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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이솝우화

트이로프 지음 | 스마트비즈니스
뜻밖의 이솝우화

트이로프 지음

스마트비즈니스 / 2008년 07월 / 184쪽 / 10,800원

양치기 소년과 거짓말


어렸을 때 어찌어찌하다가 받은 정신적 쇼크 때문에 거의 강박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한 소년이 있었다. 사람들은 소년의 거짓말이 너무 상습적이었기 때문에 무슨 일을 맡겨도 도무지 미덥지가 않았다. 그래서 생각다 못한 동네 사람들이 설마하니 이런 큰 거짓말이야 하겠냐 싶어서 맡긴 임무가 양떼를 지키는 일이었다. 그런데 소년은 새로 생긴 이 일이야말로 거짓말 솜씨를 신나게,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기가 막힌 기회라고 생각했다. 소년은 꼭 늑대가 양떼를 공격하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목청껏 "늑대다! 늑대! 늑대가 나타났다!" 하고 소리쳤다. 동네 사람들은 소년의 고함소리를 듣고 부랴부랴 양떼가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하지만 늑대는 고사하고 늑대 그림자도 구경할 수 없었다. 얼굴이 빨개지기는커녕 오히려 동네 사람들을 꾸짖는 투로 소년이 말했다. "왜 그렇게 오래 걸렸어요? 혼자서 늑대를 쫓아내다 물려 죽을 뻔했잖아요!"



다음날 양치기 소년은 또 다시 거짓으로 "늑대다! 늑대!"를 외쳤고, 사람들은 다시 헐레벌떡 소년을 구하러 달려왔다. 물론 늑대는 보이지 않았다. 어, 이것 봐라? 그제야 사람들은 이 녀석이 옛날 거짓말 버릇이 다시 또 도진 게 아닌가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소년은 사람들의 의심이 싹 가실 정도로 오히려 당당하게 선언하는 것이었다.



"정말 자꾸 이렇게 어슬렁어슬렁 오시면 나도 이 일을 그만두겠어요. 날마다 혼자서 무시무시한 맹수들과 싸우느라고 목숨을 거는데, 어르신들은 그저 소풍 오는 식으로 오시면서 여기도 잠깐 멈춰서 꽃도 꺾고 저기도 잠깐 멈춰서 경치도 구경하고 그러시니 말입니다."



소년의 말에 기가 질린 마을 사람들은 다음에는 진짜 신속하게 달려오마 약속했다. 그런데 바로 그날 밤 늑대들이 새까맣게 몰려와서 양떼들을 공격했다. 이쪽저쪽 사방에서 "늑대다! 늑대!" 난리였다. 그동안 은근히 그 거짓말쟁이 소년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었던 동네 사람들은 다른 양치기들의 고함소리는 싹 무시하고 오직 그 거짓말쟁이 양치기만은 구하러 바삐 뛰어갔다. 동네사람들의 재빠른 행동 덕분에 그 양치기 소년과 거기 있는 양떼만은 아무 탈 없이 무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곳의 피해는 엄청났다. 어떤 책임감 강한 양치기는 자기 양떼를 지키다가 심하게 물린 끝에 광견병에 걸려 고통스럽고 상상하는 것도 끔찍한 죽음을 맞이했다.



벌과 벌새

누가 먼저 꽃밭을 찾아냈는가를 놓고 벌새와 벌이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먼저 찾아낸 쪽이 그 꽃밭 전체의 꿀을 빨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한참을 옥신각신한 끝에 분을 이기지 못한 벌이 침을 드러내서 상대를 찌르려 했다. 벌의 침을 슬쩍 피하면서 벌새가 말했다.



"이 멍청한 벌레야! 나를 찌르고 나면 너도 죽게 된다. 죽고 나면 꿀이 다 무슨 소용이냐!" 잠시 멈칫하더니 벌이 물었다. "죽어? 죽는 게 뭔데?" 벌이 정말로 그 말뜻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는 벌새가 말해주었다.



"그러니까 말이다. 죽는다는 건 다시는 아름다운 경치도 못 보고, 향기로운 꽃 냄새도 못 맡고, 맛있는 꿀도 못 따고, 다른 친구하고 붕붕 수다도 못 떨게 괸다는 뜻이야. 게다가 날지도 못하고 더듬이를 움직일 수도 없어. 그뿐인 줄 아니? 다리와 날개와 몸이 바슬바슬 말라서 결국에는 바람에 날려가고 마는거야. 그걸 몰랐단 말이야?"



"저런, 끔찍하구나!" 얼굴 근육이 경련을 일으킬 정도로 화들짝 놀란 벌이 얼른 벌통으로 날아 돌아갔다. 꽃밭은 그냥 벌새한테 넘겨주고서. 며칠 동안 벌통 한 구석에 웅크리고 틀어박힌 채로 벌은 먹지도 않고 동료들과 얘기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든 죽는 것만 모면할 수 있다면 하고 벌벌 떨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생각이 났다. 처음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을 때, 죽음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볼 걸 그랬다는 생각이 난 것이다. 벌은 그 길로 벌집을 나와 벌새를 찾아 날아갔다. 자기한테 죽음을 가르쳐주었던 스승을 만나자 벌이 말했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 스승님께서 죽음에 대해 알려준 충격적인 내용 때문에 그동안 몹시 괴로웠습니다. 그땐 너무 놀라서 더 여쭤본다는 걸 그만 깜빡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이렇게 여쭙니다만, 그럼 만일 제가 침을 사용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거죠? 그래도 죽어야 하는 건가요?"

벌새가 웃으면서 말했다.



"너 아주 대단한 충격을 받았던 모양이구나. 자기가 영원히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된 생물은 누구든 그런 충격을 받게 되지." "그렇다면 피할 수 없는 숙명입니까?" 벌의 어리석은 질문에 짜증이 난 벌새가 툭 쏘듯이 대답했다.



"그렇다니까! 하지만 네가 어떤 식으로 끔찍하게 죽을지는 미리 알 수 없어. 저녁 공기를 가르고 휙 나타난 딱새한테 한입에 꿀꺽 삼켜질지도 모르고, 커다란 말벌이 너를 마비시켜 놓고 네 몸 속에 알을 낳으면, 알에서 깬 말벌 새끼들이 살아 있는 너를 야금야금 먹을지도 모르지. 그뿐이 아니지. 운이 나빠서 해충을 잡으려고 뿌려대는 살충제에 조금이라도 입이 닿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그땐 네가 가진 그 원시적이고 조잡한 신경이 느낄 수 있는 최대한의 고통 속에서 그냥 끽하고 마는 거야."

"설마 제가 파랗게 질리는 모습을 즐기려고 지어내신 이야기는 아니겠죠?" 벌이 결심한 듯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어차피 죽을 목숨, 무의미하게 죽느니보다 나와 동족을 위해 침이라도 쏘고 죽는 게 낫겠군요." "맞아, 바로 그거야." 벌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벌은 몸을 날려 침을 벌새의 목에 꽂아 넣었다. 그렇게 벌은 행복하게 죽어갔다.



사자와 생쥐

자기밖에 모르는 종족 특유의 이기적 성향을 가진 사자 한 마리가 사냥꾼들한테 잡혀서 굵은 밧줄로 꽁꽁 묶이는 신세가 되었다. 성난 사자의 포효를 듣고서 생쥐 한 마리가 쪼르르 달려왔다. 남을 도울 수 있다는 뿌듯함에 커다란 자부심을 느낀 생쥐는 왜소한 자기 몸집도 잠시 잊고 동정심을 듬뿍 담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 상한 데는 없으신지요? 뭐 좀 도움이 될 일이라도?"



사자가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가, 인마! 딴 데 가서 알아보든지 말든지 해! 제길, 가뜩이나 골치가 아파 죽겠는데, 나무 조각이나 갉작거리는 너처럼 조그만 녀석하고 시시한 이야기나 하고 있을 시간이 어디 있겠냐!" 사자의 무례한 말씨에 조금도 언짢아하지 않고 생쥐가 끈덕지게 물었다. "문제가 뭔데요? 전 그냥 남들을 돕는 일이 좋아서 그러는 거라고요."



사자가 성이 나서 씨근거렸다. "자, 봐. 지금 난 여기 이렇게 꼼짝없이 묶여서 동물원에 끌려갈 때만 기다리고 있는 형편이라고. 거기 가서 여생을 우리 안에 갇힌 몸으로 보내게 될 거란 말이야. 인마, 나 같은 천하장사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데 너 같은 녀석이 날 도와준다니 내가 얼마나 가소롭겠냐?"



사자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생쥐가 따뜻한 어투로 말했다. "아하, 그 정도라면 걱정 마세요. 금방 밧줄을 갉아서 끊어드릴 테니 두고만 보세요." 앞니까지 두세 개씩 상해가면서 한참을 고생한 끝에, 생쥐는 마침내 튼튼한 밧줄 하나를 다 끊어버리는 데 성공했다. 그리하여 사자는 남아 있는 밧줄을 풀고 자유의 몸이 되었다.



사자는 거의 울기 일보직전이었다. "오, 이보게 친구! 자네가 내 목숨을 구해줬어. 평생 그 은혜는 잊지 않겠네. 자, 같이 가세. 평생토록 편안히 살게 해줄 테니." "아 뭘 또 그런 걸 가지고 그러세요. 별 것도 아닌데요." 상당히 우아한 척하는 생쥐의 말이었다. 그래도 사자는 간절히 부탁했다. "정히 그러면 우리 식구들이라도 감사의 인사를 할 수 있게 해주게나."



생쥐가 좋다고 하자 사자는 가장 폭신폭신한 갈기를 골라 생쥐를 앉히고서 숲 속으로 달려갔다. 사자 가족들은 죽은 줄로만 알았던 가장이 다시 돌아온 걸 보고 뛸 듯이 기뻐했다. 서둘러 생쥐를 주빈으로 모시고 성대한 잔치를 벌였다. 아뿔싸! 그런데 사단은 엉뚱하게도 이상한 데서 일어났다. 발효한 코코넛 주스를 홀짝거린 게 화근이었다. 기분이 알딸딸해진 생쥐가 이 손님 저 손님 붙들고 막 떠벌리고 다녔으니 어떻게 되었겠는가?



"저 좀 보세요. 선생도 저 얼간이 꼴을 봤더라면 아마 가관이었을 겁니다. 저 바보가 글쎄 힘만 셌지, 밧줄에 묶이니까 무서워서 벌벌 떨기만 하더라 이 말입니다. 그래서 내가 풀어줬지요. 그러니까 완전히 죽을 목숨 하나 살려줬다 이거죠." 이 말을 들은 사자는 미처 앞뒤 가릴 것도 없이 그 무시무시한 발을 들어 은인을 내려쳤다. 호떡보다도 더 납작해진 불쌍한 생쥐의 시체는 벌판에 던져져 개미들의 먹이가 되고 말았다.



돼지와 사자

숲 속을 덮친 갑작스런 홍수 때문에 겁에 질린 돼지 한 마리가, 어떻게든 목숨을 건지려고 물에 떠다니는 통나무에 올라탔다. 그런데 이런 가슴 철렁한 일이 있나! 역시 물에 빠지지 않으려고 버둥거리던 사자가 같은 통나무에 올라탔던 것이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돼지가 말했다.



"존경하는 동물의 대왕이시여, 우리가 이 통나무를 나눠 타게 된 것도 운명인 모양입니다. 바라옵건대 제 말씀을 좀 들어주십시오. 대왕의 식욕이 이성보다 앞선대서야 말이 되겠습니까? 우린 지금 무지무지하게 불안한 밑창을 딛고 있습니다. 까딱 잘못해서 다투기라도 하는 날에는 둘 다 강바닥에 곤두박질치고 맙니다."



돼지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사자가 맞장구를 쳤다. "정말로 현명한 말이다. 너를 잡아먹으려는 짓 따위는 절대로 하지 않겠다. 너 죽고 나 죽는 일이 일어나선 안 되니 말이다."

사자의 말을 듣고 어느 정도 안심이 됐는지 돼지가 다시 입을 열었다. "훌륭하십니다. 그래도 혹시 식욕이 언제 어떻게 발동할지 모르니, 그때마다 방금 하신 결심을 자꾸 되새기도록 하십시오."



그리하여 사자와 돼지는 통나무 위에서 하룻밤을 사이좋게 평화로이 지냈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사자가 말했다. "참 이상한 꿈도 다 있군. 이봐, 꿈에 내가 읍내의 어떤 활기찬 광장을 찾아갔는데 말이야, 사람들이 나를 전혀 못 알아보는 거야. 아 글쎄, 그래서 여기저기 막 싸돌아다녔지. 그러다가 사람들이 유태교 회당에 안식일 예배를 드리러 들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어. 어쩌다가 나도 그냥 끼어들게 되었지. 기도야 무슨 말로 하는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지만, 어쩐지 기분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어."



돼지는 속으로 슬며시 미소가 떠올랐지만 짐짓 겉으로는 아무 내색도 하지 않았다. 햇볕이 내리쬘수록 사자는 배가 엄청 고파 죽을 지경이었으나 돼지 쪽으로는 고개 한 번 돌리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다시 사자가 말했다. "아, 정말 이상하군. 어젯밤 꿈의 연속 같은데 말이야. 배경과 장소까지 똑같았지 뭔가. 그런데 이번에는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어. 가톨릭 성당에서 성(聖) 금요일 미사를 거행하고 있는 모양이더군. 그래서 거기를 또 갔지. 라틴어였으니까 당연히 미사는 단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했어. 그런데도 그냥 마냥 즐겁기만 한 거야. 허, 그것 참!"



돼지는 다시 한 번 회심의 미소를 마음속으로 지었지만 역시 이번에도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사자는 입장이 그렇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옆 친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말았다 안절부절 못 하는 꼴이 영 말이 아니었다. 그날 밤 사자는 잠을 자면서도 계속 으르렁거렸다.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사자가 돼지에게 말했다.



"거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야. 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말이야. 꿈이 계속 이어졌어. 또 거기였는데, 이번에는 내가 교회로 쑥 들어가지 뭔가. 종파는 확실치 않았지만 이제 예배를 우리말로 진행하더군. 세 꿈 중에서 어제가 가장 즐거웠어."



돼지는 이 말을 듣자마자 기분이 우울해져서 말했다. "이제 헤어져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그럼 안녕히!" 사자가 소리쳤다. "잠깐! 난 약속을 지켰어. 네 손끝 하나 건들지 않았잖아. 그런데 왜 안전한 통나무를 떠나려고 하지?"



돼지가 대답했다. "사실 전 개인적으로 특별히 좋아하는 종교도 없고 싫어하는 종교도 없습니다. 이 점은 꼭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렇지만 말입니다. 유태인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고, 가톨릭 신자들도 성금요일만큼은 돼지고기를 안 먹습지요. 그러나 대왕님은 이제 그런 종교를 다 버리고 언제라도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는 다른 종교로 개종을 하셨잖습니까. 그러니 이젠 넘실거리는 강물 쪽이 대왕님 곁보다는 낫겠지요."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돼지는 통나무를 떠나 강물로 풍덩 뛰어들었다. 통나무에 혼자 남은 사자야 재주껏 허기를 채우라 하고.



사자와 여우와 사슴

이제 늙어서 사냥을 할 기력조차 없는 사자 한 마리가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사자굴 안에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그때 마침 여우 한 마리가 그 앞을 지나게 되었다. 절박한 심정으로 사자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이보게 친구, 자네가 정말로 소문만큼 영리하다면 이 굴 안으로 먹잇감을 유인해서 내 앞까지 끌고 올 수 있어야겠지? 그렇다고 전처럼 기껏 길 잃은 생쥐를 잡아오거나 새 둥지의 알을 도둑질해오는 정도로는 안 돼. 전리품은 똑같이 나눠주고 양껏 먹게 해줌세. 어떤가, 해보겠나?"



늙긴 했지만 사자의 동지가 되어 손해 볼 건 없겠다고 생각한 여우가 말했다.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만 한번 해보죠."



그러고 나서 여우는 봉을 잡으러 숲 속을 들어갔다. 시냇물에 목을 축이면서 물에 비친 화려한 자기 모습에 은근히 도취되어 있는 사슴을 본 여우는, 때마침 딱 맞는 후보를 찍었다고 생각했다. 여우가 사슴에게 말을 건넸다.



"굉장한 소식이야. 동물의 왕 사자가 지금 힘이 다 빠져서 오늘내일 하는데, 너더러 자기 뒤를 이어서 왕이 되어달라는 거야. 그래서 나보고 너한테 알려주랬어."



어쩐지 부쩍 의심이 생긴 사슴이 말했다. "넌 영악한 친구니까 모르긴 몰라도 무슨 꿍꿍이가 있을 거야. 그래, 안 그래?" 사슴의 힐난을 받은 여우가 짐짓 분개한 어조로 말했다. "그게 그러니까, 사자가 어쩔 수 없어서 선택을 한 거지. 사자한테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걸 왜 모르냐? 그걸 모르면 너도 마찬가지로 바보야."



자기 뿔을 자랑삼아 둥그렇게 앞으로 한번 휘잉 돌리면서 사슴이 말했다. "하긴 그래. 외모로 보나 지혜로 보나 인품으로 보나, 널리 존경을 한 몸에 모으고 있는 내가 왕이 되는 게 당연하지. 하긴 허우대가 벌써 제왕의 풍모잖아. 여우, 네 말이 맞긴 맞아. 사자도 아마 나를 뽑는 수밖에는 별다른 도리가 없었을 거야."



그러자 이번에는 여우가 재촉을 해대는 것이었다. "자, 그럼 빨리 사자한테 가자. 그래야 사자가 자기 뒤를 이을 통치자로 자네를 지명해 하루라도 먼저 만천하에 발표를 할 수 있지 않겠어? 자, 가자고."

아무 의심도 남아있지 않았던 사슴은 여우의 발뒤꿈치만을 따라갔다. 드디어 사자의 굴에 이르렀다. 이들을 본 사자가 사슴을 향해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덤벼들었다. 하지만 노쇠한 사자는 기껏 사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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