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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

신달자 지음 | 민음사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

신달자 지음

민음사 / 2008년 6월 / 258쪽 / 9,500원

이제야 나는 너에게 진실의 입을 연다




때때로 나는 내 결혼 생활에 대해 말할 수 없이 말하고 싶어서 간절히 목이 타올랐는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용기가 없었고 한번 입을 열면 완전히 무너져 버릴 것 같은 자신 때문에 인내를 가지고 참아 왔는지 모른다. 물론 나 때문에 참았고 지금 나 때문에 말의 벽을 허문다. (중략) 너와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나는 이제야말로 네게 이야기를 해도 되겠다는, 아니 무슨 이야기라도 해야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린 오래 만나 왔고 많은 감정을 나누며 소위 대화라는 것을 하면서 네가 나의 제자가 아니라 큰딸처럼 생각되기도 했다. 네가 소설을 쓴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거야. 한 개인이 스스로의 운명과 전투를 벌이는 것에 대해 너는 누구보다 다정히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인지 모른다. (중략)

그러나 반드시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 내가 나에 대해 말하고 싶은 순간이 왔다는 것이다. 왜냐고? 그것은 바로 삶의 흐름에서 내가 느끼는 것이지. 사실 나는 그 동안 너무나 많이 나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물론 단편적으로 너에게 말하기도 했어. 그러나 그 엄청난 내 생의 줄거리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늘 생각부터 숨이 막혀 말문을 열 수가 없었던 거야. 나는 지금 해도 지지 않았는데 두어 잔의 술을 마셨다. 술 한 잔도 안 하면 어찌 그 이야기를 꺼내겠니.

운명을 받아 안다



1977년 5월 11일 12시 30분. 그가 쓰러졌다. 점심으로 국수를 먹던 중이었다. 전날 기분 좋지 않은 일이 있었고 우리는 별 웃음 없이 국수를 먹고 있었다. 전날 학생들과 속초로 여행을 다녀오면서 미역을 사 오기도 했던 그날은 내 생일이기도 했다. 내 생일날 그가 쓰러졌다. 나는 그가 혈압이 조금 높다고 들었지만 혈압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가 쓰러졌다. 국수를 먹고 있던 그냥 평범한 시간, 그가 무엇인가 말하려다 젓가락을 놓치면서 옆으로 기울어진 것은 아주 순간이었다.



으윽...... 뭐 그런 소리였는지 무슨 소리가 분명 들렸는데 그는 옆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그때였다. 나는 소리를 지르며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 찰나를 받아 안았다. 그래 그것은 찰나였다. 아마도 본능이었을까. 옆으로 기우는 그 순간 그의 머리를 받아 안은 것은 본능적 행동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 순간 운명을 안아 버린 것이다. 내가 운명을 받아 안았으므로 그의 머리가 땅에 떨어지지는 않았던 것이다.



(중략) 보통 뇌출혈이라 불리는 지주막하출혈 진단과 함께 나는 서대문 적십자 병원에서 환자를 집으로 데리고 가라는 명령을 받았다. 가망이 없다는 것이다. 앞으로 몇 시간이나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게 병원 측의 주장이었다. "집에서 죽게 하는 게 좋아요." 누군가 그런 말도 했다. 나는 발을 동동 구를 뿐 어떤 선택도 할 수 없는 채 누가 의사인지도 모르면서 흰 가운을 입은 사람마다 붙들고 애원을 했다.



내가 간곡하게 흰 가운을 붙잡고 애원을 했더니 그 흰 가운이 말했다. "그럼 조금 기다려요, 척수에서 물을 빼 보게요." 어찌 알겠는가. 척추에서 물을 뺀다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어떻게 알겠니. 나는 마치 그것이 치료라도 되는 양 다급하게 기다렸고 그 흰 가운은 척추에 주사기를 꽂았다. 그리고 몇 분 후 그 흰 가운은 큰 주사기 하나를 들고 와 그와 내 앞에서 말했다. "이봐요. 척추에서 나온 물이 붉은 것 보면 출혈을 했다니까요." 나는 그런 경우 척추에서 물을 빼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이미 늦었던 거야. 나의 무식한 행동은 그때부터였을까. 아니다. 쓰러진 그를 억지로 끌어 업고 택시를 탔던 것부터였는지도 모른다.



그때, 조금이나마 의식이 있던 남편이 가는 소리로 말했다. "나 집으로 데리고 가. 너라도 애들하고 살아야 되잖아." 나는 그때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남편은 이미 포기를 하고 있었던 거야. 자기를 위한 병원비를 하루치라도 절약하라는 배려이고, 앞으로 살아야 하는 나에 대한 염려가 담겨 있는 말이었다. 갑자기 그의 인생이 불쌍했다. 정열적으로 일할 수 있는 나이에 쓰러져 제대로 자기 뜻을 펴지도 못하고 낙오자가 되는 그 인생이 너무나 억울하게 느껴졌다. 어떻게 그 사람을 그렇게 급하게 보낼 수 있었겠니.



나는 그 순간 입술을 물었다. 이 사람을 살리자. 이 사람을 살리자. 내가 이 사람을 놓지 않으면 절대로 갈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반드시 이 사람을 살리겠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났을까. 결혼 생활 9년. 나는 사회라는 것을 아득히 먼 강 건너의 배경으로 두었을 뿐 콩나물 값을 깎는 진부한 아줌마로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아니, 바보 멍청이로 어떤 의식이나 비판도 없이 자기 학대를 하며 빨리 생명이 닳아 없어지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살고 있었다. 사실은 그런 정신적 불행감을 따진다면 어떤 상황이 와도 무서울 것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세 살짜리 막내아이에게 아버지가 없어지고 여든을 바라보는 어머니가 아들을 잃고 서른 다섯의 여자가 미망인이 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나는 내 눈의 촉수를 있는 대로 높여서 하늘을 보고 그리고 선택을 했다. "고려대병원으로......" 고려대병원으로 옮겨져 처리 면에서는 일이 잘 진행되었다. 남편의 스승이 총장님이셨고 그분이 곧이어 남편이 교수로 재직하던 숙명여대의 총장으로 부임하여 우리는 두 학교에서 하늘같은 덕을 보았다. 그런 것을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나의 선택은 옳았던 것이다. (중략)



중환자실에는 돌비가 내린다



중환자실은 하루 두 번 면회가 허락되었다.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중환자실의 풍경은 거의 연옥 아니 지옥이라고 해야 맞다는 것을. 보호자들은 이미 죽은 표정을 하고 있었고 오랜 전쟁 끝에 겨우 살아남은 난민 같은 모습은 누구랄 것 없이 같았다. 하루에 두어 번 죽은 사람이 실려 나갔다. 손바닥보다 조금 큰 창문을 통해 간호사가 가끔 보호자 이름을 부르는데 호명된 보호자는 대개 맥없이 울음을 터트리곤 했다. 환자가 죽은 것이다. (중략)



나는 하루 두 번 면회를 할 때 마지막 시간까지 그의 손을 잡고 있다가 나왔다. 그가 다시 깨어나리라는 기대보다는 이것이 마지막이다라고 생각하는 일이 더 많았다. (중략) 내가 무엇을 안 해 보았겠니. 그때 친구가 묵주를 들고 와서 자기는 어려울 때 묵주기도를 한다며 중얼중얼거렸다. 그리고 같은 날 병원 근처에 사는 친구의 어머니가 다시 성당 이야기를 하고 돌아갔다. "병원 문 앞에서 조금만 가면 성당이 있어요. 생각나면 가봐." 나는 이미 많은 것에 실망한 터라 그냥 듣기만 했다. 성당이라는 낯선 곳을 찾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사람들이 말하는 교회, 굿, 그리고 성당 과연 그런 곳에 구원이 있는 것일까. 나는 머리가 무겁고 아팠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그때 서른다섯이었다.



혜화동 성당을 가다



(중략) 나는 스무하루째가 되는 날 저녁 면회를 끝내고 다시 마지막 인사를 하고서 병원을 나섰다. "여보, 안녕......" 단 한마디를 하고 병실을 나왔다. 그냥 걸었다. 목적지도 없었다. 하염없이 걷다가 죽어 사라지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성당 앞에 서 있었다. 친구 어머니가 말씀하신 그 성당인 것 같았다. 나는 어색하게 고개를 빼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고요했다. 그냥 아무런 의식 없이 안으로 들어섰다. 마당 한편에 성모상이 보였다. 처음 보는 모습이다. 쑥스러워 나가려고 하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성당 현관문이 보였다. 나는 망설이다 문을 밀고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무심코 맨 뒷줄에 앉았고, 고개를 들었다. 아, 그런데 앞쪽 가운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것이 보였다. 십자가상이었다. 예수님도 나를 보았던 것일까. 이상하게 눈이 마주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너무 놀라 눈을 감아 버렸다. 그때부터다. 나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지 왜인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다만 나는 울고 있었다. 내 눈물은 너무 살이 쪄 우박 같기도 하고 굵은 소나기 같기도 했다. 그런 눈물을 흘려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렇지, 누가 그런 우박 같은 눈물을 흘릴 기회가 있겠니. 그 남자를 만나 사랑했을 때도 그 남자와 이별을 다짐했을 때도 그 남자가 쓰러졌을 때도 그 남자가 다시는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되었을 때도 그렇게 울어 보지는 않았다.

내 생의 모든 장면들이 엷은 안개처럼 다가와 모두 구름이 되고 눈물이 되었다. 그 울음은 특별했다. 안으로 깊이깊이 농축되어 있는 내 설움이 한꺼번에 터지고 내가 꿀꺽 삼켜 버린 말에 대한 갑갑함이 다 강물처럼 풀려 넘쳐 나고 있었다. 나의 모든 침묵도 눈물이 되어 출렁거렸고 서른다섯 내 인생의 어둠들도 모두 눈물이 되어 펑펑 쏟아지고 있었던 것이다. 열렬하게 울었다고 하면 맞을까. 열정적으로 울었다면 말이 될까. 나는 내 몸의 세포가 단 하나도 침묵하지 않은 채 있는 대로 들썩거리며 내가 우는 울음을 함께했다고 느끼고 있었다. 어찌 이런 전신 작동의 울음이 가능한 것일까. 나는 울고 울고 또 울고 다시 울었던 것이다. 누가 나를 이렇게 가슴을 쓸어내리며 울게 만들었는가. 너무나 놀랍게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는 그분을 부르고 있었다. 눈물은 눈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었다. 온몸에서 천만 명의 울음을 내가 흘리는 것처럼 내 온몸에서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주여! 주여! 주여!" 내 입에서 이 말이 불쑥 나왔다. 그것도 여러 번. 나는 울면서도 내가 왜 주여 하고 앉아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나는 조금 부끄러웠다. 그리고 내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만 울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도 내 의지대로 눈물이 멈춰지지가 않았다. 그렇게 독하게 참으며 의지를 앞세우고 자존심을 앞세워 울지 않으며 누르고 있었던 그 눈물의 강둑을 누가 이렇게 쉽게 무너뜨렸는지. "주여! 주여! 주여!" 나는 다시 그분을 불렀다. 그렇게 부르고 나니 자꾸 그분을 부르고 싶었다. (중략)



몇 시간을 그렇게 울었는지, 얼마나 울었는지도 모른다. 내 몸속에 그렇게 많은 물이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 혼자였는데 혼자 울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었다. 다만 참았던 울음을 울었던 것이 아니라 내 눈물과 내 울음으로 뭔가 함께한 누군가가 있었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나는 이상하게 가벼운 걸음으로 성당을 나왔고 그리고 병원으로 갔다.

붉은 울음꽃



다음 날 나는 아침 면회를 끝내고 서둘러 집으로 갔다. 한 달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갑자기 미친 듯이 아이들이 보고 싶어졌다. 아이들을 생각하자 갑자기 침대 위에 누워 죽어 가고 있는 남자는 머리에서 사라지는 듯했다. 어쩌면 내 아이들을 그렇게 버려두고 있었다니...... 나는 자신을 탓하면서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갔다. 혹시 아이들이 그대로 집에 있는 것일까 의심을 하면서, 아이들이 할머니와 함께 밥을 먹고는 있는지 궁금해진 것도 그때였다. 나는 너무나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대문을 밀고 나는 쏟아질 듯 현관으로 들어서며 아이들의 이름을 불렀다. "엄마다! 엄마야아!" 현관 앞으로 쪼로록 달려온 내 아이들...... 나를 부르는 내 아이들을 보며 나는 그 자리에서 실신하여 쓰러질 뻔했다. 엄마를 부르며 현관으로 다가온 내 아이들은 셋 모두 수두를 앓고 있었다. 전염성이 강한 수두를 누가 먼저 앓기 시작했는지 세 아이는 온몸을 긁어 피가 흐르고 딱지가 앉아 마치 흉하기가 심한 나쁜 병을 앓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얼굴마저도 빈틈없이 까맣게 되어 있는 아이들 뒤로 근심 가득한 시어머니가 보였다. 병원에 대한 시어머니의 궁금증도 뒤로한 채 나는 세 아이를 안고 마루 끝에서 통곡하기 시작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겠는가. 세 아이를 안고 나는 미친 듯 뒹굴었다. 온몸의 살이 속속들이 찢기고 파열하는 울음을 아는지. 뼈가 녹아 쇳물처럼 흐르는 눈물을 아는지. 희수야, 너는 이런 울음을 소설에서라도 보았니. 나는 아니다. 희수야, 지상의 피눈물이 넘쳐 하늘의 노을로 번져 나간 그런 울음을 너는 아는지. 나도 몰랐다. 이 세상에 태어나 그런 울음이 인간에게 숨어 있다는 것을 나도 그제야 알았던 것이다.



그 울음은 아마도 하늘에 닿았을까. 그 울음은 분명 성당에서 흐르던 눈물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이것은 육신의 바닥에서 긁어 하늘에까지 오르는 인간의 처절한 통곡이었다. 아이들도 따라 울었고 시어머니도 울었으며 우리 집은 그 순간 지상에서 가장 붉고 처절한 울음꽃이 만발했던 것이다. 우리는 일생에 주어진 눈물을 모두 그때 울었다고 말해도 틀리지 않는다. 왜 눈물은 끝이 없었는지. 그 순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운명처럼 우는 것뿐이었다. 나는 가슴에 안은 세 아이를 풀어놓을 수가 없었다. 더 가까이 더 가까이 아이들을 품에 안으면서 내 아이들이 모두 눈물의 강에 떠내려갈 듯해서, 나는 더 힘주어 아이들을 안고 울고 울었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그 자리에서 잠이 들었다. (중략)

기적의 아침이 왔다



희수야, 기적의 아침이 왔다. 집에서 병원으로 온 바로 그 다음 날, 혼수 23일째 되는 날이었다. 나는 집에 두고 온 아이들의 모습 때문에, 얼굴 가득 까만 딱지가 앉은 아이들 때문에 그나마 중환자실에서의 새우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머리만 아플 뿐이었다. 멍청하게 아침 면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심현성 보호자 빨리 들어와요." 간호사가 다급하게 말하고, 작은 창문은 닫겼다. 나는 그때 수상했어. 죽었으면 죽었다고 말하는 곳이 그 창문이었는데 왜 빨리 들어오라고 하는지 궁금해하면서 나는 화살보다 더 빠르게 병실로 달려갔지. 희수야!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니? 중환자실의 그 사람 침대에서 그가 눈을 뜨고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거야. 23일을 마치 하룻밤 자고 일어난 사람처럼 편안한 그의 표정 앞에서 오히려 내가 온몸이 굳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 거야.

"아, 세상에 이런 선물을 주시다니......" 왜 내가 그런 긍정적인 생각을 했는지 그것은 나도 모른다. 옛날 같으면 웃기는 소리하지 말라고 했을 내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감사를 드리고 있었다는 것은 그 사람이 깨어난 것처럼 나에게 하나의 중대한 기적이었다. 나는 침대 가까이 가서 그의 손을 잡았다. 남편인데도 어색했다. "나 누군 줄 알아요?" "알아." "누구예요?" "신달자." 그리고 그는 웃었다. 나도 웃었다. 어둔하고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비교적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었다. 23일 만의 말이라 서툴겠지 하고 나는 생각했다. "오랜만이에요." "......그래......" 그는 약간 어색하게 웃었다.

이것을 지켜보던 간호사들이 일제히 박수를 쳤다. 지금도 그 간호사들의 박수 소리가 귀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 소리를 어떻게 지울 수 있겠니. 나는 지금도 두 다리가 흔들리는 어려운 시간에 봉착하면 그 박수 소리를 떠올린다. 내 인생에 가장 영광된 박수를 받은 일을 기억하라면 아마도 그 순간일 거라고 누구에게라도 말할 수 있다. (중략)



죽음의 강



(중략) 나중에 그가 정신이 들었을 때 나는 그에게 궁금한 것을 물은 적이 있다. "23일간 그때......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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