고급 레스토랑과 명품 부티크가 즐비하고 서점과 음반점까지 들어 서 있는 작은 문화 공간이다. 갈레리아 내부의 점포들은 브랜드 고유의 색채를 버리고 모두 검정색과 황금색으로 외부 장식을 하여 보기만 해도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다. 특히 중앙 네 모퉁이에는 프라다와 루이비통과 베르나스코니라는 실내 소품점, 그리고 맥도날드가 있다. 고유의 빨간색과 노란색 간판을 버리고 검정색과 황금색 간판을 달고 있는 맥도날드는 볼 때마다 흥미롭다.



갈레리아도 손색없는 쇼핑 공간이긴 하지만, 이들은 관광객을 손쉽게 만나기 위한 지점에 해당한다. 반면 본점 역할을 하는 점포들은 콰드리라테로(il quadrilatero)에서 만날 수 있다. 이름을 다 열거할 수도 없는 명품 점포가 양쪽 길가를 메우고 있지만, 요란스러운 간판이 없어 휘황찬란하지도 않고, 쇼핑객이 몰려드는 주말이 아니면 거리가 번잡하지도 않다. 입구에 품위가 가득 묻어 있기는 하지만 서울에 있는 명품점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발을 들여놓을 수 있다. 골목골목 가게들을 구경하며 누비다 보면, 다채로운 색에 가슴이 벅차오르고 갖가지 형태와 기품 있는 소재와 온갖 디테일이 눈을 즐겁게 한다. 똑같은 브랜드라도 똑같은 상품이 아니다. 이래서 패션의 본고장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걷다보면 어느덧 발은 아파오고 때는 저물녘이다.



첸트랄레와 부에노스아이레스

스타치오네 첸트랄레(중앙역)에서 남동쪽으로 네 블록을 걸어 내려오면 코르소 부에노스아이레스가 나온다. 첸트랄레 주변은 우범지역으로 악명이 높은데, 근동(近東), 중동, 동남 아시아인들은 이 주변에 모여 살면서 아랍풍이나 인도풍의 상권을 형성하고 있다. 그래서 인도 음악CD와 영화DVD를 쉽게 구할 수 있고 각종 앤티크 액세서리와 그 재료를 구경할 수 있는 곳이며 라면을 포함하여 아시아 각 나라의 식료품을 팔기도 하는 곳이다. 터키식 케밥집이나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인 인터넷 포인트, 셀프 빨래방 등 살림이 넉넉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 업종이 성행하는 곳이기도 하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대중 상품의 집산지 같은 곳이다. 이 대로에는 H&M이 두 군데나 있고 남녀 ZARA매장도 크게 펼쳐져 있다. 베네통과 시실리의 할인 매장이 있고 우핌(Upim)이라는 대중 백화점도 보인다. 가죽제품 전문인 Bata와 속옷 전문점인 칼체도니아(Calzedonia)나 골든포인트도 눈에 띈다. 나이키도 있고 퓨마도 있다. 스와로브스키까지 찾아낼 수 있다. 명품 거리와 달리 가벼운 지갑으로 쇼핑을 할 수 있는 곳이 여기이다. 8월 마지막 날, 쇼윈도들은 세일을 알리는 '살디(saldi)' 표지로 어지럽다. 여름 시즌 세일의 마지막 무렵이다. 다음 세일은 1월초에나 있게 될 것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7시가 넘으면 슬슬 산 물건을 챙기고 카운터에 줄을 서야 한다. 7시 반, 늦어도 8시가 되면 문을 열기 시작하는 식당과 교대하여 이 거리의 모든 가게는 문을 닫고 하루를 마감하는 것이다.

가을



토리노의 박물관


밀라노에서 토리노까지는 완행열차로 두 시간이 더 걸리는 것 같다. 토리노에는 중요한 박물관이 몇 있는데 특징적인 것으로는 이집트 박물관, 영화 박물관, 자동차 박물관을 들 수 있다. 토리노의 이집트 박물관은 그야말로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다. 미라만으로 방 하나를 가득 채우고 있는 전시실도 있다. 그중 한 미라는 천을 살짝 벗겨 얼굴까지 보이게 해 놓았다. 개와 고양이를 미라로 만들어 놓은 것을 진열한 곳에 가서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토리노를 상징하는 건축물은 몰레 안토넬리아나라는 이름을 가졌다. 167미터의 높이를 가진 이 뾰족탑 모양 건축물 안에 국립 영화 박물관이 있다. 리플릿에는 이 영화 박물관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박물관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박물관 입구에는 두 개의 입구가 있다. 박물관만 볼 사람을 위한 문,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탑 위를 먼저 구경한 뒤 박물관을 볼 사람을 위한 문, 영화 및 영화의 역사와 관련된 재미있는 전시물들이 많다. 영화세트를 만들어 놓기도 했고, 어떤 층은 영화포스터만 죽 둘러 전시해 놓기도 했다. 곳곳에서 영화필름이 돌아가고 있고 신기한 영상기법을 직접 테스트 해 볼 수 있는 곳도 여러 군데다. 영화 박물관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은 누워서 영화를 볼 수 있는 큰 중앙 홀이다. 하루 종일 걸어 피곤한 몸을 이곳에서 잠시 쉬게 한다.



해피아워

이탈리아에 잘생긴 남자들이 정말 많으냐고 묻는다면 "글쎄요"하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솔직히 키가 작거나 뚱뚱하거나 못생겼거나 셋 중 하나 이상에 해당하는 사람이 90% 이상인 듯하다. 그렇지만 멋진 남자들은 꽤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옷집들이 서서히 문을 닫을 무렵이 되면 밀라노의 온갖 멋쟁이들이 몰려드는 장소가 있다. 바로 아르마니 카사(아르마니 상표의 실내가구와 소품을 파는 곳) 안에 있는 일본식 레스토랑 겸 바르(Bar)인 '노부(Nobu)'라는 곳이다. 몬테 나폴레오네역 바로 앞이다. 정식으로 식사를 한다면 매우 비싼 값을 지불해야 하겠지만, 노부에도 역시 '해피아워'가 있다.

해피아워란 간단한 음식 몇 가지를 뷔페식으로 마련해 놓고 주류 혹은 음료 한 가지를 주문하면 이 음식들도 함께 먹을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 시간인데, 이때 모든 주류와 음료의 금액은 동일하다. 사실 피자만 제외하고 밀라노의 밥값은 매우 비싸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저녁을 함께 먹을 수 있는 장소는 피자집 아니면 해피아워를 하는 바르밖에 없어 보인다. 해피아워 가격은 6유로 아니면 8유로다. 노부의 경우에는 해피아워도 매우 비싸서 12유로에 이른다. 앉을 자리가 없는 사람들은 통로에 서서 먹고 마신다. 9시가 가까워오면서 노부의 공간은 사람들로 가득 찬다. 다만 먹고 마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저마다 잘 차려 입은 모습을 뽐내기 위해 이 공간에 '있어야만' 하는 사람들 같다. 즉 노부는 하나의 패션 상징이다. 그리고 이곳은 단연코 남자 손님들이 많다.



좋은 법과 이상한 법

이탈리아에 관한 여러 책에서 이탈리아 사람들은 법을 잘 안 지키는 사람들로 묘사되고 있는데, 지금의 이탈리아 사람들은 무엇이든 '법'이라면 철저히 지킨다. 처음 밀라노에 왔을 때는 한 달쯤은 자주 인터넷 포인트에 들락거렸다. 인터넷 포인트는 보통 한쪽 편에는 전화부스 몇 대를 설치해 놓고 다른 한쪽 편에는 구닥다리 컴퓨터 두세 대를 늘어놓고 있는 것이 전부인 조그만 점포다. 이곳에서도 중요한 것이 바로 법이다. 인터넷 포인트에서 컴퓨터를 사용할 때는 반드시 신분증을 제시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신분증을 주면 인적사항을 꼼꼼히 기록하거나 아니면 복사를 해 둔다. 매일 같이 드나들며 인사하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매번 신분증을 보여 달라고 한다. 기분 나쁜 일이 아닐 수 없지만 주인들은 단호하다. 법이니까 지켜야 한단다.



또 다른 소개할 법은 바로 '팔레스트라'라고 부르는 피트니스센터에 적용되는 법이다. 팔레스트라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운동을 시작한 날로부터 일주일 이내에 반드시 의사의 검진을 받아야만 한다. 만약 이 의무를 수행하지 않으면 더 이상 팔레스트라 입장을 허가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것이 법이다. 법을 어길 경우 벌금은 팔레스트라가 문다는데, 검진료는 개인 부담이고 금액은 약 6만 원 정도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 검진의 유효기간은 1년이니까 매년 건강검진을 받아야만 운동을 할 수 있다. 금연법과 더불어 국민의 건강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는 이탈리아의 노력이 보이지 않는가!



식사와 커피

이탈리아 사람들의 아침 식사는 주로 출근길에 회사 근처의 바르에서 수다를 떨거나 신문을 읽으며 간단히 해결한다. 오후 6시쯤에는 아페리티보라고 하여 간단히 와인 또는 맥주를 한 잔 하거나 오렌지 주스를 마시며 수다를 떤다. 그리고 저녁은 8시가 넘어서 먹기 시작한다. 이탈리아식 풀코스는 안티파스토, 프리모 피아토, 세콘도 피아토, 콘토르노, 그리고 돌체로 구성된다. 안티파스토는 애피타이저로 간단한 샐러드나 토마토요리 같은 것이 나온다. 프리모 피아토는 첫 번째 접시라는 뜻으로 여러 가지 파스타 중 한 가지를 먹는 것이다. 세콘도 피아토는 두 번째 접시라는 뜻으로 주요리이다.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생선 등 고기요리 중에서 한 가지를 먹게 된다. 콘토르노는 사이드 디시라는 뜻으로 야채샐러드나 감자, 시금치 같은 야채류를 말한다. 주로 세콘도와 함께 먹는다. 그리고 돌체는 '달콤하다'는 뜻으로 식사 후 입가심을 하기 위해 먹는 과일, 아이스크림 등의 디저트이다. 때로는 도수 높고 단맛이 나는 술을 한 잔 하기도 한다. 식사의 마지막 순서는 카페(에스프레소)다. 카페가 조금 진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카페 룽고를 마신다. 카페나 카페 룽고에는 다이어트를 하지 않는 이상 설탕을 타서 마신다. 설탕을 넣어 마실 때 진짜 에스프레소 맛을 느낄 수 있기도 하다.



이탈리아의 매력

이탈리아는 독일처럼 까다롭지 않고 프랑스처럼 잘난 체 하지 않으며 영국처럼 지나치게 정중하지 않은 나라,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즐겁고 어찌 보면 '만만한' 느낌을 주는 그런 나라다. 우선 이탈리아에서는 커닝을 그렇게 나쁜 일로 여기지 않는 분위기다. 새치기도 당연히 '그럴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또 흥미로운 것은 호칭의 과대사용이다. 이탈리아에서는'박사님'이라는 호칭이 상당히 보편화되어 있다. 즉 '대학'만 졸업하면 모두가 '도토레(남자)'와 '도토레사(여자)'로 불릴 자격을 갖는 것이다. 한편 '로마식 페이'라는 것도 있다. 이것은 여러 사람이 각자 먹고 싶은 것을 시켜먹고 나서 총합계 금액을 인원수로 나누어 지불하는 방식이다. 독일식 깔끔함과 이탈리아식 느슨함이 극단적으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런데 이 또한 우리나라 남자들의 모습과 별 다를 바 없기도 하다.



이처럼 편안한 나라 이탈리아지만,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철저하고 깨끗한 것이 있으니 바로 화장실 문화다. 이 사람들에게 화장실은 삶의 일부분을 즐기는 하나의 방과 같은 존재다. 오히려 새로 지은 현대식 건물에서는 화장실 수를 늘리면서 공간이 좁아져 방 같은 느낌이 덜해진다. 화장실은 늘 청결하게 유지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세척솔 때문이 아닌가 한다. 모든 공중화장실에도 양변기 옆에는 항상 세척솔이 함께 비치되어 있다. 스스로 청결한 상태를 유지하자는 이야기다. 널찍하고 청결한 화장실이고 보니 화장실은 잠시 쉬어갈 수 있는 훌륭한 휴식 공간 역할을 하기도 한다.



밀라노 패션 탐구

보통의 밀라노 사람들은 어떻게 옷을 입을까? 이곳에서는 자신의 체형과 무관하게 배의 노출은 예사롭다. 또한 날씨가 더워지면서 가슴 선까지 훤히 드러나는 상의를 많이 착용한다. 여름의 거리는 팬티를 드러낸 젊은이들로 가득하다. 거기에는 유명 브랜드 이름이 새겨져 있기도 하고 재미있는 문양이 프린트되어 있기도 하다. 의자에라도 앉으면 팬티는 더 깊숙이까지 보인다. 브래지어의 일부가 그대로 노출되는 것은 이미 일반적인 데다가 이제는 팬티까지 보여주기 위한 기능, 겉옷의 일부로서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가을이 오면서 새삼 놀란 것은 여자들이 모두 검정색 정장을 입고 다닌다는 사실이었다. 대다수는 값싼 소재로 만든 검정색 정장이다. 그러면서 부츠가 눈에 띄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밀라노 여성들의 겨울맞이는 부츠 신기에서부터 비롯된다. 더불어 타이츠도 속옷 브랜드들의 주요 관심사가 된다.



그런데 여름, 가을, 겨울을 통틀어 여성들의 모습에서 특이한 점 한 가지는 입술 화장을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바초(bacio, 입마춤)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이탈리아의 바초는 서로 왼쪽과 왼쪽 뺨, 오른쪽과 오른쪽 뺨을 번갈아 마주치며 입으로'쪽'하는 소리를 내는 것이다. 순서는 오른쪽이 먼저건 왼쪽이 먼저건 상관없단다. 보통 바초는 만나서 반가울 때나 아쉽게 헤어질 때 주로 하게 되지만, 서로 대화하는 도중에도 감동을 받으면 금세 상대방의 볼에다 입술을 갖다 대는 이탈리아 여인들은 때로 매우 사랑스럽다. 그리고 그러한 이유로 이네들에게는 입술화장이란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대신 눈 화장은 상당히 정성들여 하는 것 같다.



겨울



라 스칼라에서의 오페라 감상


스칼라 극장의 스칼라는 계단이라는 뜻이다. 즉 스칼라 극장은 계단식 극장이라는 말인 셈이다. 갤러리석에서 관람을 하기 위해서는 계단을 걸어 5층이나 6층까지 올라간다. 이곳에는 어떤 옷을 입고 가는가가 전혀 중요하지 않다. 반면 3등급 이상의 표를 소지한 사람만이 입장할 수 있는 문을 통과하면, 그야말로'이게 바로 스칼라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검표원들은 빨간색 테두리를 두른 검정색 망토를 근사하게 걸치고 있다. '스칼라 극장에 갈 때는 옷을 잘 입고 가야한다'고 하는데, 다른 관람객의 의상도 의상이지만 극장 입구에서부터 검표원들에게 기가 죽지 않으려면 최소한의 복장을 갖추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1등급 좌석 관람객들의 의상은 드레스부터 정장까지 다양하다.



〈마담 버터플라이〉를 꼭 봐야만 한다고 생각한 이유는 딱 한 가지이다. 바로 우리의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지휘를 맡았기 때문이다. 나는 공연 거의 내내 정명훈이 지휘하는 모습만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언젠가 한국에서 봤던 모습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이 늙어 왜소해진 그의 모습, 그러나 그의 지휘는 특별한 감동을 준다. 너무나 급작스럽게 막을 내리는 오페라, 정명훈은 몇몇 연주자들과 악수를 나누며 무대 뒤로 사라진다. 그리고 곧, 무대 아래 오케스트라 석이 아닌, 무대 위에 그가 나타난다. 한없이 겸손한 자세로 무릎을 꿇어 오케스트라에 감사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다시 한 번 섬세하기 이를 데 없는 그의 감성을 느낀다. 아름다운 대가(大家)의 모습에 마음이 찡하다.

스칼라의 공연이 끝나는 시간은 대략 밤 11시에서 12시 사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길을 건너 갈레리아를 지나 두오모 광장으로 나간다. 밤늦은 시간에도 갈레리아 안에는 스칼라 극장에서나오는 손님들이 저녁을 먹을 수 있도록 문을 열고 기다리는 리스토란테들이 있다. 두오모 광장으로 나오면 그 많던 사람들이 어느새 여기저기 흩어지고 없다. 두오모 지붕 꼭대기의 마돈니나(황금성모상)가 어둠을 환하게 밝혀주는 가운데 밀라노의 밤은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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