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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들은 어떻게 최고의 인재가 되었을까

링즈쥔 지음 | 한스미디어
제1장 스타트 라인



회상

그의 성장 배경을 보면 그가 지금과 같은 성취를 얻은 것이 그야말로 불가능한 일처럼 여겨진다. "저의 아버지는 작은 마을의 가난한 교사였습니다. 어머니는 농민이셨고 저도 농민이었습니다. 제가 공부를 시작한 첫 번째 학교는 '외양간 초등학교'였지요. 이 몇 마디 말로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회고를 시작한 그는 한바탕 호탕하게 웃었다. 1972년 리카이푸가 푸른 하늘을 날아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고 있을 때, 태평양 서쪽의 이곳 중국 대륙에서 션샹양은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쓰러질 것 같은 낡아빠진 '외양간 교실'에서 자신의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여러 해가 지나 그 역시 리카이푸와 마찬가지로 바다 건너 미국에 있는 세계적인 명문 대학, 카네기 멜론 대학의 컴퓨터학과에 입학했다. 션샹양은 그곳을 졸업하고 리카이푸와 같은 학위를 취득했다. 컴퓨터과학 분야에서 그의 성취와 명망은 리카이푸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사실 '리 박사'또는 '션 박사'라는 호칭에서는 두 사람의 경력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감지해 내기 어렵다. 1972년 리카이푸가 부모를 떠나던 해에 션샹양은 여섯 살로 '외양간 교실'에서 2년간의 수업을 마친 상태였다.



한 아이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자신에 대한 생각은 일반적으로 주위 사람들의 견해에 의해 형성된다. 션샹양이 성장해온 생활의 울타리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가 매우 똑똑하고 천재인 것 같다고 말하곤 했다. 여섯 살에 어머니 곁으로 돌아와 아홉 살에 초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매사에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지고는 견디지 못하는 근성을 갖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 역시 아이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는 놀기를 좋아했고 움직이는 것을 좋아했으며 산만하기까지 했다. 그의 마음속에 존재했던 완전히 또 다른 또 하나의 힘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훗날 그는 이러한 심리가 일종의 '반항'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머니 곁을 떠나 혼자 도시에 나가 공부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이 힘은 점점 더 강해져 그를 둘러싼 울타리를 파괴하고 외부로 격렬하게 표출됐을 것이다.



새로운 '리카이푸 법칙'

마이크로소프트 안에서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그 실력을 인정받은 리카이푸는 이제 큰 성공을 거두면서 도처에 명성을 날리고 있다. 그의 입에서 나온 수많은 주옥같은 말들이 처음에는 '원장화제(院長話題)'로, 나중에는 '카이푸화제(開復話題)'로 불렸다. 그 가운데 「나의 인재관」이란 글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그는 오늘날 지혜의 가치는 지나간 시대에 비해 커다란 차이를 갖고 있다고 확신한다. "농업사회에서 가장 훌륭하고 효율적인 노동자는 일반 노동자보다 20% 또는 30% 더 많이 생산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보사회에서 가장 훌륭한 소프트웨어 연구개발 인력은 보통 인력보다 500%, 심지어 1000%의 작업을 더 해낼 수 있다." 그의 이러한 견해는 중국의 대학 교정으로 전해져 무수한 학생들을 열정에 들뜨게 했다.



리카이푸는 미국 대륙을 밟은 지 1년 만에 선생님과 학우들 사이에서 '천재'로 불렸다. 하지만 그는 바로 그때부터 '천재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기 시작했다. 그는 미국 테네시주의 한 천주교 학교에서 중학교 1학년을 공부했다. 어느 날 수학시간에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7분의 1을 소수로 바꾸면 얼마가 될까?" 리카이푸가 곧장 손을 높이 들고 큰 소리로 대답했다. "0.142857142857……." 모든 학우들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선생님도 놀라움과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 자신의 학생 중에 '천재'가 하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리카이푸의 마음속에는 맑은 거울처럼 분명한 사실이 있었다. "사실 천재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저는 단지 어머니의 감독 아래서 죽도록 외운 것을 끄집어낸 것일 뿐 답안을 생각해내는 데 전혀 머리를 쓰지 않았지요." '천재'라는 말은 사실 하나의 함정이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 속에 빠져든다. 함정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높게 평가하게 만들거나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낮게 평가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자신이 출중한 이유가 보통 사람들을 능가하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제2장 자신이 가장 똑똑하다고 믿어라



자신감은 성장의 길에서 만나는 첫 번째 이정표다

오늘날 전 세계 1만여 명의 컴퓨터 학자들 가운데 장홍쟝을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허난(河南) 예헌(葉縣)으로 갔을 때 이제 막 우물에서 벗어난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어린 사내아이였던 그가 지금은 '멀티미디어 정보에 관한 이해와 검색, 브라우징' 분야의 세계적인 전문가가 되어 있는 것이다. 어떠한 대역(帶域)이나 설비, 언어에도 장애를 느끼지 않고 신속하게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전문용어로 말하자면 '멀티미디어 자동분석과 순서화, 가시화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8년 전에 장홍쟝에 의해 개척되었으며 그 업적은 지금까지도 사람들에게 커다란 칭송의 대상이 되고 있다. 장홍쟝이 중학교에 진학할 나이가 되었다. 그가 처음으로 정규 학교에 진학하여 처음으로 정상적인 교육을 경험하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정신세계는 아직도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하고 싶은 단계에 있었다. 어느 날 자습시간, 장홍쟝은 과제를 풀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그림을 그리다가 선생님에게 들켜 그 자리에서 한바탕 훈화를 들은 뒤 교실에서 쫓겨났다.



이는 당시로서는 가장 엄중한 처벌이었고 아이에게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강한 모욕감을 주었다. 한참 만에야 교실로 돌아온 그는 서럽게 울었다. 그는 당시의 감정을 30년이 지난 뒤에도 잊지 못했다. 몇 주 후, 장홍쟝에게 기대하던 순간이 왔다. 정식시험이 다가온 것이다. 선생님과 학생들 모두 이 시험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했다. 장홍쟝의 마음속에는 남달리 강렬한 소망이 있었다. 시험 결과 그는 마침내 원하던 대로 360명의 학생들 가운데 1등을 차지했다. 선생님도 그를 다른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장홍쟝은 선생님을 향해 두고 보자고 별렀던 마음이 이제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는 난생 처음으로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했고, 이는 너무도 순간적인 깨달음이었다. 사실 지극히 평범한 아이들도 '신동'이라 불리는 아이들과 똑같은 잠재적 능력을 갖고 있다. 장야친과 장홍쟝, 션샹양 등이 말하는 것처럼 모든 아이들은 잠재적 천재인 것이다. 불행한 사실은 대부분의 아이들이 자신이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고 그들의 부모나 선생님도 그들을 믿어주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똑똑함과 자신감은 만들어 가는 것이다

프랑스 파리의 국제 학술회의에서 로저스 대학의 그루버(Gruber)박사는 수많은 연구결과들이 천재 아동에게서 나타나는 놀라운 자신감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면서 배양되는 것임을 증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결론의 잠재된 논리는 이른바 '천재아동'들은 결코 유전적 변이의 결과가 아니라 환경의 자극에 의해 탄생된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매우 반가운 소식이다. 모든 아이들이 잠재적 '신동'이라는 뜻이다. 이 점에 대해 장야친도 비슷한 설명을 한 바 있다. 그는 "개인별 능력의 차이는 IQ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IQ를 어떻게 사용하느냐 하는 데 달려 있다"고 말했다. 이 말은 다름 아닌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1977년 겨울 어느 날 아침, 장야친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등교를 위해 책가방을 챙겼다. 막 문을 나서려는 순간, 그의 어문 선생님이 뛰어 들어왔다. 선생님은 흥분으로 얼굴이 발갛게 상기된 채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빨리… 어서… 빨리 이것 좀 봐." 선생님의 손에서 신문 한 장이 흔들리고 있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장야친은 그 《광명일보(光名日報)》를 기억하고 있었다. 신문을 읽는 순간 벼락이 장야친의 머리를 내리치는 것만 같았다. 햇빛이 창문을 뚫고 들어와 신문을, 그리고 장야친의 얼굴을 비춰주었다. 그의 얼굴에서는 신기한 광채가 났다.



훗날 그는 그 순간이 자신의 일생을 바꾸었음을 인정했다. 당시 그는 열한 살로 아직 성인의 세계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어느 정도 짐작은 할 수 있었다. 그해 봄, 중국에는 전에 없던 활기가 감돌았다. 도처에 격정이 가득하고 환희의 웃음이 넘쳤다. 매일 아침 대문을 열면 어김없이 기쁜 소식이 그의 얼굴로 들어왔다. 무엇보다도 아버지가 누명을 벗은 것이 그에게 첫 번째 기쁨이었고, 이는 가정 전체가 침울하고 무거웠던 과거와 결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두 번째 기쁨은 대입 시험의 부활이었다. 대입 시험의 부활은 그의 가족 전체에게 미래의 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그때, 신문을 들고 있던 장야친은 미래의 길이 가까이 다가와 있음을 직감했다. 사건은 한 작가의 출현으로 시작되었다. 이 작가는 '신동'들을 인터뷰하기 위해 베이징에서 허페이로 찾아왔다. 장야친이 자신의 생활을 공개하기 꺼리는 것을 보고서 그는 먼저 함께 산책이나 하자고 제안했다. 그날 오후, 장야친과 작가는 학교 주변을 이리저리 거닐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학교에서 너무 멀리 벗어나 시골의 들판까지 걸어 나왔다. 해가 지고 하늘이 석양으로 붉게 물들었다.



"동료들에 비해 너는 기초가 한참 부족하다는 걸 아니?" '이 사람은 왜 내게 좋은 말을 안 하는 걸까?' 장야친은 불쾌한 마음에 변명을 늘어놓지 않을 수 없었다. "저는 제 실력으로 입학한 겁니다." 작가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몸을 돌려 장야친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말했다. "하지만 넌 이제 시작일 뿐이야. 끝까지 성공할 수 있을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 말을 마친 그는 장야친의 한쪽 어깨에 잠시 손을 얹더니 이내 몸을 돌려 가버렸다. 장야친은 한참 동안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앞으로 두고 봐야 안다고?' 장야친은 이 말을 몇 번이나 되뇌었다. 여러 해가 지나서 장야친은 당시의 기분을 떠올리며 말했다. "변화는 제 마음속에서 일어났지요. 그분은 제게 매우 중요한 충고를 해준 셈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그분은 정말 지혜로운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그 이후로 어떤 문제에 부딪힐 때마다 제 머릿속에는 그분의 두 눈이 떠올랐어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말이에요. 매번 자만심에 찰 때마다 그분의 목소리가 저를 일깨워 주었지요."



제3장 도대체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가장 훌륭한 '자기 자신'이 되라

링샤오닝은 중국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성장했으며 중·고등학교와 대학을 모두 중국 국내에서 졸업했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배운 것은 모두 잊었지만 루쉰의 글 한 편만은 아직까지 깊은 인상으로 남아 있다. 루쉰은 그 글에서 중국 민족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루쉰은 중국에는 실패한 영웅이나 멋대로 반항하는 사람도 적고 홀로 격렬히 싸우는 무사도 적다고 말했다. 승리의 징조가 보이면 우르르 모여들고 실패의 징조가 보이면 앞뒤 안 보고 도망친다는 것이다. 링샤오닝은 미국에서 오랫동안 생활했지만 지금도 이들을 기억하고 있다. 게다가 시간이 오래될수록 더욱 루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링샤오닝은 이렇게 말한다. "이 말은 중국인이 '급물살을 따르는' 민족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집단주의 교육을 받은 탓에 모든 사람들이 공동의 이상과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지요. 모두가 같은 것을 추구하고 같은 희망을 갖고 있다는 겁니다."



어떻게 해야 가치 있는 인간이 될 수 있는가? "중국 교육의 기준은 여전히 일원적입니다. 다들 말하는 것처럼 천군만마가 외나무다리를 차지하기 위해 사방팔방에서 달려드는 것과 같은 실정이지요.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관계없이 모두 같은 일을 하기 위해 다투고 있는 겁니다. 항상 다른 사람들의 평가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딱한 일이지요.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하고 싶은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한 것이 되지요. 이는 일찍이 루쉰도 지적한 바 있습니다. 모두가 다투어 한 방향을 향해 나아갈 뿐 남들과 다른 일을 하려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고 말이에요." 사실 이른바 '우수하다'는 것은 반드시 한 집단에서 '1등'이나 '2등'을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링샤오닝이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가장 뼈저리게 실감했던 관념이다. 지금도 그는 항상 자신의 두 아들에게 말한다. "가장 훌륭한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 '가장 훌륭한 자신'이 되기만 하면 된다."



나를 이끈 건 열망이었다

1985년 여름 방학, 장이자오는 MIT의 1학년 학생이 되었다. 그 해 장이자오는 열일곱 살이었다. 그는 전형적인 동양인의 체격으로 키가 그리 크지 않은 데다 매우 말라서 그런지 실제 나이보다 더 어려 보였다. 그는 이미 교수들과 학우들 사이에 '천재소년'으로 통하고 있었다. 하지만 장이자오의 어머니는 발육이 양호하지 않은 아들이 집을 떠나 MIT로 가던 날 혼자서 잘 생활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사실 장이자오가 처음 집을 떠나는 것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재학 당시, 이미 하버드대학 수학학교에서 몇 달 동안 혼자 생활한 경험이 있었던 것이다. 당시 그는 겨우 열여섯 살에 불과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미국에서 '대학 입학통지서를 받는 것'은 결코 대단한 일이 아니다. 진학을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입학이 가능하다. 점수가 부족할까 걱정할 필요도 없다. 점수가 부족해 낙방할 일도 없고 얼마든지 학자금 대출을 신청할 수 있기 때문에 학비가 없어 걱정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최고 수준의 대학에 입학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예컨대 하버드대학은 4명의 지원자 가운데 1명을 선발하는 꼴이고 MIT에 합격한 학생 가운데 절반은 고등학교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을 유지했던 학생들이다. 또한 좋은 학교일수록 학생들의 우수한 자질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학비도 상당히 비싸다. 명문 대학의 교문 안으로 들어서기가 어려운 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미국이 다른 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미국의 부모들에게는 '아이를 반드시 명문 대학에 입학시켜야 한다'는 관념이 없고 아이들도 그런 심리적 압박을 느끼지 않는다. 장이자오가 관찰해 본 결과 그의 학우들 가운데 적어도 절반 이상이 이런 희망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장이자오의 마음속 열망은 점점 더 강렬해져만 갔다. 그는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회고하고 있다. "고등학교 마지막 2년 동안 내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MIT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물론 내가 이런 생각을 갖게 된 동기는 중국의 학생들과 다른 것이었다. 이는 누가 강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나 스스로에게 가한 압력이었다."



제4장 공부는 일종의 태도다



왜 공부를 잘하는 학생일수록 자발성이 떨어질까

주원리는 서양 속담에 A급 학생은 남의 관리를 받고 B급 학생은 남을 관리한다는 말이 있다고 말했다. 중국에는 같은 의미의 또 다른 표현이 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말했다. "너희 반에서 공부를 가장 잘하는 학생은 장차 네 아들의 가정교사가 될 것이고 공부를 가장 못하는 학생은 장차 네 아들이 다니는 회사의 사장이 될 게다." 이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이것이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의 자기위안을 위한 말이라고 치부해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주원리가 이런 말을 했을 때 그의 표정은 '자기위안'이라기보다는 '자기반성'에 더 가까웠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또 다른 연구원인 장치엔은 이런 말을 처음 듣는 순간 파안대소하며 말했다. "정말 그럴 가능성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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