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뇌세포를 춤추게 하라
엘리사 메더스 지음 | 부글북스
제1장 그 많던 영웅은 다 어디로 갔을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영웅은 죽음이나 굴욕을 무릅쓰고 미지의 프런티어로 과감히 나선 인물들이었다. 그들이 일궈낸 성취 중 많은 것은 그들 자신의 개인적인 욕구보다는 인류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 지난 50년 동안에 인간의 태도와 가치, 우선순위가 대중매체에 의해 결정되는 정도가 더 심해졌다. TV에는 차분한 영웅적 자질보다는 왁자지껄 허세를 부리는 사람들이 더 잘 먹혔다. 이 때문에 영웅의 의미도 극적인 변화를 겪게 되었다.
오늘날, 아이들은 부유한 명사들을 숭배한다. 전과 기록이 있고 마약을 습관적으로 즐기는 뮤지션과 운동선수들을 우러러본다. 태도가 극도로 냉소적이고, 소득이 터무니없이 높고, 말버릇이 더없이 지저분하고, 인간적인 삶에 대한 존중이라곤 찾기 힘든 사람들을 아이들은 숭배한다. 달리 표현하면, 오늘날에는 영웅이 그 사람의 인간 됨됨이나 이 세상을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흘리는 땀보다는 그 사람이 소유한 것의 크기로 정의되는 경우가 자주 있다. 물론 그들이 가진 것은 돈과 명성, 스포츠 재능 혹은 육체적 아름다움이다. 그러나 재능이 영웅을 만들지는 않는다. 육체적 아름다움이 미덕과 결코 동등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식들을 영웅으로 키우기에 앞서 먼저 더 건강하고, 덜 물질적인 차원에서 영웅의 자질을 다시 정의할 필요가 있다.
진정한 영웅은 목숨 걸고 다른 사람을 구하려다 팔다리가 잘린 사람들만이 아니다. 옳은 일을 위하여 개인적인 손실, 이를테면 명성과 프라이드, 우정, 신뢰, 돈, 즐거움과 기회의 상실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영웅이다. 한 마디로 말해, 영웅은 보상이 크거나 저항이 가장 적은 길을 택하기보다는, 자신의 명예와 자긍심에 비춰가며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진정한 영웅의 자질은 하루하루를 용기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의미한다. 자신이 가진 것만으로도 최선을 다하고, 지루한 나날 속에서도 도덕적으로 책임감 있는 선택을 한다는 의미이다.
제2장 아이의 장점이 아이를 무너뜨리는 흉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어떤 방식으로든 아이들은 가능한 일과 가능하지 않은 일, 위험한 일과 안전한 일, 자신들의 앞길에 장애물을 가로놓을 일과 문을 활짝 열어줄 일에 대한 판단력을 점점 키워간다. 어느 정도 안전이 보장되는 분위기에서 주변 환경을 탐험할 기회를 누린 아이들은 가능한 일에 대한 관점부터 더 착실히 계발해간다. 그 아이의 세계관이 다른 사람의 명령과 두려움보다는 자신의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비합리적인 제한의 구속을 받지 않는 아이들은 자신의 진정한 잠재력을 실현할 자유를 누리게 된다.
반면, 세상을 탐험할 기회를 박탈당한 아이들은 다른 사람의 인식을 바탕으로 주변 환경을 보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 아이가 배우는 것 중에는 옳은 것도 있고 그른 것도 있다. 과잉보호로 제한을 받는 아이들에게는 스스로 잠재력을 발견할 기회가 절대로 주어지지 않는다. 아이들 중심으로 흐르는 우리 문화의 부작용 하나가 바로 어른들이 보호자의 역할을 지나치게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그 결과, 많은 아이들이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들여다볼 기회를 갖지 못하고 커간다.
나 때만 해도 전형적인 가족은 독재정권의 축소판이었다. 아버지는 최고 통치자였으며, 그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는 일은 절대로 불가능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공손한 보좌관이었으며, 다른 가족과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말을 따라야 했다. 그리고 아이들은 아버지의 추종자였다. 아이들의 임무는 아버지의 명령에 복종하고, 그의 기대를 만족시키고, 그의 눈에는 보이되 말소리는 들리지 않게 행동하는 것이었다. 그때 이후로 아이 양육에 긍정적인 변화가 많이 나타났다. 한 예를 들면, 부모들이 자식의 삶에 그전보다 훨씬 더 많이 개입하는 것 같다.
부모의 역할 변화에서 가장 두드러진 대목은, 오늘날 많은 부모들이 아동심리학의 기본 원리에 상당히 밝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가 그전 어느 때보다도 많은 사랑과 응원, 간섭으로 교묘하게 다듬어지고 있다 해도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양육과 문화의 변화가 안겨주는 또 다른 긍정적인 보상은 오늘날 젊은 세대만의 특징이랄 수 있는 강한 자긍심과 높은 야망, 굽힐 줄 모르는 낙천주의이다. 또한 디지털시대에 태어난 아이들의 기술적 노하우는 놀랄 만하다. 지금까지 그 어느 세대도 그들만 한 수준의 기술적 노하우를 보여준 적이 없었다. 요즘 아이들은 기술을 쉽게 익히고 겁 없이 인터넷을 서핑하기 때문에 매우 현명한 소비자이기도 하다.
태어나기 전의 보살핌이 개선되어서 그런지, 전반적인 영양상태가 좋아서 그런지, 아니면 양육의 요인들 때문인지는 잘 모르지만, 오늘날의 아이들이 훨씬 더 똑똑하다. 오늘날의 청소년들에게만 보이는 특성 몇 가지는 양날의 칼과 같다. IQ 235도 야망이 전혀 없거나, 창의성이 없거나, 상식이 없는 사람에게는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높은 IQ가 기대에 어긋난 결과를 부를 수 있다. 특히 도덕관념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는 아이들에게 부작용이 클 수 있다. 부모로서 우리가 할 일은 바로 이것이다. 아이들의 강점과 재능이 그들을 허물어뜨리는 흉기가 되지 않고 논리적이고 독립적인 존재로 이끄는 도구가 되도록 그것들을 잘 양성하는 일이다.
제3장 외부 지령이 아이의 성장을 가로막는다
아이들에겐 강점이 많다. 그렇다고 해서 부모가 뒤로 물러앉아 편안하게 쉬면서 아이 스스로 삶을 꾸려가는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어도 괜찮을까? 푹신한 소파에 몸을 묻기 전에 먼저 아이들의 열정과 야망, 자신감, 낙천주의, 이상주의가 언제나 현실의 단단한 벽에 맞서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아이가 한 손을 등 뒤로 묶인 채 삶을 살아가는 형국이 되고 말지도 모른다.
'퍼블릭 어젠다'가 최근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요즘 아이들에게 실망하고 있다고 말한다. 과반수가 십대들에 대하여 무례하고, 책임감이 없고, 거칠다는 부정적인 표현을 쓴다. 대부분의 응답자들이 오늘날의 아이들은 기본적인 가치들이 결여되어 있다고 믿는다. 정직과 존경, 책임감 등 중요한 가치를 배우지 못한 점이 요즘 아이들의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한 사람이 2년 전보다 더 많아졌다. 성인과 십대를 포함한 응답자의 과반수가 청소년들이 장래 미국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아동문제 전문가와 십대문제 전문가, 부모, 조부모, 그리고 심지어 아이들 본인까지도 요즘 아이들 사이에 점점 뚜렷해지고 있는 몇 가지 부정적인 특징이 부모의 과도한 관심과 물질적 여유로 생겨난 부작용이라고 보고한다. 그 부정적인 특징들이 바로 내면의 논리력을 개발하려는 아이들의 여정을 가로막을 수 있다.
이런 부정적인 특징들의 핵심에는 도대체 뭐가 도사리고 있을까? 유전일까? 아니면 운일까? 그것도 아니면 그릇된 양육의 결과일까? 분명히 말하건대, 여러 요인이 함께 어우러져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가장 무서운 범인은 '외부 지령'이다. 아이들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찾는 일에 자신의 객관적인 논리력을 동원하기보다는 외부 세계에 크게 의존한다는 뜻이다.
그러면 양육의 변화로 나타난 그 많은 경이로운 특징들을 아이들이 제대로 활용하도록 만들 길은 없을까? 아이가 그런 특징들을 제대로 평가하고 이해하고 삶에 응용할 내면적인 능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먼
저 자기성찰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 외부의 영향이 자신의 삶을 좌지우지하도록 내버려둘 게 아니라, 외부의 영향 중에서 옳고 그른 것을 가려낼 줄 아는 능력이 요구된다는 뜻이다. 오늘날의 아이들이 소유하지 못한 기술이 바로 이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매체가 주도하는 세상에서 길러지는 첫 세대이다. 이는 곧 아이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외부 압력에 직면하고 있다는 뜻이다. 외부 압력은 아이가 자신의 결정에 따른 결과에 대하여 객관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게 방해를 놓는다. 또 아이가 가진 강점을 제대로 활용하기는커녕 파악조차 어렵게 만든다. 이런 마당에 내면의 나침반을 개발하려 들지 않는 아이들이 많다고 해서 그리 놀랄 게 있을까? 바깥세상에서 너무나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아이들의 외부 지향적인 행동의 뒤에 도사리고 있는 세력들이 어떤 것인지를 이해하기만 하면, 부모들은 양육관행을 바꿔나갈 파워를 확보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양육 패턴이 세월을 두고 어떤 식으로 진화해 왔는지를 알기만 하면, 앞으로 몇 개의 장에 걸쳐 추천하는 효과적인 해결책들을 이용할 때 자신감이 더 커질 것이다.
제4장 모든 부모들이 극복해야 할 도전들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부모를 비롯한 아이들의 보호자가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본의 아니게 아이들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으니 말이다. 아이의 행복을 위해 가장 헌신적으로 노력하는 존재들이 바로 그들이 아닌가. 부모라면 누구나 자식들에게 한 짓이나 해 주지 못한 일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가. 이런 마당에 다음과 같은 지적사항들을 내놓는 것은 누구를 원망하기 위해서가 결코 아니라는 점을 먼저 강조해두고 싶다. 단지 아이들을 키우는 몇 가지 습관이 유익하지 않다는 점과 그것이 안고 있는 잠재적 해악을 알리고 싶을 뿐이다.
아이가 제 나이에 어울리는 몸부림을 치도록 내버려두라
오늘날 아이들이 건전한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데 필요한 기술을 제대로 개발하지 못하는 이유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아이가 나이에 어울리는 몸부림을 치지 않아도 좋도록 어른들이 방패 역할을 충실히 맡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주 작은 고통까지도 어른들이 서둘러 처리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어떠한 불편도 안겨주지 않으려 드는 것이 두 번째 이유다. 아이가 스스로 자초한 불편까지도 애써 막아주려 드는 것이다. 그러나 부모가 아이를 역경으로부터 보호해 줄 때, 실은 자녀에게 그들의 탄력성과 독창성에 대한 믿음을 거둬들였다고 말하는 거나 다를 바 없다. 그런 양육 형태는 또한 강인함은 고통을 먹고 커간다는 진리를 망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더 걱정스런 일은, 부모들이 자식들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그 이상으로 뭔가를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이가 어떠한 불편도 느끼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 부모의 책임이라는 인식이 팽배한 것이다. 그 결과 우리 어른들이 아이가 가급적 어려운 일을 겪지 않도록 막고 나서게 되었다. 아이가 도전적인 임무나 사람 사이의 갈등, 지루함, 좌절, 책임감, 약속, 안달 등으로 힘들어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 부모의 의무가 되어버렸다.
꽉 짜인 스케줄이 뇌세포를 꾸벅꾸벅 졸게 만든다
논리력은 사춘기에 급속도로 개발된다. 그러나 많은 십대들과 젊은 성인들은 사춘기 이전의 인지력에 처박혀 꼼짝달싹하지 못하는 것 같다. 아이가 논리력을 활짝 꽃 피우지 못하도록 막는 요인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한 가지 요인은 아이들에게 곰곰이 반추할 자유시간이 거의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의 삶이 스케줄에 따라 너무 빡빡하게 돌아가기 때문에 그들로서는 굳이 생각을 많이 하지 않아도 별 문제가 없다. 게다가 응석받이로 역경을 모르고 사는 아이들은 문제를 해결하거나 힘든 과업을 완수하는 데 필요한 자기반성의 힘을 키우지 못한다. 어른들이 아이들의 문제를 대신 풀어주고, 갈등을 해결해주고, 지루함과 좌절을 달래주고, 그들을 갖가지 영향으로부터 보호해주며, 도전과 책임과 역경에 노출시키지 않을 때, 아이가 뇌 세포를 훈련시킬 기회를 얼마나 가질 수 있겠는가?
아이를 과보호할 경우에 생기는 부작용은 그 아이로 하여금 형편없는 선택을 하도록 부추기는 것 말고도 또 있다. 유혹과 충동, 압력에 맞서는 저항력이 약해지면 아이들은 자신의 인생길에 놓인 난관을 감내하지 못한다. 그 결과 아이들은 즉각적인 보상에 매달리고, 좌절을 참아내지 못하며, 자신이 뭔가 많은 것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불건전한 생각을 키우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우리 아이들을 영웅으로 키우는 첫 번째 단계는 그들이 건전한 추리기술을 개발하고 응용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아이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명백하고, 정직하고, 강력한 내면의 나침반을 갖출 필요가 있다.
아이 자신의 눈으로 스스로를 바라보게 하라
우리 부모들은 아이가 스스로 옳다고 느끼는 일을 하지 못하고 외부의 인정을 얻은 쪽으로 선택을 하도록 여러 면으로 부추기고 있다. 외부의 인정을 추구하는 행위들은 아이의 내면에 숨어 있는 영웅을 일깨우지 못한다. 아이들이 논리적이고 독립적인 존재로 커가려면 언제나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잘 이해해야 한다. 자신의 역량과 취약점, 희망과 포부, 가치와 원칙, 성격과 개성을 잘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영웅은 이런 것들을 설계하고 실천하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는다.
제5장 아이들은 이중 압박으로 혼란을 겪는다
다른 아이들보다 뛰어나라는 압박
부모나 또래로부터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이 아이들의 경쟁을 부추긴다. 이런 경쟁심을 병적인 수준으로까지 밀어붙이는 요소 하나가 바로 성공을 보는 관점이다. 요즘 많은 부모들에게 성공은 명성과 물질적인 소유, 사회적 지위, 커리어의 종류, 금융자산의 규모, 외모와 일의 수행에 나타나는 전반적인 완벽성으로 다가온다. 성공을 외적 성취로 판단하는 엘리트주의 문화에 부모의 압력까지 결합되면서, 아이들이 경쟁의 압박감에 엄청나게 시달리고 있다. 이런 압박감을 더욱 가중시키는 양육 태도와 행동을 몇 가지 살펴보도록 하자.
자식에게 터무니없는 기대를 거는 부모들이 많다. 가장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고무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꼭 그런 인물이 되어야 한다고 강요한다. 모두가 완벽을 추구하는 문화에 살고 있기 때문에, 일부 부모들은 자신의 목표를 실현하는 일에 건전하지 못한 경쟁을 동원하기도 한다. 이런 고삐 풀린 경쟁은 또한 아이가 지나치게 계획적이고, 지나치게 스케줄에 얽매이고, 쉽게 흥분하는 경향을 보이는 원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지나치게 목적 지향적인 문화는 아이들에게서 다른 사람의 요구사항을 고려하고, 자신의 가치관을 형성하고, 친구와 가족 구성원과의 유대를 강화하고, 책임과 약속을 돌보거나 인생의 의미를 깊이 생각할 시간을 앗아버린다. 게다가 또래들보다 나아야 한다는 쪽으로 치열하게 아이들을 훈련시키는 것도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그럴 경우 아이들은 그 목표에 닿기까지 단계적 과정보다는 목표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그 결과 아이들의 창의성이 빈약해진다. 그 목표에 이르는 각 단계를 두루 생각하고 싶은 욕망을 별로 느끼지 못한다. 문제를 풀고, 다른 사람들과 머리를 맞대며 함께 일하고, 갈등을 해소하겠다는 의욕이 강하지 않게 된다는 뜻이다. 오늘날 우리 문화에 팽배한 지나친 경쟁심은 사고를 할 줄 모르고, 물질적이고, 만족할 줄 모르고, 고립되고, 지칠 대로 지친 개인들을 많이 만들어내는 것 같다.
틀에 일치하라는 압박
또래, 부모, 그리고 대중문화의 메시지들은 아이들이 자신들을 어떤 틀에 맞추라고 부추긴다. 일치는 원래부터 청소년 문화에 고유한 부분이다. 부모로서 우리 어른도 준거의 틀을 제시하고, 그 틀에 맞추도록 노력하라고 격려 혹은 강요하면서 아이들에게 일치에 대한 압박을 더욱 가중시킨다. 비판과 모욕 같은 부정적인 판단은 아이들을 부끄러워하게 만들어 어떤 틀과 일치하도록 만든다. 또 아이가 대중 속으로 솔기 하나 보이지 않고 섞일 때 어른들이 던지는 칭찬의 말도 아이들에게 그 무리와 혼