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투 차이나
첸란 지음 | 책이있는마을
중국에 길을 묻다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중국인 속은 모른다.한국인이 달려가고 세계인이 몰려간다. 중국으로. 사람들이 중국으로 가는 목적은 하나다. 중국에서, 또는 중국을 통해 성공하기 위해서이다. 중국 대륙이 또 하나의 블루오션으로 급부상하게 되면서 중국을 향한 세계인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렇게 세계인들이 몰려가는 중국은 빠른 변화를 겪고 있다. 아직 중국이 사회주의적인 성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이토록 세계의 관심이 몰리다 보면 문 닫아 걸고 살던 중국인들도 변하게 마련이다. 개방적 시장경제 하에서 돈이 없으면 죽는다는 것을 자각한 중국인들은 급격하게 금전제일주의에 오염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인과의 거래에서 돈이 빠지면 어느 것 하나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는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는 한국인들이 늘어간다. 중국인들과 상대해본 한국인들은 그들을 '속에 뭐가 들이 있는지 도대체 모를 되놈들'이라고 비하한다.
하지만 이것이 중국인들의 본모습이다. 상(商)이라는 나라명이 고대 중국에 이미 등장했듯이 사실 그러한 모습은 세계 최고의 장사꾼임을 자부하던 중국인들이 잠시 잃었던 옛 본성을 되찾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대만을 제외한 동남아와 전 세계 곳곳에 두루 퍼져 살고 있는 4천만 화교들이 어떻게 자리를 잡았는지, 또 무엇으로 먹고 사는지를 보면 빤하다. 바로 장사다. 전국시대 진(秦)나라의 대상인에서 승상 자리까지 오른 여불위가 그랬듯이 장사란, 돈이 오가는 것만이 아니라 미래의 큰 것을 위해 오늘의 작은 것을 던지는 것이다. 작은 장사꾼은 강남의 귤이며 소금을 강북에 내다 팔기 위해 조세와 특산물로 중앙 정부의 비위를 맞추려고 여념이 없지만, 큰 장사꾼은 제후들을 움직이고 때로는 왕조의 운명을 바꾸기도 한다. 유방은 항우에 쫓겨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아들과 딸을 수레에서 밀어 떨어뜨리고 달아나 훗날을 도모함으로써 마침내 천하를 얻었다. 정상배가 아니더라도 큰 뜻을 품은 자는 자신의 수족마저 베어버릴 수 있다는 중국인들의 사고방식이 큰 이익을 얻기 위해 작은 것을 과감히 버릴 줄 아는 장사꾼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 사람들은 이러한 사고방식을 가진 중국인들을 대하면서 그들의 음흉한 속을 탓한다. "정말 알 수가 없어. 밥 사줘 술 먹여줘 돈 봉투며 선물을 바리바리 보냈는데도 속이 영 들여다보이지 않으니… 하여튼 속이 시커멓다니까." 중국인들과의 관계 형성은 일이 있을 때 찾아가 몇 번 식사를 같이 하고 술을 마셨다고 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제법 친분이 쌓여 어려운 일을 상의하고, 서로 펑요(친구)라 부르는 사이가 됐다 하더라도 절대 안심은 금물이다. 관계가 진전될수록, 그들을 진심으로 대했는지 중국의 문화와 관습을 깊이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하려 했는지를 살펴야 한다.
중국과 한국은 지리적으로 가깝고 두 인종 간의 외모도 비슷하다. 하지만 그들과 한국인 사이에는 어쩔 수 없는 문화적, 정서적 차이가 있다. 이 차이를 얼마나 객관적으로 인정하느냐가 중국에서의 성공을 가늠하는 척도가 될 수 있다. 비록 사업적인 관계이지만 중국인들과의 거래에서는 정서적 교류를 우선시해야 한다. 아무런 사심이 없는 인간관계를 맺는 것처럼 순수하게 접근해야 중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말이다.
한국인들은 만난 지 몇 개월 안 된 중국인을 펑요라 부르며 서슴없이 대한다. 그러나 그렇게 부르는 사이가 되었다 해도 절대 안심해서는 안 된다. 오랜 기간 동안 완전한 신뢰와 우의를 바탕으로 인간적인 교류가 지속되어야 하오펑요(좋은 친구)도 되고, 라오펑요(오랜 친구)도 되는 돈독한 사이로 발전하는 것이다. 중국인, 그들은 오랜 세월을 함께 보내며 쌓아온 관계일지라도 언제든지 단숨에 헝클어져 버릴 수 있는 것이 인간사라는 것을 안다. '토끼가 죽으면 사냥개를 삶는다'라는 말이 있다. 내가 살기 위해 오랜 친구를 고발하고, 그것도 모자라 투쟁의 대상으로 삼아야 했던 시절이 아직도 중국인들에게는 입과 눈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또 이 같은 상황을 지켜보았거나 생생히 전해들은 세대들이 오늘의 중국을 이끌고 있기 때문에 중국인들이 인간관계에 대한 인식이 고정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지만 경제적인 거래관계에서는 중국인들의 이러한 성향을 고려할 필요가 없다.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인간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어야겠다는 자세를 지닌다면 중국시장에서의 성공은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다. 뿐만 아니라 그런 자세로 사업에 임한다면 그는 세계 어느 곳에 가더라도 성공할 게 분명하다. 사람에게 바치는 시간과 열정, 그리고 무언가에 투자를 한다는 것은 결국 미래를 위한 비즈니스다. 까칠한 중국인들과의 관계 형성도 비즈니스의 한 측면으로 여겨야 성공할 수 있다. 내가 춥다고 집 근처의 나무들을 하나 둘 베어 땔감으로 쓰면 그 땅은 머지않아 황무지가 되고 만다. 황무지가 된 땅은 비에 씻겨 토사가 유출되고, 비옥하던 토지는 사막이 된다. 이것은 자연과 사람이 잘못된 거래를 했을 때 발생하는 결과이다.
중국인들은 마치 오래된 연인의 관계처럼 깊은 신뢰를 주고받아야만 비로소 상대방을 거래 파트너로 인정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후부터는 중국인과의 비즈니스에서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지략과 대책이 마련된다. 이는 아무리 어려운 비즈니스 관계에 놓여 있다 하더라도 해결할 수 있는 절대적인 인간관계가 형성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인간적인 신뢰와 친분이 밑받침됐다 하더라도 앞서 말했듯, 중국인과의 거래에서는 결코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거래 상대가 쓸모없어지면 가차 없이 그 관계를 끊어버리는 습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돈이 떨어지거나, 무능력하다는 게 드러나면 한 순간에 등을 돌려버린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중국인들과의 거래에서는 그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이 내게 있다는 걸 보여주어야 한다. 또한 그들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설 수 있음을 인식시켜야 한다. 즉, '나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함께 협력하여 더 큰 성공을 이루자'라는 기대치를 심어주어야 중국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그럴 때 중국인들은 상대에게 강렬한 인상을 받고, 깊이 생각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하는 사업이 더 이상 중국인들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들었을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의 가치가 바닥을 드러내기 전에 중국인들과의 거래를 정리해야 한다. 즉, 상대가 아쉬워하는 여운을 가지고 있을 때 내가 먼저 상대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관계의 맺고 끊음을 쉽게 생각하는 중국인들은 자신에게 더 이상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서면 한순간에 등을 돌린다. 버림을 당하느니 차라리 접어야 하는 시기를 내가 먼저 알고 행동을 취한다면 오히려 상대인 중국인들의 마음에 동요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그런 시기 적절한 결단은 후일을 기약할 수 있는 연결고리가 되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은 과거와는 달리 외자유치를 위해 법적, 제도적 장치를 꼼꼼히 마련하여 외국인 사업자를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중국에서의 비즈니스 성패가 인적 네트워크에 달려 있다는 말도 예전에 비해 점차 그 의미를 잃어가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중국 사회에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인간관계가 사업의 성패에 미치는 영향력은 막대하다. 다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사적인 인적 네트워크 보다 사업의 주체인 '나'라는 인적자원의 틀이 얼마나 제대로 갖추어져 있는가가 성패의 중요한 판단근거가 된다는 점이다. 내가 가진 능력이나 가치를 중국인들이 얼마나 높게 평가하느냐가 사업의 성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인들은 거래의 상대자가 절대로 남을 배신하지 않는 인품을 지니고 있는지를 가장 먼저 탐색한다. 그리고 거래 상대자가 자신들을 속이지 않을 만큼 올바른 가치관과 반듯한 정신을 가진 사람인지를 몇 번이고 시험해본다. 중국인들과 거래를 시작하려 한다면 먼저 신뢰를 바탕으로 한 인간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들에게 깊은 신뢰를 얻은 다음 노련하고 원만하게 거래하는 기술을 가진다면 그 깊다는 중국인들의 속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중국인들을 접하다 보면 흡사 그들에게 인생을 같이 할만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검증 받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밥 한 끼 먹는 것뿐인데 뭘' 하고 스스로를 안심시키는 중에도 당신은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생각이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않는 중국인들이다 보니 그들의 태도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황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중국인들의 속을 들여다보고 싶은데도 그들의 생각과 감정은 도무지 읽을 수가 없다. 한국인들은 이런 중국인들에게 도대체 무슨 꿍꿍이가 들어 있는지 모르겠다며 불평하는 사례가 많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달리 해보라. 좋으면 그 자리에서 금세 웃다가 싫으면 즉시 표정을 바꾸는 사람이 사업 파트너나 교류의 대상으로 적합하겠는가. 희로애락을 곧이곧대로 비즈니스 상대에게 드러내 보이면 어떻게 될 것인지 생각해보라. 만약 그렇게 되면 상대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쉽게 드러내 보이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얼굴에 드러나는 표정만으로 상대에게 자신의 의중을 쉽게 내비친다면, 그것만큼 쉬운 거래 상대자가 어디 있겠는가. 아는 마치 내가 들고 있는 패를 상대방에게 보여 주면서 고스톱을 치는 것과 다름없다. 다른 나라 사람들도 비즈니스 관계에서는 희로애락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이지 않겠지만 중국인들은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몇 번이나 강조하지만 한국인 사업가들은 중국인들의 그럼 습성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아편전쟁 이후 미국에 있던 중국인 과학자들은 붉게 물든 중국을 다시 일으켜 세우겠다는 열망을 가지고 하나둘 가난한 고국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때에도 중국인 과학자들은 그들의 속마음을 한 치도 미국인들에게 내비치지 않았다. 고향이 그리워 휴가차 본국에 다녀오겠다는 중국인 과학자들의 본심을 파악하고 미국정부가 이를 막으려 했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나라의 번영을 위해 자신의 미래까지도 과감히 버릴 수 있는 중국인들의 이러한 습성이 오늘의 중국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중국인들의 습성을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사례가 있다. "이 일은 언제쯤 마무리되겠습니까?" "꿔랑더엔.(이틀 후쯤)" 이틀 후라고 했으니 며칠 후 아니면 조만간 일이 성사되겠구나라고 짐작하지만 그게 아니다. 이틀 후 또는 조만간이라는 기간은 두 주 또는 두 달뿐만 아니라 무한정 늘어나 두 해가 될 수도 있다. "이틀 후라더니 이게 뭡니까? 일이 잘 안 되는 겁니까?" '저놈들이 나를 우습게보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작심하고 다그치면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하이커이(이상 없습니다. 괜찮습니다)."라거나 "메이쓰(괜찮아요)."또는 "차부뚜어(거의 다 됐다)"라고 대꾸한다. 일이 늦어지는 데서 오는 손실이 자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투다. 일을 의뢰한 사람은 속이 타들어 가는데도 그들은 전혀 흔들리지 않고 자기중심적으로만 행동한다.
어째서 중국인들이 이런 성향을 가지게 된 것일까? 중국인들은 인간성이 파괴되고 상호 신뢰가 사라져 버린 문화 대혁명이란 변고를 겪었다. 배우자나 자식 그리고 형제조차도 믿지 못할 만큼 비방과 밀고가 횡행했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 국가 주석이었던 유소기는 제 자식에게 밀고를 당해 옥중에서 병사하고 만다. 한 국가의 최고 지휘권자가 자식의 밀고 때문에 죽게 되는 상황을 목격한 사람들이 과연 누구를 믿겠는가. '둘이 같이 우물 물을 들여다보지 말라'는 중국 속담이 옛 글 속에 있는 게 아니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온갖 권모술수를 다 써야 했고, 자신의 잘못은 손톱만치도 없다고 완강하게 부인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절을 중국인들은 겪어 왔다. 그런 암울한 시대를 이제 막 지난 그들인지라 남을 믿어서는 안 된다는 습성이 굳어진 것이다.
또한 중국인들에게는 기질적으로 한국인들을 깔보는 성향이 있다. '너희 한국인들이 언제부터 그리 잘 살았고 우월한 민족이었나. 기껏해야 우리에게 조공이나 바치던 주제에….' 겉으로는 표현을 하지 않지만 중국인들은 막대한 자본과 최첨단 IT기술을 가지고 들어와 으스대는 한국인들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그래봐야 중화경제권에 묻히게 될, 별것 아닌 것들이라며 한국인 사업 파트너를 무시하는 경향도 있다. 그래서인지 중국인 종업원들이 자신들에게 월급을 주는 현지 한국인 경영자들을 은근히 무시하고 인사조차 하지 않는 일이 빈번하다. 상황이 이러하니 현지에서 사업을 하는 한국인들이 중국인 종업원들에게 화를 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중국인들이 노리는 게 바로 이거다. 약을 올려서 한국인의 허점이 드러나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허점이 드러날수록 중국인들이 협상 테이블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대인관계에서의 이러한 전략은 중국인들이 지난 5천여 년 전에 걸쳐 터득한 처세를 바탕으로 한다. 중국에는 낯짝은 얼마나 두터워야 하며, 속마음은 또 어떻게 시커메져야 하는가를 설파한 학설이 있을 정도다. 그런데 접시에 담겨진 물같이 쉽게 파르르 흥분하고 감정이 앞서는 한국인들이 무슨 수로 대인관계 전략에 능한 중국인들을 당해 낼 수 있겠는가.
하지만 중국에서의 성공을 꿈꾸는 한국인이라면 중국인들의 이러한 습성을 부정적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겉으로 보기에 그들의 습성은 부정적으로 비칠 수 있으나 이는 오히려 삶을 살아가는 방어적인 처세일 뿐이다. 낯짝이 성벽처럼 두텁고 속마음이 숯덩이처럼 시커메져야 세상살이가 편해진다는 중국인들의 처세술을 한국인들은 깊이 새겨들어야 한다.
중국,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중국의 맨하탄, 상해상해의 아파트 1층에는 자전거 수리점, 미용실, 잡화, 채소가게, 가구점 등이 들어있고 2층부터 4층까지는 약 백여 가구가 살고 있다. 지어진 지 7,80년 된 아파트가 개축 공사며 내부 골조 보강 공사 한 번 없이 지금까지 버티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서울에서는 30년은커녕 20년만 지나도 재건축을 한다고 뜯어내는 판인데…. 하긴 중국의 아파트들은 대부분 국가로부터 거의 무상으로 빌려 사용하는 것이니까 함부로 수리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또 내 소유가 아니므로 파손된 곳이 있다하더라도 비용을 들여 굳이 수리하지 않는다.
감숙성 출신의 중국 공산당 상해시위에서 일하는 장 부주임은 상해에서 살게 된 지 25년이 넘었다. 그가 처음 느낀 상해는 송곳 하나 꽂을 공간이 없을 정도로 숨이 꽉 막히는 도시였다. 그는 흙먼지가 날리고 모래 바람이 부는 감숙성을 떠나 상해라는 대도시에서 살게 되었을 때 설레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러한 기대도 잠시, 그에게 배정된 주택은 낡고 허름한 한 칸짜리 아파트였다. 그래도 참고 살았다. 자고 일어나면 하늘을 향해 쭉쭉 올라가는 아파트들이 쉴 새 없이 들어서고 있었기에 곧 그에게도 좋은 집이 생기겠거니 했던 것이다. 그는 처음에 배정된 주택에 들어섰을 때 말이 아파트지 마치 그 악명 높은 옛 상해의 뒷골목 판자 집에 온 느낌이었다. 주위에는 아편쟁이들이 득실거렸고, 베란다는 무너질 듯 위태로웠다. 이 아파트가 한 때 외국인을 위한 호텔이었다니….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중국에서도 가장 인구가 조밀한 상해라고는 하지만 1인당 거주면적이 채 1평도 안 되는 방에서 살아야 한다니, 생각만으로도 숨이 막히고 아찔했다. 또 화장실과 취사장은 중앙에 위치한 공동시설을 사용해야 했고, 욕실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마치 거대한 판자 집과 다름없었다. 그는 공동취사장에서 찔끔거리며 나오는 수돗물을 받아다 몸을 씻으며 하루에도 몇 번씩 상해에 온 것을 후회했다.
하지만 회사에서 가깝고 재개발 허가가 떨어지면 새로 건축한 아파트 입주권이 주어진다는 말에 세 식구와 함께 15년을 꾹 참으며 살았다. 그의 아내가 하는 말을 들으니 당시 상황이 매우 심각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