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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려 태어난 나

마이클 노튼 지음 | 명진출판
세상을 바꾸려 태어난 나

마이클 노튼 지음

명진출판 / 233쪽 / 2008년 6월 / 10,000원

1. 나 하나의 행동이 세상을 바꾼다



여섯 살 꼬마, 아프리카에 우물을 파다


캐나다의 여섯 살 꼬마 라이언 헐잭은 유치원에서 선생님으로부터 아프리카 사람들이 깨끗한 식수를 얻지 못해 질병으로 고생하고 심지어 목숨을 잃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라이언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수도꼭지만 돌리면 깨끗한 물이 콸콸 나오는데 세상에 어떻게 물 없이 사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단돈 70달러만 있으면 한 마을에 우물을 파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 후 라이언은 4개월 동안 동네 집과 동네 심부름을 하여 모은 70달러를 워터캔(WaterCan: 개발도상국에 물을 지원하는 캐나다의 비영리단체)에 기부했다. 그로부터 6개월 후인 1999년 1월 우간다의 앙골로 초등학교 옆에 '라이언 우물'이 파졌다. 직접 우물을 보고난 후 라이언의 삶은 예상치 못한 변화를 맞이했다. 라이언은 자신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얻었다. 2001년에는 라이언우물재단이 설립되었다. 그가 15세가 된 2006년까지 라이언과 우물재단은 150만 달러 이상을 모금하여 12개국 43만 여명이 깨끗한 물을 마시게 할 수 있었다.



"그 날이 오면 우리의 일도 끝나리라"

1960년 포르투갈은 독재자 안토니오 살라자르의 지배체제 하에 있었다. 11월 어느 날, 포르투갈 학생 두 명이 카페에서 자유를 위한 건배를 한 혐의로 7년형을 선고받았다. 39세의 영국인 변호사 피터 베넨슨은 출근길에 신문에서 이 사건을 읽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그는 분노에 휩싸인 채 근처의 교회 안으로 들어가 45분 동안 생각에 잠겼다. 부당하게 갇힌 양심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고심 끝에 그는 '탄원' 캠페인이라는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베넨슨은 유력 신문사 <옵저버>의 편집자인 데이비드 에스터에게 연락을 취했다. 에스터는 베넨슨에게 기사 1면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1961년 5월 28일자 <옵저버> 1면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이번 주는 의견차이나 종교적 이유로 수감, 고문 혹은 처형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을 예정이다. 이렇게 철창에 갇힌 사람은 현재 수백 만 명에 이를 뿐 아니라 점점 증가하고 있다. 독자들은 무력감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모두의 혐오감이 단결된 행동으로 표출된다면 효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우리는 '양심수'로 분류되는 사람들의 이름과 연락처를 비롯한 신상정보를 모으기 위해 런던에 사무실을 차렸다. 양심수란 '폭력을 옹호하거나 용인하지 않는 본인의 진심어린 의견을 밖으로 표현할 기회를 수감이나 다른 조치로 인해 박탈당한 사람'으로 정의된다." 베넨슨은 12개월에 걸친 '엠네스티' 탄원 캠페인을 제안했다. 독자들은 이 캠페인에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지지의사를 밝힌 사람들이 1천 명을 넘어섰다. 국제사면위원회는 이렇게 탄생했다. 1961년 창설된 후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전 세계 12개국이 넘는 곳에 탄원조직이 생겼다. 국제사면위원회는 오늘날 전 세계 200만 명이 넘는 회원을 보유한 세계 최대의 인권단체로 성장했다. 1977년에는 인권보호활동의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나는 참는 데 지쳤다"

1955년 12월 1일, 미국 몽고메리 지역의 봉제공장에서 일을 마친 42세의 로사 팍스가 버스에 올라탔다. 그녀는 버스요금을 내고 버스 중간부터 시작하는 '유색인종' 좌석 중 맨 앞줄의 빈자리에 앉았다. 버스 맨 앞에서 10번째 줄까지는 백인전용이었다. 몇 정류장 지나 백인 전용 좌석이 전부 들어찼다. 엠파이어 극장 정류장에서 백인 몇 명이 더 버스에 탔다. 당시에는 백인전용좌석이 차면 흑인 승객들이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이 관행에 따르면 팍스를 포함해 앉아 있던 흑인 네 명이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나머지 세 명은 일어났지만, 로사 팍스는 꼼짝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버스기사가 왜 일어나지 않느냐고 묻자, 그녀는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데요"라고 대꾸했다. 기사는 "당장 일어나지 않으면 경찰을 부르겠소"라고 협박했고, 팍스는 "마음대로 하세요"라며 버텼다. 로사 팍스는 치안문란행위와 지역 법을 어긴 혐의로 기소되어 유죄를 선고받고 벌금 10달러와 법원비용 4달러를 냈다. 며칠 후, 1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팍스 사건에 대한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그들은 '몽고메리 개선회'를 조직하였고 마틴 루터 킹 주니어를 초대회장으로 선출했다. 그리고 몽고메리 버스를 상대로 보이콧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이 지역 흑인들 90%가 1년이 넘도록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서 출퇴근을 했고, 결국 법원도 흑인차별 법은 잘못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신념대로 행동하는 게 항상 쉬운 일은 아니다. 로사 팍스는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행위가 근본적으로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대로 행동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의 얼굴을 바꿔놓은 민권운동의 불꽃이 점화되었다. 로사 팍스는 그 후로도 50여 년간 흑인사회의 파벌과 분열을 해소하기 위해 적극적인 활동가로 활약했다. 2005년 10월 사망 후, 그녀는 미국 국회의사당에 안치되었다. 전체 31번째, 여성으로서는 첫 번째로 얻은 영예였다.



당신도 할 수 있다!

로사 팍스가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했다면, 미국의 민권운동은 언제쯤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피터 베넨슨이 포르투갈 학생 사건을 무관심하게 흘려버리고 평소처럼 일하러 갔다면, 세상은 언제쯤 양심수에 대해 눈을 떴을까? 변화를 만드는 데는 단 한 명으로도 충분하다. 현 상태에 안주하지 않는 사람, 개선이 필요하며 가능하다고 느끼는 사람, 더 나아가 아무리 작은 일로 시작할지라도 그 일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그렇다면 변화의 주체가 되는 단 한 사람은 누구일까? 리더십과 창의력을 갖추고 에너지가 충만하며 야망이 높은, 리더가 되기에 필요한 사회적 가치들을 두루 갖춘 아주 특별한 사람들? 아니면 당신이나 나 같은, 평범한 보통 사람들? 정답은 위의 두 극단적인 부류 사이의 어느 지점에 있을 것이다. 우리는 관심 가는 문제에 대해 무엇인가를 하겠다고 결심할 수 있다. 성공과 실수를 통해 배우면서 새로운 기술을 발전시키면 그에 부응해서 자신감도 커진다. 그러면서 점점 더 크고 많은 일을 해내는 특별한 사람으로 거듭난다.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도 정말로 원하면 얼마든지 특별한 일을 해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나는 분명히 이 일을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을 갖는 것이다. 일단 시작하면 경험을 통해 배우고 성공을 통해 자신감을 얻는다. 성공에 필요한 모든 자질들은 행동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키울 수 있다. 어떤 계기로든 문제를 인식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준비를 한다면, 나 하나의 힘으로도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이 가능하다.



2. 매일의 생활이 실천이다



무관심 버리기


20대 중반의 영화 및 뮤직비디오 감독인 신디 로즈는 데이비드 코튼의 저서 『기업이 세계를 지배할 때』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알면 알수록 그에 대해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커져갔습니다. 이 책이 내 열정에 불을 지펴준 셈이에요. 부정부패, 기후변화, 가난, 불평등 같은 부당한 일들이 판을 치는데도 다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만 보내고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생각을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늘 비슷했다. "세상일에 관심 없는 게 아니야. 고작 나 한 사람의 힘으로 그렇게 엄청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잖아? 내 힘을 벗어난 일에 신경 쓸 여유는 없다구." 그러나 신디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무관심이야말로 가장 큰 적이라는 생각을 갖고, 일단 신경영재단(아이디어를 실천으로 바꾸는 싱크탱크)에 접촉했다. 신경영재단은 그녀가 제안한 안티 애퍼티(Anti-Apathy 반[反]무관심)의 개념을 받아들여 일련의 캠페인을 펼치기 시작했다. 안티 애퍼티 운동은 특정 주제에 관해 저명인사들을 패널로 구성하고, 단편영화 상영, 라이브음악 연주를 비롯하여 나이트클럽 같은 편안한 분위기에서 맥주를 마시며 어울리는 것에서 출발했다. 사람들은 입는 옷에서부터 먹는 음식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일상생활 이면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벤트는 대성공이었다. 현재 안티 애퍼티는 신경영재단의 이벤트를 넘어서 독립적인 조직으로 성장했다. 이곳에서는 갖가지 사회적 실험이 이루어진다. 사람들의 수동적인 태도를 벗어던지고 적극적인 시민으로 행동하게 돕는 것, 개개인의 행동이 어떻게 차이를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주는 것,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으면 결국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 안티 애퍼티의 목적이다.

나 스스로 변화가 된다

간디는 영국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1893년, 젊은 변호사였던 그는 소송사건을 의뢰받아 남아프리카에 갔다. 당시 남아프리카의 흑인, 유색인과 인도인은 일상적으로 인종차별을 겪어야 했다. 인도인인 간디도 예외가 아니었고, 일등석 기차표를 가지고도 삼등석 칸에 타야 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차별대우를 거부했기 때문에 기차에서 쫓겨났다. 버스에서는 유럽승객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승강용 발판에 앉으라는 버스 운전사의 명령을 거부했다가 흠씬 두들겨 맞기도 했다. 심지어 호텔에서도 거부당하는 등 간디의 남아프리카 여행은 고생으로 점철돼 있었다. 이에 간디는 부당한 인종차별을 없애고자 노력하기로 결심하고, 남아프리카 내 인도인의 인권향상을 위해 투쟁하는 단체인 나탈인도회의를 조직하여 1914년까지 지도자로 활동했다. 고국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간디는 실천을 멈추지 않았다. 여러 차례 수감되고 단식 투쟁을 감행하면서 그는 비폭력불복종운동 등 스스로 개발한 전략을 통해 사회운동에 대변혁을 일으켰고, 영국의 지배를 받던 인도의 독립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변화는 어딘가의 누군가가 시작하는 것이다. 남아프리카에 간 간디가 인종차별을 경험하고 그것에 저항했듯이, 스스로 무언가를 용납할 수 없다고,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할 때 변화는 바로 당신에게서 시작된다. 억압으로부터의 자유, 국제적 빈곤, 지구온난화, 열악한 대중교통, 거리를 배회하는 불량배 . 당신을 괴롭히는 문제가 무엇이건 간에, 직접 행동으로 옮기겠다고 결심하라.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자그마한 일들은 사방에 널려 있다. 일상의 실천을 당신의 삶 속에 편입시키는 작업을 시작하라. 마하트마 간디는 "당신이 하는 일이 보잘것없어 보일지 몰라도, 그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먼저 일상생활에서 행하는 자잘한 선택들을 생각해보라. 집에서건 직장에서건 평소와 똑같이 살아갈 수도 있고, 아니면 일상적인 선택을 바꾸어 긍정적인 변화를 유도할 수도 있다. 찾아보면 손쉽게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이 많을 것이다. 이렇게 소소한 실천을 통해 자원을 절약하고 좀 더 공정한 세상을 만드는 데 기여해보지 않겠는가? 작은 것부터 세상에 이로운 선택을 하는 습관을 들여보자. 매일의 작은 실천들이 실제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3. 세상에 이런 일이



비밀 산타의 과거


1970년 크리스마스를 일주일 앞둔 날, 얼마 전 회사가 망해 실업자가 되어버린 래리 스튜어트는 이틀이나 굶은 상태였다. 그는 무작정 눈에 띄는 식당에 들어갔다. 너무도 춥고 배가 고파 앞뒤 따질 겨를이 없었다. 식사는 마쳤지만 돈이 없었다. 그는 지갑을 잃어버린 것처럼 괜히 주머니만 뒤적이며 시간을 끌었다. 식당주인 테드 혼은 들어올 때부터 절박한 표정이었던 래리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상황을 파악한 테드는 자기 지갑에서 20달러를 꺼내 들고, 래리의 테이블 쪽으로 가서 슬쩍 돈을 떨어뜨렸다. 그러고는 몸을 숙여 바닥에 놓인 20달러를 다시 주웠다. "이 돈을 찾고 있었군요. 손님께서 떨어뜨리신 것 같은데요." 래리는 눈물나게 고마웠다. 그는 식당을 나오면서 기도했다. '저도 남을 도울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된다면 꼭 돕겠습니다. 남모르게 친절을 베풀어준 이 식당주인처럼요….'

그 후 래리는 케이블TV와 IT 분야에서 성공한 사업가로 변신했다. 그리고 1979년 겨울, 처음으로 남을 도울 수 있었다. 드라이브-인 식당에서 주문을 받는 종업원이 얇은 옷차림으로 추위에 떨고 있었다. "돈 몇 푼 벌겠다고 바깥에서 고생하던 그녀가 안쓰럽더군요. 그래서 20달러를 내고 거스름돈을 가지라고 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그녀의 입술이 바르르 떨리더니 뺨 위로 눈물이 흘러내리는 게 아닙니까! '선생님, 이 돈이 제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실 거에요'라더군요." 래리는 그 길로 은행으로 달려가 200달러를 인출했다. 그리고 차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사람들이 눈에 띌 때마다 조금씩 돈을 주었다. "나 자신에게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답니다."



그때부터 26년간 연말이 다가오면 래리는 어김없이 '비밀 산타'가 되었다. 5달러, 10달러로 시작했던 선물은 어느덧 100달러 단위로 커졌고, 때로는 재활용상점이나 식당, 주차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한 번에 수백 달러씩 주기도 했다. 최근까지 그는 자신을 밝히지 않았다. 그러다가 2006년 암 선고를 받으면서 누군가가 자신의 일을 대신 이어줬으면 좋겠다는 뜻에서 정체를 드러내기로 결심했다. 그가 정체를 공개한 후 많은 사람이 편지와 이 메일로 '비밀 산타를 해보겠다'는 뜻을 밝혔다. 지금은 전 세계에 수많은 '비밀 산타'가 활동하며 춥고 배고픈 사람들에게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주고 있다.

"엄마와 아이가 함께 살게 해주고 싶어요"

엔코시 소라니 존슨은 1989년 2월 4일에 태어났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에이즈에 감염되어 있었다. 엔코시는 남아공에서 가장 오래 산 에이즈 감염 소년이자, 최연소 에이즈 퇴치 운동가이기도 했다. 2000년 7월, 그는 남아공 더반에서 열린 제13차 국제에이즈학회에서 자신이 직접 쓴 연설문을 낭독했다. 그의 모습은 전 세계에 방송되어 큰 파장을 일으켰다. 엔코시의 연설을 지켜본 전 세계인이 남아공이 직면한 에이즈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했고, 선천적 에이즈 감염 아동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엔코시는 2001년 6월에 12년간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다음은 엔코시의 연설문 발췌 내용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엔코시 소라니 존슨이에요.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의 멜빌에 살아요. 나이는 열한 살이고 태어날 때부터 에이즈 양성인자를 갖고 있었어요. 두 살 때 엄마가 저를 에이즈 감염자들을 위한 센터로 보내셨어요. 저를 키울 수 없었거든요. 엄마와 제가 둘 다 에이즈 감염자라는 걸 마을 사람들이 알게 되면 쫓아낼까봐 두려워서 . 하지만 엄마는 저를 아주 많이 사랑하셨어요. 전 알아요. 그런데 센터에도 기금이 끊겨 곧 문을 닫아야 했어요. 센터 소장님이셨던 게일 존슨 씨가 저를 거둬주셨죠. 지금은 게일 존슨 씨가 우리 엄마예요. 우린 8년 동안 한 집에서 살고 있어요. 제가 알기로는, 상처가 난 사람들에게 제 피가 묻을 때만 위험하대요. 그럴 때만 저를 만질 때 조심하면 되는데…. 저 같은 사람들을 돌봐주시고 받아들여주세요. 우리도 똑같은 사람이에요. 우리도 정상인이에요. 손도 있고 발도 있어요. 걸을 수도 있어요. 말할 수도 있고, 여러분과 똑같이 도움이 필요해요. 우리를 두려워 마세요. 우리도 똑같아요. 저는 아주 어릴 때 친엄마와 헤어졌어요. 지금의 엄마인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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