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엄마의 조건
장병혜 지음 | 중앙북스
Chapter 1. 아이는 99% 엄마가 망칠 수도 있다최근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는 TV 프로그램 중에 문제적 행동을 일삼는 아이와 그 부모를 관찰하여, 원인을 규명하고 올바른 양육법을 제시하는 것이 있다. 고작 대여섯 살이 되었을까 말까 한 나이에 어른도 입에 담기 힘든 상스러운 욕설을 하는 아이, 하루 종일 이유 없이 떼를 쓰고 우는 아이, 엄마가 하는 말이라면 하나부터 열까지 무조건 반대로 하려 드는 청개구리 같은 아이까지. 그 장면들을 본다면 그 누구도 아이와 천사는 동격이라는 말에 동의할 수 없는 상황이 매주 펼쳐진다.
혼자 힘으로는 아이를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엄마는 결국 눈물을 보이고야 만다. 문제적 행동을 일삼는 아이에게는 예외 없이 그런 행동을 유발하는 원인 제공자가 바로 부모, 특히 가장 많은 시간을 아이와 함께 하는 엄마라는 사실이 너무도 명백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문제를 해결하러 온 전문가도 평소 엄마가 아이를 어떻게 대했는가 하는 점을 가장 먼저 질문한다. 그러면 십중팔구 일관되지 못했거나 화풀이를 하는 등의 엄마의 문제적 태도가 명백하게 드러난다.
신이 있어 그 신이 인류를 창조한 것이라면, 신이 어머니로 하여금 아이를 낳아 기르도록 하신 이유는 바로 사람들이 신을 찾을 때마다 당신이 함께 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신이 바쁠 때 그 역할을 대신해주는 존재가 바로 어머니, 엄마인 것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어머니가 위대한 힘을 가졌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능력을 가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대가족 중심의 한국적 가족주의는 현대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기르기에 적합한 시스템이다. 물론 과거의 가부장적 가정 시스템이 갖는 부정적 영향과 한계를 간과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과거에는 조부모를 중심으로 부모와 부모의 형제자매, 그리고 자신과 형제자매, 사촌 형제자매에 이르기까지 대가족이 다양한 관계를 형성하며 함께 살아가야 했기 때문에 다양한 역할 모델과 멘토(mentor)가 가정 내에 존재할 수가 있었다. 아이는 어떠한 상황, 어떠한 임무가 주어지든 자신이 모델로 삼거나 닮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할 대상을 가족 중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고, 언제든 그들에게 어렵지 않게 조언을 구할 수 있었다. 그 대상이 굳이 멘토임을 자청하지 않아도 가정 내에서 자연스럽게 멘토링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요즘 대부분의 가정은 엄마와 아이 중심으로 재편성되어 있다. 아이는 엄마와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생활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엄마의 사고와 습성이 그대로 아이에게 투영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이는 엄마와 함께 엄마 친구들의 모임이나 엄마의 취미 생활에도 동참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아이에게 세상의 중심과 기준은 엄마가 된다. 요즘 아이들이 성별을 막론하고 여리고 섬세한 여성적 기질을 갖는 것도 어쩌면 이러한 생활 패턴의 영향일 수 있다. 다양한 가족 관계가 붕괴되고, 그 자리를 채운 엄마와 엄마의 커뮤니티 속에서 생활하게 되는 아이에게 남성의 역할 모델이 존재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부재한 가정에서 남성성을 교육받지 못한 남자아이와 아버지가 부재한 가정에서 올바른 남성관을 확립하지 못한 여자 아이가 성인이 되어 결혼했다고 가정해보자. 어린 시절부터 줄곧 엄마를 중심으로 한 가정에서 엄마의 기준과 사고대로 교육받은 남자가 과연 올바른 남편 역할과 바람직한 아버지의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
엄마 혼자 육아를 책임질 때 생기는 문제점 :
ㅡ 남성과 여성의 성 역할을 제대로 인식시키지 못한다.
ㅡ 혼자만의 육아로 지친 감정과 남편에 대한 원망이 고스란히 전달될 수 있다.
ㅡ 엄마로서의 신뢰감을 잃을 수 있다.
아이 문제로 상담을 청하는 어머니들에게 나는 종종 남편과 상의해 보았는지를 묻곤 한다. 아내 다음으로 아이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상담자인 내가 아니라 한 집에서 함께 생활하는 남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흘러나오는 대답은 대개 이렇다. "남편이요? 말도 마세요. 차라리 남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게 속이 편하죠. 도와주기는커녕 애 하나를 더 키우는 것 같아요." 육아와 가사로 지치고 힘든 아내는 하루 종일 남편이 퇴근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러나 남편은 오늘 나가 내일 들어오기 일쑤다. 도대체 밖에 나가 무슨 일을 얼마나 열심히 하기에 집에만 들어오면 피곤하다고 하는지, 아내는 실감할 수 없기 때문에 이해하려고 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어제도 오늘도 반복되는 남편의 행동은 작년과 올해가 다르지 않다. 성인이 된 이후에 굳어진 사고방식과 습관을 고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상황의 제목만 다를 뿐 근본적으로 동일한 문제를 가지고 매번 갈등에 부딪힌다. 그래서 결국 미운 일곱 살 내 아이보다 옹고집쟁이 서른일곱 살 내 남편이 더 미워진다. 내가 언제 이 남자를 사랑한 적이 있었던가 싶기도 할 게다.
그럼 남편을 다시 가정으로 복귀시키는 방법은 무엇일까? 내 남편을 그저 뒤늦게 낳은 큰아들이려니 하고 생각해보자. 남편에게 일정 부분 권리를 주는 한편 감당할 만한 의무를 주자는 말이다. 하지만 남편을 큰아들처럼 생각하기로 한 당신에게는 여전히 한 가지 의문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것은 큰아들의 자리로 옮겨 간 남편의 빈자리는 도대체 누가 채울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남편을 큰아들로 여긴다는 생각의 밑바탕에는 어디까지나 남편과의 어긋난 관계를 다시금 회복하여 더 이상은 멀어지거나 악화되지 않도록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남편을 포기해버리거나 어차피 기대에 부응해주지 않는 남편의 역할을 무시하자는 심정의 발로가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결코 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는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남편의 빈자리는 한동안 빈 채로 남아 있을 것이다. 남편이 스스로 돌아와 그 자리를 채울 때까지, 혹은 당신의 지혜로 남편을 그 자리로 불러들일 수 있을 때까지.
아이를 남편 대용품으로 생각하면 안 되는 몇 가지 이유 :
ㅡ 아이에게 필요 이상으로 집착하게 된다.
ㅡ 남편에 대한 미움은 일시적으로 잠재울 수는 있지만 관계 회복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ㅡ 남편에 대한 미움과 분노가 아이에게 전달된다.
ㅡ 남편의 질투심과 경쟁심에 불을 붙일 수 있다.
Chapter 2. 좋은 엄마에서 위대한 엄마가 되는 첫걸음부부 간의 갈등으로 팽팽한 접전이 오가는 가운데 혹시 남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는가. "내가 아이 때문에 참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내는 다르다. 종종, 아니 거의 대부분 아이 때문에 참는다. 이혼을 결심한 주부가 망설이게 되는 결정적 계기도 아이가 받을 상처 혹은 아이의 양육 문제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아이가 소중하다면, 아이가 내 남편보다는 나은 사람으로 자라나기를 원한다면 아내는 더 이상 아이 때문에 참아서는 안 된다.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바로 내 자식을 위해서 말이다. 남편을 대신해서 아이에게 '올인'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아이에게 아버지를 되찾아 주기 위해서라도 아내는 남편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정말로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아이를 위한다면 아이에게 반쪽짜리 가정이 아닌 온전한 하나의 가정을 마련해주자.
언제까지나 부부 두 사람만이 결혼 생활을 꾸려간다면 부부 간에 어떠한 불협화음이 오고 가든지 간에 두 사람만의 타협으로 해결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부부 사이에 아이가 생기면 상황은 달라진다. 새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 결혼 생활의 행복은 더욱 깊고 풍부해지지만 가정을 움직이는 시스템은 훨씬 더 복잡한 체계로 변모하게 된다. 위대한 엄마가 되고자 하는 당신이라면 한때 연애 감정만으로도 충만했던 남자가 아니라 한 아이의 아버지이며 힘을 합쳐 가정을 유지하는 관리자의 한 사람으로서 남편을 바라보는 위대한 눈을 길러야 한다.
사람은 좀처럼 변하기 힘든 동물이다. 그래서 부부가 서로에게 '나를 사랑한다면 당신이 이만큼은 변해 달라' 고 요구할 때, 그리고 그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부부 싸움이 빈번히 발생하는 것이다. 변하지 않는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에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포기와는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내는 변하지 않는 남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아내 스스로 남편에게 원하는 변화가 되기 위해 남편을 큰아들로 생각하기로 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제 아이에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남편을 큰 아들로 생각하기로 했으니 아이에게도 아버지를 큰형쯤으로 생각하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을까. 결국 아내가 남편의 '아버지라는 존재로서의 위엄'을 활용해 아이에게 아버지의 존재감을 심어주는 노력까지 하는 수밖에 없다. 당신이 원하건 원하지 않았건 아이에게 아버지의 존재와 영향력을 2% 이하의 미미한 것으로 떨어뜨리는 것도, 그것을 200% 이상 활용하는 것도 당신에게 달려 있다는 점을 명심하자.
아버지의 존재감을 확인시켜주는 말 :
ㅡ 그런 결정은 엄마 혼자 내릴 수 없을 것 같은데, 아빠가 오실 때까지 함께 기다리자. ㅡ 오늘 저녁에 엄마가 아빠한테 한 번 여쭤보고 내일 다시 이야기할까?
ㅡ 네 생각에는 아빠가 어떻게 말씀하실 것 같니?
ㅡ 그 결정을 아빠도 찬성하실지 다시 생각해보렴.
엄마의 역할을 스스로 폄하하는 말 :
ㅡ 나중에 아빠한테 들켜서 혼나도 엄마는 몰라!
ㅡ 네가 직접 아빠한테 허락 받아봐라.
ㅡ 저녁 때 아빠 들어오시면 어디 두고 보자!
ㅡ 엄마가 이번 딱 한 번만 아빠 몰래 허락해주는 거야!
Chapter 3. 유사 편모 가정에서 온전한 가정으로당신의 남편은 현재 가정 내에서 어느 정도의 영향력과 발언권을 가지고 있는가. 당신의 남편이 가정 내에서 평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생활 패턴을 지니고 있는지 당신은 가늠하고 있는가. 현재 남편이 가정 내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알지 못한다면 남편을 고독의 구렁텅이에서 꺼내줄 수도 없을 것이다. 아이들이 아버지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살펴본다면 현재 당신의 남편이 가정생활에 얼마나 만족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아이들이 아버지와의 관계를 껄끄럽게 여긴다면, 아버지 역시 아이들에게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면, 분명 남편은 가정생활에 만족감과 정서적 위안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일 것이다.
직장인 L씨는 퇴근길에 동료들과 술자리를 가졌고 오랜만에 기분 좋게 취했다. 비틀비틀 골목길을 걷는 기분도 괜찮았다. 오늘 같은 날이라면 아이들에게 맛있는 것을 사주고 싶기도 하다. L씨는 포장마차에 들러 떡볶이와 튀김을 샀다. 그러고 보니 최근 가족들에게 좀 소홀했던 것도 같다. 열쇠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L씨. 거실에는 아내와 아이들이 텔레비전을 보면서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L씨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아이들이 잠시 인사를 하더니 이내 화면으로 눈을 돌린다. "당신 또 술 마셨어?" 아내가 얼굴을 찌푸린다. 아이들은 아직 쇼 프로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자리에서 주섬주섬 일어난다. L씨는 갑자기 불청객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후 L씨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L씨는 아마 아내에게 "남편 알기를 우습게 안다"며 큰 소리를 쳤을 것이다. 아이들을 불러서 왜 제대로 인사도 하지 않느냐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엉겁결에 잠이 든 L씨는 다음 날 자신을 더욱 멀리하는 가족들을 보면서 후회와 함께 대문을 나섰을 것이다.
"내가 이 집의 돈 버는 기계야?"라는 남편의 말은 돈을 버는 일뿐만 아니라 다른 일에도 참여하고 싶고, 가족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동질감을 느끼고 대접받고 싶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만약 그 자리에서 아내가 남편의 말에 똑같이 가시 돋친 반응을 보인다면 부부 간의 거리는 좁혀질 수 없다. 아이 역시 그 사이에서 갈 곳을 모르고 방황하게 된다. 특히, 부부 간의 갈등은 결정적인 순간의 어긋남이 돌이킬 수 없는 언쟁으로 번질 우려가 많다. 서로가 주고받았던 대화의 내용이 아니라 대화를 하는 방식이 거칠고 모가 나서 서로가 상처를 입고 또 다른 갈등을 만들게 된다.
진정한 강자는 약자에게 자신의 무기와 실력을 뽐내지 않는다. 아내는 이미 가정 경영의 많은 실권들을 쥐고 있지만 남편은 이제 막 가족들 곁으로 어색하게 걸어 들어온 전학생이다. 남편을 자신과 동등한 위치에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전체 가족 구성원 중에서 떨어진 조난자와도 같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라. 먼저 남편에게 기회를 주자. 아내가 점유하고 있는 가정의 사정거리 내로 남편이 들어올 수 있도록 길을 열어두어야 한다. 술에 취해 비틀비틀 몸을 흔들며 걸어오든, 무관심한 표정으로 신문을 손에 들고 들어오든 간에 가족 구성원 모두가 한 공간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고 있는 순간들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도록 하라. 제대로 된 의무와 권리를 부여하는 일은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주로 먹는 우유의 상표를 바꾸는 일부터 아이들이 다니게 될 학원을 결정하는 일까지 아내는 남편이 없는 사이에 무수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때로는 아내 선에서 처리해도 되는 문제가 있고, 남편이 와서 함께 해결해야 하는 중대한 문제도 있다. 그러나 되도록 어떠한 일이 완전히 진행되기 이전에 남편에게 먼저 상의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남편을 귀찮게 하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모든 문제를 혼자 처리한다거나,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절대적 권한을 가진 것처럼 행동하게 되면 남편 역시 무관심한 가장으로 길들여지게 된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남편이 실질적으로 가정의 모든 일에 함께 참여하기는 어렵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가정사에서 완전히 배제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적절한 타협점은 어디인가. 바로 남편에게 명예회장의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이다. 명예회장이라는 자리는 회사의 발전에 큰 공이 있거나 과거에 회장으로서 회사를 이끈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존경을 표하는 의미로 주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명예회장의 자리가 이름만 거창한 자리는 아니다. 비록 구체적인 실무를 담당하지는 않더라도 명예회장은 회사 혹은 기업 내에서 상징적인 존재로서 구성원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담당한다.
가정 내에서 남편이 담당해야 할 역할도 이와 같다. 아내가 실질적인 권리를 가지고 주요한 업무 처리를 맡을지라도 실행 직전의 순간에는 남편과 아내가 나란히 서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아내가 남편에게 텅 빈 결재 서류를 내밀어서는 안 된다. 아내의 입장에서 70% 이상의 해결 방안이 나와야 남편이 의견을 보충해줄 수 있다. 누가 뭐래도 가정사에 관한 전문가는 바로 아내가 아니던가.
남편이 명예회장이 되는 순간, 아내와 남편 모두에게 긍정적인 효과가 일어난다. 우선 남편 입장에서는 매일 타박만 일삼던 아내가 진지한 태도로 자신에게 의견을 물어오니 자신도 가정사에 참여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아내 역시 혼자서 짊어지던 무수한 결정들을 남편이라는 파트너와 함께 처리할 수 있게 되어 심리적인 부담감이 훨씬 줄어든다. 무엇보다 긍정적인 점은 남편도 가정사에 연루되어 있다는 혐의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내는 이제 밀실 행정의 오랜 습관에서 벗어나 남편과 손을 잡을 때가 왔다. 단지 직함을 바꾸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