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비전으로 아이의 꿈을 디자인하라

장경란 지음 | 책이있는마을
부모는 아이의 미래다



아이들에게 올바른 습관을 길러주자


나는 책 읽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초등학교 땐 책을 많이 볼 욕심으로 도서관 봉사활동을 자원할 정도였다. 덕분에 이런저런 독서경시대회에 나가 상도 여러 번 타왔다. 밖에 나가서 뛰노는 것보다 안에서 조용히 책 읽는 시간이 내겐 더 즐겁고 행복했다. 남편은 나보다 좀 더 그 정도가 심한 편이다. 그는 책 읽기가 거의 생활화된 사람이다. 아무리 바빠도 좀처럼 손에서 책을 내려놓는 법이 없다. 침대 머리맡이나 거실 탁자 위, 진료실에도 늘 읽던 책이 놓여 있다. 부모가 책 읽는 모습을 보고 자란 탓인지 아이들도 책을 가까이 했다. 주말이나 휴일엔 아이들과 같이 외출하는 날이 많았지만 주중엔 저녁식사 후 온 가족이 각자 편한 자리에 앉아서 책을 읽는 게 자연스러운 일과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읽은 책을 주제로 서로의 느낌과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를 자주 만들었다.





어느 날 재진이가 이런 말을 했다. 똑같은 아이들과 똑같은 지식을 강제로 주입 받는 수업방식에 염증을 느낀 것이다. 다른 아이들이 학원에 가 있을 시간에 집에서 한가롭게 책을 읽고 있는 소연이와 재진이를 보면서 저러다 도태되는 건 아닌가 두려웠다. 결국 아이들 1, 2학년 때 학습지를 신청했다. 수학문제를 반복적으로 풀어내는 학습지였다. 처음엔 아이들이 잘하는가 싶더니 얼마 안 가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우리가 문제 푸는 기계 같다는 생각이 든단 말이에요." 왜 엄마까지 자기들을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허비하게 만드는지 모르겠다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 즉시 학습지를 끊어버렸다. 소연이가 3학년 때였다. 나름대로 공부에 재미를 붙일 때라 문제집을 한 권 사주었더니 생각보다 빨리 풀었다. 마침 학기말 고사가 얼마 안 남았기에 한 권 더 사줄까 물었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똑 부러졌다. "엄마 공부는 문제집 가지고 하는 게 아니에요. 그런 거 많이 보면 시험지 푸는 요령만 생기지. 진짜 실력을 쌓지는 못한다구요." 교과서와 참고서만으로 충분하다는 얘기였다. 학교 교육에 염증을 느끼면서도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터득했다는 판단이 들자 나는 아이들에게 유학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았다. 예상대로 소연이는 대찬성이었지만 재진이는 처음부터 선뜻 응하진 않았다. 소연이가 초등학교 6학년, 재진이는 4학년 때였다.





아이들은 스스로 배움을 터득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소연이가 그토록 원했던 유학을 그만두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더 이상 부모와 떨어져 살게 할 수 없다는 것 때문이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까지 부모를 희생시키는 자식이 되고 싶진 않다는 말에 역 유학이나 마찬가지인 민사고 편입에 동의하긴 했어도 솔직히 나로선 불안하기만 했다. 무엇보다도 수험생에게 환경이 바뀐다는 건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막상 오고 나서 후회하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었다. 서울도 아닌 지방 출신의 아이가 초등학교를 마치기도 전에 유학을 떠났다가 고등학생이 되어 돌아왔으니 절반은 외국인이나 마찬가지였다. 학교도 친구도 낯설기만 할 텐데 공부는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나는 그런 이유로 소연이가 편입 시험에 합격하고도 최종 마감일이 되어서야 등록금을 입금했다. 하지만 소연이는 호주에서와 마찬가지로 무난히 민사고에 적응했다.





어쩌면 그것이 아이를 자유롭게 놓아준 교육의 힘인지도 모른다. 호주는 한국의 숨 막히는 교육제도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던 내가 보기에도 답답할 만큼 모든 면에서 지나치게 여유롭고 개방적이었다. 특히 초등학교에선 아예 노는 것 외에는 하는 일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얼핏 보기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은 일과 속에서 아이들은 적극적인 탐구정신과 남을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배우고, 독립심과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으로 성장하고 있다. 글자를 가르치고 뺄셈을 알게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교육방법은 아이들이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그것에 대한 의문을 갖게 하는 일이다. 내 경험에 의하면 아이들은 저마다 그 해답을 찾아내는 방법을 타고났다.





성적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아이들을 유학 보내면서 나는 가정 형편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가능하면 최고의 교육 환경을 가진 학교에 보내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그런 학교는 호주 현지인들 간에도 경쟁률이 치열해서 처음부터 욕심을 내기가 어려웠다. 두 아이에게도 낯선 환경에 대한 적응 기간이 필요했다. 그런 의미에서 친지가 있는 작은 시골 학교를 유학생활의 첫 출발지로 정했던 건 훌륭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낯선 환경에 대한 거부감이 덜해지고 학교 공부에도 점점 자신감이 붙었다. 나는 아이들의 적당한 적응 기간이 끝났음을 확인하고 적당한 상급학교를 찾아보았다. 그 결과 영국의 이튼칼리지(Eton College)를 모델로 지었다는 스카치칼리지(Scotch college)가 호주에선 최고의 명문 학교로 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소연이가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호주나 한국이나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건 똑같지만 호주에서는 공부 자체가 즐거웠단다. 모르는 걸 하나씩 깨우쳐 나가면서 열심히 공부하다 보면 한 학기가 끝날 무렵, 자신의 실력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학생들은 목표한 점수를 위해 공부를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경쟁을 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허비한다며 아쉬워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친구도 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가 오직 최고점을 향하게끔 형성되어 있다는 게 자기에겐 적잖은 충격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학 입시가 끝나면 마음속에 구멍 하나가 뻥 뚫릴 것 같다며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실 건 없어요. 이게 다 제가 너무 좋은 환경에서 느긋하게 공부할 수 있었기 때문에 느껴지는 차이에 불과한 거니까요. 여기서도 잘 헤쳐 나갈 수 있을 거예요. 그동안 좋은 교육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게 도와주신 부모님께 늘 감사하고 있어요." 항상 문제를 낙관적으로 바라볼 줄 아는 소연이는 결국 자신의 방식대로 학교 생활을 꾸려나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교육의 최우선은 행동이다



자신의 행동에 스스로 책임질 수 있게 하라


재진이는 말수가 적은 편이다. 그래서 별명도 '영감'이다. 재진이는 엄마도 없고 누나도 떠난 호주에 달랑 혼자 남았으니 외로움을 느낄 만도 하건만 전혀 내색을 하지 않는다. 그런 아이를 보며 대견하다는 생각과 함께 한편으론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걱정된다고 해서 마냥 아이를 감싸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어려운 환경을 경험해보지 못하고 자란 아이들은 자칫 이기적인 성격이 되기 쉽다. 난 아이들을 세상에 다 자기 같은 사람들만 있는 줄 아는 우물 안 개구리처럼 키우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우리 한국의 교육은 너무 수동적이라는 느낌이었다. 아이들은 자기가 왜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한 채 부모가 짜준 과도한 스케줄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나는 아이들을 지식의 노예로 키우고 싶진 않았다.



호주는 자원 봉사 문화가 생활화되어 있는 나라다. 그리고 유난히 외국인 난민들이 많이 사는 나라이기도 하다. 소연이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매주 토요일에 수단 출신의 난민 아이를 돌봐주는 일을 했다. 처음에는 영어에 익숙하지 못해 학교 공부도 벅찬 상황에서 토요일 낮 시간의 절반을 봉사활동에 투자하는 모습을 보고 말리기도 했다. "한 시간 봉사를 위해서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며 두 시간 거리를 다니는 건 너무 피곤하지 않니? 네 생각은 대견하지만 그런 일은 좀 더 커서 시간이 많을 때 해도 돼." 어느 날 나는 녹초가 되어 돌아온 소연이를 보고 안쓰러운 마음에 한마디 건넸다. "엄마는 우리가 남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환경에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만큼 더 많이 베풀어야 한다고 하셨잖아요. 시간은 지금이 제일 많아요. 그 아이가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도 지금이고요." 순간 나는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나는 그 뒤로 아이가 아무리 힘들어 보여도 절대 내색하지 않았다.

설득하지 말고 격려하라

어린아이라도 엄마의 거짓 칭찬과 진심 어린 칭찬을 본능적으로 감지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아이의 바르지 못한 행동을 잡아볼 마음으로 하게 되는 거짓 칭찬은 교육적으로 부정적인 역할만 할 뿐이다. 그런 칭찬은 아무리 자주 해도 아이의 행동에 바람직한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나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칭찬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아이들 기나 살려주려고 하는 입에 발린 칭찬은 하지 않았다. 절대 과장하지 않고 아이가 했던 말이나 행동에 대해서만 칭찬을 하거나 나무랐다. 잘한 일이 있으면 그때그때 바로 그 자리에서 얼마로서 느끼는 감정을 솔직히 말해주는 것이 칭찬의 기본 원칙이었다. 아이들은 자기 나름대로 하고 싶은 일들이 많다. 그리고 부모가 원하는 것 중에는 아이들이 하기 싫어하는 것들이 있을 수도 있다. 좋은 습관을 기르기 위해 하고 싶은 일들을 참아야 한다는 게 아이들에게 너무 가혹한 요구라는 건 부모들도 잘 알고 있다. 부모인 우리 자신이 이미 그러한 시절을 겪었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가끔 우리가 공부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주곤 한다. 부모라면 어릴 때부터 대단한 사람인 줄 알고 있는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의 경험담은 신선한 흥밋거리가 된다. "와, 엄마 아빠도 그런 실수를 할 때가 있었어?" "그럼, 딴 생각하다가 답이 하나씩 밀려서 시험을 망친 적도 있었지." "하하, 우리랑 똑같네요!" 웃음보가 터지는 건 주로 부모의 실패담을 들려줄 때다. 아이들은 부모의 어릴 적 모습에 부족한 자신들의 모습을 비춰보기도 하고, 안심하기도 하고, 또 분발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더 나은 발전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주의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아이들을 일정한 틀에만 끼워 맞추려고 하지 말고 자신감 있게 행동할 수 있도록 의욕을 북돋아 줄 필요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일 중요한 건 내 아이는 아직 어른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해주는 것이다.



아이들 습관은 부모하기 나름이다



아이의 습관은 10살 이전에 정해진다


나는 아이들에게 잔소리는 거의 하지 않는 편이다. 하루 종일 뭐는 해라, 뭐는 하지 마라를 입에 달고 살아도 아이들은 제 하고 싶은 대로만 하려고 든다. 자칫하면 잔소리하는 엄마나 말 안 듣는 아이나 습관처럼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하기 쉽다. 뭐든 서로 약속한 일은 꼭 지킨다는 원칙만 일찌감치 머리에 심어주면 잔소리할 필요가 없어진다. 나는 그 시기를 초등학교 3학년 이전까지로 정했다. 이때까지 아이들 버릇을 잡아주지 못하면 평생 잔소리를 입에 달고 살면서 아이들 닦달이나 하는 엄마가 되지 않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다행히 두 아이 모두 잘 따라주어서 지금은 내 교육 방법이 틀리지 않았다는 자부심을 느끼지만 솔직히 모든 게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흔히 아이를 너무 엄하게 키우면 주눅이 든다고 하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엄하게 키우더라도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해준다면 얼마든지 밝게 자랄 수 있다.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아이로 길러라

평소 나는 아이들에게 돈이 가지고 있는 가치에 대한 말을 자주 한다. 돈의 가치를 따지는 걸 너무 속되게 봐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돈이 최고라는 생각을 해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우리 집 경제사정을 실제보다 낮춰서 이야기해주고 의식적으로 모든 면에서 늘 절제하는 생활을 해왔다. 유학을 보내면서도 아이들에게 부모가 넉넉해서 보내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인식시켰다. 엄마 아빠는 넉넉하지 못한 경제 사정에도 불구하고 너희들의 장래를 위해서 투자하는 거라고, 나중에 커서 다 갚아야 한다고 했더니 어느 정도 부담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일찌감치 유학 계획을 세워놓기는 했지만 남편의 수입으로 병원개업과 아이들 교육비 문제를 모두 해결하기는 어려웠다. 결국 은행 대출금을 받아야만 했다. 나는 그 사실을 아이들에게 있는 그대로 알렸다.

갖고 싶은 것과 하고 싶은 일을 다 하고 살려면 그만한 노력과 수고가 따라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싶었다. 가정의 대소사에 관한 것들도 대부분 아이들과 공유했다. 어렸을 적부터 집안 돌아가는 사정을 알려준 탓인지 두 아이는 부모의 특별한 요구 없이도 분위기에 맞춰 행동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일찍부터 너무 어른스러운 행동을 강요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어려울 땐 서로 마음이라도 모아야 한다는 의식을 심어주었다는 면에서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호주는 4월, 6월, 9월에 2, 3주씩 방학을 하고 12월부터 1월까지 학기말 방학을 한다. 나는 아이들이 방학을 맞아서 집에 올 때마다 매일 하루 세끼 식사만큼은 꼭 내 손으로 차려 먹였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하루 세끼와 간식까지 일일이 챙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가끔은 배달 음식을 시켜 먹거나 외식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 유혹을 과감하게 떨쳐버리고 아이들과 함께 그날 그날의 메뉴를 정하고 새벽에 일어나 식사 준비를 했다. 점심은 찌개나 국만 데워서 먹으면 될 정도로 준비해 놓고 저녁은 반드시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 먹었다. 아이들은 식사 준비를 돕게 하는 엄마의 마음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 밝게 웃으며 주방에서 분주히 움직였다. 사실 나는 모처럼 집에 온 아이들에게 좀 더 편안한 휴식 시간을 보장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러한 시간을 통해서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그만한 수고가 따라야 한다는 삶의 엄격한 교훈을 배울 것이다.





부모는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다



부모의 비전은 아이들을 꿈꾸게 한다


지난 여름 우리 부부는 모처럼 특별한 휴가를 다녀왔다. 목적지는 우즈베키스탄, 남편 말고도 2명의 의사와 18명의 교회자원봉사자들이 함께 하는 7박 8일간의 여행이었다. 중앙아시아 중심부에 위치한 우즈베키스탄은 한반도 면적의 두 배에 달하는 규모를 자랑하지만 수도인 타슈켄트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지역에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제대로 된 의료 혜택은 꿈도 못 꿀 형편이었다. 나는 신문에서 우리나라 의료진들이 우즈베키스탄 오지 마을에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기사를 보고는 금전이나 물질적인 도움도 좋지만 몸이 아픈 환자들을 직접 찾아가 돌봐주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즈베키스탄에는 우리와 한 핏줄인 고려인의 후손들도 제법 많이 살고 있었다. 우리는 주로 고려인들과 우즈베키스탄인들을 대상으로 의료 활동을 펼쳤다.

우리가 찾아간 곳은 우리나라 60년대의 시골 마을을 연상시킬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었다. 사람들은 질병에 노출되어 있으면서도 제대로 치료를 못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심지어 평생 처음으로 의사의 진료를 받아본다는 환자도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매일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약을 포장하는 일을 했다. 약을 포장하는 기계를 따로 가져올 수 없었기 때문에 일일이 손으로 직접 약을 싸서 봉지에 담아 줘야만 했다. 봉사 마지막 날 밤, 남편과 나는 우리보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위해 늘 봉사하는 삶을 살자고 약속했다. 이것은 지난 여름 봉사활동을 통해서 내가 얻을 수 있었던 가장 큰 기쁨이고 보람이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재진이에게 전화를 걸어 우즈베키스탄에서 아빠와 약속한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아빠가 너무 자랑스러워요. 저도 이 다음에 대학생이 되면 아빠를 따라다니며 봉사활동할 거예요!" 아들이 그렇게 흐뭇해 하는 모습을 보니 새삼 값지고 보람 있는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