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이 걸어라
유인촌 지음 | 중앙북스
워크홀릭 하나, 한번 걸어볼까, 도쿄
시속 6킬로미터의 행복
걷다 보면 짧고 경쾌한 리듬을 타기 시작한다. 이런저런 일로 복잡했던 머릿속이 몸의 리듬에 맞춰 맑아진다. 오가며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도 이렇듯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면 아름답고 경이롭다. 열심히 걸어서 도착 장소에 이르면 등줄기가 땀으로 흠뻑 젖어 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충만한 만족감에서 비롯된 긍정적인 에너지로 뿌듯하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의욕이 넘쳐흐른다.
나의 걷기는 유유자적 산책하는 것이 아니다. 내 기준으로 그저 빠르고 힘차게 거침없이 걷는 것이다. 내가 걷는 속도를 대략 계산해 보면 시속 6킬로미터 정도 되는 것 같다. 사실 시속 6킬로미터는 현대인에게 무척 낯선 속도로 평소 걸음걸이보다는 조금 빠르다. 걷지 않으면 좀처럼 느낄 수 없는 속도, 빠르지 않지만 결코 게으르지 않은 속도, 시속 6킬로미터. 나는 그 속도로 걸으며 또 다른 세상과 만났고,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행복을 발견하게 되었다.
한번 걸어볼까 도쿄
도쿄에서 '한번 걸어볼까' 생각하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계기였다. 2006년, 일본대학교 예술학부 객원연구원으로 도쿄에 살게 된 지 2주쯤 지났을 때, 일본어를 배우던 센타가야 어학원까지 가려면 에코다(江古田)역에서 세이부 이케부쿠로 선을 타고 이케부쿠로(池袋)역까지 전철을 타고 다녔다. 그런데 두 정거장까지가 기본 요금인 140엔이고 세 정거장은 30엔이 더 붙는다는 걸 알고부터는 30엔이라도 아끼기 위해 한 정거장 정도는 아예 걸어갔다.
집에서 학교가 있는 다카다노바바(高田馬場)역까지는 환승시간과 걷는 시간까지 합해 총 35분이 걸린다. 그러던 어느 날 작정하고 집부터 학교까지 걸어보니 55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전철을 타는 것과 겨우 20분 차이니 예상했던 것보다 짧게 걸린 셈이다. 걸으면서 내가 사는 동네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언제나 '좀더 걸어다닐 수는 없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모처럼 자유로운 주말이 찾아왔다. 어학원으로 향하는 방향만 대충 확인하고 무작정 큰 길과 전철 노선을 따라 내 머릿속 지도의 방향 감각이 시키는 대로 걷다 보니 결국 다카다노바바역이 나타났다. 어학원에 가기 위해 내리는 바로 그 역이었다. 나는 마치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듯 펄쩍 뛰어오르고 싶을 만큼 기뻤다. 그날 밤 나는 마음속으로 여러 차례 집에서 어학원을 바삐 왕복하다가 잠이 들었다. 겨우 집에서 어학원까지 길을 알아낸 것뿐인데 마치 인생의 새로운 항로를 찾은 것처럼 뿌듯하고 흐뭇했다.
굿바이 전철, 무조건 걷는다
에코다에 있는 집에서 다카다노바바에 있는 어학원까지 가는 길을 알게 된 뒤 본격적으로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걸으면서 만나는 일본 사람들과 조금씩 대화가 통하니 일본어 배우는 것이 재미있어 더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당연했다. 새로운 길을 찾을 때는 사람들에게 일부러 물어보았다. 나에게 걷기와 일본어 배우기는 서로 상승효과를 불러오는 두 축이었다. 걸어다니자 일본어를 말할 기회가 많아졌고, 다른 사람에 비해 훨씬 더 빨리 일본어를 배우게 되었다. 혹시 도쿄에서의 나의 걷기 체험이 새로운 언어를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외국어 단기 완성의 비법'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낯설기만 했던 길이 익숙해지고 머릿속에 도쿄라는 도시의 큰 그림이 정리되자 나는 좀더 과감해졌다. 한번은 신주쿠에서 약속이 있었다. 약속 시간과 장소를 전해 듣고 나도 모르게 어떻게 걸어갈지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어학원에서 나와 신주쿠 방향으로 걸었다. 싱거울 만큼 아주 쉽게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조금이나마 두려운 마음을 품었던 나 자신이 우스울 정도로 단 한 번의 시행착오도 없이 바로 찾아간 것이다. 어느 때부터인가 약속 장소가 정해지면 아무리 먼 거리라고 해도 전철 노선이 아니라 걸어가는 길을 먼저 생각했다. 전철을 꼭 타야 할 경우라면 어떻게 해서든지 걸어가는 길이 포함되도록 계획을 세웠다. 걷는다는 원칙을 세우고 나자 걸어다니는 거리가 엄청나게 늘어났고, 더 많이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잠자리에 들 때는 다음 날 아침 또 걸을 것을 생각하면 즐거웠다. 이처럼 나는 걸은 뒤의 피곤함을 즐기게까지 되었으니, 걷기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내 삶의 소중한 일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몸무게가 줄면서 벌어진 일
걷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두 달, 일본에 온 지 석 달 만에 4킬로그램이 줄었다. 솔직히 몸무게를 줄이려고 걷기를 시작한 것은 아니다. 물론 중요한 것은 줄어든 몸무게가 아니라 어학원까지 걸어다니기 시작한 이후 두 달 동안 걷기 좋은 몸으로 바뀐 것이다. 처음에는 조금 피곤했지만 열심히 걷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근육이 발달되어 피곤함도 줄어들고 몸도 전체적으로 가벼워졌다.
본격적으로 걸으면서 나도 모르게 몇 가지 습관과 규칙이 생겼다. 아침밥을 꼭 해 먹고 저녁이면 동네 공중 목욕탕으로 향하는 것이다. 겨울 아침 쌀쌀한 기운이 감도는 집 안에서 밥상을 차리고, 혼자 밥 먹고, 설거지할 때까지 한 마디 말조차 하지 않으며 느끼는 쓸쓸함이 어쩌면 나의 원시적 감성을 이끌어 내는 것 같아 그리 나쁘지 않았다. 또한 일본대학교 도서관에서 밤 10시쯤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빨래를 가지고 목욕탕으로 가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뜨거운 탕 속에 들어갔다가 빨갛게 익은 몸을 바라보며 그 먼 거리를 힘차게 걸어다닌 것이 대견하다고 칭찬해주었다. 그저 열심히 걸었을 뿐인데 내 마음까지 긍정적으로 변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걷는 동안 생각이 정리되는 순간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그건 덤으로 얻은 선물 같았다. 이제 걷기는 내 몸뿐 아니라 정신까지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워크홀릭 둘, 내게 길은 그냥 길이 아니야
빨래방 세탁기와 4장의 팬티
어느 날 아침 속옷을 갈아입으려다가 팬티의 허벅지 안쪽 부분이 닳은 난 것을 발견했다. 이유는 시도 때도 없이 걸어다녔기 때문이다. 평상시 반바지 스타일의 트렁크형 팬티를 입고 다녔는데, 하도 걸어서 속내의가 해진 것을 보자 갑자기 내가 뭔가 해냈다는 생뚱 맞은 자부심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연기를 위해 춤을 배울 때도 구멍 난 신발을 보며 희열을 느낀 적이 있다. 이 느낌은 한 가지 일에 최선을 다해 노력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처음 걷기 시작했을 때부터 걷는 데 요령이 생기기까지 여러 가지 경험과 시행착오를 겪었다. 맨 처음 겪은 시행착오는 역시 신발이다. 일본에 도착해 첫 한 달 정도는 편안한 단화를 신고 다녔다. 그런데 걷는 거리가 늘어나면서 발목과 다리가 아파 왔다. 그래서 서울에서 가져온 비닐 재질로 발등을 덮는 운동화를 선택했으나, 방수가 되는 것은 좋았지만 이 운동화 역시 쿠션이 부족해 무릎에 충격이 전해지고 통풍이 되지 않아 발에 땀이 찬다는 단점이 있었다. 결국 나는 러닝화와 워킹화 전문 매장을 하는 후배의 충고로 워킹화를 신게 되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딱 나에게 적용되는 말이었다.
나는 새로운 일은 무조건 먼저 부딪쳐보고 경험을 통해 배워 나간다. 걷기도 마찬가지였다. 걷는 거리가 늘어남에 따라 체력도 좋아지고, 정신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또한 나의 이 소중한 걷기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걷기를 나 혼자만 아는 '깊은 산 속 옹달샘'으로 남겨 둘 것이 아니라, 공동의 우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서서히 싹트기 시작했다.
자신감이 넘쳐 사고를 쳤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나의 걷기는 점점 대담해져서 걸어서 두 시간 정도 되는 거리, 즉 대략 12킬로미터 정도를 걸어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더 이상 새로운 길에 대한 두려움도 생기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그와 비례해 내 일본어 실력이 일상생활에 불편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발전했다. 그러자 더 멀리 걸어가 보고 싶었다. 그러다 우연히 기회가 찾아왔다. 도쿄의 새로운 명물로 등장한 시내 중심부 미드타운에서 아내를 만나기로 한 것이다. 롯폰기보다 조금 더 가는 곳이었다. 당시 내 머릿속에는 도쿄 전철 노선도가 확실하게 그려져 있었고 항상 그 노선도를 기준으로 삼아 이정표를 보고 길을 찾아다녔다. 그 날도 그랬다. 하지만 결국 자신감이 지나쳐 교만에 이르자 그만 사고를 치고 말았다.
이왕 가는 길, 평소에 가고 싶었던 곳을 들렀다가 가기로 마음먹고 신주쿠 문화센터로 향했다. 문제는 신주쿠 문화센터에서 나와 큰 길을 선택하지 않고 대략 방향을 잡아 골목길로 접어들면서 일어났다. 신주쿠에서 롯폰기까지는 걸어서 약 1시간 30분 거리라고 예상했지만 1시간 넘게 걸어도 도무지 익숙한 도로나 지명이 나오지 않았다. 퍼뜩 이상한 생각이 들어 큰 길로 나오려고 시도했지만 큰 길을 찾으려고 하면 할수록 더 좁은 골목길이 계속 이어졌다. 두 시간을 헤매고 나서야 눈앞에 와카마추 카와다역이 보였는데. 이 역은 롯폰기와 반대 방향에 있는 역이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쓸데없는 오기가 발동한 것이다. 지름길로 여겨진 길을 택해 걸었는데 또다시 같은 자리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벌써 7시가 넘어 있었고, 1시간 30분이면 갈 길을 무려 3시간이나 헤매고도 제자리에 서 있었던 것이다. 결국 나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이야기하고, 가장 가까운 전철역으로 들어갔다. 나의 '교만함'을 탓하는 마음은 컸지만 그렇다고 길을 헤맨 것이 억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내가 지금껏 모르던 길을 많이 알게 된 것이 기분 좋았다. 무작정 걷는 것의 즐거움이랄까.
놀멘놀멘 걷는 걷기 게임
항상 마음의 여유를 갖고 걸으면 모든 게 즐겁다. 아니, 걷다 보니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것이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자 어느새 스트레스가 없어지고 기분 좋은 활기가 적당하게 생겼다. 즐겁게 걷기 위해 개발한 게임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밤에 조용한 길을 걸을 때 내 발자국 소리를 듣는 것이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귀를 기울여 발소리에 집중해야 한다. 발소리에 온 정신을 집중하면 어느 순간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또 숫자를 세려고 해도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정신 집중을 하면 할수록 더 쉽게 숫자를 잊어버리게 된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이처럼 걷는 동안 발견하는 즐거움은 무척이나 많다. 걷는 즐거움을 빼면 내 모습이 남의 눈에는 좀 얼빠진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다. 혼자 정한 게임을 하면서 혼자 즐거워하고, 늘 흔한 거리 풍경 속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내고는 그걸 '발견'이라고 기뻐하니 말이다. 그러나 이처럼 놀멘놀멘 걷다 보니 어느새 걷는 게임에 완전히 푹 빠져버렸다.
내게 길은 그냥 길이 아니야
벌써 20여 년 전 일이다. 호암아트홀에서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공연할 때 주인공 햄릿 역을 맡았다. 햄릿은 정말 대사도 많고, 체력 소모가 큰 역할이다. 나는 다른 어떤 배우의 햄릿보다도 '유인촌의 햄릿'이 빛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어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그 연습 중 하나가 연습을 끝내고 집으로 오는 시간을 이용해 체력을 기르고 대사를 외우며 발성연습을 하는 것이다. 서소문에 있는 호암아트홀에서 압구정동 집까지 걷다가 달리다가 하면서 대사를 외웠다. 호암아트홀에서 집까지 7~8킬로미터쯤 되려나. 두 시간 정도 걷고 뛰다가 집에 도착해서 씻고 나면 기분 좋은 피로가 몰려와 푹 잘 수 있었다. 체력을 키우고 대사 연습도 했다는 만족감에 하루하루 행복하고 뿌듯해하던 시절이었다.
이처럼 내게 길은 그냥 길이 아니라 연기에 필요한 체력을 키우는 훈련장이요, 훌륭한 연습 무대였다. 과거는 물론이고 현재 그리고 앞으로도 걷기와 달리기는 배우인 나를 단련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걷기는 누구라도 나처럼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이 되면 가능하다. 나는 다만 열심히 실천하고 있을 뿐이다. 아무튼 도쿄에서 우연히 다시 시작된 걷기와의 인연은 하루가 다르게 깊어져 갔다.
워크홀릭 셋, 세월이 주는 힘, 여유가 주는 힘
이렇게 빨리 돌아가는 세상에서
아내가 도쿄에서 서울로 돌아가는 동안 나는 걸었다. 서울에 잠깐 다녀올 때, 아내를 마중하거나 배웅할 때 시나가와역에 내리면서 항상 '언젠가는 여기서부터 집까지 걸어가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그것은 결심이기도 했고 걷고 싶다는 바람이기도 했다. 오늘 드디어 그 생각을 실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시나가와역에서 전철 노선도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나는 신주쿠역까지 열 정거장도 안 되는 거리, 역 사이가 좀 긴 구간이 몇 군데 있지만 한 3시간 정도면 충분히 갈 수 있을 것 같은 거리를 눈여겨보았다. 3시간에 의미를 둔 것은 아내가 출국장에서 기다리다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에 도착한 뒤 나에게 전화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걷는 것이 목표였으므로 중간에 구경거리가 있어도 기억만 해두고 큰 길을 따라 걸었다. 시나가와와 신주쿠의 중간쯤 되는 시부야 근처에 도착했다. 여기부터는 다 걸어본 길이었다. 더운 날씨에 등은 이미 흠뻑 젖었지만 리듬을 타고 걷는 발걸음이 가볍다. 게다가 아는 길을 걸으니 나의 신경은 점점 무뎌지고 걷기 자체에 몰입되어 갔다. 내가 한 번도 걷지 않은 길을 걸어봤다는 것과 도쿄의 서쪽지역을 남쪽에서 북쪽으로 걸어서 선을 그어보았다는 것 그리고 3시간 이상 걸었다는 사실이 나를 즐겁게 했다. 그냥 한 정거장 정도 걸어보자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본에서의 걷기는 이제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 우리 땅으로 향하고 있었다. 남의 땅에서 걷기도 이렇게 즐거운데 눈에 익은 산천을 바라보며 걸으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도쿄에서 시작한 걷기는 이제 거침없이 한반도로 향하고 있었다.
세월이 주는 힘 여유가 주는 힘
세월이 주는 힘인가, 아니면 마음의 여유가 주는 힘인가. 나는 이제 걷기 그 자체의 매력과 힘을 동시에 느끼는 한편, 점점 더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걷기의 매력에 빠져들면서 나는 연기와 걷기의 공통점을 아주 많이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연기와 걷기 모두 '창조적 놀이'라는 것이다. 연기를 하는 배우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창조성이다. 나는 연기의 이런 창조적 속성을 걷기를 통해 느꼈다. 걷기가 사람을 창조적으로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다. 늘 보던 것도 걸으면서 '왜?'라는 의문을 가지고 다시 보면 새롭게 보인다. 연기에서도 걷기에서도 부드러운 움직임과 리듬, 호흡이 중요하다. 아무리 과장하는 연기라도 동작은 부드러워야 한다. 걷기도 그렇다.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서 걸으면 오래 못 가서 지치고 피로가 몰려든다. 몸에 힘을 빼고 경쾌하게 걷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걷기에 더욱 빠져들 수 있었던 것도 나의 정체성이라고 규정한 '연극과 연기'의 요소를 많이 갖추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금 무대에 선다면 더욱 아름다운 연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걷기를 통해 아름다운 세상을 더 많이 체험하고 더 깊이 생각할 수 있었다. 인생 자체가 연기라고 하지 않던가. 나는 이제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훨씬 더 성숙한 연기를 펼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을 나뿐만 아니라 모든 이가 함께 누리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몸과 마음이 젊어지는 나만의 비결
'동안(童顔)신드롬'이라는 말이 젊은 친구들 사이에 유행이라는 말을 들었다. 물론 나도 50대 또래들보다 젊어 보이고 싶다. 하지만 젊어 보이기 위해 특별한 것을 하지는 않는다. 젊어 보이는 것보다 몸과 마음이 젊은 상태를 유지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그렇게 되려면 우선 몸이 젊어야 한다. 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