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공지영 지음 | 오픈하우스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공지영 지음

오픈하우스 / 2008년 3월 / 256쪽/ 12,000원

그게 사랑인 줄 알았던 거야




(중략) 위녕, 가끔 엄마는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를 때나 시집을 뒤적여 사랑의 시들을 읽을 때 어쩌면 세상에는 이렇게 슬픈 사랑만 있을까 하고 놀랄 때가 많다. 생각해 봐, 사랑의 기쁨을 노래한 시의 수와 슬픔을 노래한 시의 수를.... 왜 그럴까 생각해봤는데 사랑은 늘 어렵고 그리고 떠나가야 비로소 그 진가를 아는가 싶기도 하고.



아주 오래전 이야기인데 엄마가 싫어하는 사람이 엄마에게 계속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압박을 가해온 적이 있었다. 잘 알지도 못하고 더구나 얼굴도 전혀 마음이 안 드는 사람이었지. 몇 번의 설득과 대화 끝에도 막무가내를 부리며 '사랑한다'고 하길래, 나중에는 그 사람 얼굴만 보아도 미움이 솟구쳐 오르는 거야. "사랑? 좋아요. 사랑하라구요. 멀리서 하면 되잖아요. 그걸 왜 꼭 내 곁에서 하려는 거죠? 노래방에 가 봐요. 사랑 노래들을 한번 보라구요. 모두 다 멀리서 사랑하잖아요!" 그 사람,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그 사람, 얼마나 엄마가 미웠을까, 하는 생각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엄마가 많이 아프고 그래서 많이 큰 후에나 들더구나.



엄마 친구 한 명은 훌륭한 스님들하고 훌륭한 동료들하고 생명 평화를 위한 국토순례를 하는데 너무도 진지하고 너무도 고생스러운 순례였다고 해. 그 순례 막바지에 이르자 그 친구는 생명 이야기만 들으면 막 죽고 싶어지고 평화 이야기만 들으면 아무나 붙잡고 막 싸우고 싶어졌다는 이야기를 했지. 이야기를 들을 때는 좀 너무한 것 아닌가 싶었는데 엄마가 엄마를 사랑한다는 그 남자만 보면 미움이 솟구쳐 오르는 걸 보며 그 친구를 이해하게 되었어.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더 말할 것도 없이 위대한 시인. 그런데 솔직히 시들은 좀 난해하고 어려웠어. 그런데 어느 날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책을 읽게 되었고, 그 이후로 그 책은 성경 다음으로 엄마가 자주 펼쳐보는 책이 되었단다. (중략) 엄마는 그때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마음이 많이 아팠을 때였어. 그때 그 구절을 발견하게 되었단다. 엄마보다 오래 아팠고 크게 성장했던 그의 말을 오늘은 에누리 없이 들려주고 싶다. 들어볼래?



비록 부질없고 싸구려 연대감이지만 고독을 그것과 바꾸고 싶을 때도 있고, 형편없고 보잘것없는 사람이라도 좋으니 겉치레라도 그들과 함께 고독을 나누고 싶을 때가 있는 법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런 시간들이 고독이 자라나는 때일지도 모릅니다. 고독이 자라나는 것은 소년이 성장하듯 고통스러우며, 봄이 시작되듯이 슬프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은, 이것 하나뿐입니다. 고독, 크고도 내적인 고독뿐입니다.



소년이 성장하듯 고통스러우며, 봄이 시작되듯이 슬픈, 그 고독의 관문은 참으로 열기 어렵다. 그러나 릴케가 이야기하고 있듯이 그것을 열어내지 못하면 우리는 소년 다음의 성장으로도 봄 다음의 꽃밭으로도 아마 도달하지 못하겠지. 가끔씩 마음이 쓸쓸할 때, 그의 말대로 비록 부질없고 싸구려 연대감이지만 고독을 그것과 바꾸고 싶을 때, 형편없고 보잘것없는 사람이라도 좋으니 겉치레라도 그들과 함께 고독을 나누고 싶을 때, 그것이 단순한 외로움이 아니라 고독이 자라나는 때이며 고통스럽고 슬프지만 반드시 견뎌야 하는 것이라는 다짐을 하는 일은 너무 어려워. 하지만 이런 길이 있다는 것은 우리를 위로한다. 비록 우리가 열 번에 열 번을 다 싸구려 위안에 몸을 맡긴다 해도, 우리가 이 어려움을 알고 있으면 어느 땐가 우리는 그 고독과 성장의 관문을 열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어느 페이지를 펴도 릴케가 생을 지불하고 얻은 통찰력과 신에게서 받은 천재성이 버무려져 우리들 인생의 모든 문제에 깊은 목소리로 대답하고 있는 게 바로 이 책이지.



보통, 사람들에게 삶이 갑자기 쉬워지고 가벼워지고 즐거워졌다면 그것은 벌써 그들이 진지한 삶의 현실성과 독자성을 느낄 수 있는 힘이 끝났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삶의 의미로 봐서는 결코 발전이라고 할 수 없으며, 삶의 모든 가능성으로부터의 결별입니다.... 어려움을 사랑하고 그것과 친해지고 배워야 합니다. 어려움 속에는 우리를 위해 기꺼이 애써주는 힘이 있습니다.



엄마가 혼란스럽고 힘들었던 시간 엄마는 이런 구절들을 읽으며 위안을 받았다.



슬픔이란 뭔가 새로운 것 알려지지 않은 것이 들어오는 순간입니다. 그 순간 우리의 감정은 깜짝 놀라 입을 다물고 우리 내부에 있는 모든 것들은 뒤로 한 발 물러나 거기에 고요가 생겨나며 아무도 모르는 새로운 것이 그 가운데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온갖 슬픔은 긴장의 순간인데 우리들은 그것을 오히려 마비로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들은 고독합니다. 다만 그렇지 않은 것처럼 위장하거나 행동할 뿐입니다.



그리하여 릴케는 사랑에 대하여, 어떤 값싼 충고로도 다 도달할 수 없는 그런 통찰을 내어놓는다.

사랑하는 것 또한 좋은 일입니다. 사랑 역시 어렵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우리들에게 부과된 가장 어려운 일일지 모릅니다. 그것은 궁극적인 마지막 시련이고 시험이며 과제입니다. 그런 점에서 젊은 사람들은 아직 사랑할 능력이 없습니다. 사랑도 배워야 하니까요. 모든 노력을 기울여 고독하고 긴장하며 하늘을 향한 마음으로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사랑이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승화되고 심화된 홀로됨입니다.



사랑이란 무턱대고 덤벼들어 헌신하여 다른 사람과 하나가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랑이란 자기 내부의 그 어떤 세계를 다른 사람을 위해 만들어 가는 숭고한 계기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보다 넓은 세계로 이끄는 용기입니다. 사람들은 오히려 그들의 결합을 행복이라 부르고 자신들의 미래라 부르기도 합니다만, 그렇게 되면 각자는 다른 사람 때문에 자기 자신까지 잃게 되며, 상대방과 또 다른 사람까지 잃게 됩니다. 그리하여 남은 것이라고는 구역질과 실망, 빈곤뿐입니다.



위녕. 엄마는 이 구절을 읽으며 한참 동안 멍해졌다. 엄마가 사랑이라는 것을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릴케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다른 이를 위해서 자기 내부의 어떤 세계를 만들어야 할 계기를 깨닫지는 못했던 거 같아. 사랑하면 무조건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 극장에도 같이 가고, 도서관에서 같이 가고, 산에도 들에도 바다에도.... 동성애자였다면 화장실까지 같이 가자고 했을 지도 몰라. 그게 사랑인 줄 알았으니까 말이야. 그러니 아마도 엄마는 사랑의 입구에서 서성이다가 그냥 돌아서 나오는 바보 같은 생을 살았는지도 모르겠구나. 나를 들여다보지 않고 남을 들여다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너희들을 위해서 엄마의 어떤 세계를 비웠던 것은 맞아. 너희들의 자리를 만들었고 억지로지만 마음을 넓혀야 했지.



상처받을까 하는 두려움은 잠시 미뤄두자. 예방주사도 자국이 남는데 하물며 진심을 다하는 사랑이야 어떻겠니. 사랑은 서로가 완전히 합일하고 싶은 욕망, 그래서 두 살은 얽히고 서로의 살이 서로를 파고들어 자라는 과정일 수도 있단다. 그러니 그것이 분리될 때 그 고통은 얼마나 크겠니? 내 살과 네 살이 구별되지 않고 뜯겨져 나가며 찢어지겠지. 비명을 지르고 안 지르고는 너의 선택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픈 게 당연한 거야. 네가 오래 전 남자친구 이야기를 하면서 '엄마 그래도 난 쿨했어'라고 이야기했을 때 엄마가 얼마나 걱정스러운 눈으로 널 바라봤는지 기억나니? 만일 네가 그와 헤어지는데 그저 쿨한 정도로만 아팠다면 아마 다음 두 가지 중의 하나였을 거야. 그와 한 영혼이 되고 싶지 않아 진정 마음의 살을 섞지 않았든지, 아니면 아픔을 느끼는 네 뇌의 일부가 손상되었든지.



위녕. 사랑은 어려운 일. 그러나 사랑은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할 수 있는 최상의 일이란다. 서두르지 마라. 다만 언젠가 사랑이 왔을 때 덤벼들어 그것을 망치지 않도록 언제나 네 자신의 성숙을 염두에 두렴. 이제 몇 달이 지나면 너는 스무 살이 되겠구나. 사랑하렴. 또 사랑하고 또 사랑하렴. 남자든 친구든, 엄마든 동생들이든…. 그리고 아무의 손길도 받아보지 못한 외로움 속에 내팽개쳐진 가여운 사람이든. 그리고 명심해라. 진심을 다해 네 마음을 열면 그 다음엔 사랑이 네게 비밀의 길을 열어줄 거야. 자 그러니 오늘도 사랑을 배우는 하루가 되어보자!



네가 학교에 간 사이 엄마는, 뜨거운 차를 가져다 놓고, 끝없이 불안하고 고통으로 가득 차 있는 세상과의 교통을 원하는 전화기를 잠시 꺼두고, 일시적인 슬픔보다는 훨씬 더 괴롭지만 보다 위대한 것에 도달할 기회와 영원으로 가는 용기를 주는, 진정한 운명을 기다려 본다. 인간으로 태어난 것의 의미를 생각하다가 외롭고 괴로운 때 릴케는 나의 친구가 되어준다.



위녕, 이런 책을 읽을 수 있는 겨울은 얼마나 행복한지! 이런 말을 편지로 받아 줄 수 있는 딸을 가진 엄마는 얼마나 행복한지! 오랜만에 수영복을 꺼냈더니, 수영복이 너무 작아진 거야, 원. 그래서 수영복을 사러 가려고 해. 내일부터 진짜 수영을 하려고. 자, 오늘도 놓은 하루!



네가 어떤 인생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위녕, 이제 겨울이 온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아침에는 차가운 겨울비가 내리는 구나. 이제 모든 이파리들이 지고 생명은 땅 속으로 숨어들겠지. (중략) 괜히 일없이 싱숭생숭하던 마음도 가라앉고, 그러니 책을 펼 수 있는 계절이 온 거야. 그건 다른 말로 하면 책장을 여는 시간, 그러니까 무언가에 대해 나보다 더 골똘히 생각해 온 사람, 나와는 다른 각도로 세상을 보아온 사람에게 마음을 여는 시간, 약간의 갑갑함을 넘어가면 다가오는 고요 속에서 우리가 성장하는 시간이 온다는 의미이기도 하지.

엄마는 이번 주말 내내 『손녀딸 릴리에게 주는 편지』를 읽었다. 엄마의 마음이나 저자 맥 팔레인의 마음이나 얼마나 같던지. 너도 그런 적이 있니? 가끔 책의 저자의 말투와 생각이 내 것과 너무 같아서 깜짝 놀라는 그때 말이야. (중략) 엄마는 엄마보다 22살 많은 캠브리지 대학 교수인 맥 팔레인에게 내내 그것을 느꼈고 오랜만에 즐거운 독서를 했다. 이 세상과 어린것들에 대해 신중하고 사려 깊은 눈길을 보내며 밤늦도록 서재에서 서성거리는 남자는 얼마나 멋있는지. 멋있는 남자가 쓴 글을 읽는 겨울밤은 빛깔 고운 파시미나를 등에 두른 것처럼 얼마나 따스한지.



(중략) 이 교수는 책이 잔뜩 쌓인 서재에 앉아 밤이 늦도록 손녀딸에게 편지를 쓴다. 그때 그의 연구실이나 서재 창밖으로 커다란 오동잎이나 후박나무 이파리가 뚝뚝 지고 있을까. 창밖으로는 스산한 비가 토도도독 유리창에 부딪히는데 그는 아마 밀크와 설탕을 듬뿍 넣은 향기로운 홍차를 마실 지도 몰라.



이 편지를 받는 그의 손녀 릴리를 생각해본다. 릴리는 아마 네 또래가 아닐까? 그런데 실은 이 편지를 받는 릴리와 이 노교수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어. 릴리에게는 맥 팔레인 교수가 자신의 엄마의 의붓아버지이니까 말이야. 말이 복잡한가? 그러니까 릴리의 엄마가 8살 꼬마 아이일 때 맥 팔레인 교수는 릴리의 외할머니와 결혼한 거지. 하지만 엄마는 이 편지를 읽어나가는 동안 이 노교수가 보낸 편지를 받는 십대의 주근깨박이, 눈이 반짝이는 소녀를 그려보았단다. 편지를 쓰는 이나 받는 소녀나 그 눈은 아마 사랑으로 빛났을 거라는 걸 한 번도 의심해보지 않고서 말이야. 핏줄? 그건 계승할 왕관과 물려줄 영토를 지닌 사람들의 일이라고 엄마가 여러 번 핏대를 올리는 일을 너는 보았겠지? 그런 것도 없는 우리는 뭐랄까, 하는 수 없이 좀 더 형이상학적이고 정신적인 일에 골몰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니?



이 할아버지는 문화인류학자. 대학에서 30년 이상 학생들을 가르쳐왔고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다양한 문화를 직접 눈으로 목격한 사람이다. '릴리야,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행성에 사는 외계인이 지구를 방문했다고 가정해보자'라는 말로 이 책은 시작된다. 엄마도 가끔 이런 생각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 너도 알지. 이런 생각의 이점은 엉뚱해서 재미있다는 것 이외에도 우리에게 너무 당연해서 얼마간 지루하게 느껴졌던 것들을 당연하지 않게 환기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중략) 책의 첫 구절에서 나와 같은 생각을 발견한다는 것은 만나자마자 내가 고민하던 문제를 말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만큼 흥미로운 일이야. 맥 팔레인 교수는 편지를 쓰게 된 동기를 이렇게 이어가고 있어.



릴리야, 나는 네 할아버지로서, 네가 세상을 이해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이야기들을 해주고 싶다. 혼란스러운 이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당혹스러워하고 있을 너를 위해서 말이다. 나 또한 너만큼이나 혼란스러웠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가끔은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는 선택의 기로에 서서 누군가 길을 정해주기를 바란 적도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어쩌면 이렇게 편지를 쓸 용기를 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내가 영원히 네 곁에 있지 못할 것이므로 지금 네게 편지를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생각했다. 네가 아무리 나를 불러도 대답이 없는 때가 분명히 올 것이기에.



바로 이 대목에서 엄마는 맥 팔레인 박사가 내 앞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맞아요, 맞아' 하며 중얼거렸다. 게다가 '네가 아무리 나를 불러도 대답이 없는 그때' 라는 표현에서 그만 울컥하고 말았지. 그가 얼마나 릴리를 오래 바라보았는지, 릴리는 얼마나 할아버지를 불렀는지, 알 것 같았거든. 28개의 주제로 쓴 이 편지는 저자의 손녀 릴리나 너말고, 엄마에게도 호기심 어린것들이었어.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지.



나는 누구일까? / 사랑하면 꼭 결혼해야 할까? / 섹스는 왜 하는 걸까? / 가족 간의 벽은 왜 생기는 걸까? / 사람은 왜 잔인해지는 걸까? / 친구란 무엇일까? / 왜 신은 인간의 고통을 보고만 있는 것일까? / 왜 끊임없이 공부만 해야 하는 것일까? / 언제나 행복하게 사는 방법은 무엇인가? / 왜 학교는 엉뚱한 생각을 싫어하는 걸까? / 아프리카에서는 왜 4초에 한 명씩 굶어죽을까? / 법 대로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까? / 아이는 꼭 낳아야만 할까?



물론 이 책이 이런 근본적이고 심오한 물음에 속이 시원한 대답을 해 줄 리는 없다. 그것은 누구도 해 줄 수 없는 것이니까. 대신 저자는 대답 대신 우리에게 왜 질문하지 않느냐는 다소 엉뚱한 말을 하고 있구나.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의문을 품지 않고 질문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자신이 배운 삶의 가치를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그렇게 되면 어느 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는 것이 된다. 절대적이고 당연한 가치들이 존재하는 곳에서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네가 온전히 너의 삶을 살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너와 네가 사는 세상을 낯선 시선으로 볼 필요가 있다. 좀 더 객관적인 눈으로 인생을 멋지게 설계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는 세계 여러 나라를 몇 십 년 동안 여행하면서 여기에서 당연한 것이 저기에서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깊이 체험한 듯하다. 말하자면 '사랑하면 꼭 결혼해야 할까?' 라는 글에서 결혼이라는 낱말과 개념이 아예 없는 중국 남방의 한 부족이야기를 꺼낸다. '우리'라는 개념이 잘못 적용될 경우, 거기서 제외되는 '그들'에게 인류가 얼마나 터무니없이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민족이나 국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